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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o2024-05-07 14:55:39

조명함으로써 탄생하는 예술과 투쟁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리뷰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 Nan Goldin, 1984, Tate

대학 교양 수업에서 낸 골딘(Nan Goldin)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 곱슬머리와 80년대 유행 그대로 얇게 다듬은 눈썹, 진주 목걸이, 드롭 귀걸이를 한 여자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연한 표정, 붉은 립스틱을 깔끔하게 바른 입술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격투라도 하고 난 사람처럼 혈관이 터져 붉어졌고, 눈가에 멍이 잔뜩 들었다. 모델임과 동시에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 한 장,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1984)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카메라로 이런 대상을 담는다. 교외에 장만한 집, 푹신한 카펫과 잘 정돈된 잔디, 백인 가족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가족상이 아니라 그곳에 속하지 않는 젊은이들, 그들의 문화를 찍고 또 사진을 통해 권력관계를 가시화한다. 제도와 언론, ‘주류미술계가 모른 척 하는 것들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낮은 웅성임을 찢고 전시관 입구에 떡하니 걸린 이름을 규탄하는 외침이 들려 온다. 펜타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오피오이드계 약물로 인한 수많은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름을 박물관에서 내리라며, 시위대는 목소리를 높인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그녀의 이러한 시도에 주목한다. 어느 날 화이트 큐브에 도발적인 작품을 걸어 놓은 용감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견고한 벽을 넘어뜨릴 수도 있을 만한 작가로서의 그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사진 작업으로 경력을 쌓아 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난데없는 시위 현장을 담은 도입부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과 그 영감의 원천은 주류에 반하는 이런 힘과 멀리 있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는 숨 막히는 교외지역에서 시작된다. 이 백인 중산층 가족은 자아를 키워 나가는 딸을 고아원과 정신병원으로 내몰았다. 언니인 바바라가 그렇게 쫓겨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 낸 골딘은 역시 자라며 집 바깥으로 내몰리고, 위탁 가정과 기관을 전전한다. 그렇게 그녀는 뉴욕의 하위 문화 한 가운데로 흘러 들어갔고, 그곳에서 예술가로 자라났다. 사진이라는 예술 형식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속한 문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그녀는 마치다가오는 시대가 예술가를 알아보듯, 상자 안에 담겨 온 사진을 눈여겨 본 미술관의 관심을 끌어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바로 행동(act-up)’하는 모습이다. 낸 골딘은 60~80년대 하위예술, 자유롭고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젊은이들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역사에 머물며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로 나서는 운동가, 자신의 영향력을 올바르게 발휘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그녀는 80-90년대의 에이즈 공포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도와 언론이 그것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은 단순한 기록, 미학적인 가치에 더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창이 되기도 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그녀의 삶과 맞닿아 있는 작품 활동을 서술하지만, 사진을 한 장씩 살피면서 촬영 비화를 듣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도입부의 메트로폴리탄 시위에서 시작해 영화는 그녀가 주력하고 있는 오피오이드 약물과 관련된 활동과 집회 프로젝트를 조명한다. 이전에는 캐주얼하게 즐기던 약물은 점점 용량이 늘고, 실수로 단 한 번 들이킨 펜타닐에 곧바로 중독되어 재활한 경험이 있는 낸 골딘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죽음을 알리고자 한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국립 초상화 박물관 등 여러 장소에서 시위를 하여 점점 심각해지는 이 오피오이드계 약물 중독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확장하려 한다. 과거에는 제국주의를 발판 삼아 아시아 등지의 유믈을 수집하고 이후 제약 산업으로 쌓은 막대한 부를 유지해 온 새클러 가문의 이름을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내리는 시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 가서 시위를 벌이는,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시도를 그녀는 어떤 죽음들은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신념을 위하여 감행한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이 동시대 예술가의 행보를 지켜보는 동안 어떤 문제에 대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의 가치, 선한 영향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라는 제목은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예술을 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는 그녀의 언니 바바라와 관련된 문구이다. 신기하게도 낸 골딘의 삶과 연결되는 이 말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로서의 그녀, ‘유혈사태를 지나치지 않는 인물로서의 그녀를 절묘히 가리킨다. 그리고 관객 역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유혈사태, 즉 오피오이드계 약물(펜타닐) 중독 문제의 이면에는 거대 제약회사와 그들의 로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동시대 관객에게 낸 골딘이라는 예술가를 각인시킴과 동시에 개인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복합적이고도 매력적인 작품으로서 막을 내린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r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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