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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주2025-09-13 12:48:53

에세이와 비평과 사랑 • <더 웨일>

게오르그 루카치는 비평은 에세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에세이란 수필 형식이 아니라, 비평이 제도적인 틀에서 벗어난 부유하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인아영 평론가는 비평은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썼다. 그렇지만 비판과 사랑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비평의 목표인 ‘더 좋은 삶 살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더 웨일>은 ‘에세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초고도비만인 주인공 찰리는 실수로 잘못 움직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집에 들어온 모르는 선교사에게 119를 부르는 대신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내용은 <모비딕>을 읽고 쓴 감상이다. 찰리는 대학교 온라인 수업 글쓰기 강사이기도 한데, 무난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그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자 학생들에게 전체 메세지로 ‘독서든 거추장스러운 에세이든 다 꺼져 버리라고 하고 정직한 글을 쓸 것’을 요구한다.

 

 <더 웨일>은 터부시 되는 것, 말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찰리도, 그의 딸도, 그의 전 아내도, 그를 돌보는 헌신적인 간호사도, 우연히 집에 들어온 선교사도, 하다 못해 피자 배달부까지도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찰리의 수강생들 중 몇 명은 이런 글을 제출한다. ‘부모님은 방사선기사가 되라는데,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내게 흥미로운 삶이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주제에 집중해야 하며, 고치고 고쳐야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도 맞지만 에세이의 제 1 원칙은 무엇보다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에세이는 구질구질한 삶 속에서 중요하고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모든 게 망가져 버린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찰리가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행청소년인 딸에게 ‘넌 아름답고 똑똑하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단호하고 명명백백히 외치는 것이다. 그것은 찰리가 말로 하는 비평이며, 에세이이며, 사랑의 외침이다. 그것은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만큼의 호소력과 무당이 점을 치는 것만큼의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딸의 글을 되뇌며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를 본다. 그에게 ‘더 좋은 삶’이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딸에게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들으며, 하늘로 떠오른다. 그 순간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인을 위해 딸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보고 싶다.

작성자 . 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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