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14 11:56:0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Relative contents
-
- 비워지고 채워지는 우리의 인생
비워지고 채워지는 우리의 인생
영화 <창밖은 겨울>
감독] 이상진
출연] 곽민규, 한선화
시놉시스] 고향 진해로 내려와 버스기사가 된 석우는 터미널에서 우연히 고장난 MP3를 줍는다. 유실물 보관소를 담당하는 영애는 내다버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석우는 누군가 잃어버린 분실물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날 버리고 온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 사이 어느덧 가을을 지나 창밖은 겨울을 맞이한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포스터 속에 들고 있는 따뜻한 커피처럼 이 영화도 따듯함을 선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 봤던 영화 <창밖은 겨울>.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비워지고 채워지는 그 감정이 오롯이 잘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빈자리를 시각적으로 잘 풀어내다
영화 <창밖은 겨울>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효과는 빈자리를 굉장히 잘 느껴지도록 화면 구성을 했다는 점이다. 초반 영화 프레임 안에서는 굉장히 많은 물건들이 잡히면서 꽉꽉 채워진 느낌을 받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실물 보관소 자리에 여직원 휴게실이 들어오면서 짐을 다 치워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그 때 싹 정리된 빈 공간의 유실물 보관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채워져 있던 자리에 물건이 사라짐으로서 느껴지는 난자리를 공간적으로 한번에 와닿게 잘 표현하고 있었다. 더불어 영화인의 길을 걷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버스기사로 취직하면서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던 책장 속 빼곡히 채워져 있던 책과 영화 dvd들을 하나씩 치우면서 비워져 가는 책장을 천천히 보여줄 때 그 빈자리가 강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창밖은 겨울>에서는 이렇게 사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시각적인 빈자리를 통해서 감정적인 공허함을 한층 끌어올리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은 미련일까? 후회일까?
주인공 석우는 버스에서 발견된 mp3를 유실물보관소 담당자인 영애에게 가져다주면서 혹시 이 mp3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알려달라 신신당부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mp3가 자신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줬던 mp3와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직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석우는 비슷한 mp3를 보면서 떠나간 여자친구에 대한 미련을 보이면서, 버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애는 한 여성이 이 mp3를 버리고 가는 것을 보았고, 이를 석우에게 이야기하자 석우는 처음으로 영애에게 화를 내고 만다. 석우에게는 그나마 있었던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석우는 아직 자신이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미련이 남아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석우가 미련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영애는 과거에 대해 후회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 탁구를 하던 영애는 너무 힘들었던 탁구 선수로서의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탁구채를 옆집 마당으로 던져 버렸고, 그 당시에는 홀가분한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면서 그 때 한 선택이 정말 옳았을까? 하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다시 마을에서 열리는 탁구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이번에는 후회 없이 탁구를 한 번 쳐보겠다 다짐을 한다. 이렇게 영화 <창밖은 겨울>은 우리가 과거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후회와 미련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는 법
석우와 영애는 그렇게 mp3를 통해서 가까워지면서 스스로에게 더 다가가고, 알아간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였다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생각의 차이로 한 번 다투고, 다시 화해를 하는 구조라면 영화 <창밖의 겨울>은 스스로의 내면과 친해지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이 혼란 덕분에 잠시 소원해졌다가 스스로 과거를 어느 정도 비우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다시 가까워지는 스스로의 성숙을 통한 타인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어서 새로운 방식의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주제를 통해 영화 <창밖은 겨울>은 과거를 비워내야 현재의 내가 다시 무언가를 채우고 이를 통해 다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영화 <창밖은 겨울>은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비워지는 공허함과 다시 채워지는 따뜻함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
- 애도를 위한 애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Show Me the Way to the Station, 2019
일본 | 드라마 | 126분
감독: 하시모토 나오키
애도를 위한 애도,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관객에게 집요하게 잊고 있던 이별을 떠올리게 하고 상실에 허우적대던 과거를 다시 경험하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슬픔과 아픔을 꺼내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원했던 것처럼 묻게 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어렴풋이 다들 짐작하고 그러려니 하던 '역'의 존재를 아이와 같은 입장에서 되묻는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대체 그 역은 어디 있는 걸까?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여기서 우린 사야카가 말하는 '역'의 존재를 이미 잘 알고 있다. 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장소, 산 사람들은 결코 밟을 수 없는 영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야카의 옆에 서서 묻는 거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럴 수 없는 아이러니함,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명제 때문이다.
그를 영영 잊어버릴까 봐 절절한 그리움과 괴로움조차 함부로 놓을 수 없는 그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우린 그 행위와 시선, 모든 마음의 조각들을 엮어 시간의 길을 만들고 이를 '애도'라 부른다.
출처: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스틸컷(다음)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장면 곳곳에 감정의 활력을 불어넣지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사실 언어(음성)가 제거된 무성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대사보다 인물의 행동으로 사건을 강렬하게 그리는 방식이 이 작품만의 남다른 표현 방식이다. 감독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음성언어보단 인물들의 손짓과 눈빛으로 차근차근 전개하면서, 상실과 그리움을 화면 가득 채워 넣는다. 섬세한 몸의 언어와 절제되어있지만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출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과 감동 포인트를 쉽게 점령한다. 이 지점엔 반드시 영화의 스토리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명확하게 이해했다는 전제조건이 필수인데, 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사야카가 전철이 지나간 뒤 철로에 난 길을 건너는 장면까지 단 3분.
이 짧은 장면엔 길을 걷는 내내 허공에 팔을 뻗은 사야카의 모습이 전부다. 그러나 우린 아이를 통해 영화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눈치챈다. 아이는 아직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며, 이별로 인해 극심한 슬픔을 겪고 있다. 결국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누군가를 잃은 이별'을 겪어내는, 인물의 애도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출처: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스틸컷(다음)
루는 사야카에게 언제나 멋진 선물을 해준 존재다. 자신과 같은 외로움을 가진 반려견이었고, 하나뿐인 친구였으며 늘 곁에 있는 가족이었다. 말 그대로 루는 사야카에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사야카는 단호하게 말한다.
"루는 절대 죽지 않았어!"라고. 심장병으로 죽은 반려견을 잊지 못해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야카의 현재는, 루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과 끊임없이 교차된다. 계속 반복되는 과거 회상으로 우린 루가 사야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점점 더 사야카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사야카는 다시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부모에게 강아지가 최대 10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준비된 이별과 그렇지 못한 이별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이는 행위의 준비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마음의 준비. 사야카는 루가 자신이 체험학습을 갔을 때 갑작스럽게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루의 죽음은 사야카에겐 정말 먼 미래였으니까. 결국 환경적, 시간적 요인에 의한 죽음이란 불길하지만 예정된 조짐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아이는 결코 루를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인 사야카에게 애도란 그저 '어른들의 거짓말', '부정' 그 자체였다.
출처: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스틸컷(다음)
오래 살면 살수록 인간은 타인의 죽음에 익숙해지고 무뎌진다는 말을 나무라듯,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어린아이의 상실과 노인의 상실을 구분 짓지 않는다. 후세는 오래전 사야카 또래, 어린 아들(고이치로)을 사고로 잃었고, 사야카의 할아버지는 아내를 떠나보냈다. 두 사람 모두 사야카와 같은 준비된 이별이 아니었다. 사야카는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고통이 후세와 할아버지가 느끼는 고통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들 역시 강하게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돌연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갑자기 돌변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슬픔과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야카는 그들을 보며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상실을 풀어낸다.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후세에게 루와 함께 한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반대로 자연스럽게 후세에게 그의 죽은 아들에 대해 듣는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마당에서 박꽃을 심었던 때를 회상하는 할아버지의 옆에 앉아 조용히 그의 손등에 손을 포개며 그를 위로하고, 또 할아버지에게 위로받는다.
서글프기만 했던 어린아이가 위로받고, 반대로 타인을 위로하는 장면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고통을 이겨내는 가슴 벅찬 장면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을 한 스푼의 환상과 버무리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이고, 주제를 더 빛나게 한다. 길고 은은하게 퍼지던 루를 향한 사야카의 진심은, 고이치로와 캐치볼을 하는 후세의 기다렸던 웃음으로 인해 묵직한 파동을 만든다. 그리하여, 사야카가 후세를 보며 "무언가 굉장히 소중한 걸 본 것 같았다."라고 말한 대사는 모든 이의 마음에 돌고 돌아 끝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만다.
출처: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스틸컷(다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애도를 위한 방식으로 '함께'하는 애도를 선택했다.
사야카는 후세와 함께 루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를 그대로 '공석'으로 둘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한다. 둘은 슬픔과 두려움은 나누고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채우며, 알 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밀려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는다. 홀로 남겨진다는 불안과 다가올 외로움에 맞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 그리하여 남겨진 자에게 주어진 삶을 씩씩하고 담담히 살아가는 일.. 사야카는 사라지는 것이 결코 떠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다시 미소를 되찾는다. 아이는 기억하기 시작하면서, 영원의 의미를 깨닫는다. 루는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 영원을 말이다.
애도는 반드시 애도로 작별해야 한다.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어두웠던 방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그 방이 자신의 마음속에 늘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 언제든 들어가 울고 웃을 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후세가 말한 역은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영화는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야카에게 직접 끊어진 기찻길을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모르는 척 사야카와 루의 비밀 장소를 우리에게 노출했다. 나만의 비밀 장소를 선정하는 건 애도를 향한 첫 번째 걸음이 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사야카는 전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작별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덧붙으면, 아름다운 작별이 된다.
고맙게도 후세도, 할아버지도, 사야카도 모두 아름다운 작별을 했다.
출처: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스틸컷(다음)
우린 기억하는 일을 지겨워하지 않기에 늘 자신이 정한 중심을 잃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한 뒤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던 사야카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어른의 목소리로 변한 걸 눈치챈다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아이였던 사야카가 어른이 되어 '나의 중심, 루'를 추억하는 이야기였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과거로 내일을 말하는 법을 잘 아는, 능숙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론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귀를 쫑긋거리기보다 눈을 더 크게 뜨고 사야카를 바라보길 추천한다.
-
- ReFrame Stamp
미국 대중 매체 버라이어티는 샤를리즈 테론, 키키 레인이 주연을 맡은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 감독의 넷플릭스 액션 영화 <올드 가드>(The Old Guard, 2020)가 남녀 균형 고용을 보여준 가장 인기 있는 영화로 선정되었음을 보도했습니다
ⓒ Daum 영화
ReFrame과 IMDB Pro는 오늘 (17일) 2020년에 가장 인기 있었던 각본 영화 100편 중 29편이 남녀 균형 일자리를 보여주는 프로젝트의 징표인 ReFrame Stamp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26편의 영화가 선정되었던 2019년에 비해 12% 상승한 비율입니다.
ReFrame Stamp는 미디어 산업에서 여성 중심 콘텐츠로의 진전을 보여주는 기업과 미디어에 수여되는 상입니다. Stamp 인증은 ReFrame 엠버서더, 프로듀서 및 업계 전문가로부터 정의된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양성평등을 향한 진전을 보여주고 핵심적인 역할에서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하는 영화 및 TV 프로그램에 수여됩니다.
올해 수상작으로는 <올드 가드>, <원더우먼 1984>, <프라미싱 영 우먼>, <힐빌리의 노래>,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온 더 락스>,<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뮬란>,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엠마> 등이 있습니다(번역 제목). 또한 수상작 중에는 여성 감독 작품이 17작품(2019년 대비 12편 이상 증가), 유색 여성 감독 작품이 6작품(4편 증가), 유색 여성 각본 작품 4작품(1편 증가), 여성 영화 촬영감독 작품 7작품(2019년 2편 증가)을 차지했습니다.
ReFrame은 수상작 29편 중 샤를리즈 테론과 키키 레인이 주연한 Netflix 액션 영화 <올드 가드>를 가장 인기 있는 영화로 꼽았는데요, 감독이자 엠버서더인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는 수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성공은 여성들이 더 큰 곳에서 활약할 기회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름답고도 강력한 대항 수단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여성들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빛날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Daum 영화
아래는 IMDb Pro의 집계 순으로 정렬된 29편의 수상작들입니다.
1. 올드 가드 / Old Guard / 미국 / 감독 : Gina Prince-Bythewood
2. 원더우먼 1984 / Wonder Woman 1984 / 미국 / 감독 : Patty Jenkins
3.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 Birds of Prey: And the Fantabulous Emancipation of One Harley Quinn / USA /감독 : Cathy Yan,
4. 뮬란 / Mulan / USA / 감독 : Niki Caro
5. 홀리 데이트 / Holidate / USA / 감독 : John Whitesell
6. 레베카 / Rebecca / USA / 감독 : Ben Wheatley
7.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 Happiest Season / USA / 감독 : Clea DuVall
8. 프라미싱 영 우먼/ Promising Young Woman / USA / 감독 : Emerald Fennell
9. 트롤: 월드 투어/ Trolls World Tour / USA / 감독 : Michael Fimognari
10. 애프터: 그 후/ After We Collided / USA / 감독 : Roger Kumble
11. 엠마 / Emma / UK / 감독 : Autumn de Wilde
12.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 USA / 감독 : Ron Howard
13. 큐티스 / Mignonnes (Cuties) / France / 감독 : Maïmouna Doucouré
14. 앤터벨룸/ Antebellum / USA / 감독 : Gerard Bush, Christopher Renz
15.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Ma Rainey’s Black Bottom / USA / 감독 : George C. Wolfe
16. 갓마더드 / Godmothered / 감독 : Sharon Maguire
17. 마지막 게임 / The Last Thing He Wanted / 감독 : Dee Rees
18. 유물의 저주 / Relic / 감독 : Natalie Erika James
19. 오버 더 문 / Over The Moon / 감독 : Glen Keane
20. 그 남자의 집 / His House / 감독 : Remi Weekes
21. 데스페라도스 / Desperados / 감독 : LP
22. 사라진 소녀들 / Lost Girls / 감독 : Liz Garbus
23. 비트를 느껴봐 / Feel The Beat / 감독 : Elissa Down
24. 크리스마스에 날아갑니다 / Operation Christmas Drop / 감독 : Martin Wood
25. 호스 걸 / Horse Girl / 감독 : Jeff Baena
26. 온 더 락 / On the Rocks / 감독 : Sofia Coppola
27. 위험한 거짓말들 / Dangerous Lies / 감독 : Michael M. Scott
28. 반쪽의 이야기 / The Half of It / 감독 : Alice Wu
29.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 All the Bright Places / 감독 : Brett Haley
-
- 경계를 넘어 진화하는 인간 신체에 대한 명상
인체는 매우 창의적이라서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죠. 다음 세대에 무엇이 남는 지 보려는 것 같아요.
인간의 신체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감염의 위험도 사라진 멀지 않은 미래. 예술가 ‘사울’과 그의 파트너 ‘카프리스’는 몸에 생겨나는 새로운 장기들에 문신을 새기고, 그것을 적출하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다. 인간의 신체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가속 진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울은 전직 외과의인 카프리스의 도움을 받아 계속 자라나는 몸 안의 장기들을 제거해나가고 있다. 그에게 장기 적출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자 거부다. 하지만 계속되는 몸의 변화와 적출 수술로 인해 그는 제대로 된 음식 섭취는 물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날 동료 예술가의 공연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사울은 ‘랭’이라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어린 아들의 시체를 해부하는 공연을 진행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사울과 카프리스는 어린아이의 시체 해부라는 일에 윤리적 죄책감과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새로운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한편 랭은 장기를 변형 및 이식해 플라스틱을 인류의 주식으로 삼고자 하는 운동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 전 세계에 포진된 그의 조직은 일반적인 음식 대신 산업폐기물 등을 원료로 한 합성 플라스틱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가 사울에게 해부를 부탁한 8살 아들 ‘브라켄’은 기적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소화할 수 있는 기관을 가지고 태어난 ‘신인류’로, 랭은 사울과 카프리스에게 이러한 신인류의 내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요청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의 배를 갈라 들여다본 내부에는 특별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문신이 새겨지고 여기저기 꿰메진 장기들만이 있다. 그리고 아이의 오염된 장기의 배후에는 인간 신체의 변화, 즉 진화의 흐름을 부정하고픈 거대 권력의 ‘정상성’에 대한 고집이 존재한다.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피부 밑의 세계를 직접 열어 볼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속 미래의 사람들은 가학적인 신체 훼손에 열광한다. 이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피부 아래를 깊숙히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하는 피부 밑의 세계에 ‘의미’란 없다. 그곳에는 오염되고 변형된 피투성이의 장기들뿐이며, 예술가는 애써 이것들에 알량한 의미를 붙여보려 한다. 고통이 없어진 세계에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영혼과 미덕의 가치에 대한 감각마저 무뎌진다. 사울이 참가하는 ‘내면의 아름다움 선발대회’ 역시 인격이나 마음의 도덕이 아니라, 단순히 몸 안의 장기들의 생김새와 배열을 평가하는 대회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변화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따른 상실 역시 불가피하다.
해부 쇼가 끝난 뒤에도 사울은 여전히 음식을 씹어 삼키고 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날 아침 음식을 삼킬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합성 플라스틱 바를 섭취해 보기를 선택하고, 마침내 자신도 계속된 몸의 변형 끝에 플라스틱을 소화할 수 있는 신인류로 거듭났음을 확인한다. 플라스틱 바를 씹어 삼키며 눈물을 흘리는 사울의 얼굴이 흑백으로 클로즈업되는 마지막 장면은 변화한 자신의 몸에 대한 절망을, 혹은 인류의 진화를 직접 체험한 이의 환희를 의미할 것이다.
영화의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8년 만의 복귀작이자 20년 만에 다시 택한 바디호러 장르인 이 영화를 두고 “인류의 진화에 대한 명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변형되고 훼손된 인간의 신체를 꾸준히 다루어 왔고, 그의 영화 속에서 인간의 몸은 정상성의 범주를 교란하며 부서지고 절단되고 뒤틀린 채 관객들에게 공포와 더불어 신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했다. <미래의 범죄들>은 크로넨버그가 지금껏 구축해 온 세계관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신체와 이를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정상성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자아가 자신의 신체의 경계를 확립하기 위해 비자아로서 배척한 것들(피, 체액, 적출된 장기 등), 즉 비체(abject)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스크린에 비추면서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질서와 체계를 가로지르고, 끝내 그것들을 수용하면서 인간 신체의 변화를 암시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과도기적 상태에 놓인 인간이 경계선을 넘어 진화하는 변태變態의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
- 13년 기다린 값을 하긴 했던 <아바타> 후속작
그 후
누군가가 "제이크! 잘 지내고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난 현재. 반인불수의 몸이었던 제이크 설리. 지금은 나비족의 몸을 얻어 살고 있다. 인류와의 전투가 있었다. 쉽지 않게 이긴 설리. 설리는 같은 전투 파트너였던 네이티리와 함께 가족을 이뤘다. 아이는 세 명이나 낳았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말고 부부에겐 두 자녀가 더 있다. 이 두 명의 아이들은 입양아들이다. 한 명은 '키리'다. 키리는 1편에서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의 딸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아이는 '스파이더'다. 이 아이는 나비족이 아니다. 엄연히 인간인 스파이더. 인류와 나비족 간의 전투가 끝나고 몇몇 과학자들은 판도라에 남았었다. 원래라면 판도라에서 지구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나비족과 함께 살았던 아이. 그 아이도 어느덧 커서 나비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두 명의 부모에 다섯 명의 자녀라.. 쉽지 않다. 만약 2022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애국자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난이도가 높은 육아 생활. 한 명만 낳아 길러도 어려운 걸 다섯 명 씩이나 감당하고 있으니 일상이 어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토루크 막토로서 외부 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설리. 이번에 설리와 군인들은 RDA의 보급 수송 열차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망을 봐야 하는 설리의 두 아들 로아크와 네테이얌은 아버지의 명을 안 듣고 군사작전에 참여한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두 아들.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혼낸다. 근데 이 두 아들에게 위축된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다. 어딘가로 향하는 설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 1편에서 인류와 나비족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온갖 시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울창한 숲, 출구는 물의 길처럼 안 보이는 것 같다. 서성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저 멀리에서 모르는 얼굴의 아바타들을 확인한다. 쟤들 뭐야? 처음 보는 얼굴들 같았다. 아니. 그 낯선 아바타들은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 너는 설리의 아이들이군."
현장 로케이션 힘들었을 듯
13년을 기다려온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13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2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3번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인간은 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내지 않았다. 만약 어떤 영화감독이 있다고 치자. 한 영화가 나오고 13년 후에 다음 작품이 나온다고 해보자. 그럼 그 사람을 영화감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투자받는 것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카메론 할아버지는 창작자의 이름값과 시리즈의 파워 하나 믿고 차기작을 발표했다. 이 긴 시간 동안 뭘 했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시간 동안 세계관을 구상하고 CG 이미지를 뽑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이 <아바타 : 물의 길>은 긴 시간을 희생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극의 각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그린 후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후자를 먼저 만든 다음 줄거리를 짠 느낌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화는 물 샐 틈이 없다. '이런 것도 짰어?' 싶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하는 제의식, 나비족이 타고 날아다니는 동물, 판도라에 사는 다른 이주민, 그 외에도 어떤 행사든 빼곡히 차있는 디테일까지.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계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관객을 설득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감독은 이해라도 한 듯이 긴 시간을 압축시킨 설득력을 구현한다. 영화의 자그마한 소재 하나하나가 다 판도라 행성, 내지는 나비족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어 작품의 리얼리티성을 부여한다. 어디서 본 것들인데 묘하게 변주한 느낌이 탁월했다.
이 세계관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 중 하나는 때깔이다. 어마어마하다. 아마 내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이미 찜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두 곳의 공간 세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바로 숲과 바다라는 것이다. 첫 번째 '숲'이라는 공간은 이미 전작에서 볼 수 있다. 거기서 놀랍던 이미지가 그대로 보인다. 그대로 보인다고 해서 뭔가 신선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숲' 신은 아이들이랑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주에 살다 보면 곶자왈이라는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글쓴이는 제주 원주민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 곶자왈 같은 숲 묘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각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연하다. SF 영화니까. 초반부 스타트가 어색하면 극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극 한 시간을 할애하는 숲 세팅에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시각화의 힘이다. 후술 하겠지만 극 전개에서 이 숲에서의 사건 전개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집중력을 이끄는 건 이 덕이다. 나머지 두 시간을 할애하는 바다 묘사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와 육지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른 것이 필연적이다. 이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신선해야 한다. 그런데 아예 없는 걸 갖고 오기에는 사람의 뇌로 감당할 수 없다. 이 지점을 살짝씩 변주한 창작자적 재능이 어마어마하다. 빛이 들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어디에서는 그림자가 들고. 어디에선 빛이 굴절되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해서 실제로 카메라를 갖고 찍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후반부에 근 1시간을 할애하는 액션 시퀀스도 대단하다. 이 배에서 일어나는 액션을 잘 보다 보면 전작과 본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액션에 다 때려 박았다. 판도라의 동물들 나오고. 바다 생물로 빌런들 무찌르고. 화살, 총, 전투기 나오고. 여러 명이 구상해서 만들 상상력의 총합체를 이야기의 전개에 이질감 없이 잘 보여줬다. 이걸 구체적으로 다 구현했다고? 의 생각으로 영화를 봐도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진짜 카메라 들고 가서 해외 로케 안에서 찍은 것 같다.
해양 덕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다. <터미네이터 2>, <피라냐 2>, <에이리언 2>부터 시작해서 <타이타닉>까지 글쓴이 같은 90년대생에게 이 사람의 영화를 한 번도 안 들어보기는 불가능하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한 가지의 덕후 기질을 키워냈다. 바로 해양생물 덕후라는 것이다. <피라냐 2>는 제목만 봐도 바다라는 공간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은 배가 바다에 빠지는 이야기다. <어비스> 역시 바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심지어 <딥 씨 챌린지>라는 바다 다큐멘터리도 만든 적이 있다. 영화 잘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면서 해양 생태계에 대한 덕후력을 뽐내는 제임스 카메론. 그의 러닝타임에서 바다를 꾸준히 볼 수 있을 만큼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피라냐'를 연상케 하는 동물에게 쫓기는 부분이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 동물이 피라냐와 닮았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글쓴이는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쫓고 쫓기는 동물을 구현하는 방식은 그 시절 <죠스>와 <피라냐>를 위시로 한 호러 영화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또 극에서 배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배에서 극의 액션신이 이뤄진다. 이 배는 한 번 전복된다. 이불 덮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닌 이상 액션의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주변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그 바다에 빠지고 난 다음의 인물들의 모습은 <타이타닉>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액션도 묘하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또 나비족의 근본적인 세팅 자체가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형태랑 좀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다. 또 사실상 영화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쳐도 그가 해왔던 영화 <에일리언 2>의 기본 바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은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의 작가적 특성을 빼곡하게 삽입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만의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품이 넓은 이야기
영화의 강점으로 이야기를 뽑고 싶다. 일단 글쓴이는 1편의 이야기가 나름의 깊이를 갖고 있는 소재와 전개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 이야기 구상을 그전부터 했을 테니 10여 년 전에 구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 12월 이 영화를 다시 돌아보면 전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몇 개가 생각나게 한다. 일단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설리는 인간으로 우선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인간인 설리 / 아바타인 설리 두 차이점을 연출로 내내 조명한다. 당연히 '어떤 측면이 진정한 인간에 가까운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다룬 연출도 곳곳이 보인다. 우선 쿼리치 대령에게서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또 코로나19를 대응했던 어떤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또 얼마 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던 복제인간에 관한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역시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와 '원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다. 감독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이야기를 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소재들은 인간사에서 클래식한 소재긴 하다. 그러나 이를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작가 제임스 카메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의 통찰력을 새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편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일단 영화에서 두 공간적 세팅은 숲과 바다다. 이 두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손가락의 개수다. 원래 나비족이라 함은 손가락이 네 개여야 한다. 그런데 제이크의 아이들은 5개다. 5개라서 아이들은 다른 나비족들에게 놀림받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손가락이 5개다. 어? 손가락이 5개라서 놀림받는다고? 이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저 판도라에 가면 놀림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관점을 옮기는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우리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혐오는 우리와 다른 지점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극에서 주류가 비주류를 대하는 방식 역시 이 혐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내실이 있는 비유를 든 셈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를 만드는 것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가?를 물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숲의 종족과 바다 종족이 아주 살짝 다른 피부색으로 세팅했다는 것, 빌런 쪽인 쿼리치 대령이 어떻게 변했는가? 에 대한 것이 이에 대한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이 비유는 해양생물 '툴쿤'을 어떻게 캐릭터들이 바라보는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또 네이티리가 스파이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해서도 닿아있다. 이렇게 영화에서 끊임없이 소수자와 혐오, 차이와 배척이라는 소재를 곳곳이 새겨놓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사회드라마적인 소재를 잘 넣은 영화지만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가족영화'다. 이 가족의 구성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한 나비족이라고 볼 수 없다. 근원이 인간이니까. 어머니 네이티리는 나비족이다.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은 혼혈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다른 두 아이들의 친부모는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아니다. 아들 스파이더는 그냥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인데도 자기를 나비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딸 키리는 어머니가 그레이스 박사다. 어머니, 아버지의 피가 단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영화가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보면 영화의 핵심소재를 튼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족영화의 특징을 살렸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이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영화는 공간적 배경을 한 번 옮긴다.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는데, 여기서 이 인물들의 선택지에 대해서 근거가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 이 영화 자체의 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지만 딱히 1편에서도 인물의 선택이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스파이더와 키리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도 아쉽다. 스파이더는 후반부의 어떤 행보를 위해 거의 모든 인물의 행동이 기능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다. 단순히 그 인물과 그런 관계였다고 해서 그의 모든 일이 합리화가 된다면 좀 어색한 부분이 많다. 차라리 생사고락의 위기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리와 관련한 부분은 후반부에 시리즈를 펼치기 위해서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느껴지는 예수의 모티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절대자의 존재까지 시리즈라는 이유로 끝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의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시 이 키리도 물이 생명의 근원지라는 은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
-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영화 <노 엔드>감독] 나데르 사에이바르
출연] Vahid MOBASSERI, Shahin KAZEM NAJAD, Fahime JAHANI, Narjes DELARAM
시놉시스] 아야즈는 자기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인 평범한 남편이다. 처남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란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처남이 돌아오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염려에 아야즈는 작은 거짓말을 한다. 비밀경찰이 집에 와서 수색을 하고 갔다는 거짓말. 비밀경찰이 아직 감시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처남이 이란으로 돌아오는 걸 포기할 거라 기대한 것이다. 문제는 진짜 비밀경찰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야즈의 거짓말은 진짜 비밀경찰이 처남을 추적하는 빌미가 되고, 아야즈는 이웃과 가족을 고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노 엔드. 노 엔드는 이란의 한 가정을 보여주면서 결국 됨루림되는 가난이라는 사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연기를 처음하는 사람이라니
영화 노 엔드는 아야즈의 심리를 쫓는다. 아야즈의 기쁨, 불안, 해방감, 공포, 절망감 등 행복했던 아야즈의 모습부터 형님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은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집을 사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애를 쓰기 시작한다. 비밀경찰에 끌려와 모든 일을 자백하면서 두려움을 떨며 바지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이제 고백을 다 했으니 비밀경찰에서 해방되는 줄 알고 행복해하던 그의 모습,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경찰에 절망감을 느끼는 그 감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표현을 하고 있어서 이란의 유명한 중년배우인 줄 알았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허함을 담아내는 그 눈빛과 메마른 목소리까지. 이런 감정들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이 배우는 정말 이란에서 인기가 많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독과의 gv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바로 아야즈 역을 맡았던 바히드 모바세리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평범하네 생업을 하던 시민이었다가 나데르 사에이바르 감독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저 끼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을까? 얼굴에 그렇게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처음보는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과장하거나 소극적인 부분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원석 같은 배우를 발견한 감독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고, 첫 연기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야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바히드 모바세리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결국 되물림되다
영화 노 엔드는 한 집안의 가장이 목을 메며 자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목을 메 자살한 것을 본 어린 아야즈는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 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고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아야즈는 자라면서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해서 꼭 자신의 집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아내가 집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사실 그 집은 오빠의 것이고, 오빠가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자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자신의 과오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야즈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목을 메달고 자살하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란 사회가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다른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아야즈가 꾼 꿈은 헛된 꿈이었을까? 집이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집을 갖는 것을 꿈꾸면 안되는 것일까? 각자 꿈꿀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영화 노 엔드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 역시 좋았던 작품이었다.
-
-
-
- 영화 <바비> 2차 예고편
올 여름 진짜 큰 영화가 온다??♀️??♂️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어나더 비주얼 작은거 말고 진짜 큰걸로요??
-
- 왓챠 <레벤느망> 메인 예고편
- 여자만 걸리는 병이에요,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 - 갑자기 아이를 가지게 된 스물 셋 대학생 '안' 그녀의 이야기를 3월 극장에서 먼저 감상해 보세요 - 〈레벤느망〉 3월 극장 대개봉 수입·공동배급 | (주)왓챠 배급 | (주)영화특별시S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