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14 11:56:0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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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은 죄다 비 내리는 전쟁통이지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6년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가 멋대로 들어와 있다. 게다가 자신이 실수로 친구를 죽였고 시체가 여기 있으니 도와 달라 청한다면 어떨까. 지수는 황당하고 무섭고 짜증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미지수>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이 일을 어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지수>는 이렇게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사람을 죽여 놓고는 사건을 직면하기 두려워 여자친구의 집으로 도망쳐 온 남자, 배달원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미 포장을 마친 음식을 못 팔겠다며,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부리는 남자와 기를 쓰고 그를 회유해 보려는 여자. 헛웃음도 나고, 이들이 왜 이런 고집을 부리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도 하다. 심지어 영화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도 못하게, 욕조 안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죽어 있던 친구를 다시 살려내기도 하고 남자가 뜻밖의 인물을 또 다시 죽이는 황당한 사건을 늘어놓기도 한다. 지수는 언제 잠에 빠져들었는지 알 수도 없게, 꿈 같은 사건 사이사이에서 잠을 깨기만 한다. 그리고는 일을 수습하고 인물을 달래 가면서 조금씩 이유를 드러낸다. 꼼짝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아주 느리게 소화하듯이, 또 아주 천천히 진실과 조우할 준비를 하는 듯이.
<미지수>를 연출한 이돈구 감독은 이별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는 특이하게도 갑작스러운 사건, 폭발하는 감정, 그리고 이어지는 치유나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들이 겪은 이별,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정확한 전말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된다. 친절함과 편안함으로 무장한 작품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동시대 관객들 앞에 내어 놓은 이 용감한 서술 방식은, 영화 후반부를 목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앞선 장면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극장 밖까지 따라 나와 오래 기억에 남게 한다.
진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폭발하는 감정을 목격하고 나면 비로소 영화 초반의 갑작스러운 사건이 지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실감에서 비롯된 환영은 자신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순간을 만들어내서라도 만나고 싶은 욕망이자 염치 없고 구차해 보이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그리고 못되게 굴었던 것을 속죄하기라도 하고 싶다는 지수의 소망이다. 또 죄다 전쟁통인 바깥으로 자식을 쫓아 낸 것만 같은 어머니의 절망이고,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매뉴얼은 작은 위반이 불러 온 사고에 대한 죄책감이다.
<미지수>는 지난 몇십 년 간 한국인들이 겪고 또 겪고 나서도 대가를 치르듯 또 겪는 그 모든 죽음과 이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죄책감, 충격, 통곡하는 이미지 같은 연출이 아니라 관객이 인물과 함께 꿈꾸게 함으로써 스스로 이야기를 되짚어 보게 한다는 점이 매력이자 영리함이다. 그렇게 영화는 극장 밖으로 관객을 따라 나와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흔 옆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말한다. 또 터무니없이 완벽한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아주 작은 걸음을 내딛는다. 당신 없는, 이 전쟁통 같은 세상은 미지수이더라도 우리는 살고 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이별한다. 그리고는 떠난 이의 책장에 남은 칼 세이건의 책이 그러하듯이, 그가 드넓은 우주를 모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다시 한 번 살아가 볼까, 하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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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 가이즈 / The Bad Guys, 2022
지금은 폐지된 <개그 콘서트>의 코너 "착한 녀석들"은 그렇지 못한 외모를 가진 이들이 각자 자신들이 한 착한 일을 하는 내용이다.
지금에서야 내용보다는 "웃음소리", 즉 "개그 피지컬"만이 기억에 남고 있다.
영화 <배드 가이즈>는 "은행강도"를 비롯해 온갖 범죄를 일으키는 "울프"와 "스네이크 - 샤크 - 피라냐 - 타란툴라"까지 정감 가는 동물들은 없다.
그래도, <배드 가이즈>를 찾는 이유엔 '이게, 드림웍스가 가장 잘하는 것이자 정체성'이라는 이유밖에 없다.<슈렉>을 만들 때, "변호사"를 불러 "법률 자문"을 구한 이야기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 만큼 유명하다.(그도 그럴 것이 <슈렉 2>에선 "인어공주"가 상어에 잡아먹힌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적혀진 동화책을 찢어 똥 휴지로 쓰는 파격적인 오프닝과 함께 '잘생기고 이쁜 놈들이 아니라도 못생겨도 행복할 수 있다는'라는 엔딩은 "디즈니"의 안티(anti) 체제로 잡아가는 초석을 다졌고, 이후 <메가 마인드>와 <드래곤 길들이기>시리즈까지 이어졌다.1. 가장 잘 하는 주제와 장면들의 연쇄작용
이미, 말했듯이 <배드 가이즈>는 "드림웍스"가 가장 잘하는 주제다.
'그래서, 영화는 곧장 이를 어떻게 보여줄지?'에 자신이 잘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그게 "카 체이싱"이다.
<마다가스카 3: 이번엔 서커스다!>의 '몬테카를로 추격신'만 보더라도, "드림웍스"의 "카 체이싱"은 아이들만의 <분노의 질주>이다. (이를 아예, 따로 만든 영화가 <터보>이다)
여기에 신나는 음악까지 곁들이면, 이만한 장면들이 또 없다.그리고, 영화가 보여주는 그림의 질감도 특별하다.
3D 애니 같으면서도 영화가 보여주는 원색과 선은 그 예전 2D 애니에서나 볼법한 느낌이다.
마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봤다면 익숙한 "코믹스"스러운 느낌은 앞서 말한 "카 체이싱"과 이야기 전개를 좀 더 빠르게 보여준다.2. 똑같은 소재에 똑같은 이야기?
그럼에도, <배드 가이즈>에 주목되는 건 그들의 이야기이다
캐릭터 이름들을 그대로, 직역하면 "늑대 - 뱀 - 상어 - 피라냐 - 거미"까지 그들의 갱생을 도와주는 "기니피그"에 비해서 비호감이고 무섭다.
이렇게, 영화는 간단하지만 보다 확실하게 그들이 받는 사회적 인식으로 그들의 처우를 보여준다.
하지만, 뭔가 보면 볼수록 우리는 비슷한 영화가 떠올라 아쉬움을 계속해 삼킨다.앞서 말했듯이 "드림웍스"는 "디즈니의 안티(anti) 체제"를 자처하나 이게, 소재의 유사함도 있다.
<마다가스카>와 <와일드>를 비롯해 <드래곤 길들이기>와 <메리다와 마법의 숲>, 그리고 <가디언즈>와 <겨울왕국>까지 꽤 비슷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배드 가이즈>에게 연상되는 "디즈니"의 작품은 다름 아닌 <주토피아>이다.3. 끝내 착해지는 이유엔...
말하는 동물들이 나온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마멀레이드 박사(기니피그)"를 위협하는 "울프"의 모습을 언론으로 보여주거나 극 중 "여우와 늑대는 다를 것이 없다"라는 대사는 <주토피아>의 '육식·초식 동물 간의 차별'을 연상시킨다.
그렇기에 두 영화가 자연스레, 비교선상에 올라 좋은 점과 아쉬움을 비교하게 하는데, 개인적으로 <배드 가이즈>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흑막이라 하지만, 이미 예측된 흑막의 정체를 비롯해 기존 멤버들과의 불화, 그리고 새로운 멤버의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급하게 이뤄진다.
무엇보다 '현실은 애니메이션 뮤지컬이 아니야 노래 부르면 뭐든지 다 되는 게 아니다'라며, 회사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주토피아>와 달리 <배드 가이즈>에는 그게 없다.
결국, 회사에 나빠질 수 없는 <배드 가이즈>의 "예스맨"스러운 모습이 씁쓸하다.· tmi. 1 - 쿠키 영상이 1개가 있다. (곧장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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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함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헤어스프레이>
오늘의 영화는 바로,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을 흥겹게 만드는 <헤어스프레이>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뮤지컬 | 미국 | 115분
감독 아담 쉥크만
출연 니키 브론스키, 존 트라볼타, 퀸 라티파 등
등급 12세 관람가
줄거리
60년대 볼티모어. 댄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트레이시.
남들보다 뚱뚱한 몸매의 트레이시는 댄스 쇼 참가를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다.
<헤어스프레이>의 T.M.I
출처: 네이버 영화
원작은?
<헤어스프레이>는 1988년 동명의 코미디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20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배우
<헤어스프레이>의 주연 니키 블론스키(트레이시 역)는 고등학교 때 생일 기념으로 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오디션에 지원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낙방하게 되었고, 2007년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에 캐스팅 되었습니다.
<헤어스프레이>에서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턴블레이드는 존 트래볼타가 여장을 하여 맡았습니다. 영화 프르듀서인 크레이그 자단과 닐 메론이 존 트래볼타가 영화 <그리스>의 주인공을 맡았기에 에드나 턴블레이드 역으로 캐스팅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합니다.
<미스터 핑키의 헤프티 하이더웨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하는 미스터 핑기 역을 맡은 제리 스틸러는 1988년 원작 영화에서 윌버 턴블래드를 연기했었습니다.
"유쾌함 속 묵직한 메시지"
출처: 네이버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196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실제 1960년대는 인종 차별이 만연했을 시기이다.
영화도 역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인종 차별, 외모로 인한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다루었는데요.
사실 이 부분만 보면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뤄 가볍게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이런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나갔습니다.
차별에 맞서 평등한 사회로 변화하자는 좋은 메시지까지 담은 영화입니다.
"OST"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OST이죠.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영화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요. 영화 속에서는 약 17곡의 노래가 나오는데,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싶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트레이시가 부른 'I can wait'가 삭제되었는데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으니까 영화를 다 본 후, 한 번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방구석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영화,
지금까지 영화 <헤어스프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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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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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
〈벌집의 정령〉, 〈클로즈 유어 아이즈〉
〈벌집의 정령〉(1973)에서도,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4)에서도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과거, 꿈, 기억에 조용히 침잠한 무언가를 환기해 현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벌집의 정령〉에서 어린 소녀 아나는 영화에서 본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고 싶어 하고, 그런 아나에게 언니는 눈을 감고 정령을 부르면 그의 유령과 대화할 수 있다고 언질한다. 아나가 발 디딘 시공간은 파시스트이자 쿠데타 세력의 수괴인 프랑코가 좌파, 공화파, 아나키스트의 연합 정부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둔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독버섯을 짓밟고 질서정연한 벌집의 세계에 몰입하는 아버지, 즉 프랑코의 분신이 곳곳에서 힘을 갖고 군림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아나는 가족의 눈을 피해 계속 괴물 프랑켄슈타인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마침내 반反프랑코 세력 군인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괴물의 정령을 읽어낸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세계에서 ‘괴물’과의 교감은 ‘반역’이다. 아버지는 신속하게 아나를 원래 세계로 되돌려놓고,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아나가 그 충격적인 경험을 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렇게 〈벌집의 정령〉은 영화가 열어젖힌 가능성을 프랑코 치하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에서 꽃피워내는 동시에, 일상에 녹아든 파시즘으로 그 가능성이 어떻게 폐제되는지를 보인다.
〈벌집의 정령〉
구체적인 시공간은 바뀌었지만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도 ‘눈’을 매개로 한 영화적 각성은 반복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미겔은 과거 자신의 영화 〈작별의 눈빛〉의 주연이었으나 촬영 중 실종된 훌리오를 추적해보자는 탐사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는다. 실종 후 무려 22년이 지난 때였다. 실체는 사라지고 소문만 무성하게 남은 훌리오. 미겔은 결국 한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가르델이라고 알고 있는 훌리오를 만난다. 여기에는 앎의 엇갈림이 있다. 미겔은 지난 22년 동안 가르델로 살아온 훌리오의 삶을 알지 못한다. 함께 보낸 가르델 이전의 시간만 기억한다. 반면 병원 관계자들은 가르델이 훌리오로 살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과 함께한 시간만 안다. 이 엇갈림에서 미겔은 과거 훌리오가 출연한 영화를 함께 봄으로써 잠든 훌리오의 영혼을 깨우고자 한다. 아나가 눈을 감고 ‘괴물’의 정령에 접속했듯 영화를 본 훌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영화는 그 감긴 눈 안에서 훌리오/가르델의 엇갈림이 해소될 것임을 암시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는 국제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이지만 1973년 〈벌집의 정령〉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껏 단 네 편의 장편만 만들었다. 영화 한 편 한 편에 어마어마한 공력을 넣는 감독인 것이다. 데뷔작의 메타포(눈을 감는 행위와 영화로 가능해지는 것들)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창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테포가 유전히 유효하고 감동적이라는 점에서는 예술가로서 그의 재능과 의지,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사이 영화의 위상은 변했다. 아나에게 그러했듯, 영화는 수많은 사람에게 감각과 상상력의 확장을 선물하며 분출하는 용암처럼 성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포화의 지점을 맞이했다. 현재 영화는 동시대 콘텐츠 플랫폼의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 장르와 극심한 경계 갈등을 겪는 중이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매력, 즉 ‘영화적 순간’에 대한 예찬은 소수의 마니아에게만 고착되고 있는 듯도 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빅토르 에리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동시대 영화의 위기를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벌집의 정령〉에서 마을 아이들은 영화 필름을 실은 트럭을 격하게 반긴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틀어줄 거냐며 들뜬 목소리로 물으면, 영화관 관리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대단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라며 으스댄다. 수용자와 공급자 모두 영화라는 단어에 지극한 설렘을 느끼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미겔은 〈작별의 눈빛〉을 완성하지 못했다. 훌리오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는 폐업한 극장이다. 그러니까, 미지의 무언가와 조우해 자기 삶과 감정, 기억을 증폭시켜 세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서의 영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겔처럼 특별한 목적을 갖고 문을 닫은 극장 주인을 설득해 먼지 쌓인 상영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즉 눈을 감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통로로서의 영화다. ‘영화의 위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에게 영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동시대 영화의 음울한 현실과 공명한다. 이 영화가 〈벌집의 정령〉 때 영화가 가졌던 위상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은밀히 채워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나와 ‘괴물’의 교감이 꺾이고 마는 〈벌집의 정령〉이 슬프면서도 묘한 희망을 전하는 데 반해, 결국 훌리오가 기억을 찾을 듯 보이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기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눈’이라는 통로로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두 영화는 1970년대에는 희망적인 감동을, 2020년대에는 지나가 버린 영화의 전성기에 대한 아릿함을 선사한다. 그래서다. 내게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처럼 보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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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벤더와 레드에서 핑크로
수학여행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길거리를 돌아다니든 나의 질풍노도와 함께 그녀들은 함께 했다. 어떤 날은 우리를 향해 s.e.s는 고백했다.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 너를 생각할수록.’ 그러다가 이에 질세라 다른 날은 핑클이 부탁했다. ‘언제나 날 지켜줄 너라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줘.’ 계속되는 사랑 고백에 수많은 사람들은 라벤더색 풍선(S.E.S)을 들고 목이 터지라 “에쓰이에! 에쓰이에!” 외쳐댔고, 또 반대편에서는 빨강 풍선(핑클)을 흔들며 격렬하게 소리 질렀다. “핑클 짱 핑클 짱.”
빨강펄색깔은 핑클의 상징이었다. 그녀들은 가요대상을 탄 걸그룹이었다.
최초의 걸그룹 S.E.S는 라벤더 물결이 가득한 연보라빛 풍선!
철부지 녀석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넌 도대체 에스이에스와 핑클 중에 누굴 좋아하는 것이냐?” 평소 핑클을 좋아하던 그 녀석은 나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 안타까운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선 삼국지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황건적의 난 이후 난세의 어려움 속에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꽃과 같이 피어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 개개인의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 바로 삼국지에 즐거움이거늘, 위, 촉, 오중에 어느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당신은 충성스러움과 신의의 표본인 산상의 <조자룡>과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덤벼도 거뜬하게 막아내는 무력과 달리 한 여인을 향한 로맨티시스트 <여포>, 도저히 승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지략으로 판을 바꾸는 <제갈공명> 등. 각 나라마다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 많은데, 어찌 위, 촉, 오중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그럼에도 선택을 강요한다면 나는 SES에서는 유진을, 핑클에는 이진을 선택하겠다. 그러자 그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피아 식별을 향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후 내게는 수많은 걸그룹이 스쳐지나갔다. 대학 시절 함께한 소녀시대, 군생활을 도와준 2NE1,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위로와 기쁨을 허락해준 두 그룹만큼의 임팩트는 찾아오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놀랍게도 그녀들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아이가 생겼고, 자연스레 그녀들도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돌 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방송에서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그 시절 설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때로 라벤더 빛으로 때로 붉은 장미 빛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삼십대에 만난 <블랙핑크> 는 내 삶에 에너지와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지내던 내게 또 강렬한 색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블랙핑크> 다양한 걸그룹의 진화 속에서 한국의 팝 장르는 K-POP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걸그룹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뉴스들을 간혹 볼 때마다, 그 시절, 보라색, 빨간색 풍선을 흔들어 대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혼과 육아, 그리고 끝나지 않은 학업과 노동의 현장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잘 버티고 있다며 다독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었고, 걸그룹은 멀고 먼 이야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연일 바쁜 삶 가운데 축 쳐진 볏단처럼 살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땀 흘리는 러닝머신 속에서 나의 속도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가사 중에서...헬스장을 갈 때마다, 이 곡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지겹고,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트와 함께 멜로디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한 번 더 힘을 가했다. 그리고 멈추려 할 때 로제는 말했다. “두 번 생각해~” 그렇게 두 번 생각하고 있다 보면 제니는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을 부르고 있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어느덧 이 노래는 삼십 대를 보내는 내게 다시 흥과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수영강으로 옮겨진 나의 무대에 블랙핑크는 때로 봄에는 휘파람으로 시원함을, 여름에는 마지막처럼으로 청량함을, 가을에는 뚜두 뚜두로 열심을, 겨울에는 불장난으로 한 번 더 뛸 수 있게 해 줬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블랙핑크의 팬으로서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음식에 있어서 풍미를 증폭하고 개선케 하며, 밸런스를 가져다주고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재료를 통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든 《소금. 산. 지방. 불》을 독창적인 색감과 영상미로 이끌어주었던 캐럴라인 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라는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블랙핑크가 되기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그녀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제니의 인터뷰와 솔직한 모습은 아빠미소를 갖게 만들었다. 팬으로서 본 다큐멘터리였기에 전반적인 대부분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고, 특별히 그들의 프로듀서인 테디가 생각하는 블랙핑크와 노래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블랙핑크> 한명 한명의 인터뷰. 그것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다큐멘터리다!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K팝을 단순히 십 대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트로트처럼, 재즈처럼, 클래식처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나이와 출신과 종교와 직업을 떠나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다. 그것을 블랙핑크를 통해서 설득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나왔으면 했다. 블랙핑크 다큐멘터리에 k-pop 장르의 접근성을 다뤄 달라는 것이 다소 방향성이 엇나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K-POP은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음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 나이에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대한 지지와 인정이 필요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처럼 신곡이 나올 그날을 매일 기다리고, 책받침과 스티커는 필요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을 때, 청량한 햇살과 드라이브할 때, 덤벨을 하나 더 들어야 하는 그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를 느끼고 싶을때
나는 계속해서 블랙핑크를 찾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라벤더와 레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는<레드>와 <라벤더>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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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타쿠 콜렉션] 이제 정말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요?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
아 썅 ! (왜 안 떨어지지?)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 최승자
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학부 시절 제가 참 좋아했던 모 교수님께서는 동화창작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소설과 동화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화는 소설과 달리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화에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더라도, 반드시 그 위기를 타개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홀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그의 곁에는 반드시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으며, 결국엔 주인공이 다시 딛고 삶을 이어갈 용기와 힘을 준다는 것이 교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종종 상처 입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대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언젠간,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불쑥 그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는 무엇도 이어갈 수 없을 때, 모든 불행이 든 상자의 뚜껑이 열려버렸지만 신화 속 이야기완 달리 밑바닥에 한 톨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우린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입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스크린 뒤에서 그야말로 “갈려나가는” 구조였습니다. 주인공 로이는 이 시대의 스턴트맨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 씬을 촬영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청년입니다. 직업을, 건강을,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한순간에 잃어버린 로이는 병원에서 한 아이를 만납니다. 바로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쇄골이 부러진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5살 남짓의 소녀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약국에서 모르핀을 가져오게 할 계획을 세웁니다. 로이는 당장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앉혀두고 모르핀을 위한 대서사시, 죽음을 위한 천일야화를 지어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야기가 이어지며 병원에서 만난 두 인물은 점차 이야기 속 인물과 동화됩니다.
※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비밀의 문>, <더 폴: 디렉터스 컷>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질게 말하자면, 로이는 형편없는 어른입니다. 그가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다섯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끌어들여 약국에서 모르핀을 훔쳐오게 하고, 결국 큰 부상을 당하게 만든 데다가, 이야기에 몰입한 아이 앞에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가차 없이 해하기도 하니까요. 그는 여지없이 나쁜 어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절망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에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나갈 의지도, 이유도 없습니다. 모르핀을 삼킨 후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아이에게 ‘내가 잠들면 나가고, 내일은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그가 다친 마음을 짜내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비추는 로이의 상황은 마치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앞둔 소설의 결말부 같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삶과 닮은 이야기의 결말부를 빚어냅니다. 힘을 합쳐 악에 맞서려던 무법자들에게 군대를 보내 차례로 죽입니다. 이야기 속의 무법자들은 도망칠 기력도 잃은 채 무참히 하나둘씩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다른 개연성이 없습니다. 평온한 죽음조차 성취하지 못한 로이 자신이 그저 한없이 떨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 로이는 이미 떨어지고 있죠. 이처럼 충격적인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듣던 알렉산드리아가 울부짖으며 왜 등장인물들을 전부 죽이는 거냐고 물을 때, 로이는 마침내 대답합니다. “이건 내 이야기니까.”
이에 알렉산드리아는 지지 않고 대답합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죽이지 말아요.” 아무 것도 모를 줄 알았던 어린 아이가 로이를 붙들고 말합니다. 마치 로이의 모든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요.
로이는 결국 죽이지 않기로, 죽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살아가기로 합니다. 타셈 싱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후 로이가 마음을 바꾸어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지, 재활 후 마침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을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했지만, 죽음을 결심했던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간절한 호소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죠. 그리고 관객 중 한 사람인 저는, 로이가 살아갈 의지를 되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된 소설이었지만, 이 소설을 동화로 읽어내는 눈을 가진 청자가 있었습니다. 로이에게 별이 총총한 밤, 나비를 닮은 섬, 헤엄치는 코끼리, 끝도 없는 사막에 대해 듣자마자 선명히 그려낼 수 있는 청자였죠. 로이가 도움을 청할 사람 하나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이야기를 동화로 바꿔준 건 다름 아닌 5살 꼬마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물 한 모금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서 적에게 둘러싸여 조롱당할 때 이야기를 뚫고 나타나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적을 물리칠 총을 쥐어주기도 했죠.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로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시도를 합니다. 성당에서 가져온 성체를 건네고, 부상을 딛고 살아가는 로이를 그려 선물하는 등, 허공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로이를 계속해서 평지로 밀어냅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어떠한 희망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이러한 절망 속에 빠져 있다면 우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모든 비극을 동화로 보는 눈을 가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의 손 닿는 곳에는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조력자가 있고, 그 손을 잡으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갈 이유도, 여력도 동나버린 최악의 순간도 동화의 한 구간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곁에 남아있는 기적은 아주 작고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이 연약한 손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조력자는 우리를 단숨에 들어올려 살아나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제작한 타셈 싱 감독은 한국에서의 예상치 못한 흥행에 힘입어 지난 2월 내한했는데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자비를 들여 개봉했다"며 2006년 최초 개봉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아기를 낳았는데 모두가 그 아기를 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여러분이 내 아기에게 예쁘다고 해주었고, 아이가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었죠.”라고 감격하여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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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더 폴>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란하다 못해 다소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모티브가 된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 (YO HO HO, 1981)의 판권을 구매하는 데에 15년, 장소 섭외에 17년,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 촬영 기간 4년 반이 소요되었으며, 제작 비용 6,500만 달러의 상당 부분은 타셈 싱 감독의 사비였습니다..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했던 타셈 싱 감독은 그간 벌어둔 돈을 모두 영화 제작에 쏟아 부었으며, 본인의 결혼자금까지 털어 투자했다고 전해집니다. 감독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으며,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디렉터스 컷 개봉 이후 한국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인해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인정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 28개국의 로케이션을 돌며 어떠한 특수효과도 없이 완성해낸 이 경이로운 영화는, 제작 과정의 수고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탄의 감정을 줍니다. 어떠한 경지를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상처 입은 영혼을 구하는 서사의 감동이 뇌를 찌르는 영화, <더 폴>이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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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 - 연상연하 킬러 선후배의 애증섞인 서열정리
지킬 게 생긴 킬러 VS 잃을 게 없는 킬러. 40여 년간 감정 없이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방역해온 60대 킬러 ‘조각’(이혜영). ‘대모님’이라 불리며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지만 오랜 시간 몸담은 회사 ‘신성방역’에서도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한편, 평생 ‘조각’을 쫓은 젊고 혈기 왕성한 킬러 ‘투우’(김성철)는 ‘신성방역’의 새로운 일원이 되고 ‘조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스승 ‘류’(김무열)와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던 ‘조각’은 예기치 않게 상처를 입은 그날 밤, 자신을 치료해 준 수의사 ‘강선생’(연우진)과 그의 딸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 ‘투우’는 그런 낯선 ‘조각’의 모습에 분노가 폭발하는데…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강렬한 대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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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스트 카우> 메인 예고편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킹 루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이들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