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07 10:54:45
10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조커: 폴리 아 되>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그러나 다소 아쉬운 개봉 성적

10월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조커: 폴리 아 되>가 차지했지만,
개봉 수익은 4,000만 달러에 그치며 1억 9천만 달러의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사용자 평점 37%, 평론가 평점 33%를 받았고,
IMDb에서도 5.4/10의 점수를 기록하는 등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은 향후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어느새 7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 2>가 10월에도 1위를 지키며
여전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위인 <조커: 폴리 아 되>는 누적 관객 수 약 45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에서도 전작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묘> 김고은, <파친코> 노상현의 호연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박스오피스 3위에 등극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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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얼굴 앞에서, 2021 홍상수 감독작품
평온한 일요일의 오후 햇살. 한껏 아픈 다음 느끼는 안온함과 미열. 이제는 폭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질주해야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위안이 된다는 걸. 멈춰 서려고 할 때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문득 보일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이곳에도 국제 영화제가 있었다. 작년에는 개최하지 못했을 영화제가 올해는 열렸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32회 차나 되는 줄은 몰랐고,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가’ 초청되었다는 소식은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모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지만,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에 무척 유명했다. 필자는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서 감히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못하겠지만, 뭐랄까. ‘오! 수정’에서 보여준 흑백의 강렬함, 원색적인 소재를 놓고 양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절묘했다. 고 이은주 배우의 쇳소리 나는 신음소리를 스크린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그 후에 봤던 ‘극장전’의 엄지원 배우의 애드리브 ‘이제 그만 뚝!’, 그리고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 배우의 능청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들.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처연히 서 있던 남주인공의 그 눈빛이 선한 영화였다. 그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가까이에서 렌즈를 들이대고는, ‘저것 봐, 당신 인생이 이거랑 조금은 다른 거 같아? 한 번 봐’라는 자세로 관객의 눈과 귀를 희롱했던. 사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은채 배우는 연기력 논란이 늘 있어온 것도 같은데, 그 영화 속 해원이랑은 잘 어울렸다. 그 해에 나는 여기에 건너왔다. 그렇게 자주 위안삼아 찾아가던 종로 시네 코아와, 흥국 생명 건물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와, 아트선재 센터를 뒤로 하고. 그곳들이 밀집한 곳에 있던 직장에 다닌 게 신의 한 수였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다행히 이 곳에도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코로나로 어려웠겠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위의 영화관들이 아쉽지 않게, 이곳에서도 자주 한국 영화랑 외국 영화들을 본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언제부터 영화들에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2021년에 발표된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는, 그전의 감독에게서 보지 못했던 시각들을 볼 수 있다. 관객도 감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상옥’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상옥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상옥은 과거 한 때 연기를 한 적 있는 영화배우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주류 소매점을 운영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이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있는 동생 집에 묶으며 한국을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독백으로 시작된다. 초반에 그녀의 대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독백은 기도가 된다. 오늘 하루도 평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잠든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녀가 깨서 함께 간 브런치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냥 상황만 있고 대본은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셈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자매의 감정이 격해지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감독은 아주 명확히 카메라 렌즈를 줌인한다. 살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선을 읽으라는 듯, 아주 친절한 교과서처럼, 알려준다.
바다 대신 산과, 고층 아파트와, 공원이 등장한다. 예전 같지 않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이 현실에 밝아졌고, 집값 시세도 너무 잘 안다. 상옥은 조카도 만나고, 그녀가 오래전에 살던 집에도 가 본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다가 만난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멈춰있는 그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친절하고, 감독과의 대화는 길고 재미있다. 한껏 취기가 올라 영화 이야기를 하든 그들. 뭐 이제는 자타공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권해효 배우는 상옥에게, 그녀의 과거 영화들에서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참 망설인 상옥은 자신에겐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다. 감독은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다음 날 자신이 상옥을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약속한다. 상옥이 그제야 감독에게 묻는다.
‘결혼했어요?’
‘아들이 벌써 다 컸죠’
몇 병의 연태고량주와, 담배와, 기타 연주가 오가고 둘은 빗속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의 상옥은 감독의 음성 문자 메시지에 눈이 떠진다. 거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백하는 듯한, 감독의 대사가 있다. 이전에는 미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하룻밤을 계획했던 수치스러움과 후회를, 감독은 권해효 배우를 통해 말한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들 속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진실’ 하나를 가늘고 긴 냉면처럼 뽑아내던 그의 날카로움은, 등이 가냘픈 여배우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숙취 뒤의 사과문으로 뭉뚝하고 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쎄, 우리네 삶 속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술, 마시고 하는 의미 없는 듯한 대화들. 하지만 그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면 그런 ‘낭비’되는 시간 또한 곧 행복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상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의 평안함에 감사하며, 모두의 얼굴 앞에 놓인,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뒤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상옥처럼 내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시네코아에서 극장전을 보던 대학생인 나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던 하이퍼텍 나다에서의 나와,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마주 보고 있는 지금의 나.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진실, 혹은 수치심,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고, 어쩌면 아주 오래 그 안에서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지 않을 때는 또 영화 속 상옥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은 아닐 홍상수 감독도,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대사들로 인해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제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분과 참 많이 웃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안에서 살자고 내게 속삭이던 영화였다.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서 비치는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짧고도 길고, 처연하기도, 강렬하기도 한 소설 (short story. 단편영화. 영화 속 감독과 상옥이 이야기를 나누던 인사동의 카페 이름이 ‘소설’이다) 같기도 하다 싶었다. 나중에 40년쯤 더 지나서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축약하면 단편 영화나 소설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찬란한 개개인의 역사가 다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선물 (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일이 버거워 자주 몸이 안 좋았는데,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코로나인줄 알고 덜컥 겁이 났었다. 하지만 고열이 미열로 바뀔 즈음 또 영화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속 상옥을 깨우던 햇살과 깨달음처럼, 오늘의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참 다행이다.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가 초청되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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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으로 가득한 비현실적인 세상
-비전문가의 개인적인 감상 및 해석
-영화 <무드 인디고> 스포일러 포함 / 기억에 의지해 쓰느라 실제 영화와 다른 부분이 존재할 가능성 있음.치즈 (CHEEZE) - 무드 인디고 (Mood Indigo)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무드 인디고는 색감과 독특한 연출로 감정을 전달한다. 알록달록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가득하던 나날이 흑백으로 변해버린다거나. 뭐 그런. 내 기준에서 이 영화의 연출은 상당히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무드 인디고의 세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존재한다. 스케이트를 타다 간단한 이벤트에서 우승하기 위해 몸이 풍선인형처럼 길어져도, 말하는 새가 이벤트를 담당해도, 음악을 틀어놓으니 방이 둥글게 변해도, 어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다리가 고무마냥 길어져 마음대로 움직여도, 다리 달린 자명종이 사방을 기어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보는 이들의 비현실이 곧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 세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우리의 자명종이 움직이지 않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팔과 다리가 마구잡이로 길어지지 않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라서다.
무드 인디고는 낭만을 이야기한다. 인연의 시작과 슬픈 끝까지 그토록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오히려 끝맛이 씁쓸하다.
폐에 핀 수련. 수련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꽃들. 몸에 대고 있는 것만으로 시들어버리는. 수련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 콜랭이 불량품을 만들어낸 일자리까지. 영화의 후반부에는 온갖 비현실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나는 콜랭의 옆에 서 있었다. 어떤 영화는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보는 이를 내쫓는다. 개인적으로 무드 인디고는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내가 스스로 콜랭의 곁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영화였다. 콜랭과 클로에, 시크 그리고 나. 나는 인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나의 내면을 살펴본다. 어떤 영화는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클로에와의 첫만남에서 콜랭은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공감성 수치를 느끼다 못해 영화를 중간중간 멈추면서 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에게 이끌렸고, 다음날 데이트를 했다.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낭만적인 데이트를. 공사 현장에서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둘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현실과 가장 동떨어져있으면서 인물들의 행복을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들이 구름 모양의 무언가를 탄다는 걸 알았기에, 이 장면을 봤을 때는 가장 먼저 반가웠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두 번째.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일까 고민하는 게 마지막. 나는 영화의 끝까지 무드 인디고의 독특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상미에 시선이 빼앗겨 홀린 것처럼 영화를 보다가도 의미를 찾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도 많다.
실제로 초중반부는 꽤 지루하다. 영화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면서 봤고, 또 이야기가 이렇게 됐는데 이 정도가 남았다고? 라는 생각도 종종 했다. 그러나 색을 잃은 후반부는 나름 몰입하면서 봤다. 내가 콜랭이 된 것처럼 찌푸려진 미간이 펴질 생각을 않더라.
시크와 알리즈에 대해서도 몇 마디 얹자면 보는 내내 시크는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우상을 좇느라 현실을 뒤로 하고, 그 현실에 속한 알리즈는 상처 받고. 그럼에도 둘은 사랑을 했다. 시크의 우선순위가 우상이었을 뿐. 알리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뭔지 돈이 생기면 있는 족족 그 우상한테 부어버리는데 어떻게 계속 만났지?
시크가 죽는 장면... 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돌려봤다. 총을 맞은 시크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꽃과 비슷한 무언가가 되는 연출이 좋았다. 알리즈는 자신을 위해 파르트르를 죽이고, 시크는 파르트르에 의해 죽는다. 딱 봤을 때는 죽은 줄 알았던 파르트르가 튀어나와 의문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자아의 실존성'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알리즈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시크의 죽음 이후 알리즈는 어떻게 살았을까. 감옥에 들어갔을까? 아니면 시크의 뒤를 따라갔을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 알리즈는 무엇을 하고 살까.
영화를 다 보고 일상을 살아가던 중 문득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책에 밑줄을 그은 문장이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문장. 무드 인디고와 결이 비슷한, 사랑에 대한 프레드릭 베크만의 정의. 솔직히 이 책과 맞지 않아 읽다 관뒀는데, 다시금 문장을 곱씹으니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도전해봐야겠다.
생각이 나는 대로 막 쓰다보니 가독성도 떨어지고 내용도 별로인 리뷰가 되어버렸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리뷰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다음에 볼 영화를 찾아야겠다.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싶은데 보다가 울 거 같아서 고민 중.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베크만 中-
에디터 : 고삼_한국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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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누군가의 일기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성적표의 김민영(2022)
김 :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민 : 민영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영 :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를 보기 이전 영화에 대해 했던 생각과는 다른 영화였지만 정말 좋았다.
스펙터클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였고, 정말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을 꺼내어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 매일 매순간을 함께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더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아니 성립될 수 없는 친구들의 관계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스무살에 이르러 더 큰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도, 이전의 세상의 머무르는 듯 해보이지만 나름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도
불과 일 년 사이에 우리가 이렇게 안 맞았었나, 어떻게 친구로 지냈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물들이 딱 스무살의 나 같았다.
나 또한 학창시절 모든 것이 비슷하고 마음이 꼭 맞아떨어진다 느꼈던 친구와 급격히 사이가 틀어진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느꼈지만
아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별 이야기 아니지만 당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세상을 뒤흔드는 아주 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는 영화라 느껴졌다.
대사도 좋았고 삼행시 센스도 정말 좋았다!
특히 오프닝의 김민영 삼행시와 수산나의 PAUL 사행시.
개인적으로 PAUL 사행시를 다시 한 번 읽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각본집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제목은 '성적표의 김민영'이라 초반에는 민영이의 세계가 펼쳐지려나 짐작했는데
영화는 중반까지 죽 정희에게 초점을 맞추고 정희의 삶을 따라가는데
초반에 몇 없는 민영이의 대사만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민영' 삼행시와 대학에서의 인터뷰 답변만으로 민영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사들이 참 좋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민영이가 미웠다 좋았다 했다.
스무살이 되어 다른 환경에 놓인 정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미웠고
대학생활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곳과 동떨어진 대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스무살에 접어든 친구들의 관계'까지라고만 생각했던 때에는 거기까지인 인물이라 생각했다.
정희가 민영이의 일기장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성적표의 김민영'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정희의 삶과 감정을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정희의 감정을 가져가던 나는 사실 정희처럼 민영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거지
고등학생 시절의 민영이는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내가 봐도 헛된 꿈을 꾸기만 하던 정희에게 현실을 살라던 민영이는
사실 자기도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그러면서 정희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라던 민영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실 정희에게 한 말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민영이의 일기장이 넘어간 이후로 민영이와 정희가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상반되어 보이던 인물들은 사실 서로 닮아있었고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낀 것 같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민영이 자취방에 있던 액자를 보고 정희가 한 말이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유칼립투스 향이 날 것만 같다던 그림 속 주인공은 당연히 정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엔딩에서 숲에 앉아 뒤를 돌아본 건 민영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민영이에 대한 이야기도, 정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과 기억들이 합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가장 개인적인 일기를 읽는다는 것 어떤 뜻일까.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부분적으로나마 더 깊이 그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좋았던 왓챠피디아 평 하나 덧붙이자면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문보영 <일기시대> 중
- 김차원 (왓챠피디아 '성적표의 김민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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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따뜻한 편지
돼지의 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미나토(쿠로카와 소야)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모자는 타오르는 불길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근데.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사람일까?”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해?” 되묻는 사오리. 아들은 학교 담임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이 그랬다고 답한다. 아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의아한 사오리. 이후부터 아들에게 이상한 우연이 겹친다.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자른다.”왜 머리를 잘라?”라는 질문에 어물쩡 대답하는 미나토. 이뿐만이 아니다. 텀블러에서 흙이 나오거나 귀에 상처가 났던 일도 있다. 불안한 사오리. 미나토가 다니던 학교에 방문한다. 사오리에게 대응하는 학교 교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영혼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장과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를 화를 돋우기만 했다. “호리 선생님에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있나요?”라고 묻는 사오리. 분명 아들 미나토의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사건의 정확한 경과를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미스터리다.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힘은 ‘괴물이 누구야?’다. 이 괴물의 근원지를 좇는 각본의 힘이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엇갈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래 사람들끼리 갈등이 있었다고 하면(내지는 여러 사람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을 만든 ‘괴물’을 찾는다고 하면) 양 쪽의 입장을 듣는 게 당연지사다. 이 영화는 이 형식의 플롯을 차용한다. ‘괴물 찾기’에 최적화된 이야기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1차원적으로 특정 누군가의 입장에서 원인-결과의 해결방식만 나열한다면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기도 불가능하다. <괴물>은 이를 탈피하는 각본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A의 관점을 쭉 전개하다 새로운 의문점을 만든다. 그걸 B의 관점에서 해결해 준다. 그런데 B의 입장을 보여줄 때 A의 시점에서 보여준 상황을 바탕으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든다. 그걸 C 서사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플롯은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 이렇게 쌓아 올린 미스터리가 엔딩에서 어떻게 치환되는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엔딩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선생님
영화의 두 번째 장점은 윤리의식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 수많은 소재들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이것은 이 영화가 악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세상이 만든 괴물을 설명하는데 악인은 필수적이다. '이 인간이 나쁘다'로 영화의 많은 부분을 편의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 ‘이 <괴물>에는 악인이 없다’라고 하실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양면적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악인은 분명히 있다고 보는 쪽이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이 악인들은 인물의 형태(?)로 등장하긴 하지만 특정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왜 이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가’를 주인공의 시점에서 설명한다. 이 주인공(들)이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길 바란다.
아역 명가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가진 장점 중 하나를 그대로 승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 세계에서 아역의 연기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톡톡히 수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나토가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또 극후반부에 어떤 인물과 독대하는 장면이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진한 울림은 많은 분들의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가 요리의 명장면으로 뽑은 것은 어떤 일을 겪고 씩씩하게 일어서는 장면이다. 이 사소한 장면 하나가 요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미묘한 표정 차이를 이끌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어른 캐릭터 중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도 아주 뛰어났다. 글쓴이는 그녀가 등장한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미나토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신이다. 여기서 미나토를 격려하는 장면은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다 축약한 듯한 애처로움이 있다. 그리고 이 인물은 서슬 퍼런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 역을 맡은 타나카 유코와 대면하는 모든 순간이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영화의 질문을 다채롭게 만드는 좋은 연기였다. 또 호리 선생님을 맡은 나가야마 에이타는 감정적으로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이다. 왜 감정적으로 진폭이 클까? 역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어쩔 땐 웃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고, 다른 때는 굉장히 불쾌해하지만 표정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이 양면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의 역량이 극에 이입하게 만든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점에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 영화가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냥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와중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고 가는 교묘한 연출방식을 감독이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인물들의 밝고 어두운 내면을 모두 상징한다는 점에서 극에 윤활유가 되는 요소다. 특히 예고편에도 삽입된 ‘Monster 2’라는 트랙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엔딩에 삽입되는 음악은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 곡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처연한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글쓴이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봤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건 쉬울 수도 있다. 영화가 시점을 확 넘기는 것도, 인물들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도 관객 입장에서 바라보면 판단이 용이하다. 하지만 이 판단이 쉽다는 것에 근거해서 답해보자. 우리 역시 이 영화의 인물들과 별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모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고, 그래서 세상이 함부로 들 대한다. 근데 또 우리는 모났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대한다. <괴물>은 이 아이러니에 다룬 영화다. 왜 내가 세상을 함부로 대하는지. 그 대하는 이유가 내가 괴물이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 우리가 정말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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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난 이후 오랜 시간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
오랜만에 퀴어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영화 '미이라'와 '조지 오브 정글'에서 백치미를 선보였던 '브렌드 프레이저'가 기존의 연기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깊은 캐릭터로 출연한다.
현재 극장가에서 개봉 중인 영화로 박스 오피스 20위, 관람객 평점 8.29, 누적 관객수 5.3만 명이다. 사무엘 D. 헌터의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 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시놉시스는 온라인 작문 교수 찰리는 8년 전 게이 연인과 사랑에 빠지며 가정을 버렸고, 그의 남자 연인은 그 후에 생을달리했고, 찰리는 심리적인 이유로 272kg이라는 거구가 된다.
영화는 비만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와 동성애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 가지 코드 모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들이며, 특히나 200 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체중은 온라인 상에서도 자신의얼굴을 드러내기 곤란할 정도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역겨운지' 묻는 그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가정 안에서 여성 아내와의 관계 안에서 낳은 딸은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다. 이성과의 결혼 후 동성에게 끌리는 배우자를 보며 버려진 혹은 남겨진 아내의 심정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 그리고 그러한그들을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듬고 안아주는 이의 심정.
남우주연상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받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극 중 비중있는 자들의 삶 역시 고통과 우울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니 브렌든 프레이저는 그들을 대표해 받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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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 (2019)
* 이 리뷰는 영화 <레 미제라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레 미제라블> 정보
감독: 래지 리
출연: 다니엥 보나드, 알렉시스 마넨티, 제브릴 종가 등
장르: 범죄, 드라마
러닝타임: 104분
수상: 201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개봉일: 2021.04.15 (한국 개봉일)
<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영화 제목에 그대로 반영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2019년에 개봉한 본 작품은 직접적으로 소설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해당 소설과 일정 부분 연결고리를 갖는다. 우선 극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몽페르메유는 200년 전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쓰기 전 영감을 받은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작가의 소설 속 등장한 혁명의 모습처럼 분노와 폭력이 들끓고 긴장과 불안이 도사린다. 맥락은 다르지만, '장발장'을 대입시킬 수 있는 소년 캐릭터도 한 명 등장한다. 이 소년 역시 아주 사소한 것을 훔쳤다는 이유로 경찰의 과잉 대응과 폭력적 진압에 희생되며 훗날 혁명의 주동자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 속 주인공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그렇다면, 200년 전 소설 속 프랑스의 모습은 2018년의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일까.
뿌리깊은 불신과 폭력, 터질 수밖에 없던 폭탄
영화는 프랑스가 최종 우승을 차지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거리 응원을 하며 프랑스인들이 하나로 화합된 평화의 장면들을 그린다. 하지만, 곧바로 장면 전환이 이어지며 그 화합의 순간은 잠깐이었을 뿐 프랑스의 허상을 비춰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월드컵 응원 시퀀스가 끝나고, 주인공 '스테판 루이즈'가 등장해 몽페르메유의 경찰서로 전입한다. 그는 '크리스'와 '그와다'가 이끄는 강력반에 합류하게 되는데, 흑인 하층민들을 상대로 강압 수사를 펼치고 함부로 대하는 두 명의 베테랑 강력반 형사들과는 성향이 딴판인 경찰이다. 세 사람은 함께 몽페르메유 구석구석을 순찰하는데, 서커스단을 이끄는 집시와 시장을 주름쥐고 있는 흑인들 간의 싸움을 목격한다. 누군가가 서커스단의 아기 사자를 훔쳐간 것. 아기사자를 훔쳐간 범인은 '이사'라는 동네 사고뭉치 소년이었는데, 아이를 쫓는 과정의 혼란 속에서 이성을 잃은 그와다가 이사의 얼굴에 고무탄을 쏴버린다. 이 상황이 '뷔즈'라는 소년의 드론에 찍히면서 갈등은 극화되고, 이 사건은 결국 관계의 깊은 골을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되어버린다.
불친절한 전개, 외부인의 시점에서 방관
<레 미제라블>은 보통의 영화에 비해 극의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인물 개개인의 서사와 캐릭터 간의 관계를 조명하지 않고 관객이 철저하게 제 3자의 입장에서 극을 바라보게끔 한다. 여러 개의 파편처럼 나뉘어져 있는 스토리의 구조는 사건이 심화되고, 갈등이 극에 달할수록 빌드업이 되면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던 분쟁의 촉발을 이해시킨다. 전개상 주인공 위치에 놓인 '스테판 루이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스테판을 일반적인 영화 속 주인공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어디까지나 극중 배경에 갓 입성한 외부인이다. 외부인으로서 이 지역의 잔재된 뿌리깊은 갈등의 구조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는 동일한 입장에 놓여 있는 관객을 대변한다.
이러한 관점은 극에서 인물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뷔즈'의 등장 이유를 설명해준다. 뷔즈가 등장하는 초반부의 장면들은 영화의 내용과 굉장히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드론을 사용하여 몽페르메유의 곳곳을 풀샷으로 조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뷔즈는 스테판과 달리 내부인이지만, 역할의 기능으로서는 외부인의 포지션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뷔즈와 스테판의 기능이 아예 동일하지는 않다. 뷔즈는 폭동의 주동자가 되는 '이사'를 비롯한 아이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함께 무자비한 공권력에 맞서 싸우거나 저항 의식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편에 서서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뷔즈는 폭력과 분노가 오가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 상황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지켜만 보는 방관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관객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방관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터져버린 폭력의 씨앗, 누구의 잘못인가
<레 미제라블>을 보며 작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떠올랐다. 이 역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것으로 인해 혁명의 움직임이 발생했던 것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10대 흑인 아이들이 분노한 것은 고작 새끼사자를 훔쳤다는 이유로 얼굴에 고무탄을 맞고, 폭력적인 행위와 겁박에 노출되었던 '이사'의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시켰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더 이상 이러한 사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리고 훗날 자신들이 이사처럼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인 것이다. 크리스를 비롯한 경찰들이 극중 시종일관 취하는 태도들을 보면, 지역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오랫동안 쌓여왔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잉 진압한 경찰에게 무조건적인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이 또한 무리가 있는 관점이다. 크리스의 비인간적인 태도와 그와다의 과잉 진압은 분명 잘못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무리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흑인 아이들이 경찰에게 먼저 폭력을 행했기 때문에 경찰로서 진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관객 개인의 입장에서도 크리스의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경찰로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하다가 벌어진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 명의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아이들의 폭동에 무자비하게 공격당한다. 이사의 사건이 안타까운 건 맞지만, 경찰을 두고 집단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누구의 편을 들기도 어렵다. 흑인 사회와 공권력의 관계가 악화된 원인이 무엇이며, 이 모든 서스펜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원인은 알지 못하지만, 결과는 참혹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극중 프랑스 사회 계층의 구조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극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화약탄을 든 이사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스테판이 대치한다. 그리고, 집 문을 열어 경찰들을 구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방관하고 있는 뷔즈의 시선도 함께 그려진다. 대치 상황의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세 사람 중 누군가는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 어떠한 경우의 수에도 긍정적인 결말은 없다는 것. 영화는 그렇게 붕괴된 사회의 시스템을 생생하게 전달만 해준 채 갈 곳 잃은 관객의 사고에 찝찝한 불편함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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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비전이 차려놓은 마블의 탄탄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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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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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마블의 미래?
00:46 화이트 비전
02:00 모니카 람보
03:11 캡틴마블2 & 시크릿 인베이젼
04:33 숙제타임!
06:03 닥터 스트레인지 & 스칼렛 위치
09:41 여러분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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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적인 전개와 충격적인 결말 / 스릴러에서 호러로 / 매혹과 고어의 경계 / 서브스턴스 / 데미 무어의 연기력 / 마가렛 퀄리의 매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서브스턴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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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킬러의 카운슬러> 예고편
루 판트는 히스테리와 치매가 있는 노모를 모시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우연히 그녀의 롤 모델이자 라이프 코치인 당당한 여성 발 스톤을 만나 모든게 바뀌게 된다.
사실 살인 중독자인 발 스톤은 루를 자기의 후계자로 여기며 자기 개발을 위한 '살인자의 여행'에 동참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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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메인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