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3-05 16:32:56
각자 알아서 함께,<강변의 무코리타>
위안이 되는, 시간 무코리타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듯싶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2021
일본 / 드라마 / 121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각자 알아서 함께, <강변의 무코리타>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징어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잊고 오늘을 무사히 넘겨 힘차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단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오늘' 안에는 다음 날을 향한 기쁨이나 설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삶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생을 알차고 즐겁게 살겠다는 다짐과는 아주 먼, 무기력하면서도 음울한 그의 억지다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야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도망쳤으나, 지울 수 없어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 정신이 미쳐버리는, 오늘 현재에 정체된 인물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 덕분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순간 포착한 사진(이미지)들로 설명한다. 사진 안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이 겪을 사건과, 이미 겪었던 사건까지 어마어마한 수의 픽셀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보는 사람의 역량과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야마다로 예를 들자면,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아무 의욕 없이 마을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와 반가움에 건넨 사장의 악수를 받지 못하고 삐걱대며 주춤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두 장의 이미지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해 야마다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의 이전을 짐작하게 하며, 이후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한없이 무력한 두 눈과 한껏 말린 어깨는 막 오징어 공장에 떨어진 그의 현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다.
공장 사장의 소개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 야마다에게 막무가내 이웃, 시마다가 찾아온다. 얇은 벽 탓에 목욕을 방금 마친 걸 알고 있다며 뻔뻔하게 자신도 욕실을 쓰게 해 달라는 시마다. 야마다는 난처함을 표하며 그를 내쫓는다. 찰나의 순간, 시마다는 야마다에게서 자신과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분명 나와 다르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구멍.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품고 있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
"안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답니다."
인간의 죽음. 태어난 순간 당연하게 예정되는 마지막 순간. 영화는 인물들의 살아있음으로 우리의 끝을 이야기한다. 주택 입주민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야마다에게 도착한 연 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한 명씩 밝혀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고, 미나미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묘석 방문 판매를 하지만 반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변의 노숙자들은 여름 태풍이 올 때마다 친구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을 잃은 상실과 나를 찾지 못한 슬픔,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에겐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이웃의 이야기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과 귀로 담아내며 타인의 아픔에 소리 없이 공감한다. 세상으로 나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구구단을 거꾸로 세며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려는 야마다에게, 입주민들만의 방식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한다.
야마다는 마음을 열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과 이별, 상실을 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구출한다.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답례로 타인에게 도움과 배려를 당당히 요구한다. 야마다의 욕실과 밥통과 선풍기까지 마음대로 쓰면서, 건네는 건 텃밭에서 난 채소뿐이다. 야마다는 그의 무례함에 대응하지 않는다. 시마다가 건넨 채소는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끝처럼 고독사로 죽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마다를 무례한 이웃이 아닌, 좋은 밥 친구로 인식한다. 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옆집 사람이 무코리타 주택에선 친근하고도 마음 따듯한 이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주택 주인 미나미도, 반년 만에 묘석을 팔아 집세를 내는 대신 소고기 전골을 사 먹는 미조구치도, 말없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님도, 골동품으로 쌓은 쓰레기 산 위에서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야마다를, 이웃을 살피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만든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마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아주 조금씩 일상에 녹여내며, 언제 다 녹여내고 뿌리 뽑을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려 시마다는 텃밭을 가꾸고,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계속 고객의 문을 두드린다. 야마다도 오징어를 손질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해체한다. 자기를 버렸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분노의 실체를 입 밖으로 털어놓는다. 이미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선 그 깊이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법이야."
야마다의 사정을 알고 있던 공장 사장의 첫마디, 영화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야마다를 위해 준비된 위로와 사람들, 끝내 미소를 되찾는 그의 정해진 미래까지 무난하고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이는 <강변의 무코리타>가 의도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현실 속 우릴 대변하는 건 인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는 죽음이 그 시작이라 봤다. 야마다와 이웃들을 통해 '인간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말속에 담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가는데, 단순히 죽음을 좋고 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강변의 무코리타>의 강점은 이를 위해 우리의 생을 가장 먼저 찬미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의 추는 늘 살아감에 위치해 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용기. 야마다는 몰랐던 것뿐이다. 갓 지은 밥을 코로 먼저 맛보고 목욕 뒤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시는 일이 사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버팀목이었고, 민달팽이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과거에 발목 잡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과정이었단 진실을 말이다. 야마다는 이웃들과 똑같이 ‘종료되지 않는 치유 과정’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전화를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듯, 깊은 위로로 받아들인다.
<강변의 무코리타>가 세운 확실한 전제가 좋다.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구멍을 없애려고 일부러 함께 모여 살고 계획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무작정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의도적이지 않은 관심과 크기를 재지 않는 진심, 실없이 터지는 무해한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다웠다.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함, 미니멀리스트 시마다의 거미줄 이야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미조구치의 상상극, 생명의 전화와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 연립주택 사장 미나미가 품은 남편의 뼛조각, 외계인의 연락을 받기 위해 쌓은 전화기 산, 강변 노숙자의 기타 연주… 다양한 형태와 질감 그 속에 똬리를 튼 생의 의미까지 <강변의 무코리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을 파고 또 파면서 이미지를 순간 포착해 생산하고, 비로소 단 한 장의 사진(영화)을 찍어 낸다.
그들의 가족사진에서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가, 떠난 이들의 유영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강변에 노을빛을 뿜어내는 무코리타가 온 듯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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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영웅>의 질문 '누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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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루고 싶은 꿈
"나 이번에도 가" 안중근은 쉽지 않은 말을 가족에게 전했다. 왠지 모르게 무덤덤한 어머니. 그와 반대로 안중근의 아내는 슬퍼하고 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어렵나? 아내 김아려는 울며 사정하고 있다. "집도 팔고, 예물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았소.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라고!" 금방 온다는 약속도 무색하게 될 것 같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을 보내는 가족들. 대의명분을 위해서 아들과 남편을 희생해야 할 때가 여지없이 온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마음 안에서 울었다.
시간이 지났다. 독립군 부대에 도착한 안중근. 때는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몇 전투에서 이긴 안중근. 전쟁 포로로서 일본군 몇을 잡아놨다. 독립군은 이 일본군 몇몇을 처형하려고 한다. 총을 발포하기 직전이다. 겁에 질린 일본군. 그러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처형하는 독립군을 멈춰 세우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하나하나 비틀어 죽여야 할 놈들이지만 인도주의로, 대의명분을 위해 일본군을 풀어주기로 한다. 청산유수의 화법으로 다른 독립군을 설득한 것이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독립군 소대에 폭탄이 날아든다. 일본군의 급습이었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이 독립군 소대를 습격했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독립군. 동지들의 시체 속에서 안중근은 일본군의 가슴속에 흉터를 내려 총구를 겨눈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감탄한 것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때깔이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어느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 밑의 일본군 졸개는 얼굴 정면으로 밝게 보여준다. 반대로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흰 화장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얼굴 톤 대비로 인물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뮤지컬 신에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굉장히 어둡다가 빛을 활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방식은 영화를 뮤지컬처럼 표현한 좋은 연출이었다. 또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빛을 이용한 주인공을 조명시키는 방법은 영화 화법을 좀 더 간편하게 만드는 나름의 해결방안 중 하나였다.
또 정성화, 김고은, 나문의 배우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사실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설희가 직면한 문제가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김고은 배우는 이를 전혀 싱겁지 않게 연기한다. 사랑하는 주변인을 잃고 분노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매번 다른 눈물연기로 소화하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설희라는 인물의 눈물이 조선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설희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를 보여주듯 김고은 배우는 강강강의 빠른 템포 연기를 잘 소화한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 배우의 연기도 영화의 강점으로 돋보일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영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아니라 아들을 숭고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살린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전형적이고 상투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있다. 이런 식의 신파 연출은 우리가 자주 봐왔다. <부산행>에서 봤었고 <비상선언>에서도 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투적인 연출을 뚫고 보여주는 나문희 배우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그림자 진 얼굴과 함께 보여주는 슬픈 표정연기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정서를 내포하는 엄청난 연기다. 작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양조위 배우가 맡은 만다린의 연기처럼 극을 이해한 배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화 배우가 맡은 안중근 역은 이 사람이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배역에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목소리 톤과 눈빛연기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조악한 캐릭터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강박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 봤던 캐릭터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박진주-이현우 배우가 맡은 마진주-유동하는 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제시되는 캐릭터들이었다. 찾아보니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영화를 위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각색을 하나? 각색을 한 보람도 없이 이 두 인물은 안중근의 곁에서 단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우와 대단해요'만 할 뿐이다. 극후반부쯤에 영화에서 동귀어진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동귀어진이 안중근 의사랑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물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는 지점 덕에 조악하게만 느껴지면 다행이다. 이 박진주-이현우 두 배우는 한 영화를 기점으로 이미지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박진주 배우는 오래전 <써니>에서, 또 올해 <정직한 후보 2>에서 봤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연인 박진주의 <놀면 뭐 하니?>의 출연 행보도 겹쳐 보인다. 그냥 가창력이 좋고 코미디 잘할 것 같으니까 섭외한 게 너무 티가 나서 거의 모든 것이 다 예상이 된다. 이현우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이현우라는 배우는 머지않아 커리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봤던 이미지가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왔고, 역시 <영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다.
또 우덕순, 조도선 캐릭터 역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구멍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이 두 사람이 영화 전개에 구멍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어떻게 퇴장하는가? 에 대한 근거가 더 묘사돼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조재윤, 배정남 배우는 낡은 연출의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잠깐 나왔던 일본 장수는 어디 가고 좀 실없고 유치한 아저씨만 영화에 나온다. 배정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역시 이상한 연출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온다. 여기서 이 인물이 상의를 탈의할 이유가 단 1가지도 없다. 그냥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싶어서 넣은 것이다. 심지어 그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 자체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신분 숨기는 거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짧은 장면, 대사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또 이 배정남 배우의 조도선 캐릭터 역시 구석구석 보이는 '윤제균스러운 캐릭터 특징'이 보인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싫어할 법한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이는 조연캐릭터들과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김고은 배우가 맡는 설희 역시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있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이걸 설희의 서사를 깊게 다 보여줄 이유는 없다. 위에서 '조선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의 돌림노래처럼 '나라의' '꿈' '조선'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민족주의적인 소재가 이 인물로 표현되지 않아도 안중근 자체가 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극후반부에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내포되고 있다. 이 덕에 설희가 갖고 있는 모든 인물 서사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 불필요함은 설희의 퇴장 신 덕택에 더 두드러진다. 이 설희의 공간적 배경은 너무 대놓고 그린스크린 티가 난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윤제균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국제시장>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영화적 소재를 만들어냈으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아무나의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작품 하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제균은 이 선을 잘 타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차곡차곡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어떤 평론가들과 소수 관객들은 싫어할지 몰라도 쌍천만이라는 스코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K-상업영화의 시발점 같은 느낌? 이는 윤제균 감독이 자기화에 능한 예술가라는 말과도 닿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오마주와 변용은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에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신이 있다. 어떤 장면은 롱테이크로 묘사된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난다. 뭐 이건 <1917>도 시도한 바 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장면전환과 색감, 조명, 상하 움직이는 카메라의 공간이동이 박찬욱의 영화들 특히 <박쥐>가 생각난다. 군중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구도는 <레 미제라블>(2014), 설희의 특정 뮤지컬 신은 <알라딘>의 'speechless'가 연상된다. 어떤 구도는 김지운의 <밀정>을 갖고 온 듯하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창작자 윤제균의 작품들을 동의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스노비즘이라? 아니다. 윤제균이 상업적으로 감각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감각으로 이렇게 소심한 연출을 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개인적인 안중근과 독립운동 서사가 나오길 바랐다. 이거 오마주 한 것 굳이 볼 바에 그냥 역사책 한 권과 <알라딘>을 한번 더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지 않은 구멍들
영화에서 느껴지는 큰 구멍은 두 개였다. 우선 영화에서 하이라이트에 매가리가 없다는 점이다. 윤제균 감독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사 내내 쌓다가 터트리는 극후반부의 감정전달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2시간 전부 과한 연출만 반복되다 보니 이 후반부가 좀 얕게 느껴진다. 극에서 삽입되는 노래들 가사 거의 대부분이 '장부' '조국' '꿈'이 반복된다. 또 노래마다 고음역대를 지르는 하이노트가 하나씩은 있다. 웅장한 편곡이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영화 내내 산만한 기운이 후반부 힘을 줘야 할 때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1절을 못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 또 나오면 그게 왜 하이라이트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이고 주인공이 안중근 의사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연출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뭐 윤제균 감독 본인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후반부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대화만큼이나 영화 내적으로 물리적인 분량, 밀도가 얕은 영화 연출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이렇게 분량이 부족하다보니 스릴러로서 과정이 주는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정 묘사도 과한 연출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게 어려워야 암살 당시의 쾌감과 모자의 이별에 감동이 느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필요한 쪽에 이야기가 없는 것들은 안중근 가족의 서사에도 마찬가지다. 조마리아와 김아려의 서사에 몰입할 만큼의 양이 없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게 전부다. 오히려 이 가족애를 강조한 연출보다 만두가, 또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길었던 폭력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동귀어진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귀어진이다. 뜻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서 뜻을 다한다'라는 의미다. 설희도, 안중근도 동귀어진을 목표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뤘다면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으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너네 이거 좋아하지'식의 몇몇 연출 때문에 감독의 진정성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아바타 : 물의 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는 동귀어진의 이미지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사건으로 희생된 건 아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봤던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연한 감정전달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내 감정적인 이 영화.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뭔가 설득력이 없다. 아픈 역사를 아는 우리 모두 다 누가 죄인인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도 있고, '누가 죄인인지' 동시에 물을 시대가 된 지금 윤제균 감독의 질문은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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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사일런스'보다 부실한 것 같은 기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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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중 추돌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청와대 행정관 차정원(이선균)이다. 딸(김수안)과 함께 사는 싱글파더 정원. 직장이 청와대인 탓에 위에서도 어깨가 무겁지만 그의 입장에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딸이 랩(힙합)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낸 해결방식은 호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다. 운전 중인 정원. 그전에 이상한 양아치 조박(주지훈)와 말다툼이 있던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한참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건이 벌어진다. 콰콰쾅하는 소리가 난다. 앞에서 확인하니 수많은 차량이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어수선한 도로. 군인들이 모여 도로를 정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개 한 마리가 혼자서 돌아다니더니, 이내 곧 군견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하는 사람들. 골프선수 유라(박주현), 병학과 순옥(문성근/예수정), 과학자(김희원) 역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생지옥이 된 도로.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재난에'만' 집중하다
사실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재난영화라는 근본을 충실히 쫓아간다고 볼 수 있다. 재난영화의 근본이 뭐야? 기본적으로 현 사회 시스템에 대해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재난이 벌어진다. 그럼 그 재난을 수습하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지? 그 상황에 대해 이상적인 대처를 보여주나(<비상선언>, <볼케이노>) 한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비판하거나(봉준호 감독의 <괴물>) 정부차원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연대해서 극복하는 줄거리(<칠드런 오브 맨>)거나 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저열한 인간군상극(<부산행>)이 나올 수 있다.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이 특성 중 하나를 그대로 가져왔다. 바로 <괴물>의 사례다. 이것을 잘 살리는 주인공 차정원은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에서 근무하는 인물이다. 그럼 청와대의 인물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인물이랑 연결됐을까? 바로 유력한 대권후보 정현백(김태우)이다. 이 설정은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할 때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또 영화가 하이라이트에서 강조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무언가가 (합을 맞춘 티가 날 지언정) 이 차정원이라는 인물이 이 역할을 맡아 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근거가 된다. 영화가 인물 설정을 통해 무언가를 노리고 이 작품을 기획했는지가 드러나는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가 장르를 공간으로 설정한 방식 역시 돋보인다. 이 영화는 도로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장르적인 토대를 만들고 싶어서. 자동차가 30중으로 추돌사고가 일어나 그 여파로 크리쳐들이 풀려난다. 크리쳐들이 풀려나는 계기가 도로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국한 짓는 것이다. 뭐 바닷물에 오염수를 뿌렸다던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괴물>이 생각난다. 또 그 오염수라는 것에 변수가 좀 있다. 그 안의 생태계라던가 환경단체의 감시 같은 것들이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있을까?라는 걸 생각해 보면 2020년대에 이런 접근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름 영화가 독자적인 노선을 고른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이 영화가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을 선택한 이유가 인물들의 소시민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도로가 뭘까? 기본적으로 양 방향에서 오며 가며 이동하는 것이 도로다. 이 도로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에 탑승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차에 있다. 겉으로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건 국무총리건 알 수 없다. 차만 보인다. 인물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가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특성을 동력으로 삼았다. 이 영화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사회 안의 계급을 활용하지 않는다. 플롯에는 기능적일지언정 이야기 안의 문제 해결에는 인물들이 자기 몫 다 한다. 또 자기들끼리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보인다. 골프선수와 호주 유학 가려는 10대 여학생이 대화할만한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 그리고 서로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 있어서도 누가 높고 낮다 이런 게 없다. 각자 캐릭터들이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 하에 하나로 집결시킨 것이다. 둘째로 이 영화는 도로의 공간적인 특성이 플롯 안에 새겨놓은 흔적까지 보인다. 도로는 두 방향에서 서로 오고 가는 것이다. 만약 이 것의 한 방향을 자른다면? 한 방향 안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럼 돌아가야 한다. 도로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냥 그 도로 안에 갇힐 수도 있다. 여기서 이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인 문제와도 닿는데, 만약 이 도로를 이용하는 이용객 중 하나가 도로를 관리하는 입장이라면 그게 공정한 것일까? 이 질문을 영화가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구현한다. 극후반부를 보면 인물들이 도로를 둘러싼 리액션을 보여준다. 이 리액션이 사실상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공간적 배경이 ‘도로’가 아니었다면 이 구도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간이 영화의 핵심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라진 서스펜스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하면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있어 실질적인 재난에 해당하는 것들은 군견이다. 군견은 적군을 학살하는 것에 있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전적으로 일반적인 군견 같지 않다. 근육이라던가 감각이라던가 기동력이라던가 굉장히 뛰어난 애들이 이 군견들이다. 그리고 다른 설정. 영화가 안개가 자욱하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서스펜스가 생기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으로 들이닥치는 서스펜스가 있겠지? 영화가 이 서스펜스를 잡았을까? 아니오. 그럼 어떻게 잡았어야 했을까? 바로 청각적인 쾌감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박(주지훈)이 받아야 할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네 캐릭터만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아니면 정원 부녀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게 영화가 프리미어를 가졌던 칸 영화제와는 다른 분량이라서 애매하게 된 지점이 있는데, 부녀관계가 더 깊숙해야 하는데 매가리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 부분을 조금 덜 가져가더라도 장르적인 이해도에 주안점을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크리쳐에 해당하는 군견들도 이야기의 흐름에서 굳이? 싶은 점이 많다. 가장 큰 이유. 이 크리쳐들이 개일 이유가 있었을까? 이것은 영화에서 양 박사 캐릭터에게 설명이 부족했다는 과도 이어진다. 영화 안에서 양 박사는 군견들을 탄생시킨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이다. 그럼 이 프로젝트를 굉장히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면을 설명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개의 특성을 영화 안에서 핵심 소재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군견들의 단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서스펜스가 생길 수도 있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것이고, 그 조건이 발휘되거나 그렇지 않는다라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관해 그냥 1차원적으로 활용하고 끝낸다. ‘개코’라는 관용어구가 있는 만큼 냄새로 인물들을 추적한다던가 하는 방식이 영화 안에서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근육질의 강아지만 보여주는 선에서 상상력을 피지 못한다. 솔직히 이 영화의 재난이 <미스트>처럼 못생긴 괴물이면 어땠을까? 그건 차라리 비주얼이 무섭기라도 해서 '쟤한테 걸리면 끝장나겠다' 겁이 나기라도 한다. 이 영화의 강아지 묘사라면 호랑이, 고양이, 늑대, 하다못해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들이었어도 큰 문제가 없다. 영화가 서스펜스에 중요한 것들을 놓친 셈이다.
만화가가 꿈이어도 되는 거 아닌가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100% 적합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으로 유라라는 캐릭터가 그렇다. 이 인물은 <부산행>의 마동석 배우 캐릭터 같은 느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기를 활용해서 크리쳐들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내로 나온 정유미 배우의 캐릭터가 임산부인 것을 활용해 이동이나 보고 듣는 것에 제약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골프선수라는 직업적 떡밥(?)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조악하다. 사실 유라가 사격선수라면? 군인 출신이었다면? 골프선수보다 후반부의 전제조건에 더 깔끔하게 호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정현백이라는 인물물과 군인들이 가진 현실적인 능력 묘사가 이 영화와 적합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 후반부까지 다 보고 나서 드는 의문이기도 한데, 청와대 조직을 글쓴이 같은 20대 남성이 알 리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 이게 특정 누군가가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했다기엔 반론거리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노부부 병학(문성근)과 순옥(예수정)은 이 영화가 둔 가장 큰 패착이다. 이야기를 납작하게 만들 거라는 걸 예측하는 것과 동시에 전 국민이 보고 즐길 오락영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장면이 나온다.
의문스러운 기획
전체적으로 영화가 노리는 바는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는 토대가 부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다. 스릴러물로서의 서스펜스? 그렇다기엔 긴장감을 잡으려는 시도가 크리쳐 디자인 말고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동시에 이야기의 힘으로 플롯을 끌고 가기엔 인물들이 차정원을 제외하고 극을 이끄는 데 있어 적합하지 못하다. 허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걸 총합하면 얕은 영화라는 평이 가능하다. 인물도 다 예상되고. 영화의 핵심 사건도 다 예상되고. 캐릭터들을 기발하게 활용한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의 정치판을 비판하기엔 조직 내부의 알력다툼에 무심하고. 과연 이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덱스터 스튜디오의 CG 기술력만 느껴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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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여행. 나그네 려(旅), 다닐 행(行).
나그네처럼 다닌다는 뜻의 이 짧은 한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엄청나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여행을 가기 전에는 앞으로 다가올 여행을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주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즐거운 추억을 돌아보며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나 포함 수많은 직장인들이 1년에 한 번 떠나는 해외여행을 위안삼아 또다시 출근해내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않다. 2020년 한 해가 참 힘들었기에 다들 더욱더 어디로든, 잠시일지라도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요즘엔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로 누구나 헤매지 않고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다. 어느 도시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포즈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어야 하며, 어느 식당에 가서 현지 음식을 맛봐야 하는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게 맞을까?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는지. 여행이 무조건 교육적이며 의미가 있어야 하고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곳을 가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 그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여행은 한 개인에게 어떤 일말의 영향도 미치기 어려워 보인다. 여행지에서 생긴 좋은 기억들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여행이 개인에게 그의 인생을 바꿀만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한 여행기를 따라가 보자.
아르헨티나의 평범한 의대생 청년 두 명은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일주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 낡은 오토바이는 고된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망가져 버리고 만다. 그들이 오토바이를 버리고 걸어서 여행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둘의 여행은 180도 바뀌어버린다.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피폐해진 남미인들의 애환을 듣는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빼앗겨 광산으로 일하러 가는 부부를 만나고, 나환자촌에서 진심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여느 여행과는 달랐던 그들의 여행은 23세 순수한 의대생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20대 초에 다녀왔던 80일간의 중남미 배낭여행은 나의 인생에도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에게 미친 영향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아 보인다. 바로 영원한 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의 인생을 바꾼 여행에 관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이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에르네스토(체 게바라의 본명)와 그의 친구 알베르토는 무슨 혁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서 이 여정을 떠난 게 아니다. 단지 알베르토의 30살을 기념하는 동시에, 중간에 의대생으로서 나환자촌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빈부격차와 각종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누군가가 되기에 이른다. 피폐한 남미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신념이 바뀌게 된 것이다. 여행이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출처: 넷플릭스, 여행이 끝날 때 친구에게 이전의 내가 아니라며 뭔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체
탄성을 자아내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의 사막, 페루의 마추픽추 등 남미 곳곳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숨겨진 부조리들을 깨닫고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체. 여행은 체의 인생을 바꾸었고 체는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출처: 넷플릭스, 쿠스코의 원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체와 알베르토
출처: 넷플릭스,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편지를 쓰는 체
체가 활동하기 약 150년 전 중남미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1830)와 같은 혁명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자신이 평생 천식을 앓은 환자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려던 순수한 청년 에르네스토는 본인이 마주한 현실을 빠르게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사회의 투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혁명에 뛰어든 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특정 한 국가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어느 한 국가 국민이 아니라 중남미 전체의 Latin American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어 살아남은 혁명 동지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그가 다른 혁명가들보다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체 게바라의 활동과 삶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끊기지 않고 있다. 그의 능력이 부족했다거나, 작전이 효과적이지 못했다거나 하는 비판점도 있겠지만 그가 남들을 모른 척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 엘리트의 삶을 버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자유를 위해 본인의 삶을 바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희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한 번의 여행의 한 개인의 인생을 바꾸고, 또 그 개인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면 이 여행이 가진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앞으로의 여행은 짜인 코스를 가거나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사진을 찍는 것 말고도 다른 의미를 가지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물론 나부터. 그런 의미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볼 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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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봄은 대만 첫사랑 로맨스 <해길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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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등 풋풋하고 몽글몽글한 첫사랑 영화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대만 로맨스 영화가 올 봄 다시 한번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첫 만남의 떨림과 첫 연애의 풋풋함, 그리고 첫 이별의 아픔까지 떨어지는 벚꽃과 함께 그 때 그 시절로 우리들을 소환할 영화 <해길랍>은 가슴 뛰는 첫사랑 '탕셩'과 '완팅'이 충격적인 사고로 이별하게 되고, 몇 년 후 '탕셩' 앞에 낯선 익숙함을 가진 '류팅'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특별한 로맨스다.
<해길랍>은 특히 대만 드라마 <상견니>로 단숨에 새로운 아시아 첫사랑에 등극한 '허광한'이 주연을 맡아 1020 여성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스타성은 물론 빛나는 비주얼과 출중한 연기력까지 모두 겸비해 범아시아적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이번 <해길랍>으로 첫사랑만 바라보는 순정 직진남의 모습부터,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섹시미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훔칠 허광한은 일명 '첫사랑 재질'의 모습을 통해 대만 로맨스 사상 가장 완벽한 남자 주인공으로 만인의 이상형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해길랍>은 국내 레전드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나의 소녀시대>와 <장난스런 키스>보다도 훨씬 더 폭발적인 반응으로 눈길을 끈다. 핑크빛 로맨스를 기다려온 관객들에게 '대만 로맨스의 봄 흥행 매직'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감이 앞서는 가운데, 이미 팬들 사이에서 <해길랍>은 절대 놓쳐선 안될 허광한의 최애 필모그래피로 꼽히고 있어 2020년 대한민국을 비롯해 대만,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메가 히트 드라마 <상견니>의 뒤를 이을 흥행 돌풍이 예상된다.
다가오는 따사로운 봄, 누구에게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과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며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로맨스를 선물할 <해길랍>. 대만 영화 특유의 예쁜 색감과 감성으로 극장가에 핀 한 송이 따뜻한 봄 꽃 같은 작품이 되길 기대해 본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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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 엄마와 딸의 위치, 심경 변화
- 수박의 의미
-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의외의 인물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202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개봉일 : 2024.09.0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이미랑
출연 :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본문에서 인물의 이름은 극 중에서 사용되는 이름인 그린, 레인, 제희(노인)와 엄마로 표기 (엄마의 이름이 잠시 스쳐 지나가듯 나오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엄마의 이름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져 그대로 ‘엄마’로 표기하겠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른 것 같지만 닮아있는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과 유한한 삶의 끝에 서있는 노인. 네 여성들의 아픔과 사랑을 재료로 찍어낸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영화는 외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없이 주인공인 엄마의 내면에 집중하며 진득하게 나아간다. 외부 사건의 자리를 대신 채운 짧은 침묵과 방문 사이를 들여다보는 눈, 사랑 위로 자라난 아픈 말들엔 엄마의 두려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다.
<딸에 대하여>의 주인공인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의 딸인 그린은 7년 동안 만난 동성 연인 레인과 동거를 하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수박은 숟가락으로 대충 떠먹으면서도 딸이 먹을 수박은 예쁘게 썰어 준비하는, 딸을 사랑하는 엄마지만 딸이 함께 데려온 동성 연인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엄마는 인생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며 살고 있다. 그녀는 연고 하나 없이 요양원에 방치되어 있는 노인 제희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희는 한 어린이 제단의 설립자로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희생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제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다. 제단 사람들과 언론인들의 관심이 끊긴지는 한참이고 가정을 이루지 않아 찾아올 자식도 없다. 제희에게 남아있는 건 작은 손가방 하나와 곧 끊길 예정인 제단의 지원금뿐이다.
엄마는 이런 제희가 가엾다. 그리고 제희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 자신과 그린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두렵다. 남편, 아이 하나 없이 버려진 노인의 미래가.
그래서 엄마는 딸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반대한다. 딸을 사랑한다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차분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엔 엄마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극 중에서 엄마는 그린의 엄마, 요양보호사 여사님으로만 그려진다. 그녀의 이름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 서서히 나를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불안감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 앞에서 더욱 짙어진다. 영화는 떨리는 중년의 마음을 따라가며 엄마와 딸의 두려움.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것을 재조명한다.
<딸에 대하여>는 동성 연인과 엄마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늙어감과 외로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모녀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으니 꼭 성소수자인 딸이 아니어도 20대 이상의 딸이 있는 모녀관계라면 혼자보단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어린 딸과 엄마보다는 어른인 딸과 엄마에게 추천!)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엄마는 딸이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길 바란다.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엄마의 바람대로 그린은 자신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투쟁한다.
엄마의 눈엔 딸의 사랑과 정의감이 소꿉장난과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동성연애에 관계도 없는 다른 강사의 부당 해고 집회에 얼굴을 팔고 다니다니. 엄마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붙잡고 대체 왜 그러냐며 소리친다.
그린은 엄마가 자신에게 부당한 거, 싫은 거는 말하라고 가르쳤다고 답한다. 엄마는 몰랐지만 딸은 엄마의 가르침대로 잘 자랐고 엄마도 여전히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손발이 묶인 제희와 그것을 방관하는 동료를 향해 소리친다.
“어떻게 저게 남의 일이야. 우리라고 저렇게 안 될 줄 알아?”
부당 해고 사건에 대해 말하던 그린도 엄마와 똑같이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전여전 그 자체인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한숨 쉬어가며 나와 우리를 이해하다.
문밖을 서성이던 엄마, 문안에서 자고 있던 딸. 두 사람의 위치 변화 / 결말 해석요양원 과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던 엄마는 제희와 함께 요양원에서 쫓겨난다. 엄마는 제희를 찾아 깊은 산속 병동을 방문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엄마보다 더 어린 딸들은 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구를 받아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희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그린, 레인은 함께 장례식을 진행한다. 엄마는 제희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지독하게 붙잡고 있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린이 어르신이나 자신처럼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고.
그런데 엄마는 이제 인정하려고 한다. 그린의 곁에는 레인이 있고 두 사람과 함께 웃고 싸워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딸이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는 것을.
그린은 엄마 대신 상주에 이름을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킨다. 그 덕분에 항상 문밖에서 전전긍긍하며 딸의 방을 바라보던 엄마는 이제 방 안에서 편하게 잠에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횡단보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또 다른 딸들의 앞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엄마는 딸에게 예쁜 수박만 주고 싶다
수박의 의미엄마는 그린이 집에 오기 전, 그린을 위해 커다란 수박을 산다. 엄마는 홀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겹게 수박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박을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예쁘게 썰어 그린을 위해 남겨두고 절반은 TV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대신해 홀로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푹푹 파먹다 금세 비어버린 수박처럼 어느덧 엄마의 인생도 탄생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다다른다. 엄마는 이제 나이 먹는다는 게, 혼자가 된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2층 집에 사는 세입자 가족처럼 이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할 딸이 걱정된다.
내 수박은 아무렇게나 팍팍 퍼먹어도 괜찮지만 딸은 예쁘게 썰어진 수박을 먹이고 싶은 게, 내 삶은 모나게 흘러가도 괜찮지만 딸의 인생은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게 엄마다. 엄마의 말대로 그린과 레인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결혼, 법적 보호자, 아이를 가진 가정.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엄마는 동성애자의 삶이 이성애자의 삶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린을 말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어른이자 믿음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린과 레인은 커다란 수박을 반반 나눠 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설령 무겁고 쉽지 않은 인생이라 해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인생의 무게를 나눠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엔 그린과 레인이 들고 온 수박이 부서지거나 소비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필요 없어서 해당 장면을 넣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이유 삼아 영화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고 갈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레인
치매 증상이 심해진 제희는 수시로 배변 실수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기저귀를 차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다. 엄마는 어르신이 편한 게 제일이라며 귀찮은 빨래와 목욕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요양원 과장과 관계자들은 비품을 너무 많이 쓰고 빨래도 너무 자주 한다며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눈칫밥을 먹던 엄마는 제희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채우는데 제희는 그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몰래 침대를 벗어나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실수까지 한다.
엄마의 2층 집에 세 들어 사는 부부는 여전히 싱크대 위에서 물이 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전에 불렀던 분들 말고 진짜 전문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엄마는 그들의 요청대로 다시 전문가를 부르고 물이 새는 걸 잡으려면 천장을 다 뜯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억지로 채워놓은 기저귀, 임시로 해결해 놓은 누수는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과 사이의 문제도 그렇다. 평범하지 않다고, 나와 다르다고 억지로 막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마음도 바뀔 거라고 대충 덮어놓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다.
그린은 몰라도 레인은 이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떠밀려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레인이 엄마와의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한 건 말씀해달라, (그린에게) 우리만 참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하는 거다. 관계에 확신을 갖고 있다.. 레인은 차가운 엄마 앞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갑작스레 등장한 제희를 정성껏 보살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마 레인이 없었다면 엄마는 더 오래 아니 어쩌면 평생 딸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레인은 미움이 뚝뚝 새어 나오고 있던 모녀 관계를 지붕부터 뜯어 싹 고쳐낸다.
처음엔 당연히 엄마와 딸 그린의 갈등이 중점으로 그려지고 레인의 비중이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레인이 모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봉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져 더 좋았다.
생각보다 더 곱고 어른스러웠던 레인과 빛나는 눈으로 레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하윤경 배우의 모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느끼게 해준 오민애 배우와 반질반질하고 예쁘고 단단한 자갈 같은 그린을 보여준 임세미 배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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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는 이 영화를 <러브 레터, 1995>의 정식 속편은 아니지만, <라스트 레터>을 집필할 당시에 러브레터를 어느 정도 의식했다고 한다. 다 보고 나면 <러브 레터>에 대한 답장처럼 도 느껴진다. 왜냐하면 <라스트 레터>가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러브 레터>와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초반부와 죽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후반부의 격차에서 애절함을 발생시키는 구조부터가 그렇다. 손 편지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그렇다. 세상을 떠난 첫사랑, 차마 전할 수 없었던 진심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누구에게나 찬란했을 학창 시절의 추억을 꺼낸다. 순수한 청춘의 비밀이 밝혀지며 공감대를 넓혀간다. 피아노 건반에 발맞춰 아름다운 영상미로 감수성을 한껏 끌어올리는 연출도 동일하다. 이렇게 ‘남겨진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방식’으로 죽은 존재를 부활시키는 것도 <러브 레터>와 닮았다. 물론 세상을 떠난 사람과 닮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동일하다.
그밖에 대학시절 사귀는 과정은 생략한 채 그 직전까지의 고교 생활만 다룬 것은 <4월이야기>에서, 그리고 두 소녀가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며,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은 <하나와 앨리스>에서 가져왔다. 이렇듯 자신의 전작들을 적절히 재활용하면서 이와이 슌지다운 카메라워킹과 기법들을 선보인다.
그러나 <러브 레터>의 극적인 형식을 활용했으나 <라스트 레터>는 동어반복을 하지 않는다. 전작처럼 죽은 이를 추억하며, 후반에 이르러 진실을 드러내는 구조를 취하지만, 계절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꿔 <러브 레터>를 부정한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러브레터>의 두 주인공인 나카야마 미호와 도요카와 에츠시를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와이 슌지의 어두운 면을 끌어들인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와이 슌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첫사랑의 추억‘외에 다른 게 있다.
이 영화는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유리(마츠 다카코), 두 사람을 내세워 번갈아가며 내면의 심리를 드러낸 방식이다. 중년의 남녀가 그들의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노인세대의 삶도 다루고 부부관계, 동창회, 폐교 직전의 학교건물까지 다루고 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2세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는 다소 복합적인 구조를 취했다. 그럼에도 초반의 정신없던 이야기가 중반쯤부터 정리되면서 안정적으로 끝맺는다. 감독의 연출은 때로는 산문처럼 느린 호흡으로, 어떨 때는 운문처럼 최소한의 장면으로 천천히 관객을 설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쿄시로가 왜 죽은 미사키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가는지가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라스트 레터>의 구성이 느슨하며, 어느 부분에서 조금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아무래도 머리로는 ‘첫사랑 멜로’를 하고 싶었으나 가슴으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졸업식 축사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를 본 순간 확신하게 됐다. 졸업 축사에서 ‘꿈을 이루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자신의 꿈과 가능성이 무한하게 여겨졌던 이 장소를 몇 번이고 떠올릴 것’이라며 감독은 '사랑'보다 '꿈'에 무게를 실는다.
가만보면 이 영화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들로 가득 차다. 짝사랑하는 또래의 학생을 피해 전학을 갈까 고민하는 소요카, 20년 넘게 차기작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아유미, 유리 또한 덤덤해 보이지만,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 노인들은 앞날은 모른다면서 힘차게 전진한다. 바로 '고희(70세)가 넘어 영어를 공부하는 할머니'와 그녀의 영어선생님이다. 이 분들은 일본의 고령층 즉, 미국과 패권 경쟁을 했던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를 상징한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라스트 레터>는 초식화된 중년의 '빙하기 세대(마츠 다카코, 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졸업 '축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일본의 10대들(히로세 스즈, 모리 나나)에게 품고 있다.
이 3세대 간의 애틋함은 단순한 첫사랑으로 해석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이와이 슌지는 <러브레터>의 첫사랑 멜로 형식을 빌려 일본의 현주소를 안타까워하며 과거의 일본을 추억하고 있는 것 같다. 고로 미사키의 정체는 '80년대 잘 나갔던 일본 고도성장'일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추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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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한국 스페셜 예고편
#매튜본 감독이 K-팬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최초공개 한국 스페셜 예고편 도착? 다음주 극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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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메인 예고편
?️어제를 버티고?️ ☂️오늘을 살아낸☂️ ⛅내일의 나에게⛅ 새봄처럼 찾아온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성장담 [태어나길 잘했어] 메인 예고편 공개! 4월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