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4-06-27 11:19:25
아이가 보는 세상으로의 여행
영화 <이웃집 토토로> 리뷰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주말에도 일을 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주말가족여행’이라는 것은 존재자체를 몰랐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는 우리에게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독박육아를 피하고 싶었던 건지 여름이면 이모와 이종사촌들과 함께 충주에 있는 이모할머니댁으로 몇 주간의 긴 여행을 떠났다. 고향를 떠나 멀리 충주로 시집간 이모할머니댁은 마을에 집이 몇 채 없는 시골이었다. 이모할머니집에서 보이는 집은 세 네채 정도 였고, 수퍼마켓도 없어서 걸어서 10분 넘게 가야하는 마을 입구의 작은 집에 과자 몇가지와 음료수 같은 걸 팔고 있는게 다 였다. 마을이 워낙 작은 데다가, 아이가 있는 집이 없어서 여름 방학에 우리들이 와서 시끌시끌 떠드는 걸 온 동네사람들이 기다렸다고 한다.
꼬불꼬불 굽이진 산을 넘어가며 멀미를 하던 기억,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물놀이를 한 뒤에,먹었던 수박의 맛.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했던 좁은 논두렁 길, 메뚜기를 잡겠다고 뛰어다니던 일,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깜깜한 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던 은하수. 매해 여름방학을 기다렸던 건 충주이모할머니댁 때문 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웃집 토토토>를 볼 때 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동네를 생각한다. ‘사츠키’와 ‘메이’가 시골 마을로 이사 오는 첫 장면부터 이모할머니댁으로 가던 그 느낌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1955년 일본의 시골 마을 11살 사츠키와 4살의 메이 자매는 도쿄의 대학연구원인 아빠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아 입원중인데, 퇴원하면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서 살기 위해서다.
집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낡았는데, 자매는 도깨비집같다며 깔깔 웃으며 뛰어다닐정도록 밝다. 오래된 집, 옛날 화장실, 엄청난 벌레같은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숲과 나무가 가득한 자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자매. 어느 날 메이는 마당에서 혼자 놀다가 정령을 만나게 되는데, 메이는 그 정령에게 토토로란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메이는 토토로를 만난 것을 자랑하지만, 사츠키는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우산없이 나간 아빠를 마중갔다가 자매는 토토로를 만난다.
병원에 계신 엄마의 증세가 좋아져 주말에 집으로 온다는 소식에 자매는 기대했지만,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어 못오게 되어 아빠는 급하게 병원으로 가고, 이웃집 할머니가 돌보아 주지만 자매는 우울함에 말다툼을 하게 되고, 메이는 엄마를 혼자 찾아 가려고 집을 나선다. 사츠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메이를 찾아 나서지만, 흔적을 발현할 수 없었고, 절망한 사츠키는 토토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토토로는 고양이 버스를 부르고, 사츠키가 타자 바람처럼 달려 메이를 찾아준다. 메이와 사츠키는 화해하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가 창문으로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본 뒤, 창문에 옥수수를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웃집 토토로>의 이야기는 뭐랄까 담백하다.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라는 말도 거창하다고 느껴진다. 그저 어디까지가 아이들이 보는 세상이고, 어디까지가 어른이 보는 세상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적은 드물고, 자연으로 가득 찬 시골, 정령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이모할머니댁에 갔던 열살 무렵 그 시절의 나 또한 수많은 요괴와 도깨비와 요정과 정령을 만났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이웃집 토토로>의 아빠를 본다. 토토로를 만난 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뾰루퉁한 메이에게 “거짓말이라고 생각 안 한단다. 숲의 주인을 만났나 보다. 운이 좋은 거야. 근데 늘 만날 수는 없는 거란다.” 라고 말하는 어른. 나이가 들어 이제는 더 이상 숲의 정령을 못 만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어른의 눈으로 가르치기 보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태도를 본다. 이번 여름 방학엔 아이가 보는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