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07 10:54:45
10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조커: 폴리 아 되>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그러나 다소 아쉬운 개봉 성적

10월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조커: 폴리 아 되>가 차지했지만,
개봉 수익은 4,000만 달러에 그치며 1억 9천만 달러의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사용자 평점 37%, 평론가 평점 33%를 받았고,
IMDb에서도 5.4/10의 점수를 기록하는 등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은 향후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어느새 7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 2>가 10월에도 1위를 지키며
여전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위인 <조커: 폴리 아 되>는 누적 관객 수 약 45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에서도 전작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묘> 김고은, <파친코> 노상현의 호연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박스오피스 3위에 등극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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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 없이는 못 사는 여성이 수학에게 버림받는다면
7★/10★
수학 없이는 못 사는 여성이 하루아침에 수학에게 버림받았다. 그녀는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수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생인 마거리트는 3년간 연구해온 주제를 발표할 세미나를 앞두고 있다. 1742년 제기된 후 여전히 증명 불가능한 명제로 남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만한 연구다. 수학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는 마거리트는 이 세미나를 계기로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수학의 신비에 한 걸음 다가갈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자료를 검토하고 또 검토한다.
드디어 운명의 날. 마거리트는 훌륭히 발표를 마친다. 청중들도 매우 흥미롭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때 한 남자가 질문을 던진다. 그 하나의 질문에 모든 게 무너진다. 마거리트가 미처 검토하지 못한 중대한 오류로, 지난 3년간의 모든 연구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질문이었다. 하필 질문자가 루카라는 점도 문제다. 루카는 마거리트와 연구 주제가 겹치는 대학원생으로, 최근 그녀의 지도교수가 지도 제자로 받아들여 마거리트가 불편한 긴장감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수학에 대한 사랑이 지독하게 컸기 때문일까? 괴로워하던 마거리트는 단 한 번의 커다란 좌절 이후 학교를, 수학을 떠난다. 표면적으로는 그녀가 수학을 버린 거지만, 실질적으로는 수학이 그녀를 버린 것이다. 그 상처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마거리트는 의연한 척 ‘미련 없이’ 수학을 떠나는 척한다.
그 이후의 마거리트가 항상 우울한 것은 아니다. 수학 말고는 모든 게 서툰 마거리트의 엉뚱한 모험은 예기치 못한 웃음을 자아낸다. 마거리트는 수학 바깥의 세상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간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르가슴을 탐색하는 장면이 압권인데, 클럽에서 만난 남자를 무작정 따라가 감정적‧육체적 관습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섹스하는 그녀는 결코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묘한 젠더 전복을 이뤄낸다. ‘여성스럽지 않은’ 수학에만 매달리는, ‘수학계에 흔치 않은’ 여성 수학자 마거리트. 마거리트는 곧잘 성적 매력이 소거된 숙맥, 이른바 너드(‘여성 너드’를 표현하는 엘라 룸프의 연기는 정말 흘륭하다)로만 여겨졌다. 그런 그녀가 오히려 그 ‘약점’을 무기 삼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은 기묘한 쾌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마거리트는 수학을 완전히 떠날 수 없다. 그녀 마음 한편에는 늘 수학이 꿈틀거린다. 단지 다시금 이 열정에 불을 지필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마거리트에게 그 계기는 마작이었다. 룸메이트가 방세를 날려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향한 마작 도박장에서 게임을 하다 영감을 얻은 마거리트는 자신이 회피해오던 오류를 마주할 용기를 낸다. 순수한 마음으로 마거리트 연구의 취약성을 지적한 루카와 협력해 다시금 수학을 시작하고,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될 젊은 학생을 지도 제자로 둔 후 착취하는 지도교수에 맞설 용기 말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마거리트는 수학이 세상, 감정과 분리된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을 배운다. 남을 경계하고 혼자서만 연구했던 과거에 마거리트는 넘어지고 부러졌다. 그러나 때로는 갈등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부대끼며 소통하고, 호흡하고, 사랑하자 자신을 버린 줄만 알았던 수학으로 향하는 길이 다시 열린다. 마거리트는 깨닫는다. 수학을 향한 그녀의 첫 번째 사랑은 그녀를 고양하지 않고 잠식하고 소진시키기만 했다는 것을. 어쩌면 삶에는 수학보다 더 커다랗고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렇게 마거리트는 자신만의 정리定理를 완성한다. 수학을 초과하는 삶의 영역을 기분 좋게 가늠해보게 되는 영화다.
덧. 이 영화는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수학영재 형주〉와 닮은 구석이 많다. 비슷한 주제 의식을 전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법은 완전히 다른데, 모두가 각각의 방법으로 사랑스럽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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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모양의 사랑
어제는 아빠의 일흔 일곱번째 생일이었다. 지난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대구에 다녀왔는데…불과 몇달만에 갑자기 기력이 쇠한 느낌이 들어 코 끝이 시큰해졌다. 아빠는 요즘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쓸고, 아빠의 작은 이발소 문을 연다. 성실히 하루 하루를 꾸려 가는 분이고, 늘 일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갑자기 늙으신 것 같은 얼굴을 마주 하는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아빠는 나에게 특별한 분이다. 40년대에 태어나셨는데…요즘 MZ같은 마인드로 80년대생인 나를 키웠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감정적인 결핍이 없도록 나를 키웠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를 믿어주셨다.
경상북도 깊은 시골에서, 자주 술에 취하고 폭력적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도망 나와 서울로 간 게 중학교쯤이었다 하니, 아빠의 학력도 아마 그 즈음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수성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당장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을 떠난 사람.“아빠 그렇게 어렸는데…어떻게 혼자 살았어?” 겨우 열몇 살이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아빠는 “ 뭐어. 잘 먹고 잘 살았어.” 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아빠는 그랬다. ‘오늘 뭐 하고 놀았니? 무슨 책을 읽었어? 기분은 어때?’ 학교를 다녀와 이발소로 뛰어 들어오는 나에게 백가지 질문을 퍼붓고, 온갖 수다를 받아주고, 장난을 걸고, 대화를 하면서도 ‘아빠가 옛날에는 말이야…’하는 영웅담이라던가,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당신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자식이 알아 주지 않아도 상관없이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꽤나 이기적으로 살아온 터라 아이를 낳기 전엔 잘 몰랐다. 나의 마음 보다,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쓰여서 때때로 나의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것을. 그런 일은 거의 대부분 모두 내 배에서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이 때문이었다. 배 속에 품어 낳은 것이 아닌 아이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모든 가정은 다르기에 ‘아빠의 사랑’ 역시 수십만 개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기쁨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애틋하거나, 적당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장난기가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여자로 태어난 나는 결코 알지 못할 다른 모양의 사랑을 늘 궁금해 왔다. 이런 영화의 좋은 점은 내가 아빠가 될 수 없기에 과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담담하게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서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던 아빠의 영화들 중 많은 영화가 평범하기 보다는 조금 부족한 아빠에서 시작한다. 영화<아이엠 샘>에서 샘은 지적장애로 7살의 지능을 가진 아빠로 나온다. <파더 앤 도터>의 제이크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 이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설가이며, <더 웨일>의 찰리는 아내와 이혼 후 동성연인의 죽음을 겪고 그로 인해 270kg의 거구의 몸집으로 살아가고 있다. <애프터 썬>의 캘럼은 어린 나이에 소피의 아빠가 되었지만 이혼을 했다. 딸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나왔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슬픈 감정에 쌓여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영화들의 자녀는 모두 딸이다. 영화 속 아빠는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정신적으로 부족하거나,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이런 결핍과 상황이 딸을 지키는 못하는 일이 될까 두려움을 느끼는 일들이 생긴다. 영화는 아빠의 지능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돈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한한 사랑이라고. 아빠들은 입양을 보내는 쪽보다 끝까지 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찰리는 죽음이 가까워 왔음을 느끼며,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캘럼은 위태로운 마음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가 딸의 시선이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딸에게 즐거운 시간이라는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지…혹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지켜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이 더 큰 위로가 되기 마련이다.
이토록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때로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아빠는 딸을 살게 하고, 딸은 아빠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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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고 사랑스러운 게임들
곤돌라가 교차하는 찰나에 서로에게 공연을 선사하는 것은 그들만의 게임이었다.
처음엔 도착지에 체스판을 두고, 말을 잡을 때마다 그것을 창 밖으로 흔들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새 직원은 어느 날 그녀의 형편없는 도시락을 몰래 가져다 근사한 샌드위치를 넣어 두었다. 사물함 자물쇠를 뚝딱 열어 버리는 기술은 대체 어떻게 터득한 건지, 싱싱한 야채는 어떻게 고른 건지, 그녀는 그런 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체통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서류 합격 통보 때문이었다.
그녀는 깩깩거리는 기침을 쏟아내는 낡은 곤돌라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목베개를 옆구리에 낀 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페이퍼백 소설이 진열된 서점, 물 한 병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보안요원과 나이 든 승객들… 그 안에서 기꺼이 피로하고 싶었다. 탈의실을 흘끔대고 제 기분에 따라 급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곤돌라 역장이 아니라.
대사 없이 극 전체를 진행하는 <곤돌라>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풍경을 떠올리면서 언어로 그들을 묘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인물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순간도 있고, 말이 필요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면들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영화의 만듦새와는 상관 없이, <곤돌라>가 보여 주는 낭만과 친절, 관능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익살스러움을 만들어내는 쇼트들부터, 조금은 유치해도 결국은 로맨스가 되는 사건까지. 관객은 그냥 그들만의 언어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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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뢰한>, 아니면서 무뢰한 척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씨발년아."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가 있다. 그런데도 그 칼을 꽂힌 채로 그는 그녀를 위한 새해 덕담을 내뱉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마지막 대사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다. 포스터처럼 어스름한 새벽녘의 피곤한 두 얼굴로도 충분하다. 왜 이 영화를 다시금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날이라서 그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담배 연기를 맡고 싶은 날이라서. 다들 그러다 담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담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좋아하는 거니까. 담배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고 싶은 날이었다. 저 대사 같은 말을 해주고픈 사람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영화의 결말이 정말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담배연기에 자욱하게 빠져있다가 저 결말을 보고선 갑자기 담뱃재가 왈칵 쏟아져내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더라. 정말 미운데, 그래도 정이 몽당 떨어질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온갖 상처를 받고도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기분이 무척이나 나쁘지만 가끔 궁금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앞서 드라마틱한 마지막 애증의 한 마디를 남긴 이는 어딘가 비뚤어진 형사 정재곤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법의 테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형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범죄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뿐이지, 그의 수단과 방법은 범죄자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헛헛해 보이는 살쾡이나 표범 같다. 그는 가장 빠른 루트로 가기 위해서라면 가장 잔인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빠른 시간 내에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그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 돼지발정제를 써서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백을 얻어 사건을 해결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걸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적당히 찌들고 풀어진 눈으로, 삐딱한 걸음걸이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모든 하루를 걷고 있다.
김혜경은 열쇠 7개 있는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단란주점 사장이다. 남자 때문에 인생 종친 케이스라고 모두가 인정. 회장님 세컨드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부하와 엮이는 바람에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가 재곤을 만나게 된 건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 권력과 자리에 따라 자신을 유흥거리나 정복지쯤으로 여기는 한량이나 게임중독자일까. 확실히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잘 쓸 줄도 안다. 그러나 늘 여유로운 웃음을 안고 모두를 대하는 그녀라도 실상은 그녀만큼 외롭고 허망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기껏 마음을 붙였던 애인은 이제 도망자가 되어 자신을 돈줄로 써먹고 있다. 돈과 남자는 그녀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원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돈을 벌어 남자에게 돈을 쓴다. 게다가 지금은 범죄자의 애인이라니. 그냥 다 버리고 떠나오기엔 그것들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발목을 족쇄에 가둔다. 흘러넘치는 건 술이요, 오도독거리는 건 얼음뿐이라. 까무룩 술이 취해 아침에 잠이 들고 밤에 펼쳐지는 아득바득한 인생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뢰한이다. 신기한 건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이 가장 무뢰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곤과 혜경을 묶어두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 피도 눈물도 없는 무뢰한에 가깝다.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의 공통점이 있다면 빈틈 있고 어딘가 짠하다는 것. 무뢰한 비스무리 사는 중인데 고민이 많다는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을 것 같은 재곤은 사실 자존심과 연줄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직업의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돈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형사가 되고 싶지 않아 성질을 부렸더니 고작 그의 스폰서가 보낸 금액은 정확히 48만원. 얼척이 없다. 범인을 잡을 때 몸 성치 않게 끝내 달라면서 형사 같지 않은 요구를 하는 건 선배 형사다. 그의 몰골이 짠하다. 그는 선배님의 '내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토해내듯 대답을 했고, 적은 액수의 뇌물을 확인하고 돌려주기 전 허탈한 듯 히죽거린다. 돼지발정제를 쓸 수도 있는 무자비한 형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어떠면 그가 속한 교양 있는 무뢰한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혜경 역시 보다 보면 저렇게 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살았냐고 물으면 빚 받으러 다니고, 빚 갚으러 다녔단다. 인생의 뭔 빚이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범죄자 애인은 몇 천이 누구 집 애 이름 같나 보다. 그의 소식에 혼자 마음 졸이고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숨어 지켜보는 재곤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이 궁여지책으로 외상금을 받으려 돌아다니는 모습은 당당하고 가냘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당함으로 무장했던 그녀는 웃으면서 돈을 받아내다가 결국은 술집 외상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냐며 사정하면서도 나 김혜경이라면서 힘들게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한 것이 마음 아픈 사람.
둘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진심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이 무뢰한들의 세상에 걸맞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속으면 바보같이 당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에 흔들리고 만다. 의심 가득했던 그녀는 재곤을 완전히 믿지 못해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사건을 위해서 혜경을 이용하려 했던 재곤은 혜경이 다칠까 배려해주고도 아무 일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의 진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서로를 가장 속여야 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들은 사랑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다. 혜경이 돈을 위해 재곤(그녀는 그를 '영준'으로 알고 있지만)을 유혹해야 하고,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 그 유혹을 알고 짐짓 모른 척 받아들이는 순간. 재곤이 그녀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를 다시 전당포에서 찾아와 내려두는 순간. 지금 애인이고 뭐고 버리고 자신과 살면 안 되냐는 재곤의 말에 진심이냐, 고 물으며 흔들리던 혜경의 눈. 에이, 그걸 믿냐 하며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의 말에 끝내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씁쓸한 눈빛과 미소.
혜경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결국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 놓았던 재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던 '이영준'이 아니라잖나. 자신의 애인을 한 방의 총알로 날려 보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나 김혜경이야'라는 말처럼 지켜오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참히 쓸모 없어져 버려서. 아무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리라. 그녀의 집주소며 모든 정보를 알면서 정작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제대로 안 것이 없다는 것에,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방비했던 자신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해서. 충격보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이리라. 그 총알로 날렸던 건 애인의 심장만은 아니겠지.
재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찾아와 나는 형사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상처주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재수 없다. 술을 팔 때보다 더 구차하게 마약을 놔주며 살고 있는 혜경을 찾아가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면서도, 처량 맞게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비나 맞고 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혜경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일 텐데. 미안하다고,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세상이, 영준이, 아니 영준이라고 믿었던 재곤이 그녀에게 무뢰한이 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무뢰하게' 그를 꼭 안아 칼로 찌르고 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그녀에겐 진짜 이름이 뭐 건간 그는 여전히 그의 애인 준길의 이상한 감방 친구로 그녀 눈 앞에 등장했던, 이영준이다. 그를 보고 싶었던 마음, 한번 꼭 안고 싶은 마음, 왜 비를 맞고 있냐며 묻고 싶은 마음이 한 켠.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의 애인을 다리 하나 팔 하나 병신 만드는 것도 아니라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만 했나. 나에게 했던 모든 말 그것도 거짓이었냐. 묻지 못한 그 야속함과 증오, 배신감이 한 켠. 그렇게 마음이 한 켠 한 켠 쌓인 뒤섞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서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뢰한같이 칼을 찌르고 나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혜경의 모습에서. 애초에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된다는 걸. 혜경은 무뢰한이 아니며, 될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재곤 역시 그 칼을 맞고도 유유히 경찰차도 보내고 꾸역꾸역 아파하며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보면. 죗값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 보면. 그 역시 무뢰한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아주 못돼 쳐 먹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무뢰한이 아닌 그들이 주변 사람처럼, 세상처럼 무뢰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영화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을 하드보일드 멜로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 잘 믿어서도, 진심을 잘 들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형사인 재곤에게는 범죄자가 애인과 한바탕 나뒹굴고 있는 소리를 엿들으면서도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이고, 혜경에게는 한 때는 자기 발 밑 같았던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자신을 은근슬쩍 더듬고 희롱해도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살짝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이란 게, 웃음이란 게 있지만 한 군데씩 비틀려 있다.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랑, 우스꽝스러운 웃음 같은 것. 그와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 그건 그녀가 그가 구구절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을 때가 아닐까. 어설픈 그의 거짓말에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 그러고도 그가 예리하네, 하면서 뻔뻔하게 웃어넘겼을 때. 그럼에도 서로가 밉지 않았던 순간.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스름한 새벽에 무뢰한이 아닌 이들의 '무뢰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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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 둘째 주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2022년 2월 둘째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
이번 주는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영화 <틱,틱...붐!>과
국내외 영화제에서 다수의 수상을 한 작품이죠! 공승연 배우 주연의 <혼자 사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2022년 오스카 시상식의 감독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까지..
씨네랩이 각 작품을 선정 및 추천하는 이유와
간단한 작품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시네마작을 시청하면서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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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틱,틱...붐!>
영화 - 뮤지컬/드라마ㅣ120분
- 콘텐츠 소개 :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루 가필드)은 뮤지컬의 전설로 남을 작품을 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작곡에 매진한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십),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 예술계를 뒤흔든 사회적 이슈 등이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서른 살 생일은 다가오고, 존은 예술가로서의 삶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 뮤지컬 코미디 부문 수상작.
먼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시는분들께 추천드리는 작품입니다. 조너선 라슨의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요. 배우이기도 한 '린마누엘 미란다'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연기력이 절정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은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인만큼 극의 대사 대부분을 노래를 하면서 이끌어가야하는만큼 부담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어색함없이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감동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노래 실력과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극에 출연하는 다양한 개성들의 출연진들의 앙상블과 감동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여러분께 홈시네마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2. 왓챠 <피아노>
영화 - 드라마 ㅣ121분
- 콘텐츠 소개 : 19세기 말. 20대의 미혼모 ‘에이다’는 아홉 살 난 사생아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낯선 땅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여섯 살 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한 ‘에이다’를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피아노와 딸 ‘플로라’ 뿐이다. 모녀를 데려가기 위해 해변가에 온 남편 ‘스튜어트’는 ‘에이다’에게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피아노를 해변가에 버려두고 집으로 향한다. 피아노를 두고 갈 수 없었던 ‘에이다’는 바닷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이 모습에 반한 ‘베인스’는 그녀와 비밀스럽고도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드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6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수상작
제43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제19회 LA비평가 협회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촬영상 수상작
제46회 미국 작가 조합상, 각본상 수상작 등
정말 개봉 당시 비평가들의 놀라운 찬사와 수상을 한 작품입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신작인 <파워 오브 도그>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있고, 비평가들의 극찬을 물론 2022년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최다 후보작이 되었습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전작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영화를 추천드릴만한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요.
<피아노>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불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기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테지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크고작게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되고, 영화의 해석이 무궁무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추천드립니다.
3. 넷플릭스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 드라마 ㅣ 90분
- 콘텐츠 소개 :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혼자가 편한 진아. 사람들은 자꾸 말을 걸어오지만, 진아는 그저 불편하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1:1 교육까지 떠맡자 괴로워 죽을 지경. 그러던 어느 날, 출퇴근길에 맨날 말을 걸던 옆집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죽음 이후, 진아의 고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이는데…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간직한, 우리들 이야기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42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작
제4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수상작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 CGV아트하우스 - 배급지원상 수상작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받고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상업영화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독립/인디 영화라서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하고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먼저, 독립(인디)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배제하고 영화를 보신다면 충분히 재밌는 영화,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혼자 사는 시대, 혼자가 익숙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은 물론 그 안에서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가는지. 또한 외로움과 소통을 신선하고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무엇보다 배우 공승연의 발견!이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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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틀 곡 없는 네 번째 디스토피아 앨범처럼
<러브, 데스 + 로봇> 시리즈는 넷플릭스에 간헐적으로 발매하는 컴필레이션 앨범과도 같다. 사랑, 죽음 그리고 로봇(테크놀로지)이란 세 가지 주제를 갖고 다양한 감독이 만들어낸 이 작품들을 보고 듣는 재미는 그 자체로 쏠쏠하다. 이런 의미에서 <블랙 미러> 시리즈와 함께 매력적인 디스토피아 세계를 선사하는 <러브, 데스 + 로봇> 시즌4를 향한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아쉬움도 큰 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 실황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CAN'T STOP>이나 <미지와의 조우>의 매운맛 버전처럼 느껴진 <미니와의 조우>, 독특한 색채와 화풍을 선보인 <400 보이즈> <지크는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었나> <기어갈 수 있으니>, 고퀄리티의 수려한 그래픽으로 구현한 <스파이더 로즈> <티라노사우르스의 비명>, 그리고 블랙코미디 스타일 짙었던 <또 다른 커다란 것> <골고다> <똑똑한 가전제품 멍청한 주인> 등 제목에 기인한 주제로 탄생한 10편의 이야기들은 완성도를 떠나 각기 다른 개성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전 작품들에서 봤던 기시감은 벗어나지 못했다. 다수의 작품은 이전 시리즈에서 본 스타일과 세계관, 또는 콘셉트와 겹치면서 신선함은 떨어졌고, 일보 후퇴한 측면도 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생길 수밖에 없는 거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시즌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부재하다는 것. 시즌1에서는 <굿 헌팅> 시즌3에서는 <히바로>를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폭망했던 시즌2가 생각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4를 계속 볼 수 있었던 건 실존적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시리즈의 중점을 어떻게든 이어 나갔기 때문이다. 개성은 다르지만, 다른 존재(로봇, 동물, 로봇, 외계인, 악마 등)를 통해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이기심, 배타성 등을 들춰내고,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로봇은 물론, 고양이, 돌고래,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 타락한 천사 등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곧바로 객관화된다. 우리도 지구 안에서는 작은 개체일 뿐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현 인류의 혼란과 불안을 각 작품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로봇에게 의존하면서 점점 멍청해지는 인간, 인간성 말살 상황에서 실존에 대한 고민, 전쟁, 종말 등의 소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중심마저 흔들렸다면 제작을 맡은 팀 밀러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미웠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시즌4를 보면 이전 시즌에서 봤던 좋은 작품을 찾아볼 것 같다.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한 이들이라면 시즌 1부터 정주행할 수도 있다. 왜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기다렸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시즌 5를 기다린다. 왠지 짝수 시즌보다 홀수 시즌의 완성도가 좋다는 가설이 세워졌다고나 할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CAN'T STOP이나 들어야겠다.
개인 추천 에피소드 3| <지크는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었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이 깨운 타락천사와 사투를 벌이는 미 공군들의 이야기.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피칠갑 고어 액션과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모습은 박진감 넘치게 연출된다. 특히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액션 시퀀스와 이를 구현하는 작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신과 종교, 믿음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은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 참고로 해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연출은 시즌 3 <킬 팀 킬>의 디에고 포랄이 맡았다.
| <티라노사우루스의 비명>시각적으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 경기장, 검투사, 공룡 등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호쾌하고도 잔인한 액션이 볼거리. 액션보다 잔인한 건 검투사들과 공룡의 죽음을 유희로 즐기는 군주와 상류 지배층들의 모습이다. 결국 폭군을 향한 피지배층과 동물(또는 자연)의 복수가 벌어진다. 극 중 자연을 무참히 짓밟은 인간, 유색인종을 노예로 부려 먹은 백인들의 추악한 과거 등을 잘 녹인 이야기. 다만 세계관의 설명이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은 팀 밀러가 맡았다.
| <스파이더 로즈>
브루스 스털링의 동명 단편을 영상화한 단편. <쿵푸팬더>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니퍼 여 넬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남편을 떠나보낸 후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여성, 외계 애완동물, 그리고 복수라는 주제를 잘 융합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면서 감정이 메말라갔던 스파이더 로즈와 귀여운 애완동물로 그 공허를 채우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여기에 SF 장르에 걸맞은 우주 전쟁과 액션 장면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있다. 반전의 힌트는 초반에 나오니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평점: 3.0 / 5.0
한줄평: 타이틀 곡 없는 네 번째 디스토피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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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도깨비 깃발, 명절용 오락 영화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속편!
설 연휴를 앞두고 해적 도깨비 깃발이 개봉했습니다.
2014년에 개봉했던 1편에 이은 속편이죠.
속편이지만 영화 속 시기와 캐릭터는 모두 바뀌었어요.
이번엔 의적과 해적이 만나게 됩니다.
거의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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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웅문> 예고편
무림의 전설이 시작된다!
주왕이 남긴 현무령에 대한 소문이 강호를 떠돌며
무림의 사대 세가는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 중 청룡문과 남궁세가는 현무령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강호에는 피바람이 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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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펜서> 메인 예고편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