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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3-10-30 07:31:23

모녀 관계의 렌즈로 섭식장애를 비출 때 열리는 세계

〈두 사람을 위한 식탁〉

8★/10★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동안 늘 같은 거리에 있는다. 만약 인간관계가 평행선이라면 어떨까? 소중한 누군가가 늘 옆에 있다는 느낌에 안정감이 들까, 아니면 멀어지고 싶은 누군가를 떨쳐낼 수 없어서 답답함이 들까? 대개의 인간관계는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권태를 조정하고 지속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평행선의 관계에서는 그럴 수 없다. 좋든 싫든 늘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고 버텨내야 한다. 상옥과 채영, 엄마와 딸이 그러하듯이.     

 

  채영의 섭식 장애는 15살 무렵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딸의 섭식 장애에 엄마 상옥은 무수한 감정을 느꼈고, 무수한 생각에 빠졌다. 우리 딸이 왜 저럴까를 고민하며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봤다. 그러고는 죄책감에 빠졌다. 상옥은 힘겨운 청년 시절을 보냈다. 자기 인생이 너무 무거웠던 탓에, 자신이 딸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들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삶을 잃은 패잔병과 닮았다고 느꼈다는 그는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딸이 자신의 삶에 들어왔다고 회고한다. 뒤늦게나마 딸에게 단단한 토대가 되어주고자 결심했을 때, 채영의 섭식 장애가 시작되었다. 상옥은 딸의 섭식 장애가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다.     

 

 

  채영은 바쁜 엄마 때문에 종종 불안감을 느꼈다. 이웃집에서 엄마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고, 엄마가 대안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는 엄마가 자신만의 엄마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를 향한 채영의 감정은 양가적이었다. 자신이 엄마의 마음에 들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자신을 이렇게 키운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무엇보다 채영은 엄마가 자신의 섭식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채영은 극심한 거식증을 앓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무서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채영은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로 느꼈다. 사람들은 채영이 ‘안 먹는다’고 말했지만, 채영은 자신이 ‘계획적으로 먹는다’고 생각했다. 병원 입원은 이런 채영의 자율성과 자기 확신이 완전히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채영은 엄마가 더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불현 듯 깨닫고 입원에 동의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거식과 폭식의 시간을 보냈다.     

 

  “한 번도 접점이 없었구나.” 채영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말한다. 섭식 장애를 앓는 채영의 곁에서 그 누구보다 딸을 오랫동안 보듬어온 엄마 상옥은 모녀 관계가 평행선일 수밖에 없음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지난 세월의 모든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데서 허탈함을 느꼈다는 듯 채영 앞에서 큰 소리로 웃는다.     

 

 

  채영과 상옥의 이야기에서 ‘잘못’한 사람은 누구일까? 엄마로서 돌봄을 제공하지 않은 상옥이 문제였을까? 힘든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리감을 느낀 채영이 문제일까? 영화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배치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영화는 상옥의 남편이자 채영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남편/아버지가 처음부터 부재했다는 듯이.     

 

  상옥과 채영의 이야기는 오히려 또 다른 여성의 서사와 접붙일 때 더 선명한 색채를 얻는다. 상옥과 채영은 상옥의 엄마, 즉 채영의 외할머니와 함께 산 적이 있다. 상옥과 채영 모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상옥은 사랑스러운 딸이 자신의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다며 몸서리쳤고, 채영은 할머니를 보며 그래도 우리 엄마가 할머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는 채영과 닮은 데가 있다. 할머니 역시 40년 이상 토하는 삶을 살았다. 젓가락과 나뭇가지로 식도가 상하도록 몸 안을 헤집어 토를 했다. 상옥은 엄마의 자해적 구토가 자기 몸을 통제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해온 세 세대의 모녀는 분명 혈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에 묶여 있다. 이 묶여 있음은 지금껏 대개 그녀들이 자기 삶이 괴롭다고 느끼는 근거였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의도하지 않은 묶여 있음의 상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한 과거를 품으며 딸의 미래에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하는 상옥과 앞으로 엄마와 함께 살기는 싫다면서도 상옥에게 자기 속내를 천천히 털어놓는 채영. 평행선을 닮은 둘은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떨어지지는 않은 채 함께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사적’이면 거대한 모녀의 화해가 만들어갈 궤적은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모녀 관계에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우리사회에는 아직 그 변화를 예측할 언어가 없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잠식해온 관계망을 뚫고 나오는 동력의 핵심이 동시대 모녀 관계에 있음을 감각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 영화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부대끼며 만들어낼 구체적 미래 궤적이 또 다른 모녀 서사와 만나 서로를 두텁게 만들어주기를 고대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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