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2024-10-02 23:59:22
다르다는 게 틀린 건 아니니까, <위국일기>
<위국일기> 시사회 리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동거
누적 판매 180만 부를 기록한 야마시타 작가의 동명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위국일기>. 베스트셀러 작가 '마키오'가 절연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언니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아사'를 본인 집으로 들이게 된다.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로부터 낙인이 찍힌 '아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보호자를 하기로 결정한다. '마키오'는 자신의 언니한테는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만큼 나름의 악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화살이 '아사'한테까지 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일기', '어긋난
나라의 일기' 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마키오'와 '아사'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 성격으로 함께 사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 혹은 '언니' 라는 인물을 향한 감정 자체가 다르기에, 그 갈등은 더 심해져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듯하며 끊길 듯 안 끊기는 이 관계를 지속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귀엽고 예쁜 여자 캐릭터의 축복이 끝이 없다..
만화 원작을 안 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나니 개인적으로
만화를 꼭 보고싶은 마음이다. 물론 러닝타임이 130분이
넘어 꽤 길었음에도 평온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어른이 되어도, 나이가 여전히 들어가도 '성장'이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아라가키 유이 배우가 맡은 '마키오' 배우의 감정선이 다소 갑작스럽게 보였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인물의 심경 변화 서술이 쪼금 평이하게 다가왔다. 그치만 원작의 전부를 다루지 않았으며 '아사'가 밴드에 들어가 노래하는 부분에서 결말이 맺어진다는 점이
더욱 좋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깔끔하게 끝났다는
느낌이다. 실제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니까, 원작에 비해 분위기가
밝다는 평이 꽤 보이던데 맞는듯하다.
사실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연출, 원작 비교 등등 다 괜찮고 보통이었지만!!! 어쩜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마다 다 귀엽고 예뻐서.. 원작 만화도
이런가?? 싶은 생각이었다. (이 부분 때문에 더더욱 만화를
찾아보고 싶음..) 만화찢고나온 여자 배우들이 계속 해서 나오는데 그래서 몰입이 더 잘 되었던 기분이었다.
별점 3.5 / 5 일본 작품의 훈훈한 분위기를 가볍게 느끼고 싶다면!! 보는 걸 추천한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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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공포증인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
누구나 어떤 것에 대한 공포는 조금씩 가지고 있다. 유령이나 괴물 같은 특정한 존재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이런 공포심은 어떤 사고나 특정 상황에서의 일을 경험하고 나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 공포라는 감정은 사람을 위축되게 해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작용으로 시작되는 것이지만 한 사람의 일상생활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특정 상황에 공포를 많이 느끼는 사람은 과거에 그저 마음 약한 사람 정도로 치부되었었는데 최근에는 무언가에 심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에 대해 의학적으로 접근하여 정신과 치료를 하기도 한다.
어떤 것에 대한 공포심 또는 피하고 싶은 것을 영어로는 포비아(phobia)라고 한다. 특정 상황이나 대상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포비아를 겪고 있다.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좁은 공간에서 공포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공포를 느끼는 상황이 있다면 최대한 그 상황을 만들지 않거나 피하게 된다. 조금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자신이 공포에 처하는 상황이 되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치료를 병행하긴 하겠지만 가급적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사전에 실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요인들을 차단하면서 공포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광장 공포증을 가진 애니의 이야기
영화 <우먼 인 윈도>는 특정 상황에 대한 포비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영화다. 광장 공포증이 있는 애나(에이미 아담스)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인물이다. 굳게 문을 잠그고 창문을 통해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로 부터 받는 심리 상담도 의사를 집으로 불러 진행한다. 최대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필요한 무언가가 있으면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전달 받는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그가 맞닥뜨리는 공포때문에 주저하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꽤 심각한 포비아를 앓고 있는 그는 건너편에 새로 이사 온 한 가족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인사차 건너온 그 가족의 아들인 이슨(프레드 헤킨저)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애나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데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와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딸이나 남편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애나의 표정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그가 만나는 사람은 지하에 세 들어 사는 데이비드(와이어트 러셀)와 건너편 이웃의 아이 이슨이 유일하다 그러다 이슨의 엄마인 제인(줄리안 무어)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제인의 남편 엘리스테어(게리 올드만)와 그 가족에게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후 창문을 통해 건너편 이웃집을 보고 있던 애나는 제인이 칼에 찔리는 모습을 보게 되고 본격적으로 그 일을 바로잡으려 애쓴다.
애나는 소아 정신과 의사다. 그 자신이 정신과 상담을 해주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다른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가진 포비아를 치료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만 우울한 기분에 늘 와인을 같이 마시고 있는 그는 약기운 때문에 가끔은 혼잣말을 하거나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마주하게된 건너편 이웃집의 살인사건은 그의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고 그를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애나가 만난 이슨의 엄마 제인이 칼에 찔리는 모습은 그 가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인과 이슨을 도와야 겠다는 마음을 일깨우고, 그것이 결국 애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즉, 애나가 강제적으로 광장 공포증에 맞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장르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하지만 <우먼 인 윈도>에서 긴장감을 만드는 건 그 사건의 범인이라기보다는 애나의 상태다. 애나는 약기운과 술에 적당히 취해있는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그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과연 진짜로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보는 관객들도 그의 행동과 판단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무조건 현관문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애나의 모습 자체가 이 영화에서 긴장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치다.
살인범으로 인한 것 보다는 애나의 태도와 심리상태로 만들어내는 스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 애나는 영화 전반부 내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관객들의 시각에서는 애나는 믿음을 주는 주인공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애나가 타인, 특히 아이 이슨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신뢰감을 형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초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애나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지만 중반의 특정 사건 이후에 그 믿음은 흔들린다. 또한 영화는 좋은 배우들을 이용해서 관객에게 혼선을 주는데, 건너편 이웃의 남편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은 과거에 그가 맡았던 악역 연기로 공포심을 높여주고, 줄리안 무어는 조금은 가볍지만 비밀을 가지고 있는 제인을 연기해 미스터리를 만들어낸다.
지난주 넷플릭스에 공개된 <우먼 인 윈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객들에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후반부의 갑작스러운 반전과 범인의 등장이 설득력이 없고 너무 급작스럽게 흘러간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범인을 파악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한 인물이 자신이 가진 포비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로 본다면 영화에 대한 판단은 바뀔 수 있다. 전반적인 영화의 전개를 볼 때 대부분의 긴장은 범인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애나의 심리 상태나 그가 공포를 가지고 있는 광장으로 나가야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부도 결국 애나가 광장에 나가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생활을 해나가게 되는지가 보인다.
<우먼 인 윈도>를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은 <오만과 편견>(2006)이나, <어톤먼트>(2008) 같은 잔잔한 영화를 감독하거나 <다키스트 아워>(2018) 같은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를 연출해왔던 감독이다. <한나>(2011)나 <팬>(2015) 같은 액션 영화 연출도 해본 적이 있으나 성공적인 도전은 아니었고, 스릴러 장르는 이번이 첫 도전이다. 일단 이번에 연출한 작품은 정통적인 스릴러 장르의 틀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주인공의 심리적인 부분에 보다 집중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원작은 A.J. 핀의 2018년 출간된 소설이다. 원작 소설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연출되었으며 일견 히치콕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 자체는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다른 어떤 배우보다 에이미 아담스가 중심이 된다. 그는 공포 상황을 최대한 만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우울한 인물을 혼란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나 그가 꼭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에이미 아담스의 얼굴에 비치는 망설임과 해야만 한다는 어떤 결의가 화면 속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에이미 아담스의 뛰어난 연기와 조금은 결이 다른 스릴러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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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어느새 완연한 봄날씨가 찾아왔는데요, 주말에는 비도 오고 기온도 떨어진다고 하니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바쁜 한 주의 끄트머리, 오늘도 씨네랩은 여러분의 주말을 책임질 재미있는 영화추천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애들은 가라! 오늘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일곱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색감천재로 불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개들의 섬>부터
여러 할리우드 영화 연출에 영향을 끼친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까지!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국내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개들의 섬(2018)
Isle of Dogs
ⓒ 네이버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톤, 코유 랜킨,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등
장르: 모험, 코미디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1분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지자, 세상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고, 자신이 사랑하던 개를 잃은 소년은 개를 찾아 홀로 섬으로 떠난다. 소년은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특별한 개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사라진 개를 찾아가는 그들 앞에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지는데… 개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개 남다른 개들의 색다른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걘 겨우 12살이니까.
우린 애들을 좋아하잖아.
ⓒ 네이버 영화
영화 <개들의 섬>은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인 웨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견류 독감'의 영향으로 전국의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했으며, 2018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 및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는데요, 영화는 사랑하는 개 '스파츠'를 찾아 나선 소년 '아타리'와 그를 돕는 다섯 마리의 개들을 주인공으로 했으며 독창적인 컬러감과 구도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이기에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답게 <개들의 섬>은 디테일에 있어서 엄청난 놀라움을 자아내는데요, 캐릭터들의 표정과 움직임, 배경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을 위해 3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러닝타임 101분을 위해 무려 144,000개의 스틸을 이어 붙였으며, 1초에 24 프레임을 구현하는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on ones' 기법과 달리 움직임이 다소 딱딱하고 불온전한 느낌의 'on twos' 기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초밥을 만드는 장면 하나에 15주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비주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 따뜻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적절히 섞여 들어간 스토리텔링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입니다. 인간과 개의 교감을 섬세하게 다뤄 애견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웨스 앤더슨을 좋아하신다면 그의 또 다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또한 추천드립니다.
퍼펙트 블루(1997)
Perfect Blue
ⓒ 네이버 영화
감독: 곤 사토시
출연: 이와오 준코, 마츠모토 리카, 치즈 신파치, 오쿠라 마사아키 등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81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 격인 미마. 롱런을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배우로의 전업을 권유받고 그룹을 탈퇴한다. 광적인 팬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핑크빛 공주 의상을 입는 자신에 익숙했던 그녀에겐 갑자기 강간신을 찍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겨운 일. 시골에서 올라온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아니면 아이돌 스타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혹은 누드사진을 찍는 그녀가 진짜일까?
1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째서 동일인이란 걸 안다고 생각해?
단지 기억의 연속성. 그것 만에 기대어
우리들은 일관된 자기 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블루>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곤 사토시 감독의 1997년작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곤 사토시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아이돌 그룹 '참'의 멤버였던 '미마'가 아이돌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동화(動畵)를 많이 쓸 수 없으니 움직임이 아닌 미술과 연출로 승부를 걸자고 생각했다고 하며, 결과적으로 작화와 연출 면에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 되어 애니메이션에서 연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감독은 '상상과 일상의 융합'이라는 테마를 반복적으로 사용, 다양한 명작을 많이 배출해 냈습니다.
최근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웨일>이 개봉을 했는데요, 애러노프스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퍼펙트 블루>를 종종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영화들 중 <레퀴엠 포 어 드림>, <블랙 스완> 등에서 <퍼펙트 블루>와 거의 유사하게 연출된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2001년에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퍼펙트 블루>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려다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답니다.
파프리카(2007)
Paprika
ⓒ 네이버 영화
감독: 곤 사토시
출연: 하야시바라 메구미, 후루야 토루, 야마데라 코이치 등
장르: 미스터리, SF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0분
29살의 정신과 치료사 치바 아츠코에게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다. 바로 18살의 대담무쌍한 꿈 탐정 파프리카이다.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속에 들어가 그들의 무의식에 동조함으로써 환자의 불안과 신경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한다. 어느 날, 치바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혁명적인 정신치료장치 DC-MINI의 프로토타입이 도난당하고 조수마저 실종된다. 장치를 찾아 나선 치바는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파프리카는 내 분신이잖아.
- 아츠코가 내 분신이라는 발상은 못 하나 봐?
ⓒ 네이버 영화
영화 <파프리카>는 위에서 소개해드린 <퍼펙트 블루>를 만들기도 했던 곤 사토시 감독의 유작입니다. 이 작품의 제작 이후 감독은 췌장암이 발병해 투병 생활을 하다 2010년 사망해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는데요, <파프리카> 역시 <퍼펙트 블루>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프리카>의 원작자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이기도 한 츠츠이 야스타카 본인이 해당 작품을 사토시가 영화화해 주길 원했으며, 원작 소설보다 더 확장된 상상력과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력이 더해져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중인격의 인물, 악몽에 시달리는 현대인, 꿈의 영역까지 도달한 과학, 현실과 꿈의 뒤섞임 등 많은 것을 다루고 있는데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와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믹스에 여느 영화 못지않은 탄탄한 구조와 감독 특유의 탁월한 작화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물리적 경계가 없는 매체인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영화로,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화면구성이 관객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앞서 <퍼펙트 블루>를 오마주한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언급드렸었데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파프리카>의 기초 설정 및 장면들의 유사성 또한 영화팬들 사이에 꾸준히 회자되는 이야기랍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
Pinocchio
ⓒ 네이버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토프 왈츠, 틸다 스윈튼, 케이트 블란쳇 등
장르: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오스카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의 손에서 고전 동화가 새롭게 재탄생했다. 생명을 얻은 목각 인형의 이야기가 놀라운 스톱모션 뮤지컬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강력한 사랑의 힘이 펼쳐진다.
삶이 귀하고 의미 있는 건
그 삶이 짧기 때문이야.
ⓒ 네이버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을 연출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으며, 스트리밍에 앞서 사전 공개되었던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호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원작 동화 피노키오의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인 '전쟁'과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러워 감독만의 새로운 버전의 피노키오가 탄생했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영화 곳곳에 심어 둔 사회적인 풍자와 은유적인 메시지, 원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생의 교훈과 소중함이 버무려져 마냥 아름답지만 않으면서도 따뜻한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는 본래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판타지적 세계관에 녹아들어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이는 감독입니다. 피노키오를 만들면서도 행복한 분위기보다는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원작 소설의 무서운 면에 더 이끌렸으며 자신만의 피노키오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만의 피노키오가 완성되어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치코와 리타(2010)
Chico & Rita
ⓒ 네이버 영화
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라 메니시스, 마리오 구에라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1948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리타와 만난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네온사인 화려한 기회의 도시 뉴욕, 이제 막 그곳에 발을 디딘 치코는 스타로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리타와 재회하게 되는데… 하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까지, 사랑과 꿈을 좇는 그들의 뜨거운 여정이 펼쳐진다.
나도 당신을 모르지만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려 온 것 같은 느낌이야.
ⓒ 네이버 영화
영화 <치코와 리타>는 2012년에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1992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페르난도 트루에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하비에르 마리스칼, 토노 에란도가 공동 연출했으며 쿠바의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음악을 맡은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소개되어 대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1950년대의 쿠바,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의 장소를 오가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작화를 맡은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를 디자인한 천재 아티스트로, 투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일러스트에서 스페인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영화 내 흘러 귀를 즐겁게 하며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벤 웹스터, 냇 킹 콜 같은 재즈 명장들이 영화 속 캐릭터로 등장해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의 연애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
돼지의 왕(2011)
The King of Pigs
ⓒ 네이버 영화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등
장르: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6분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목소리 오정세)’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목소리 양익준)’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이 먹고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한다.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목소리 김혜나)' 이야기를 종석에게 꺼낸다. 그리고 경민은 학창 시절의 교정으로 종석을 이끌어, 15년 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나뒹구는...
세상이다.
ⓒ 네이버 영화
영화 <돼지의 왕>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잔혹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부산행>, <정이> 등으로 국내를 넘어서 해외에서도 연출력을 인정받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소 거칠고 현실적인 삽화체 그림이 특징이며 불편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게끔 디자인한 그림체라고 합니다. 매우 잔혹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어린 학생들 간의 학교폭력과 독재권력에 대한 풍자, 사회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고,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파리 시네마 영화제, 몬트리올 판타지아 장르 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22년에는 해당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요, 김동욱, 김성규, 채정안 등이 출연하였으며 원작 이상의 잔혹한 수위와 묘사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잔인한 학교폭력과 이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른들은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강력한 규제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 학교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파닥파닥(2012)
Padak
ⓒ 네이버 영화
감독: 이대희
출연: 시영준, 김현지, 안영미, 현경수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78분
자유롭게 바닷속을 가르던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 어느 날, 그물에 잡혀 횟집 수족관에 들어가게 된다. 죽음이 예정된 그곳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 넙치'. 그는 자신만의 생존비법(?)으로 양어장 출신의 다른 물고기들의 신망을 받는 권력자다. 바다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파닥파닥'으로 인해 수족관의 평화는 깨지고, '올드 넙치'와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바다를 향한 고등어 '파닥파닥'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너희들은 이미 죽은 거야.
여기 들어온 이상 이미 죽은 거라고!
ⓒ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추천드릴 작품 역시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인데요, 개봉 전부터 각종 영화제로부터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영화 <파닥파닥>입니다. <파닥파닥>은 드라마와 뮤지컬이 결합된 일종의 뮤직드라마의 형식을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로, 횟집 수족관에 갇혀버린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이 자유를 갈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전문 성우들이 더빙을 한 것이 특징인데요, 극 중 뮤지컬 부문에서도 성우들이 모든 노래를 직접 불렀으며 한국 독립 영화의 애니메이션에서 배우가 아닌 성우들이 캐스팅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네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횟집 수족관은 마치 계급화와 서열화가 만연한 관료주의 인간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으로 표현되며, 기회주의자, 냉소주의자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이 물고기의 얼굴을 하고 등장합니다. 수족관의 보이지 않는 벽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현실에 안주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꿈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영화로,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한 연출과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12세 관람가로 책정되어 있으나 15세 이상 관람, 나아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개봉했어도 납득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수준이라 발랄한 콘셉트의 마케팅에 낚인 것을 후회한 가족 관람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총 일곱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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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는 게 틀린 건 아니니까, <위국일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동거
누적 판매 180만 부를 기록한 야마시타 작가의 동명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위국일기>. 베스트셀러 작가 '마키오'가 절연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언니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아사'를 본인 집으로 들이게 된다.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로부터 낙인이 찍힌 '아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보호자를 하기로 결정한다. '마키오'는 자신의 언니한테는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만큼 나름의 악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화살이 '아사'한테까지 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일기', '어긋난 나라의 일기' 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마키오'와 '아사'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 성격으로 함께 사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 혹은 '언니' 라는 인물을 향한 감정 자체가 다르기에, 그 갈등은 더 심해져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듯하며 끊길 듯 안 끊기는 이 관계를 지속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귀엽고 예쁜 여자 캐릭터의 축복이 끝이 없다..
만화 원작을 안 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나니 개인적으로 만화를 꼭 보고싶은 마음이다. 물론 러닝타임이 130분이 넘어 꽤 길었음에도 평온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어른이 되어도, 나이가 여전히 들어가도 '성장'이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아라가키 유이 배우가 맡은 '마키오' 배우의 감정선이 다소 갑작스럽게 보였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인물의 심경 변화 서술이 쪼금 평이하게 다가왔다. 그치만 원작의 전부를 다루지 않았으며 '아사'가 밴드에 들어가 노래하는 부분에서 결말이 맺어진다는 점이 더욱 좋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깔끔하게 끝났다는 느낌이다. 실제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니까, 원작에 비해 분위기가 밝다는 평이 꽤 보이던데 맞는듯하다.
사실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연출, 원작 비교 등등 다 괜찮고 보통이었지만!!! 어쩜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마다 다 귀엽고 예뻐서.. 원작 만화도 이런가?? 싶은 생각이었다. (이 부분 때문에 더더욱 만화를 찾아보고 싶음..) 만화찢고나온 여자 배우들이 계속 해서 나오는데 그래서 몰입이 더 잘 되었던 기분이었다.
별점 3.5 / 5 일본 작품의 훈훈한 분위기를 가볍게 느끼고 싶다면!! 보는 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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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알아서 함께,<강변의 무코리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2021
일본 / 드라마 / 121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각자 알아서 함께, <강변의 무코리타>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징어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잊고 오늘을 무사히 넘겨 힘차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단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오늘' 안에는 다음 날을 향한 기쁨이나 설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삶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생을 알차고 즐겁게 살겠다는 다짐과는 아주 먼, 무기력하면서도 음울한 그의 억지다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야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도망쳤으나, 지울 수 없어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 정신이 미쳐버리는, 오늘 현재에 정체된 인물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 덕분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순간 포착한 사진(이미지)들로 설명한다. 사진 안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이 겪을 사건과, 이미 겪었던 사건까지 어마어마한 수의 픽셀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보는 사람의 역량과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야마다로 예를 들자면,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아무 의욕 없이 마을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와 반가움에 건넨 사장의 악수를 받지 못하고 삐걱대며 주춤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두 장의 이미지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해 야마다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의 이전을 짐작하게 하며, 이후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한없이 무력한 두 눈과 한껏 말린 어깨는 막 오징어 공장에 떨어진 그의 현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공장 사장의 소개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 야마다에게 막무가내 이웃, 시마다가 찾아온다. 얇은 벽 탓에 목욕을 방금 마친 걸 알고 있다며 뻔뻔하게 자신도 욕실을 쓰게 해 달라는 시마다. 야마다는 난처함을 표하며 그를 내쫓는다. 찰나의 순간, 시마다는 야마다에게서 자신과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분명 나와 다르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구멍.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품고 있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
"안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답니다."
인간의 죽음. 태어난 순간 당연하게 예정되는 마지막 순간. 영화는 인물들의 살아있음으로 우리의 끝을 이야기한다. 주택 입주민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야마다에게 도착한 연 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한 명씩 밝혀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고, 미나미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묘석 방문 판매를 하지만 반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변의 노숙자들은 여름 태풍이 올 때마다 친구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을 잃은 상실과 나를 찾지 못한 슬픔,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에겐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이웃의 이야기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과 귀로 담아내며 타인의 아픔에 소리 없이 공감한다. 세상으로 나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구구단을 거꾸로 세며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려는 야마다에게, 입주민들만의 방식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한다.
야마다는 마음을 열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과 이별, 상실을 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구출한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답례로 타인에게 도움과 배려를 당당히 요구한다. 야마다의 욕실과 밥통과 선풍기까지 마음대로 쓰면서, 건네는 건 텃밭에서 난 채소뿐이다. 야마다는 그의 무례함에 대응하지 않는다. 시마다가 건넨 채소는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끝처럼 고독사로 죽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마다를 무례한 이웃이 아닌, 좋은 밥 친구로 인식한다. 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옆집 사람이 무코리타 주택에선 친근하고도 마음 따듯한 이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주택 주인 미나미도, 반년 만에 묘석을 팔아 집세를 내는 대신 소고기 전골을 사 먹는 미조구치도, 말없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님도, 골동품으로 쌓은 쓰레기 산 위에서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야마다를, 이웃을 살피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만든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마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아주 조금씩 일상에 녹여내며, 언제 다 녹여내고 뿌리 뽑을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려 시마다는 텃밭을 가꾸고,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계속 고객의 문을 두드린다. 야마다도 오징어를 손질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해체한다. 자기를 버렸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분노의 실체를 입 밖으로 털어놓는다. 이미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선 그 깊이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법이야."
야마다의 사정을 알고 있던 공장 사장의 첫마디, 영화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야마다를 위해 준비된 위로와 사람들, 끝내 미소를 되찾는 그의 정해진 미래까지 무난하고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이는 <강변의 무코리타>가 의도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현실 속 우릴 대변하는 건 인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는 죽음이 그 시작이라 봤다. 야마다와 이웃들을 통해 '인간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말속에 담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가는데, 단순히 죽음을 좋고 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강변의 무코리타>의 강점은 이를 위해 우리의 생을 가장 먼저 찬미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의 추는 늘 살아감에 위치해 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용기. 야마다는 몰랐던 것뿐이다. 갓 지은 밥을 코로 먼저 맛보고 목욕 뒤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시는 일이 사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버팀목이었고, 민달팽이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과거에 발목 잡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과정이었단 진실을 말이다. 야마다는 이웃들과 똑같이 ‘종료되지 않는 치유 과정’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전화를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듯, 깊은 위로로 받아들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강변의 무코리타>가 세운 확실한 전제가 좋다.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구멍을 없애려고 일부러 함께 모여 살고 계획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무작정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의도적이지 않은 관심과 크기를 재지 않는 진심, 실없이 터지는 무해한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다웠다.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함, 미니멀리스트 시마다의 거미줄 이야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미조구치의 상상극, 생명의 전화와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 연립주택 사장 미나미가 품은 남편의 뼛조각, 외계인의 연락을 받기 위해 쌓은 전화기 산, 강변 노숙자의 기타 연주… 다양한 형태와 질감 그 속에 똬리를 튼 생의 의미까지 <강변의 무코리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을 파고 또 파면서 이미지를 순간 포착해 생산하고, 비로소 단 한 장의 사진(영화)을 찍어 낸다.
그들의 가족사진에서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가, 떠난 이들의 유영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강변에 노을빛을 뿜어내는 무코리타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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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 법사가 전하는 내전 경고장!
알렉스 가랜드 감독을 이제 법사라 칭해야 하나?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듯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감독도 우리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으며, 큰 의미로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대통령의 폭정에 내전 상황에 놓인 미국의 근 미래.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손을 잡은 서부군은 연방군을 압박하고, 대통령은 백악관을 은신처 삼아 두문분출한다. 이런 상황에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선배 기자 새미(스티븐 매킨리 핸더슨)와 함께 대통령의 목이 아닌 인터뷰를 따러 간다. 여기에 리처럼 멋진 종군기자를 꿈꾸는 제시(케일리 스패니)도 동행한다.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까지 험난한 일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저마다 눈과 카메라로 이 상황을 기록한다.
|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내전, 분열의 시대
영화의 원제는 ‘시빌 워(Civil War)’다.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미 대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현재 미국은 양극화 현상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점점 미국은 균열이 생기고, 갈라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사건은 영화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으로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의회에 난입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이는 민주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미국의 내적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는 사건이었다.
알렉스 가랜드는 이런 미국의 양극화 상황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펼친다. 폭정을 일삼는 대통령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 링컨 시대 때의 남북 전쟁과 맞먹는 내전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상상 실험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충격을 전한다. 그가 감독과 각색을 맡았던 <서던 리치: 소멸의 땅>만 봐도 세상이 뒤집힌 후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감독의 재주는 SF가 아닌 전쟁을 소재로 또 한 번 펼쳐진다.| 뷰 파인더로 보이는 객관적 시각
영화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사진기자다. 이들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록한다. 사람이 총에 맞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을 내미는 게 아닌 연신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그리고 이 상황을 목도하며,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가감없 이 전달하는 일이다. 평가는 이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연방군, 서부군 어느 곳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이들은 최대한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고, 기록한다. 위험하지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건 그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판단은 당연히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감독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네 인물의 눈과 사진을 통해 내전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개한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적이 된 사람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주유소 직원, 전쟁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 총격전에 목숨을 잃고, 아군이진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기에 저격한다는 매복 군인, 중립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 미국인 아니면 무조건 사살하는 이들 등 평화로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참혹함과 시대의 불안감은 그 자체로 공포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이런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거라고 예견하는 듯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일들은 객관성을 유지함에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카메라라는 무기를 든 이들의 사명감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사진 기자 특히 종군 기자의 사명감과 직업 윤리 의식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종군 기자 리 밀러의 이름을 가져온 듯한 리 스미스는 관찰자로서 자세를 유지하며 다양한 전쟁에 참여했다. 제시 또한 리를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위험한 여정을 따르게 된 것. 그만큼 그녀는 종군기자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지만, 반대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간다. 텅 빈 눈빛으로 일관하는 무표정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마치 PTSD를 입은 군인처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내전이 심화되는 곳에 도착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도덕적 딜레마를 겪음에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녀와 기자들은 후반부 사진기를 무기 삼아 전장에 뛰어들고, 워싱턴 D.C에 도착한다. 후반부에는 그 다양한 내전 상황을 겪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군인들의 무기처럼 카메라를 무기로 삼는데, 특히 수동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제시는 총알을 장전하는 것처럼 필름을 감고, 총알을 발사하는 것처럼 셔터를 누른다. 총격을 피해 기록을 남기는 이들의 무모한 진격은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장면에서 잘 말해준다.| 전쟁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시빌 워: 불안의 시대>는 전쟁 블록버스터라고 말하긴 힘들다. 비견하자면 <람보> 시리즈보다는 <허트 로커>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적인 내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감독은 워싱턴 D.C 시가전부터 백악관 침투 작전에 이르기까지 멋진 전투 장면을 연출한다. 그동안 쟁여놓았던 건 액션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진짜 같은 전쟁 장면이 펼쳐진다. 빗발치는 총격이나 폭격 장면 등 비주얼만큼이나 음향에 공을 들인 모양새다.
후반부 전쟁 장면을 보기 위해 참아야 하는 시간이 긴 건 맞다. 앞에 앉은 고딩 관객이 연신 한숨을 쉬다가 후반부 전쟁 장면이 시작되면서 집중하는 뒤통수를 보여줬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이 알렉스 가렌드이고, 제작이 A24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군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도 아니기에 초중반 지루함을 느끼는 건 관객들에게 아쉬운 부분인 건 맞다.
그럼에도 영화의 매력은 배우에 기인한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기를 보여준다. 공허하다 못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직업인의 모습,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카메오 격이지만 씬스틸러로서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지?”라는 대사만으로 공포를 안기는 그의 못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부부는 닮아가나 보다.(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는 실제 부부다.)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내가 조국에 경고를 보내는 거라 생각했어요. 전쟁을 하지 마라” 극 중 리가 뱉는 이 대사는 영화가 자국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극단적인 분열과 민주주의 문제점이 더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우리나라도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봉착했다. 과연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목도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각자의 셔터를 눌러 이 상황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후대에 전할 것인가!사진 제공: 마인드 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잘 기억해두자. 분열 되면 이렇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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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터슨〉이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면
감독이 자신의 부모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는 여간해서는 거리두기가 어려운 영화다. 가사노동을 하는 작은새와 경비원으로 일하는 돼지씨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다. 두 딸을 낳고 키웠고, 함께 슈퍼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소박한 아파트에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이 묻어난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아온 서민 부부의 전형이다.
작은새는 수줍음 많은 다정한 여자고 돼지씨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호탕한 남자다. 여느 부부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다. 배가 볼록 나온 돼지씨가 소파에 누워 작은새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 장면, 발에 가시가 박한 작은새가 돼지씨에게 이를 빼달라고 하는 장면, 넌지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묵힌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 등등. 핵가족의 형태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은 이들 장면을 변주할 자신만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고 ‘민망한’ 장면도 있다. 사랑보다는 동지애로 살아가는 수많은 평범한 부부가 한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었음을 일깨우는 장면 말이다. 영화에는 작은새와 돼지씨가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소개된다. 간드러지는 표현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을 상상하게 된다. 더불어 각박한 현실을 함께 해치며 삶의 토대를 다져온 그들이 지금과는 영 다른(?) 감정을 주고받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이 여전히 그들에게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성찰케 한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어떻게든 변한다. 여기에 어떻게 깊이를 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온 작은새와 돼지씨의 관계는 여기에 작고 사랑스러운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예술이 있다. 우리는 보통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확장해주는 예술 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하나가 아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일상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수단으로 예술을 한다. 작은새가 자기 내면을 표현한 서예와 그림, 돼지씨가 경비 노동을 하며 쓴 시는 예술의 가치가 하나가 아님을 보인다.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며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미국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이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버스를 운전하며, 같은 동료의 불평을 듣는다. 퇴근 후에는 아내의 실험적인(맛없는) 요리를 먹고, 어제 간 길로 개를 산책시키며, 어제와 같은 술집에 가서 어제와 같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시간에 일어난다. 버스에 탄 승객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매일 달라진다. 동료의 불평 내용도 바뀐다. 아내는 매일 집을 새롭게 꾸미고, 그녀가 만든 머핀 위 하얀 설탕 물결도 매일같이 달라진다. 술집의 대화는 어제와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은 매일 다른 시를 쓴다. 패터슨에게 시는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을 평온하고 소박한 차이의 반복으로 인식하게끔 해주는 새로운 언어다.
아마도 패터슨이 한국에 산다면,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작은새, 돼지씨와 닮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예술을 통해 발견되지 않은 의미를 들춰내고 스스로를 빛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돼지씨와 작은새가 오래도록 예술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기를, 그리하여 그들을 닮은 모든 가족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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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매장가서 옷 깔끔한거 사주고 막 맞춰보면서 잘어울린다고 좋아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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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데려다 주는 길 집 앞에서
이제 깔끔해지고 말쑥해지고 멋있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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