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08 17:20:09
온종일 흥얼거리게 만들 뮤지컬 영화 8선
<틱, 틱.. 붐>부터 <시카고>까지!

뮤지컬 영화를 보고 나오면,
온종일 영화 속 넘버를 흥얼거리는 사람…
바로 여기 있습니다 … !
<렌트>, <틱틱붐>을 만든 뮤지컬 작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틱, 틱… 붐!>부터 영화 <위키드>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의 또 다른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 최근 국내에서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시카고>까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넘버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모아보았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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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관계가 고민이라면, 이 영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우연과 상상〉은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는 상반된 메시지를 전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어‧일본어‧중국어‧수어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모인 연극에서, 오랜 호흡으로 다져진 ‘합’이 ‘말’보다 중요한 건 당연하다. 두 주인공이 ‘말없이’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묵묵히 보듬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말은 인간의 관계‧신뢰를 다지는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함께한 시간과 서로를 향한 존중이 관계의 심연에 도달하는 데 더 적합하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삼각관계에 관한 세 편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옴니버스 영화 〈우연과 상상〉은 정반대다. 영화에서 삼각관계의 미묘한 순간을 부각하는 건 오롯이 말, 즉 대사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서든 똑부러지는 표정과 말투로 청산유수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저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은 예외다. 관계의 내밀한 지점을 거침없이 파고들고, 인간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어지는지를 드러내는 놀라운 대사로 가득한 세 편의 에피소드가 각각 한 편의 장편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다.
세 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삼각관계는 각기 다른 양상을 지닌다. 첫 번째는 친구로 지내는 두 여성이 시차를 두고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을 때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다. 전 애인과 헤어진 후에도 오랜 시간 그가 남긴 흔적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헤어진 상대방이 불쑥 나를 찾아와 간신히 평온해진 일상을 제멋대로 흩트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사만으로 전해지는 그날의 분위기, 우리의 과거, 아직 사랑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음 마음 등등. 숨 막힐 듯 몰아치는 현란하고도 적확한 대사에 혼이 빠질 것만 같았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조금 전형적이지만, 그 때문에 현실적이기도 하다. 원한을 품은 젊은 애인의 부탁으로 명망 있는 교수를 유혹하여 망신 주려는 만학도 유부녀. 그녀는 몰래 녹음기를 켜고 교수 앞에서 그의 소설을 읽으며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그런데 계획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화를 나누던 과정에서 둘이 서로에게서 깊은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엇나가는 건 계획뿐만이 아니다. 그날의 녹음 파일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여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교수에게 복수해줄 것을 부탁하던 지질한 젊은 애인은 어느덧 번듯한 회사원이 되어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깊은 공감의 경험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되돌아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마지막은 앞의 두 에피소드에 비해 조금 더 잔잔하고, 조금 더 감동적이다. 졸업 후 수십 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하려 고향으로 돌아온 레즈비언 여성. 동창회에서 과거 사랑을 나누었던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길가를 거닐던 중, 평범한 주부가 된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남자와 결혼한 후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다. 잡다한 대화를 주고받던 여자는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이제 자잘한 이야기 말고 우리가 정말 행복한지에 관해 대화해보자는 것이다. 반전이 있다. 둘은 그날 처음 보는 사이였다. 길거리에서 얼떨결에 서로를 동창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둘은 멈추지 않는다. ‘우연’한 만남을 ‘상상’으로 전환하기, 즉 서로를 착각했던 사람이라 가정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수십 년을 묵힌 오래된 질문과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묘한 감동을 자아내는 둘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부차적인 소통 수단에 불과했던 말에 ‘상상’이 더해지자, 말은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로 탈바꿈한다.
영화를 보며, 나와 타인 사이에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잔뜩 얽힌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되새겼다. 우리는 대체로 그 복잡함에 굴복하여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거나 날카로운 도구로 잘라버림으로써 상대방과 단절하고는 한다. 하지만 〈우연과 상상〉은 우리에게 그 복잡함을 돌파할 언어적 힘이 있음을 환기한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얽힌 실타래를 즉각적이고 현란한 말로 풀어낼 사람이야 적겠지만, 다소 서툰 말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도 끙끙거리다 보면 적확한 한마디 말 정도는 벼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타래가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그 원인과 상태를 알면 위안이 되는 법이니, 그것만으로 우리는 한결 더 편안해질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에서 ‘말’에 대한 서로 다른 통찰을 선보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성취가 놀랍고 고맙다. 관계와 말이 고민인 모든 사람에게 하마구치 류스케의 두 영화를 강력히 권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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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사랑은 어려워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주인공들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들을 알아차리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어른들의 욕망 가득한 눈빛이 아니라, 세상에 진짜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확인해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으른의 연애'라는 것들이, 때로는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는 얼마나 상큼한가.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청량감 같은 것들을 느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여름밤에 평상에 앉아서 수박을 퍼먹었던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열대야를 견딜 수도 없고, 평상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며 수박은 한 통에 2만 원 한다.
이따금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 왠지 죄스러웠는데, 죄의식의 근원은 당연히 모른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대사가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너무도 추상적이다. 어쩌면 나는 죽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일찍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안우연 학생은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여자들에게 거절만 당해왔다. 이럴수가. 맨날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인다. 어른인 나의 눈에는 왜 차이는지 알 것 같은데... 안우연 학생은 모르는 듯하다.
혼자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주고, 웬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주고... 스크린 밖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스웨덴에는 수네(sune)가 있다. 수네는 거의 아기 때(?)부터 소피와 연인사이이다. 소피와 수네의 가족은 미드소마 기간에 미슐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름축제를 즐기기로 한다. 미슐트는 여름축제가 유명하고, 메이트리에 링을 만들어 운명의 짝을 찾곤 한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에 감화를 받아 소피를 찾아가는데, 영화처럼 샴페인과 굴을 싸들고 간다. 하지만 소피는 피자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우리의 우연이가 일방적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가듯이. 그래서 "이거 네 거야." "내 거 아니야." "네 거라니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차이듯이 수네 역시 장렬하게 차인다.
우연이는 어딘가에 운명 같은 사랑이 우연이를 기다리고 있어, 그 사랑을 만나기만 하면 상처받지도, 헤어지지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수네는 소피와 결혼까지 할 마음으로 여름축제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엄마아빠가 여름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여름축제에서 소피를 고리에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연이가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수네도 운명을 믿는다.
우연이는 운명탐지기를 만든다(엄청난 실력자이다). 운명탐지기는 운명의 신호를 따라 우연을 인도한다. 우연은 우연히(아마도 그런 이유로 작명한 듯하다)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탐지기가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운명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이 여자아이는 이유도 없이 우연을 따라나선다.수네는 소피의 떠난 마음을 돌려보고자 미슐트에 사는 아이 알렉스와 작당모의를 한다. '질투심 유발' 따위의 뻔한 술수이다. 알렉스는 당뇨 환자이고, 마을의 지분을 각각 1/3씩 가진 레즈비언 엄마들이 있고, 그들은 지금 이혼한 상황. 알렉스는 수네를 돕는 대신, 나머지 지분 1/3을 가진 수네의 엄마가 알렉스의 엄마들 중 누구에게도 집을 팔지 말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여름축제를 열어야 소피를 잡을 수 있다고 크게 착각한 수네는 엄마에게 축제를 열어주는 쪽에 집을 팔라고 설득하는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모든 것이 들통나고, 소피는 축제를 다른 친구네 집에서 보내겠다며 떠나버린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처럼 소피를 따라가지만 소피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하이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엔 다 잘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연에게 운명적인 사랑이 곧 찾아올 거라는 것도 알고, 수네와 소피가 화해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 그리고 순수하고 풋풋한 장면들이 하이틴 영화의 묘미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나!'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해 주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사랑일 것이다. 청소년기는 더욱이 자기중심성이 강한 시기라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 제일가는 절절한 사랑인 줄 안다. 자기 마음대로 학을 접어주고, 케익을 만들고, 좋아하지도 않는 굴을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고,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연이도, 수네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두 영화를 보면서 여러모로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어른이지만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사랑이 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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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고 나 자신도 솔직히 잘 모르고
서서히 균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국적의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이다. 엘리자베스는 누군가에게 향하고 있다. 이동 중인 엘리자베스. 카메라는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언 무어)와 조(찰스 멜튼)에게로 향한다. 둘은 부부다. 엘리자베스는 이 그레이시, 조 부부를 취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살고 있던 곳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왜? 엘리자베스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그 시나리오에서 나온 대로라면 엘리자베스가 맡게 된 배역이 그레이시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기자처럼 다가온 그레이시. 그레이시의 질문과 시선이 점점 충돌하기 시작한다.
원형 구조?
이 영화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작품 그 자체를 형상화했다. 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모티브가 무엇일까? 작중에서 자주 반복되는 대사인데, ‘나를 이해할 수 있어?’라는 말이다(이 문장은 시놉시스에도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이 질문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촬영 구도를 반복한다. 가령 우리가 가장 쉽게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포스터를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두 사람(그레이시/엘리자베스)의 얼굴을 가로로 연이어 배치하는 장면이 몇 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촬영으로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비단 촬영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몇 요소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는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흉내 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배우’라는 소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이 영화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반복해서 답을 내놓는다. 반복되는 상황, 소품, 이야기 흐름까지 이 세상을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다. 이는 영화 팬들이라면 알고 있을 <벨벳 골드마인>에서의 변태적인 미장센과 공통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벨벳 골드마인>과 유사하게 <메이 디셈버>는 거의 모든 소재에 대칭이라는 키워드를 배치시켰는데 이 부분 역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던지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모든 디테일이 핵심을 향한다는 것이 공통점이 된 것이다. 심지어 영화가 게으르지도 않다. 이 밀도를 다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데,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 뿐만아니라 조나 엘리자베스, 그레이시와 조, 그리고 세 인물과 그 나머지까지 인물들은 서로 사회를 이루며 영화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인물들 간의 연결관계와 공통점을 묘사하는 이유는 영화가 내리는 결론과도 닿아있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 것을 숨기는 방식 역시 신선한데, 이는 토드 헤인즈가 그동안 시도해 온 파격적인 이야기 형식의 연장선상 같아 보이니 등장인물 중 유달리 도드라지는 한 캐릭터에 주의집중하시길 바란다. 또 우리가 수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사랑의 이기적인 속성도 활용하는데, 역시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다.
틈입하는 사운드
이 영화를 보면서 먼저 귀에 들어왔던 건 사운드다. 이 영화는 음향효과를 특별하게 사용했다. 어떻게? 바로 이 영화의 플롯을 음향으로 청각화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 번째 장면에선가 어떤 여자애가 냅다 소리 지르는 부분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영화를 보다 보면 ‘우연히 갑자기 어떤 소리가 끼어드는’ 장면을 몇 개 찾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아무 맥락도 없이 공통점을 보며 그냥 들어가지 않았겠지? 이 음향 효과들은 다른 영화의 사운드들이 잘 짜여 있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다. 핵심은 ‘다른 영화의 사운드가 잘 짜여 있다’는 점인데, 이는 사실 영화에서 누군가와 누군가의 관계로 치환되고 있다. 주인공 간의 관계에 비명소리 같은 것이 틈입하는 것이다. 이 양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보면 영화가 조금은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 같다.
영화가 사운드를 활용한 다른 방식은 인물의 정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불안한 요소가 무엇인지 쓸 수 있지만 이야기 내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쓰긴 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하게 언급할 수 있는 건 ‘사운드’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바로 그레이시가 “소시지가 다 떨어졌구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소시지가 다 떨어졌다는 게 이야기 흐름 상 중요한 장면이 되진 아니겠지? 하지만 이 장면에 밑줄이 쫙 그 여진 이유는 연출하는 방식에 있다. 이 음향은 왠지 모르게 불안정한 인물들의 분위기, 인간관계, 그리고 플롯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글쓴이는 청각적 요소를 이렇게 활용해서 불안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과 청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불안함을 만들어내고, 그 도착지에 무엇이 있는지를 염두하고 본다면 영화가 좀 더 쉬울 것이다.
다층적인 이야기
이 영화의 두 주인공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는 여성이다. 이를 이 영화가 여성영화로서 읽히는 지점이 몇 있다. 이 영화가 인물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팜므파탈’ 같은 것이 뒤틀렸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감독의 전작 <캐럴>에서도 느낄 수 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이 영화가 핵심을 인물로 또 플롯으로 소화한 것과 유사하게 표현한 부분도 있다. 바로 이 영화의 플롯을 형상화한 형태 중 ‘원’이라는 것이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장면에서 영화 내적인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 여성영화로서의 맥락으로도 작동하니 영화가 영리한 선택을 뒀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대사가 몇 있으니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역시 촘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를 예술가의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예술가와 세상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다룬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은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다. 하지만 어떤 예술은 기자가 구사하는 저널리즘으로, 또 다른 현실은 마치 연극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현실과 예술을 병치시켜 엔딩에 이르면 이 영화가 정말 넘고 싶어했던 것이 무엇일까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런 소재들도 과연 거장이다 싶었지만 오히려 단점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다층적인 이야기를 구성함에 따라 인물들이 엄청나게 생동감이 있는 타입들은 또 아니었던 듯 하다. 서서히 스며드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줄리언 무어의 맹위, 종잡을 수 없는 찰스 멜튼이 굉장했어서 그렇지 영화가 다이나믹한 템포로 빠르게 달리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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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소리없이 나빌레라
음악의 정의는 무엇일까. 음악은 정상 청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청각장애인 무용수 고아라는청음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직업적인 특성으로 인해, ‘듣기를 거부하‘기 보다는 ‘듣고자 노력하는’ 위치에 있다. 고도 난청을 가진 그에게 소리의 울림은 미약하게 다가오고,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로 여겨질 뿐이다.
고아라 무용수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창피를 당한 후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다던 그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아기와 함께 놀기 위해,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청력의 범주는 다양하다.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의 범주는 다양하다. 고아라 무용수는 마이크를 들고, 헤드셋을 낀 채로 그의 청력에 음악처럼 들리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춤을 출 때 발로 바닥을쓰는 소리,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가 마이크를 통해 전하는 모든 일상 속 소리들은 음악적 리듬을 가진다. 관객은 고아라 무용수의 삶을 가차이서 조망하고 긴밀하게 소통하며, 그가 표현하는 몸짓에 따른 음악을 상상하게 된다.
고아라 무용수가 준비한 음악은 기존의 정상성의 틀을 깬다. 리듬감을 가지는 단순한 숨 소리에 맞추어그의 온몸은 유연하게 일렁인다. 인간 본연의 소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호흡의 박자는 그가 선택한 음악이다.
춤을 추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던 음악을 새로이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한 단계 성장한다. 음악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정상 청력이 필요하지 않다. 고아라 무용수는 청각장애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재해석하고, 주체로서 기능한다.
질서 없는 소리가 나열되며 혼란을 주었던 오프닝 시퀀스와는 대조적인 엔딩에서, 온전한 자신만의 음악을 발견한 그의 몸짓은 보다 찬란히 빛난다. 고아라 무용수가 찾은 음악은 그를 한계짓는 것이 아닌, 그의 존재의 가치를 부각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유랑하듯 흐르는 움직임에 청력의 정도는 중요치 않다. 해당 무용은 그와 관객의 감각을 하나되게 묶는다. 함께하는 감각은 공감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입증한다.
2024.09.27 (금) 20:00 메가박스 킨텍스 7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6일 - 10월 02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크리에이터 기자단 씨네랩 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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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섬가이즈 | 잘생긴 이유를 찾는 공포 코미디 오컬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하지만 실상은 한 번 보면 겁을 먹지 않을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첫인상의 소유자들. 그들은 이사 온 첫날부터 험악한 인상 때문에 동네 경찰 ‘최 소장’(박지환)의 의심을 사지만, 그간 꿈꾸던 유럽풍 저택을 수리하며 새 출발을 고대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재필과 상구는 의도치 않은 위기에 처한다. 펜션에 놀러 왔던 대학생 '성빈'(장동주) 및 친구들과 마트에서 갈등을 빚고, 그들 중 하나인 ‘미나’(공승연)를 호수에서 구하다가 납치범으로 오해받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이사 오던 길에 죽은 걸 발견해 집 뒤 야산에 묻어준 흑염소가 오래전 봉인됐다가 탈출한 악마 '바포메트'로 밝혀진다. 그렇게 재필과 상구는 이사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마주한다.
한국 영화에 수혈된 새 피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리는 말이 있다. '한국 영화의 위기'. 팬데믹이 끝난 후로 여전히 관객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 100만 관객을 넘은 한국영화는 <시민덕희>, <외계+인 2부>, <그녀가 죽었다>, <건국전쟁>까지 4개에 불과하다. 2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은 없다. 중박 영화가 사라진 채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주된 이유로는 비싼 영화값과 OTT 영향력의 확대가 꼽힌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이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새로움의 부재다. <범죄도시> 같은 브랜드 파워는 갖추지 못한, 스타 배우와 익숙한 소재 및 구성으로 무장한 텐트폴 영화의 실패가 그 방증이다. 반면에 <잠>, <파묘>처럼 다소 낯선 장르나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작품은 의외로 성공했다. 즉, 흥행 공식을 반복하는 권태로움이 영화관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키운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핸섬가이즈>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오컬트, 코미디, 고어, 심지어 뮤지컬까지 그간 한국 영화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장르와 소재만 골라 모았다. 그러면서도 마냥 가볍지는 않은, 뼈 있는 웃음을 자아낸다. 치지 말라는 공만 때렸는데 보기 좋게 장타를 만든 셈이다. 비록 마이너 한 장르라서 당장의 흥행은 어려워도, <핸섬가이즈> 같은 도전과 실험이 이어지면 관객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맛으로 가득한 한 상
<핸섬가이즈>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상술했듯이 장르다. 쉽게 다루기 어려운 장르만 골랐다. 우선 눈에 띄는 장르는 오컬트다. 과거 외국인 선교사가 간신히 봉인해 둔 '바포메트'가 전해져 오던 예언대로 깨어날 때, 그를 막을 세 명의 사도 혹은 천사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다. 소재 자체는 <검은 사제들>과 비슷하지만, <천박사: 퇴마 연구소>처럼 무겁지는 않은 비슷한 톤 앤 매너를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면서도 오컬트 공포 영화 이상으로 놀랄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원작인 <터커 & 데일 Vs 이블>의 색채를 빼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고어한 연출이 꽤 빈번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거나, 나무에 찔려 죽은 시체에 구멍이 나는 식이다. 그 앞뒤로 코믹한 연출을 더해서 충격을 상쇄하고는 있지만, 15세 이상 관람가가 맞나 싶은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묘사인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뮤지컬 영화 요소도 일부 차용했다. 상구와 미나가 같이 설거지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처럼 '설거지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 3'이라는 테이프를 틀고 춤을 춘다. 강아지와 함께 합을 맞추기도 하고, 거실을 마치 무대 위처럼 누빈다. <킹스맨> 시리즈가 연상되는 B급 감성도 가득하다. 이처럼 <핸섬가이즈>는 한국 영화에서 실험적이라고 평가할 법한 화법만 모아둔 작품이다.
코미디라는 접착제
그런데도 <핸섬가이즈>는 난잡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각 장르의 재미도 모두 맛볼 수 있다. 코미디가 그 원동력이다. 우선 코미디 자체의 타율이 높다. 원작을 보지 않은 이상, 클리셰를 끊임없이 비트는 웃음 포인트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 일례로 <핸섬 가이즈>는 여름 여행을 간 친구들이 한 명씩 죽는다는 익숙한 펜션 괴담을 차용했다. 그런데 펜션 대신 서양식 주택과 기도실을 활용해 오컬트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변환한다.
주인공 클리셰도 비틀어서 유머로 활용한다. 무당이나 퇴마사 같던 재필과 상구가 사실 그저 전원생활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었다는 식이다. 작중 모든 사건이 우연한 사고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장면들은 급격한 장르 전환으로 인한 어색함을 감춰주고, 통일성과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소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한 번 등장한 소품은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 있게 재등장한다. 부러진 기둥처럼.
배우들의 조합도 코미디를 역으로 강화한다. 사실 이희준, 이성민 두 주연 모두 악역이나 흑막의 이미지가 더 강한 배우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대통령과 경호실장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런 그들을 푼수 동생과 츤데레 형 조합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공승연 활용법도 남다르다. 20대 초반이라 가능한 독특한 입담이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다.
코미디에 뼈가 있다
심지어 코미디는 단순히 코미디로 끝나지 않는다. <핸섬 가이즈>를 관통하는 모티브가 편견의 역이용이기 때문. 영화는 두 주인공을 억울한 상황에 던져 놓고, 당황한 그들의 리액션을 유머 재료로 삼는다. 상구가 마트에서 넘어진 미나를 일으켜 줘도, 상민이 호수에서 실족사할 뻔한 미나를 구하고 CPR을 시도해도, 그들은 성추행범으로 오해받는다. 로드킬 당한 염소 사체를 치워도 지나가던 경찰은 그들을 살인범으로 의심한다.
특히 타인들이 유독 그들만 의심하는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의 행동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의 험악한 인상과 외모가 문제다. 재필과 상구는 자신들의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도, 자격지심도 없다. 그러나 타인들은 그들의 얼굴만 보고서 가장 안 좋은 상황만 가정한다. 오직 외모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아니지만, 오해를 살만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외모가 결정적인 심증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처럼 코미디 뒤편으로 은연중에 깔린 메시지는 두 주인공과 대학생 일행의 대비를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외견상 말끔해 보이고, 별장과 골프장을 골라 다니는 부유한 대학생들이 알고 보니 마약과 성폭력 범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 그 덕분에 재필과 상구가 겪는 해프닝을 보고 웃다 보면 마음이 슬며시 불편해진다. 대학생이 무고한 피해자일 것이라는 편견을 자각하게 되니까.
코미디와 오컬트의 연결고리
이에 더해 오컬트적인 전개와 코미디에 담긴 메시지가 예상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덕분에 <핸섬가이즈>는 더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가톨릭 베이스의 퇴마물인데, 영화의 메시지가 천주교 교리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핸섬가이즈>라는 제목도 압축적이라서 흥미롭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기독교적인 선악관으로 전환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흔히 신약 성경의 예수는 구약 성경의 모세가 남긴 십계명 같은 율법을 단 두 조항으로 요약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특히 예수는 이웃 사랑을 강조한다. 소외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자기 가족처럼 아끼라고 가르친다. 설교뿐만 아니라 실천도 한다. 죄인, 여성, 세리, 사마리아 사람, 문둥병 환자 등 당대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이들에게 그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핸섬가이즈>는 이를 미나를 대하는 태도와 연계해 오컬트적으로 풀어낸다. 성빈과 친구들은 미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이용해 먹으려 한다. 지방 출신에 집도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다면서.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병조'(강기둥)를 운전기사 겸 요리사로 부려 먹는다. 재필과 상구는 다르다. 그들은 귀찮거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먼저 선행을 베푼다. 위기에 처한 미나를 구하고 도와줄 때도, 로드킬 당한 흑염소를 매장할 때도.
미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성빈의 외모나 재력에만 주목하고, 겉모습만 보고 재필과 상구의 호의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자기 편견을 반성한다. 영화는 이러한 차이를 오컬트적으로 풀어낸다. 예수의 말대로 선행을 베푸는 재필, 상구, 미나는 바포메트를 무찌를 예언 속 천사로 밝혀진다. 그들을 무시한 성빈과 친구들은 악마를 깨울 제물이 된다. 겉모습을 이용한 유머를 단순한 코미디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다.
반 숟가락 남은 마지막 아쉬움
다만 <핸섬가이즈>라는 실험이 완벽하지는 않다. 원작 영화를 봤거나, 장르 영화 마니아라면 매끄럽지 않은 지점이 적지 않다. 더 잔인하거나 코미디 상황에서 더 뻔뻔하게 연출했어야 할 장면이 있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 이에 더해 애써 감추고 있지만, 장르가 변환되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이 충돌하거나 타이밍이 다소 어색한 지점이 순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원작을 리메이크하면서 한국적인 감성을 더하려고 했는데, 이 지점에서도 망설이는 듯한 지점이 있다. 일례로 박지환 배우를 경찰 역으로 캐스팅한 이상, <범죄도시> 속 '장이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묘사를 통해 더 강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신부님을 등장시킬 때도 <검은 사제들>을 오마주 하는 식으로 현지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슷한 장르와 전개가 반복되는 한국 영화라는 호수에 꽤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거처럼 보이니까.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핸섬가이즈>라는 돌멩이는 더 용감해 보이고, 그 파란이 더욱 멀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고 싶어지기도 한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치지 말라는 공만 골라 쳐 만들어 낸 기대 이상의 3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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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짜 페르시아인이 뇌리에 새긴 불편한 진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초청 받은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우리 주변의 '가짜'들
살다보면 우리는 숱한 가짜들을 마주한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들을 말하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짜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다른 탈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어떠한 목적에 의해 그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질을 감추거나 가리고 또다른 가면을 쓴다.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자신이 가장한 삶처럼 살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피치 못하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본질과 가면(페르소나)를 양립시켜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가짜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주 견고하고 확고한 의지, 혹은 신념이다. 꼭 어떤 것을 해내야만 한다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질' 역시 그러한 가짜의 탈을 쓴 사람 중 하나이다.
2. 살기 위해 가짜가 되다.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나치 독일의 야욕은 온 유럽을 집어 삼키고, 그들의 광기는 인종학살적인 경지에 이른다. 뛰어난 종만을 살려서 더 나은 인간종을 만들겠다는 우생학의 골조 아래에 숱한 비-아리아인(흔히 전통적인 독일 민족이라고 일컫어지는)들이 '청소'당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유대인은 이들의 대표적인 학살 대상 중 하나였다. 유대인인 '질'은 이들의 인종 청소로부터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그가 다다른 곳은 소위 '쓸모 없는 인간'은 지워지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곳.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바로 그곳에서 질은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사칭한다. 정작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하늘이 도운 걸까? 이 가짜 페르시아인이 끌려간 곳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일군 대령 '코흐'가 있었다. 질이 알고 있는 단어는 '아버지'를 뜻하는 '바바' 뿐이지만, 살려면 그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했고, 그리하여 이 가짜 페르시아인은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위해 필사적으로 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어는 대충 지어낸다 쳐도, 가르칠 단어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날텐데 그 많은걸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한참을 고전하던 질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이름과 인상에서부터 단어를 착안해내고, 그 기발한 발상으로 말미암아 2000개가 넘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단어에서 시작되었던 언어는 이윽고 문장이 되고, 문장은 일련의 이야기가 된다.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가 이름과 이름들이 견고하게 엮임으로써 하나의 실제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3. 가장 평범한 악인들
질과 코흐는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거듭하면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코흐는 질을 철저하게 착취하는 입장이면서도 그에게 나름대로의 '관용을' '베풀'고, 질은 그 얄팍한 관용 속에서 코흐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 나간다.
코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기적이고, 쪼잔하며 얼마쯤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도 있다. 요리사였던 그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그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장교들을 배불리 먹인다. 그는 직접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학대한 적은 있고, 적어도 간접적으로 독일군의 광기어린 살인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냉혈한일 것만 같은 그 코흐도 퇴역 후 낯선 땅에서의 안락한 여생을 꿈꾸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가정하며 친애를 표했다. 그는 그 자신이 평범한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대단한 만행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범한 악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작중에 나오는 독일군 모두가 그러하다. 그들은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코흐는 스스로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또 어떤 병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잣대로 평가된 '유대인들의 저급함'을 학대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믿음은 거의 종교와도 같다. 때때로 종교가 우리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러니까 저들은 그르고 나는 옳다'는 이기적인 신념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그 대단한 파시즘적인 발상에의 추종과 '나 자신의 안락함'을 위한 외면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치우고', '묻었다'.
4. 살아남은 가짜 페르시아인과 가짜 페르시아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질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언어, 즉, 수용소에서 죽어간 약 2000여 명의 사람들의 이름 역시 살아 남았다. 처절한 생존의 의지가 만들어 낸 어떤 기적이다.
페르시아어를 배운 코흐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영화를 직접 보는 편이 좋겠다. 이 영화가 악인을 그리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로워서,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념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신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신념은 사람을 살린다.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어서 얼마든지 그릇될 수도 있는 것인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신봉한 나머지 그것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가짜들이 진짜인 우리를 집어 삼키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독일군들처럼!
내가 쓰는 가면은 어떨까. 나는 내 가면을 올바르게 닦고 있을까? 나의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은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내가 그러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나만 생각해서는 내 가면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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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나무의 씨앗] 끝장리뷰 | 총과 씨앗 그리고 새 | 아버지 캐릭터 분석 | 오프닝과 엔딩 | 결말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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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총과 씨앗 그리고 새
Chapter 2 이만이라는 인간
00:00 칸영화제
01:15 총과 씨앗
04:04 새(Bird)
05:15 이만이라는 인간
08:12 별점 및 한 줄 평
08:30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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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되면 과장 부장 사장과 직급 떼고 붙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메이헴'
흥해라 이 영화
메이헴 (2017)
- 좀비처럼 일만하던 직장인으로 가득한 회사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상사의 무시와 부당한 요구에도 꾹 참던 직원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하는데...Walking Dead 아니고 Working Dead
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투로 시작된 사내배틀로얄무비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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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기다린 문제의 화제작!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르 [조커: 폴리 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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