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14 11:56:0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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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어렸을 때 한국식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돌아가신 분들이 들어와 제삿밥을 먹는다는 것을. 영화에 나오는 서양 귀신은 투명한 데다 발이 없거나 벽을 통과해 다니는데, 한국 귀신은 참 예의가 바르다. 문을 열어주어야 집에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한 비물질화 된 서양 귀신과, 완전히 물질화된 일본 요괴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
묘를 파한다는 의미의 <파묘>는 이렇게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몸으로 체험하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 영화로 실체화된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마주하고 보니 정말 독특하다.
한국인의 재미있는 특징은 굉장히 여러 가지 종교가 비교적 탈없이 잘 어울려 산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처럼 서로 다른 여러 종교의 기념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다. 한국은 대종교의 개천절,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기독교의 성탄절이 다 법정공휴일이다. 양력의 새해 첫날도 휴일이고 음력 설도 휴일이다. 한국의 전통 달력은 태양태음력이라서 해는 음력으로 계산하지만 24 절기는 양력이다. 띠는 절기를 따지는 것이므로 1월 1일이나 음력설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춘에 바뀐다. 또, 국기에는 동양철학인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과 괘를 넣었다. 태극과 팔괘는 주역에서 온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의 민속신앙은 여러 종교를 혼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민족의 사상과 철학은 이처럼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민족의 민속학, 민속종교
무당과 음양오행과 풍수. 이 세 가지가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다.
무당은 한반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는 사람과 그 신앙을 말한다. 제례의 방식이나 섬기는 신, 교리등이 무당과 교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주변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흡수하는 성격을 가진다. 삼국시대부터 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아 불교에 등장하는 신들을 섬긴 지 오래되어서, 용어가 불교 도교와 많이 겹친다. 근래에는 예수를 섬기거나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곳도 있다. 무당 자체의 정해진 교리가 없다 보니 타 종교의 경전과 철학을 끌어다 혼합한다. 중세시대에 음양오행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주역 등은 당시엔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었지만, 무당들은 그것마저 신점을 보는 데에 이용한다.
오행은 말 그대로 화, 수, 목, 금, 토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상생과 상극을 이루며 우주를 이룬다고 하는,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오행은 4원소설과 다르게 실재하는 물 불 흙을 이야기한다기보다, 그런 방식의 기운을 말한다. 이것의 관계도를 보면 마치 다섯 개로 하는 가위바위보 같기도 하다. 누구는 누구를 이기고, 누구는 누구를 만들고, 누구는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는 누구를 약하게 한다는 식이다. 원래 주역은 오행이 만들어지기 이전 학문이라서 음양만 있고 오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후대에 주역과 오행이 합쳐져 음양오행이 되고 사주에도 오행 해석이 들어가게 되었다.
풍수 역시 한반도에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민속학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 전체에 퍼져있는 학문이지만, 종교의 영역이라기보단 고대과학에 더 가깝다. 풍수는 원래 음양오행이 아니라 땅의 맥과 혈을 중요시하고 바람과 물과 땅의 흐름과 기운을 살펴 명당을 찾는 학문이고, 중간에 음양오행을 받아들였다. 음양오행은 형상이 아니라 기운을 말하는 것이지만, 풍수에서는 실제 사물과 대치시켜 거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풍수에도 여러 학파가 있고 거기에 따라 오행을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풍수는 음양오행을 받아들인 음택풍수가 주류였다. 한민족은 특히 풍수를 중요시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스님들이 국가적인 명당자리를 골라주곤 했다. 풍수를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 여겼기에 고려의 불교도, 무당과 불교를 미신이라 여기던 조선의 성리학도 풍수를 믿었다. 후대에 가서는 풍수가 너무 땅을 비싸게 사고파는데 악용되자 미신이라며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지만.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이런 민속학, 민속종교가 서로 공유하는 '음양오행'으로 연결시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흥미롭고 힘을 가진 영화적 소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파묘>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소재의 디테일함이나 완성도 있는 연출이 아니다. 바로 메시지가 다른 오컬트 영화와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계
심령, 귀신, 요괴, 악마 등 종교나 민간신앙, 신비주의를 다룬 오컬트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의 대부분은 그 종교를 겉핥기식으로 소재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의 이야기를 할 때, 내용 자체에 그 종교의 가르침이 깊이 스며들도록 만든다.
한국 고전문학 중에 <구운몽>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구운몽>을 짧게 줄이면 '팔선녀의 꿈을 꾸고 돌아와서 아 x발 꿈'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구운몽> 자체가 읽고 이해하면 불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야기 경전이다. 꿈을 꾼 성진에게 스승인 육관대사는 그럼 지금 현실은 꿈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지금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고, 그 꿈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그것이 윤회이며 공이다. 그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해탈하는 것이다. 성진은 팔선녀와 노닐던 것이 꿈이고, 꿈에서 깬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팔선녀 판타지를 섞어만든 불교 경전과도 같다.
장재현 감독은 이전부터 종교의 교리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중에서 신비주의 단체라고 여겨지던 장미십자회를 다룬다. 가톨릭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다. 거기에 주인공 최준호 아가토는 어릴 적 여동생이 개에게 물려 죽을 때,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 교리에는 인간이 가진 원죄를 중요시하고, 그래서 미사시간에도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의식을 한다. 최준호는 그 죄책감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악마는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린다. 악마와 싸우려면 온전히 자신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 <검은 사제들>은 내용 자체가 하나의 천주교 경전과 다를 바 없다.
<사바하>역시 마찬가지다. 불교를 다루지만 그중 주술과 신비주의 교리를 가진 밀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밀교는 오랜 시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비법을 통해 바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세 가지란 수인, 진언, 만다라다. 수인은 손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동작을 하는 걸 말하고, 진언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을 말하며 만다라는 수행을 위해 그려진 도형을 말한다. 작중에는 수인과 진언이 등장해 밀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쌍둥이이나 쌍둥이가 아니고, 쌍둥이가 아니지만 쌍둥이인 존재들이 서로 얽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드러낸다. 불이(不二)는 부처와 중생, 선과 악,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이 지점에서 기독교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무엇이 절대악인지 모호해진다. 선이라 믿었던 것이 악이고, 악이라 믿었던 것이 선이다. 혹은, 다시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파묘>는 민속학과 민속종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파묘>에서는 그 민족의 정신과 삶, 얼에 대해 다룬다.
조상의 한
LA에 사는 돈 많은 박지용(김재철)의 가족 남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환각과 환청을 듣고 정신착란에 시달린다. 무당 이화림(김고은)은 법사 윤봉길(이도현)과 함께 미국까지 건너가 그 진상을 파악해 본다. 그리고 조상의 묘의 터가 좋지 않아서 노하신 거라는 묫바람이라고 결론짓고 사람을 모은다. 김상덕(최민식)은 이화림과 종종 일을 같이하는 의열 장의사의 지관(풍수사)이다. 개신교 장로인 고영근(유해진)과 같이 장의사를 한다.
김상덕은 자리를 알아볼 때 흙 맛을 본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파묘를 한 곳에서 그는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향긋~하다"라는 말을 한다. 오행에서 흙은 사행을 화합하고 중화시키므로, 그 맛이 달고 냄새가 향긋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지용이 의뢰한 묘에 갔을 때, 그는 흙 맛을 보더니 쓴 것을 맛본 듯 퉤 뱉어버린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유교에서 나온 철학으로, 기본적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즉 불가지론의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를 포함한 모든 귀신이 나오는 종교와 믿음을 미신으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제사는 어떤 의미인가? 제사는 살아있는 자손들이, 죽은 조상에게 갖추는 효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에서도 그 특별한 개념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고,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것이 조상님을 섬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즉, 원래 유교의 제사는 귀신이 와서 밥을 먹고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에 도교와 민간신앙 등이 합쳐지고, 신분제도가 폐지된 후 너도 나도 좋은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제사가 화려해졌다. 유교의 제사가 자연스럽게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친다'로 흘러가게 된 것은 한민족 사회가 가족중심의 사회이고, 부모가 살아생전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대살굿과 파묘를 하고, 관을 꺼내고 나서 사고로 인해 관뚜껑이 열렸다. 거기서 무언가 험한 것, 한이 서린 조상의 영이 나오게 된다. 관에서 빠져나온 영은 LA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창문을 열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귀신이라니,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런데 그 영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것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박지용의 가족들은 그 묘의 주인, 박지용의 할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관을 열지도 말라고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에 대해 감추려고 했다면, 당연히 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할아버지는 백 년 가까이 제삿밥을 먹지 못했으니, 그 배고픔과 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한은 자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박지용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의문의 말을 남긴 채 죽는다.
끊어진 허리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기점으로, 영화는 허리가 끊긴 듯 완전히 앞뒤가 나눠진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생각하면, 앞 이야기는 그것을 여는 포문이었을 뿐이다. 앞부분의 분위기가 너무 괜찮았기에 뒤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이 그간 만들어왔던 영화들을 생각할 때, 민속종교와 민속학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내용은 그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우에 의해서 범의 허리가 끊긴 이야기.
여우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구미호'라는 간을 빼먹는 요괴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에서 최고로 무서운 요괴 중 하나가 하쿠멘콘모우큐비노 키츠네(白面金毛九尾の狐: 백면금모구미호)이고, 후지타 카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의 최종보스 요괴인 백면인도 그것을 모티브로 했다. 여우가 일본어로 키츠네인데, 키츠네 -> 기순애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층위로 해석할 수 있다. 범은 일본에는 살지 않았으나 조선에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범은 조선을 상징했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하자 각종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았는데, 그중 호랑이도 있었다. 호랑이는 결국 한반도에서 멸종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원래는 일본이 4 대국에 의해 분단될 처지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서방세력과 소련이 나눠 점령함으로써 독일이 당장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과 같은 운명에 놓여있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원래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분할통치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도 분할되어 버린 마당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만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거기엔 패망이 짙던 일본이 1945년에 원폭을 맞고도 항복을 미루고 미뤄 소련이 일주일 참전하게 해서, 콩고물을 얻어가게 한 일본의 책임이 있다. 일본은 소련을 중재자로 해 미국과 강화 협상을 하려 한 것이다. 소련과 미국이 땅을 나눠가지게 된다면 일본보다는 더 동북쪽으로 나아간 한반도를 분할하는 게 미국에도 유리했다. 결국 한반도가 분할통치를 받게 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셈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해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은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의 99.9%가 거짓이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쇠말뚝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실제로 그런 말뚝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일본이 풍수지리를 그렇게 잘 알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기순애라 불리는 일본의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실존인물인 무라야마 지쥰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라야마 지쥰은 일제 당시 조선의 민속학과 민속신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현재도 서점에서 팔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조선의 민속학에 대해서 잘 알았다.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은 풍수를 잘 믿는 조선인들의 기를 꺾으려는 통치방식이라 볼 수 있다. 쇠말뚝이 실재하느냐 아니냐 보다도, 그것이 박혀있다는 낭설이 퍼지면 그것 자체가 풍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간 해석을 하자면, 쇠말뚝은 진짜 쇠말뚝이 아니라 일제가 한국에 남기고 간 여러 사회적 문화적 잔재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해방 후 친일파의 득세, 사회에 전반적으로 심해진 가부장제와 군대문화 등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한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그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진 제국주의식 군대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영화 속에선 실제로 일어났다.
험한 것
가짜 이야기를 파냄으로써 진짜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친일을 했다는 박 씨 집안. 그는 기순애라는 스님이 점지해 준 곳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오로지 경도 위도의 방위만 쓰여있었다. 박지용의 고모는 기순애가 무라야마 준지라는 일본 음양사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왜 아버지가 그런 악지에 묻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일본에 충성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게 한 것이 아니라, 무라야마 준지는 그 충성심을 이용해 험한 것을 서둘러 가리는 뚜껑 정도로 그 무덤을 썼다.
일본의 요괴들은 한국의 영과는 다르게 원념으로 가득 차있으며, 실체가 있는 요괴들이다. 영만 상대하던 무당과 지관은 당연히 그 실존의 공포를 마주하곤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아마 500년 전, 일본을 무시하다가 엄청난 일본 군대의 실체 마주한 조선인들이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거짓이 진짜가 된다. 환상이 실제가 된다. 영이 요괴가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극한의 절망과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실체는 세키가하라에서 죽고 불멸의 존재가 된 오니(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불이다. 오행에서 불은 쓴맛이 난다. 그러므로 그 무덤의 땅은 향긋하지 않았고, 일꾼을 동티나게 만든 일본요괴인 사람얼굴을 가진 뱀 - 누레온나가 살고 있던 것이다. 그 오니가 세키가하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장수였고, "북으로!"라는 외침으로 볼 때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박지용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냈을 때, 이순신이 그려진 100원을 김상덕이 그 안에 던져 넣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괴의 몸에 칼을 넣는 주술로 오니 자체를 쇠말뚝으로 만들어버린 그 기괴함은 거대한 오니의 실체만큼이나 섬뜩하다. 그 민속종교의 모습은 그 민족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조상귀는 박지용의 할아버지처럼 자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화림의 할머니처럼 자손을 지켜주기도 한다. 일본의 요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쟁하다 죽은 장수로 만들어진 오니는 다이묘에 대한 충성과 북쪽으로 진군하며 모두 죽이려는 원만 남아있다. 일본과 한국의 귀신은 물성도 다를 뿐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주술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나무와 쇠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음양오행이다. 한국과 일본만이 요일 이름으로 음양오행을 쓰고 있다. 김상덕과 이화림은 처음부터 겪어보지 못한 험한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풍수와 무속을 음양오행적으로 섞고 변형시켜 대응해 왔다.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음양사는 한국에 저주를 내리기 위해 풍수를 이용했다. 오행에 의하면 한국은 목의 기운을 가진다. 장의사 앞의 나무, LA의 박지용 집 앞의 나무, 박지용 할아버지가 있는 산의 나무, 보국사의 다듬지 않은 원목기둥이 중요하게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목과 상극인 것은 쇠다. 쇠는 목을 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땅에 쇠를 박아 넣는 것이 풍수적으로 상극의 행위다. 또한 목은 오장육부로 따지면 간에 해당한다. 오니가 여우에 의해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인간의 간을 빼먹는 것은 또 그렇게 딱 맞아떨어진다.
이화림의 할머니가 오니를 막아서지만 그것도 잠시, 오니는 도깨비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김상덕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도깨비불, 오니를 마주한다. 이때 이화림은 무엇이든 해보려고 준비해 온 말피를 쏟아붓는다. 사실 한국 도깨비가 말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은 것이었다. 오니는 도깨비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다.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니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김상덕은 일본의 요괴는 음양오행이 실체화된 것이라 판단하고, 원래는 기운을 뜻하는 음양오행을 말 그대로 실체로 해석해 대응한다.
말피가 물이기 때문에 상극인 불, 오니를 죽이고 있다. 물과 나무는 상생으로, 나무를 강하게 만든다. 또한 상모에 의하면 강해진 나무를 쇠는 자를 수 없다. 실제로 물을 먹어 단단해진 나무는 쇠도 자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행 상극 개념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건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화된 존재의 오행을 따져야 한다. 존재하는 요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풍수에서 오행을 이용할 때도, 풍수는 실제 물과 나무와 흙을 보는 것이므로 오행의 상극과 반대로 해석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나무는 한국을 상징한다. 불과 검에 대항하는 피에 젖은 나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일본은 500년 전 포와 검으로 조선을 쳐들어왔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피에 젖은 손으로 7년 동안 나라를 지켜냈다. 100년 전 일제가 쳐들어와서 결국 조선을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었을 때도, 독립운동가들은 자주독립을 외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결국 오니를 피에 젖은 나무로 때려잡는 김상덕의 모습은,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짓밟아도 절대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쇠로 나무를 자른다고 할지라도, 그 피는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쇠를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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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사 앞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김상덕은 "풍수 문양이 절 이름에 그려져 있어서 의아했다"라고 한다. 그 문양은 바로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문양이다. 그 태극 문양은 성리학에서 받아들여, 성리학의 이기론과 음양을 설명하는 도상으로 많이 쓰였다. 조선의 어기로 쓰인 태극팔괘도의 태극문양도 바로 이 주돈이의 태극문양이다. 딱히 상징하는 문양이 없던 풍수에서는 음양을 상징하는 이 태극문양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불교는 음양오행 사상이 아니라 다른 상징하는 문양들이 많기 때문에, 주돈이의 태극을 쓴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성리학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쓸 리가 없으므로. 사실 알고 보니 그곳은 절이긴 했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풍수 때문에 쓰기도 했겠지만, 보국사라는 이름과 역할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태극문양을 쓴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풍수, 음양오행을 소재로 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일본은 절대악이니 배척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 없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우주를 이루는 기운이다. 우리의 땅을 유린한 일본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운 것이다. 한국이 목이라고 했지만, 사실 일본도 목이다. 오행으로 생각하면 일본과 우리는 형제와도 같고 바로 옆에서 서로 상생하며 나아가야 할 존재이고, 그 오행을 깨트린 일본의 침략세력을 견제하고 조화롭게 되돌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상생을 깨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칼을 나무에 꽂아놨을까. 보이는 칼이라면 파내고 뽑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칼은 파낼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칼을 지키는 묘도 많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굿을 하다 자꾸 오니가 떠오르는 이화림처럼 순간순간 더 섬뜩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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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이란?
시놉시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원고 250명의 학생들을 포함해서 305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이후로 기적적으로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과 희생자 부모들은 큰 트라우마를 겪는다. 김태현 무대 감독은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창설하고 연극을 통해 관객들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그중에 자체 지원한 희생자 부모들인 수인 엄마,애진 엄마,예진 엄마,영만 엄마,동수 엄마,순범 엄마,윤민 엄마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을 통해 승화시키는데...
자식들을 사고로 잃은 슬픔을 유가족들은 차마 말하지 못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이 유쾌한 연극을 통해 트라우마를 이겨내보려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준다. 자식을 잃고도 자신의 일에 전진하며 살아가는 부모도 있고 잊지 못해 유품을 정리하지 못한 가족도 나온다.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은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를 타기 전에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신 그 역할을 유가족 부모들이 하고 있는데 그중에 중도 포기하는 유가족 부모들도 있었다. 사실은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그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기 싫어할 테고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원하지 않는 엄마들도 있었기에 그 빈자리를 전문 배우들을 섭외시켜 메꾸었다고 한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은 각 지방으로 돌아가면서 연극을 시작했으며 자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 도착하지 못한 제주도까지 가서 간담회도 했다. 또한 후반부에서는 울컥한 마음으로 2021년 단원고에서 연극을 한다. 그전에 단원고에서 추모 팀으로 연극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교장과 교감 선생님의 반대로 무산됐다. 마지막으로 유가족 엄마들이 연극을 끝내면서 우는 모습을 보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 사고 앞에서 인명 피해가 났을 때 희생자들의 가족이 안게 되는 고통과 상실감은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장기자랑을 통해 알게 된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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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두 교황 - 넷플릭스의 한계를 깨부순 영화
<줄거리>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르골리오'는 '바티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가 차기 교황이 된다.
때는 2013년 '베르골리오'는 추기경 은퇴 고민을 앞두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어 전전긍긍 하던 도중 '로마'로 갈 생각을 하게 된다. 시기적절 하게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를
'로마'로 오라고 연락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만나, 현재의 카톨릭 교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의 은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임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바티칸에선 다양한 비리가 있었고, 결정타로 성 추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야기를 '베르골리오'에게 이야기 하며, 고해한다.
그 후,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로 떠나며, 1년 후 교황이 된다.
과연 그 둘이 나누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공개된다.
"실화에서 시작된 위대한 이야기"
<예고편>
<제작진&배우>
감독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필모그래피 : 눈먼 자들의 도시, 두 교황, 사랑해 리우, 콘스탄트 가드너, 시티 오브 갓
브라질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로
'시티 오브 갓'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브라질 영화제가 출품을 거부함에도 오스카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잡은 앞으로를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입니다.
이름 : 안소니 홉킨스
극중 역할 : 베네딕토 16세
필모그래피 : 양들의 침묵, 한니발, 토르 시리즈, 남아있는 나날, 두 교황 등 다수
'양들의 침묵'에서 표정 연기와 특유의 기분나쁜 연기는 지금 봐도 어떤 악역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소름끼치고 기분나쁘게 잘 하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는 배우입니다.
이름 : 조나단 프라이스
극중 역할 : 프란치스코
필모그래피 : 두 교황, 캐링턴, 왕좌의 게임 5, 우먼 인 골드, 더 와이프 등 다수
미국 영화나 드라마 종종 보시면 많이 본 배우로,
‘지아이조 시리즈’에 미국 대통령 역할로 나왔으며, 미국의 이경영 같은 느낌의 배우입니다.
‘캐링턴’ 으로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진짜 프란체스코 교황 그 자체였다고 말 할 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여담으로 ‘왕좌의게임 시즌5’ 에서 ‘칠신교’의 수장 ‘하이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다.
총 평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가치와 넷플릭스 영화는 그저 재미 위주라는 고정관념과
작품성과 예술성이 없다고 하며, 평가절하하는 평론가들과 아카데미의 편협한 생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시발점과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자진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플롯의 형태를 띄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교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아깝지만, '천문'이 있습니다.
처음 저는 이 영화를 보기전에 이 영화의 장르는 브로맨스 인 줄 알았지만,
이 영화는 브로맨스를 가장한 정치 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티칸'을 위해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사이의 밀약과 정치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루며,
우리가 잘 아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아닌 ‘베네딕토 16세’는 어떤 사람이며,
그 사람의 성향과 인자함, 관용, 생각 등을 보이며 대립과 타협을 잘 이끌어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단순하게 배우 둘이서 영화를 이끕니다.
그 말은 즉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이 이 모든걸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시퀀스는 사실 바티칸 하나로만 봐도 무방합니다.
영화에서 시퀀스는 대게 영화의 박진감 혹은 긴장감 또는 몰입도를 높이는데에 사용됩니다.
시퀀스가 적으면, 관객의 눈을 다른데에 못 돌려서,
배우의 연기력과 영화 그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 점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말하자면,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페인 축구의 장점은 '티키타카' 전술입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대사 하나를 짧게 던지거나 툭 치면
바로 ‘조나단 프라이스’가 흐름이 안 끊기게 바로 받아서 툭 받아치고,
그 분위기에 걸맞게 이용하는 감독의 연출이 더해져서
완전 유리한 홈경기와 같이 보여집니다.
연기를 잘해도 이렇게 티키타카 하는 건 상당히 힘듭니다.
‘천문’을 보면, 분명 '최민식’과 ‘한석규’가 정치를 위해 둘이 밀약을 하며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근데, 중간에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초점이 더 '한석규’에 맞춰지다 보니,
영화는 장영실을 메인으로 다루지만, 세종이 더 조명되며,
내가 세종대왕 이야기를 보는지,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보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두 교황에선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 둘다 같이 어느 한쪽에만 몰리지 않고,
서로 어색함 없이, 실제 친한 느낌처럼 대화를 주고 받는 느낌이라
전혀 어색한 느낌도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술술 풀어갑니다.
영화의 연출은 상당히 심플하다. 사실 연출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카메라는 그 둘만 비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카메라에는 진짜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체스코가 살아 숨쉬는 듯한 연기력을 담고,
그걸 매끄럽게 잘 이어붙인 감독의 실력이 깃들 뿐 입니다.
진짜, 잘 만들었고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못 받은 것은 아쉬운 따름입니다.
2019년 제가 본 넷플릭스 영화 중 단연 탑 3안에 뽑으라면 뽑을 영화였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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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허함을 가진 루저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짭벤져스
삶에는 우울한 순간들이 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그런 우울한 순간들을 만난다면, 삶의 방향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그저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 속에 답답함과 슬픔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 우울한 순간들이 쌓이면 마음의 응어리가 커지고, 그건 감정의 공허함으로 표출된다. 자신이 하던 일에 몰입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영화 <썬더볼츠*>는 마블 영화의 분위기와 조금 다르게 진행된다. 중심인물은 1대 블랙 위도우인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의 동생인 옐레나(플로렌스 퓨)다. 옐레나는 나타샤의 죽음 이후 암살자 일을 계속하며, 누군가를 살상하거나 다치게 하는 임무를 반복한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자신을 죽이려는 또 다른 암살자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옐레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그의 심리상태가 중심에 놓여 있으며, 특히 이번 영화의 빌런인 센트리/밥(루이스 풀먼)과의 연결을 통해 그 감정은 더 깊어진다.
[첫번째 감정] 옐레나의 공허함
옐레나는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언니를 잃었다. 타노스의 블립으로 몇 년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는, 블립 기간 중 나타샤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존재와 이별할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상실한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밝았던 부분이 언니와의 관계였을지 모른다. 그 외에는 옐레나에겐 밝음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어린 시절, 같이 훈련받던 동료를 밖으로 유인해 죽게 만드는 일을 시작으로 그는 철저히 암살자로 교육받아 성인이 되었고, 그저 어둠 속에 숨어 살인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었다.
정부는 옐레나를 언제나 암살자로만 대했고, 정의로운 일을 하는 히어로들과의 거리는 멀었다. 그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전문가였지만, 그 가치는 세상에 드러날 수 없었다. 그 반복되는 인정받지 못함과 무력감이 결국 옐레나의 공허함을 더욱 깊게 만든다. 아빠인 알렉세이(데이비드 하버)는 늘 엉뚱한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고, 나타샤의 죽음 이후엔 옐레나를 피하기까지 했다. 그는 의지할 가족조차 없었다.
그런 옐레나가 이번 영화에서 만난 건, 자신처럼 무너져본 사람들이었다. 존 워커(와이어트 러셀), 에이바(해나 존 케이먼), 버키(세바스찬 스탠), 그리고 밥은 모두 과거 루저였거나 현재 세상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다. 옐레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공허함을 공유하고, 공감받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고, 비로소 그 안에서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어둠 속에 내리던 그림자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두 번째 감정] 밥의 공허함
밥은 영화 초반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아무도 그에 대해 아는 이 없이 등장한다. 사실 그는 과거 마약 중독자였고, 실험 지원자로 정부의 비밀 초능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오랜 잠에 빠졌던 인물이다.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스 드레퓌스)가 주도한 그 실험은 어벤져스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실험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잔혹한 실험이었고, 결국 센트리라는 위험한 존재를 만들어냈다.
밥이 센트리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가진 어둠이 드러난다. 그는 본래 순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물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된 공허함은 엄청난 초능력과 맞닿으면서 파괴적인 성향으로 변질된다. 센트리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을 어둠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만든다. 결국 센트리는 밥이 만든 또 하나의 자아이자, 과거의 상처가 만든 괴물이다.
그 괴물과 싸우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건, 자신도 어둠을 품고 있는 옐레나와 썬더볼츠 멤버들이다. 그들은 누구도 완전한 영웅이 아니지만, 밥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그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과거가 어땠든,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밥은 그렇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세 번째 감정] 루저들의 따뜻함
썬더볼츠의 멤버들은 사회로부터 버려진 존재들이다. 옐레나는 암살자였고, 존 워커는 캡틴 아메리카였지만 민간인을 살해해 사회에서 퇴출되었다. 알렉셰이는 레드 가디언으로 과거 러시아에서 슈퍼솔저로 활약했다. 과거 에이바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고스트 슈트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빌런이 되었다. 버키는 오랜 세월 세뇌된 암살자 윈터솔저로 살았고, 자신의 의지로는 끊어낼 수 없는 과거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도 자신을 루저라고 생각했고, 세상 역시 그렇게 규정했다.
그들이 진짜 변하는 건, 부속품으로 쓰이던 자신들을 벗어나 서로의 공허함을 드러낸 순간부터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다. 썬더볼츠는 단순한 팀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가 된다. 영화에서 옐레나는 그 중심에 선다. 혼자 어둠을 통과했던 사람이, 다른 이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존재로 성장한다. 그 변화가 영화의 감정을 이끈다.
무엇보다 <썬더볼츠*>가 특별한 건, 그 따뜻함이 조롱조차 품어 안는 데 있다. 영화는 스스로를 ‘짭벤져스’라고 비웃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둠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며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성난 사람들’ 감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분위기의 마블 영화
<썬더볼츠*>는 마블의 기존 세계관 안에 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액션보다는 심리적 서사에 집중한다.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어두움, 외면당한 트라우마, 그럼에도 서로를 위로하려는 따뜻함이 중심이다. 어찌 보면 히어로물보다는 심리치료 영화에 가깝다.
타노스 이후, 계속 힘을 잃어가던 마블의 흐름을 바꿔주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플로렌스 퓨는 블랙 위도우라는 새로운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감정 연기의 폭이 넓고, 이 역할을 아주 설득력 있게 완성해냈다. 플로렌스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도 직접 해냈고, 그의 얼굴이 화면에 자주 등장하면서 심리적 변화를 잘 보여준다. 세바스찬 스탠, 와이어트 러셀, 해나 존 케이먼, 루이스 풀먼도 자기 캐릭터의 무게를 단단히 지킨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성난 사람들>로 국내 팬들에게 인상 깊은 인장을 남겼던 제이크 슈라이어 감독이 맡았다. 과감하게 분위기를 달리한 이번 작품에서 그는 캐릭터의 내면과 심리를 차분하게 끌어올리며 이전 마블 영화들과는 다른 무드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블랙 위도우>와 <팔콘과 윈터 솔져>, <호크아이> 시리즈 등에서 활약한 에릭 피어슨이 각본을, <더 배트맨>, <듄>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들려준 마이클 지아치노가 음악을 맡아 마블 영화의 세계관 안에서도 감정에 집중한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흔한 히어로 액션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인물들이 다시 살아가려는 이야기로 무게중심을 옮긴 선택이 반갑다.
이 영화는 2개의 쿠키 영상으로 마무리되며, 이후 등장할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암시한다. 뉴 어벤저스라는 이름이 어색할 정도로, 이 팀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고 진짜 같은 영웅들이 아닐까. 공허함과 상실, 어둠과 따뜻함. 이 감정들을 이토록 정밀하게 풀어낸 히어로 영화는 많지 않다. 공허한 마음에 묘한 울림을 남기고 싶다면, 이 ‘짭벤져스’의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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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를 영화로 배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서재페? 예매 실패했죠.✨
근데 감성은 놓치기 싫어서요.
🎷스크린으로 즐기는 재즈의 밤, 이건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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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자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이 있을 뿐
* 범인 스포 없음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한 최악의 선택이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이걸 정주행하느라 이틀을 버렸다.
내가 많은 추리물을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 본 추리물 중에서는 가장 재밌는 추리물이다.
#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백악관의 총 관리자였던 윈터가 살해된다. 그를 중심으로 두고 백악관의 직원, 대통령, 유명 인사들의 관계와 그들의 진술들을 풀어나간다. 누구는 그에게 약점을 잡혔었고, 누구는 그가 재수 없어서 싫고 등등. 여러 증거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통령의 친구나 대통령의 말썽쟁이 가족들, 백악관의 직원들이 이 드라마의 용의자와 목격자가 되어 주기에 미국 정치 풍자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미국식 농담 개그들도 함께 이 추리물에 곁들어 있다. 사치와 패악을 부리는 낙하산 관리자들과 고통받는 직원들. 그들의 무능함이나 혹은 무례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웃음 포인트들이 된다.
또 기득권층을 가득 채우는 백인 남성들에 대한 풍자 개그들도 더러 있다. 아무것도 못하고 여성 탐정을 닦달하는 FBI, 경찰, 고위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추리를 그냥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세계 최고 탐정의 우아함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 드라마의 연출
드라마의 연출이 상당히 신기하다. 추리물을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보통 추리물은 탐정의 시선을 따라서 현재 탐정이 초점에 둔 사건 혹은 인물의 뒤를 캐면서 진행된다. 내가 보았던 나이브스 아웃이나 오리엔탈 특급 열차나 혹은 다른 추리물들도 비슷했다.
다만, 이 드라마는 마치 따지고 보면 미국 시트콤이나 혹은 다큐멘터리의 진행 방식과 닮았다.
어느 인물이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사건에 관련 있는 모두가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방식이다. 탐정이 인터뷰나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를 타임라인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진술들을 퍼즐처럼 맞추어가는 형태다. 그렇기에 그전의 사건이 어땠는지를 시청자인 우리도 생각하며 보게 만든다.
또 이 드라마는 사건 현장인 백악관뿐만 아니라 청문회와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백악관에서는 탐정이, 청문회에서는 탐정에게 취조 받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이 조금씩 해결되는데 탐정은 어디 있는지? 이 청문회 장면은 왜 나오는 건지? 이 또한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볼 몫으로 남겨진다.
# 매력적인 탐정
코델리아 컵 탐정, 흑인 여성 탐정이고 위에서 말했듯 상당히 우아하다.
조류 관찰자? 탐색가?라서 탐조하는 것이 취미고, 수사 방식부터가 새들의 사냥 방식 혹은 생존방식에서 영감을 얻는다. 내가 추리물을 많이 안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잘난 탐정이 서민들을 무시하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 퍼즐을 맞춰놓고 이것도 몰랐냐? 이 바보야? 하고 농락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탐정이 누누이 말한다.
"용의자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건 혹은 인물이 있을 뿐이죠."
그 말처럼, 탐정의 수사 방식은 한 사람 혹은 증거에 꽂히는 것이 아니다. 탐정은 최대한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은 사람과 만나며 그들의 진술을 기억한다. 설사 그들의 진술이 도대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하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신중한 성격이어서 항상 문을 닫고 얘기를 했다든지, 대통령의 장모님이 술 중독이라든지, 그날 오기로 했던 가수가 안 왔다든지. 그러한 진술들을 자신의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해둔다. 그들의 인상착의, 말하던 말투, 특기, 하다못해 방 안의 그림들까지.
팀장은 침착하고 그리고 우아하게 사람들을 심문한다. 탐정이 자주 쓰는 방식은 "침묵"인데 사람들 앞에서 침묵을 통해 그들이 찔려 하는 부분을 술술 불게 만든다. 반은 변명이고 반은 거짓말이지만 탐정은 그러한 거짓말 또한 차분히 들어주며 하나의 조각으로 삼는다.
맨 마지막에 가서야 처음에는 상관없어 보였던 모든 조각들이 모인다. 탐정은 그것을 천천히 맞춰나간다. 우리가 천 피스 퍼즐을 사서 바닥에 풀어놓으면 꼭 안 이어질 것 같은 퍼즐들이 난잡하게 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조금 느리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정석적인 추리처럼 느껴졌다.
# 추리물이란
나는 추리물에 대한 편견이 좀 있다. 어릴 때 봤던 코난도 그렇고 조금이지만 봤던 셜록도 그렇고 전혀 모르겠는데 그들은 나름의 "트릭"을 발견했다며 기가 막히게 사건을 해결한다. 꼭 "저기 창틀에 물방울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마 어제 새벽에 비가 왔는데 그때 미처 재킷을 털지 못한 스미스 씨가 아침에도 그것을 입고 와서 바쁘게 일을 하느라 미처 못 닦았던 그 물방울이겠죠?" 식으로 진행되니 그다지 명석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싶다.
다만 이 사건은 조금 친절하게 그리고 천천히 진술을 모으면서 진행된다. 또한 추리물보다 코미디인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들이 웃기고, 또 누구 하나를 용의자로 선택하지 않아서 오히려 덜 긴장한 상태로 보게 된다. 이 드라마의 흐름에 나를 맡기다 보면 어느새 퍼즐이 모아져 있다. 아마 추리물의 놀라운 트릭이나 그들의 명석함, 혹은 천재적임을 기대했다면 코델리아 컵 탐정의 천재력은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함께 풀어나가는 문제 풀이식 추리물 + 코미디를 원했다면 상당히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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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감 최고! 다시 돌아온 마형사, 범죄도시2
?Rabbitgumi 입니다!
마형사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범죄인도 때문에 베트남에 가면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거기서 장첸보다 더한 악당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영화는 마형사의 액션감을 극대화하고 유머도 레벨업을 했는데요.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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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을 압둔 대학 새내기와 인간관계에 지친 청춘을 위한 영화
환몽(幻夢) CINE Pick's!_ 입학을 앞둔 새내기들을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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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운트> 메인 예고편
⚡긍정 파워⚡ 텐션 끌어 올↗려~! 파이팅이 필요한 여러분에게 딱 맞춤! 영화 [카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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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닮은 역사 예고편
산 자여 기억하라!
5월의 ‘광주’를, 5월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1980년 5월 18일 좋은 빛(光州, Good Light)이라는 뜻을 가진 ‘광주’의 시민들이 신군부 세력에 의해 7천여 명이 무고한 희생을 당하고 있을 때, 좋은 공기(Buenos Aires, Good Air)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가 권력 또한 3만여 명의 시민들을 실종자로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두 도시의 같은 이름처럼 놀랄 만큼 닮은 학살의 고통. 아직도 아픈 역사 속 시대를 겪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남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광주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라지고 있는 항쟁의 흔적을 복원하라고 투쟁한다. 강제 실종된 자식을 찾고자 77년부터 시작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머니들의 5월 광장 침묵 행진은 지금까지도 같은 마음으로 계속된다.
평범했던 그들을 움직이고, 깨닫고, 투쟁하게 했던 국가 폭력의 기억은 이제 시대를 넘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달돼 추모와 애도의 현재적 의미를 다지고, 우리가 정립해나가고자 하는 미래로 향해, 분명 더 좋은 빛과 더 좋은 공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