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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운동을 하면 사랑도 할 수 있다고? <디피컬트>
힘들다. 매년 나아져야 하는데, 매년 더 나빠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경제 성장은커녕 유지만 해도 감지덕지고, 오르지 말라고 기도하는 물가는 청개구리처럼 점프를 해댄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저 멀리 프랑스도 매년 위기를 맞이하고 더 힘든 상황을 반복한다. 이를 배경으로 한 <다피컬트>는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소비사회 속 대출과 빚의 늪에 빠진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가다가 삐끗한 이들에게 남은 거라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과 외로움. 영화는 이들에게 위안을 건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식은 환경보호 운동을 통해서 진행된다.
블랙프라이데이 당일, 오픈런을 위해 백화점을 찾은 알베르(피오 마르마이)는 입구 앞에서 환경 보호 운동가인 캑터스(노에미 메를랑)와 대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싶은 물건을 향해 몸을 던지고, 알베르 또한 그 무리에 편승해, 자신이 원하는 TV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TV를 중고 시장에 되팔아서 차액을 남기기 위함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 어렵게 구한 물건 구매자 집에 도착한 알베르는 쇼핑 중독에 의한 파산으로 자살 시도를 한 브루노(조나단 코헨)를 발견해 가까스로 살린다. 이날 이후, 이것도 인연인지 빚더미에 앉아 파산 직전인 이들은 우연히 공짜 맥주의 유혹에 이끌려 환경 단체 모임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알베르는 캑터스의 연설을 듣게 되고, 엉겁결에 환경 단체 일을 돕는다.
<디피컬트>는 과잉 소비로 인해 인간도 환경도 위협받는 현실을 일깨우는 영화다. 일종의 계몽영화처럼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자만, <언터처블: 1%의 우정> <세라비, 이것이 인생!> 등 연출을 맡은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전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코믹함과 긍정성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언터처블: 1%의 우정>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만 봐도 한 명은 전신 불구고, 한 명은 무일푼 백수다. 희망보단 절망에 더 가까운 삶을 보내는 이들의 만남과 우정은 그 자체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자학 개그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코미디 요소는 마치 ‘진정으로 웃으려면 고통을 참아야 하고, 나아가 고통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영상화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연장선상으로 <디피컬트> 또한 힘든 상황 속 이들의 웃픈 코미디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환경 보호보다는 캑터스에 반해 환경 운동에 앞장서는 알베르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하는 브루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경 운동 최전선에 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상반된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환경 보호가 아닌 다른 목적이 껴 있지만) 특히 바보 듀오 알베르와 브루노의 코믹 티키타카는 긍정적 나비효과처럼 러닝타임 내내 계속 쌓여가며 극의 재미를 부여한다.영화는 이런 기조 아래 과소비 행태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극 중 주요 인물들이 만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과소비 때문이다. 알베르와 브루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저마다 행복을 위해, 공허함을 위해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시장경제는 이를 더 부추긴다.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환경은 파괴되고, 기후변화까지 이어져 결국 인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전한다.
특히 영화는 캑터스를 통해 변하는 알베르의 모습, 그리고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이들이 사랑이란 감정을 통해 함께 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연대의 중요성을 전한다. 감독은 입으로만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만 하는 국가와 사회에 기대기보다 힘든 상황 속에서 색안경을 벗고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포옹하고, 춤을 출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힘으로 버티며 살아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후반부 파리 도심에서 캑터스와 알베르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하지만 비극 속 피어나는 코믹함과 과소비 행태가 부른 사회 문제 심각성 사이의 균형감은 아쉽다. 특유의 긍정성이 사회 문제의 심각성까지 먹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해결되지 않은 사안이 많음에도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듯한 급작스러운 마무리로, 영화가 제기한 소비, 환경 문제가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계속 지켜보게 하는 건 국가가 다름에도 우리의 모습이 엿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피오 마르마이와 조나단 코헨의 연기는 한 번쯤 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만들고, 노에미 메를랑의 연기는 환경 보호에 노력하지만,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걸 깨닫게 한다. 여기에 과소비 방지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자원활동가 앙리 역에 마티유 아말릭은 과소비 방지 원칙을 소개하지만, 그 또한 도박의 유혹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마 영화를 본 후에도 우리의 삶은 변함없이 힘들 다. 하지만 그 힘듦에 주저않기보다는 뭔가 행동으로 옮기려는 마음은 생길 터. 필요한 물품만 사고, 쓰지 않는 물건은 나눠주고, 이를 통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과 대화하며, 친분을 쌓으면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보자. 그게 단 1%라도 말이다.
사진 제공= (주)블루라벨픽쳐스 / TCO(주)더콘텐츠온
평점: 3.0/ 5.0
한줄평: 경제도, 환경도, 사랑도 힘든 이들과 나누는 위안의 연대
*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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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엄마와 언니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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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모녀 관계, 자매 관계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 관계의 복잡한 역동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아들, 남자 형제는 ‘바깥 일’만 잘하면 가족의 자랑이 되지만 딸, 여자 형제는 여기에 더해 관계를 유지하는 물질적·감정적 노동까지 잘 수행해야만 인정받는다. 불리한 위치에서 불평등한 노동을 떠맡은 이들은 서로를 깊게 이해하지만, 서로를 닮기는 거부한다. 이 관계만 벗어나면 더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듯 자꾸 그 관계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얽힌 혈연이라는 관계는 지겹도록 끈끈한 것이어서 이들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
〈라인〉은 바로 이 모녀, 자매 관계를 다룬다. 영화는 딸 마르가레트가 엄마 크리스티나를 구타하기 위해 미친 듯이 쫓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딸을 때리려는 게 아니다. 성인이 된 딸이 엄마를 때리려는 거다. 격렬한 난투극 끝에 두 사람 모두 큰 부상을 당하고(심지어 크리스티나는 장애를 얻는다), 마르가레트는 경찰로부터 석 달간 크리스티나에게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행정 명령을 받는다.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마리옹은 마르가레트의 막냇동생이자 크리스티나의 딸이다. 앳된 얼굴의 마리옹은 언니와 엄마를 모두 사랑한다. 둘 사이에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집 주위 100미터를 파란색 페인트로 동그랗게 칠해 ‘라인’을 그리기도 한다. 화가 많은 마르가레트와 예민한 크리스티나가 또다시 맞붙으면 두 사람과 함께하기가 영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모녀 관계와 자매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길항하며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에는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가 왜 몸싸움을 벌였는지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늘 남자를 바꾸며 연애하느라 어린 마리옹에게 소홀한 크리스티나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쉽게 주먹다짐에 휘말리는 마르가레트가 모녀로 만났다면, 갈등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딸 셋을 출산한 이후 경력이 망가졌다. 앨범까지 발표한 촉망받는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는 출산과 육아를 하며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피아노 강습으로 근근이 세 딸을 키웠다. 크리스티나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들의 존재로 자기 삶이 망가졌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영 어렵다. 크리스티나가 애인을 자주 갈아치우며 세 딸보다 그에게 더 많이 의존하는 데서도 그녀가 딸들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불안하고 예민하다. 반면 마르가레트는 어머니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으나 쉽게 분노하는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원활한 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다. 크고 작은 싸움으로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늘 문제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생 마리옹만큼은 끔찍이 아낀다. 매일 마리옹이 그려 놓은 선 밖을 서성이며 동생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마르가레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 둘을 모두 사랑하고자 하는 마리옹의 마음은 간절하다. 마리옹은 ‘유일한 친구’인 하나님에게 애타게 기도한다. “엄마와 언니를 동시에 사랑하고 싶어요.” 마르가레트가 파란 선을 넘지 못하도록(엄마와 새로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엄격하게 감시하던 마리옹은 3개월의 분리 기간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나서 자신이 힘들게 그린 선을 지운다. 마침내 어색한 표정으로, 별일 없었다는 듯 대면하는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의 뒤에는 마리옹이 있다. 서로를 향한 애증으로 잔뜩 엉킨 크리스티나와 마르가레트가 모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건, 미성숙하고 불안한 어른을 보듬고자 온 힘을 다한 마리옹 덕분이다.
마리옹이 짊어진 책무는 그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모녀/자매 관계의 복잡다단함은 당사자 간의 내밀한 소통과 더불어 그녀들의 실존 조건 역시 바뀌어야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언젠가 어른이 될 마리옹이 부담에 짓눌리지 않기를, 자신이 품은 성숙함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를, 엄마·언니와 조금은 더 편안히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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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는 왜 다시 돌아와야만 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있다. 이 균형은 사실 평등하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열악한 조건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만족스러운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무언의 동의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규약과 법률을 만들어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가끔 그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그 평화는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그 평화와 균형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저항하고 평화를 위해 그대로 머무르자는 자들을 설득하려 무던하게 애쓴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어쩌면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업데이트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선악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 내부에 갈등은 다음 세대의 나은 삶을 보장하고, 사회의 암적인 어떤 존재를 제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또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사회적 평화와 균형이 유지되기도 한다.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후속편
영화 <매트릭스:리저렉션>은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그 평화를 깨더라도 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견 대립을 담은 영화다. 과거 1999년에 시작된 <매트릭스> 시리즈는 3편까지 진행되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종결시킨 듯 보였다. 기계가 지배하는 지구에 시온이라는 소수의 인간사회가 대립하는 구도였고, 인간은 거의 기계에 종속되어 살거나 의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구원자라고 불리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등장과 그의 희생으로 시온은 기계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고 둘 간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실 이전 세 편의 영화의 결말만 놓고 보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는 여전히 기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은 소수만을 제외하면 인큐베이터에서 전기 생산으로 소비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 평화는 기계와 소수의 인류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인류의 온기는 기계에 의해 그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채 착취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 시리즈의 결말은 시리즈의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결말이지만, 좀 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결말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 틈을 좀 더 파고들어 4편이 기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리저렉션>은 과거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60-7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야기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건 벅스(제시카 헨윅)와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다. <매트릭스 1>의 맨 처음 장면을 살짝 비틀어 보여 주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이후 과거의 기억을 잃은 네오를 등장시키면서 시리즈 1편의 주요 장면들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바꿔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은 과거 시리즈의 초반 주요 내용을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기 때문에 4편을 보면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상기시키거나 이해하면서 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런 이야기 전개는 새로운 팬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기존 팬들에게는 자칫 지루한 동어반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패치처럼 구성된 이야기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은 기계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추가 패치를 하여 새롭게 구성되는 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매트릭스와 살아있는 인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와 인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네오는 여전히 그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드러난다. <매트릭스:리저렉션>에서의 네오는 다시 기억 찾지만 그에게 던져진 화두를 완전히 풀어낼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 보다 진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벅스다. 그는 그의 팀원들과 함께 인류가 좀 더 대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평화 주의자 이자 리더인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대립한다. 그는 아주 작은 기회이고, 평화를 깨더라도 대다수 인류가 기계에 착취당하고 있는 그 상황을 깨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네오를 찾아내고 그를 다시 논쟁의 중심으로 불러내게 되는데, 네오에게 중요한 존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도 현실로 다시 불러들이면서 인류와 기계의 상황을 바꾸게 된다.
기계와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바뀌었다. 애널리스트(닐 패트릭 해리스)라는 프로그램의 우두머리가 등장하고, 그는 네오와 스미스 요원(조나단 그로프)의 기억을 지우고 모달이라는 시뮬레이션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같이 넣어두고 운영해왔다. 그건 벅스 일행에 의해 깨지게 되고 네오와 스미스의 대립과 이어진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인 애널리스트는 과거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아키텍트에 비해서 똑똑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운영방식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서 온 작은 구멍은 그가 유지해온 평화와 시스템을 다시 한번 혼란 속에 밀어 넣는다.
새로운 화두를 던짐에도 많이 아쉬운 영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한 환상을 택할 것이냐, 아픈 현실을 택할 것이냐를 질문으로 먼저 던진다. 거기에 더해서 소수와 시스템을 위한 평화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기계에 종속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느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앞의 질문에 영화가 어떤 선택을 택하는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각자가 가진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평화 주의자인 니오베의 논리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보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틀림없다.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리저렉션>의 러닝타임은 147분이다. 영화 초반 시리즈의 이해와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장황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늘어졌다. 또한 과거 센세이셔널하게 보였던 액션과 CG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세월 동안 더 뛰어나고 발전된 액션을 우리는 많이 접해왔다. 그래서 이번 신작에 포함된 액션 장면들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후반부에 피치를 높여 속도감을 높이지만 그 속도감이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되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사회적, 철학적 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새롭고 혁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순 없다. 또한 너무 복잡한 이야기 구조 상 이전 시리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번 신작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아쉬운 점이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네오와 트리니티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벅스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스미스 요원이나 모피어스는 배우가 바뀌어 동일한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두 캐릭터 모두 이야기 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많이 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점도 아쉽다.
영화를 연출한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과거 시리즈를 릴리 워쇼스키와 함께 연출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라나 워쇼스키 혼자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그러니까 자매가 만든 이야기에 라나 한 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후속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러 가지 전편에 대한 오마주나 대사들, 액션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리즈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속편을 만들기보다 리부트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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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스포일러가 다분하니, 보실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꼭.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시사회는 아니고, 이 영화가 강원도 올로케라 강원 특별 시사회를 진행했다. 원래는 감독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못 오셔서 자필의 편지를 제작사 대표님이 대독하셨다.
많은 분들이 홍종현배우, 정소민배우를 보고 싶어서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연주배우님이 궁금해서 갔다. SNL의 정연주배우님의 능청능청한 연기가 워낙 내 스타일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하면 귀신에 시달리던 어느 소녀, 아니 여성이 여성이 고모의 친구인 무당의 말을 듣고 어느 원더랜드라는 팬션에서 묵으며 벌어지는 호러? 스릴러? 로맨스? 뭐 그런거다.
사실 궁금했던 건 원더랜드와 소년의 조합이었다. 앨리스하면 당연히 '소녀'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소년이라니. 신박한데 싶었다.
영화 진행의 초반부터 '소년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해라~' 하면서 진행된다. 근데 이를 어쩌나.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알아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좀 불편했다. 아마 이것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배가 다른 남매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인 것을 무엇 때문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합방 장면이 심으로 불편했다. 가벼운 입맞춤 정도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무리 귀신이라도 남매간의 성행위라니 불편했다.
1살의 아이가 가지는 순수한 사랑(누나에 대한 애정)을 정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귀신과의 합방, 귀접이라고 하는 행위인데 이건 귀신이 인간의 기를 빼앗아가는 행위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왜?' 라는 것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면 재미 없는 것이 사실지만, 적당해야지 싶다. 아이가 누나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아주아주 많이 부족하다. 누나가 아이를 해치게 되었던 이유도 너무 간단해서 비극이긴 하지만 비극이 극대화 되진 않았다. 왜 그 가족이 그토록 정이 없게 되었던 건지도 안 나오고 여튼 너무 심하게 함축하고 줄였다 싶었다. 영화가 시는 아니지 않은데 말이다.
이승연배우(무당 역)가 말했던 게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잊으면 어쩌구 이랬다. 애초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잊는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건 '목숨이 죽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잊혀져서 죽는다'라는 원피스의 명대사와 일맥한 것 같다. 여기서 이해가 안 간 건,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귀신으로도 영영 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게 "너 때문에 죽어"라고 하며 분노만 내뱉었다는 것이다.
아이 이게 뭐야.
심지어 막판에는 죽은 사람이 실물 인간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럼 둘이 연애할거야? 남매인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나는 위안부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님이 아직 좀 불편하다)
너무 불평만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좋았던 것을 꼽자면 영상미.
청태산휴양림이 원래 좀 좋긴 한데, 그래도 정말 예쁘게 잘 찍었다. 숲도 예쁘게 나왔고, 꽃잎이 날리는 것 팬션 다 색감이 예뻤다.
한 두 발 양보해서 좋은데, 강원도 올로케인것도 좋고, 정연주님 나오는 것도 좋고, 예쁜 영상과 색감도 좋은데, 나한테 이 스토리는 영 안 맞았다.
혹시 원더랜드와 네버랜드를 헷갈려서 원더랜드라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그냥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이라고만 하지 왜 '앨리스'를 붙인건가 역시 헛갈린게 아니었구나 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세계로 간 여자 주인공 때문에 앨리스라고 한건가? 그렇다면 조금 이해를 해볼 수 있다.
여튼 그렇다. 영화보기 1년 전쯤 보았던 <좀비스쿨>이 생각나면서 몹시 안타까워졌다. 그래도 배우진들이 괜찮아서 볼 사람들은 좀 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 그래도 연기에 점수를 주자면 중간 점수만큼 줄 수 있을 듯 하다. 역할이 그래서 그냥 묻어갔지만 홍종현님은 연기 연습이 엄청 필요해보였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당시 정소민님의 연기도 그닥이었다. 아마 정연주님과 비교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지원했던 영화 중에 <조난자들> 같은 영화는 괜찮았는데 연달은 <좀비스쿨>과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정말 안타까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실무진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능력을 늘리던지,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서 로케를 제안하던지 해야하는 게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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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의 다음 순간, 새로운 시작의 마지막 순간
지금 내가 쓴 글이 제주시의 어느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모 상점가에 31일까지 게시된다고 한다. 당연히 나만 쓴 글은 아니다. 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분들이 다 함께 썼고 딱 그만큼 있다. 그중 내 글은 후회에 관한 글이다. 사람이 살면서 후회하는 때가 오고 그렇지 않은 때가 오지 않는가. 난 전자의 경우에는 세상에게 엿 먹으라 말하고 후자는 내가 미안했다며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이때 떠나보냈다는 불안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는, 뭐 그런 뜻도 담겨 있다. 사실 유별날 건 없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들이 다 당연하겠지? 난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람의 공감이었다.
그런데 그 글에 한 코멘트가 달렸다. '쿨한 척하는 찐따(쿨찐)의 변명'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기분이 엄청 더러웠다. '이게 왜 쿨한 척하는 것인가'에 대해 익명의 누군가에게 물었다. 당연히 나 자신에겐 아닌 이유가 줄줄이 달린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부터 시작해서, '이거 이 사람이 쓴 거 아냐?'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그 의심 가는 사람을 100% 확신해 인스타그램 dm도 날리고 싶었지만 이 '후회하는 순간'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아 참았다. 이 당일에는 이만큼 화나고 짜증 났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욕하는 내용도 있었고 그렇게 익명에 숨어 악플 다는 짓이 더 지질하다는 것에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다. 선생님의 말처럼 난 나의 병신 같은 과거에 합리화를 댈 생각이 단 조금도 없고 난 그걸 그 안에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악당이라는 제목이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갱생한 인물이 되려고 한다'라고 썼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렵진 않을 걸. 알지도 못하면서 익명으로 삿대질하는 짓이 당당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 나름대로 미친 생각일 것이다. 내 마음 이면에는 이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뒤집을 필요가 있다. 이는 전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지는 마음이다. 얼굴을 보고 한 이야기가 아닌 찌질이의 댓글이 무서웠던 이유는, 내 면전에다 대고 그런 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때를 이야기하며 '넌 이랬지?'라며 내 얼굴 앞에서 그것들을 늘어놓게 되는 순간이 두렵다. 과거의 나 어느 한순간은 그 욕을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이 뜨끔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무얼 보고 어떤 걸 느끼고 있단 말인가. 얼굴 앞에 있는 것만 본다? 정말 그래도 돼? 그 말을 하는 거, 내가 쓴 글에서 사람들을 위로했던 거, 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나? 그럼 그게 찌질한게 아니면 뭘까?
<당신얼굴 앞에서>는 새로운 모습에 관한 영화다. 차갑게 인간 전부를 비웃던 홍상수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일단 홍상수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감독의 이름에 따라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불륜에 관한 내용이겠지? <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인트로덕션>까지, 그 지점에서 분기점 찍고 영화에 외로움이나 우울함 같은 정서가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전반기 홍상수는 다리 세 개 달린 동물의 닉값을 철저히 하며 욕망에 지배되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다. 극 중에서 이선균 배우가 정은채 배우에게 '너 그딴 새끼랑 잤어?'라고 화를 내는 부분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게 전체 맥락을 보면서 이 대사를 왜 했나?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그만큼 웃기다. 이 감독은 이렇게 지질함이라는 인간의 본성 한 가지를 남-녀 관계와 결부시켜 보통의 인간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차갑게.
이런 화법을 유지해오던 홍상수. '이거 네 모습 아냐?'라며 비웃던 그 화살이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영화의 진정성에 대한 비판을 들어야만 한다. 반박의 여지마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홍상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어두워졌다고 생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외로움과 고독함에 대한 이야기였고, <강변호텔>은 점점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한 인물의 욕망 투사가 키워드였으며 <풀잎들>은 죽음 후에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작품이었다. 외로움. 고독함. 죽음. 쓸쓸함. 발악. 죄책감. 뭐 그런 것들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던 것이다. <하하하>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같이 보다 쉽게 다가갔던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나에게 새로운 국면처럼 느껴졌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박평식 평론가가 했던 말, 아직도 기억난다. '고백이자 반성, 변명이자 호소'라는 문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남자 주인공이 '여자와 어떻게 잘 것인가'를 궁리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게 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주요 플롯이다. 그 사건 전후로 '혼자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극본에 썼는데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예 없다고 말하면 그게 더 웃길 것이다. 100% 자기 이야기를 투영한 건 아니겠지만 아예 순진무구하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어떤 시간이 지나면 이 인물은 다시 혼자가 될 것이며, 그게 자기의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인 셈이다. 난 그 작품을 그렇게 해석했고 박평식 평론가의 말처럼 자기 처지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얼굴 앞에 당면하지 않은 것을 무서워한 것이다. 이 기점을 시작으로 홍상수는 계속해서 '어떤 사건의 후'를 조명했다고 생각한다. <도망친 여자>에서도 남편과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그녀(감희)는 극 중에서 혼자가 됐다. 이렇게 인물을 설정한 이유는 계기가 뭐든 사람은 혼자가 된다. 말이 좋아서 남편의 출장이지 언젠가는 사별로 떠나보낼 수도 있는 게 부부관계 아닌가.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서 친구들과 하는 대화를 보여줬다는 것은 '지금 옆에 있는 것들이 사라지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은가?'라고 관객에게 질문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필연적인 고독함이 있고 나서야 자아를 돌아보는 인간의 본성을 조명하는 것이다. <강변호텔>이나 <풀잎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키워드 앞에 인물들이 이 전후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줬고, 심지어 작품 하나의 제목은 <그 후>이니 나는 감독이 이것에 대해 분명한 의도를 품었다고 생각한다. 홍상수는 계속해서 인간의 단면 하나를 잘라 계속해서 다른 차원의 변명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아. 안다고. 나 이러다가 혼자가 되고, 내 연인까지 그렇게 남을 것이란 거 안다고. 이런 말을 고독함과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상수의 몇 년간의 심리상태는 불안정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얼굴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그 일상을 극본에 썼던 전반기의 홍상수와는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같이 혼자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한 것이 우리에게 하여금 '외로움이란 뭘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대놓고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아도, 텅 비어버린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관객들은 알게 된다. 이 이야기를 살짝씩만 변용해도 내 사연이 된다는 걸. <강변호텔>에서도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지 않거나 <풀잎들>에서 왜 사람들이 자살했는가에 대해 명확히 보여주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감독이 이를 의도했다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얼굴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각자가 생각해보게끔 만든 것이다. 이걸 관객에게 보여준 이유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사니까 그런 거겠지. 홍상수는 어떤 사건에 대해 무슨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외롭고 추한'인간의 모습을 보여줘 정서와 감정을 극대화해 답했다. 안다고. 나도 그래서 외롭다고. 뭐 그런 말을 하는 셈이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나에게 있어 그가 그의 두려움을 이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사람이란 다 똑같지 않을까? 난 그랬다. 누군가의 아픔에는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 상처를 같이 감내할만한 은인이 되려고 할 때도 있는 반면 언제는 바로 전 날 한 말도 후회하게 됐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게 사람의 내면이고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여러분도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근데 감독 홍상수는 이렇게 사람의 이기적인 내면을 베드신과 같이 욕망의 결과물로 표시해 '결국 찌질해진 인물'로 보여줬다면 이 작품에선 결정을 엎은 선택으로 마무리지었다. 욕망에 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후반부 감독과의 대화는 전반부 여동생과의 대화와 같이 면대 면으로 했던 대화다. 이거 아니더라도 감독은 어떤 얼굴이나 모습을 정면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한 대화는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냈지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은 그렇지 않은 구석도 있다는걸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감독과의 대화로 돌아가서, 이렇게 얼굴을 대면해서 하는 대화가 다 잘 풀릴까? 아니다. 후반부 이 대화 역시 얼굴을 보고 대화했지만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 두 대화의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가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냥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이다. 항상 상황마다 다른게 삶이기에 모든게 다 딱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게 인간이고, 사람이고, 우리들이다. 이 감독이 느낀 감정을 외롭고 쓸쓸한 모습으로 보여준게 아니라, 다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여동생과의 대화로 끝냄으로써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쿨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얼굴 앞에서 한 대화가 실패했지만 그래도 이를 다시 같은 방식으로 맞이하는, 뭐 그런 수미상관의 전개가 그의 이런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 반복과 차이로 한 편으로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는 것을 끝내려고 하는 것 같다. 같은 것을 맞이해도 이제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까 말이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이런 마력이 있는 영화다.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간들이 있다. 언제는 잘 풀리고 언제는 잘 안 풀리고 뭐 그런 순간이 반복된다. 엄청 잘 준비한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분명한 건 이걸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얼굴 앞에서 어떤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까? 이왕에 정해진 게 없는 게 삶이라면, 당신 스스로의 얼굴 앞에서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감독 홍상수처럼 불륜을 저지르고도 당당하게 여기면 그건 미친놈이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는 다르니까 좀 다른 시각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 이제는 투명하게 얼굴 앞을 바라보자. 그 얼굴이 불투명하다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믿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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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 영화 <마녀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2022)
감독: 박훈정
출연: 신시아, 박은빈, 서은수, 진구, 성유빈, 이종석, 조민수, 김다미 등
장르: SF, 액션, 스릴러
상영시간: 137분
개봉일: 2022.06.15
구자윤을 잇는 또다른 마녀의 등장
한바탕 살상이 벌어진 듯한 아크. 피칠갑을 한 '소녀(신시아)' 하나가 겨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선다. 소녀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늘로 띄울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지만 부상이 심한 상태. 도로를 걷다가 조직 폭력배들이 탄 밴에 발견되어 차에 타게 되고, 그 안에서 납치된 '경희(박은빈)'를 만난다. 소녀의 정체도 모르고 덤빈 납치범들은 그의 움직임 한번에 초박살이 나고, 그렇게 목숨을 건진 경희는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한편, 2세대 실험체인 소녀의 탈출을 알게 되자 '백총괄(조민수)', '장(이종석)'은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총괄은 본사 요원 '조현(서은수)'를 시켜 소녀를 제거하도록 지시하고, 상해 지부에서 온 4명의 토우, 경희와 소녀에게 한바탕 당한 후 앙갚음을 위해 다시 나선 '용두(진구)'의 조직까지 같은 목적지로 향하며 경희와 소녀는 사면초가에 이른다. 조현의 작전이 예상되로 흘러가지 않게 되자 경희와 동생 '대길(성유빈)'의 희생을 막지 못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소녀는 아무도 감히 막을 수 없는 폭주를 시작한다.
스케일 커진 액션과 CG, 그것이 전부
전편과 비교했을 때, 제작비의 규모가 큰 차이로 커진 것은 아니지만 세계관의 확장으로 인해 액션신과 그래픽이 훨씬 화려해지고 스케일도 커졌다. 1편은 '구자윤'이 각성하기 전에 벌어지는 사건들도 비중있게 다루는 반면 2편은 '소녀'가 등장할 때부터 탈인간의 능력을 가진 것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강화인간 유니온, 중국 상해에서 온 2세대 실험체 토우 등 <마녀> 세계관에 속한 존재들이 대거 등장한다. 전작에서는 설명이 부족했던 설정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초인들 간의 대립 구도로 인해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모두 풍성해졌다.
하지만 탄탄한 서사 없이 현란한 그래픽으로만 치장한 판타지 액션물은 화려한 포장지로 둘러싼 빈 깡통에 불과하다. 전편보다 액션신의 비중도 커졌고, 특수한 능력을 가진 초인들의 난립으로 볼거리도 많아졌지만 단지 그뿐이다. '소녀(신시아)'에 대한 스토리라인이 부족하고 상해 지부의 토우들은 강력한 캐릭터임에도 위압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연기를 펼쳐 큰 규모의 전투신들이 긴박하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화면 구도 또한 인물들을 클로즈업하는 형태를 많이 취해 동작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액션들의 속도감이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마치 이 영화가 CG와 액션신을 얼마나 실감나게 잘 구현했는지 기술적인 부분을 자랑하는데 도취된 느낌이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졌음에도 이를 촘촘하게 연결해서 스토리라인을 유기적으로 만들기보다는 흩뿌리는데 그쳐 전개가 엉성하고 산만해졌다.
최고의 신스틸러, 서은수와 저스틴 하비
'마녀'로 칭해지는 '소녀(신시아)'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인물의 특성상 대사가 거의 없고, 작중 최강자답게 스펙터클한 액션신을 주도적으로 이끈다. 사실 그마저도 그래픽을 활용한 요소가 많다보니 전편을 이끈 '김다미'처럼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 1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등장인물의 수가 많다보니 캐릭터에 대한 시선이 분산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2편에는 유니온, 토우 같은 새롭게 출현한 미지의 대상들이 많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다.
의외로 작중 최고의 매력을 발산한 건 소녀를 쫓는 유니온 '조현(서은수)'와 '톰(저스틴 하비)'의 버디 케미다. 톰은 작중 유일한 개그 캐릭터로 까칠하고 시크한 조현과 투닥거리는 장면들을 만들어 작품의 무게감을 덜어준다. 조현과 함께 다니는만큼 액션신에서도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혼자서 자동차 문짝을 방패 삼아 미행하던 요원들을 상대하는 장면은 마치 '캡틴 아메리카'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서은수'는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에서 연기력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녀2> 출연진 중에서도 제일 기대를 안했던 배우인데, 뛰어난 전투력과 회복 능력을 보유한 '조현'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 변신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동안 드라마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그는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 왔는데, 오히려 어둡고 강렬한 역할이 본인에게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선된 연기력을 보여준다. 토우들을 상대하느라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는 했지만 생존에 성공했고, 일반인은 다치지 않게 하려는 원칙과 양심을 가진 인물인만큼 후속작에서 어떠한 포지션으로 등장하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리즈를 잇는 교두보의 역할
2편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다기 보다는 3편을 예고하는 교두보로서 기능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감독의 시선이 2편을 건너뛰고 이미 3편에 도달해 있다보니 2편인 본작은 후속작에 대한 떡밥을 대거 투척하기만 하고, 깔끔한 스토리라인을 정립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많은 등장인물들을 바탕으로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데는 일부 성공했기에 2편이 실망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3편을 보려는 관객들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후반부에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1편의 히로인 '구자윤(김다미)'가 사실 소녀의 쌍둥이 언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두 사람은 함께 일행이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토우 하나쯤은 쉽게 뭉개버리는 언니와 약물에 의지해야 한다는 약점조차 없는 동생이 엄마를 찾겠다는 공통의 목적으로 뭉쳤기에 작중 가장 강력한 조합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자윤과 마찬가지로 특별출연 정도의 분량이었던 '장(이종석)'의 정체도 아직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2편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지만 아크를 관리하고 소녀를 쫓는 책임자인만큼 후속작에서 메인 빌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의 능력은 아직 등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3편에서 초인 자매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충분히 등장할 법 하다. 단, 2편에서 <마녀>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깎아먹은 터라 액션신과 그래픽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스토리라인을 보완하는 게 작품의 호불호를 결정 짓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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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2편 ( #최선의 삶 #비밀의정원 #좋은빛좋은공기 # 십개월의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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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제가 극장에서 관람은 했지만, 여러 이유로 리뷰를 남기지 못했던 작품들, 그 중에서 특히 추천드리고 싶던 국내 독립영화 7편(로그인 벨지움, 빛과 철, 혼자 사는 사람들, 비밀의 정원, 좋은 빛 좋은 공기, 최선의 삶, 십개월의 미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로그인 벨지움]을 제외하고 유튜브를 포함한 VOD서비스를 통해서 만나보실 수 있고요. 다들 좋은 작품들이니 한번쯤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영화등대 채널에서 준비한 2021년 독립영화 연말결산 [상1, 2]편 마무리 짓고요. 저는 다음번에 연말결산 중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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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팔콘앤윈터솔져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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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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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타임라인*
00:00 클라이막스로 향해중
00:49 예상했던 짭틴아메리카
02:26 캡틴의 향수를 뿌린 샘
04:16 5화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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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호빗 3부작> 리마스터링 예고편
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 판타지 마스터피스 '호빗: 뜻밖의 여정' 절찬상영중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11월 24일 대개봉 '호빗: 다섯 군대 전투' 12월 2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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