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2025-02-10 22:46:05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리뷰
추락에서 비상으로: <더 폴>이 빚어낸 영화적 경이
비극 속에서 피어난 환상의 세계
오렌지를 따다 사고로 팔을 다친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와 스턴트 중 추락사고로 다리를 다친 로이. 그들의 만남은 모두 '추락'에서 비롯된다. 타르셈 싱 감독의 걸작 <더 폴>(2006)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서사 구조 속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로이의 판타지 속 이야기와 두 사람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전개된다. 환상의 세계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로이의 절망과 알렉산드리아의 희망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로이가 들려주는 영웅담은 점점 그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며 변주되고, 알렉산드리아는 그 이야기 속에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영화적 미학
<더 폴>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CG 없이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촬영된 로케이션 장면들이다. 이국적 풍광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미장센은 현실과 환상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스크린을 채운다. 특히, 붉은 천으로 뒤덮인 장례식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적 이미지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감정과 서사의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추락에서 비상으로: 구원의 서사
그러나 <더 폴>이 단순히 미장센만으로 기억될 작품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정수는 ‘추락’에서 시작된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 다시금 ‘비상’하는 과정에 있다. 깊은 우울과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로이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품은 알렉산드리아. 두 사람은 현실의 잔혹함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려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녀는 단순한 청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능동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그리고 로이 역시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자신의 절망을 극복할 희망을 찾는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헌사
<더 폴>은 영화적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도, 단순한 형식미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본질을 탐구한다. 감독 타셈 싱은, 영화를 위해 몸을 던지는 스턴트맨들의 헌신을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한다. 영화의 한 컷, 한 장면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헌신의 결과물임을 강조한다.
결국, <더 폴>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려는 스턴트맨들의 노력, 그리고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의 삶과 희망을 담아낼 수 있는 위대한 매체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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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9> 기대만큼 액션이 특출나지 않은 이유
첩보 임무에서 은퇴하고 아내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도미닉(빈 디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집에 찾아온 '테즈(루다크리스)', '로만(타이레스 깁슨)', '램지(나탈리 엠마뉴엘)'로부터 든든한 조력자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 사건에 의절한 동생 '제이콥(존 시나)'과 과거의 적이었던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동생을 막지 않으면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져들 상황에서 도미닉은 자신처럼 은퇴했던 여동생 '미아(조다나 브류스터)'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한(성 강)'을 포함해 모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제이콥을 저지하기 위한 미션에 나선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정체성은 흔히 한계를 모르는 자동차 액션에 국한된다. 실제로 그간 도미닉 토레토와 그의 동료들, 곧 '도미닉 패밀리'는 차를 탄 채 탱크, 비행기 및 잠수함과 전투를 벌이는 액션을 펼쳤다. 이는 시리즈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현실과 상상의 기준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킴으로써 큰 인기를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사실 실망스럽다. <분노의 질주>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방탄 트레일러와의 추격전이 비행기, 미사일 드론, 잠수함 순으로 상대할 적이 점점 강해지던 흐름에 발맞춰 덩달아 부픈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은 무리다. 이에 더해 비록 개연성과 현실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는 하나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 지뢰가 터지지 않는다거나 거대한 전자석이 만능 치트키로 기능하는 것, 심지어 차를 개조해 우주로 나가는 등 물리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액션 구성은 그 매력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를 액션 영화 이전에 토레토 '식구'의 드라마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경우 그 실망감은 줄어든다. 5,6 편에서 도미닉 패밀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묘사하는 데 공들였던 저스틴 린 감독이 복귀하면서 영화의 포커스가 다시 한번 토레토 가족의 드라마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옛날 버전 로고가 암시하듯 영화의 중심에는 시리즈의 버팀목 도미닉과 새롭게 등장한 그의 동생 제이콥의 과거사가 위치한다. 카 레이싱 선수였던 아버지를 도와 차량 정비를 맡았던 도미닉과 제이콥. 그러나 레이싱 도중 차량이 폭발해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돔은 제이콥이 가장 마지막으로 엔진을 손봤다는 이유로 그가 가족을 배신했다고 단정지은 후,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쫓는다.
특히 영화는 성경 속에 등장한 여러 형제들의 이야기를 빌려와 십자가 목걸이를 나누어 끼는 토레토 형제의 서사에 깊이와 개연성을 더한다. 우선 제이콥의 서사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야곱의 이야기의 변형과 다름없다. 야곱은 형 에사오가 아버지 이사악으로부터 받아야 할 축복을 속임수로 훔친 후 형의 보복을 피해 가족을 떠난다.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자립한 그는 긴 시간이 지난 후 건실한 가정을 일군 형과 재회한 자리에서 선물과 축복을 건네며 화해하고, 이내 헤어져 자신의 삶을 개척하러 떠난다.
이때 제이콥의 서사는 야곱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아버지에 대한 진실로 바꾼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미닉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제이콥은 형을 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빚을 승부조작으로 갚기 위해 엔진을 몰래 고장 내라던 아버지의 부탁대로 움직인 그는 아버지의 사망이 단지 사고였다는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으며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다. 대신 그는 형과의 레이싱에서 패한 뒤 곧장 가족을 떠나고, 긴 시간이 흘러 재회했을 때는 그간 감추었던 아버지와의 진실을 형에게 알려주면서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던 가족을 되찾기 위한 물꼬를 튼다.
한편 형제 중 형인 도미닉의 서사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 첫째 아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비유를 보면 형은 자신 몫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비난한다. 또한 그는 동생을 다시 찾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 곁에 끝까지 남아 첫째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다시 얻게 된 동생을 반기는 대신 그가 돌아와 자신의 재산만 축낸다는 불만과 무자비함을 표할 뿐이다.
도미닉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카 레이싱 출발선에서 재회했을 때도, 파티에서 제이콥을 만났을 때도, 그를 붙잡아서 자신들의 기지로 데려온 후에도 그의 태도는 항상 같다. 도미닉은 자신이 토레토의 이름과 명예를 지켜왔고, 제이콥은 절대 용서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독단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제이콥이 가족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죄를 지었다고 확신할 뿐, 자신이 바로 그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이콥이 형에게 진실을 알려 줄 용기가 있는 야곱이었던 것처럼, 도미닉도 끝까지 탕자의 형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치 세례를 받듯이 물속에 들어가서 잘못을 마주하고, 이를 씻어낸다. 그는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 물에 뛰어든 과거의 기억을 마주한다. 자신이 몰랐던, 혹은 제이콥이 알려 주었는데도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 동생, 그리고 아버지 사이의 진실을 모두 깨닫고 토레토 가족을 망가뜨린 것은 자신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물 밖으로 나온 그는 뒤늦게나마 제이콥에게 아버지의 차 열쇠를 건네고 시리즈 내내 지켜온 가족이 아닌, 한 차례 잃었던 본래 가족을 회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토레토 가족의 과거사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돔의 크루들, '도미닉 패밀리'의 서사로도 확장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가족의 회복, 재회라는 키워드 안에서 과거에 끊어졌던 인연들을 어떻게든 복구하고, 집합시킨다. 7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한은 살아 돌아와 다시 돔의 크루에 합류하고, 3편인 <도쿄 드리프트> 크루들도 로켓 엔진을 들고 시리즈에 복귀하며, 5편에서 리우의 은행 금고를 함께 훔쳤던 레오와 산토스도 돔과의 과거 인연을 통해 모습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브라이언(폴 워커)'의 등장은 여전히 큰 감동을 준다.
물론 돔의 이야기에 더해 그들의 사연을 녹여내야 하다 보니 시리즈 팬이 아니라면 과거 회상 장면이 지나치게 많아서 영화가 늘어진다고 여길 여지는 있다. 그러나 돔의 진한 가족애가 본래 가족을 지키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었기에, 모든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운 듯 보이면서도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자동차처럼 가족도 꾸준히 가꾸고 관리하면 결코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대사가 영화 내외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이는 영화가 액션씬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시리즈의 상징이었지만 점점 비중이 줄고, 심지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 카 레이싱은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선다. 이때 레이싱 장면은 전부 과거 시점에서 토레토 가족이 분열하게 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등장한다. 그간 브라이언과 도미닉 토레토, 그리고 도미닉 패밀리가 카 레이싱을 통해 점점 늘어났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카 레이싱 장면은 가족의 해체와 만남이라는 대조를 통해 액션과 가족애라는 시리즈의 두 정체성을 한 데 담아내는 인상적인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분노의 질주 9>가 본래 제시하려던 이야기와 메시지를 세련되게 스크린에 녹여내지 못한 점은 액션의 의미와 별개로 양질의 액션이 부족한 것만큼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당장 영화의 포커스가 돔과 제이콥, 한 등 몇몇 인물들에게만 맞춰져 있는데도 제이콥이 돔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상황 설명만 나올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미 몸집이 거대한 시리즈다 보니 나머지 캐릭터들의 서사가 지나치게 간소화되는 문제도 피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두 형제의 또 다른 가족인 미아는 그들의 과거사에 끼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두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의 서사가 메인인데도 그녀의 과거사를 그저 독백 몇 마디로 해결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전편에 이어 흑막으로 등장한 사이퍼는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 특유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제이콥의 조력자인 오토가 그를 배신하는 과정도 묘사가 매우 적다. 미스터 노바디가 모든 설정 구멍을 메워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되는 것이나 로만과 테즈 등이 단순한 개그 캐릭터로 전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토레토 가족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과거사를 통해 돔의 크루를 한 자리에 모두 집합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리즈의 난맥상을 정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러 감독이 오가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통일성을 잃고, 첫 시작으로부터 정체성도 크게 변한 상태였다. 브라이언과 한이라는 큰 인기를 모은 주조연 캐릭터가 각각 퇴장해 이야기의 풍부함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저스틴 린 감독과 오래된 캐릭터들의 복귀를 통해 액션보다는 가족 드라마를 강조한 선택은 이 난관을 정리하고 두 편이 더 개봉할 예정인 프랜차이즈를 안정적으로 끝맺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승부수인 것이다.
사실 이 시도를 온전히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양질의 액션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드라마도 의도와는 별개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쿠키 영상에서 예고된 속편을 끝끝내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최소한의 성과를 챙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과거를 통해 출발선으로 되돌아간 시리즈.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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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랑호에는 바닷물고기도 민물고기도 산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의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을 보지는 않았는데 전 세계 18개 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다고 하니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넷플릭스에서는 프랑스 버전의 <위험한 만찬>이 제공되고 있다.
<완벽한 타인>은 저녁을 먹는 동안 핸드폰의 모든 전화와 문자를 공개하는 게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모여있는 사람들의 묘한 감정싸움과 드러나는 갈등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외국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라서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이서진 배우님의 살짝 어색한 연기 빼고는 다 괜찮았다. 아마 이서진 배우님의 바른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인공들의 고향은 강원도 속초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관계성과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네 명의 친구는 석호인 '영랑호'에 모여서 월식을 기다리며 투닥거린다. 싸우는 이유는 영랑호가 바다인지 아닌지이다. 바닷물고기가 살고 있어서 바다라고 하는 친구와 민물고기가 살고 있어서 민물 호수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극장인 것을 잊고 '얘들아, 너희 둘 다 맞아'라고 말할 뻔했다.
두 친구의 이야기가 둘 다 맞은 이유는 석호의 특징 때문이다. 석호는 중·고등학교 과학 수업이나 지리 수업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이다. 원래 바다였다가 모래 퇴적층인 사주가 물길을 막아서 호수가 된 형태를 말한다. 바다와의 길이 완전히 단절되는 곳도 있고, 바다와 호수가 연결된 곳도 있다. 처음에는 원래 바다였던 곳이라서 염분이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민물인 하천의 물이 유입되면서 점점 옅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바다와의 격리가 모래로 된 것뿐이라서 지하를 통해 해수가 섞여 들어오기도 해서 흔히 이야기하는 담수 호수보다는 염분이 높다.
영랑호는 바다와 호수가 연결된 케이스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수를 기수호라고 한다. 이런 기수호는 담수호와 비교하면 플랑크톤이 풍부한 편이다. 민물고기와 바다물고기가 모두 사는 것도 당연하고 다양한 생물이 살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가치가 아주 높은 곳이기도 하다.
석호는 오랜 시간을 걸쳐서 형성되는 곳이기 때문에 영랑호의 나이는 많을 수밖에 없다. 8,000년 전에 생성되었고, 이름은 신라의 화랑이었던 영랑이 발견하면서 붙여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속초에는 대표적으로 청초호와 영랑호 두 곳의 석호가 있는데 청초호는 항구개발과 매립으로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영랑호는 호수 원형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100년 전보다 호수 면적이 조금 줄고 주변 습지와 연못이 모두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영랑호에도 시련은 있었다. 1980년대에 주변으로 유원지가 개발되었고 양어장, 낚시터, 주거지, 리조트의 오·폐수가 영랑호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악화되기도 했다. 수질이 악화되니 악취도 심해졌고 벌레도 많아지게 되었다. 결국, 1996년에는 깔따구 퇴치작업도 진행되었다. 2010년을 전후해서는 물고기의 떼죽음과 녹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있다 보니 영랑호에는 1993년부터 2015년까지 준설, 호안 정비, 오·폐수 차집관로 매설 등의 사업에 총 4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를 들였다. 지금 영랑호의 수질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속초시도 같은 생각인지 수질보호를 위해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곧 뒤통수를 치고야 만다.
영랑호에는 원앙, 수리부엉이, 수달, 가시고기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생물을 비롯한 다양한 종의 어류와 조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다양한 먹이가 있으니 다양한 동물들도 찾아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와서 탐조하시는 분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곳이기도 하고, 2013년 1월에는 국내 미기록종이 발견되기도 했다.
과거에 주변지와 내수면개발을 진행되면서 수질이 악화된 것을 경험하기도 했고, 수질보호를 위해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노력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가 개발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야금야금 영랑호에 카누 선착장을 만들었고, 호수 안에 모터보트를 허가해줘서 운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만큼만 해도 과잉 개발처럼 보이지만 생태가 좋은 곳이다 보니 영랑호와 그 주변은 끊임없이 관광개발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왜 좋은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속초시는 '영랑호 생태탐방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업은 호수 안쪽의 수면과 물가에 인공구조물을 대규모로 설치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부교다. 수많은 사업이 있었지만 이런 사업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부교는 물에 띄워놓는 형식의 다리다. 호수의 수면을 개발하게 되면 석호의 자연생태계에 큰 피해가 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수질 악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동안 인간의 간섭이 없었던 지역까지 간섭이 들어가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동·식물들에게도 부교의 설치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영랑호가 수면을 개발하게 되면 다른 문제도 생긴다. 인근 지역의 다른 석호들도 개발하려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성의 송지호와 화진포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조건의 자연이 개발되면 ‘유사 사례’로 언급하기 일쑤고, 선례로 악용하여 떼쓰곤 한다. “왜 저기는 되고 우리는 안된단 말입니까”가 먹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신청이 가능해지자 전국의 40여 곳이 넘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신청한 것과 같은 현상과 같다.
주민들과의 갈등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이미 영랑호는 과잉개발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구조물(데크 등)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서 도보로 인한 보행과 자전거 이용한 산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고, 약 1시간 20분 정도면 영랑호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업의 진행은 경제적인 효과 역시 담보하고 있지 않다. 속초시가 현재(라고 쓰고 뒤늦게) '관광수요 추정'에 대한 용역을 발주했지만 이미 개발 계획을 진행하는 중에 맡긴 것이니 신뢰하기는 어렵고, 심지어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쓴 예산이 코로나를 핑계로 집행했다는 것에도 신뢰가 무너졌다.
속초시에서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은 관광객들의 마음이다. 관광객이나 주민들은 영랑호에 '인공구조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러 오는 것임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속초는 1년 방문객이 2천만 명 정도라고 한다. 중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의 2/3 정도가 방문하는 것이고 이는 곧 오버투어리즘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관광객의 수를 늘리려는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관광산업에 대한 왜곡까지 불러올 수 있다. 특히 머무르지 않는 관광, 쉽고 빠른 둘러보기가 가능한 관광으로 획일화되면 오히려 고유의 생태적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속초시가 시민들이 반대하면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고선 사람들이 모이자 시민들의 모임을 환경단체라고 명명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이 모임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고, 심지어 학생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1인 시위도 하고 있고, 몸자보를 하고 걷기도 하고 있고, 반대 서명도 받는다. 속초시 인구의 3% 이상의 서명을 받았지만 역시 묵살되고 있다. 속초시는 지자체에 우호적인 단체들에게 부탁해서 찬성하는 현수막을 대대적으로 걸었다는 의심도 받았다. 의심은 현실인지 불법 현수막에 대해 신고했지만 걷어가지도 않았다. 시민들은 영랑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일 뿐인데 쉽지 않다.
영랑호에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들은 서로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갈등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울려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제 석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름답고 희귀한 석호를, 기수호를 이런 식으로 잃는다면 어른들은 영랑호가 바다인지 민물 호수인지 다투는 아이들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참 많은 것들을 빼앗으며 살아왔는데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마저 빼앗아서는 안 된다.
감독님이 이런 영랑호의 모습을 영화의 전반적인 모습으로 담고 싶으셨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와 조금은 같은 마음일 것이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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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가족, 보통의 뻔뻔함, 보통의 부끄러움
대형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변호사 재완(설경구) 부부다. 돈 많이 버는 변호사 재완. 여러모로 부러운 인생이다. 그 부러운 인생을 1000% 누리고 있는 건 젊은 아내 지수(수현)다. 온갖 럭셔리한 와인과 음식으로 매일을 즐기고 있는 지수. 부부사이도 좋아 재완에겐 사실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그 적지 않은 걱정거리 중 하나는 딸 혜윤(홍예지)이다. 아낌없는 주는 아버지인 재완. 체크카드건 신용카드건 선뜻 내준다. 심지어 공부까지 꽤나 하는 편에 인간관계도 좋으니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자상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 부부다. 어느 종합병원의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재규. 불친절한 의사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같이 친근한 사람이다. 아픈 사람의 보호자에게 공감할 줄 알고, 아내에게도 가정적이다. 심지어 강직하기까지 하다. 소속된 병원에서도 뛰어난 업무처리능력과 올곧은 성품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다. 친형인 재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선 훌륭한 사람이다. 심지어 아내 연경(김희애) 역시 약자에게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임과 동시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이다. 가족 간의 관계도 좋은 편인데, 또 치매에 걸린 재규의 어머니도 정성스레 보살필 정도다. 형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입이 안정적인 재규. 역시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몇 안 되는 걱정거리는 아들 시호(김정철)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호. 유일한 친구라곤 사촌누나 혜윤이다. 뭐 형제의 자녀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문제야? 두 부부가 딱히 이 둘의 사이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 사건이 터진다. 혜윤이 위축된 시호를 위해 친구들이 가득한 파티에 동행했고, 이 두 사람이 술김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사람을 죽였다. 과연 두 부부는 어떤 선택을 보여줄까?
지지부진한 타율 속 안타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가장 첫 번째 생각.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는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한국 상업영화에 문학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올해 흥행했던 한국영화를 보면 다 장르적인 쾌감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탈주>나 <베테랑 2> <파묘> 같은 영화를 생각해 보면 다 별개의 작품이긴 해도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있었어’라고 결론 내기 쉽다. 영화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쾌감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것에 반대선상에 있는 <리볼버> 같은 영화는 사실 사람들이 주연 배우의 기행만 기억하지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본작 <보통의 가족>은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밀하게 짜여있는 세상을 그대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글쓴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소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란 작품이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김기태 작가의 저널리스트적인 서술이 이야기 전면에 깔려있어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또 세계를 구성하는 세상에 대해 성실하게 묘사한다. <보통의 가족> 역시 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소설처럼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있어 어떤 장면은 종교를 끌어온다던가 먼발치서 촬영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너무 내밀한 사연은 쓰지 않도록 유도한다. 또 이 영화를 둘러싼 인물들의 판단과 감정, 세계관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재완과 재규 형제의 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시간순서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소설 초반 설정 설명하듯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심오한 작품성만 드러낸 영화다? 아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서도 뛰어난 스릴러물이다. 빠른 템포로 장면을 쳐내면서 이야기를 힘 있게 전개한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의 연기와 사건 구성을 기괴하게 보여줌으로써 기이한 동력을 촉발시킨다.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봄>이 장르적으로 좋은 영화였다는 점과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 광기의 근원을 묻다
이 영화에서 ‘보통’의 의미는 러닝타임이 가면 갈수록 변하고 있다. 초반부. 영화가 두 가족을 보여준다. 재완 가족은 쉽게 말해 금수저다. 돈이 많은 재완. 아버지가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딸 혜윤(홍예지). 혜윤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모도 예쁘고 아버지가 돈이 많으니까 평범한 학생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재규 부부의 아들 시호는 평범한 아들이다. 평범한 외모와 체형에 학원도 다닌다. 아마 성적도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호가 겪는 일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인물 내면에 고요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과 평범한 가족이 대칭을 이루면서 묘사되어 있다. 두 인물 간의 대비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영화가 인물 간의 차이점을 묻는다. ‘어떤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를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단순히 이 대비만 보여주면서 질문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라는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 첫째로 반복이다. 영화에서 유튜브라는 매체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맥락을 가지는 것이 있다. 두 가족 6명의 인물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보통’이라는 테마는 여기서 구현된다. 유전적으로 ‘보통’의 특성이 두 가족에게 그대로 구현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부분은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화 내내 빼곡히 반복될 만큼 작품이 채택한 모티브이기도 하면서 엔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거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형제는 한 쌍이다. 재완과 재규다. 보통 형제라고 하면 피를 나눴다는 말을 쓴다. 이런 생물학적 배경과는 반대로 영화에서 가장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재완과 재규다. 실리주의자인 재완과 윤리적인/도덕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재규. 두 인물은 이 영화의 윤리적인 딜레마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가 되면 두 인물은 다시 한번 엇갈린다. 두 형제가 영화 내내 으르렁거림에 따라 둘은 전혀 다른 인물유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전부 의도하고 묘사한다. 영화가 이 두 남자의 차이점을 부각하면 부각할수록 이 사람들이 유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보통’하면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 영화에서 두 남자가 공유하고 있는 ‘보통’은 일반적인 한국사회에서 범상치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통의 의미를 가장 일반적인 ‘가족’이라는 소재로 뒤튼 것이다.
여기서 이 보통의 의미를 뒤틀었다는 의미를 형제에만 국한 지으면 영화의 밀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어떤 것을 주장하는 데 있어 이 영화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두 형제의 자녀인 시호와 혜윤는 사촌관계지만 영화 안에서는 사실상 형제처럼 묘사된다. 아예 정반대의 상황에서 자랐지만 두 사람은 연대한다. 이 연대의 근거가 ‘두 사람이 친척(가족)이라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완 부부와 재규 부부의 공통점이다. 재완과 재규의 내면이 서로 엇갈리면서 두 사람이 형제인 것을 드러내고, 그것이 보통이라는 특성을 비튼다는 것과는 별개다. 이런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일반적이고 보통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비는 두 가족의 밖과 안에서 반복된다. 수많은 가족들이 영화 안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는데 가족을 넘어 인간 광기의 본질을 다루는 데 있어 적합한 이야기 흐름이었다. 딱 두 사람만 떼서 보여주기보다는 연이어 이어 붙이며 보통의 의미가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반복과 차이라는 테마를 밀도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을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의 역량 덕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어떻게 보여줬을까? 글쓴이가 위에서 적은 내용을 중심으로 써보자면 반복과 차이,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여주려면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각본 안에서 필요하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복잡한 것들을 인물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하게 보여줌으로써 ‘저 사람이 저렇고, 과거에 그 사람이 그랬네’라고 이해하기 쉽다. 이걸 영화가 카메라워크로 왜곡시키면거나 정면으로 보여준다. 또 템포를 짧게 잘라내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풀어지지 않게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연출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행복>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와 차이점이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글쓴이는 그렇게 생각 않는다. 이영화들(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감정적 전달력이 본작에서 여지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시 허진호다!’싶다.
좋은 각본과 연기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웰메이드'다.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문학적인 연출로 영화가 확실한 기획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또 설경구-수현-장동건-김희애 네 배우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꺼내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가로서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탄탄한 연출을 타고 도착한 엔딩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 광경까지 보고 나서 드는 생각. 과연 보통의 의미는 뭘까? 우리 안에도 이 영화가 상정한 '보통'이 있지는 않을까?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둘 것 같지는 않지만 2024년을 되돌아볼 때 우선순위에 있을 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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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979년 12월엔 '서울의 봄'이 오지 못했나
12.12 쿠데타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9년 10월 이후의 대한민국이다. 18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죽었다. 어수선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관련부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특히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중앙정보부다. 정보의 홍수가 멈출 곳을 찾지 못해 배회한다. 이 흐름을 독식한 건 전두광이다.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광. 박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본부장이 되어 중앙정보부의 이권이라는 건 혼자 다 빼먹고 있었다. 전두광의 폭주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니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전두광을 시골로 좌천시킴과 동시에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을 추천하려고 노력한다. 전두광이 다급해진다. 이러다가 군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친구 노태건과 함께 중상모략을 꾸미는 전두광. 전두광의 발상은 위험했다. 그의 위험한 계획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는 영화라서 좋아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중 최고는 스릴러로서 탁월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영화의 갈등구도는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하지만 이 안에서 역사적 고증은 살리되 가지치기에 성공한 플롯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부에 등장해 쿠데타의 핵심이 되는 정부 부처 캐릭터가 있다. 이 인물의 행방을 쫓는데도 이미 스릴러 한 편 뚝딱이다. 장소를 활용한 방식도 돋보인다. 전두광이 차 안에서 부하 군인들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공간도 잘 활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상화 캐릭터 서사도 단편영화 한 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클래식한 서스펜스 요소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구도 던진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대립구도도 흥미롭다. 이 둘은 군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방식이 합리적이게끔 느껴지도록 대립한다. 액션 신도 서스펜스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지략싸움으로도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문무겸비형 스릴러다.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하는 단계
또 영화는 이 전달력이 좋은 편이다. 이 전달력이라 함은 영화가 연출 방식 중 하나로 어떤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게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이 연출 방법 때문에 이야기 흐름을 못 따라가는 관객은 아마 드물 것이다. 친절하게 다 설명해 준다. 그런데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설명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명확한 사실이라고 해서 이야기 만드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제약이 더 달려있어서 극화가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장르적인 재미까지 챙겼으니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하는’ 고수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한국영화 중 최고인 듯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 있어 배우들의 연기력 대결이 대단했다. 특히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실존인물을 따라 하기보다는 본인만의 정공법으로 이 영화를 소화한다. 가령 전두광이 혼자 있는 장면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밑줄 쳐져있다. 사실상 영화가 초반부부터 ‘전두광이 어떤 인물인가’를 규정짓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미 실존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관객들이 다 알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정민 배우는 자기가 생각하는 악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황정민 배우가 긴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이 전두광이 그의 최고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태신 역을 맡은 정우성 배우도 감탄하는 장면이 몇 있었다. 이태신 캐릭터는 극화가 몇 번 됐던 인물이다. 그중 대표선수 격인 작품은 <제5 공화국>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포스’ 김기현 배우는 후대에 밈으로 길이 남는 명대사(“너 이 XX 그대로 있어!”)를 남긴다. 이 장면이 워낙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이 캐릭터 하면 폭발하는 분노가 연상된다. 정우성 배우는 이와 반대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관객을 설득하는데 집중한다. 이는 영화의 플롯을 생각해 본다면 정우성 배우가 작품을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주인공이 아닌 조연 캐릭터에서도 물 샐 틈 없이 깔끔한 연기를 보여줬다. 정상화 역을 맡은 이성민, 김오랑 역을 맡은 정해인, 노태건 역할을 맡은 박해준 등 조연/특별출연 캐릭터들도 영화를 빛내는데 기여한다.
존재와 부재
그러나 이 조연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은 국방부 장관(국방장관)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어떤 것’의 존재와 부재라고 생각한다. 이를 여러 인물을 대비시켜서 보여준다. 이 캐릭터 역시 이 대비를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그냥 평범하게 연기하면 이야기의 핵심이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배우는 유달리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하며 스크린을 장악한다. 국방부 장관의 어떤 부분이 결여됐다는 점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배우가 이런 역할 권위자(?)다.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주시는 게 신기하다. 내년 국내 영화제 조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내내 뜨거워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톤이 조금 차가웠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중반부까지 이야기 잘 끌고 간다. 하지만 후반부가 되니 살짝 늘어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과 이어지게 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엔딩에서 직접적으로 감정을 유발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야기 방점을 엔딩에 찍고 싶어 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엔딩 직전 후반부가 묻힐 수도 있다는 느낌? 사실 글쓴이는 영화 후반부에 이태신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이는 설득력도 있었다. 플롯에서 내내 공들여서 왜 이런 인물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런데 그럴 보람도 없이 엔딩에선 다른 이야기를 하니 아쉽다. 이마저도 사실이라 이런 엔딩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다 알고 이 영화를 보고 있다. 뒷맛의 씁쓸함과 실존 인물에 대한 분노는 우리 스스로 체화해야 할 일이지, 누가 떠먹여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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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묻지 않고 앞으로만 쭉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어디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데 듀스의 노래 가사가 튀어나왔다. 음악 좋지. 별안간에 어렸을 때 작게나마 소망했던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기타를 잘 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김광석 아저씨 멋있지 않나?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을 살짝 선망했던 시기가 있다. 아빠가 기타를 칠 줄 알아서 배우고 싶었으나 도레미파솔라시도 치는 것도 어려워서 접었다. 아. 노래 잘하는 것도 멋있다. 사실 이것도 실패했다. 기본적으로 내 말하는 방식이 목에 안 좋은 것 같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안 좋은데 복식호흡을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과학이론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네가 원하는 건 뭔데? 이 질문 '네가 원하는 건 뭔데?'는 나의 삶을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의 답은 그냥 내가 하고싶은 일 하고 살 것이라는 막연한 바람이다. 그들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원하는 건 그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도전하려니 안될 것 같은 겁이 나기도 한다. 점점 내가 세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나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맥도널드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면접에서 컷 당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거기서 잘 됐어야 했나. 괜히 멋진 사람들을 만나 눈이 높아져 애초부터 불가능한 걸 꿈꾸고 있는 걸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맞는데 말이지. 그렇게 미래고 인생이고 다 때려치우고 락밴드처럼 노래 부르는 미래가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나다. 과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건? 뭘 찾고 있는 걸까?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춘들에게, 아일랜드의 소년 하나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다고 한다. 왓챠의 3월 신작을 들여다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아일랜드에 사는 소년 코너는 어느 날 싱 스트리트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갑자기 가계 사정이 어려워져 자기 의사랑은 상관없는 삶을 보내야 하는 코너. 코너에 눈에 보이는 것은 싸움을 일삼는 학생들과 흡연자들이다. 또, 어딘가 좀 불안해 보이는 학교 친구들도 있다. 상큼한 10대 생활은 다 텄다. 근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교장 벡스터 수사는 이런 개판 5분 전의 상황을 방관하기만 한다. 아니 사실 방관만 하면 다행이다. 코너는 새 학기가 되자마자 싹수없게 생긴 배리에게 '호모답게 춤이나 춰라'라는 협박을 당한다. 이 상황을 겪은 코너. 벡스터 수사에게 잡혀가서 검은 구두 살 돈 없으면 맨발로 다니라고 면박을 듣는다. 자기 생각 외의 상황으로 사면초가가 된 상황.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그렇게 뭐같은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하교하던 도중에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라피냐를 보게 된다.
영화는 코너와 라피냐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한 하이틴 성장물이다. 코너는 라피냐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이에 밴드를 하고 있다고 뻥을 치게 된다. 잘 나가는 모델이었던 그녀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신박한 직업을 꺼낸 것이다. 노래의 s도 모르던 코너. 음악을 하던 형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음악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여자 꼬시려고 밴드를 결성한 소년들의 이야기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가 그렇지만 당연히 순탄한 시간만 있지는 않다. 라피냐의 남자 친구에게 벽을 느껴 좌절하기도 하고, 교장 브라운 수사를 위시한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기도 하며 현실적인 문제로 코너 자체가 속이 쓰리기도 한다. 영화는 음악 영화답게 뮤비도 찍고 공연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그중 탁월한 음악과 달달한 로맨스도 보이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뭐, 영화를 정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좀 웃긴 거긴 한다. 그런데 나는 (많지 않은) 독자들이랑 영화 가지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런 문항을 쓰는 것 아닌가. 이 문장을 쓰는 이유는 이 영화야 말로 통통 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려본다면, 음악 영화다. 장르적으로 뻔하다? 뭐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 음악과 영화가 잘 사는 영화는 몇 편 못 봤던 것 같다. 첫 번째. 10대 로맨스 영화의 역할로도 탁월하다. 자아의 성장을 통해 찾았던 사랑과 삽입곡들의 가사 둘이 시너지가 좋아서 관객을 더 쉽게 몰입하게 도와준다. 또 이 영화는 음악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To find you>이다. 팝송을 잘 안 듣는 나지만 이건 꾸준히 듣는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너 아니면 나 자신을 찾는 일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나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공부해야 하지 않나. 이 노래는 우리가 공감할만한 사랑의 속성을 가사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또 엔딩신에 나오는 가사가 슬펐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 글에다 쓸 수는 없겠지만 그 장면이랑도 잘 어울려서 찡했다.
3. 다른 장르물과의 차이점은?
<위플래시>가 생각난다. 똑같이 인성이 더러운 선생들이 나오고, 음악을 좋아하는 10대가 주인공이다. 이 <위플래시>는 장르적으로 스릴러물에 가까운 음악영화다. 주인공들의 미친 광기로 2시간을 채운 영화가 <위플래시>라면 이 영화 <싱 스트리트>는 히피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코너의 초반부 화장기법이나, 검정 코디에 빨간색 기타나 2022년 현재에도 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 분위기를 덧붙혀 주는 인물이 있는데, 주인공 라피냐다. 다양한 화장법이 잘 어울리는 미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어른들에게 대드는 영화의 줄거리가 외적인 요소랑도 잘 맞아서 시너지가 좋았다.
또, 이 영화는 대사를 잘 썼다. 사랑이 뭘까. 난 사랑은 '적당히란 없는 것'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적당히란 없다. 미친 듯이 몰입하거나, 될 때까지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인지 뭐든 피 토하기 전까지 다 갖다 바치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썼던 이유는, 후반부에 특정한 장면 때문이다. 엄청난 울림이었다. 마치 이 장면을 위해 그동안의 자아 찾기가 이뤄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장면에서 형과 동생의 대화를 통해 꿈을 위해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대사를 썼다. 또 이뿐만 아니라 도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가사도 몇 줄 있었다. 사실 우리 인생이 주인공과는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잘 안다. 이 형제로 사는 모든 이들에게 존 카니가 바치는 따뜻한 메세지만으로도 영화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4.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비교적 신인 배우들을 등판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연기가 어색한 것은 아니다.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코너의 밴드 친구들이 풋풋하고 귀여운 연기를 잘 소화해서 보는 내내 미소 지으며 볼 수 있었다.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비긴 어게인> <원스> <라라 랜드> 좋았던 사람들은 일단 재생 버튼부터 누르고 봐야 한다. 이 셋과는 다른 작품임과 동시에 '일단 노래가 좋은' 음악영화이기도 하다. 또 요즘 왓챠가 신작을 들이는 게 시원찮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긴 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어서 추천하기가 뭐했는데, 이 작품은 안 본 분들이 있다면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또 도입부의 나에게 공감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우리, 잘 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가지 못하면 절대 못 가니까 이렇게 두려운 것이 많은 것이다. 기회가 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자.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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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펜서' 리뷰
3월 11일,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시사회에 참석하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찰스 왕자와 결혼한 왕세자비이자 영국을 넘어 전세계로부터 사랑 받은 사람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패션에 관심을 가진 후, 특히 최근 바이커 쇼츠가 유행하면서 그녀가 패션 아이콘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다이애나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글들을 찾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해 이해한 채로 관람한 것은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영화와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1997년에 마무리된 그녀의 짧은 생애 중 말기에 해당하는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3일을 배경으로 한다.
러닝타임 116분, 영화 내 배경 3일에 다이애나와 그녀의 삶을 다 담으려니 굉장히 압축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리 넷플릭스에서 <윈저 이야기: 영국 왕실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에피소드 5 '비극의 씨앗'을 시청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81555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추가로 그녀의 생애가 간략히 정리된 마리 끌레르의 아티클을 공유한다.
이제 영화의 몇 장면들을 공유하면서 추가적인 정보와 감상을 남기려고 한다.
알다시피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비 역을 맡았다.
크리스틴은 다이애나에 대해 이해하고 그녀의 습관들을 캐치하고자 여러 영상들을 보고 2권의 전기를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스펜서>를 통해 오스카 후보에도 올랐는데, 다이애나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을 잘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강렬했다.
관람 전 읽었던 글에서 한 해외 평론가는 스펜서의 장르를 '스릴러'라고 표현했던데,
품위 있게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가족 스릴러가 그저 이 영화의 장르인 게 아니라 왕실 가족의 숨은 이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에서 다이애나 외에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앤 불린(Anne Boleyn)이다.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부인으로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간통 등의 혐의로 참수당했다.
영화에서는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전기를 읽으며 그녀에 공감하는데, 실제는 이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현실에서 앤 불린과 다이애나의 비교는 기껏해야 미미한 정도였다고 한다.
(출처: Newsweek)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공통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둘 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고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왕족과 결혼한 백작의 딸이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헨리 8세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과 같이
찰스 왕자가 다이애나의 언니 사라 스펜서(Sarah Spencer)와 불륜을 저질렀던 적이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둘의 비교를 통해 당시 영국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겼는지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다이애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는 '파파라치'가 있다.
그녀는 당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힌 여성으로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과 파파라치에 시달렸다.
심지어 이는 그녀의 죽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다이애나의 차 사고 당시 사람들은 그녀를 구하려고 하기보다 그녀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는 크리스틴의 표정과 숨소리를 강조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시선에 불안감을 느끼는 다이애나를 표현한다.
영화는 거울에 비친 다이애나를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이 역시도 외부의 시선에 시달리는 그녀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왕실 가족들과의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주방에서 음식을 먹는 다이애나의 모습이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거식증과 폭식증 등 심각한 식이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구대 양 끝단에 서있는 다이애나와 찰스 왕자,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검정 공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
위에서 말했듯, 영화는 3일이라는 시간적 배경 내에 그녀의 생애를 담으려 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다이애나의 타지마할 사진이 연상되었다.
다이애나와 찰스 왕자는 1992년 인도를 여행했는데, 찰스 왕자가 약속과 달리 혼자 출장을 떠나며 다이애나 혼자 타지마할을 방문해야 했다.
이 때 찍힌 다이애나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타지마할이 죽은 부인을 애도하며 지어진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이 사진은 굉장히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다이애나의 진실한 친구로 등장하는 매기.
그리고 매기가 남긴 메시지는 다이애나의 사망 26년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우리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이애나의 또다른 모습은 어머니로서의 그녀다.
다이애나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했고, 다이애나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녀는 어머니가 떠나던 날의 자갈을 밟는 발걸음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아픔에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다이애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왕실의 아이들은 태어나면 곧장 보모에게 맡겨지는데, 다이애나는 이를 반대하며 자신이 직접 돌보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다이애나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하는 모습과 다정함이 돋보인다.
<스펜서>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영화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색감과 미장센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앤 불린과의 비교는 관객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웠으며 전반적으로 너무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일부 장면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패션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왕세자비가 아니라 생애 내내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그녀를 잘 보여준 영화다.
3월이 여성의 달인 만큼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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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구출이 시작된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타일러 레이크로 돌아오는 《익스트랙션 2》,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헴스워스와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다시 한번 뭉친 작품. 조 루소와 앤서니 루소의 AGBO가 제작을, 조 루소가 각본을 맡았다. 골시프테 파라하니가 전편과 같은 역할로 출연하며, 다니엘 베른하르트와 티나틴 달라키슈빌리도 함께 열연을 펼친다. 《익스트랙션 2》는 앤디 파크스의 그래픽 노블 《Ciudad》에 바탕을 둔 첫 번째 영화의 속편으로, 앤디 파크스, 조 루소, 앤서니 루소의 원안에 페르난도 레온 곤살레스가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다. 《익스트랙션 2》에는 앤서니 루소, 조 루소, 마이크 라로카, 크리스 헴스워스, 패트릭 뉴얼, 샘 하그레이브가 프로듀서로, 앤절라 루소오츠토트, 제이크 오스트, 벤저민 그레이슨, 스티븐 스카벨리, 크리스토퍼 마커스, 스티븐 맥필리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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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펙트 케어>
영혼까지 탈탈 터는 ‘완벽 케어’ 서비스!
친~절 머리나는 그들이 온다!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CEO 말라,
알고 보면 일사불란한 한탕 털이 기업이다.
사람을 요양원으로
집과 가구는 경매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게 그들의 주업.
법꾸라지 그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법의 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말라의 케어 비즈니스에
순진한 양 같은 다음 타겟이 잡히고
더욱 더 완벽한 케어 서비스를 계획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