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2025-05-03 13:20:36
[JEONJU IFF 데일리] 문명과 야만의 경계
영화 <모든 문명의 기록> 리뷰
영화 정보
감독: 타티아나 마수 곤살레스 (Tatiana MAZÚ GONZÁLEZ)
제작국가: 아르헨티나
제작연도: 2024년
상영시간: 90분
장르: Experimental
상영 형식: DCP, 컬러/흑백
상영 섹션: 프론트라인
Korean Premiere
시놉시스
부에노스아이레스시와 교외의 경계에 위치한 교차로. 경찰의 손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일상의 이미지와 부딪힌다. 그녀의 투쟁과 목소리는 그들이 함께 상상했던 쥘 베른의 가상 세계를 그려낸다.
리뷰
다큐멘터리 <모든 문명의 기록>은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시작으로 국가가 가행한 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시적인 상상과 강렬한 사실로 엮어낸다. 감독 타티아나 마수 곤살레스는 실종된 10대 소년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 한 국가가 어떻게 자국민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이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사건은 비극적이고 충격적이다. 아들이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고 실종된다. 그러나 국가와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들의 폭력을 ‘민주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국가가 빈민층에 대해 저지르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에 주목해야한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국가는 보호자가 아닌 억압자, 심지어 가해자 역할을 한다. 아들을 잃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경찰을 찾아가거나, 기다리거나, 울부짖는것 밖에 할 수없을 정도로 무력하다. 이는 국가 폭력의 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구나, 경찰이 저지른 범죄는 고작 10년형이라는 형량으로 끝난다. 이는 국가의 폭력과 그에 대한 처벌의 불균형, 정의의 결여를 극명히 보여준다. 아들은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는 10년 뒤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 권력의 야만성과 불공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타티아나 마수 곤살레스 감독은 이러한 비극을 기록하면서도 그녀는 쥘 베른의 상상 세계를 차용한다. 관객에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보여준다. 쥘 베른의 작품은 종종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탐험과 호기심을 상징한다. 이는 현실의 억압과 비극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망을 반영한다. 쥘 베른의 세계는 현실에서 빼앗긴 아들과의 연결을 상상 속에서 회복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상상과 현실을 교차시키며 관객에게 더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발터 벤야민이 ‘모든 문명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라고 말했듯이, 영화는 국가 폭력이라는 야만이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고 정당화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문명은 이러한 폭력을 기록하며, 잊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포함한다. 이 기록은 과거의 사건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고로 작용한다.
<모든 문명의 기록>은 국가 폭력과 개인의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작은 불꽃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아무리 억압적이고 부당한 현실이라 해도, 기억하고 기록하며 저항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영 일정
2025년 5월 1일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9관
2025년 5월 5일 17:30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2025년 5월 9일 14:30
CGV 전주고사 5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Relative contents
-
- 늑대아이 - 모성애, 성장 그리고 정체성
줄거리
대학교에서 늘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공부하는 그를 만난 '하나'
둘의 만남은 우연이였으나 둘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았다.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그
그는 늑대였지만, 하나는 그런 그의 모습도 사랑했고 둘은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룻밤에 나은 두 아이.
눈 오는 날 낳은 '유키'와 비 오는 날 낳은 '아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죽게된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하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인간이 섞인 늑대인간이였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크게 접하지 않으며 지낸다.
하지만, 유키는 성장하며 학교에 가고싶어하게 되고
하나는 그런 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그런 유키와 달리, 어릴 때 부터 유키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메는 학교보단 집에 엄마인 하나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하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슬슬 선택하게 된다.
감독
이름 : 호소다 마모루
필모그래피 :
늑대아이, 썸머 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원피스 극장판 6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감독 중 한명으로,
신카이 마코토 보다 작화는 좀 떨어질지언정(좀더 부드럽고 가벼운 듯한 작화) 스토리에선 밀리지 않는다.
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갈리는데,
2012년 늑대아이 시기에 늦은 나이에 득남을 해서, 그 시기부터는 영화가 대체로 가족간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 이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같은 경우는 청춘에 포커스를 두어,
그만의 여름세계를 창조해냈다.
대체로 작화가 신카이 마코토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 휘날리는 이런 디테일 함이 아닌 밸런스 있는 작화를 선호해서
뭔가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의 작화를 선호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들은 배경 작화나 명암 효과는 균형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총 평
★★★★☆ 9.0/10.0
-짧은 평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애니라고 하는 것이 있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작품성을 가지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가치를 가지며, 애니메이션이란 선입견을 그냥 깨부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득남을 한 시기인 2012년 늑대아이를 분기점으로 작품세계가 갈려나갑니다.
과거는 청춘과 그 시절의 여름을 예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지만,
2012년 이후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가족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와 모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큰 틀로는 주인공과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심도있게 잘 다루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다르지만, 늑대아이만을 보면은 왜 이 감독이 포스트(차기) 하야오 라는 평가를 받는지는 충분히 이 작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여운이 적절히 남는 결말-
결말을 보면은 오묘합니다.
따뜻하며, 춥고, 달달하며, 쓴 맛이 올라옵니다.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서로 떠납니다.
유키는 인간에게 섞여 지내는 것을 선택하며 떠나고, 아메는 자신의 본질적인 거주환경인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이유가,
다른 가족영화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외적 모습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의 모습이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내적 모습의 성장과 이상적 어머니상을 그리며, 영화를 전개합니다.
도시로 떠난 유키와 야생으로 떠난 아메, 그 뒤에는 홀로 남은 하나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며, 영화는 아메가 다 자란 늑대가 된 모습과
하나의 모습, 유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하나는 혼자 시골에 남게 되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게 되며,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그저 행복한 결말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닌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 다르게 느껴지게
장치를 설정한 것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에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품을 떠나며, 엄마가 할 역할을 다 했고, 이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라고 하며,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희망찰 수도 있고, 부모인 하나의 관점에선 자식을 놓아주는 심정이다 보니,
아쉽거나 씁쓸한 느낌이 잘 남게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고통-
영화를 보면, 유키와 아메의 엄마인 하나는 영화 내내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으며 두 아이를 키웁니다.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따듯하기만 했으면, 이정도 고평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들어나며, 아이들의 갈등과 서로 성장함에 따라 갖는
서로 다른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선택하며, 부모를 떠나는 이야기까지 그려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는 진짜 헌신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부모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참고 버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영화에선 이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보는 우리에게 잘 전달합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유키는 자신이 늑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사람인척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려 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동생 아메와 갈등이 생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갈등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깔끔한 연기, 적당한 음악, 절제된 연출 =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절제된 연출을 보이며,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잘 보여준 작품을 뽑으라 묻는다면,
단연코 바로 이 작품을 말할 것 입니다.
너무 과하다하게 생각하지 않게 딱 끊은 절제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게 상당히 힘든게, 이런 가족영화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며 극대화하기 쉽상인데,
이 작품은 그 극대화를 최소화하며, 더욱 인간적이게 그리려 애썼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 곳곳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적당히 절제된 듯 하며 극의 분위기를 끓어올리는 음악은 최고였다가 아닌
딱 좋았다. 수준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작품을 뛰어넘는게 아닌 같이 잘 화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아메의 연기력은 준수했으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하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제작진과 성우를 한 사람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야 말로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절제된 연출을 하며, 성우 기용을 하지 않고, 배우를 섭외하여 주연급 캐릭터 연기를 해서
성우들의 오버하는 톤이 아닌 현실적인 톤을 더욱 잘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장-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 인물들의 성장에 초점이 잘 맞춰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싱글맘, 성장, 늑대, 등 많겠지만 가장 큰 주제를 내포한 단어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느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내고 싶어하는 유키와
자신은 늑대라며, 늑대를 위험한 짐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야생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의 삶을 추구하는 아메
둘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며, 활기찼던 유키. 내향적이며, 늘 엄마의 그늘에서 지내던 아메.
서로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재자의 역할로 엄마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늑대지만,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거 없이 갈등과 행복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걸 잘 보여주며
인간과 똑같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커피처럼 향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마실 때는 처음에는 쓴맛과 신맛이 느껴지지만,
혀에 닿았을 때는 씁쓸함을 느끼고, 목에 닿았을 땐 커피 향과 따뜻함에 내려가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이상적과 현실적 두가지를 잘 늑대아이인 아메와 유키, 엄마인 하나에 잘 대입하여
성장이란 이야기를 심도있으며, 가족들이 쉽게 접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합니다.
-관람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초반의 전개와 설정-
이 영화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입니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하나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늑대의 죽음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어머니.
우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극의 분위기를 정 반대로 뒤집으며, 큰 서사적 흐름의 장치로 이용되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급하게, 그냥 어영부영 매꾸는 듯 합니다.
그리고 너무 헌신적이기만 한 하나의 모습은 작품 이입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기도 합니다.
하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몇가지 점을 제외하곤 현 시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퇴보하는 요즘시기,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제대로 영화라고 불러볼 법한 작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거니?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行くの?私はまだあなたに何もしてあげたこと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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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짝 찾기와 퇴사
전쟁 같은 사랑
마치 첫 만남에 내 사랑을 찾은 것 같았다. 그냥 일개 변호사였던 렌필드. 비서를 구한다는 누군가의 공고에 이끌리듯 성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두컴컴하다. 여기요? 주인을 부르는 질문에 남자가 등장한다. 말투가 이상하다. 뭔가 중 2병의 느낌을 풍기는 남자. 알고 보니 중 2병 무드만 품기면 다행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드라큘라였다. 영생과 무한한 능력을 하사 받은 렌필드. 벌레를 먹으면 모든 걸 다 씹어먹는 빌런이 되어 사람의 팔다리 다 뜯어버린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힘을 그냥 무료로 얻을 리는 없다. 드라큘라와 렌필드가 만나게 된 계기는 직장이다. 그러니까 렌필드가 드라큘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피를 먹어야만 생을 연장할 수 있던 렌필드. 렌필드는 순수한 체하며 인간의 피를 구해오거나 사냥꾼들을 드라큘라와 때려잡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일이 떳떳할리는 없다. 도망자 신세인 렌필드. 드라큘라는 별생각 없어 보이지만 렌필드는 이런 삶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저 그만두고 싶습니다!" 용기 내어 드라큘라에게 고백한다. 드라큘라의 대답은 온화했다. "그래. 뭐 그만둘 수도 있지." 바로 정색하는 렌필드. 드라큘라의 대답은 곧바로 차가워진다. "내 힘으로 이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 감히 퇴사?"라는 말로 맞받아친다. 바로 렌필드를 빈사상태로 만드는 드라큘라. 드라큘라는 렌필드를 구워삶기 시작한다. "오직 나만이 너에게 사랑과 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드라큘라. 가스라이팅이 시작됐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렌필드의 독립은 좀 멀리 있는 듯하다. 과연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거 좀 기다렸어
2주 전인가? <곰돌이 푸 : 피와 꿀>이라는 영화를 봤다. 본 시기가 주말이었고 cgv 공식 어플의 3천 원 할인쿠폰을 적용해서 봤으니 12000원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나올 때 엄청 후회했다. 그냥 <리바운드> 볼 걸. 뭐랄까 극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모욕을 당했을까. 한 35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곰돌이 푸'를 활용한 방식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곰돌이 푸와 피글렛이 살육극을 벌이는 내용이다. 퍼블릭 도메인을 패러디해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단점 중 하나는 이 지점에서 온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푸, 피글렛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와 반대로 드라큘라와 렌필드를 활용한 이유를 보여주는 편이다. 일단 드라큘라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렌필드와 드라큘라의 관계를 은유하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 초중반부 렌필드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덕에 렌필드는 시각이 넓어지는 성장을 겪게 된다. 이 시퀀스에서 하이라이트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있는데 이 문장도 생각해 보면 영화의 어떤 부분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영화에서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나쁜 관계 모임'을 들여다보면 역시 흥미롭다. 이 모임에 소속한 인물들이 빨아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에서 드라큘라의 속성을 빗대 영화의 갈등구조로 활용한 방식은 그냥 단지 재밌으려고 영화의 핵심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영화의 강점으로 칭찬받을만하다.
또 영화에서 드라큘라 원작의 디테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점 역시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앞에서 언급한 <곰돌이 푸 : 피와 꿀>은 그냥 등장인물만 갖다 놓은 수준(일례로 푸와 피글렛이 사람들에 상처받아서 극단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정도)인데 이 <렌필드>는 다르다. 우선 원작에서 렌필드가 어떤 걸 먹으면 힘을 얻는다. 이는 원작에서도 알 수 있는 속성이다. 그러나 렌필드라는 인물의 특성을 갖고 온 지점이 원작에만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직업인 변호사에 대한 것도 다른 창작자가 만든 부분을 갖고 왔다. 게다가 영화에서 중후반부에 제시되는 드라큘라의 목표와 관련된 부분도 다른 작품에서 갖고 온 듯하다. 이렇게 이것들 말고 다른 드라큘라들의 특성을 갖고 와서 오마주한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분명한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액션 칭찬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코미디적 요소나 자아 찾기라는 테마가 들어있는 대사들이 아니다. 바로 액션이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필수적이다. 렌필드가 드라큘라에게 자아를 의탁했다는 콘셉트를 살리려면 당연히 렌필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묘사해야 한다. 영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다. 캡틴 아메리카는 혈청을 맞고 인간의 운동능력 이상의 것을 가진 인물이다. 그걸 기점으로 빌런을 두들겨 패는 캡틴 아메리카. 뭐 빌런들이 붕 날아가는 것도 그의 파워를 보여주는 방식이겠지만 글쓴이는 살짝 다르게 생각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악당들의 팔, 다리를 뽑아버리는 묘사도 그 인물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영화는 이를 그대로 구현한다. 렌필드 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는 그 큰 피지컬을 활용하며 합을 잘 맞춘 액션을 보여준다.
그중 글쓴이가 ‘액션 좋다’라고 느낀 부분은 초반부다. 렌필드가 모임을 참석하고 만난 인연이 있다. 이 인연을 괴롭히는 나쁜 인간들을 혼내주러 간다. 이 장면에서 시각적인 효과나 사운드를 잡은 방식이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렌필드라는 인물을 설명하기가 용이해진다. 사실 이 시퀀스보다 좋았던 건 후반부/극후반부에 들어가는 액션이다. 이 장면들은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적인 특성을 잘 활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렌필드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지형지물을 뜯을 수도 있고, 벌레를 먹기에도 용이하다는 특성은 필연적으로 이곳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이 장소의 특성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에도 강점을 가진다. 니콜라스 홀트가 범주가 넓은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케서방과 아콰피나
이 영화에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당연히 드라큘라다. 원작을 드라큘라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드라큘라라는 역할은 많은 드라마/영화에서 수도 없이 등장했기 때문에 살짝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독이 든 성배 같은 역할을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베테랑이 맡았다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니콜라스 케이지 이 영화에서 연기 정말 잘했다. 이 영화 사실 굉장히 잔인하다. 팔다리 뜯기는 건 기본이고 피가 철철 흐른다. 이는 영화의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연출 방식이 된다. 반대로, 영화가 호러영화로서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이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 덕분이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정통파 빌런처럼 연기한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잭 니콜슨의 ‘조커’가 생각이 났다. 장난스럽고 익살스럽지만 그만큼 괴기스러운 한 방을 갖고 있는 느낌?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가졌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 광기에 사로잡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선데이 / 기분 나쁜 느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더 배트맨>의 조커, 리들러보다 더 클래식에 가까운 빌런을 연기한 것이다. 실제로도 니콜라스 케이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예상 가능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의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키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영화를 받자마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롤을 그대로 이해하고 연기하는 듯하다. 이런 그의 연기는 전작에서도 볼 수 있었다. <피그>에서 보여줬던 1인 캐리를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 4월이라 속단하긴 이르지만 아마 내년 초 유수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아콰피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아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활약한다. 사실 이 아콰피나가 맡은 역도 좀 뻔하다. 뭔가 이 사람의 이면에 무언가가 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겉으로 센척하는 그런 인물 타입이다. 어찌 보면 장르의 관습에 기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전형적인 캐릭터세팅은 영화의 단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콰피나는 이를 본인만의 화법으로 주파한다. 글쓴이는 이 역할에서 개성을 부여한 방식이 눈빛연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렌필드를 대하는 방식이 점점 변하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를 투사한 표정연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될 만큼 영화에서 악센트를 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강강강
뭐 니콜라스 케이지 연기 잘하고 니콜라스 홀트, 아콰피나가 매력적인 데다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도 건강한 데다 액션까지 잘 뽑아서 적당히 재밌는 영화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영화는 잔인한데도 불구하고 팝콘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보기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의 템포가 내내 빠르게 후다닥 진행된다는 점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한 지점이다. 보면 좀 생략되어 있는 부분도 많고 불필요하게 고어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또 캐릭터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살짝 전형적이라는 느낌은 좀 아쉽다. 아이디어가 창의적이었던 것은 맞다. <조커>를 통해 악인의 발생을 탐구해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점을 제시했던 것과 유사하게 <렌필드>를 통해 자아 찾기의 의의를 조명한 것이다. 그러나 <렌필드>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만을 표현하기 위해 공장에서 찍은 듯한 느낌이 드는 감이 있다. 왜? 인물들이 다 배우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는 의존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드라큘라에게 인상 깊던 장면은 있어도 렌필드와 레베카에게 인상 깊던 장면이 뭘까하면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 이 글을 쓰면서도 아콰피나가 맡은 역을 검색했으니 말이다. 이런 공산품적인 특성은 영화의 후반부 때문에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느 정도 있다. 편의적인 엔딩인 셈이다. 굳이? 싶은 것도 맞지만 영화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을 클리셰에 기대느라 불필요하게 사건을 벌였다는 것이 아쉽다. 영화라는 예술의 한 장르에서 엔딩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엔딩을 너무 상투적으로 만드니 ‘안 그래도 뻔한’ 영화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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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딘 부인의 재판>을 보고 <헤어질 결심> 생각을 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제 <The Paradine Case>, 히치콕의 1947년작인 이 영화는 <패러딘 부인의 재판>과 <패러딘 부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재판 대신 사랑이 쓰인 것은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패러딘 부인이 누굴 사랑하는지가 서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헤어질 결심>은 이 영화의 멋진 변주라고 할 만한데, 두 영화의 주요 골자란 이렇다.남편을 죽였다는 죄목의 외국인 여성 의뢰인/용의자가 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성 변호사/형사가 사건을 잘못된 판결로 몰아간다.
<패러딘 부인의 재판>과 <헤어질 결심>은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보고 나서의 느낌은 아주 다른데, 형사/변호인의 아내 캐릭터가 그 이유를 푸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킨의 아내 게이는 아름답고 착하며 남편을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관객은 자연스레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는데, 처음에는 남편의 흔들리는 마음을 의심하고, 그를 심문하고, 응원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말까지 지켜본다. 사건을 조사하려고 타지에 있는 부인의 집에 방문할 것이라는 킨의 말에 게이는 직감이 발동한다. 처음에는 같이 가자고 설득하다가 그 설득에 킨이 넘어오자 태세를 전환하여, 혼자 가서 조사를 열심히 하고 꼭 재판에서 이기라고 한다. 게이가 입장을 바꾼 이유는 남편이 패러딘 부인을 사랑하니 그녀가 재판에서 져서 사형을 구형 당한다면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줄 알 것이므로 부인이 이겨서 살게 되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남편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이처럼 킨에게는 게이라는 돌아갈 따뜻한 집이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패러딘 부인을 향한 킨의 사랑이 더욱 도발적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의 아내, 정안은 사뭇 다르다. 게이에 비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확연히 적다. 그녀 또한 해준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예: 보양식 손질 장면) 남편에게서 외도의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는 두말없이 다른 남자와 집을 떠난다. 이는 박찬욱이 서래와 해준의 러브 스토리, 절절한 멜로 드라마를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안은 관객이 깊이 이입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와 해준의 첫 헤어짐을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뉠 수 있는데, <패러딘 부인의 재판>은 딱 1부에만 해당되는 내용처럼 보인다. 남편을 죽인 것이 패러딘 부인임이 밝혀지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고, 극을 추동하는 미스터리도 '정말 패러딘 부인이 자기 남편을 죽였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그럼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 담고 있다. 그리고 2부를 끌고 나가는 미스터리는 '서래가 정말로 해준을 사랑했는지'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이 영화가 불륜을 미화해서 불쾌했다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 뿐더러 불륜=나쁜 것 이라는 공식, 그리고 결혼 제도에 대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어린 패러딘 부인은 시각장애인과 결혼했고 그 이유는 가진 것이 없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외국인 노동자 서래가 한참 늙은 기도수와 결혼해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오직 사회적 약자만이 결혼을 이용하여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계급 상승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결혼이라는 계약 앞에서 모두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특히 '사'자 직업의 경우 직업 세계에서의 신용도를 얻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찼는데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불륜이 나쁜 것이라고 정의 내리기 전에 결혼이란 무엇인지, 왜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겼는지, 배신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영원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패러딘 부인의 재판>은 옛날 헐리우드 영화답게, 결국은 가족의 품에 안길 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패러딘 부인의 매력이 아름다운 외모를 제외하면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의아했다. 부인은 변호인의 앞이나 법정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만 딱히 킨을 유혹하거나 그에게 끌려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킨의 사랑은 더욱 마녀에 잠시 홀린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반면 <헤어질 결심> 속 해준의 사랑은 공감할 만하다. 서래의 순수하고 소박한 매력, 억압되어 있던 남성을 어루만져 평화를 주는 여성인 점,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결국 치밀한 계획을 세워 그 생활에서 빠져나온 점 등 관객이 서래에게 이입할 수 있는 면이 다양하다. 해준은 직업적 윤리의식이 투철하다 못해 철옹성 같은 형사다. 그 형사가 사랑이 개입된 실수를 하고, 그 실수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 서래는 어쨌거나 고의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결말에서 두 사람이 웃으며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준의 미래도 쉬이 그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랑이 너무나 거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서래와 해준은 헐리우드가 찍어낸 판에 박힌 평면적 인물이 아닌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특별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결국은 정상가족주의를 충실히 지킨다는 면에서 <패러딘 부인의 재판>은 실망스러운 작품이지만, 히치콕 영화답게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려고 패러딘 부인의 집, 그 중에서 부인의 방에 들어간 킨은 침대 프레임에 그려진 부인의 얼굴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영상에서 아주 재미있게 묘사된다.
패러딘 부인은 고정되어 있고 다른 것들은 움직이는 구도가 법정에서 한 번 더 나오는데, 부인의 연인 안드레 라투르가 증언을 마치고 나갈 때다. 안드레는 정말 부인을 증오하는지, 왜 그런지, 혹은 뭔가 다른 것이 더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촬영이다.
샹들리에 보석이 화면 상단에 내려 와 있는데, 꼭 괴물의 입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딘 부인 사건 때문에 한 남자는 자살하고 다른 한 남자는 직업적 명성을 잃게 되니 저 보석은 패러딘 부인의 치아라고 볼 수도 있겠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영화 중 가장 감정적으로 거리 두기가 힘든 영화다. 사운드 트랙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그래서 이에 관해 글도 쓸 수 없었고, 좋은 부분을 짚어내기도 힘들었는데 그 모티브가 된 작품을 보고 나서야 관련 글을 쓸 수 있게 되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최근 재개봉을 하기도 했으니 극장에서 보고 또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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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 2월 28일(북미 기준), 화면 속 일시적인 끊김과 어색한 수상 소감으로 가득한 밤 아래, 사챠 바론 코헨과 정이삭 그리고 클리오 자오 등 많은 감독들이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수상자가 호명되고, 무대까지 긴 걸음을 걸어가 트로피를 수상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상식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수상자들은 언제쯤 주최 측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이하 HFPA)로부터 트로피를 수여받을 수 있을까?
출처 : GoldenGlobes
이에 관해 HFPA의 대변인은, 수상자 전원에게 연락해 “코로나 예방 수칙에 문제가 없도록 하여 트로피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영화 배우와 제작자들에게 전달될 골든 글로브 트로피는 이름 각인 작업이 진행중이다. HFPA는 “COVID-19 전염병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가능한 모든 일을 신속하게 완료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일부 수상팀은 트로피와 관련하여 이메일로 문의를 했지만 여전히 답장이나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 예술 에미상(Creative Arts Emmy Awards)은 작년 9월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수상자들 중 몇 명은 몇 주가 지나서야 트로피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2021년 1월이 되어서도 받지 못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출처 : BBC
수상자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장소인 비버리 힐튼(Beverly Hilton) 호텔 무대에 서서 가족, 친구 그리고 홍보 담당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그들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만 있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관련이 있을 수 있어 많은 영화 팬들이 유튜브를 통해 재감상을 하기도 한다.
바론 코헨은 수상 소감에서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HFPA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to the all-white Hollywood Foreign Press)”고 말하며, HFPA 회원 중에 흑인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LA타임즈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투표권을 갖는 87명의 현역 HEPA 회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문제가 된 논란이 다시 한번 부각되기도 했으나, 잠옷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가한 조디 포스터의 모습 등 여태껏 보지 못한 장면들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재감상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출처 : Los Angeles Times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진행하고 HFPA 측에서 트로피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미국 배우 종합상(SAG),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Critics Choice Awards)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과 에미상(Emmy Awards)에게 있어 많은 영감을 주었을 테니, 우리는 앞으로 더 흥미로워질 시상식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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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선인 줄 알았던 교차선
평행선인 줄 알았던 교차선, <해피엔드> 리뷰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했습니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반응 좋았기에 기대감이 컸다. 그래서 시놉시스 외에 어떤 것도 알아보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시작, 영화 끝. 시작부터 심장은 뛰었고,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함께 간 친구와 영화관을 나오며 한 말은 "미쳤다."뿐이었다. 그 정도로 취향인 영화였고,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보고 싶었기에 시사회 감상 후 개봉일인 4월 30일 영화를 한차례 또 보았다.
훌륭한 음향과 연출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야기였다. 해피엔드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AI로 사람을 인식하고, 감시하는 시대. 주인공들의 장난을 '테러'로 규정한 교장은 학교에 AI 감시 체제를 학교에 도입한다. 대지진 예고로 혼란스러운 사회와 AI 감시 체제로 억압된 학교에서 코우와 유타, 아타, 밍, 톰 그리고 학생들은 어떤 변화를 맞이한다. 해피엔드는 청춘을 이야기한다. 청춘 속 한번은 겪을 만한, 뗄 수 없는 정치와 우정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더 재밌게 보고 싶다면 주목할 포인트
1. 지진의 타이밍
2. 반복되는 대사
3. 유사한 인물
본 리뷰는 다음 글부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주 정치적인 설정,
현실과 영화, 사회와 학교의 거울 구조
거울 1. 현실과 영화
SF와 청춘이라는 장르로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했다. 흔한 청춘물이면 어찌할지 생각하면서도 SF와 함께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기에 궁금했다. SF라는 장르는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장면을 연출한다. 또 다른 부분으로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점을 가진 장르이기도 하다. 기술이 발전해도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욕심으로 인한 독점, 본인의 안정을 위한 공격 등, 사회에 근본적 문제를 짚어내기 위해 SF 배경이 쓰인다. 해피엔드는 듄과 같은 화려한 스케일보다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SF를 활용했다. 해피엔드 속 일본 사회는 일본에서 벌어진 상황과 비슷하며, 전 세계적인 흐름과도 유사하다.
거울 2. 사회와 학교
영화는 현실을 비추고, 해피엔드 속 학교는 영화 속 사회를 비춘다. 코우와 유타가 세워둔 교장의 스포츠카. 교장은 그것을 보고는 "테러인가"라고 말한다. 부하 교사는 "네?"라고 답하며 관객의 반응을 대신한다. 과연 스포츠카를 세워둔 것이 학교를 향한 테러일까? 아니다. 그저 교장을 향한 공격일 뿐 학교를 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장은 이것을 테러로 규정하고, AI 체제를 도입하는 이유로 말한다. 아이들은 AI 감시 체제로 시도 때도 없이 감시당한다. 웃긴 점은 이 AI 감시가 아주 허술하다는 것이다. 유타가 당당히 교무실에서 열쇠를 가져가는 것은 벌점이 없다. 야구부 주장이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집으면 흡연으로 벌점을 부여한다. 외에도 영화 속에서 허술한 점들이 많다. 그와 동시에 학교엔 혐오가 심해진다. 귀화하지 않은 학생들을 분류하고, 그들이 규정한 일본인만을 위한 수업이 진행된다. 교장은 코우의 국적을 이야기하며 그런 출신이지 않는냐며 혐오가 가득한 말을 학생들 앞에서 내뱉고, 자기 잘못은 변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까지도 '일본식' 예절을 말하며 같은 학생이 차별 발언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영화 속 사회와 같다. 대지진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불안을 조장하고, 권력을 잡는 총리의 소식은 뉴스로 알 수 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익숙함에 움찔하게 만든다. 총리는 지진이 일어나면 외국인 범죄가 늘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파시즘적 발언을 내뱉다가 도시락을 맞기도 한다. 학교의 AI 감시는 사회 속 경찰과 같다. 코우는 여러 번 검문당한다. 얼굴을 인식하고, 소지 의무가 없는 서류를 요구받는다. 클럽에 들어간 것은 코우의 잘못이라 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붙잡힐 이유는 없다. 두 번째 검문에서 우퍼를 튼 것은 유타였음에도 코우가 서류를 요구받는다. 경찰은 딱히 중요치 않다. 마치 AI 감시체계가 허술하고, 멍청한 것처럼 경찰도 똑같다. 지진 경보 타이밍에 맞춰 시위를 탄압하기도 한다.
거울 3. 총리와 교장
거울 2가 거울 구조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출은 총리와 교장의 관계이다. 둘은 의도적으로 닮아있다. 특히 도시락 피습 사건과 교장실 점거 농성 장면은 완벽한 거울이다. 총리는 도시락 피습사건에서 도시락을 맞고 볼에 음식을 떼어내며 "아깝게시리"라고 말한다. 교장은 점거 농성에서 버려진 스시를 주우며 똑같이 말한다. "아깝게시리"라고. 그 외에도 불안을 조장해 권력을 잡는 점도, 혐오 발언을 내뱉는 것도 닮았다. 이 둘은 현실의 권력자와도 닮았다. 모든 나쁜 권력자들은 같은 모습을 한다.
또 하나 닮은 점은 이익을 좇는 것이다. 교장은 본인 차 테러 이전에 AI 감시 체제 도입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점거 농성 전 기사 인터뷰 내용을 보면 AI 감시 체제를 쓰고 교장의 지인(초반부 도지사 선물을 챙겨주던 사람)을 자주 봐야 해서 힘들다는 농담을 한다. 차가 세워지기 전에도 감시 체제와 관련된 인물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차 사건이 명분으로 이용됐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마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AI 감시를 가져온 게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한다. 총리도 결국 대지진의 불안을 이용해 많은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권력뿐 아니라 내진설계 건축과 같이 분명 돈과 연결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교장도 학교 내진 설계를 위해 도지사에게 로비했고, 제2의 아지트가 될 뻔한 클럽도 내진설계 빌딩 공사를 위해 없어졌다. 코우네 식당에서 건축회사 아저씨가 지진이 오면 건축회사가 잘 된다고 말한다.
아주 정치적인 설정,
각자의 방식으로
잘못된 권력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대응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상상력이 필요해”라고 한탄하며 말한 후미의 말에 대답하듯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석적인 모습은 후미다. 시위에 참여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한다. 저돌적으로 맞선다. 그리고 고민하는 코우, 코우는 후미처럼 맞서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으로 겪었던 차별과 대학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고민한다. 중요한 순간에도 그 고민으로 나서지 못하고, 결국 유타에게 마음의 빚을 진다. 그럼에도 코우는 시위에 참여하고, 화를 내고, 점거 농성을 서포트한다. 유타는 코우를 보며, 코우를 위해 저항한다. 코우의 벌까지 자신이 맡아 결국 권력이 무너질 가능성을 만든다. 이유 없이 검문당하던 코우를 보며, 혼자서 우퍼를 옮기며, 쫓겨나는 친구들을 보며 우타도 조금씩 변화했다. AI 감시에 반항하던 아타는 벌점으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어쩔 수 없다며 청소한다.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 아타는 졸업식 날 자신만의 방식으로 교장에게 한 방 먹인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을 학생들의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움직인다.
한 번쯤 겪는 우정의 변화,갈림길에 서 있는 코우와 유타자랄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넓어지고, 변화한다. 청소년기에 우정은 삶에서 어느 정도 크기를 차지할까?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우정은 변치 않을 것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다 소울메이트라 여기던 친구와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느낀다면 삶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영화에서 지진은 코우와 유타의 관계가 흔들릴 때 함께 발생한다. 가장 큰 흔들림이던 첫 번째 흔들림, 코우는 차별당한 순간과 불안감에 빠진다. 그러다 맞서 싸우는 후미를 발견하고 시선을 돌린다. 유타는 코우의 변화에 어색함을 느낀다. 두 번째 흔들림, 유타는 알바 면접을 보고 유타는 폭력 탄압이 발생한 시위 현장에 있었다. 유타는 시위에 나가며 싸우고, 억울함을 토해내는 코우를 보고는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 코우는 유타를 이해할 수 없고, 유타는 코우를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 흔들림, 대학 장학금을 받은 코우와 퇴학당한 유타. 코우와 유타는 이전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관계가 되었다.코우와 유타는 소꿉친구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오던 친구이다. 유타는 우퍼를 옮기며 서로가 영원할 친구 관계임을 이야기한다. 싸우더라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코우는 톰에게 우리가 유타를 대학교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본다. 코우는 유타가 변해서 자기와 앞으로도 함께했으면 하는 만큼 유타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안 맞는 부분을, 참을 수 없다. 우정이란 무엇일까?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친구일까? 완전 똑같은 사람끼리만 친구가 되는 걸까? 멀어지지 않아야 하는 걸까? 영화를 보며 수많은 질문이 생각났다. 영화와 함께 개인적인 답을 해보자면, 우정은 복잡하다.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아주 극히 일부 겹치는 때가 생긴다. 대부분 그 겹치는 때에 친해진다. 모든 부분이 같을 수 없다. 안 맞는 부분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겹치는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친구이다. 또 우정은 가깝지 않더라도 이어지고, 끊기더라도 이어진다. 서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우정은 이어질 수 있다.코우와 유타의 흔들림은 사실 너무 친하고, 좋아했기에 생겼다. 같은 사람이었으면 한 것이다. 갈림길에서 누군가의 집에 따라가고 싶었던 마음처럼, 이 삶의 갈림길에서 같은 방향을 향했으면 했다. 둘은 싸우면서도 서로를 본다. 유타와 싸웠지만 가능한 곳까지 우퍼를 옮겨주는 코우, 코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코우를 보호하고, 코우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게 자신을 희생한 유타. 마지막 장면 둘은 결국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을 향한다. 이전과 다른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둘은 앞으로도 서로 다른 길에서 우정을 이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변화하고, 이해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교차 선에서 어린 시절처럼 장난치며 웃을 것이다.한 번쯤 겪는 우정의 변화,너랑 나는 정말 다른 것 같아초반부 함께 음악을 즐기고, 몇 번의 가위바위보도 겹치는 소울메이트 코우와 유타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도 서로의 다름을 느낀다. 소꿉친구, 초중고 친구들과 겪는 큰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결국 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것. 자라면서 변화가 생긴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잘 맞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변하는 취향, 성향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친구와 차이가 생긴다. 코우와 유타도 이런 타이밍이었다. 너무나 잘 맞는 둘이었기에 오히려 다름이 큰 흔들림이었다. 그래도 이 사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코우는 유타를, 현실을 모르는 무개념이라 말했지만, 결국 자신을 구한 것이 유타였다. 코우가 생각한 것처럼 유타는 현실을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무력한 바보도 아니었다. 유타는 코우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말대답을 해서 싸우는지, 길에서 시위하는지 즐기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있던 유타는 동아리방을 빼앗기고, 클럽도 없어졌다. 우퍼를 옮겨주었던 친구도 빼앗겼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며 아마도 유타와 코우는 다른 길을 가더라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영화를 보고청소년 주인공을 다루는 청춘물은 가끔 많은 것들이 제외된다. 특히 정치적인 요소가 우정의 흔들림의 원인으로 나온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마치 학생이라고 정치적 의견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어리기에, 보호받는 존재기에 오히려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피엔드는 확실히 학생이, 청춘이 겪는 것을 색안경을 벗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좋다. 그래서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모든 세대가 겪었을 일을, 현재의 일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졌다.기억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영화를 한 번, 두 번 보고 심층 리뷰를 쓸 수 없는 타입이다. 언젠가 OTT에 들어온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하고 싶은 영화이다. 아직도 궁금한 점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조금 더 준비해서 이야기해 보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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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자들을 위한 소네트
반 년전, 왕따 당하는 삶에서 자신과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개, 루를 그리워하는 조숙한 소녀가 있다. 소녀는 어느 날 루와 산책을 하다 빈 공터를 만나게 된다. 그 공터에서 루와 쌓은 추억으로 가득하기에 루의 죽음 이후에도 사야카는 꾸준히 그 공터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루가 다시 와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상념에 젖어있던 어느 날, 사야카는 아들을 오래 전에 잃은 후세 할아버지와 친해진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공유하며, 그들은 세대를 거스른 베스트 프렌드가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죽은 아들을 그리워한 할아버지와 많은 추억을 쌓은 개를 그리워하는 초등학생 소녀의 짧은 우정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면, 영화관에 방문해 볼 것.
1. 반칙이 난무한 등장인물
내가 아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 때, 반칙했다고 평가받는 부분 게 뭔지 알아요? 아이와 개를 등장시키는 거예요. 웬만하면, 아이와 개는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거든요."
영화 내용이 루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야카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반칙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 반칙 덕분에 사야카와 루의 관계성을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뭔가 세상에 믿을 만한 있을 지도 모른다고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갖게 한다. 진짜 사야카 본체와 사야카의 대사들이 너무 귀엽다.
"후세 상도 기다리고 있는 게 있나요?"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거나 "소중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주장할 때는, 애늙은이 같다가도 엄마, 아빠가 어디 갔다 왔냐는 질문에 (후세씨와) 데이트를 하고 왔다는 발칙한 답변을 하는 사야카의 모습이 어른인 척 하는 아이 같아서 귀여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사야카가 말을 걸 때마다 루 역할을 한 개는 표정으로 참 많은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어디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개를 찾아왔는지 영화를 보면서 그 점이 신기했다. 개도 연기 연습을 시키는 건가 싶을 정도로.
2. 독특한 카메라워크에서 느낄 수 있는 관찰자적 시선
카메라워크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비단 비행기가 지나가는 장면을 간단하게 찍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아래에다 배치함으로써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사야카의 뒷모습을 찍어 관객인 우리가 관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게 하였다. 또한, 사야카와 루가 벽으로 가로막힌 새로운 초원에 진입하기 전에 개구멍을 통과할 때, 개구멍 옆에 있는 공간에다 카메라를 넣어놓아 사야카가 불평을 하며, 개구멍을 힘겹게 들어가는 과정을 우리가 관찰하듯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게 찍어냈네 생각했던 점이었다. 사야카와 루가 행복하게 놀던 시간을 위에서 관망하듯이 찍어놓은 것도 관객들이 사야카를 관찰하듯이 바라보기를 감독이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뇌피셜도 해본다.
사야카의 소중한 존재를 잃은 상실감을 그저 관망하듯이 바라보게 한 이유에 대해서 뇌피셜을 해본다면,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에 신도 우리를 그저 관망하면서 잃어버린 존재를 그리워하며, 고통에 잠겨 있는 우리들을 그저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이 신이 전지전능하기에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만 정작 신은 우리를 관찰하며, 우리가 알아서 극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했다. 써놓고 보니, 그저 망상같긴 하지만 말이다.
3.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 기차역
어린이 사야카에게 기차역이라는 공간은 많은 의미를 담은 곳일 것이다. 애정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거나 다시 만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인 만큼 사야카와 후세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자신의 그리움이 투영된 존재들을 만난다.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길을 간 사람들을 다시 만난 사야카의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기차역이란 결국 몸은 멀리 떠나갔지만 주변인들의 기억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 저승을 가지 못한 령들이 살아있는 이들의 기억으로 인해 매여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사야카가 후세 할아버지와 갔던 여행에서 루 뿐만 아니라 후세 할아버지의 오래전 죽은 아들까지 보였던 것을 보면, 후세 할아버지도 오래 전에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해 그 아들의 혼이 기차역에서 머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결국 기차역은 죽은 이들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 마음 편히 떠날 수 없었던 혼령들이 집합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야카가 후세 할아버지의 아들과 루를 모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차역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떠나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사야카가 루를 놓아주지 못하고, 후세 할아버지 또한, 아들을 놓아주지 못한 결과로 사야카와 후세 할아버지 모두 여행의 목적을 이뤄냈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최종 결정을 해야할 날이 올것이다. 헤어짐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날, 그 날 말이다.
총평
영화가 전체적으로 루즈한 면이 없지 않지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느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산자의 시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많은 것을 공유하던 내 사람이 없어진 세상은 이처럼 공허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공허함을 떨쳐내려면, 내 마음 속의 기차역에서 그들을 언젠가는 보내주어야 산 자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남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죽은 자를 실컷 그리워하다가 언젠가는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이다. 일본 영화만의 감성을 좋아하시거나 잔잔한 분위기에서 훈훈한 메시지를 가진 영화 보고 싶은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이 훈훈하다고만 하기에는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죽음을 다루고 있는 만큼 킬링 타임으로 가볍게 보고 지나갈 정도의 훈훈함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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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3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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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별점 및 한 줄 평
07:3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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