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토리2025-09-22 01:29:16

[30th BIFF 데일리] 늙은 집과 '영원한 현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리뷰


Program Note

 

명망 높은 인문학자 김우창의 내밀한 삶과 사유의 세계를 탐색한 21년의 기록. 김우창은 나무와 하늘과 산이 잘 보이고, 계단이 많고 지붕이 새는 집에서 아내 설순봉과 함께 40년째 살고 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어떤 것도 새로 들이지 않은, 유물로 가득한 집. 자식들은 이사를 종용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다. 자녀들이 말하는 아버지 김우창은 ‘변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편한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집이 곧 김우창이다. 지금 그는 책 더미에 파묻혀 마지막 저서를 완성하려 하지만 글 쓰는 능력을 유지할 나이를 지났다고 느낀다.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그의 학문적 성취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죽음과 생명에 관한 우주적 사유를 담은 영화이며 무엇보다 학문적 사유와 실제 삶을 일치시켜 나간 탁월하고 유별난 한 인물에 대한 희귀한 초상화다. (강소원)

 

 

 

감독: 최정단

출연: 김우창, 설순봉 외

(설명 출처: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82413&c_idx=421&sp_idx=569&QueryStep=2)

 

 

 

 

 

김우창 교수는 국내외 학계에서 명망 높은 인문학자이자 사상가, 평론가이자 문학가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내로라하는 대학에 그의 자취 남지 않은 곳이 없고, 온갖 문학 포럼은 그의 손길을 거쳤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 학회라는 암브로시아나에 정회원으로 당당히 입성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대통령의 러브콜마저 받은 김 교수는, 그야말로 한국 문학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력을 가장 부담스러워할 이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김우창 교수, 본인일 것이다. 지독하게도 학자다운 삶을 살아온 그에게, 명성과 명예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하다보니 따라온' 부차적 산물일 뿐, 과시하거나 이용할 대상이 아니므로.

 

아픈 몸으로 기꺼이 층계를 오른다는 것 

 

 

김 교수는 부인 설순봉 여사와 함께 40년 묵은 주택에서 지낸다. 멋들어진 산과 나무, 하늘이 보이는 근사한 집임은 틀림 없지만, 글쎄, 여든이 한참 넘은 노부부가 생활하기엔 썩 버거워 보인다.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기까지, 부엌에서 서재까지, 하염없이 층계를 올라야만 하는 집. 온갖 책과 골동품으로 가득 찬, 노 부부와 함께 늙어 성한 곳이 없는 그런 집. 비가 오면 천장에 물이 새고, 눈이 오면 한발짝 한발짝이 아찔하다. 자식들은 이제 몸도 성치 않은데 이만 이사를 가시라 성화지만 김 교수는 꿋꿋이 그 집을 지킨다. 편안함은 곧 죄악이며, 우리 사회는 너무나 '고통을 낭비해 온다'며 일침해 온 이 노학자에게, 그 집의 불편함은 그가 살면서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종의 과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에 엿보이는 삶의 면면에서 우리는 고행하는 승려보다는 기꺼이 태풍에 맞서는 무소의 그것을 엿보게 된다. 자신의 진리를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가는 그런 우직함.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편리함과, 연일 쏟아지는 온갖 정치적이거나 물질적인 정보 속에서 잊고만 가장 개인적이며 가장 우주적인 진리이기도 하다.

 

그는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물건이 낡고, 사람이 늙는 것은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가 소중히 하는 것은 그 모든 사람과 사물에 축적된 세월일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러한 세월 속에 깃든 역사적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이리라. 사물과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어느 독립된 한 순간이 아니라, 끊임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것이 세계과 끝없이 작용한 바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서일까? 그를 닮은 그의 집에는 골동품이 넘쳐난다. 옷장에는 멋스런 아버지의 양복이, 마당에는 아름드리 어머니의 은행나무가 가지를 뻗고, 냉장고에는 자식, 손주들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그 자체로 박물관인 양 보존된 그 불편한 집은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며, 외국으로 떠난 가족들이 모여드는, 상징적이고 물리적인 보금자리가 된다. 그곳은 또한 수많은 학자가 열띤 학문적 토론을 하던 곳이며, 걸출한 인문학서들의 고향이다.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배채우는 곳이기도 하다. 남들이 불편하고 위험하다며 혀를 내두르는 그 집에는 그런 역사가 있고, 김 교수는 그 역사의 귀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 노학자가 괴롭고 미련할지언정 자신만의 진리를 추구한 결과이지 않을까.

 

 

 

이런 그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낡고 병든 몸을 이끌고 위험천만한 층계들을 오르내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5가지가 넘는 병마도 학자의 영혼을 병들게 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세월이 흐르며 그는 노인이 되었고, 머리는 굳고, 눈은 어두워졌다. 그는 그가 평생토록 갈고 닦아온 글쓰기 능력도 스러지고 있음을 안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 죽음은 가까워지고, 이제 남은 것은 죽음에의 대비다. 그의 집을 채운 골동품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시간과 품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리라.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해낼 것 같다. 김우창 교수는 가장 치열한 삶의 순간들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며, 그러므로 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세계로의 확장을 의미할 것이므로.

 

_________

 

이 리뷰를 쓰는데 주저함이 많았다. 영화에 담긴 김우창 교수의 철학은 방대하고, 심오하다. 최정단 감독은 이 영화를 장장 21년 동안이나 찍었다고 했다. 한 아이가 태어나 대학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그보다 네 배는 넘게 살아온 노학자의 삶을 추적해 온 이 걸출한 영상은 김우창 교수 개인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자료이자,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인문학자의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엿보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것을 이 짧은 글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리뷰를 남기더라도 부족할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영화가 김우창 교수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차마 잊고, 낭비하고 말았던 고통의 단편,  그러니까, 물질 문명과 온갖 정치적 명분이 팽배한 이 삶 속에서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한 어떤 진리에 대해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질 사회를 사는 우리는 세상의 다수가 세운 기준에 우리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문명의 이기가 안겨준 편리함에 의탁하느라,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가치를 놓치고 있으니까.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영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알려준다고 감히 장담하지는 않겠다. 필자는 다만 김우창 교수가 강연과 삶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와 진리에 대해 고심할 기회를 제공하리라 말하고 싶다. 11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노학자의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헤메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되리라.

 

 

 

 

 

Schedule            

 

09-19 20: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09-20 12:30 CGV센텀시티 4관

09-22 09:20 CGV센텀시티 2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09월 17일 ~ 09월 26일

작성자 . 토리

출처 . https://brunch.co.kr/@heatherjorules/108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