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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작가2024-10-01 16:16:39

나의 일 순위는 나여야만 해

순정만화 원작 바탕 영화 [위국 일기] 시사회 참석 후기 / 영화 리뷰

 제목의 '위국(違国)'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어긋난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긋난 나라에서 쓰는 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왜 어긋난 나라인지는 영화 속 마키오와 아사의 불편한 동거를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저 다른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끝까지 양보하려 들지 않는 양쪽의 지독한 고집이 서로를 끝끝내는 어긋나게 만들어 버린다. 보통이라면, 남들이라면 대체로 웃으면서 그러려니 넘어갈만한 지점들도 꼭 짚어내어 기어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두 사람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눈대중으로는 얼추 맞을 것 같은데, 기묘할 정도로 결정적인 곳에서 맞지 않는 이들의 성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한다. 칼각으로 접히는 수건이나, 틈새에 딱 들어가는 청소기같이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상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의 정 반대다. 항상 삐걱거리고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둘의 사이는 그야말로 '위국'이다.

 

 

"어른이 친구가 있는 건 처음 봤어."


아사는 이모를 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어른의 범주가 굉장히 좁았음을 알게 된다. 어른이라면 응당 이럴 것이라는 기대감과 선망이 사라지자, 그들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는 뻔하고 지루한 진실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모인 마키오는 그런 것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거나, 어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해줄 만한 행동보다는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쉽게 인정할 따름이다.

 

"이모가 반대할까 봐 그랬어."


자신의 친구조차 쉽게 대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이모를 보는 아사의 심리는 조금씩 바뀌어간다. 세상 모든 어른의 기준이 자기 엄마였기에, 처음에는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려고 애쓴다. 밴드부에 가입한다고 하면 혼날까 봐, 말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아사가 엄마에게 꽤나 압박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선생님과는 다른 어른 군상을 통해 아사는 조금 더 자유를 만끽하는 쪽으로 변화되어 간다.

 

 

"나는 네 엄마가 될 수는 없어."

아사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마키오였지만, 정작 아사를 가장 불안하고 외롭게 하는 것도 마키오였다. 아사는 마키오에게 자신이 첫 번째이지 않은 것, 마키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더욱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빛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있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우선순위였던 삶이 처참히 무너지면서 겪는 일종의 상실감일 것이다. 혼자가 될 때마다 '엄마였다면' 하고 되뇌지만 정작 그런 엄마가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죽어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아사는 혼란스럽다.

 

"너와 나는 다른 주체니까.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 해."


그런 아사에게 마키오는 잔인하고 냉담하게 말한다. 엄마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을. 그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넌 결코 내 첫 번째가 될 수는 없어'라는 뜻과도 같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물들에게도 통용된다. 마키오에게 첫 번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니까. 결국 마키오는 은연중에

 

"너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너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남겼던 일기를 보고 아사는 학교도 빠지고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 버린다. 아사는 자신이 생각한 엄마와 남들이 알고 있는 엄마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엄마'가 아닌 '코다이 미노리'라는 한 명의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아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에게도 결국 자신이 첫 번째는 아니었다는 것.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자신을 위했다기보다는 본인을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그제야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슬퍼할 수 있게 된 아사. 마키오 이모의 품에 안겨 울면서 '과거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보라는 마키오의 말에 아사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만나지 못했으려나."

"누굴?"


표면적으로는 이모인 마키오를 두고 한 말이었겠지만, 더 깊숙이 파고든다면 말 그대로 '어긋난 나라'를 의미한다. 기묘하고 이상하게 어긋난 세상을 만났기에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한층 성숙한 '어른'으로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은 아사와 마키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여 감정선을 끌어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주변인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요소가 다소 존재한다고 느꼈다. 의도나 상징이 짙은 부분들에 있어서 영화의 맥락에 어긋나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 약간 불편했던 것 같다. 그저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고.

그렇게 이것저것 다 뒤섞은 바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큰 주제와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원작이 10권으로 구성된 순정만화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용적으로 각색이 있어야 할 터인데, 곁가지들을 애매하게 남겨놓은 것이 영화 감상 방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본 특유의 감수성만큼은 잘 살린듯한 영화였다.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담작가

출처 . https://blog.naver.com/shn0135/223603186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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