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7 14:33:22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마블 스튜디오의 여전한 저력!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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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캡틴과 함께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국내 누적 관객 수 79만 명,
북미 누적 수익 약 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국내와 북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왕좌에 올랐습니다.
다만, 최근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첫 주 1위를 기록한 후, 빠르게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현재 로튼 토마토에서 평균 51%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번 신작이 과연 이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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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스오피스 2위는 누적 관객 수 71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인 8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리메이크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차지하였고, 누적 관객 수 246만 명을 돌파한 <히트맨2>가 3위입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국내보다 한 주 앞서 개봉한 <패딩턴: 페루에 가다>가 2위를 기록하였고,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슬래셔 무비인 <하트 아이즈>가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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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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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마블이라서 더욱 실망스러운 마지막 인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져스가 분열한 후 '로스 장관(윌리엄 허트)'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도망친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어느 날 오래간만에 휴식을 취하던 그녀 앞에 16년 전 위장 가족으로 첩보 작전에 함께 투입되었던 가짜 여동생 '옐레나(플로렌스 퓨)'가 나타난다. 그녀는 나타샤가 과거에 제거한 줄 알았던 소련 첩보조직 레드룸의 수장 '드레이코프(레이 윈스턴)'가 건재하며, 레드룸이 여전히 많은 위도우들을 세뇌해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에 나타샤는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레드룸을 제대로 파괴하기로 결심하고, 레드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 때 옐레나와 함께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첩보활동을 했던 옛 동료 '알렉세이(데이빗 하버)'와 멜리나(레이첼 와이즈)'를 찾아간다.
어벤저스 원년멤버 중 홍일점이자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죽음을 맞이한 블랙 위도우의 첫 솔로 영화인 <블랙 위도우>는 겉보기에 풍성한 선물 보따리 같다. 국내에서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후 2년 만에 만나게 된 마블 작품이기에 MCU의 팬이라면 격하게 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타샤의 가족을 쫓는 쉴드부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속 공항 전투 직후 나타샤를 쫓는 로스 장관, 또한 직접 등장하지는 않아도 깨알같이 언급되는 어벤져스의 존재감은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이미 선보인 <팔콘 앤 윈터솔져>와 하반기에 선보일 드라마 <호크아이> 간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쿠키 영상도 앞으로 이어질 MCU의 페이즈 4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하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타샤의 마지막 인사는 반가움만큼이나 실망도 크다. 실망감이 가장 먼저, 그리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은 액션이다. 한 편의 007 시리즈를 보는 듯한 오프닝 크레디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블랙 위도우>의 액션은 다양한 첩보 영화를 닮았다. 실제로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태스크마스터와 펼치는 추격전과 이어지는 지하철 역에서의 액션의 구성이나 전개는 <007 스카이폴>을 연상시킨다.
또한 엘레나가 모로코에서 해독제를 쫓는 장면에서는 <제이슨 본> 시리즈의 그림자가 유독 진하게 느껴진다. 부다페스트의 한 아파트에서 자매가 부엌칼부터 커튼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펼치는 액션을 격렬한 핸드헬드로 촬영한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블랙 위도우>가 <본> 시리즈의 액션을 오마주한 것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되돌리려고 한 제이슨 본처럼 나타샤도 스스로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떨쳐내려 하는 것을 강조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액션의 질은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눈사태를 배경으로 삼거나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등 스케일이 커진 것과는 별개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같은 전작들에 비해 블랙 위도우의 액션은 동선이나 편집의 측면에서 박진감이 부족하고 밋밋하게 연출되었다.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를 강조할 한 끗을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크다. 빌런인 태스크마스터의 활용법이 대표적이다. 상대의 기술을 복사하는 그는 분명 짧은 순간에도 캡틴의 방패술, 호크아이의 궁술, 블랙 팬서의 발톱, 블랙 위도우를 닮은 움직임까지 모두 보여준다. 하지만 다리 위에서 나타샤와 잠시 대치할 때를 빼면 그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존재감을 뽐낼 분량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에서 윈터솔져가 매 액션씬마다 캡틴 아메리카를 위기에 빠뜨리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드라마의 비중을 높이는 대신 액션의 분량이 줄어든 점도 문제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장면들을 제외하면 추가된 장면이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액션의 분량을 줄인 만큼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거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블랙 위도우>의 드라마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가족 영화 서사와 레드룸에 세뇌된 다른 위도우들을 해방하는 여성 영화 서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플롯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네 명의 주인공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그 과정이 너무 빠르고 간편하다. 나타샤, 옐레나, 알렉세이, 그리고 멜리나가 만나는 순간 그들 사이에는 날카로운 감정과 아픈 경험, 시간이 흐른 만큼의 오해가 쌓여 있다. 위장 가족을 진짜라 믿었던 옐레나는 배신감을 호소하고, 나타샤는 레드룸에서 비윤리적인 연구를 진행한 멜리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위장 가족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알렉세이와 멜리나는 자매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한다.
그런데 영화는 16년의 세월 동안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알렉세이와 옐레나는 그들이 오하이오에서 자주 듣던 'American Pie'를 함께 흥얼거리면서 서운함을 말끔하게 씻어낸다. 멜리나는 작전을 위해 찍은 가짜 가족 앨범을 보던 나타샤가 자신이 그녀에게 남긴 말을 일종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레드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두 장면을 제외하면 작중 네 식구가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장면은 전무하다. 곧장 영화가 레드룸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끈끈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화해와 결성 과정을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이 직접 영향받았다고 밝힌 엑스맨 시리즈의 <로건>과 비교해보면 그 분량과 비중이 확연히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나타샤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기억하지 못하는 혈연을 찾는 것, 그 과정에서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함께한 세월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일 때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두 가족이 남아있음을 깨닫는 것은 MCU의 세계관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나타샤가 어벤져스라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모두가 아는 미래에 개연성을 더하고, 그녀의 뒤를 이을 옐레나의 행보에 당위성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이러한 가족 드라마를 영화가 다루는 방식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축인 여성 해방 서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옐레나로부터 레드룸의 존속을 알게 된 나타샤가 다른 위도우들을 해방시키는 플롯 자체는 자연스럽다. 나타샤가 레드룸에서 학대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그 기억과 관련해 큰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이미 밝혀진 만큼, 히어로인 그녀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영화 외적으로도 뜻깊은 선택이다.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전 CEO인 아이작 펄머터가 여성 캐릭터의 완구 판매량이 적다는 이유로 블랙 위도우의 완구 판매를 중지시키는 등의 수난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뇌에 걸려서 조종당하고 목숨이 걸린 상태로 현장에 투입되는 등 극심한 억압을 받는 위도우들을 구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할 여지를 주지 않고 급하게 목적지를 향해 뛰쳐나간다. 예를 들어 나타샤는 그녀가 부다페스트에서 죽인 줄 알았던 드레이코프의 딸 안토니오와 재회한다. 죄책감의 발로로 나타샤는 해독제를 뿌려 아버지에게 조종당하던 그녀를 세뇌에서 풀어주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녀의 존재와 정체성을 회복시켜준다. 그렇게 나타샤는 용서를 빌고 안토니오는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무리 기계적으로 세뇌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유로 자신을 죽일 뻔했던 사람의 말 한마디를 듣고서 그 어떤 적대감도 없이 순순히 그녀를 용서하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심리가 전혀 묘사되지 않은 채 나타샤의 감정선만이 일방적으로 전개되기에 더욱 그렇다. 16년이 넘도록 레드룸을 위해 일하던 멜리나가 나타샤와의 짧은 대화만으로 마음을 돌리는 장면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영화의 의도와 메시지에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을 끼워 맞추는 작위적인 전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안토니오나 다른 위도우들을 세뇌당하고 조종당하던 다른 캐릭터의 사례와 비교하면 <블랙 위도우>의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사실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두 히어로 모두 자신의 과거에 의해 고통받는다. 캡틴은 가장 절친한 전우인 버키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나타샤는 어린아이였던 안토니오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죽였다. 그 죄책감의 대상이 한때 자신이 제거했다고 믿은 적(하이드라와 레드룸)에게 세뇌당한 상태로 재등장하는 것, 두 히어로 모두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세뇌를 푸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의 후계자(팔콘과 옐레나)를 찾는다는 것도 동일하다. 세뇌 피해자인 윈터솔져와 안토니오 모두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권력관계에서 철저히 을의 입장에 있었던 것도 같다. 단지 세뇌 대상자가 여성과 같은 특정한 정체성에 속하는 맥락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순식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과 달리 윈터솔져(버키)는 세뇌의 여파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 이후로도 3편의 영화와 한 편의 드라마에서 치열하게 스스로와 싸워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윈터 솔져>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블랙 위도우>의 여성 해방 서사는 더욱 의아하고 어색하다. <윈터솔져>와 달리 안토니오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다. 그녀가 내적으로 주도권과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옐레나 역시 빨간 해독제를 맞은 뒤 곧장 세뇌에서 풀려날 뿐, 그 과정에 본인의 의지는 개입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을 내리찍고 있는 억압과 폭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고, 여성 간의 연대와 해방이라는 메시지에도 의도한 만큼의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극 전개의 중심 소재로 등장하는, 한 번 맞으면 모든 세뇌를 단번에 풀어내는 빨간 해독제의 존재는 간편한 스토리텔링을 상징하는 도구로 보일 정도다.
이처럼 드라마의 완성도가 기대 이하인 것은 <블랙 위도우>에게 지나치게 과중한 미션이 주어진 여파라고 할 수 있다.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인피니티 워>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그간 암시만 되었던 나타샤의 과거사를 들려주고, 여성 해방 서사를 풀어냄과 동시에 후계자인 옐레나를 소개해야 했다. 각각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도 충분할 여러 플롯을 한 작품에 모두 담아내야 했기에 자연히 액션의 분량은 줄고, 전개도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주인공 쪽에서 할 이야기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보니 빌런의 존재감은 찾을 수 없다. 또한 가족 영화의 드라마도 여성 해방 서사에 종속되어있다 보니 내실을 충분히 기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위장 가족을 다시 찾고 만난 것은 어디까지나 나타샤와 옐레나가 레드룸을 공격해 위도우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영화 전체에서는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기 위해서 <블랙 위도우>는 너무나도 손쉬운, 그래서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망가뜨리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바로 나타샤의 조력자인 메이슨의 등장이다. 그는 못하는 일이 없다. 나타샤가 숨어 지낼 은신처, 헬기, 각종 무기와 유니폼,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말만 하면 다 구해준다. 나타샤가 은신처에서 <007> 영화를 보는 것을 고려하면 <007> 시리즈 속 제임스 본드의 장비를 담당하는 조력자인 Q를 오마주한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 마블 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 없고, 작중 쉴드 혹은 다른 국가 정보부 소속 요원이라는 설명도 없다 보니 그의 행적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존재는 어떻게든 플롯을 전개시키려는 편의적인 두구와도 같고, 영화의 설득력을 한 번 더 떨어뜨린다.
결국 <블랙 위도우>에게 남는 것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앞뒤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고, 다가올 시리즈들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옐레나 비긴즈>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 MCU는 마치 이스터에그를 넣기에 바빴던 페이즈 1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미 20편이 넘는 작품들을 보면서 마블이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지 그 능력과 가능성을 충분히 아는 입장에서 세계관이 갓 시작되던 시기 작품들과의 비교는 그 자체로 아쉬움을 남긴다. 이렇게 <블랙 위도우>는 마지막 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MCU에서 퇴장한다.
P(Poor, 형편없음)
독창성도 설득력도 없이 관성만 남은, 현시점 가장 실망스러운 MCU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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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저튼>, 성(sex)에 무지한 우리들
성(sex)에 대한 의혹, 두려움, 거부감 이런 것은, 많은 작품 속에서 <나 자신 조차 내가 진정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진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곤 한다.
결국 ‘성(sex)’에 대한 의혹이나 거부감, 두려움 등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나는 나의 소망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의 선택은 내가 제대로 나의 소망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성에 대한 의혹이나 두려움, 거부감 등을 가진 인물들은 작품속에서 종종 상대방과 계약관계를 맺거나, 가짜 연극 무대를 펼쳐 주변 사람들을 눈속임하려고 한다.
자기 자신 조차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쉽게 '계약 결혼, 계약 연애', '~하는 척'하는 거짓 연극을 쉽게 시작한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성에 무지한 처녀'의 원형적 캐릭터를 간직한 여주인공 '다프네', 전형적 난봉꾼이자 잡놈의 캐릭터를 간직한 남주인공 '사이먼', 이 두 사람 간의 '계약연애'는 성에 무지하고 성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이, '성'을 매개로 진짜 자기 자신의 소망을 깨닫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먼과 다프네
<브리저튼>은 '성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의 극복, 성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 나의 진짜 소망을 왜곡없이 들여다보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이먼과 다프네의 관계가 '가짜'에서 시작하여 '진짜'가 되기까지, 이 작품은 ‘성(sex)'이 갖는 두 가지 측면, 즉 <착취와 억압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속성>과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 되는 속성> 모두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이먼
사이먼은 ‘성(sex)'이 갖는 부정적 측면, 왜곡된 틀에 갇혀 있던 인물이다. 성을 착취와 억압의 도구로만 여긴다. 그것이 갖고 있는 생명근원적 힘, 사랑의 힘은 보지 못했다. 이 또한 성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 의혹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성(sex)을 잘 안다고 자부했을 잡놈같은 인물이었으나, 사실 그 누구보다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에 무지한 존재였다.
다프네
다프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에 대한 그녀의 무지, 두려움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부러지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그녀의 성에 대한 무지는 '가짜'를 '진짜'로 믿게 만든다.
성(sex)을 통해 성의 긍정적 속성을 새롭게 깨달아 나가는 두 사람
성에 대한 왜곡, 성에 대한 무지는, 사이먼과 다프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는 바로 이 성(sex)을 통해서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
유독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이 화제가 된 <브리저튼>. 이는 두 사람 관계가 가짜에서 진짜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다.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시간. 가짜에서 진짜가 될 수 있었던 시간.
나 자신이 진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선택이 나의 소망에 따른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종종 그 소망은 ‘가짜‘, ‘거짓‘, ‘~하는 척'이기도 하다.
여러 작품 속 '계약 연애', '계약 결혼' 같은 설정이 종종 나온다. <브리저튼>도 그렇다. 계약연예로 시작한다. ~하는 척, 가짜로 시작한 관계이다. 이 '계약 관계(연기하기)'의 설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닿아 있다. 진짜 나의 모습은 감추고, 진짜 나의 소망은 억누르고,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짜 소망이나 가짜 모습을 내세워서 관계를 맺는 것!
그러한 관계는 십중팔구 ‘지속'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수많은 작품들은 말한다.
“내 안의 감추어진 소망이 드러나고, 나 스스로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짜 인생은 시작될 수 없다고!"
수많은 작품 속에 '계약 연예', '계약 결혼' 또는 '~하는 척 하는 가짜 연극판' 같은 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단번에, 자신의 진짜 소망을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자신 조차도 자신을 속이기가 쉽기에! 나 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다프네와 사이먼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하는 척'하는 '가짜 연극 무대'를 거치면서, “진짜”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관계의 지속”도 가능해진다! 더 이상 연극이 아닌! 진짜 자기 인생 속 진짜 관계가!
우리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연기’하는 과정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일지도!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나의 진짜 소망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가짜 판>, <연극무대>가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문학 행위 자체가 (문학을 감상하고 체험하고 생산하는 그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 일종의 안전한 <시뮬레이션> 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이야기를 교류하는 모든 행위가! 한결 안전하게 감추어진 나의 진짜 욕망, ‘진짜 나’의 모습을 탐색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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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다소 한산했던 극장가가 한국 영화들로 풍성하게 채워질 예정입니다.
독특한 제목만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부터 설경구, 김희애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로 화제를 모은 <보통의 가족>, 202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던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까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잠자리 구하기>, <페이퍼맨> 등 다양한 한국 독립영화도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1편 개봉 당시, 국내에서도 약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던 독특한 소재의 공포 영화 <스마일>도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전편과 동일한 감독이 연출을 맡아 더욱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10월 셋째 주 개봉 PICK!
시작합니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DIRTY MONEY
개요: 범죄 | 대한민국 | 100분
감독: 김민수
주연: 정우, 김대명, 박병은, 조현철
개봉: 2024.10.17.
배급: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줄거리
수사도, 뒷돈 챙기는 부업도 늘 함께 하는 생계형 형사 ‘명득’(정우)과 ‘동혁’(김대명). 우연히 범죄 조직의 검은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두 사람은 인생 역전을 위해 신고도, 추적도 불가한 돈을 훔치기로 계획한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던 현장에서 잠입 수사 중이던 형사의 죽음으로 사건은 꼬여만 간다.
“어차피 우리가 저지른 일, 수사하는 것도 우리야”
살인으로 번져버린 사건을 ‘명득’과 ‘동혁’이 직접 수사하게 되고 ‘명득’과 악연으로 얽힌 광수대 팀장 ‘승찬’(박병은)이 수사 책임자로 파견된다. 그리고, 은폐하려 했던 현장 증거까지 두 사람을 점점 압박해 오는데… 목숨 걸 자신 없다면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보통의 가족
A Normal Family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9분
감독: 허진호
주연: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봉: 2024.10.16.
배급: ㈜하이브미디어코프, ㈜마인드마크
줄거리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리고 매사 완벽해 보였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데…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그날 이후,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마일 2
SMILE 2
개요: 공포 | 미국 | 127분
감독: 파커 핀
주연: 나오미 스콧, 루카스 게이지, 카일 갈너, 로즈마리 드윗
개봉: 2024.10.16.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넌 죽음을 목격했어. 그게 이제 너를 따라다니는 거야”
월드투어를 앞두고 자신의 눈 앞에서 기괴한 미소와 함께 끔찍한 죽음을 맞은 친구를 목격한 팝스타 ‘스카이’. 그 날 이후 공연 리허설과 팬 미팅 행사 등 그녀의 삶 곳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화려한 스타의 삶을 뒤덮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스카이’는 자신이 죽어야만 전염처럼 번지는 저주가 끝난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
“이번엔 너도 같이 웃게 될 거야”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You Will Die In 6 Hours
개요: 스릴러 | 대한민국 | 91분
감독: 이윤석
주연: 재현, 박주현, 곽시양
개봉: 2024.10.16.
배급: (주)트리플픽쳐스
줄거리
“지금부터 6시간 후, 당신 죽어”
서른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정윤’은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 ‘준우’에게 죽음 예고를 듣는다. 믿을 수 없는 예언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어가면서 ‘정윤’은 자신을 죽이려는 범인을 찾기 위해 ‘준우’와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예고된 죽음 정해진 미래와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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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침투의 미학
영화사가 시작되고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무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기술적 한계로 지구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는 VFX의 발달로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우주로 향해갔다. 기술적으로 우주에 대한 표현은 정교해졌지만 크리스토퍼 놀란급의 과학적 열정 없이는 소소한 오류들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설명이 충분하다면 개의치 않고 영화를 즐겁게 관람한다. 사실 현실에 가까운 우주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우리는 실제에 기반한 다큐보단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된 우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에게 적절한 방향성을 지닌 영화의 파급력은 빅뱅급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발적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는 그곳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조성희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일반적이진 않을지라도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이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에 더 이질적인 존재들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꼬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사건건 발생하는 침투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것이 조성희 감독이 추구하는 궁극의 미학이며, 이는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당연하게도 외부로부터의 침투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누구에게나 불편한 상황이지만 조성희 감독은 특유의 접근법을 통해 부드럽지만 폭력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제스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노자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도는 없지만 때로는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부드러움이란 천진난만한 아이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남매의 집>을 시작으로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 속에 아이들이 나오는다는 것은 가족을 강조하는 감독의 고집과 등장만으로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는 마법 같은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잠복근무>에선 범인을 검거하는 살 얼음 판 위에서 철부지 아이 같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일반적인 것과 결이 다른 인물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대게 그들의 천진함이 수많은 사건들을 야기하는 방아쇠가 되며, 이는 자칫 관객에게조차 불편한 존재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고집한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무기로 그의 세계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의 세계에 끊임없이 침투를 강행한다. 대게 침투를 받는 이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경각심 가득한 메시지를 보낸다.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에겐 미래란 없다. 단지 과거에 갇혀 스스로 정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아등바등거릴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뽑으려는 시도조차 불사한다. 쉴 틈 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침투를 통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그 순간부터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귀찮아 대답조차 않던 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곱씹기 시작하면서 인물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태호는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수양딸 순이의 죽음이 부족한 돈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호의 집착은 결국 돈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만 세상을 이루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꽃님이를 잃고 만다. 드디어 순이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태호는 죽은 딸의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페이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행복이란 돈이 아닌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과거에 갇혀있던 태호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꽃님이란 미래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의 변화는 아이들이란 미래를 지키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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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절망 속 이야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더 웨일> 포스터 [출처: 씨네랩 제공]
힘든 삶의 단편을 비추는 영화
영화 <더 웨일>은 소수의 등장인물과 주인공인 찰리의 집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이다.
그리고 찰리의 마지막 일주일을 하루씩 보여주는 영화의 흐름은 그만큼 주인공의 삶에 깊이 들어가도록 만든다.
주인공 찰리는 9년 전 결혼한 아내와 8살 딸을 둔 채로 동성 애인과 사랑에 빠져서 가족을 떠난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동성 애인은 세상을 떠났고 찰리는 그 충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 웨일>은 최근 연인을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서 초고도비만에 다다른 찰리의 삶을 보여준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 역시 모두 찰리와 다른 방식으로 힘들게 이어지고 있는 삶들이다.
고혈압으로 목숨이 위태롭던 순간 우연히 찰리의 집에 방문한 토마스는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 교회의 선교사이다. 그리고 찰리가 9년만에 다시 연락한 찰리의 딸 엘리는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기 직전이며 삐뚤어진 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초고도비만의 동성애자, 눈치없는 종말론자, 반항적인 SNS 중독의 비행청소년.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을 가장 평범한 사람들로 등장시킨다. 사별한 주인공, 선한 마음으로 도우려는 이웃, 아빠와 갈등을 겪고 있는 딸. 이들의 삶은 다른 이유로 힘들고 영화는 힘든 삶을 살아내면서 서로 얽혀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더 웨일> 스틸 컷(찰리, 토마스, 엘리) [출처: 씨네랩 제공]
가장 좋은 해결책 솔직함
영화에서 주인공 찰리는 대학에서 에세이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원격으로 강의를 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카메라가 고장난 척 검은 화면으로 이야기한다.
이후 찰리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딸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모아둔 재산을 모두 줄테니 한번씩 들러서 에세이 쓰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는데, 반항적인 딸에게 그가 제시하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솔직한 생각을 적을 것.
앞서 이야기 했던 인물들인 찰리, 토마스, 엘리는 모두 솔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찰리는 살이쪄서 거대해진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고, 토마스는 사실 교회에서 활동비를 훔쳐서 가출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엘리는 찰리에 대한 그리웠던 마음을 숨기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숨기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면서 그들을 솔직하게 만들고 그로인해 그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으며 스스로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가 현실적인 부분은 이들이 솔직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자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찰리는 가르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피자를 배달해주는 배달부에게도 절대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배달부는 단골 손님인 찰리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거나 걱정을 하는 등 꽤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다 어느날 평소처럼 우편함 안에 있는 돈으로 계산을 하고 배달부가 돌아갔을 거라 생각해 밖으로 나온 찰리는 아직 계단에서 기다리던 배달부를 마주한다.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거대한 몸집으로 피자들 들고 들어가는 찰리를 본 배달부의 표정은 마치 괴물을 본 것만 같다. 이전까지 호의적이던 배달부의 태도는 찰리의 겉모습을 보는 순간 혐오로 가득하다.
솔직하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이 불러온 결과를 본 찰리는 분노에 차서 집안에 있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입에 우겨넣고 급격한 폭식에 토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 분노는 스스로 드러낸 솔직함이 아닌 발가 벗겨진 것에 대한 공포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고 그 분노는 홧김에 대학 학생들에게 같잖은 에세이는 때려 치우고 솔직하게 쓰라는 욕설 섞인 충고를 단체 메시지로 보내는 데에 이른다.
다음날 찰리의 솔직한 욕설 메시지에 정말 솔직한 답장을 보낸 몇몇 학생들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찰리는 감춰왔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후련하게 에세이 강사를 그만두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해당 장면 이후에는 찰리가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장면은 더 이상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토마스의 경우도 완전한 타의에 의해서 가장 숨기고 싶던 것이 밝혀지고 의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직함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화는 혐오스런 인물들을 통해서 사실 이들 역시 이렇게 된 힘든 과정이 있었고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솔직한 자신을 드러냈을 때 우리가 희망과 사랑으로 받아준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여러 인물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더 웨일> 스틸 컷 [출처: 씨네랩 제공]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절망 속 이야기
영화에서 찰리는 엘리에게 사랑을 전하려 한다. 찰리가 떠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딸 엘리에게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찰리는 이전에도 종교가 삶의 전부였던 애인 앨런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을 때 아낌없는 사랑으로 그 삶을 이어가도록 만들만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떠나면서 챙겨주지 못했던 딸 엘리에게 남아있는 긍정과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가장 절망적이여야 하는 인물이 건네는 사랑을 우리는 영화 내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는 조금 걸어다는 것 조차도 보조기구가 있어야 하지만 빠짐없이 창문 밖에 지나가는 새를 위해 과일을 놓아두는 사람이고, 자신의 애인을 파멸로 이끌었던 종교에서 선교사가 찾아와도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병원비를 아껴서 딸에게 미래에 바로 설 수 있는 희망을 건네고, 자신을 욕하는 딸의 SNS 문장에서 촌철살인의 글쓰기 실력을 칭찬한다. 이것이 삶을 놓은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태도인 것일까?
찰리의 고단했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끝이 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택 역시도 큰 슬픔이 그를 덮친 것일 뿐 오로지 그의 탓이라 하기는 힘들다.
찰리는 이런 결정을 유일하게 도와주는 인물이 있는데, 하지만 이를 아는 보호자이자 전담 간호사이며 떠난 애인의 동생이던 리즈이다.
리즈는 다른 인물들과 좀 다른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떠나간 찰리의 애인이 리즈의 오빠이고 찰리와 함게 고통을 겪은 인물이다. 그 때문인지 리즈는 찰리를 가족처럼 돌봐주면서도 그가 폭식을 일삼는 것을 말리지 못한다. 아마 찰리가 긍정적임에도 삶을 떠나기로 한 것처럼 리즈 역시 살아가는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찰리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떠오른 인물은 리즈였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찰리가 영화 내내 잠겨있던 절망은 끝나지 않았다. 같은 절망을 겪은 리즈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찰리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서 이후 그녀의 삶은 알 수 없지만 내심 그녀가 잘 견뎌주길 바라게 되는 결말이었다.
<더 웨일> 스틸 컷(리즈) [출처: 씨네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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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PICK!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
오늘은 네 명의 에디터가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를 각각 2편씩 뽑아보았습니다.
4인 4색! 여러분의 취향과 가장 가까운 에디터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최대 기대작도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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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저에 탄 소녀 리뷰 - 무엇이 그녀를 불도저에 태웠는가 (스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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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현실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다.
드라마 ‘SKY캐슬’,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강단과 순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혜윤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한다. 실제로 김혜윤은 직접 불도저를 다루며 혜영 역할을 위해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인물의 들끓는 내면을 온몸으로 표출해 열정을 불태웠다.
개성파 연기자 배우 박혁권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경찰수업’, ‘쌍갑포차’ 등의 오만석 배우, 또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예성이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사회를 향한 관점과 인물에 대한 시선으로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성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현재를 가리키는 시의성을 더해 공감을 이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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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귀문, 레미니 센스, 마더스 인스팅트, 여름날 우리, 캐논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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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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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재필’과 ‘상구’가 전원생활을 꿈꾸며 새집으로 이사 온 날, 지하실에 봉인됐던 비밀이 깨어나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 '핸섬가이즈'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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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 예고편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떤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