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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규2024-01-18 11:44:25

[클럽 제로] 중세 시대가 문화의 암흑기인 이유

과연 우리라고 다를까?

 

 

 

싸패와 소패

만약 웨스 앤더슨 감독님이 독기를 품고 인간의 잔혹성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암울한 상황과 반대하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계속해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게 만든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이 보여주던 괴상한 순간들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정확히 보여준다. 관객과 주인공 일행은 점점 그녀의 설득과 집요함에 물들기 시작한다. 미학적인 황금비를 충실히 지키며 거짓의 탈이 완벽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화면 구성은 진짜 광기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루누이가 희대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미인의 숨통을 노렸듯, 영화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가치를 교수대 위에 매단다. 날카롭지만 쉽게 베이지 않는 무거운 칼 같다.

 

 




 

 무너지다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더 단단하고 큰 육체를 탐하다 불법 주사기에 손을 댈 수 있고, 더 완벽한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인간에게 생사의 실험을 자행하기도 한다. 영화 속 학생들은 각자만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문제점은 그들을 약하게 만드는 약점이자 사라지길 바라는 아픔이다. 예를 들어, 발레리노 남학생은 당뇨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정체불명의 약을 먹어야만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있다. 트램펄린 선수인 여학생은 무거운 체중 때문에 더 높이 뛰기가 힘들다. 그래서 살을 빼야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영양사 선생님미스 노백을 찾는다. 인간의 욕망은 약점을 보완하는 선량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그럴수록 욕망은 더욱 거대해진다. 결국 칠흑보다 깊고 어두운 구멍을 가슴에 남긴다. 학생들은 쉽게 무너졌다.

 

 

 

방아쇠

 

영화를 보며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지극히 철학적이고 공생주의적 부모들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스 노백은 그저 트리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역량에 따라가기 벅찬, 부모의 모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미스 노백을 만나고 폭발하기 시작한다. 1차적인 가해는 이미 집안에서 일어났다. 모델인지 체중 조절을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 엄마와 강제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윽박지르는 아빠 사이에서 여학생은 침묵한다. 음식을 먹는 시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는 사랑이 없었다. 반대로 매번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으로 성대한 저녁을 차려주는 집도 있다. 문제는 극진한 사랑에도 건강함은 없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힘겨워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있기에 부모로 존재할 뿐이다. 최악은 부모 노릇마저미스 노백에게 전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동굴 그리고 막장

 

주변 환경과 사회 전반적인 풍토는 분명 각 개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린 싸이월드에 감성 넘치는 글을 남겼고, 부끄럽다며 인스타에 옛 사진으로 관심을 돌린다. ‘미스 노백의 선을 넘는 일방적인 주장과 불합리한 논지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학생도 존재한다. 그녀를 마치 선지자처럼 떠받드는 학생들은반 미스 노백지지자들을 경멸한다. 신봉자들은 진실을 외면하면서 진실한 목소리를 가진 타 학생을 무시한다. 오히려 당신들도 믿음을 갖고 깨달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재밌는 사실은나도 틀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준 당사자는미스 노백이라는 점이다. 나 자신은 틀렸다고 믿지만 결코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진심 어린 사랑에는 인색하다. 어딘가 무너진 존재는 가장 먼저 시야를 좁힌다. 그래야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얼핏 보면 영화는 봉건 사회에서나 볼 법한 무조건적인 신앙과 강제적인 비건 강요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수히 많은 풍자가 역류하며 과연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도달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더 이상 학생들이 한창 성장하며 아프고 다시 일어날 십 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소화의 개념을 가진 로봇으로, 이목구비를 가진 짐승으로만 보였다. 그토록 잔혹하게 아이들을 바꾼 작은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해서 기쁘다. 고지식한 척, 깨어 있는 척, 가치관에 혼란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작성자 . 양남규

출처 . 씨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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