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7 14:33:22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마블 스튜디오의 여전한 저력!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새로운 캡틴과 함께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국내 누적 관객 수 79만 명,
북미 누적 수익 약 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국내와 북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왕좌에 올랐습니다.
다만, 최근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첫 주 1위를 기록한 후, 빠르게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현재 로튼 토마토에서 평균 51%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번 신작이 과연 이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2위는 누적 관객 수 71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인 8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리메이크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차지하였고, 누적 관객 수 246만 명을 돌파한 <히트맨2>가 3위입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국내보다 한 주 앞서 개봉한 <패딩턴: 페루에 가다>가 2위를 기록하였고,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슬래셔 무비인 <하트 아이즈>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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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의 유효함을 되묻는 팽팽한 범죄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던 '강인구(하정우)'. 그는 막무가내로 '혜진(추자현)'과 결혼한 후 여러 사업을 벌여 가정을 지탱하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한다. 그런 인구에게 학교 동창 '응수(현봉식)'는 한 가지 사업 아이디어를 준다. 수리남에서 버려지는 홍어를 국내로 공급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이에 곧장 수리남으로 넘어간 인구는 나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간다. 어느 날, '첸진(장첸)'이 이끄는 중국 삼합회와 갈등을 빚게 된 그는 한인 교회 목사 '전요환(황정민)'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인구는 그의 홍어에 코카인을 숨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로부터 전요환이 그의 사업을 마약 거래에 이용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에 국정원의 전요환 체포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 인구는 다시금 수리남으로 향한다.
사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언제나 거대한 적을 마주하고 있다. 이야기의 끝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를 두고 등장인물과 관객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는 그런 긴장감은 효과가 크지 않다. 오로지 결말이 이르는 과정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에 팔 한쪽을 쓸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항상 단점이지는 않다.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민간인의 도움을 받아 퇴각한다는 것,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일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결말을 안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흥미가 없다는 평을 듣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어 모두가 아는 결말에 '어떤 감정과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윤종빈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화를 각본을 바꾸는 재주다. 드라마는 수리남에서 마약 사업을 펼치던 조봉행 검거 작전과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민간인 K 씨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데,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좋다.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정 대목을 길게 늘어놓다가도 한 순간에 감정을 집약시켜 분출시키는 솜씨는 (그 자체로도 극적이지만)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1화를 보자. 1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홍어다. 홍어에는 인구 아버지의 부성애가 담겨 있고, 그 가족애를 물려받은 인구 역시 홍어를 즐겨 먹는다. 더 나아가 홍어는 인구 부자가 공유하는 삶의 의지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내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홍어회를 먹듯이, 가족과 함께 더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며 인구는 홍어를 잡으러 수리남으로 떠난다. 그래서 1화는 예상과 달리 전반적으로 꽤나 밝다. 전요환 목사의 등장이 거슬리기는 하나 인구의 꿈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업이 더 커지고 한 층 더 잘 살 수 있게 되려는 찰나에 홍어는 절망의 원천이 된다. 홍어에서 마약이 검출되자 밑바닥에 시작해 빛을 보는 듯했던 인구의 삶은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마치 순간적인 킬패스로 상대팀의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다소 길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찰나에 1화의 결말은 곧장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게 만든다. 능수능란한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연출적 특징은 다른 대목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작중 전요환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그가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힘을 준다. '변기태(조우진)'을 비롯한 전요환의 측근들 중에 누가 국정원의 언더커버일지 시청자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데이빗(유연석)'이 화장실에서 들어오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장면 등은 짧은 힌트가 진짜 힌트일지 아닐지를 고민하게 만들면서 자연히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수리남>의 화법은 그 내용 덕분에 더 인상적이다. 특히 캐릭터들의 믿음을 다루는 대목이 흥미롭다. 인구는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면 더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희망만을 붙잡은 채 지구 반대편 수리남으로 향했다. 이 믿음은 인구만의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인구 아버지를 지탱했던 힘이었고, 국정원 요원으로 임무에 충실하면 세상을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창호의 신념이었다. 심지어 전요환도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같은 희망을 공유한다. 그간 축적한 자본을 고스란히 재투자해 마약의 생산, 제조, 유통을 단번에 처리할 낙원은 그 믿음의 현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가득한 믿음의 알맹이는 다르다. 특히 믿음을 실천에 옮길 수단이 분기점이다. 믿음을 현실로 불러올 때 그 수단이 될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일견 동일해 보이는 희망을 두 부류로 나누어 대비시킨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구의 믿음은 창호의 신념, 요환의 희망과는 결이 다르다. 국정원과 전요환은 기본적으로 인구를 수단적으로 이용한다. 작전을 위해 인구의 사업을 파괴하고 그의 목숨이나 처지에도 부주의했던 국정원이나 첸진과 그를 저울 위에 놓고 무게를 재던 전요환의 모습은 목적 만을 우선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아무리 돈을 최우선으로 좇는다 하더라도 죽은 친구의 가족과 기일을 먼저 챙기는 인구와의 결정적 차이다. 더 나아가 세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설명하는 기제이다. 인구와 국정원이 결국 다시 협력하게 된 계기는 창호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인구를 한낱 장기판의 말이 아니라 파트너로 대하기로 합의한 이후부터다. 반면에 전요환은 설령 인구를 마약 사업의 파트너로 삼겠다던 말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인구에게 그가 체스판 위의 졸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 마약으로 통제되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 그리고 어린아이까지 붙잡아 두는 잔악함 때문에 인구는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 이처럼 드라마는 믿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구와 요환의 대립뿐만 아니라 인구와 창호의 갈등도 부각해 자칫 평면적일 뻔했던 이야기의 흐름에 변주를 주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서로 다른 믿음 간의 충돌이 그저 개인의 욕심과 열망의 충돌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정신에 대한 메타포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례로 전요환은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가 마약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작중 수리남으로 향한 한국인들은 요환이나 인구처럼 본국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기어코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요환의 존재는 한국에서의 실패로 믿음이 약해진 세계에 침투하는 새로운 형태의 희망이다. 사업 초기에 인구가 요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곧장 그에게 도움을 청했듯이. 달리 말해 요환은 목표 지상주의라는 종교의 화신인 셈이며, 또 시대정신의 무용함을 맛보고도 이를 왜곡된 방식으로 반복하는 실패의 굴레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 사이비 종교의 작동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요환은 종교가 마약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인구와 요환의 갈등, 창호의 변화와 요환의 파멸은 그저 두 개인의 갈등 이상으로 읽힌다.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고, 동행과 상생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향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일 대 일 승부로 끝이 나는 본작의 결말은 기대만큼 쾌감이 강렬하지는 않으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비인간적으로 통제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에게서 가족을 겹쳐 보며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인구에게 목사를 사칭하는 전요환이 직접 붙잡히는 이미지가 필요한 이유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수리남>의 마지막 디테일 때문에 새로운 시대정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메시지가 부정당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 것이다. 요환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인구는 동두천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끝은 핵심 삼인방, 인구, 요환, 창호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데에 열중한다. 정작 그 결말을 가능케 한 결정적 계기인 요환 휘하 교회 신도,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행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이 구출이 되었는지 아니면 수리남에서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예전 아버지들의 모습을 빼닮은 인구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위해 여성과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저 수단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영화의 장르나 실화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여성 캐릭터의 절대적 수가 부족한 것보다는 그들을 활용하는 태도가 일관성 있던 메시지의 설득력을 마지막 순간에 떨어뜨리며 발목을 잡는 셈이다. 그렇게 윤종빈 감독과 넷플릭스의 첫 만남도 숱한 짤과 밈을 남기는 임팩트와는 별개로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재미와 서스펜스, 메시지까지도 전부 잡았다. 그저 블론세이브가 찝찝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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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교환의 무명 배우생활을 그대로 투영한 영화 : 왜 독립감독은 DVD를 주지 않는가?
영화리뷰에 앞서 스포를 주의해주세요!
영화를 만들다 변해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명배우는 기환은 자신이 출연한 독립영화들의 CD를 구하러 다니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많은 영화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아마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여정을 시작했지 싶다. 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그가 만난 독립감독들은 모두 변해있었다. 밤낮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는 자신에게 있어 숨이라고 했던 선배는 그에게 치약을 파느라 숨도 쉬지 못하고 홍보성의 말들을 늘어놓았고, 영화에 열정을 가지고 팀워크를 자랑하던 삼형제 감독은 어느새 한명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다 각자의 같잖은 사연이 있었겠지 형은 진짜 사연이 있잖아" 라며 친구는 위로의 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다시 CD를 찾아 나서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이미 모두 변해있는 독립감독들. 아직 영화판에 남아있는 기환이 보상받은 것은 각자의 추억과 노력이 담긴 CD들 뿐이었다. CD가방을 지하철에 잠시 잊어버린 기환. 다시 지하철에 돌아가지만 가방은 이미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다. 아무도 그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는 그저 무명의 배우일 뿐인 것이었다.
느낀 점 : 정말 재미있지만 웃을 수 없는 작품. '웃프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같다. 학생으로써 나의 진로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여서 좋았고, 다큰 어른의 입장으로 볼 때도 자신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라서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 또한 거의 완전히 옆으로 기울여 찍은 샷이나, 좌우대칭을 맞게 한 샷 등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볼거리를 주었고, 분위기를 너무 슬프지도, 너무 익사이팅 하지도 않게 적당한 무게감을 갖추었다. 구교환 감독만의 톤앤매너도 눈에 띄었다. 삭막한 세상에서 홀로 희망을 가지는 듯한 노란색CD가방이나, 과거와 현재를 섞어 보여주는 연출기법이 눈에 띄어 좋았다. 또한 이 영화는 누가봐도 배우 구교환이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보여주는 배우 주인공의 영화라고 느꼈는데 그만큼 진정성 있는 이야기,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영화가 깊은 감성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고 보였다. 지금은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과거에 비해서) 얻은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 지 궁금했다. 제목또한 알맞았다. 왜 독립감독은 DVD를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파노라마_에디터 OREHF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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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드니 빌뇌브답게 써 내려가는 묵시록의 서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191년, 황제는 아트레이드 가문의 가주 '레토(오스카 아이작)'에게 '듄', 곧 사막과 모래언덕으로 가득한 아라키스 행성을 점령하고 아라키스에서만 나오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를 채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레토는 황제의 명령이 아라키스의 이전 주인이었던 하코넨 가문의 가주 '블라디미르(스텔란 스카스가드)'와 '글로수(데이브 바티스타)'의 음모일 수 있다고 경계하면서도, 측근인 '던컨(제이슨 모모아)'와 '거니(조쉬 브롤린)'의 도움을 받아 아라키스로 갈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한편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폴(티모시 샬라메)'은 어머니이자 마녀의 일원인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에게 여러 교육을 받는 가운데 매일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멘' 여인 '챠니(젠데잉)'를 꿈에서 만난다. 꿈에서 죽음과 파괴를 예지한 후 어머니에게 들은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던 폴은 아트레이드 가문의 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 아라키스로 향하고, 사막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대면한다.
<시카리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으로 이름을 알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 <듄>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우려를 산 작품이었다. 특히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은 기대 요소이자 위험요소였다. 이미 수십 년간 수많은 SF와 판타지 작품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원작을 영상화하는 만큼, 과연 유사한 작품들과 차별화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뻔할 수도 있었던 폴의 영웅담은 빌뇌브 감독의 연출과 편집, 웅장한 영상과 몽환적인 음악을 만나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1부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분명 <듄>을 보다 보면 많은 작품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우선 주인공 폴을 보자. 제국의 대가문 중 하나인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이며, 서로를 배척하던 두 종족을 연결시켜 줄 운명적으로 정해진 메시아인 폴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거대한 전쟁에 뛰어든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수많은 유명 작품 속 주인공이 보인다. 종교적으로 예정된 구세주이자 서로 다른 종족 간의 가교이고 가문의 복수를 다짐한 후계자라는 점은 <왕좌의 게임> 속 존 스노우나 <해리 포터>의 해리를 연상시킨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내적 갈등은 <반지의 제왕> 영화 속 아라곤의 것이다. 우주의 패권을 잡은 제국과 황제의 대항마로 성장하는 소년은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의 모습을 한 적이 있고,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이 원주민들의 예언 속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유사하다.
그 외의 여러 설정도 마찬가지다. 사막으로 가득한 외계 행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이나 사막에서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존재에서는 <스타워즈> 속 타투인이나 자쿠 행성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아라키스 행성에 외계 종족들이 침입해 현지 자원을 약탈해 가는 것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구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된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아바타>를 필두로 유사한 메시지를 내놓는 작품은 사실 적지 않았다. 모든 수분을 식수로 재활용하는 것이나 한 행성은 사막으로, 수많은 동식물은 모래벌레라는 하나의 생물로 단순화시킨 설정은 지구라는 닫힌 생태계에 대한 비유 같아 보이지만, 이조차도 <매드맥스>와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갖는 힘은 그 자체로 여전히 유의미하나, 이들이 <듄>만의 매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듄>은 자칫 기시감으로 가득한 수많은 판타지 SF 영화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빌뇌브 감독의 <듄>은 위험으로 감득한 함정을 마치 모래벌레 피하듯 영리하게 피해 간다. 우선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빌뇌브는 원작으로 되돌아가 폴을 다른 작품 속 영웅들과 차별화하는 길을 찾아낸다. 영웅이 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영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와 경고를 암시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여러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작품 내에서 영웅이 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라곤, 해리 포터, 루크 스카이워커, 제이크 설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설령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고 깊은 고뇌에 빠지더라도 끝내 영웅의 능력과 덕목, 재능을 발휘해 세상을 구해낸다.
하지만 원작 속 폴의 영웅 서사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으며, 빌뇌브 감독은 영리하게 꿈을 활용하여 그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영화는 꿈이란 인간의 마음속 심연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며, 이 내레이션의 내용처럼 폴의 꿈은 영웅의 부정적인 속성을 심연 위로 끌어올린다. 실제로 스파이스를 흡입한 후 폴의 환상은 가문의 복수를 이룬 그가 구세주로서 하나의 상징이 되고, 그로부터 비롯된 광기가 온 우주를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하고 피바다로 물들이는 불길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래서 폴은 자신이 프레멘들의 구세주가 될 운명임을 아는데도 그들의 신앙심이나 계시가 한낱 조작과 선동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여기거나, 피를 흘려야 하는 결투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메시아로 인정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의 예지가 늘 현실이 되기에 더욱 그렇다.
즉, 선택받은 특출한 한 개인, 곧 초인이 세상을 얼마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노래하던 다른 영웅담과는 달리, <듄>의 영웅담은 초인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힘에 대한 경계와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전반적으로 희망을 잃지 않는 장조 화음으로 진행되는 다른 영화들에 반해 <듄>은 불안함을 품은 단조 화음으로 진행되면서 모래사막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나가고, 원작의 고유한 주제를 되살림으로써 오래된 고전의 약점을 지운 것이다. 이는 웅장하고 강렬하나 알게 모르게 귀를 괴롭히고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한스 짐머의 선율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발걸음을 붙잡을 만큼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영화가 폴의 환상을 반복되는 암시나 복선으로 남길 뿐,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 것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강렬한 인상과 남다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보니 원작을 접하지 않은 경우에는 폴의 서사와 일반적인 영웅담의 차이가 명확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한편 빌뇌브 감독 본연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편집이나 연출적 특징은 많은 작품이 공유하는 설정과 세계관 외에도 뚜렷한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영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낸다. 우선 빌뇌브 감독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금기시되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끌어오면서 영화적 긴장감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듄>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에서는 미래의 사건을 삽입하는 플래시 포워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운명과 공동체의 비극 앞에서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미래를 알기에 초인이 되어가기를 경계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개인의 심리가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는 알아도 정작 그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다.
또한 전투 장면에서는 영화적 긴장감을 정적이면서 느린 호흡으로 풀어내는 빌뇌브 감독의 역설적인 장기가 두드러진다. 습격으로 인한 혼란과 급박한 상황을 하늘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는 관찰자와 같은 구도로 차분하게 담아내다 보니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트레이드 가문의 처절함, 생존자의 좌절과 절망은 오히려 극대화된다. 마찬가지로 아라키스 행성을 보여줄 때에도 행성의 전경을 상공에서 보여주는 구도를 자주 취하며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막의 아름다움과 척박함, 모래 벌레의 위용을 스크린 가득 담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황홀한 비주얼은 폴의 서사에서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설명이나 분량을 직관적으로 채워주고도 남는 듯 보인다.
더 나아가 압도적인 스펙터클은 폴의 꿈, 프레멘들의 일상 속에서 기도, 예언과 계시를 읽어내는 마녀들의 존재 등을 만나 마치 한 편의 묵시록처럼 웅장하고 숭고한 인상을 준다. 작중 종교가 신앙의 대상이자 동시에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된 결과, 예수나 무함마드를 비롯해 이미 죽은 예언자들의 이름을 내걸고 전쟁을 치렀던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 간의 역사적 충돌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알레고리가 영화 전반을 감싼다. 그래서인지 <듄>이 성인을 위한 스타워즈가 될 것이라던 빌뇌브 감독의 표현에는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만 시리즈의 1편이기에 피할 수 없는 단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아무래도 시리즈의 시작인 관계로 가문을 비롯해 스파이스나 모래벌레, 그리고 각종 행성과 무기 및 도구들에 설명이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영호의 도입부는 지루한 감이 있다. 그 후로도 느린 호흡을 통해 착실히 기반을 다져나가는 장면이 많은 관계로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의 트렌드와는 잘 결부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초반부 이후에도 영화 템포가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감독의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처럼 불호로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뇌브 감독의 스타일대로 뚝심 있게 뽑혀 나온 2시간 40분은 그 어떤 판타지나 SF 작품과도 다른 독보적인 분위기와 개성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유의미해 보인다. 또한 원작을 읽었든 아니든, 감독의 스타일에 익숙하든 아니든 영화가 끝난 후에는 2부가 언제 개봉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듄>은 많은 우려는 기우라는 듯이 한 편의 독립적인 작품으로나 시리즈의 초석으로나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이제는 대중성까지 잡은 듯한 드니 빌뇌브 표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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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관한 단상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는 몇 가지 분기점들이 있다. 그 분기점들을 기준으로 영화는 시퀀스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이 분기점들과 영화에서 돋보인 몇 가지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 보았다.
총
이 영화의 가장 명백한 분기점은 이만의 총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할 때이다. 이 사건 이전까지 영화는 정적인 편집과 촬영, 실내 조명에 의존한 채 단조로운 공간에서 진행되는 단순한 사회 고발 드라마에 가깝다. 의아스러울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이미지로 가득하던 이 영화는 총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만이 집안을 뒤지는 장면을 현란한 롱테이크로 찍었고, 이 이후 무시무시한 장르영화로 급격하게 바뀐다.
테헤란
이 영화의 또다른 커다란 분기점은 이만 가족이 테헤란을 떠나는 순간이다. 가족이 테헤란에서 이만의 고향으로 잠시 떠나는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의 장르는 심리 스릴러에서 물리적 스릴러로, 영화의 관심사는 최소한으로 남아있던 리얼리즘에서 완전히 장르주의로 바뀐다. 가족 내의 대립 구도가 ‘보수적 부모 대 개방적 자녀’에서 ‘가부장적 아버지 대 여성들’로 변모하는 지점도 이 장면부터다.
카메라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찍고 싶어 했던 것과 찍을 수 없던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레즈반과 사나가 SNS를 통해 접하는 숏폼 푸티지 영상들이다. TV 뉴스를 위한 거짓된 카메라나 이만의 취조를 위한 폭력의 카메라에 저항하는 것으로써 이 영화가 믿는 유일한 카메라는 바로 그 거리의 카메라, 민중의 카메라뿐이다. 이란의 현실들 있는 그대로 담아낸 이 진실의 이미지들은 이 영화가 열렬히 갈망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들 자체가 영화가 될 수 없을 때, 혹은 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아낼 수 없을 때 그 진실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서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로 다른 두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적 드라마를 찍음으로서 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가 실내 위주의 폐쇄적인 이미지로 가득찼던 것은 주인공들이 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실내에 있을 때에도 창밖을 내다볼 수 없거나 혹은 내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레즈반과 사나는 혹시 모를 신변의 위협을 우려한 나즈메에 의해 집 안에서조차 커튼을 다고 생활해야 한다. 또 이만은 주로 법원 안에서 생활하는 인물로 창밖을 바라볼 필요가 없거나 바라보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전반부는 진실의 이미지에 접근하지 못하는 인물들, 곧 그 인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카메라의 한계를 담아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르의 언어를 빌리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제시되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일화, 후반으로 갈수록 광기에 휩싸이는 이만의 모습, 리얼리즘적 실내 공간에서 장르주의적 사막 공간으로 바뀌는 영화의 무대, 그리고 현실적 개연성이 적용되지 않고 점점 폭주하는 서사와 같은 이 영화의 장르적 요소는 가족 간의 불신과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란 사회의 폭력성과 불안정함을 환기한다.
얼굴
이 영화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이미지는 바로 얼굴이다. 이 영화가 극영화로서의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접근하기를 시도한 한 장면은 파편이 박힌 사다프의 얼굴을 찍은 장면이다. 이 시퀀스의 시작은 나즈메와 사나가 굳게 닫혀있던 방안의 커튼을 처음으로 완전히 열어젖히는 행동이고, 이후 발생할 대립구도의 변화를 환기하는 듯 줄곧 자녀들과 사다프, 시위대에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나즈메가 처음으로 감정적 동요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 장면이기도 하다. 사다프의 이 리얼리즘의 얼굴과 직후 장면에서 등장하는 흐르는 물줄기 아래 면도하는 이만의 드라마의 얼굴, 안대 쓴 레즈반과 사나의 숨막히는 장르주의의 얼굴까지 고발 드라마와 장르주의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진실을 모색하려는 영화의 시도는 얼굴이라는 이미지로 귀결된다.
진실을 찍기 위해서 영화는 어떤 방법을 취하는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그 플롯 자체가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의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종종 느슨하고 엉성해지거나 투박해지기도 한다. 또 얼굴이라는 나름 슬기로운 모티프를 발견하여 활용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얼굴로 끝내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는 얼굴이 아니라 손이며, 일종의 반칙과도 같은 SNS 푸티지 영상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사실 이 영상들로 영화를 끝내는 것은 영화가 2시간 47분 동안 해왔던 시도들을 무력화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다소 허무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술로프가 이러한 선택을 감행한 것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 현실이 영화보다 우선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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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쾌한 건 옛말, 이제는 귀여워
'마요미' 마동석이 다시 돌아왔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동석의 통쾌한 액션과 경찰 수사원들의 케미, 사악하지만 매력 있는 빌런의 존재 등으로 <범죄도시>, <범죄도시2>까지 이른바 '쌍 천만'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영화 시리즈다. 이번 영화도 천만 영화를 달성하기 위해 '각'잡고 만든 영화라고 단번에 느껴진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범죄도시3> 스틸컷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 꼽는다고 한다면, 빌런의 매력도 일부일 것이다. <범죄도시>(2017) 장첸(윤계상), <범죄도시2>(2022) 강해상(손석구)이 등장한다. 돈이라면 사람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극악무도한 절대악을 표현하기에 관객은 마동석이 그들을 정의구현하는 스토리에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범죄도시3>는 빌런의 매력이 전작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마약 밀매 비리 경찰 주성철(이준혁)의 이중적인 생활이 약하게 작용한다. 충분히 매력적인 설정을 부여하고 있으나 절대악이라고 단언하기에 어딘가 아쉬운 빌런이다. 주성철의 마약을 회수하기 위해 찾아오는 또 다른 빌런 일본의 야쿠자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도 상당의 빌런 역할을 맡고 있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절대악 2명의 파트 분배가 빌런의 매력을 떨어트리는 작용을 해버린다.
<범죄도시3>는 메인 빌런의 매력이 떨어지고, 서브 빌런의 매력이 올라간다. <범죄도시>, <범죄도시2>에서 서브 빌런이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장이수(박지환)의 부재로 이번 영화에서는 서브 빌런의 매력도 분할한다. 마약 밀매 운반을 맡고 있는 김양호(전석호)와 중고차 딜러 초롱이(고규필)이다. 둘의 엄청난 매력은 <범죄도시3>의 유머를 확실하게 책임진다. 거기에 마석도(마동석)만 할 수 있는 유머까지 더하니 빌런 등장을 제외한 장면들은 라이트하고, 유머러스하게 흘러간다. 모텔 침대 회전 장면이나 자동차 3천 원 거래 장면은 서브 빌런과 마석도의 유머러스를 극치에 달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액션은 전작들보다 섬세해졌다. 어렸을 때 권투를 배웠다는 설정이 더해져 마석도가 펼치는 권투 주먹 액션이 액션의 타격감을 강하게 만든다. 액션의 클리셰를 역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흥미롭다. 마석도가 악당을 물리치고, 이후에 경찰이나 동료들이 찾아오는 장면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연출이 솔직하다. 그리고 액션 이전에 <범죄도시> 시리즈에 등장했던 대사들이 나온다. <범죄도시2>보다 다양한 장면에서 많이 드러내 재미를 더한다. <범죄도시3>는 피가 솟구치거나 신체 상해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 시리즈에서 무섭거나 잔인하다고 말한 반응들이 있었기에 이번 영화는 그러한 요소를 상당히 뺀 티가 난다. 그리고 유머에 더 취중을 두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개그나 유머가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범죄도시3>는 관객의 피드백을 수렴한 장점만을 가지고 만든 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간 빌런과의 액션보다 코미디에만 신경 쓰는 결과가 벌어지지 않게끔 조심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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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라는 상속자에게 들려주는 편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석유 터져 나온 오세이지족 보호구역, 미국 서부 오클라호마. 오세이지족이 부자가 된 이 땅에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타난다. 오세이지족의 친구로 명성을 쌓은 삼촌 '윌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
택시 기사로 오클라호마에서의 삶을 시작한 어니스트. 어느 날 그는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를 승객으로 만나고, 곧장 사랑에 빠진다. 몰리 역시 어니스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들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이내 난관에 부딪힌다. 윌리엄이 조카를 통해 몰리와 그녀 가족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음모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 몰리의 어머니와 자매가 하나 둘 죽어 나가는 가운데, 어니스트는 아내와 유산을 두고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코세이지가 스코세이지 하다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발생한 오세이지족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다. 1870년대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 보호구역에서 강제 이주를 당했고, 결국 오클라호마에 보호구역을 매입했다. 이후 1890년대에 오클라호마 보호구역에서는 석유가 발견됐고, 석유 채굴권을 오세이지족 전체가 공유함에 따라 오세이지족은 벼락부자가 됐다.
하지만 오세이지족은 이내 자기 재산을 강탈당했다. 미국 정부가 도입한 후견인 제도 때문. 백인 남성이 오세이지족 은행 계좌를 관리하고, 미국 정부가 석유 로열티를 대신 맡으면서 오세이지족 자본을 노린 범죄가 난무했다. 이 난리통 중에는 백인에게 가족 모두를 잃은 오세이지족 여성의 사연도 있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의 논픽션에 기반해 그 비극의 시작과 끝을 차분히 비춘다.
소재만 봐도 <플라워 킬링 문>은 스코세이지다운 영화다. 그는 <갱스 오브 뉴욕>, <택시 드라이버>, <아이리시맨> 등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미국 역사의 역설을 성찰했다. '아메리칸드림'이 과연 자랑할 정도로 떳떳한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이 가장 스코세이지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시작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므로.
사랑과 상속의 줄다리기
<플라워 킬링 문>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클라호마에 온 어니스트가 몰리를 만나고, 삼촌 빌의 지시 하에서 몰리의 가족을 살해한 후 유산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전반부다. 이후 FBI가 등장해서 어니스트와 빌의 범죄 행각을 추적하고 법정에 세우는 이야기가 후반부를 채운다. 이때 스코세이지는 전반부에 힘을 준다. 범죄 스릴러의 쾌감 대신 백인과 원주민의 드라마에 주목한다.
특히 어니스트와 몰리의 멜로가 핵심이다. 어니스트가 몰리를, 몰리가 어니스트를 사랑한 것은 분명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기저에 다른 감정을 깔아 둔다. 욕망과 두려움이다. 돈을 욕망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 대한 두려움. 부부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각자 내면의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3시간 넘도록 반복된다. 영화는 그들이 마지막 선택을 내리는 찰나에 비로소 대미를 장식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이뤄질 수 없는 부부 관계를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드러낸다. 사랑, 욕망, 두려움의 근원에는 '상속'이 있다. 오세이지족의 유산을 상속받겠다는 빌과 어니스트의 야욕. 영화는 그 야욕이 단순히 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지난 세월 스코세이지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문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공동체이자 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들을 짓밟는 모순. 그에 힘입어 만들어 낸 '미국'이라는 사회적 자본. 그 자본을 상속받은 지금의 미국까지. 영화는 미국의 자본축적이 피와 불의의 역사였다고 가감 없이 말한다. 그래서일까? 오세이지족 사람들이 만들어낸 꽃과 미국의 첫 번째 성조기가 겹쳐 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지만, 처연하다.
미국인도, FBI도 아닌 오세이지족의 눈으로
물론 <플라워 킬링 문> 속 자성의 메시지는 자칫 뻔할 수도 있다. 미국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은 한 둘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메시지는 유달리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오세이지족의 관점을 빠뜨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어니스트가 화자인 것과는 별개로, 영화는 범죄자와 형사 사이에서 자칫 가려지기 쉬운 피해자를 조명하고자 노력한다. 그 덕분에 메시지에도 최대한의 진정성이 담겼다.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세이지족 구역의 생활상을 비춘다. 오클라호마에서 석유가 터지고, 부유해진 이들. 양복을 입은 그들은 백인 기사를 거느리며 자동차를 타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며,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몽타주는 이질적이라서 더 의미심장하다. 필름 속 오세이지족은 다른 미디어에서 흔히 접한, 통념 속에 갇힌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석유라는 행운 덕분에 손에 쥔 부를 미국인다운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일 뿐이니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논리적 귀결과 달리 이 몽타주는 여전히 이질적이다. 나도 모르게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국인'에서 배제하는 편현합의 발로 대문이다. 이는 스코세이지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백인들의 익숙한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면서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의 진수를 암시한 셈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잊혔고, 잊힐 수밖에 없는 오세이지족의 생활상을 가능한 자세히 기록하려 한다. 템포를 과하게 잡아먹는 게 아닌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오세이지족 언어는 날 것 그대로 영어 자막 없이 삽입됐다. 그들의 장례, 결혼, 유아세례 비슷한 기념 풍습도 스크린 위에 재현된다. 심지어 오세이지족이 믿는 사후세계도 등장한다.
필연적인 호불호
다만 <플라워 킬링 문>은 결코 상업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모든 부분이 대중성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러닝타임만 해도 그렇다. 3시간 26분에 달하는 분량 덕분에 영화는 어니스트, 몰리, 빌의 변화를 사냥개처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분량 때문에 영화의 접근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후반부에 FBI가 등장하며 템포를 끌어올리는 등 탁월한 완급조절을 자랑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스코세이지 영화를 많이 접했다면 전제적인 스토리텔링과 구성, 주제가 익숙하기에 더 지루한 느낌도 있다.
기술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와이드 한 촬영법, 롱테이크와 이동하는 카메라 장면 덕분에 인물의 감정선과 영화의 주제에는 힘이 실린다. 다만 그로 인해 고전 영화와 현대 영화가 섞인 느낌도 든다. 자칫 올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나리오가 변경됨에 따라 배급권이 파라마운트에서 애플 티비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파라마운트의 결단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호불호가 갈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는 안정적이다. 다만 충격적이지는 않다. 특히 디카프리오의 경우 본인이 극을 주도할 때 빛나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 속 '캘빈 캔디' 같은 역할을 맡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니스트' 역을 선택한 디카프리오 대신 FBI 형사 '톰 화이트'를 연기한 제시 플레먼스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도 조연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누구보다도 '몰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톤이 눈길을 잡아끈다. 사랑과 두려움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지만, 그 싸움을 숨기려 최대한 애쓰는 인물을 표정만으로 표현해 낸다.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 위해 얼굴을 보다 보면 마치 모나리자 그림을 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끝내 기대치를 넘어서는 엔딩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엔딩 덕분에 <플라워 킬링 문>의 호불호는 이내 잊힌다. 영화는 남은 이야기를 에필로그 형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주요 인물이 재판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차례이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이 순간을 익숙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실제 자료 화면이나 사진에 자막을 더하는 식으로.
스코세이지는 다르다. 그는 직접 영화에 출연한다. 단순히 모습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올라 낭독극의 화자가 된다. 감독 본인의 음성으로 인물들의 남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 낭독을 통해 영화가 보여준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듯하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는 이야기. 앞으로도 같은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점을 잊지 않겠다는 이야기.
이에 더해 스코세이지다운 방식으로 영화의 위기에 스코세이지가 대처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라고. 설령 달라지는 일은 없더라도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게 이야기꾼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블 영화를 테마파크라고 지적하며 서사를 들려주는 '시네마'의 공간이 줄어드는 세태를 비판했던 것처럼. <플라워 킬링 문>의 끝이 어느 때보다도 노장의 진심으로 가득한 마무리인 이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지막 낭독 덕분에 완성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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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오어 티 영화 후기 / 중국영화 맞아?! / 대만 로코인줄 ㅎㅎ / “스물” 느낌의 유쾌한 코믹 드라마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커피 오어 티"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겨운 OST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중국영화, #코미디, #드라마, #팽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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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상존재> 티저 예고편
인기 개그맨 유세윤은 14살의 어느 날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행동은 점점 사라졌지만 그 당시 세윤을 목격한 가족들과 그의 지인들에겐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세윤에게 또다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은 점점 더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인기 개그맨 유세윤을 둘러싼 15일간의 기록! '그것'의 충격적 정체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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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마존 활명수> 메인 예고편
막힌 웃음 뻥- 뚫어주는 우리는 류진스에염! 올가을 웃음 엑스텐 예고하는 [아마존 활명수]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