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0-02 09:44:52
‘관계성’에 관한 잊히지 않을 인장
영화 〈위국일기〉
두 장면이 있다. 여고생 ‘아사’와 친구 ‘에미리’가 텅 빈 학교 체육관에 둘이서만 있다. 두 사람은 넓은 체육관에서 때로는 가까이 앉아, 때로는 뛰어다니며 대화를 나눈다. 에미리는 아사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점을 알려주려는 참이고, 아사는 그런 에미리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반응과 질문을 던져 종종 민망해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긴장은 없다. 이 장면의 주요한 정서는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거리감으로 신뢰와 애정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서 나온다. 텅 빈 체육관에서 두 사람을 방해할 요소는 없다. 오롯이 둘만 마주해 말과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완벽한 접속’은 불가능할 테지만 상관없다. 타자를 완벽히 내 것으로 하는 관계는 공감이라기보다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거리는 있지만 결코 멀지는 않고,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성. 텅 빈 체육관의 두 소녀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애정이 깃든 관계의 모델이 무엇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두 번째 장면도 그렇다. 이번에는 아사와 그의 이모 ‘마키오’다. 두 사람은 탁 트인 바닷가의 한적한 계단에 앉아 있다. 이번에도 딱 달라붙어 있는 대신 위아래로 몇 칸의 간격을 둔 상태다. 아사와 에미리가 그러했듯, 두 사람은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일어서서 움직이며 말과 감정을 나눈다. 닫힌 공간인 체육관의 폐쇄성이 커밍아웃하는 에미리에게 안전하다는 감각을 주었다면, 탁 트인 바닷가는 뜻밖에 한 가족이 된 조카와 이모가 앞으로 만들어갈 관계의 양상이 무한히 깊고 푸르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하나가 될 필요 없는, 적당한 거리를 조정해가며 서로의 곁에 있는 관계의 모델이 다시 한번 아름다운 이미지로 재현된다.
〈위국일기〉는 관계성에 관한 영화다. 가장 주요하게 다뤄지는 건 아사와 마키오의 관계다.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사는 자신의 엄마와 십수 년 전에 절연한 이모 마키오와 한 가족을 이룬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아사를 두고 내뱉는 무심하고 무례한 말에 분노해 홧김에 자신이 아사를 데려가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조율해야 할 것은 무수히 많다. 서로 다른 생활 습관, 성격은 당연하고 돌봄을 어떻게 주고받을지도 협상해야 한다. 비혼 여성 마키오는 갑자기 생긴 조카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동반되는 책임감이 생경하면서도 때로는 부담스럽고, 아사 역시 자기 엄마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그 이유는 절대 말해주지 않는 마키오와의 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영화는 두 사람이 차이를 조율하며 일상을 맞추고, 새로운 관계 모델을 학습하며, 죽은 아사의 부모님을 애도하는 과정, 나아가 억압적인 엄마(아사)/언니(마키오)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아사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 어른이 맺는 친구/연애 관계에서도 지금껏 모르고 지낸 관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마키오 역시 아사를 돌보며 기존의 자기 관계망에 더욱 깊이를 더해나간다.
크든 작든 모든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세심히 그려내는 〈위국일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 서로를 북돋는 관계는 완벽한 이해와 공감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며 곁에 머무를 때 나온다고.
공감과 이해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는 느낌을 곧잘 받는다. 그러나 자신만의 고유한 결을 축적해온 타자는 결코 누군가가 ‘완벽’하게 포착해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타자는 생동하는 존재이기를 멈춰야 한다. 완벽한 이해는 타자가 주체이기를 멈추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희생해 내놓을 때만 가능하다. 심지어 이마저도 ‘해부학적’ 이해에 그친다. 죽은 동물과 곤충의 박제에서 우리가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장악하듯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으로 은은하게 보듬는 관계의 모델이 필요하다.
〈위국일기〉가 공들여 보여주고자 하는 건 바로 이러한 관계성이다. 극적인 전개나 자극적인 요소로 관심을 끌지는 않지만, 자신뿐 아니라 서로의 일상을 지탱하며 함께 나아가는 건강한 관계의 양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위국일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두 장면은 영화가 그려내는 여러 인상적인 관계를 아름답게 재현하며 잊히지 않을 인장을 남긴다. 체육관과 바닷가.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미지화된 관계성은 ‘선을 넘는’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은은한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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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너머 샹그릴라까지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부모님의 집을 떠난 지 십년도 더 지났고,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가끔 부모님의 집을 찾을 때, (이제는 개념조차 희미한) ‘집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들 때가 있다. 낯선 목소리가 “집에 어른 계시니?” 할 때면, 습관처럼 안 계신다고 대답하고 나서는 끊긴 전화기 앞에서 잠시 상념에 빠진다. 내게 나는 어른이 아닌가? 문득 내 나이를 깨달은 자의, ‘어른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빠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그 질문에 대한 어느 아름다운 답안을 이 영화, <벨파스트>에서 찾았다.
영화 <벨파스트>는 동명의 도시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에게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록허트 교수, <오리엔트 특급 살인> 포와로의 배우로도 익숙한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만든, 반쯤 자전적인 영화다. 케네스 브래너가 녹아든 주인공 꼬마 ‘버디’는 벨파스트의 한 골목에 살고 있다. 저녁 나절이 되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이웃들이 끝말잇기처럼 줄줄이 전달해줄 만큼 서로가 서로를 빤히 아는 동네. 그곳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들고 상상 속의 용을 무찌르면서 놀던 꼬마의 평화로운 세상은, 이내 깨진다.
용을 무찌르는 데 쓰던 방패는, 어느새 실제적으로 눈 앞에 튀는 벽돌 조각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고 만다. 아이들이 꿈꾸어야 할 시간을 현실에 매어두는 것, 그게 분쟁이다. 아직 어린 버디에게 더없이 정겨운 고향이었던 벨파스트는, 동시에 폭력과 긴장에 묶인 지역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 갈등인 동시에, 아일랜드 독립주의 계열과 친영 계열의 갈등까지 뒤섞여 유독 복잡한 분쟁의 양상을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도 분쟁의 내용을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황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요약 서술되고 넘어가며, 그나마도 속도가 매우 빠르게 처리된다. 텔레비전에서 군대를 보낸다는 소식이 발표되는 동시에 창밖으로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얼룩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정치적인 관점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방점을 찍은 영화는 아니다. 관객으로서 나 또한 그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주목하고 싶다.
#. 정답은 있는가
‘어른’과 유사하게 되어 가면서 점점 느끼는 게 하나 있다면, 거대하고 거창한 하나의 정답을 맹목적으로 외치는 사람 중에는 가짜의 비율이 높다는 것. 목청만 높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직접 사유하고 살아낸 것만이 내게 남지만, 그렇게 삶으로 배운 것조차도 하나의 고정된 정답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도 언제 깨지고 바뀔지 모른다.
이건 꽤나 속이 복잡해지고 불안해지는 생각이어서, 가끔은 이 마음 끝에서 툭 큰소리를 내게 되기도 한다. 목청만 높이지 말자는 생각 끝에서 목청이 높아지다니 역설적이지만. 허장성세는 결핍에서 나오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영화 속에는 ‘하나의 정답’을 외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답을 종용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맞부딪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세계가 그려져 있다. 실제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떠나, 세계 보편적으로 익숙한 상황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놓고 끙끙대는 버디에게 “숫자를 애매하게 쓰라”고 하며, 이를 “애매하게 맞추기spread betting”라고 한다. 하나 뿐인 정답을 콕 짚는 대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버디가 반쪽의 성공만 거두고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같이 하기do the project together”. 경계를 흩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눈을 맞추고 함께하는 것이 해결의 열쇠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와 너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나란히 연대하기.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정답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 변화보다 기억
구불구불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처럼, 상황은 계속 바뀐다. 한때 데이트가 끝나고 자신이 집에 데려다 주었을 ‘갈색 스타킹 소녀’가 이제는 평생을 함께한 노년의 여성이 되어, 자신의 노구를 ‘집에 데려와 주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잠시 할아버지가 멍해지듯이. "고향을 떠나는leaving home" 행동이 "살아가는moving on" 행위로 해석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듯이. 주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효소 세제가 한 주부에게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듯이.
자꾸 모양을 바꾸는 세상에서 변치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벨파스트 출신의 버디”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계속 묻는다. 버디는 그때그때 구체적인 대답을 꺼내는 아이다.
할아버지의 질문들은 버디의 뿌리를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의 버디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하게 느끼지만, 먼 훗날 뒤채고 흔들리는 날에 더욱 느낄 것이다. 이 사랑은 대를 이어 내려온다. 손자의 수학 문제 푸는 법은 도와줄 수 있었지만, 자식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 자식의 마음에 “많이 도와주셨지”라는 아릿한 사랑으로 남아 있듯이. “가라. 돌아보지 마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단호한 얼굴에서 끈끈한 마음이 묻어나듯이.
“돌아보지 마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버디는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는 마음, 결국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마음일 것이다.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마음. 구불구불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앞만 바라보지 않는 마음. 그 마음만이 우리를 바라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 달까지 가자
우리가 바라는 곳은 어디인가.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달’이 언급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1969년 7월)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광활한 우주를 소재로 한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 장면도 나오고, 버디와 캐서린이 함께 하는 과제도 달 착륙에 관한 것이다. 달 착륙 숙제를 했는지, 함께하고 싶은지 묻는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Have you gone to the moon yet?” 달에 가보았는지 묻고, “Do you want to, with me?” 같이 하겠는지 묻는 문장에도 ‘숙제’라는 목적어는 없다. 숙제를 마치고 최고점을 받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묻는 말 또한, 달까지 가는 방법이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대화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달로 가라Get yourself to the moon”는 말을 한 뒤 할아버지는 “런던은 오직 작은 한 걸음일 뿐”이라며 “벨파스트는 언제든 뒤돌아보면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니까.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벨파스트를 갑자기 떠나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자신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뿌리를 뽑혀 옮겨 심기는 감각은, 정도와 상황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로 남는 기억이니까. 그러나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로만 끝나지 않는다. 순진무구한 버디의 시선을 필터 삼아 걸러진 다음, 이야기에 응집된다.
인류가 처음 달을 밟은 것만큼이나, 벨파스트를 벗어난 삶 또한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달을 밟기까지 우주비행사와 과학자들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듯, 버디의 가족 또한 상당한 역경을 겪었다. 그렇게 도달한 자리는 그전까지 있던 곳과 중력부터 다른 곳, 완전히 다른 법칙이 작용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다 넘어서서, 이제 반자전적인 영화로 트라우마를 다독인다. 현대사의 얼룩과 다사다난한 개인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엮어낸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잘 만든 이야기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주목하게 한다.
영화 속 할머니가 서글프게 내뱉은, “벨파스트에는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 없단다”는 말에 배인 기억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벨파스트의 기억을 달 너머 샹그릴라에 마침내 이르게 한다. 흑백의 날들에 유일하게 생생한 색채로 그려진 세상에 그 길을 만든다. 이제 벨파스트에는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 놓였다. 샹그릴라는 스크린 속에 있다는 할머니의 말은, 360도 돌아 맞는 말이다. 스크린 속 샹그릴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힘은, 영화에 있다.
이 영화는 불시착처럼 느껴졌을 어떤 순간을 연착륙시킨다. 기억의 재구성에는 그런 힘이 있다. 스웨터를 풀어 그 털실로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듯, 같은 재료로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정답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읊조린다. 매번 다른 답안을 써낼 수밖에 없는 질문, 그때그때 달라질 답안을 아무도 평가해줄 수 없음에도 이게 최선인지 더 나은 답안이 없는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질문.
그래도 <벨파스트>에서 끌어낸 하나의 답안이, 지금은 꽤나 마음에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불시착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연착륙의 기억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 그렇게 이야기의 힘으로 나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 시간의 한 마디를 건너온 사람만이, 분절된 지점을 지나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란 재료를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니까.
그렇게 달까지 가자. 나의 샹그릴라로. 각자의 기억과 재구성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폴로 11호 같은 (그리고 누리호 같은) 성공적 발사체를 놓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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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범 | 악의 마음을 읽는 대신 가리기 급급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영은'(곽선영). 수영 강사 일을 하며 혼자서라도 딸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버겁기만 하다. 화가 나면 엄마도 칼로 베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면 안 되냐고 묻는 소현의 기이한 행동이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 엄마의 헌신과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소현이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자, 영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20년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고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권유리). 그녀는 딸이 잃은 이후 자신을 딸처럼 '현경'(신동미)과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들 앞에 해맑은 얼굴의 '박해영'(이설)이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과거 이력도 알 수 없는 해영이 조금씩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민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과 해영이 갈등이 정점에 달한 순간,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악인의 서사를 거세한 스릴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잔혹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호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연대보다 가해자의 사연, 수법 및 범죄 결과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비판하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외침에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구호에 내포된 사회적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악인의 서사는 때때로 유용하다. 가해자의 서사는 범죄 발생의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나 사회의 모순, 그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일례로 조현병 환자의 살인 사건은 범죄 예방 대책과 보건 복지 대책이 더 끈끈하게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들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배제할 경우 동종의 범죄를 예방하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더 많이 구제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따른다.
악인이 아닌 사람까지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성도 유발할 수 있다. 악인의 서사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도덕적 확신이 견고할수록 더 많은 서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설령 악인이 아니어도 자신과는 다른 서사를 지닌 타인을 쉽게 배제하고, 악마화할 수 있으니까.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악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일부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침범>은 단편적이다.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구호에 충실하다. 악인을 순수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악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도 일부러 외면하면서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악인의 서사를 회피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와 메시지에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와의 결정적 차이
<침범>은 1막과 2막으로 나뉜다. 그중 1막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같기 때문.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는 엄마 '에마'(틸다 스윈튼)를 보여줬다. <침범>의 1막도 마찬가지다. 엄마 은영은 딸 소현을 키우기가 버겁다. 그녀는 기본적인 사회성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딸이 무섭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을 타고난 악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의 서사를 보여준다.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아들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려 한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까 무서워하며 불안정해지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들. 영화는 모자의 갈등과 충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 케빈을 낳는 과정을 차분히 훑는다.
<침범>은 정반대다. 소현을 순수한 악인으로 묘사한다. 반려견을 죽이고, 친구들을 공격하고, 엄마도 칼로 베는 그녀의 악행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소현의 아빠가 가족을 떠날 만큼 그녀의 타고난 기질이 잔인하고 남다르다고 언급하고, 단순한 질투심 정도를 공격적인 행동의 이유로 등장시킬 뿐이다.
반면에 영은의 모성애는 강조된다. 영은은 딸에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골 농장에서 닭도 잡는다. 그녀의 헌신은 악인과 그의 서사를 애초에 배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엄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딸이 변할 기미가 없다 보니 배제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이는 1막의 끝을 장식하는 수영장 시퀀스에서 영은이 딸과 함께 자살하려 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장르적으로 거부한 악인의 서사
2막도 다르지 않다. 2막에서도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는 선택적으로 다뤄진다. 그녀가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한 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때에만 포착하면서 영은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때 핵심은 <화차>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다. 1막과 2막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 덕분에 관객은 2막에 등장한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를 알 수 없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서스펜스가 2막의 원동력이 된다.
소현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두 명, 김민과 박해영이다. 김민에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이 대목은 수영장에서의 자살 시도 후 영은은 입원하고, 소현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한편 갑작스럽게 등장해 김민과 현경 사이에 끼어든 박해영은 과거사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공백으로 남은 개인사는 20년의 공백과 이어지면서 해영을 소현으로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소현의 정체를 다룬 미스터리는 큰 효과가 없다. 해영의 반복된 악행을 김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현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현의 정체를 숨기면 김민이 현경 몰래 가족 행세를 하는지, 아니면 해영이 김민과 현경의 관계에 침범하는지가 헷갈린다. 그러나 소현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침범의 주체는 명확해지고, 미스터리도 단순 서프라이즈를 유발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지만 <침범>은 스릴러다운 공포감과 긴장감만큼은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해낸다. 타인의 사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를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 특히 직장과 거처를 마련해 주는 호의를 가족을 침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로 되갚는 해영, 곧 소현을 지켜보다 보면 왜 영은이 딸인데도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읽는 대신 덮다
에필로그에서도 <침범>의 관점은 유지된다. 물가에서 영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소현은 죄책감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토로한다. 엄마가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고, 도리어 수영장에서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소현은 영은의 환영을 죽인다. 이렇게 <침범>은 마지막까지 소현의 서사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그녀를 '순수악'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족과 사회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배제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를 편린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이루는 물과 불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물과 불의 차이에 주목하면 순수악처럼 그려지는 소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물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두려울 때 솔직해진다"라는 소현의 대사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본모습을 드러내면 늘 혼났다. 심지어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아빠는 가족을 떠났고, 엄마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다. 이처럼 솔직해져서는 안 되는 소현이 보기에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감춰야 할 때면 물과 반대되는 불을 선택한다. 가출 후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체를 들킬까 봐 보육원에 불을 지른다. 김민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자 또 한 번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에필로그도 의미가 달라진다. 엄마의 환영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순된 욕망과 강박이 잔혹함 대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의 대가
이처럼 극 중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부터 소현의 서사를 읽어내면 <침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범>은 소현을 '순수악'의 포지션에 가두면서 그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린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케빈에 대하여>에 비하면 소재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성장시킬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소현의 서사를 일부러 무시한 선택도 역효과를 낸다. 그녀의 악행을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악인과 관련된 이들의 서사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범>은 악인의 서사에 관심이 없지만, 악인의 피해자도 그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만 활용한다. 즉, 악인의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침범>의 회피적 태도가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소현의 할머니는 은영이 죽은 후에도 소현이를 돌보다가 수 차례에 칼에 찔리고 베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저 소현의 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년 간 할머니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지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 김민과 해영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간 일관된 소현의 악행을 과시할 뿐이다. 소현이 도망친 후 피해자인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침범>은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스릴러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색깔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고찰의 부작용이라고 불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슷한 장르와 구성을 취한 <화차>의 그림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탐구 대신 덮어두기를 선택한 회피형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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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버드맨>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차기작 발표를
했습니다.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탐 크루즈를 비롯해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산드라 휠러
<더 코너스>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존 굿맨,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의 제시 플레먼스가 캐스팅되었습니다.
8월 마지막주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사랑의 하츄핑> 80만 돌파
<사랑의 하츄핑>이 지난 27일 8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77만 관객을 기록한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을 넘어선 수치로, 올해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Top 5에 올랐습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들에게도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캐스팅 공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톰 크루즈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의 이번 프로젝트는 현재 제목이 없는 상태이며, 워너 브라더스와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가 이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밝혀진 기사에 따르면 톰 크루즈, 산드라 휠러, 제시 플레몬스, 존 굿맨, 리즈 아흐메드 등 캐스팅이 완료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김태리 주연 <정년이> 10월 12일 방영
김태리가 tvN 새 토일드라마 <정년이>로 복귀합니다. 이 드라마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하지만 낭만이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가 최고의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또한 라미란, 문소리, 신예은, 정은채가 출연하며, 모든 배역을 여배우들이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 “토이스토리 트릴로지지는 너무 완벽해서 4편은 절대 보지 않을 예정”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7일 빌 하머의 팟캐스트 ‘클럽 랜덤'에 출연해 <토이스토리 4>를 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프랜차이즈가 4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토이스토리’가 위대한 영화 3부작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는 ‘토이스토리’ 3부작의 열렬한 팬이다. N번째까지 완전하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3부작은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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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적 썸머시점에서 바라본 <500일의 썸머>
(위 글은 결말을 포함한 영화 전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대기업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그 문구가 뇌리에 박힌 탓인지 이후 몇 번에 연애에서 종종 그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나를 보며, 다음엔 상대방을 보며. 영화 <500일의 썸머>는 한때 톰이었고, 썸머였던 우리들의 연애를 그린 로맨스 아닌 로맨스영화이다.
기념일에 흔히 쓰이는 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재직 중인 톰과 썸머. 톰은 그곳에서 카드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고, 썸머는 사장의 비서직으로 일하던 중 톰은 남몰래 썸머를 마음에 품는다. 그렇게 홀로 호감을 가졌던 톰은 우연찮은 기회에 썸머와 가까워지게 되고, 회식에서 그녀와 묘한 기류를 풍긴 그는 이후 썸머의 키스로 그녀와 한층 더 가까워진다. 그렇게 썸머와 남몰래 비밀연애를 하는가 싶었던 톰. 그러나 썸머는 그에게 '나는 진지한 관계는 싫어'라며 선을 그어버리고, 데이트에 찐한 스킨십에 썸이라고 하기엔 다소 농도 짙은 두 사람의 관계가 톰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운명을 믿는 톰과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의 불확실한 연애는 썸머의 이별선언으로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 회사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과연 도통 답을 내려주지 않는 썸머는 톰에게 있어 나쁜 여자이기만 한 걸까.
어느 댓글에서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톰이 불쌍하다가도 영화를 두번째 볼 때에는 썸머가 이해된다고.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나도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던지라 도통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다. 200일에서 50일로, 300일에서 10일로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영화의 서사도 그러하였고, 톰에게 좀처럼 마음을 내주지 않는 썸머가 못내 야속하였다. 한마디로 이 영화를 호구 같은 한 남자가 어장관리녀에게 치이고 치이는, 여자가 쓰레기와도 다름없는 그저 그런 멜로 영화로 치부해부린 것이다. 영화의 첫인상이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기자가 뽑은 로맨스 영화 1위라는 것도 당최 이해되지 않았으며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현실 연애라는 것도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른을 바라볼 즈음에 다시 본 톰과 썸머는, 꽤나 현실적이었다. 어릴 땐 보이지 않았던 톰의 우유부단함과 썸머의 이중적인 속마음. 그리고 그녀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까지. 어쩌면 어려서라기보다도 몇 번의 연애가 종지부를 맺으며 깨닫게 되는 일종의 연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나는 톰의 사랑보다 썸머의 자기방어에 공감이 가는 사람이 되고만 것이다.
이 영화를 전지적 썸머의 시점으로 본다면 이러하다.
회식에서 만취한 톰의 친구는, 톰이 썸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썸머는 이를 다시 톰에게 물었지만, 톰의 대답은 어정쩡할 뿐이었고 그런 톰에게 '친구로서?'라고 되묻자 톰은 그렇다고 답해버렸다. 이후 썸머는 복사실에서 톰에게 먼저 키스를 했고,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연애는 그녀가 시작한 연애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이 레코드 가게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톰은 시종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의 음악 취향을 장난삼아 웃어넘기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서 '나도 잘 몰랐어'라며 말하는 썸머에게 '내가 들려줬잖아'라며 답한다. 둘이 함께 영화 '졸업'을 보았을 때, 썸머는 극장에서 나와 그 영화를 보고 여운이 가시지 않아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그런 그녀를 보며 톰은 '괜찮아.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라며 그녀를 달랜다. 썸머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톰은 시종 장난처럼 놀려댔고, 그녀가 영화를 보고 나와 울음이 멈추지 않았을 때 그는 맛있는 것을 먹자며 데려갈 것이 아닌 왜 그 영화가 그녀를 울게 만들었는지 물었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가 밥맛이 없던 것은 배고프지 않아서가 아닌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 남자와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인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그렇게 펑펑 운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결혼식장에서 여자 주인공을 데리고 도망쳐 나온 남자와 그런 그를 무작정 따라나온 여자. 그리고 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듯 웃음기가 사라진 채 멍하니 정면만을 응시하던 순간이었다. 마치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 같던 찬란한 시기가 끝나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권태로워지는 연애의 말로처럼.
함께 싱크대며 가구들을 살펴보며 신혼부부처럼 장난을 치던 두 사람. 다소 들떠 보이는 톰에게 썸머는 나는 진지한 관계는 원치 않아라며 그에게 먼저 선을 그었지만, 그는 '알았다'라며 그녀를 이해하듯 넘어간다. 돌아서면 남인 연인 관계에서 우리는 헤어질 일 없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구는 톰에게 그녀는 역설적으로 나는 진지해지고 싶지 않아라며 상대방에게 확신을 얻기 바랐지만, 톰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리 만무했다.
썸머와 술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와중, 별안간 웬 남자가 그녀에게 추파를 던졌고 옆에 있는 톰은 남자친구냐는 그 남자의 말에 그저 친구라며 그 상황을 나서지 못하고 방관할 뿐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톰이 그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그 이유는 남자가 썸머에게 치근덕거려서가 아닌 톰 자신을 '찌질이'로 표현한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썸머에게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말하지만, 썸머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라며 답한다.) 결국 크게 다투고 만 두 사람. 이후 썸머는 먼저 그의 집으로 찾아가 화해를 청하고 그 상황에서 톰은 '나는 너와 어떤 관계든 상관없어.'라며 마치 썸머를 배려하는 듯 말했지만, 이 시점에서만이라도 톰은 한발 더 나아가 그녀에게 직진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애인이랑 다름없어'라며 화를 내고 돌아간 남자의 집에 비를 뚫고 찾아간 여자가 들을 대답으로는 퍽 맘에 드는 대답은 아닌 것이다.
썸머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는 썸머와 다시 재회할 요량으로 회사까지 그만둬버린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지만 그녀는 '이제 정말 친구가 될 수 있겠지.'라며 답한다. 이후 직장동료 결혼식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다시 재회한 두 사람. 썸머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건축가가 꿈이었던 톰이 읽고 있던 '행복한 건축'을 핑계 삼아 말을 붙인다. 이후 결혼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두 사람. 썸머는 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톰은 운명처럼 썸머와 재회할 마음에 들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가 들고 간 선물은 그녀가 좋아한 뮤지션의 앨범도 아닌, 보고서 펑펑 울어버린 영화의 DVD 내지는 O.S.T 앨범도 아닌 자신이 읽고 있던(자신이 좋아한) '행복한 건축'이었다.
그날 썸머의 결혼반지를 발견한 톰은 시간이 흘러 회사를 그만둔 후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언덕에서 머리를 식히던 중, 자신을 기다리던 썸머와 재회한다. 톰은 썸머에게 '그날 결혼식장에서 왜 나랑 춤췄어?'라고 묻지만 썸머는 '그냥 그러고 싶었어.'라며 답한다. 그런 그녀에게 톰은 '그냥 춤이 추고 싶었구나.'라며 대답해버리지만, 썸머가 단순히 '춤'이 추고 싶어 이미 남이 돼버린 그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결혼식장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썸머가 톰에게 그리고 톰에게 미련이 남은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을까.
이처럼 전지적 썸머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되려 썸머를 욕하던 관객들은 절로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굳이 이처럼 세세하게 이럴 땐 이러했고 저럴 땐 저러했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톰이 건축가의 꿈을 잊지 않도록 응원해준 썸머와 그런 썸머를 마냥 괴짜로만 바라보는 톰의 시선은 이 연애가 왜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썸머의 파티에 초대되어 그녀의 친구들과 합석한 자리에서 친구는 톰에게 꿈을 물었고, 자신의 하는 일은 비록 카드에 문구를 쓰는 일이지만 사실 건축가가 꿈이라는 말 대신 마치 자신의 현재 직업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하는 듯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런 그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썸머. 그녀에게 있어 '건축가를 꿈꾸는 톰'은 톰의 어린 시절 로망이 아닌, 그녀가 그에게 쏟은 마음 중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썸머대신 톰을 나무라며 욕을 해야 옳은 것일까. 마지막 썸머의 말처럼 그저 톰과 썸머는 서로가 서로의 짝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랑에 있어 확신이 없는 썸머와 순수하게 운명을 믿는 톰. 사랑에 있어 상처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공허함과 허전함을, 사랑은 그저 아름답다고 믿는 톰이 알리는 만무했고 그런 톰에게 있어 쉽게 확신을 내주지 않는 썸머 역시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톰은 사랑이 아름답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있어서는 운명보다는 행동이 먼저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썸머는 사랑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해주기를 바라며 애매하게 톰을 밀쳐냈다. 어쩌면 연애도 싫다던 썸머가 자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 물어봐 주는 낯선 남자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톰과의 연애를 통해 그녀가 느낀 어떤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실 '난 사랑은 믿지 않아'라며 톰을 밀쳐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며 사랑이 있다고 믿고 만 것은 아닐까. 썸머는 톰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기보다, 톰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와 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썸머는 일찌감치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톰이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 내지는 그저 '여자친구' 혹은 '연애 상대'일뿐이라는 것을. 그가 술집에서 낯선 남자와 주먹다짐을 하던 날, 그와 영화를 보던 날, 그가 그녀가 초대한 파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그녀에게 선물로 준 그 순간, 그녀는 서서히 마음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치 썸머가 괴짜였기 때문에 둘의 연애가 끝이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듯 그녀가 서운해했을 모든 장면들을 영화의 엔딩으로 공을 들인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나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톰은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기로 했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이 오듯 톰이 용기 내어 데이트 신청을 건넨 여자의 이름이 'fall(가을)'인 것은 단순한 각본가의 재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500일의 썸머>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톰이었다가, 썸머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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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개봉일 : 2009.03.26 (한국 기준)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데이빗 크로스, 제넷 하인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한다. 그리고 1958년의 비 내리던 어느 날, 서독 노이슈타드에서 한 소년과 여성의 운명이 시작된다. 강렬한 첫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쉼 없이 서로를 탐하고, 갈망했다. 하지만 오래갈 순 없는 운명이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이며, 사회화의 부재로 나치 시절 실수를 저지른 한 여성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실망감에 흠뻑 젖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 찬 시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 사람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지워낼 수 없는 죄와 그에 대한 실망감. 허공에 붕 뜬 채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구겨진 백지 같은 한나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를 저 먼 곳으로 밀어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는 한나,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며 사랑을 갈망했던 소년 마이클. 두 사람은 서로의 대각선에 서서 상대의 마음을 훔쳐보기 위해 소리 없이 시선을 돌리지만 그 사이엔 거의 다 닫혀버린 문이, 실루엣만 간신히 비치는 커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말할 수 없던 격동적인 사랑은 시간과 무지 속에 묻혀버린다. 무조건 안타깝다고 이야기할 수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한나의 시간과 오래도록 그것을 앓아온 소년의 마음속에서 풍기는 복잡한 묵은 내에 마음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필 또 어두침침한 비 오는 날에 보는 바람에 더욱 침침한 기분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맑은 날 보단 어둡거나 비 오는 날에 보는 걸 추천한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시놉시스
10대 소년 마이클은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던 한나는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한나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던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어 8년 후 우연히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보게 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나와 또다시 20년의 이별을 맞아야만 한다. 그 후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내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랑은 너무나 큰 비밀을 감추고 있었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비가 내리던 날, 갑작스러운 구토감과 통증이 쫄딱 젖은 소년을 덮친다. 어쩔 줄 모르는 소년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소년과 달리 충분히 농익어 보이는 여성은 침착하게 소년을 도와준다. 소년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성에게 빠지게 되고, ‘감사의 표시’라는 핑계를 들고 여성의 집으로 향한다. 여성은 아주 여리고 어린 소년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속옷을 다리고 있다.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무심한 행동을 통해 소년의 마음속에서 끓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려 유도하고 있는 건지.. 소년은 쉽게 감을 잡지 못한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여성은 소년의 마음이 벅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소년의 뒤로 다가간다. 그렇게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사랑의 감정은 한도 없이 타오른다.
소년의 이름은 마이클, 여성의 이름은 한나. 두 사람은 몇 번 더 만남을 가지고 나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새롭게 인지하는 순간, 두 사람의 사이는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 정신적인 사랑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네가 읽어줘. 잘 하더라. 책 읽는 거.”
마이클과 한나는 하루의 끝에서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는다. 한나는 마이클의 품에 안겨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며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한나를 안고 있는 마이클은 첫사랑이란 감정과 잘하는 것 하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하나씩 알아간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흘낏 훔쳐보는 것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얽을 일만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대부분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마이클은 15살 소년, 한나는 30대 여성이다. 마이클은 한나가 사랑을 표현해 주길 바라고, 한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어느 날 한나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고, 마이클은 배신감과 슬픔을 마음에 품은 채 어른이 된다. 법대생이 된 마이클 앞에 첫사랑 그녀가 다시 나타난다. 저 멀리 울타리 너머에 앉아있는 피의자로.
한나는 20여 년 전 수감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법정에 앉게 된다. 수감소에서 수감자를 관리하고, 그들을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일을 했던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아우슈비츠로 가게 된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마이클은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죠?”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한나는 “그건 내 업무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한나는 다른 피의자들의 모략과 책임 전가로 인해 구석으로 몰린다. 하지만 변명할 증거가 딱히 없기도 했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장 큰 살인죄를 홀로 뒤집어쓰게 된다. 마이클은 여러 상황을 조합해 한나가 문맹인 걸 눈치챘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진실을 밝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첫사랑과 또다시 이별하게 된 마이클은 한나를 잊고 자신의 삶을 산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한나와 이별한 이후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이클은 아내와 이혼을 선택하게 되고, 하나뿐인 딸과도 어색한 사이를 유지한다. 그는 짐을 정리하던 중 한나에게 읽어줬던 오디세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녹음해 한나에게 보내준다.
숫자와 점이 찍힌 여러 개의 테이프가 담긴 박스가 한나에게 도착하고, 한나는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공부한다. 한나는 글씨를 익혀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마이클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어른이 된 마이클과 중장년층에 접어든 한나. 한나는 여전히 마이클을 Kid라고 부르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 한나의 가석방이 결정됐을 때쯤이었다. 교도소 내 식당에 앉아있는 한나의 앞에 마이클이 앉는다. 한나는 반가움에 손을 내밀지만 마이클은 한나의 손을 잡지 않는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무언가 배웠느냐고 묻는다. 한나는 글을 배웠다고 답한다.
마이클은 법정에 앉아있는 한나를 보고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수감자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보낸 감시원이라니. 거기에 부끄럼 하나 없이 당당하게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은 마이클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마이클의 순수한 첫사랑은 그쯤에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마이클은 과거를 회상하고 책을 읽어 보내며 한나가 자신의 죄를 깨닫길 바랐고, 한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한나는 뒤늦게 배우게 된 글들이 가득 적혀있는 책들을 밟고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는 글을 배우며 자신이 행한 행동의 그릇됨을 깨닫게 되었고, 교도소를 떠나 새로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가석방을 앞두고 있었지만 짐을 하나도 챙기지 않은 그녀의 방안엔 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근데 이젠 끝이겠지.” 마이클이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쯤, 한나도 마이클의 마음을 눈치챈 듯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과 한나는 더 이상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한다.
“감시원에 지원한 게 죄인가요?”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는 완전한 악인인 걸까? 그녀는 악인이자 필요 이상으로 순수했던, 사회에 휩쓸린 어른이었다. 마이클이 성인이 되어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 강단에 선 교수님이 “법이란 편협한 거야”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법과 법조인들은 한나를 악인으로 지목한다. 그녀가 감시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지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어떤 일에 지원했고,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다.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나는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에도 별다른 뜻과 생각 없이 전차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일만 하는, 겉모습만 커버린 어른이었다. 글씨도 깨우치지 못했으며 그릇됨의 정의조차 몰랐던 사람. 그게 바로 한나였다.
한나가 죽고 난 후, 마이클은 한나가 모아둔 돈과 틴케이스를 들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피해자는 한나의 틴케이스를 보며 수용소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나에게도 보물을 담아둔 틴케이스가 있었다고 말하던 그녀는 케이스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틴케이스는 한 소녀의 어린 시절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한나는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틴케이스에 소중한 것들을 모아 간직하고 있었다. 이 행동은 그녀가 어른으로서 필요 이상의 순수함을 갖고 있었음을, 그녀가 백치에 가까운 상태였음을 의미한다. 한나는 정말 그냥 시켜서 했다- 그뿐이었다.
마이클은 한나를 용서하는 것 같아 돈은 받을 수 없다는 피해자의 말에 돈을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한나가 글을 공부하고 후회하며 모아온 작은 돈이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된다면 누군가가 글을 깨우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한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뜻과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마이클은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도 괜찮겠냐며 피해자의 뜻을 묻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한나의 순수함과 소녀 시절의 시간을 담은 틴케이스는 피해자의 가족사진 옆에 놓인다.
나는 한나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녀 또한 백치와 무지함이 만든 비극의 피해자였음을 인정한다. 한나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 목숨을 끊고, 마이클의 첫사랑은 완전히 막을 내린다. 마이클은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딸에게 한나를 소개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소년의 삶의 한순간을 뒤흔들었던 첫사랑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과 함께 땅에 묻힌다. 이 영화를 보며 한숨을 몇 번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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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 스크린으로 떠나는 환상적인 유럽 여행! <트립 투 그리스>, <루카>
올 여름,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유럽 여행의 대리만족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두 편의 영화가 극장가를 찾아온다. 그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리만족 미식 여행기 <트립 투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펼쳐지는 잊지 못할 여름날의 모험 <루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리만족 미식 오디세이 <트립 투 그리스>
<트립 투 그리스> 메인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먼저 <트립 투 그리스>는 영국 인텔리전트 듀오 스티브와 롭이 그리스에서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대리만족 미식 오디세이 영화다. <트립 투 그리스>는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은 네 번째 '트립' 시리즈이자 10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완벽한 피날레를 보여준다. 터키 아소스부터 그리스 이타카까지 6일 간의 낭만적인 여행을 통해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한 유쾌한 대화를 하는 두 남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리스에 있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예비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기라,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델포이, 오스만 제국의 요새였던 필로스 해안 같은 그리스의 관광 명소와 미슐랭 레스토랑이 연이어 나와 올여름 휴가를 위한 완벽한 그리스 여행 지침서로써 톡톡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Synopsis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이번엔 그리스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따라가는 그리스 대리만족 미식 여행기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와 롭은 '옵저버'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을 떠난다.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그리스 아테네, 이타카까지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낭만적인 여행을 통해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한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환상적인 감성충만 힐링 어드벤쳐 <루카>
<루카> 메인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루카>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 마을에서 두 친구 루카와 알베르토가 바다 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아슬아슬한 모험과 함께 잊지 못할 최고의 여름을 보내는 감성충만 힐링 어드벤쳐다. 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이 집중된 <루카>는 이탈리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리비에라의 친퀘 테레를 영화 속에 고스란히 옮겨와 환상적인 비주얼을 선사한다. 또한 젤라또,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의 음식과 언어, 음악까지 담아내 특별한 힐링을 선사할 예정이다.
Synopsis
바다 밖은 위험해?! 아니, 궁금해!
이탈리아 라비에라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
바다 밖 세상이 궁금하지만, 두렵기도 한 호기심 많은 소년 '루카'
자칭 인간세상 전문가 '알베르토'와 함께 모험을 감행하지만,
물만 닿으면 바다 괴물로 변신하는 비밀 때문에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새로운 친구 '줄리아'와 함께 젤라또와 파스타를 실컷 먹고 스쿠터 여행을 꿈꾸는 여름은 그저 즐겁기만 한데…
과연 이들은 언제까지 비밀을 감출 수 있을까?
함께라서 행복한 여름,
우리들의 잊지 못할 모험이 시작된다!
탁 트인 자연의 전경과 이색적인 문화로 가득한 해외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
멀리 여행을 떠나긴 귀찮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탈피해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올여름은 <트립 투 그리스>, <루카> 두 편의 영화와 함께 스크린으로 대리만족 유럽 여행을 떠나보자.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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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전설적인 왕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킹아더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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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백> 스페셜 티저 예고편
소지섭, 모든 증거가 그를 향한다 ! 밀실 살인 사건 용의자 '소지섭’ 100% 승률 변호사 '김윤진' 무죄 입증을 위해 사건을 재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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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1994년 홍콩,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