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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녹이는 기적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은 '카모메 식당'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일상을 그린 영화이다.
카모메 식당의 주인은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이다. 30대 중반에 가녀린 몸매를 지닌 그녀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헬싱키에서 일본식당을 열고 한 달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식당의 큰 유리창 너머로 동네 핀란드 아주머니 셋만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눈빛을 던지다가 사치에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목인사를 할라치면 후다닥 창가에서 떠나고 말기를 반복하는 게 그녀와 그녀의 식당이 받는 관심의 전부이다. 그러나 사치에는 느긋하다. 정성을 다하면 손님은 꼭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식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유리잔을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닦고 또 닦는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에 관심이 많은 미남 청년, 토미(자코 니에미)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다. 사치에는 식당을 찾아준 첫 번째 손님이 너무 고마워 그에겐 올 때마다 무료로 커피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독수리 오 형제'의 주제가 가사를 아느냐는 토미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한 것이 남은 하루 내내 목에 걸린 생선 가시만큼 불편하고 답답하다.
퇴근길. 입안에서 맴도는 만화영화 주제가의 가사에 생각이 팔린 사치에는 동네 서점 한켠의 커피숍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다가 일본어로 쓰인 책을 읽는 아시아 여성을 발견한다. 일본인이라고 확신한 사치에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 '독수리 오 형제'의 주제가 가사를 알아낸다. 그렇게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와 사치에의 인연이 맺어진다.
미도리는 눈을 감고 지도를 짚어 결정한 핀란드로 무작정 떠나 관광을 하던 중이었다. 달리 갈 곳도 할 일도 없던 미도리는 함께 기거하지 않겠느냐는 사치에의 친절을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지내며 무보수로 식당 일을 돕는다.
그러던 어느날, 중년의 핀란드 사내(마르쿠 펠톨라)가 식당을 찾아와 커피를 주문하더니 사치에에게 맛있는 커피를 끓이는 비결을 알려주고 홀연히 떠난다. 그 이후 사치에, 미도리, 토미는 환상적인 커피 맛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여전히 한가한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와 미도리, 토미의 일상적인 만남이 이어지고 있을 때 몸은 도착했으나 짐은 오지 않은 일본인 여성 마사코(모타이 마사코)가 식당에 와서 커피를 주문한다. 그녀의 황당한 사연을 들은 사치에는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친절하게 묻는다. 그녀와 미도리의 친절에 마음을 연 마사코는 매일 식당을 찾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며칠 동안 식당 밖에서 안을 쏘아보다가 결국 문을 열고 들어와 주문한 술을 마시고 취해 쓰러진 핀란드 여성 리이사(타르자 마르쿠스)를 마사코가 능숙하게 응급처치한다. 마사코가 핀란드에 오게 된 사연인즉, 오랫동안 몸져누워 앓던 부모님의 간호에 매달려 갇힌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핀란드인들의 엉뚱한 여유에 마음이 끌렸던 것.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자 마사코는 주저하지 않고 핀란드로 날아왔다고 했다.
네 여성과 한 젊은 청년의, 주인과 손님이 구분되지 않는 사귐과 오감의 일상 속에서 '카모메 식당'의 손님은 점점 불어난다. 그리고 사치에가 핀란드에서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주먹밥을 주 메뉴로 내걸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까닭도 밝혀진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두드러진 스타일은 negative volume과 긴 pause이다. 네가티브 볼륨이란 Herbert Zettl이 그의 저서 "Sight, Sound, Motion: Applied Media Aesthetics"에서 정의한 용어로, 한마디로 말하면 '빈 공간'이란 뜻. '빈 공간'과 자신만만한 '긴 호흡'은 핀란드의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그것이 어쩌면 핀란드의 특징이며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찾지 않던 '카모메 식당'의 빈 공간이 동네 손님들로 채워짐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빈 마음(외로운 마음)들도 우정으로, 삶의 좌표의 발견으로, 혹은 떠났던 남편이 다시 돌아온 기쁨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러한 채워짐의 실현이 있기까지, 주인공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기꺼이 일상의 반복에 몸과 마음을 성실하게 싣는다. 그리고 그 긴 호흡의 삶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하는 동안 타인에 대한 관심과 친절, 배려 등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사실 인간다움이란 긴 호흡의 삶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는 기적. 연기처럼 나타난 사내가 맛있는 커피를 끓이는 비법과 '코피 루악'이라는 주문을 사치에에게 알려준다. 돌아온 마사코의 가방 안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버섯이 들어있다. 리이사의 남편으로 짐작되는 사내는 저주의 마법에 걸린 후에야 기적처럼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기적은 각자의 슬픔을 위로하며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견딜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한다.
반복되는 미도리의 대사,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다"에서 드러나는 우주 혹은 운명 앞에서의 겸손함이 아마도 기적이 일어나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똑같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듯 보일지라도, 일상 앞에서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필연의 작용 방식이며, 그 작용의 법칙을 만들어내어 적용하는 절대적인 누군가가 있음을 문득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2021. 최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