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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nium2025-06-10 17:21:11

외로움이라는 정글 속을 헤메이는 절박한 사랑

영화 <퀴어>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입니다.

 


퀴어(queer) 라는 단어는 원래 특이한”, “이상한”, “낯선의 의미로 사용되었던 말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동성애자 전반에 대한 비하의 뜻으로 사용되던 이 단어는 80년대 이후 성소수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로 수용하면서 비하적 의미 대신 성소수자들의 인권 운동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이처럼 퀴어가 전반적인 성소수자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이전에 집필된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퀴어>는 동성애자인 주인공 리의 퀴어적 정체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작품 자체로서도 리얼리즘 문체와 은유가 뒤섞인말그대로 퀴어한 소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러한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고초현실주의적 연출을 가미하여 원작보다도 퀴어한 작품을 완성해냈다총 3부작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이 영화은 초중반부까지 앨러턴을 향한 리의 일방적인 구애와 그가 겪는 고독함이 아름다운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전개된다이후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텔레파시를 높여주는 식물 야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는 후반부로 갈수록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이어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첫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면, <퀴어>는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과 공허함고독함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주인공 리는 앨러턴을 보고 한 눈에 반하지만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그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인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한다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앨러턴에게 적극적으로 만남을 제안하지만자신에게 무관심한 앨러턴의 태도에 상처받고 실망하기도 한다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리는 약물에 의지하는데이는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던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적인 경험에 기반한 설정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주인공와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감정은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등장한 소재이기도 하다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며 온전히 하나가 되고자했던 감정은 사랑을 표현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만의 연출 방식이다이번 작품 <퀴어>에서도 리는 자신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소울메이트를 찾고자 헤메이고앨러턴을 만난 뒤로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조종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다이는 텔레파시 감도를 높혀주는 식물 야헤를 찾는 과정으로 이어지고에콰도르의 정글에서 행해진 코터 박사의 신비로운 의식 속에서 비로소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 보여진다몽환적이면서 초현실주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장면은 관객에 따라서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리가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오는 에필로그 또한 기묘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연출이 계속되는데술에 취해 아내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게 만들었던 윌리엄의 자전적 경험이 앨러턴으로 치환되어 영상에 나타나기도 한다꿈 속의 환상인지 혹은 현실인지 모호한 시공간 속에서 앨러턴을 죽이고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리가 죽기 직전에 앨러턴의 환상을 다시 보는 것은 그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끝내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한 리의 상실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더불어 영화의 분위기를 한 층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사운드트랙도 영화를 감상하는 묘미이다. OST와 더불어 삽입된 다양한 올드팝송과 재즈마리아치 음악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귓가를 맴돈다특히 1983년에 발매된 뉴오더(New Order)의 Leave Me Alone과 너바나(Nirvana)의 명곡 Come As You Are은 주인공의 고독한 정서와 앨러턴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50년대 멕시코시티의 분위기와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Somn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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