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1 14:48:29
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암살 스릴러 <파탈> 각본/연출 맡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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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나를 모른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데 속은 완벽하게 곪아 있다. 27살, 젊고 탄탄한 몸과 피부, 좋은 학벌. 남부럽지 않은 월가에서 일하고 집도 삐까뻔쩍하다.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 매일 아침에 피부에 팩을 하고 열심히 운동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모른다. 인간이지만 혐오와 분노 빼고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 서로의 명함, 입은 옷, 들리는 식당이 자신의 모든 것인양 뽐내고 비교한다. 내 명함보다 잘 빠진 명함을 보거나 내가 예약 못하는 인기많은 식당을 누가 예약했다고 하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점점 멈출 수가 없어서 티가 날 정도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나는 썩어빠졌다고. 나는 사람을 죽였다고. 게다가 즐긴다고.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놀랍지도 않은 듯한 눈동자로 그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 없다고.
이 영화를 단순한 싸이코패스영화라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괴로워하는 그를 보면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주변 사람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케이스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오늘의 주인공은 패트릭 베이트먼. 사이코패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주인공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다. 어느 정도냐면 어지간한 살인이나 괴팍한 장면들에 무덤덤하고, 살인 전에 신이 난 그의 미소와 율동이 귀엽게 느껴지고 있다. 아마 그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혹시 그에 비해 나는 용기가 없거나, 죄책감이 심한 것 정도는 아닐까.
영화를 관통하는 한마디는 초반과 후반에 나온다. 중요한 건 마지막 한마디다. 마스크팩을 벗으며 그는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Inside doesn't matter. 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모두들 실제로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름도, 대화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가지는 건 역시나 그의 겉모습이다. 탄탄한 몸매, 잘 태닝한 피부, 명품 스타일의 옷과 소품들. 아무도 그에게 잘 지내는지, 건강한지, 보고 싶었다든지 묻지 않는다. 시체가 든 가방을 보며 '워후, 멋진 걸'.하는 말에 '응 장 폴 고티에꺼야.' 라는 심드렁한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없다. 하긴 뭐 태반이 약에 쩔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일뿐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아메리칸 사이코에 워너비 도르시아(Dorsia)가 있다면, 현실에선 요즘 뜨는 인스타 맛집이 있을까. 우리도 봐왔지 않는가. 음식을 제대로 먹고 즐기기보다 사진찍고 그곳에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것이 지나쳐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누가 입은 옷, 쓴 화장품들을 찾으며 더 예쁘고 멋있어지는데 고민을 하며 시간을 잔뜩 보내기도 한다. 자기 삶이 어떻게 보이는지 푹 빠져 건사하기 바쁘다보니 다른 사람의 말은 영화처럼 한 귀로 흘려듣게 되기도 한다. 듣고 있으면서 듣고 있지 않을 때도 많다.
패트릭의 내면은 황폐하게 버려져 있다. 그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월급루팡처럼 십자말풀이에는 뼈와 살, 가슴, 피 같은 그의 머릿속 초유의 관심사를 적고 음악을 듣고 있다. 그러나 대체 그런 건 누가 신경쓰겠는가. 그의 부사장 지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나마 조금 가까운 약혼녀는 묻는다. 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 일 하는거야? 그의 답은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 맞지 않아도 맞춰서 살아보려고 한다는 거다. 그의 모든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것이다. 하버드 경영학과도, 어쩌면 클럽에서 하는 코카인, 머리스타일도 그냥 남들이 다 하는거라 그들과 맞추려고 시작한 것 아닐까. 그에게 자유나 개성이란 건 없다. 우리는 주인공인 패트릭을 보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는 어느 월가의 젊은 금수저 한량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손쓸 수 없이 망가지고 있고,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얘기했다. 우습게도 그가 가장 행복해보이는 순간은 이 모든 일련의 살인(혹은 그의 망상)을 고백했을 때이다. 왜 그렇게 기뻤을까. 늘 패트릭을 얼간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일을 저질렀고, 드디어 한 순간이나마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인정과 관심이다. 자신이 아파하면 남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고, 비정상적인 일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싶었던 것이다.
살인은 그가 생각하는 개성이자 새로운 힘의 표출방법이다. 패트릭은 똑똑하게 이 세계를 알고 있다. 화가 나면 뒷골목의 약자들을 찾아간다. 남들 앞에선 오, 우리는 노숙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입바른 소리를 내뱉는 그는 가짜다. 더럽고 냄새나고 무능력한 노숙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죽인다. 특이하게 자신의 동료를 한 명 죽인다. 그의 행동 중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위험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만 했다. 그의 자존심을 온갖 방법으로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도 꾸준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멋진 명함을 갖고 있고 식당 예약은 더 잘 하고, 게다가 그의 진짜 이름을 들먹이며 멍청하고 한심한 녀석이라고 욕한다. 더 이상 그를 더 모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그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과격하다. 뒷골목의 여자들을 학대한다. 자신이 이렇게 능력있고 탄탄한 체력을 갖고 있다는 자기애에 도취되어 거울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카메라까지 동원하는 남자라니. 특히 금발의 여자에게 엄청난 스크래치라도 입은 것인지 취향이 확고하다. 그가 만나는 여자는 모두 금발이다. 약혼녀, 내연녀 관계의 코트니, 비서 진, 에스코트 걸들까지.
이상한 점은 남자들처럼 그냥 죽이지 않고 여성의 경우 성적으로 유린하고 죽인다는 점이다. 힘과 권력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모든 여성은 그에겐 힘이나 지위든 어느 면에서나 밀리기 마련이다. 이건 그만의 생각은 아니다. 그의 동료들과의 대화에선 세상에 성격좋은 여자는 없다는 결론이 난다. 자신들의 온갖 성적 취향을 맞춰주고 멍청하지 않은 그런 여자는 이데아라나. 게다가 똑똑하고 성격좋은 여자는 없단다. 오 있댔지, 못생긴 여자. 그나마 약혼녀와 내연녀는 죽이려는 충동도 없고, 건드리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건 그가 새삼스레 일말의 보루가 있는게 아니다. 그쪽은 건들면 골치 아픈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과도 연루되어 있고, 숨기기도 쉽지 않다. 그들의 친구가 그의 친구들이니까. 비서나 에스코트걸들이야 돈이나 많이 찔러주거나 소리 소문 없이 없애버리기 어렵지 않으니까.
그의 살인에는 이상하게도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살인이라는 체력적 소모가 심한 노동에 필요한 노동요라도 되듯, 마치 이 상황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미끼처럼 혹은 음악 마니아처럼 그는 온갖 명곡들을 자체 bgm으로 틀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면 정말 그 곡을, 그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좋은 머리로 그럴싸한 평론을 외워서 읊조리고 있다. 외우느라 힘들었겠네, 정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는 생기있는 눈빛이나 감탄사보다는 기술적이고 덤덤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살인을 하기 위한 신나는 몸동작과는 대조적이다. 사실상 그의 개성을 표출한다는 살인마저도 다른 이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신경쓰는 식당의 요리라도 되는 양 살인 앞에서 고상한 말들을 늘어놓는 꼬락서니라니.
그가 실제로 사람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는 영화를 볼 수록 아리송하다. 그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그가 죽였다고 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판기에는 고양이를 넣어주세요 같은 말도 안 되는 광경도 펼쳐진다. 그가 시체를 숨기는 은신처로 썼던 폴 알렌의 집은 다시 찾아가보니 구조도 다를 뿐더러 시체도 없다. 영화 <블랙 스완>에 나오듯 그의 내면이 불어일으킨 환상일 수도 있다. 착하고 억눌린 백조에서 경쟁자를 찔러 죽이고 흑조로 재탄생하던 니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녀가 찌른 것은 자신이었고 누가 찔렸든간에 그녀는 자신은 완벽했다며 기뻐했다. 패트릭은 그의 넘치는 자신의 몸 사랑을 생각하면 자해를 했을 가능성도 적다. 또한 자신이 죽인(죽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게 그의 환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는 않다. 영화의 입장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오히려 무서웠던 건 마지막 독백 때문이었다. 불러도 답이 오지 않는 이 상황에 모든 걸 초월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 뭔가 저질러도 단단히 저지를 그 눈빛.
시도 때도 없이 그는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고 있고, 폭로하고 싶어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고작 그의 비서 진이 그가 끄적인 낙서로 알았을 뿐이다. 그는 길티 플레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기관리의 1인자처럼 착실해보였던 그가 사실 엄청 비틀렸고 못된 짓을 했다는 걸,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맞춰살지 않고 내 멋대로 산다는 걸, 들킬까봐 두려우면서도 어서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그에게 불안한 매력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그가 알고 있듯, 그가 아무리 무슨 짓을 해도, 설사 그것이 들킨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어차피 세상에서 죽어있는 존재이다. 그것이 영원히 그가 벗어나지 못하는 덫이다. 그렇게 살아있다고 소리쳐봐도 모든 것은 다른 삶의 소음에 묻힌다.
상상해보자. '패트릭 베이트먼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도 다같이 멈칫했다가 심드렁하고 예측가능하게 말을 돌리지 않을까. '아, 그 얼간이 녀석이요. 멍청한 짓은 다하고 다녔는데.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혔다가 인생 종친 하버드 녀석이죠', 하거나 '흠, 저녁은 어디서 먹지. 딱히 땡기는 곳은 없는데, 도르시아?'라고 하거나, '자자, 새로 산 명함이야. 어때? '아니, 내 꺼 좀 봐.' 하며 어깨에 힘주고 자랑하고 있겠지. 역설적으로 그가 홀대했던 내연녀 코트니나 비서 진 정도만 말문을 잃은 채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들이 그를 걱정해주면 믿지 않았다.
그렇다. 영화 < 아메리칸 사이코 >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선혈이 낭자한 살인이 아니다. 수많은 말이 오가도 진실과 내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익숙한 외로움. 남다를 것 없는 일상의 변하지 않을 단절감. 딱히 아메리칸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보편적인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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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기지 않지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 돈 룩 업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듣지 않으면 진실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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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발견은 위기의 발견이 됩니다.
지구에 큰 위기가 닥쳤고 그것을 처음 알아챈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명문대의 과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선거에 지장이 갈까 걱정하기 바쁜 정부를 뒤로하고 세상에 알려보지만 정치와 자극적인 이미지로 뒤덮인 세상은 실체적 진실이 눈 앞에 있는데도 '돈 룩 업'이라고 외칠 뿐이었죠.
그렇게 묻혀버린 진실은 눈깜짝할새없이 현실로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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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넘는 우리의 행동력은 소수에서 다수로 옮겨가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눈 앞의 이미지와 쇼의 즐거움만을 쫓고 지도자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여서 더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지구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생존한 인간들이 있는 한 같은 세상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우린 '룩 업'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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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신만의 블루스를 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우리들의 블루스 (2022)
편성 : tvN, 20부작 완결 │ 장르 : 한국, 드라마
연출 :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 │극본 : 노희경
출연 : 이병헌(동석), 이정은(은희), 김우빈(정준), 한지민(영옥), 고두심(춘희), 김혜자(옥동) 외
등급 : 15세 이상세 사람 이상이 추천하면 그건 봐야지
요즘 나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드라마에 입덕하는 일이 잦다. 그중 하나가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이정은, 이병헌, 한지민을 비롯해 고두심과 김혜자 선생님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드라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아, 배경이 푸른 섬 제주라는 것도. 내심 속으로는 ‘그 출연진을 가지고 재미없으면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를 본 주변 사람들이 그리도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니 궁금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주변에 세 사람 이상이 추천하면 재밌다’는 나의 법칙이 이번에도 통했다. 인물별로 나누어 에피소드를 진행한 점이 특히 독특하고 좋았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 대한 리뷰도 인상 깊었던 인물을 추려 인물별로 진행해보려 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한수와 은희 : 다시 잘 살아볼 기회를 주어 고마워
멀대 같이 크고 잘생긴 한수. 서울 사는 한수. 차승원이 연기한 ‘한수’는 제주 사람이 보기엔 그런 존재다. 학창 시절부터 때깔이 달라 결국 서울에 가더니 은행 지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제주로 내려왔다. 평생을 제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토박이 동창들은 그런 한수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모른다. 골프 유학을 떠난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한수의 재정상태는 거의 파산 직전이고, 그런 이유로 지쳐있는 아내와도 썩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때 눈앞에 ‘은희’가 나타난다. 학생 땐 그저 자신을 좋아하는 귀여운 여학생쯤으로 여겼던 은희는, 현재 자산만 10억을 지닌 알부자다.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었으나 빚만 늘고 있는 한수에게, 생선 대가리를 자르며 많은 것을 일군 은희는 참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직업의 귀천은 무엇이고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보이기 위한 삶과 진짜로 실속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나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조여 오는 궁핍한 상황에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던 한수는, 은희가 카카오톡 기프티콘 쏘듯 보낸 2억을 결국 다시 돌려보낸다. 은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때문도 있었지만, 어쩌면 정말로 ‘잘’ 살아보려는 의지였을 수도 있다.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정말로 만족스럽고 실속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은희를 보고 배운 덕이다. 한수는 골프 유학을 접고 돌아온 딸과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때 그 가족은 그제야 처음으로 행복해 보였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인권과 호식 : 절친에서 앙숙으로 그리고 다시 절친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인권과 호식’을 꼽겠다. <범죄도시>에서 감초 같은 연기를 보인 배우 ‘박지환’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응급실 선생님으로 나왔던 배우 ‘최영준’이 각각 인권과 호식을 연기했다. 이들의 사연인 즉, 학창 시절부터 죽고 못 사는 친구지간이었으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서로 얼굴만 봐도 으르렁대던 그들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복병은 바로 자식들이다. 인권의 아들 ‘현’과 호식의 딸 ‘영주’가 서로 좋아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을 하게 된 것.
아이를 지우고 서울대를 가겠다던 영주는 갈등 끝에 아이를 낳기로 하고, 산모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현은 학업을 포기하고 중국집 배달부터 귤 따기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순대를 팔아 아들을 공부시키는 맛에 살던 인권의 마음은 무너지고, 마찬가지로 딸을 서울대에 보내 의사를 만들려던 호식도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별 것도 아닌 일을 계기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던 인권과 호식은, 두 아이들을 매개로 하여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는데..., 과연 그 과정 하나하나가 진국이고 눈물 버튼이다. 드문드문 현실적인 나의 뇌는 ‘과연 영주와 현은 아이를 낳아 끝까지 잘 살았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내 인권과 호식을 보며 안심이 됐다. 엄마의 부재를 메꾸는 아버지의 사랑은 위대했고, 먼지를 털어낸 오래된 우정은 더 위대했으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정준과 영옥 : 어설픈 동정이나 위로 말고 정직함으로
한지민과 김우빈이 열연한 ‘정준’과 ‘영옥’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영옥은 육지에서 온 여자다. 서로 모든 걸 터놓고 지내는 제주 사람들과 달리, 좀처럼 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고 촐랑거리만 하는 영옥은, 같이 일하는 해녀들에게 눈엣가시다. 하지만 영옥이 그렇게 가벼운 것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었는데.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장애가 있는 쌍둥이 언니를 부양해야 했던 터라, 살아오면서 사람들로 인해 켜켜이 상처가 쌓여온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달아났고, 고아나 장애라는 조건에 섣부른 동정이나 무례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말하지 않기와 무겁지 않음을 택했을 뿐이다. 영옥에게 호감을 느껴 다가온 정준 또한 영옥은 그런 이유로 밀어낸다. 어차피 너도 똑같고 날 떠나갈 테니,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자르겠다는 심보.
하지만 연애도 통계학이고 경우의 수다. 열에 아홉이 떠나갔대도 묵직한 놈 한 놈쯤은 나타날 수 있는 법. 영옥에게는 그게 정준이 아니었을까. 가시 돋친 영옥이 “(장애 있는 우리 언니 보고) 많이 놀랐나 봐?”라고 물으면 정준은 “미안해”가 아니라, “나도 장애 있는 사람을 처음 보는 거라 당황할 수 있잖아. 천천히 적응하고 친해질게요”하는 식이다. 선 넘은 동정도, 무례함도 없이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를 이해하려는 정직함 만이 있다. 말없이 생선살을 발라 영옥의 밥 위에 올려주던 정준의 어머니도 그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런 거지 싶다. 투박한 날 것이더라도 과장 없이 오로지 이해하려는 그 마음을 ‘정직하게’ 보여줄 때, 사람의 마음은 열리는 게 아닐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제주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바다 같은 마음
왜 배경이 제주여야 했을까 하고 처음에 생각했다. 외계어 같은 사투리도 잘 못 알아듣겠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쉬이 이해하기 힘든 ‘오지랖’ 심한 정서도 너무 강한 탓에, 처음에는 거북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제주여야 했음을 머잖아 깨달았다.
‘선아(신민아)’는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떠난 차가운 남편이 아닌, 만물상 하는 촌스런 제주 남자 ‘동석(이병헌)’의 오지랖에 치유를 하게 됐고, 남이 흉이라도 볼까 가면을 쓰고 다니던 영옥도 제주 남자인 정준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배웠다. 언제든 두 팔 벌려 안아줄 것 같은 제주 할망 ‘옥동(김혜자)’과 ‘춘희(고두심)’는 모든 이들의 엄마였다. 경쟁이나 물질만능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그곳 제주에는, 촌스럽지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할 줄 아는 선한 마음들이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화해하며 끝나는 다소 진부한 결말이었음에도 이 이야기가 와닿는 건, 까끌해진 마음을 보듬는 따스한 인류애 때문일테다. 제주에서, 오지랖을 당하고 싶어진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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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평한 사회를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창문 없는 방>은 레바논, 중동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의 현실을 다룬 영화이다. 레바논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과 고충을 다루는 내용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 줄거리를 안 읽고 제목만 보고 봤는데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 먹으면서 보다가 답답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게 생각이 난다.
영화에서는 여러 사람의 삶을 소개하는데 그중에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서 지인의 소개로 중개인을 만나 레바논에 가게 된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기는 나름대로 유학이라는 꿈을 키우고 다시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계속 거기서 살 거라고 다짐하며 기대를 가득 안은 채 레바논에 간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자기 생각과는 정반대인 노동착취를 당하고 학대받고 온갖 비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분했고, 똑같이 배우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카팔라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으로 여성들의 자유, 인권과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했다. 여성 인권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나, <창문 없는 방>을 통해 낱낱이 여성 노동착취를 한 층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이런 인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래도 서서히 조금씩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묵인이 아닌 여럿의 외침을 통해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아직 여성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 나이대에 해야 마땅한 일. 공부면 공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기회, 자신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모두가 수긍하는 보상.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막연하게 뿌리 잡고 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심지어 누구는 이러한 생각조차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옳지 않다고,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와 가치관임을 알리도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제 여성분들의 삶과 인터뷰를 담아서 조금이나마 이 심각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길다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고도 짧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여성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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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나의 선택
<메모리(Memory)>(2023, 미셸 프랑코)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새 사랑을 찾은 주인공의 십대 자녀는 ‘방해’ 요소로 그려지기 쉽다. 반대로 부모의 연인이 십대 주인공이 겪는 갈등의 주 원인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허나 <메모리>의 애나는 엄마 실비아의 연애를 응원한다. 엄마의 연인 사울에게 제 방을 내어주고,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자 이모 집에 묵겠다고 하며, 나중엔 사울을 몰래 엄마에게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줄거리만 기계적으로 나열한다면 마치 해피엔딩을 위해 작가가 그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맥락에서 관람하면 ‘그럴 만 하다’고 받아들일 확률이 높고, 더 나아가 애나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그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메모리>가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오프닝 씬은 대조 메테리알에 가깝게 다가온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찍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 같기도 하다. 실비아의 금주 13주년을 축하하며 경험이나 심경을 털어놓는 AA(Alcoholics Anonymous) 미팅 맴버들의 옆얼굴과 함께 그들의 감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배경은 이 다음에야 등장한다. 이후 <메모리>의 장면들은 대개 공간을 먼저 파악하고 발화자 클로즈업을 자제한다. 실내라면 고정된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일도 잦다. 미셸 프랑코의 전작들에서도 자주 관찰되며, 때로는 감독 “자신도 놀라게 만드는” 관계 역학을 포착하는 방법이다. 이를 테면 <크로닉>(2015) 속 환자를 돌보는 데이비드를 비효율적으로 오래 촬영하는 씬들은 일상적인 노동과 더불어 방안에 쌓이는 유대를 담아낸다. 긴 숏이 이어지는 동안 화면에 드나드는 환자의 가족은 손님처럼 보인다. 와중 화면 구석이나 바깥에 몸을 숨기는 데이비드의 행동에서 그가 환자와 맺는 실질적 관계와 형식적 관계 사이 괴리가 나타난다. <메모리>는 비혈연 관계의 친밀함을 인식하는 <크로닉>보다 본격적으로 ‘선택 가족family’을 탐구하며, 공간을 기준으로 구성된 롱테이크에 가족relative 내 위화감을 담는다. 실비아의 동생 올리비아의 집이 대표적인 장소다. 올리비아의 가족과 애나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화목한 거실을 예로 들어 보자. 실비아가 들어오면 그와 다툰 상태의 애나는 짐짓 모른척한다. 엄마가 선물을 건네자 활짝 웃지만, 순간 올리비아의 남편 로버트의 낯에 한숨이 지나간다. 그는 아내가 실비아에게 종종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애나의 어린 사촌들은 별안간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침묵과 응시 또한 장면의 구성 요소다. 카메라는 발화자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정된 채 모든 인물을 균일하게 촬영한다. 감독의 말을 변형해 빌려오면 “관객이 감각하고 생각할 공간을 남기는” 연출, 각 인물을 이해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어긋나는 것들을 담는다.
영화가 남겨둔 공간에서 중요하게 감각되는 것은 ‘방을 읽는read the room’ 애나다. 영화 후반 올리비아의 집에 방문한 실비아는 엄마 사만다와 사고처럼 마주친다. 그가 아빠의 성폭력과 엄마의 적극적인 방관을 폭로하는 와중 거기 있는 모두를 가만히 바라보며, 카메라는 애나와 함께 방을 읽는다. 실비아가 과거 가정과 학교에서 견뎌 온 공기를 가늠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아동 성폭력을 사만다가 모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참 만에 전환된 숏에는 줄곧 카메라에 등을 보이고 있던 사만다의 정면이 포착된다. 그가 가장 보이고 싶지 않아할 얼굴이다. 죄책감,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2차 가해를 무방비하게 드러내며, 영화는 인물의 악마화를 지양하는 동시에 ‘관계 회복’은 늦었음을 설득한다.
애나는 거실 구석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다. 그는 할머니의 입장을 엄마의 폭로보다 먼저 접했다. 사만다가 자신이 하는 (‘휠체어 기증자를 찾는’) 일을 애나에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보여주고자 하는’ 영상 자료는 클로즈업되고, 이어 사만다는 실비아에 대한 선입견과 자기변호를 말한다. 애나와 사만다가 대화하는 장면들에서 영화는 스크린에 둘만 남겨놓거나, 여럿과 함께 있더라도 오로지 둘에게만 선명한 포커스를 둔다. 손녀가 제 말만을 듣기를 원하는 사만다의 심리, 위선을 은유하는 연출일 수 있다. 애나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물로, 상대방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연히 드러난 것’에 주목한다. 엄마의 트라우마를 알게 된 후 ‘집에 들일 가족’을 결정하는 이는 애나다. 실비아가 올리비아의 집을 뛰쳐나가며 뒤틀린 혈연에서 한 차례 벗어난다면, 애나는 집 현관에서 올리비아를 막음으로써 그 관계가 자신과 엄마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다.
다음으로 애나가 하는 선택은 친동생과 조카에 의해 자택에 감금된 ‘친구’ 사울을 구출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 실비아가 우울해하며 침대에 파묻혀 있을 때 애나가 음식을 가져다주는 씬이 있었다. 그 구도는 사만다와 대립하고 귀가한 실비아를 애나가 꼭 끌어안고 있을 때 사울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씬의 것과 유사하다. 이 찰나에 애나는 어쩌면 ‘다른 가족’의 그림을 보았을 수도 있다. 하나 더, 애나는 엄마의 통제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사울과 실비아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다면,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대가로 애나는 약간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해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실비아와 애나의 상호 보호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실비아는 타인을 들이기를 주저하며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곤 했다. 엔딩에서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문을 활짝 열어두고 청소기를 돌린다. 애나와 사울이 도착한다. 실비아는 빽빽한 소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애나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뒤돌아 깜짝 놀란다. 재회를 예상치 못했던 실비아와 여기까지 이른 과정을 잊은 사울은 포옹하고, 애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실비아의 시끄러운 기억에 애나와 사울은 틈을 만든다. 애나는 결정적인 순간 두 사람을 잇는다. 포스터에는 둘만이 있지만 주제에 가까운 스틸을 고른다면 이쯤이다. 최선이나 이상이 아닌 하나의 안, 해피엔딩보단 열린 결말이다. 여기서 영화가 ‘작은 곤란’의 찰나들을 놓치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사울은 실비아의 집 앞에서 쓰러졌고, 실비아는 사울과 처음 사랑을 나눌 때 응하면서도 불편해했다. 애나는 옷 입기를 잊은 사울을 목격하고 놀랐고, 사울은 한밤중 화장실에 다녀오며 어느 방문을 열어야 할지 몰라 주저앉았다. 위험과 불편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채로, <메모리>는 현재 이들이 찾은 집home은 세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미셸 프랑코는 꾸준히 ‘정상 가족’의 분열에 관한 인상을 표현해 온 감독이다. 이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 선택의 사례를 제안한다. 피가 항상 물보다 진한 것은 아니며, 너무 진한 피는 때로 독이 된다. 이 잔잔한 치유의 멜로드라마에는 택하지 않은 가족의 끈을 끊어내는 칼이 숨어 있다. 가장 마지막에 그 자루를 쥐는 이는 다름아닌 애나다.
* 참고 인터뷰
https://filmhounds.co.uk/2024/02/i-never-over-direct-them-director-michel-franco-talks-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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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섹슈얼 치정극
젊은 지휘자 안드레아(킴 구티에레즈)는 우울하다. 어느 날 연인 벨렌(클라라 라고)이 이별 영상편지만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 실연의 아픔에 힘들어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파비아나(마르티나 가르시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는 듯 그녀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벨렌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도 집 안 비밀의 방에서 말이다. 예전만큼 안드레아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벨렌은 사랑을 확인하고자 스스로 비밀의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열쇠를 빠뜨린 채 들어간 그녀는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벨렌은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적이기도 한 파비아나에게 계속해서 사인을 보낸다.
밀실에 갇혀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걸 보는 심정은 어떨까? 강도 높은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출되는 이 설정은 <히든 페이스>의 강한 동력이자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수위 높은 베드신과 노출 장면도 한몫한다. 영화를 보면 남자 친구를 향한 의심과 질투, 그리고 자신을 향한 사랑을 시험하기 위한 벨렌의 선택은 자칫 무모해 보이는데, 후킹한 설정을 보여주기 위한 수동적 행동으로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스스로 밀실에 들어간 이유는 안드레아의 바람기. 바이올린리스트와 묘한 관계를 이루던 남자 친구의 마음을 알아보고 예전처럼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이 위험한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밀실에 갇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마주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은 그녀의 질투와 그릇된 욕망이 주는 벌처럼도 느껴진다.하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이를 선회한다. 자신의 일이 있음에도 안드레아를 따라 지인 하나 없는 타지에 간 그녀는 사랑 밖에 없는 여자다. 마치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연주차처럼 사랑이란 신뢰로 그의 요구에 맞춰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밀실에 갇히고 남자친구의 본모습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차세대 지휘자의 여자친구, 능력이 출중한 남자의 여자친구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감독은 밀실에 갇힌 상황 자체가 벨렌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구조로도 활용하며, 문제 많은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한 여성의 탈출기를 보여준다.
문제는 관객을 사로잡는 독특한 콘셉트에 깔린 이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실 활용에 따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주는 부분은 좋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개연성과 그에 따른 디테일은 떨어진다. 특히 파비아나가 집 안에 벨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외면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이뤄진다. 더불어 수위 높은 베드신은 물론, 파비아나의 빈번하고도 의도된 노출은 벨렌의 분노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어 활용 부분에 아쉬움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히든 페이스>는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섹슈얼 치정극으로서 장단점이 명확한 작품이다. 완성도를 떠나 이 작품이 인도,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다는 건 그만큼 영화의 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반대로 빈 곳이 많아 각색의 여지가 많다는 것도 방증한다. 과연 에로틱 영화의 장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송승헌, 조여정, 박주현이 출연하는 리메이크 영화는 어떻게 나왔을까?사진 제공: (주)더블앤조이픽쳐스
평점: 2.5 / 5.0
한줄평: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고, 버티는 용한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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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데드 다루는 법 - 죽음을 거스른 내 사랑, 그대는 구원인가
살아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손자이자 아들 '엘리아스'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말러'와 엄마 '안나', 아내 '에바'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오열하는 남편 '데이빗', 반려자 '엘리자베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온 노부인 '토라'. 원인불명의 정전이 오슬로 전역을 덮친 이후, 죽은 이들이 다시 깨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덤에 묻혔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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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넷 해석' 영화 속 과학 원리 해설 영상ㅣ테넷 엔트로피ㅣ테넷 리뷰ㅣ테넷 해석ㅣ테넷 해설ㅣ테넷 과학ㅣ테넷 설명ㅣ시간의 엔트로피
? '테넷' 영화리뷰 및 과학해설(*스포없음)
영화 보기 전 봐도 좋은 영상"이 영상 그대로 여사친에게 설명해주면
여친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근데...난 여사친조차 없넹......이게 나라냐!!!!!"
- 테넷 과학 리뷰 제작 후기 by 건데
- 테넷 스태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 크리스토퍼 놀란, 에마 토머스
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베스 데비키 외
장르: 액션, 스릴러, SF, 첩보[2]
제작사: 신카피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촬영 기간: 2019년 5월 19일 ~ 2019년 11월 12일
개봉일: 2020년 8월 26일
음악: 루드비히 고란손
주제곡: 트래비스 스캇 - The Plan
편집: 제니퍼 레임
촬영: 호이트 반 호이테마
개봉 포맷: 2D · 4DX (2.20:1)[A]
Dolby Cinema (2.20:1[A] Dolby Vision|Atmos)
IMAX (1.90:1 / 2.20:1) 용산 IMAX 레이저 로고 (1.43:1 / 2.20:1)
상영 시간: 150분
제작비: 2억 500만 달러-시놉시스
당신에게 줄 건 한 단어 ‘테넷’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를 막기 위해 투입된 작전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닐(로버트 패틴슨)과 미술품 감정사이자 사토르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과 협력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
#테넷리뷰 #테넷해석 #테넷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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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질> 메인 예고편
배우 황정민 '인질'로 잡혔다!
평소와 똑같던 어느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대한민국 톱배우 '황정민'이 납치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 속
살기 위한 극한의 탈주가 시작되는데…
관객들을 사로잡을 리얼리티 액션스릴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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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돈 룩 업> 공식 예고편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돈 룩 업》 12월 일부 극장에서,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돈 룩 업》의 주인공은 무명의 두 천문학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란 사실을 발견한 두 사람은 언론사를 있는 대로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앙을 온 인류에 경고하기 위해. 애덤 매케이 각본 및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