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필2025-02-21 11:22:34
영화 서브스턴스
욕망에 의해 게걸스럽게 해체된 살점의 우화
거부할 수 없는 괴랄한 함정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유명 여배우지만 50대에 접어들며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 퇴물 배우가 된다. 생일을 맞이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지만 거울 속 주름지고 더는 탱탱하지 못한 가슴을 보자 우울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고정이었던 쇼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얼굴이 붙어 있던 광고판이 찢겨 나가는 걸 보는 순간 사고까지 당해 최악의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자신의 꼴이 처첨한 엘리자베스는 좌절감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때, 한 젊은 남자 의사가 그녀의 척추를 꼼꼼히 살피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잔뜩 지친 채 노란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그가 몰래 남긴 무언가를 발견한다.
THE SUBSTANCE
iT CHANGED MY LiFE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색상과 사운드를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수위도 굉장히 높고, 관객이 불쾌함을 느낄 지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말 그대로 절정에 치닿는다. 등장하는 색은 크게 빨강, 파랑, 노랑으로 나뉘는데 엘리자베스뿐만 아니라 하비와 투자자들, 대중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인 방송국(제작사)과 광고판을 대부분 붉은 색감이다. 하비의 옷도 주황색 계열이나 붉은 옷이 많고,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찾으러 갈 때 들고 있는 가방도 붉은 색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노른자 같은 코트와 새빨간 가방.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색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엘리자베스의 나은 버전인 ‘수’의 색은 분홍색이다. 엘리자베스와 방송국의 새빨간 욕망 비슷하지만, 비교적 덜 노골적이고 싱그러워 보인다. 마치 엘리자베스의 욕망까지 젊어진 듯 훨씬 생기 있고 당돌한 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색감이다.
그와 대비되는 파란색은 엘리자베스가 공허와 허망함을 느끼는 집에 많이 등장한다. 수로 살아갈 때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집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면 아주 차가운 물 속처럼 시리도록 푸르다. 당당한 수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젊은 몸을 즐기는 반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진 엘리자베스는 그저 지난 영광을 그리워하며 불도 채 다 켜지 않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TV를 피해 화장실만큼 하얀 벽 뒤로 숨을 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수가 만족스런 숨을 뱉으며 침대로 뛰어들 때의 색도 푸른 계열인 것이다. 다만 엘리자베스의 파란색이 원색이라면, 수가 누운 침대의 파란색은 훨씬 짙어 남색에 가깝다. 이는 외로움이나 공허가 아닌 젊음과 명예에 대한 수의 강렬한 소유욕에 더 가깝다.
화장실과 서브스턴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하얗다. 현실에서도 화장실은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없애는 공간이다. 배설물도 그렇고, 묵은 때를 씻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곳엔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이 존재한다.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선택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든 공간처럼 느껴진다.
잔인한 장면만큼 불쾌감을 자아는 인물이 있다. 방송국 대표인 ‘하비’이다.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나오는 스트릭랜드처럼 볼일을 보고 손을 닦지 않을 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새우를 더럽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인물이다. 그의 입안에서 처참하게 으스러지는 새우의 살점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면 하비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은 새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껍데기만 남은 채 그 앞에 쌓인 새우 머리는 엘리자베스‘들’을 연상캐한다.
수의 욕심으로 인해 둘은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관절이 완전히 뒤틀리고 급속도로 늙어버린 엘리자베스는 하비가 준 프랑스 요리책을 보며 난잡하게 요리한다. 칠면조 안으로 손을 욱여 넣고 내장을 뽑으며 토크쇼에 나온 수를 향해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꼭 동화에 나오는 마녀같다.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와 잔뜩 빠진 머리, 툭 튀어나올 정도로 굽은 등은 어딘가 익숙하다. 이전의 건강함마저 잃은 그녀는 차마 잠들어 있는 수를 헤코지하진 못하고 다른 살덩어리들을 폭행한다. 음식은 먹으면 피와 살이 되어 육신을 이룬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몸을 거부하듯 폭력적으로 요리하며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결국, 괴물처럼 변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종료를 선택한다. 그러나 수가 죽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젊고 건강한 몸의 수는 엘리자베스를 무참하게 죽이고 새해 전야 쇼에 나가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다. 그녀를 위해 준비된 파란 드레스는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흡사하다. 원형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수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치아와 손톱이 빠지고 귀가 떨어지며 천천히 몸이 해체된다. 호박 마차도, 요정 대모도 없는 수에게 유일하게 남은 건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했던 서브스턴스 약물 뿐이다. 악착같이 달려 화장실로 뛰어간 수는 남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하며 ‘더 나은 나’를 태어나게 한다.
유리병에 담긴 매혹적인 초록색 약물. 먹으면 죽는 독사과처럼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꾸 원하게 되는 이 약물은 지독한 함정이다. 1회 사용 후 폐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남는 양,‘REMEMBER YOU ARE ONE’이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막상 종료했더니 완전히 둘로 나뉘어지는 것, 그리고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 증거이다.
괴물이 된 수와 엘리자베스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모두가 고대한 새해 전야 쇼장으로 향한다. 그토록 원했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선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는 자신의 젊은 몸과 섹스 어필을 원했던 관객들을 위해 엉뚱한 곳에서 가슴을 뱉는다. 그리고 팔이 뜯어지자 터진 피 분수를 모두에게 선사한다. 거리로 나온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고 뜯어진다. 잔뜩 뒤틀린 등에 힘겹게 붙어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난 영광의 자리로 힘겹게 기어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그 주변으로 영화 내내 인서트 컷으로 등장했던 야자수가 보인다. 마치 네가 여기로 돌아올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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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외상센터 | 키치함으로도 가리지 못한 자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동 각지의 전쟁 지역을 누비며 외상 경력을 쌓아 온 천재 외상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 보건복지부 장관 '강명희'(김선영)는 공석이 된 한국대 외상외과 교수직에 백강혁을 추천하기로 결정한다. 취임 당시 공약도 지킬 겸, 백강혁의 능력을 활용해 정치적 입지도 넓힐 겸. 백강혁도 주저 없이 교수직을 수락한다. 자기 꿈이었던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
백강혁은 항문외과 펠로우 '양재원'(추영우), 외상외과 간호사 '천장미'(하영), 마취과 레지던트 '박경원'(정쟁광)와 함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대학병원 중증외상팀은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를 늘리는 눈엣가시이니까. 백강혁의 성과가 커질수록 병원장 '최조은'(김의성), 기획조정실장 '홍재훈'(김원해), 대장항문외과장 '한유림'(윤경호)과 병원 경영진도 그를 제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중증외상센터>의 두 대들보
한국 넷플릭스에는 전통 아닌 전통이 하나 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마다 히트작을 하나씩 배출한다는 것. <오징어 게임>, <수리남>, <살인자ㅇ난감> 등이 이 계보에 속한다. 물론 전통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2025년 설날에는 이 계보에 한 작품이 추가된 듯 보인다. 동명의 웹소설을 영상화한 <중증외상센터>가 예상치 못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에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그 이후로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국내 1위를 유지했고, 1월 5주 차에는 비영어 TV쇼 부문 1위까지 기록했다. 철저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메디컬 드라마라는 점, 주지훈을 제외하면 두드러지는 유명 배우가 없다는 핸디캡을 극복했기에 더욱 놀라운 성과다.
<중증외상센터>가 사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익숙한 메디컬 드라마에 웹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불어넣었다는 것. 원작을 먼저 접한 시청자도, 드라마로 처음 접한 시청자도 만족하는 중간선을 찾은 덕분에 <중증외상센터>는 뻔하지만 키치하다. 특히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유쾌함이 눈길을 끈다. 그 뒤로 애써 숨겨둔 한국 의료계에 대한 자조 덕분에 <중증외상센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각인되기 때문이다.
뻔하디 뻔하다
사실 <중증외상센터>는 게으른 작품처럼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클리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강혁의 설정은 <태양의 후예>를 연상시킨다. 중동 지역 용병과의 인연 덕분에 손쉽게 위기를 탈출하는 전개나, 군인 못지않은 신체적 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을 보면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을 하나로 합쳤을 때 백강혁이라는 인물이 탄생한 것처럼도 보인다.
주인공과 병원 경영진 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 시점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경영진과 의료 관점에서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의 시각 차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없기에 언제나 흥미로운 대립이다. 병원이 환자 치료를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는 당위는 원론적으로 옳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외의 스토리라인도 수 차례 접한 내용의 연속이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의사가 오히려 부상을 당하는 전개는 어러 메디컬 드라마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위기다. 특별한 수술 실력을 지닌 교수가 자기 뜻에 맞는 전문의나 전공의를 찾아내고, 그들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플롯은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물론 <중증외상센터>는 익숙함에 기대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다. 색다른 지점도 존재한다. 우선 가시적으로는 로맨스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백강혁은 병원 내 그 어떤 인물과도 로맨스를 펼치지 않는다. 악연에서 인연이 될 것처럼 보이던 천장미 간호사와도 철저히 동료로 남는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얼핏 애틋한 감정을 지닌 관계성을 보여주는 순간이 종종 있지만, 그들의 감정선이 로맨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신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사실 백강혁이 의사가 된 계기는 눈물 가득하게 풀어낼 수 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병원장을 보고 감동받아서 그처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백강혁은 신파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는다. 양재원을 외상외과로 꼬시기 위해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하거나, 마지막으로 병원장을 설득할 때 활용할 뿐이다.
환자들을 보여주는 방식도 기존 메디컬 드라마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는 한순간도 극을 주도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들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수술법을 익혀야 할 케이스 혹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역경의 기능을 맡을 뿐이다. 각 환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들의 과거사가 얼마나 불운하거나 안타까운지에 대해서 드라마는 일절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고 강조하기
<중증외상센터>의 특징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암시하기에 더욱 흥미롭다. 웹소설을 어떻게 영상화해야 하는지 일종의 교보재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웹소설 원작을 안일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소설이나 시나리오와는 문법 자체가 다른 웹소설의 특징을 살리기보다는 기존의 틀에 맞게 각색하여 웹소설만의 분위기를 가급적 지워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대표적이다. 회귀물을 한국형 아침 드라마 틀에 끼워 맞춘 나머지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미래를 안다는 이점을 활용해서 회장과 대적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대신, 단순히 상속 유산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재벌 가족극의 일원으로 묘사해 버렸으니까. 장단점을 떠나서 웹소설만의 매력을 거세한 셈이다. 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기존 틀로 웹소설을 해석하다가 중심을 잃는 경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중증외상센터>는 다르다. 원작의 장르적 쾌감까지도 드라마라는 매체에서 구현하려 애쓴다. 일례로 한 에피소드 안에 여러 환자와 사건을 쏟아내면서 일시정지할 틈을 안 준다. 환자가 한 번 등장하면 여러 회차에 걸쳐 그의 서사를 보여주는 기존 드라마 작법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대화 중심으로 사건을 간략히 서술하면서 기승전결을 짧은 분량 내에 끝내는 웹소설 작법을 드라마 작법으로 반영했다고 볼 수도 있는 사례다.
웹소설에 충실해도 충분하다
이에 더해 대리만족 서사의 비중이 큰 웹소설의 특성도 놓치지 않았다. 남성 독자가 많은 웹소설은 주인공의 사회적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여러 이해관계가 뒤엉켜 복잡한 현실과는 달리 웹소설 속 주인공은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하고, 악역에게 복수하며, 사회적인 추앙을 시원하게 쟁취한다. 이러한 사이다 행보로부터 독자들은 즉각적인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드라마 속 백강혁은 거의 완전무결한 만화적 캐릭터다. 그는 남들이 온갖 장비를 동원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환자의 부상 정도를 눈과 귀만으로도 알아낸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요원들에 버금가는 신체적 능력도 지녔다. 그러다 보니 역경을 겪는 상황이 많지 않다. 혼자 힘으로도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계략을 손쉽게 타파할 수 있으니까. 그나마 드라마 말미에 화재 현장에서 당한 부상이 가장 큰 위기인 정도다.
사이다 같은 웹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톤을 영상 매체에서도 고스란히 재현해 냈기에 <중증외상센터>는 기존의 한국 메디컬 드라마와는 차별화된다. 다른 드라마,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와는 다른 특유의 키치함이 느껴지는 지점인 셈이다. 일종의 이정표라고 할 수도 있다. 웹소설 고유의 감성과 톤을 약화하지 않고 강조하더라도 시청자를 매료할 수 있다는, 가장 대중적인 방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쾌함 속 자조, 단맛 뒤 씁쓸함
다만 <중증외상센터>의 키치함이 마냥 달지는 않다. 단맛 다음에 찾아오는 씁쓸한 여운이 유달리 길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유달리 쓴 탓이다. 사실 환자의 생명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병원 경영진이나 정치권을 비판하는 장면은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숱하게 등장했다. 세 시즌에 걸쳐서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호소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계는 여전히 그림자가 짙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계기로 이국종 교수가 각광받은 15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중증외상이나 필수과 의료 현장 여건이 개선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악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강혁이라는 슈퍼 히어로를 꿈꾸는 <중증외상센터>의 유쾌함은 자조의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백마 탄 초인 외에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반어법인 셈이다.
요컨대 <중증외상센터>는 진통제다. 아픔이나 염증의 원인을 알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 굳이 들여다보는 대신 백강혁이라는 초인을 내세운 메디컬 판타지로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셈이다. 이에 더해 진통제 효력이 다하는 순간에는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극대화하면서 직설적인 비판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유쾌함 속 자조, 단맛 뒤 찾아올 씁쓸함이 곧 <중증외상센터>만의 소구력이 아닌가 싶은 이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매체의 경계를 넘나든 키치함 가득한 메디컬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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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로맨스 없이도 로맨틱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배유람
시놉시스] 대재앙 같은 발연기로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남태평양 ‘콸라’섬에서 운명처럼 자신을 구해준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한편, 서울대가 당연한 집안에서 홀로 고독한 입시 싸움 중인 4수생 ‘범우’(공명)는 한때 자신의 최애였던 여래가 옆집에 이사온 것을 알게 되고 날마다 옥상에서 단독 팬미팅(?)을 여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단의 사업 확장을 위한 인형 역할에 지친 여래는 완벽한 스크린 컴백을 위해 범우에게 SOS를 보내게 되고 이들은 여래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죽여주는 계획을 함께 모의하는데…
2023년 개봉작 중 입소문으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역시나 <킬링 로맨스> 아닐까. “재미있겠네. 다음에 봐야지…” 정도로 가볍게 바라보고 있던 이 영화는 극단의 호불호 후기와, 해탈한 듯한 배우들의 인터뷰, 무대 인사 후기까지 죄다 재미있었다. 이제 영화만 재미있으면 되는데. 나는 <킬링 로맨스>를 보기 전에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부터 보았다. 이십대 초반 아직 풋풋하던 내가 극장에서 보기엔 너무… 포스터가 이상해 보였던 작품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고 생각보다 웃겼으며 생각보다 뇌리에 남았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무반주 음악에 흠… 하핫… 핫초ㅑ… 하며 뻘쭘한 춤을 추던 배우 오정세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버렸다.)
이것도 재미있겠군! 웃기겠군! 좋겠군! 기대하며 <킬링 로맨스>를 보았다. 재미있었고 웃겼고 좋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어느 한 구석이 나의 오타쿠 감성을 자극하고 말았으니… 나는 감동까지 받아버리고 말았다. 팬과 스타, 로맨스 없이 로맨틱한 그 관계에 대하여.
#1. 브리트니 스피어스 <Lucky>
태초에 “She was everywhere”였던 누군가가 있었다.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 그를 모두가 “사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너무 일방적이고 그만큼 오해와 편견에 빛을 잃기도 쉬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Lucky> 노래 가사처럼, 그토록 사랑을 받는 스타는 밤에 혼자 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센세이션이 저물고, 세상은 “사랑”할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의 여래(이하늬 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브리트니의 노래 가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무수한 말, 쏟아지던 조롱과 비슷한.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노래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HOT의 <행복> 말이다.
기묘한 마이페이스로 밀어붙이면 상대는 기세에 눌리기 쉽다. 마치 괴한을 쫓던 그의 “powerful punch”처럼. 그러나 비대한 자의식에 자리를 내어주느라 상대의 자아에는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의 언어와 행복의 노래를 가장한다 해도. 이미 세간은 이 가장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담아낸 지 오래다.
#2. HOT의 <행복>과 레드벨벳의 <행복>
조나단의 입버릇은 ‘완성’이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프레임 속 여래의 미소는 랄라텐 광고 속의 미소 반만큼도 살아있지 않다. 옆집 사수생 범우에게 받아 든 랄라텐을 예의 실력으로 순식간에 마셔버린 다음 미소를 짓는 여래는, 랄라텐 마시는 속도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실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연예인인데 말이다. 그는 조나단의, 조나단을 위한, 조나단에 의한 조나단 월드에 갇혀 있다.
조나단이 귤을 쥐는 순간, 이 영화에 귤이 처음 등장한 순간, 아직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 소름이 돋았을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폭력의 수단이 무엇이든 폭력은 폭력이다. 뭐든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그 폭력성이다. 새콤달콤한 귤에 죄가 없다고 귤을 이용한 폭력이 죄 아닐 리 없을 것이다.
수단에 감정 이입하는 건 모두 틀렸다. 폭력의 수단뿐 아니라 행복의 수단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노래는 새로 부르면 된다. 레드벨벳의 <행복>을 불러도 되는 거고, HOT 노래를 NCT가 리메이크할 수도 있는 거고요. (참고로 그 곡은 행복이 아니라 <캔디>이며, 공명의 동생 도영은 거기 없었지만… 이선균 씨 참고 바랍니다.) 게다가 잘 들어 보면 여래의 필모그래피에는 이미 <행복>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수단은 바꿔치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칸트처럼 말해 보자.
#3. 에픽하이 <fan> 대신 자우림의 <fan>
가스라이팅 앞에 기꺼이 “bad girl”이 되겠다 일갈하고, <제발>을 부르며 일어선 여래의 분연한 얼굴은 분명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그 덕분에 방범등은 꺼지는 순간 축포가 되고, 바로 그 순간 달은 가득 차올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가 계속 주목하게 된 건 여래와 범우 사이의 마음이었다. 7년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로 자기 삶을 응원한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비록 범우는 여래의 소원을 척척 이루어 주지도, 여래와 같은 마음으로 손발을 척척 맞추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래가 돌아갈 과거가 다시 여래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런 범우가 영화 속에서 불가능을 넘어 소통하는 법을 아는 인물이라는 점 또한 괜스레 뭉클하게 느껴진다. 그런 목소리라면 닿을 것이다. 여래에게 닿았듯이. 진심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했으나 끝내 대중과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어떤 이들에게도.
세상에는 범우의 다락방 같은 방이 얼마나 많을까. 부디 거기서 울려 퍼지는 팬의 노래가 에픽하이의 곡보다는 자우림의 곡에 더 가까웠으면 한다. 가질 수가 없는 미친 사랑을 괴로워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행복하니까.
#4. 그리고 어느 팬에게 남은 말
한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오래오래, 시간을 따라 함께 기쁘게 뛰어보자고. 땀 나고 타조 깃털 휘날리는 길이더라도, 같이 뛰어가고 싶다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노래를 부르고(“누나 왜 노래를…”), 거기서 함께 힘을 얻으면서 가보자고. 무지하게 겁나도 끝까지. 그렇게.
나는 당신 얼굴의 자연스러운 주름, 세월 따라 더해지는 표정, 그런 것들을 오래 보고 싶다고. 그런 모습이 좋다고. 그냥 이 작업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운 것이었으면 한다고.
로맨스가 아니어도 충분히 로맨틱한, 어떤 행복이라고.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중 상영일정
7월 1일 19:30-21:17 한국만화박물관 (상영코드 337)
7월 5일 19:30-21:17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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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영화 <페어웰>부터 <새해전야><톰과 제리>까지! 2월, 기다렸던 화제작 총출동!
2월 극장가,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화제작들이 출격한다. 2월 4일(목) 개봉하는 전 세계 33관왕에 빛나는 룰루 왕 감독, 아콰피나 주연의 <페어웰>부터 화려한 배우 라인업을 자랑하는 영화 <새해전야>, 그리고 추억의 캐릭터 실사판 영화 <톰과제리>까지 개봉을 확정해 오랜만에 극장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을 전망이다.
먼저 2월 4일 개봉하는 <페어웰>은 뉴욕에 사는 ‘빌리’와 그녀의 가족들이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거짓말을 담은, 2021년이 거짓말처럼 행복해지는 센세이션 흥행작이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위대한 아시아 여성 감독’ 룰루 왕의 작품으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룰루 왕 감독의 실제 경험인 만큼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을 전하는 <페어웰>.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가짜 결혼식을 준비하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빌리’와 가족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진심에 집중해 다정하고 따뜻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한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모이기 어려운 상황 속 ‘함께’라는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예정이다. <페어웰>은 오랜만에 등장한 진정성 있는 감동과 따스한 웃음을 선물할 웰메이드 가족 영화로 흥행몰이를 예고한다. 특히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계 최초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콰피나의 열연과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기생충>을 제치고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룰루 왕 감독의 연출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감을 높인다.
2월 10일(수)에는 매력적인 대세 배우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최수영, 유태오까지 믿고 보는 멀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새해전야>가 개봉한다. <새해전야>는 인생 비수기를 끝내고 새해엔 더 행복해지고 싶은 네 커플의 두려움과 설렘 가득한 일주일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사랑의 실패로 새로 찾아온 사랑을 두려워하는 ‘지호’(김강우)와 ‘효영’(유인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재헌’(유연석)과 ‘진아’(이연희), 국제결혼을 준비하며 생기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 나가는 예비 가족 ‘용찬’(이동휘), ‘야오린’(천두링), ‘용미’(염혜란), 그리고 주변의 편견에 조금씩 흔들리는 오랜 연인 ‘오월’(최수영)과 ‘래환’(유태오)까지 네 커플이 전하는 공감 가득한 이야기들로 연인, 친구, 가족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힐링 무비로 주목받고 있다.
2월 24일(수) 개봉하는 <톰과 제리>는 자타공인 장난꾸러기 라이벌 콤비 톰과 제리의 뉴욕을 발칵 뒤집을 역대급 대소동을 그린 라이브 액션 & CG 애니메이션이 섞인 하이브리드 영화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앙숙관계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환상의 짝꿍인 톰과 제리는 뉴욕 대도시의 화려한 조명 아래, 새로운 무대를 배경으로 서로 힘을 합쳐 잔망 넘치는 깜찍 케미를 펼쳐 보인다. 클로이 모레츠와 마이클 페냐, 켄 정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의 찰떡 호흡도 기대를 더한다. <톰과 제리>에 담긴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의 가치, 우정과 협력의 중요성,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모험 등은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해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화제작들이 팬데믹 시대 꽁꽁 얼어붙은 극장가를 녹여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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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 가이> 세상 모든 NPC에게 전하는 희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프리 가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 '프리 시티'의 모습은 포트나이트와 GTA 시리즈를 닮았다. 주인공 '가이(라이언 레이놀즈)'가 자신의 현실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스토리 라인, 주어진 각본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과 그를 보며 당황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트루먼쇼>가 보인다.
저작권 제국인 디즈니의 힘을 빌린 크리스 에반스의 카메오 출연 및 캡틴 아메리카 방패, 헐크의 팔, 스타워즈 광선검 같은 이스터에그의 등장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연상케 한다. 코나미를 비튼 게 분명해 보이는 게임회사 수나미의 존재 역시 <레디 플레이어 원>만큼이나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작중 게임과 현실을 넘나드는 가이의 존재감 또한 영화와 현실 사이 '제4의 벽'을 넘나들던 라이언 레이놀즈의 인생 부캐, 데드풀에 비견될 만하다.
그러나 <프리 가이>를 단순히 수많은 레퍼런스가 집합한 오락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달리 주인공을 게임 속 NPC로 설정한 결과, <프리 가이>는 현실에서 NPC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는 물론, 그 이상의 희망을 주는 영화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날강도와 피 튀기는 총격전이 공존하는 버라이어티한 도시, 프리 시티에서 평범한 은행원의 삶을 살아가던 '가이'는 거리에서 우연히 '몰로토프 걸(조너 코디)'과 마주치고, 한눈에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사실 '밀리'이고, 가이가 보는 자신의 모습은 그저 게임 속 플레이어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동업자 '키즈(조 키어리)'에게 가이는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을 프리 시티의 개발자 '앙투안(타이카 와이티티)'이 무단으로 도용한 증거를 찾을 때 도움이 되는 npc에 불과하다고도 말한다. 이에 그녀를 만나 마침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믿었던 가이는 큰 좌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프리 가이> 역시 주인공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남겨두지 않는다. 진실을 깨달은 가이는 절친이자 은행 경비원인 '버디(랄렐 호워리)'를 찾아가 이 세상이 사실 가짜이고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버디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이 진실이든 아니든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과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이러한 버디의 말을 들으면서 가이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고, 그는 자신의 세계인 프리 시티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프리 가이>의 중심 플롯을 뒷받침하는 메시지, 곧 지금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자는 격려는 낯설지 않다. 일례로 이는 작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개개인을 마모시키고 파편화하는 사회에서 무작정 목표만을 쫓기보다는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두고 지금 이 세상을 즐기자는 <소울>의 메시지도 재즈 음악을 만나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바 있다.
하지만 익숙함과 별개로 <소울>의 위로에는 야누스의 두 얼굴 같은 일장일단이 있기도 하다. 당장의 삶이 고달픈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이지만, 그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그 위로는 언제든 마약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구조적 모순과 현실의 문제를 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프리 가이>는 <소울>의 따뜻함 이면에 숨어 있는 이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그 중심에는 가이가 NPC라는 설정이 위치한다. 이 설정을 통해 <프리 가이>는 현대인들의 삶을 가이의 삶에 일치시키고, 자칫 평범할 수 있었던 위로를 실천적인 희망의 메시지로 탈바꿈시킨다.
작중 NPC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종속성을 꼽을 수 있다. NPC는 자기 결정권을 지니는 일반 플레이어와 달리 게임이라는 세상 안에서 미리 결정된 방식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들은 주어진 시나리오에 갇혀 있으며, 심지어 규칙에서 어긋나는 것을 불편해하며 스스로를 그 시나리오에 가두려고 한다. 버디는 가이로부터 불편한 진실을 들은 후에도 애써 이를 무시하려 한다. 카페 사장은 늘 마시던 커피가 아닌 카푸치노를 달라는 가이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매일마다 강도를 만나는 행인은 항복의 의미로 들어 올린 두 손을 좀처럼 내리지 못한다. 밀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이도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이때 NPC들이 스스로를 게임의 규칙 속에 가두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작품에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게임 밖 현실을 사는 현대인들도 NPC처럼 일정한 규칙에 순응하게끔 스스로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근대적 감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고찰한 결과, 푸코는 감옥 체계가 공장, 학교, 병원 등과 같은 감옥 밖의 현상과 밀접한 상호 관련성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판옵티콘을 닮은 사회 안에서 현대인들은 전반적으로 규율과 규범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당장 교사가 학생을 감시할 수 있는 교실 구조,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 뜨는 유해정보 차단 알림 화면, 도로 구석구석 깔려 있는 cctv 등은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을 감시, 감독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스스로를 통제하고 규칙에 종속시킨다는 공통점 덕분에 그저 한 NPC의 판타지였던 <프리 가이>는 이제 현대인들의 일기나 다름없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푸코가 감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안한 내용을 가이가 실천에 옮긴다는 사실로, 바로 이 대목에서 <프리 가이>는 동병상련의 위로를 넘어서는 실제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푸코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한계를 분석하고, 그 한계를 위반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며, 가능한 경우 변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가 제시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에 맞는 삶을 살아야 억압적인 사회와 권력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중 가이는 이 모든 일을 해낸다. 그는 밀리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프리 시티라는 게임, 곧 사회의 오류를 발견한다. 이후 자신에게 부과되었고 본인이 이유도 모른 채 유지시켜 온 라이프 스타일을 거부한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은행에 출근해서 똑같이 은행 강도를 만나야 했던 그는 의식주를 바꾸는 것은 물론 직접 은행 강도를 때려눕히기까지 한다.
심지어 영화는 가이의 이타심과 연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는 주인공 '가이(guy)'의 이름이 남녀 상관없이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이고,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친구의 이름이 문자 그대로 친구라는 의미인 '버디(buddy)'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이는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주변인들에게도 전파한다. NPC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게임 플레이어들만의 세상을 발견한 후에는 새로운 세상의 재미를 버디와도 함께 나누려고 한다. 프리 시티가 게임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게임 속 모든 NPC들을 불러 모아서 불편한 진실을 전하고, 모든 순간순간을 가치 있게 살겠다는 자신의 다짐도 공유한다.
카페 사장은 늘 만들던 커피가 아니라 카푸치노 같은 새로운 메뉴들을 만들어 내고, 매일 강도를 만나 손을 번쩍 올려야 하던 남성은 그 손으로 주먹을 쥐어서 강도를 때리려고 노력한다.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가 되어주는 대신 NPC끼리 한 데 모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파업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이와 친구들이 진정한 자유로 가득한 도시, 프리 시티를 일구어내는 모습을 보면 이미 NPC들과 한 마음인 관객 역시 일상 속 작은 변화를 통해 현실의 큰 변혁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프리 가이>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위로가 아니라 보다 실천적인 희망으로 이해될 공간을 남겨둔다.
다만 <프리 가이>를 현대인이라는 NPC에게 각성의 희망을 건네는 영화로 이해할 때, 이 작품의 결말은 유난히 짙은 아쉬움을 선사한다. <프리 가이>는 애매한 비중을 차지하던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급진전시키면서 마무리된다. 이때 로맨스가 부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아를 찾고 자신만의 세상을 일구어낸 가이의 의미를 다시금 제한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로맨스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이를 마치 게임 개발자의 아바타처럼 묘사하면서 대담한 전개에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프리 가이> 속 다른 단점들마저 가려버린다. 게임 속 이야기에 비해 게임 밖에서 밀리와 키즈가 앙트완과 대립하는 플롯의 몰입도가 부족한 것과 게임회사의 모든 작업이 엔터 키 하나로 처리되는 편리한 전개 등은 결말이 남기는 물음표에 압도된다. 개개인이 자신에게 부과된 한계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영화가 정작 본인에게 부여된 상업영화라는 한계는 이겨내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이렇게 <프리 가이>는 짜리한 해방감만큼이나 짙은 미련을 안기며 결승선 코앞에서 발을 헛디딘 채 마무리된다.
A(Acceptable, 무난함)
세상 모든 사람이 진정한 프리 시티를 만들 날을 희망하는 영화
* <괴물과 함께 살기>, 정성훈, 미지북스, p.155-157
** 같은 책, 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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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아스와 막심 / Matthias et Maxime
< 마티아스와 맥심 / Matthias et Maxime >
작년부터
자비에돌란 인스타에 대체 언제 한국에서 개봉하냐는
애정어린 댓글을 보냈을 정도로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
저번에 명동씨네에서 하는 티켓 못구하고 마음속으로 광광울다가
엊그제 우연히 들어간 씨지비앱에서 3자리 남은 거 발견하고 바로 예매함.
(그리고 바로 예리한테 알려줘서 예리도 예매 성공..!)
그런데 A15여서 걍 다음에 봐야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제 새벽에 다시 들어가보니
딱 내가 들어간 타이밍에 어떤사람이 F열3번 자리 취소해서
나도 A취소하고 바로 예매함!
그리고 다행히 예리도 E열로 재예매해서 둘다 편한 자리에서 즐겁게 관람했다.
참고로, 아직 정식 개봉 안함.
부국제에서 잠깐 개봉하고, 12월달인가에 엣나인에서 하루 개봉하고,
요즘 다시 일주일에 한두타임씩 보여주고 있음. (용산,명동에서)
그래서 자리 구하기 진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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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친구집에 놀러간 막심.
거기서 친구 여동생이 영화에 출연할 사람이 펑크냈다며
오빠들한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한다.
흔쾌히 수락한 막심.
그리고 다른 오빠들은 회피하는 가운데
내기에서 진 맷이 출연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촬영에 임하기로 한 가운데
동생에게 두 사람이 키스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맷과 막심 모두 머뭇거리다 결국 촬영하게 된다.
그 이후로, 맷과 막심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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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점 /
'단지 세상의 끝' 빼고 자비에돌란의 영화를 다 본
자타공인 자비에돌란빠인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그가 여태껏 만들어왔던 영화들과
그 영화의 재질(?)느낌(?) 이 달랐던 것 같다.
카메라를 다른걸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돈이 들어간게 티가 난달까.
그리고,
몇몇 부분에서도 이전 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다.
1. 자비에돌란은 자신이 감독하고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늘 게이 캐릭터로 설정하고
그걸 엄청나게 드러내는데,
이 영화에서는 솔직히 그가 게이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나타낸다.
친구들이 흘러가는 말들로 '호모'라는 단어를 그에게 쓰긴하는데
이게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엔 부족한 것 같다.
2. 자비에돌란이 이성과 키스하는 씬은 정말.. 새로웠다.
난 그가 이성과 키스하는 씬을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키스도 하고 심지어 그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까지한다!
보기에는 진심의 키스라기 보다 사회 혹은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 같긴한데, 그래도 신선했다.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실망한 부분들도 있었다.
1.
그의 예전 작들과 다르게 감정선이 크게 들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감정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맷과 막심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의 이전작인 탐엣더팜이나 마미 등을 보았을 땐
주인공들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게 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분명 주인공이 울고있는데 나는 슬프지가 않다.
2.
너무 불친절한 상황설명?
분명 말하고 싶은 바는 많은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다.
설명충을 바라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등장하는 인물들과 주인공 사이의
관계와 상황 정도는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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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족한 부분들이 있긴해도
나름 재밌는 영화였다.
내가 본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 듯.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p.s. 가장 지루했던 영화는 '로렌스 애니웨이'..또 보지는 못할 것 같다.)
+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겨서 눈호강 장난아님..
친구 여동생 진짜 너무 예쁨..
그리고 막심 친구들도 다 잘생김..
막심(자비에돌란)얼굴 보고 놀라고
다음씬에 나오는 맷 얼굴보고 감탄하고
장발친구(이름이 기억안나네)보고 설레고
존잘대잔치~~!
+
중간에 맷이 회사일 끝나고
식당에서 혼밥하는데
뚝불(뚝배기불고기)먹고 있는거 보고
진짜 육성으로 뿜을 뻔했다
처음에는 중식당인가 했는데
식당에 불고기라고 적혀있는거 보고 깨달음
애틋한 우정일까, 애매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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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은 내가 이룰 거야.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일년에 세번 큰 고민에 빠진다. 어린이날,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서 한달 전부터 착한일을 하고, 울지 않고, 카드를 쓰는 덕에 크리스마스는 미리 미리 준비했던 것 같은데, 어린이날은 벚꽃놀이다, 봄이 왔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코 앞에 닥쳐 있는 때가 많았다. 부랴부랴 준비해 보지만, 4월말엔 인기 있는 장난감 가격이 평소 대비 비싸져 있다. 배송을 받기에도 시간이 촉박할 쯤 되면 나는 작전을 바꾼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에서 “가고 싶은 곳은 없어?” “하고 싶은 게 뭐야?”로 ! 소원이라는 거창한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하나를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소원, 소망, 바람….어떤 것을 바라는 소중한 마음.
영화 <위시>는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 이 만든 마법의 왕국 ’로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총명한 소녀 ‘아샤’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일을 돕고 싶어, 왕의 수행비서로 면접을 보러 찾아 갔다가.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혼란에 빠진 ‘이샤’의 간절한 기도에 특별한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별의 능력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아샤의 염소친구 ‘발렌티노’와 친구들과 함께 진심 어린 소원과 용기가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매그니피코 왕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매그니피코왕은 본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기 시작하고, 아샤와 친구들은 예상 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사실, 영화 자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클리셰범벅인듯한 장면들과 이해가 안되는 서사와 사건의 해결과정, 입체감이 없는 캐릭터등등 사실 거의 총체적 난국에 가깝다. 이런 나의 실망과 달리 우리집 8세 어린이는 이 영화를 본 후, 매일 OST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엄마, 내 마음은 내 꺼야. 나의 꿈은 내가 이룰 거야.”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했지만 실패해버린 영화의 단순한 주제를 아이는 심플하고 담백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른의 마음으로 모든걸 판단해버리지 말자 싶었던 순간이다.
갖고 싶은 것을 선물하기엔 조금 늦은 어린이날 D-2 나는 그 핑계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이번 어린이 날엔 우리 어떤 시간을 보낼까?”
지금이야. 너의 바람이 이루어질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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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마블이 나아가는 다양성, 그리고 차별? (페이즈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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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29 마블과 여성
02:19 흑인, 그리고 소수자
04:17 짤막한 마블쟁이 생각
2021. 01. 0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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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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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인 예고편
1957년 뉴욕, 라이벌 갱단인 제트와 샤크 사이의 갈등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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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리그넌트> 30초 예고편
폭력 남편의 죽음 이후, 연쇄 살인 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릴 적 상상 속의 친구 ‘가브리엘’이 진짜로 나타나는데…
“가브리엘, 넌 대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