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필2025-02-21 11:22:34
영화 서브스턴스
욕망에 의해 게걸스럽게 해체된 살점의 우화
거부할 수 없는 괴랄한 함정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유명 여배우지만 50대에 접어들며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 퇴물 배우가 된다. 생일을 맞이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지만 거울 속 주름지고 더는 탱탱하지 못한 가슴을 보자 우울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고정이었던 쇼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얼굴이 붙어 있던 광고판이 찢겨 나가는 걸 보는 순간 사고까지 당해 최악의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자신의 꼴이 처첨한 엘리자베스는 좌절감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때, 한 젊은 남자 의사가 그녀의 척추를 꼼꼼히 살피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잔뜩 지친 채 노란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그가 몰래 남긴 무언가를 발견한다.
THE SUBSTANCE
iT CHANGED MY LiFE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색상과 사운드를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수위도 굉장히 높고, 관객이 불쾌함을 느낄 지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말 그대로 절정에 치닿는다. 등장하는 색은 크게 빨강, 파랑, 노랑으로 나뉘는데 엘리자베스뿐만 아니라 하비와 투자자들, 대중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인 방송국(제작사)과 광고판을 대부분 붉은 색감이다. 하비의 옷도 주황색 계열이나 붉은 옷이 많고,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찾으러 갈 때 들고 있는 가방도 붉은 색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노른자 같은 코트와 새빨간 가방.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색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엘리자베스의 나은 버전인 ‘수’의 색은 분홍색이다. 엘리자베스와 방송국의 새빨간 욕망 비슷하지만, 비교적 덜 노골적이고 싱그러워 보인다. 마치 엘리자베스의 욕망까지 젊어진 듯 훨씬 생기 있고 당돌한 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색감이다.
그와 대비되는 파란색은 엘리자베스가 공허와 허망함을 느끼는 집에 많이 등장한다. 수로 살아갈 때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집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면 아주 차가운 물 속처럼 시리도록 푸르다. 당당한 수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젊은 몸을 즐기는 반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진 엘리자베스는 그저 지난 영광을 그리워하며 불도 채 다 켜지 않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TV를 피해 화장실만큼 하얀 벽 뒤로 숨을 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수가 만족스런 숨을 뱉으며 침대로 뛰어들 때의 색도 푸른 계열인 것이다. 다만 엘리자베스의 파란색이 원색이라면, 수가 누운 침대의 파란색은 훨씬 짙어 남색에 가깝다. 이는 외로움이나 공허가 아닌 젊음과 명예에 대한 수의 강렬한 소유욕에 더 가깝다.
화장실과 서브스턴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하얗다. 현실에서도 화장실은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없애는 공간이다. 배설물도 그렇고, 묵은 때를 씻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곳엔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이 존재한다.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선택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든 공간처럼 느껴진다.
잔인한 장면만큼 불쾌감을 자아는 인물이 있다. 방송국 대표인 ‘하비’이다.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나오는 스트릭랜드처럼 볼일을 보고 손을 닦지 않을 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새우를 더럽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인물이다. 그의 입안에서 처참하게 으스러지는 새우의 살점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면 하비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은 새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껍데기만 남은 채 그 앞에 쌓인 새우 머리는 엘리자베스‘들’을 연상캐한다.
수의 욕심으로 인해 둘은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관절이 완전히 뒤틀리고 급속도로 늙어버린 엘리자베스는 하비가 준 프랑스 요리책을 보며 난잡하게 요리한다. 칠면조 안으로 손을 욱여 넣고 내장을 뽑으며 토크쇼에 나온 수를 향해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꼭 동화에 나오는 마녀같다.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와 잔뜩 빠진 머리, 툭 튀어나올 정도로 굽은 등은 어딘가 익숙하다. 이전의 건강함마저 잃은 그녀는 차마 잠들어 있는 수를 헤코지하진 못하고 다른 살덩어리들을 폭행한다. 음식은 먹으면 피와 살이 되어 육신을 이룬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몸을 거부하듯 폭력적으로 요리하며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결국, 괴물처럼 변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종료를 선택한다. 그러나 수가 죽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젊고 건강한 몸의 수는 엘리자베스를 무참하게 죽이고 새해 전야 쇼에 나가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다. 그녀를 위해 준비된 파란 드레스는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흡사하다. 원형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수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치아와 손톱이 빠지고 귀가 떨어지며 천천히 몸이 해체된다. 호박 마차도, 요정 대모도 없는 수에게 유일하게 남은 건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했던 서브스턴스 약물 뿐이다. 악착같이 달려 화장실로 뛰어간 수는 남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하며 ‘더 나은 나’를 태어나게 한다.
유리병에 담긴 매혹적인 초록색 약물. 먹으면 죽는 독사과처럼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꾸 원하게 되는 이 약물은 지독한 함정이다. 1회 사용 후 폐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남는 양,‘REMEMBER YOU ARE ONE’이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막상 종료했더니 완전히 둘로 나뉘어지는 것, 그리고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 증거이다.
괴물이 된 수와 엘리자베스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모두가 고대한 새해 전야 쇼장으로 향한다. 그토록 원했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선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는 자신의 젊은 몸과 섹스 어필을 원했던 관객들을 위해 엉뚱한 곳에서 가슴을 뱉는다. 그리고 팔이 뜯어지자 터진 피 분수를 모두에게 선사한다. 거리로 나온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고 뜯어진다. 잔뜩 뒤틀린 등에 힘겹게 붙어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난 영광의 자리로 힘겹게 기어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그 주변으로 영화 내내 인서트 컷으로 등장했던 야자수가 보인다. 마치 네가 여기로 돌아올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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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쑤저우강> 리뷰 -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지독한 사랑 이야기
어릴 적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세차게 흐르는 흙탕물에 발을 담가 본 적이 있다. 사전에 수심이 얕은 곳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탁류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혹시나 물살에 휩쓸려 자빠지면 현세의 흙탕물이 순식간에 황천길로 바뀔 판이니 당연했다. 양발을 하상(河床)에 안정적으로 고정했다는 안도감이 들고 나서야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응시할 수 있었다. 흐르는 시간의 힘을 시각적으로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10대 중반이었지만 모든 것은 변화하고 종내 사라진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을까?
러우예(로예) 감독의 영화 <쑤저우강>은 흙탕물이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쑤저우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과감한 1인칭 시점 숏,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필수적인 주인공의 내레이션 등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왕가위(왕자웨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영화의 핵심적 이야기 줄기를 바탕으로 영화의 내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쑤저우강>은 인어공주 동화를 변주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만 해석하기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마련해 준 해석의 공간이 너무 드넓다. 기묘한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레이션만 하고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남자 비디오 촬영기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배우 저우쉰이 1인 2역으로 연기한 여자 주인공 메이메이와 무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마다와 무단의 전설적인 사랑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관객은 의심과 혼란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게 된다. 러우예 감독은 <쑤저우강>을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쑤저우강>은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영화'라는 생각을 하며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라이브러리 톡에 참가했다. 장장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라이브러리 톡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의 내적 구성 요소만으로는 <쑤저우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러우예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현대 중국의 비극적 역사를 <쑤저우강>에 겹쳐 놓고 보아야 흙탕물처럼 속이 보이지 않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영화의 안과 밖을 두루 살펴야 영화의 진짜 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에 대한 열정, 고민의 폭과 깊이가 정말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자리를 지킨 관객들에게 따듯한 유대감을 느끼면서 집으로 향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10월 16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쑤저우강> 상영회와 라이브러리 톡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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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와 메시지의 충돌이 낳은 난맥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하정우). 하지만 그에게 금메달은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려야 했으니. 이후 그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1947년 서울, 광복 후에도 술로 일상을 버티던 손기정. 어느 날, 그는 냉면집 배달부 '서윤복'(임시완)을 만난다. 그에게서 마라토너의 재능을 발견한 손기정은 윤복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광북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국제대회에서 일본에게 귀속된 한국인의 기록을 되찾기 위해. 정부도 없고,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손기정은 옛 동료이자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남승룡'(배성우)과 함께 서윤복을 마라토너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한다.
전적으로 실화에 의지하다
“1947년은 혼란스럽고 희망이 부족했던 시기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목표를 이루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 강제규 감독의 포부다. 단언컨대, <1947 보스톤>은 목적을 이뤘다. 서윤복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긍심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이라는 역경 속에서 세 주인공이 쟁취한 승리의 감동 역시 뜨겁다.
하지만 공허하다. 눈시울이 순간적으로 뜨겁지만, 눈물이 나오기 전에 식는다. 이유는 여럿이다. 일단 역사가 스포일러다. 서윤복 선수가 1등을 차지한다는 결말을 미리 알고 있어서 감흥이 덜하다.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도 없다. <1947 보스톤>은 제목에 충실하다.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새 국가대표 서윤복이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우여곡절을 정석대로 담았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1947 보스톤>은 영화가 아닌 실화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실화가 선사하는 감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단점, 영화와 실제 사이 간의 모순이 눈에 띄자마자 실화에 의지하는 감흥은 뜨거워질 때만큼이나 빨리 식는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내용이나 결말이 실제 사건을 그대로인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1947 보스톤>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엄연히 극영화라는 점이다. 극영화는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사건을 유기적으로 이어 붙이고 캐릭터가 스크린 위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설령 실화 사건을 차용했다 하더라도.
하지만 <1947 보스톤>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나머지 실화에 힘을 더하지 못한다. 감독은 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팀을 꾸린다. 선수는 불행한 개인사와 꿈 사이에서 헤맨다. 팀은 갈등에 휩싸이고, 첫 경기 성적은 엉망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기적을 써 내려간다. 이처럼 익숙한 에피소드를 기계적으로 나열한다. 결국 영화는 사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변화, 감정선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짜임새 때문에 실화의 감동이 약해진다. 서윤복이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보스톤 언덕길에서 어머니와 고갯길을 같이 넘던 추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 대목은 기대만큼 감동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와 어머니의 관계가 피상적인 효자와 현모양처로 묘사되다 보니, 해당 장면이 어떤 의도로 삽입됐는지가 노골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자 따로 메시지 따로
물론 클리셰에 충실해도 관객이 기대하는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도 많다. 하지만 <1947 보스톤>은 아니다. 영화의 만듦새가 헐거워진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와 화자의 부조화가 바로 그 원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손기정과 서윤복이라는 두 톱니바퀴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1947 보스톤>은 개인의 아픔을 민족과 국가의 좌절로 확장하고, 이를 극복해 카타르시스를 주려한다. 영화는 세 주인공의 아픔을 부각한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망국의 설움을 지녔다. 서윤복은 약소국의 설움이 있다. 두 선배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듯이, 그도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달아야 한다.
영화는 이들의 아픔은 하나로 연결한다. 그 중심에는 손기정이 있다. 남의 나라를 국기를 달고 뛰는 설움. 독립했는데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 레이스를 통한 치유까지. 손기정이 서윤복을 제2의 손기정으로 길러내는 여정에는 개인과 민족의 아픔을 씻어내는 기승전결이 함께 깃들어 있다.
그런데 카메라는 정작 서윤복에게 초점을 맞춘다. 냉면 배달 중 미군과 부딪히는 장면, '옥림'(박은비)과의 얕은 로맨스처럼 전개에 필요하지 않은 내용까지 세심히 다룬다. 그러니 영화는 조화롭지 않다. 화자와 메시지가 따로 놀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실패한다. 손기정의 서사는 불충분하고, 서윤복의 서사는 늘어지면서 양쪽 모두 깊이가 부족해진다.
예를 들어 보스톤 대회는 서윤복만의 경기가 아니다. 손기정이 오래된 한을 떨쳐내는 레이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때도 영화의 초점은 서윤복에게 쏠려 있다. 그러니 손기정의 서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레이스 중간에 손기정이 자주 등장하면서 흐름이 끊기는 인상도 준다. 결국 마라톤 장면은 클라이맥스라기에는 담백하고 힘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유독 배우의 단점이 잘 보이는 이유
그러다 보니 배우들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배우 개개인의 역량이 아쉬운 지점도 있으나, 캐릭터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니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일례로 하정우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도 보인다. <수리남>, <비공식작전> 등에서 본 대사와 연기 톤을 반복한다. 이 지점에서 극본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예스러운 말투의 대본이 배우의 현대적인 톤과 어긋난다.
하지만 기자회견 시퀀스를 보면 배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손기정은 기자들 앞에서 오랜 울분을 터뜨린다. 그저 한국인으로서 달리게 해 달라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며 개인과 민족의 한을 토로한다. 그런데 가장 극적이어야 할 손기정의 항변은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우의 톤이 아무리 익숙하고, 이질적이라 해도 그전까지 캐릭터의 서사를 제대로 구축했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배성우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극 중 남승룡이라는 인물은 큰 임팩트가 없다. 영화가 그의 입체적인 면모를 살리는 데 실패했기 때문. 어떻게 보면 남승룡은 손기정보다도 한이 더 깊다. 손기정과 달리 금메달을 따지도 못했고, 시상식에서 일장기를 가리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기 아픔을 넉살 좋게 애써 감춘다. 이런 인물을 영화는 평범한 감초 조연으로 소모한다. 개인사와 무관하게 배우의 연기력을 지적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나마 임시완의 경우 배우의 노력이 엿보이기는 한다. 마라톤이 취미가 됐다고 말할 정도로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게 그의 달음박질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비중에 비해 역할이 조연에 가깝고, 캐릭터 자체도 평면적이다 보니 그 노력은 미처 다 보이지 않는다.
실화에 잘못 기대다
이에 더해 <1947 보스톤>은 많은 사극과 시대극이 그렇듯이, 실화의 힘을 잘못 활용한다. 영화는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국을 빌런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영화 내용과 실제 사건이 충돌하며, 그 결과 영화의 감동도 덜해진다. 실제 사건을 왜곡하고 있으니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자료 영상과 사진의 의미가 퇴색되고, 영화의 진실성도 약해진다.
실제로 영화 전반에 걸쳐 미국은 점령국에 가깝다. 미군병사는 무전취식에 항의하는 서윤복을 권총으로 위협한. 미군정은 보증금과 신원 보증을 이유로 마라토너 삼인방의 보스톤행을 방해한다. 대회 측도 서윤복과 남승룡에게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를 달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심지어 미국의 마라톤 중계 아나운서는 한국선수들의 실력을 조롱한다.
실상은 달랐다. 서윤복의 회고록에 따르면 미군정 하지 장군을 비롯한 미국인이 보증금을 구해주며 대회 출전을 도왔다. 보스톤 마라톤 협회도 두 선수에게 태극기와 미군정청 문장이 병기되어 있는 유니폼을 지급했다. 손기정이 일장기를 가려야 했던 일이 서윤복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서윤복과 손기정의 서사를 연결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수처럼 보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군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연결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만들려는 의도다. 하지만 실화의 힘에 기대면서 정작 실화를 왜곡하고 있으니 자연히 모순과 오해가 발생한다. 아쉬움도 크다. 미국을 악역으로 만드는 대신 한국을 알리려는 일념이나 개인의 성취에 집중하는 선택지도 있었으므로.
마지막으로 디테일도 올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양변기를 몰라 당황하는 개그 장면, 조선을 무시하지 말라며 외국인에게 일갈하는 장면, 전 국민적인 응원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장면... 감동과 눈물을 짜내는데 최적화된 클리셰가 종합선물세트로 펼쳐진다. 한국영화에서 자주 목격한 익숙한 이 조합 역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합하면 <1947 보스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마인드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실화의 힘을 빌려 애국심을 고취하고, 눈물을 짜내고, 감동을 주면 성공이라는 식으로 직진한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완성도, 서사의 짜임새, 실화 고증 같은 요소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고 만다. 그 결과 2023년도 극장에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Poor 형편없음
실화를 이용하는 데 그친 클리셰 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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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 크루즈 / Jungle Cruise, 2021
만약 "제이슨 스타뎀"이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가끔씩 떠오른다.
물론,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15년에 개봉한 "멜리사 맥카시"의 <스파이>에서 그도 충분히 웃긴다는 것을 입증했으니 충분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호스텔>시리즈로 유명한 "일라이 로스"의 최근작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잭 블랙"과 "케이트 윈슬렛"의 가족 영화인 것으로 보아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정글 크루즈>는 "드웨인 존슨"과 "에밀리 블런트"보다 이를 연출한 감독 "자움 콜렛 세라"에 좀 더 눈이 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팬들에게는 <오펀: 천사의 비밀>, 그리고 "리암 니슨"과는 <언노운 - 논스톱 - 런 올 나이트 - 더 커뮤터>까지 그가 커리어로는 처음으로 "가족 영화", 그것도 "디즈니"에서 찍게 되었으니까요.
'과연, 이 영화도 앞에서 설명한 영화들처럼 만족감을 주었을지?' - <정글 크루즈>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고대의 전설, "생명의 나무"를 향해 학자 "릴리"와 남동생 "맥그리거"는 그 길로 아마존을 향합니다.
그곳에서 "프랭크"를 만나면서, 여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으나 게획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나 봅니다.
이들 말고도, 누군가 "생명의 나무"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고 이에 잠들었던 고대의 저주까지 깨어나는데..."할리우드"는 다 능력자들인가 봐
1. 어디서 타본 크루즈란 말이지.
영화 <정글 크루즈>는 앞서 말했듯이 파격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와 같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정글 크루즈>는 이를 제외하면, 어디서 봄직한 영화들의 장면들이 겹치는 등 새로움이라고는 볼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정글 크루즈>에게 눈이 떼어지지 않는 건 말했던 "아는 맛"인데 이도 저와 같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배가 됩니다.이거 어디서, 봤는데 말이지...
영화 <정글 크루즈>의 캐릭터 구성을 보면, "브렌든 프레이저"주연의 <미이라>시리즈가 생각나는 건 저만은 아닐 겁니다.
거친 남자 주인공에 비해 어딘가 덜렁거리는 여자 주인공의 케미가 "러브라인"으로 맺는 결과가 뻔하다고 해도 이게 아니라면 만족하지 않을 거잖아요.
여기에 어딘가 모자란 조연 캐릭터까지 영화 <정글 크루즈>의 캐릭터는 유독, <미이라>를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들 텐데, '혹시, "이모텝"도 그대로인가요?'라고 말이죠.2.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모텝"을 가르쳐줄 때가 되었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이라>가 1999년과 2001년에 개봉했으니 어림잡아 필자의 나이가 7살이 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를 즐겁게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영화를 보았을 때는 무서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 왜냐하면, 그땐 <미이라>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극 중 살을 파먹는 '쇠똥구리'와 사람을 미라로 만드는 악당의 모습은 자꾸만 생각나게 하니 재밌어도 당분간은 시름시름 고통 속에서 앓았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영화 <정글 크루즈>도 어린 날의 저처럼 많은 아이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할지, 말지?"의 딜레마를 일으킬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원래, 감독님의 특기가 스릴러?
앞에서 언급한 감독 "자움 콜렛 세라"의 대표작이 <오펀: 천사의 비밀>처럼 스릴러"에 쏠려있지만 데뷔작이 <하우스 오브 왁스>였던 것을 생각하면, 관객들을 놀래는 데에는 이만한 전문가도 없습니다.
영화 <정글 크루즈>의 "아기레"가 바로, 차세대 "이모텝"으로 등장하는데요.
먼저, 보여주는 비주얼에는 성인 관객들도 깜짝 놀랄 만큼 뱀들이 피부밑으로 들썩들썩 거리니 어린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는 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모텝"과 비교하여 쌓이는 스토리는 부실해 큰 인상으로 남겨지지 않으나 비주얼만큼은 압도하고도 남습니다.3. 잊고 있던 성룡식 액션
<미이라>를 언급했기에 이런 "어드벤처"장르에서 빠져서는 안 될 볼거리, 즉 "액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죠.
근데, 이것도 "자움 콜렛 세라"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알고 있나요?
스릴러에서는 <오펀: 천사의 비밀>이 있듯이 액션에서는 그의 오래된 파트너 "리암 니슨"과는 함께 <언노운 - 논스톱 - 런 올 나이트 - 더 커뮤터>까지 해왔으니 가장 편안한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영화 <정글 크루즈>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액션은 "성룡"과 "오웬 윌슨"이 나왔던 <상하이 눈 - 나이츠>시리즈가 떠올랐습니다.이런 액션을 2021년에 다시 볼 줄이야!
지금이야 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성룡"의 액션은 저 같은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만큼 재밌었습니다.
<상하이 눈 - 나이츠>시리즈처럼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을 제외하면, 여타 그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액션이지만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최근까지 액션을 연출해온 "자움 콜렛 세라"도 알겠지만, 공간을 작게 가져옴으로 카메라는 더 현란하게 움직여 등장인물들의 동작들을 힘 있게 보여주는 게 요즘 액션이라면, 이번 <정글 크루즈>는 큰 화면에 큰 동작들로 빠른 반응과는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여기에 각종 사물들을 이용하는 모습은 상황을 길게 이어나감으로 해당 캐릭터들의 감정까지 보여주니 요즘 관객들에게는 신선함을 저 같은 관객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4. 모두를 챙길 수는 없잖아?
이렇게 본다면, <정글 크루즈>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오락 영화이나 앞에서도 말한 액션도 어디까지나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요소입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차세대 "이모텝"으로 평가하기에는 "아기레"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확보된 "분량"의 차이가 큽니다.
먼저, <미이라>의 "이모텝"은 정확하게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줄 이야기를 쌓아나감으로 관객들에게 무서움으로 자리를 잡아나갔죠.
그에 비해 <정글 크루즈>는 "아기레" 이전의 동일 포지션의 "요아힘"이 있어 힘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요아힘"의 후반전이 허무하게 날아간 것을 생각하면, "아기레"의 플래시백은 그저 명분을 만들어줄 장면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네요.
무려, 127분이라는 러닝 타임에도 <정글 크루즈>의 문제가 설명 부족이라니 얼마나 더 필요했단 걸까요?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지. 암!
이렇게, 악당들의 아쉬운 설명에도 영화 <정글 크루즈>가 챙겨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건 "여성"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영화 <정글 크루즈>의 시간적 배경은 1916년으로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어나던 시기이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릴리"를 보는 시선입니다.
극 중 "여성학자"의 조롱이나 "여성이 바지를 입는다?"라는 대사들로 그 시대의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대충이나마 감을 잡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보이는 기존 남성 학자들의 분노와 여성 청중들의 박수갈채는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임을 인지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정글 크루즈>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극장용 여름 영화를 일깨워준다는 것에 다들 만족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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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alone, but you are not lonely.
Enola Holmes, 이름만 들어도 누구와 관련있을지 알만한 이 소녀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범죄만을 탐닉한 염세주의자 탐정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자, 마이크로프트 홈즈, 셜록 홈즈 두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두 형제를 키워낸 엄마에게서 철저히 교육받은 막내딸이다. 하지만 이 소녀, 이름이 좀 특이하다. Enola, 거꾸로 줄이면 Alone. 그 시절, 남자에게 사랑받으며 안전하게, 우아하게 살아가라고 여성스러운 이름을 지어줘도 모자랄 판국에 이 소녀의 엄마는 딸이 혼자 살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려는지 아예 혼자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 딸을 본인만의 교육 철학으로 집에서 홈스테이식 교육으로 가르치던 그녀의 엄마가 소녀가 16살이 되던 생일 날 증발했다. 아무도 모르게. 엄마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어렸을 때 말고는 얼굴 코빼기도 안보이던 두 매정한 오빠, 셜록과 마이크로프트가 납셨다. 두 오빠는 소녀를 정숙한 여인으로 거듭나게끔 교육할 기숙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소녀는 기숙 학교는 가기 싫고, 엄마는 찾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소녀는 엄마가 자신을 훈련시켜온 여러가지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 엄마를 찾는 여정에 뛰어든다. 과연 이 소녀, 무사할 수 있을까?
관습을 거부하고, 허를 찌르는 아이, 에놀라 홈즈.
산업 혁명 시기, 영국에서 여자의 존재는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잘 가는 것이 여자의 인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여자가 된다는 것은 정숙함을 지닌 여성이 됨을 의미했고, 정숙한 여성이 되어서 신사적이면서 부자이기까지 한 남자에게 시집 가는 것이 여자의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놀라의 엄마는 결혼 생활 속에서 내조의 여왕의 비결이 될 바느질, 요리 등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가 허구헌 날, 가르치던 것은 퍼즐 맞추기, 체력 훈련의 일환인 펜싱, 싸움의 기술 등이었다. 그 시대에서는 여자에게 가르치기엔 상당히 마초적인 교육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오빠가 와서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관습적인 교육을 받도록 강요하는 부분은 그녀에게는 일종의 폭력이었을 것이고, 그녀가 오빠들을 골탕먹이고, 도망가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사회에 관습에 물들지 않은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집 안에서 오빠 셜록보다 더 빨리 엄마가 남겨놓은 힌트를 이해한 그녀는 수많은 변장을 거쳐 런던으로 향한다. 그녀가 변장에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것은 그녀가 마초적인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놓은 틈을 비집고, 관습이 주는 안정감을 탈피했을 때, 관습적인 누군가는 허를 찔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무슨 그렇게 대담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한 그 시대 남자들의 오만이 그녀를 도망갈 수 있게 게속 틈을 만들어 줬던 것이 아닐까. 그녀가 셜록 홈즈의 비서라고 둘러대며, 귀부인처럼 입고 나오거나, 남자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이쁘장한 소녀가 갑자기 요조숙녀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만 해도 쉽게 알아채지 못할 만큼 여성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낮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21세기의 평범한 여자가 얻는 교훈이 있다면, 그녀에게는 탐정의 능력인 추리력, 대담한 행동력 등으로 산업 혁명 시기 영국 사회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평범한 나에게도 뭔가 무기가 될만한 독특한 알맹이가 있을 텐데, 그 알맹이가 뭔지 알게 되기만 한다면, 나도 이 사회의 관습이 만들어놓은 허점을 뚫고,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그녀가 정숙함을 거부했듯이, 나도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성스러움에 대한 관습에 협조할 생각이 없고, 내 길이 뭔지 아직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처럼 홀로 외로이 조금 불안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해결한 것은 폭탄이 아니라 소녀의 영리함
영화 속 에놀라의 엄마는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 비밀여성혁명 집단의 리더였던 그녀는 과격한 방법으로 여성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계획의 일부를 딸에게 들켰다. 그 엄마의 그 딸이라서 딸은 엄마의 계획을 퍼즐맞추기로 추리해 내었다.
고향에서 런던으로 도망나올 때부터, 자신과 우연히 마주친 귀족 툭스베리 둘 다 쫓아다니는 자객의 존재를 수상히 여기던 찰나, 엄마의 계획이 실행되려면, 이 연약한 귀족 남자의 의회에서의 한 표가 중요함을 깨닫고, 툭스베리와 한 패가 되어 툭스베리가 죽임을 당하지 않게끔 그를 죽이라고 사주한 사람이 누군지 추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약자를 구하는 강자의 포맷을 사용하고 있기는 한데, 그 강자가 여성이다. 남자보다 여성이 더 싸움을 잘하고, 남자는 연약하고, 순박하다.
이 영화는 이 순박한 툭스베리를 에놀라가 지키는 포맷이고, 이 남자를 지킴으로써 그녀의 엄마의 계획이었던 여성 참정권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게 되었다는 포맷을 선보이고 있다.
에놀라의 엄마는 남성들의 마초적이고 관습주의적인 모습을 뚫을 방법은 테러, 폭력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에놀라는 애초에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는 관습에 물들지 않았던 인물이므로 엄마와 문제 해결 방법이 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두 여자의 해결 방법의 차이는 그 시대의 영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꼬집을 여성 세대의 세대 교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성으로서 좋은 대접을 받으려면 결혼이 필수였던 우리 엄마의 세대와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을 외치는 우리 세대의 차이를 통해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불만들이 물밀듯이 제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린 에놀라 엄마 세대와 에놀라 세대의 중간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폭탄까지 쓰지는 않지만 에놀라 엄마 세대처럼 여성에 대한 강한 권리 주장과 추리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 에놀라처럼 여성의 기본적인 지적인 능력의 향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에 남자의 그늘이 필수적이지만은 않은 요즘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들이 이 영화에 모두 밀집되어있는 듯 하다.
그녀의 조력자들
끝으로, 에놀라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었다. 아니, 혼자 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엄마는 딸에게 독립심을 가르쳤고, 특히, 오빠인 셜록은 자신의 동생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계획이 성공되기까지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녀의 성장을 응원하고 있었고, 특히, 툭스베리는 그녀의 행보에 걸림돌의 형태로 사실 그녀의 성장에 가장 기여했다. 인생에 걸림돌이 없다면, 누구도 성장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영화 속에서 툭스베리 캐릭터는 로맨스 라인을 형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보다 편견에 맞서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고 있는 한 소녀의 삶에 계속 걸리적거리면서 그녀의 성장에 일조한다. 남자에게 기대어 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살기 바랐던 그녀의 엄마에게는 딸 길들이기 프로젝트에 등장한 툭스베리의 존재는 오히려 딸에게 위기를 선사함으로써 딸이 한 단계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매개체와도 같았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고 그 관계가 모두 로맨스는 아님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고, 영화 말미에 두 남녀가 어떻게 동반자적인 관계로 발전할 지 아주 기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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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주 차 최신 씨네뉴스
7월 1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토퍼 놀란 신작 ‘오디세이’ 합류🎬
샤를리즈 테론이 한 행사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 ‘키르게’ 역으로 합류한 것에 대해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고 털어놨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엄청난 캐스팅까지..!
캐스팅 찾아보면서도 믿을수가 없었네요 🔥
맷 데이먼 - 오디세우스
톰 홀랜드 - 텔레마코스
젠데이야 - 아테나
로버트 패틴슨 - 헤르메스
샤를리즈 테론 - 키르게
루피타 뇽오 - 클리타임네스트라
베니사프디 - 아가멤논
지금까지 캐스팅은 이렇게 공개되었구요
이 밖에도 배우 존 번탈, 미아 고스도 합류했다고 합니다.
🗞️
❶ 애플스튜디오, F1: 더 무비 흥행 성공으로 후속작 논의 중
❷ 배트맨: 파트2 각본 완성, 2027년 10월 1일 개봉 예정
❸ 폴 워커, 분노의 질주 마지막 시리즈 장식…2027년 4월 개봉
❹ 샤를리즈 테론, 놀란의 ‘오디세이’ 합류,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
❺ CGV, 서비스 리뉴얼로 7월 14일 전국 상영관 임시 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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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일드 인 타임> - ‘사랑으로 물든 시간, 그 어딘가에서 살아갈 너에게’
차일드 인 타임
개봉일 : 2020.01.09 (한국 기준)
감독 : 줄리언 파리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켈리 맥도날드, 스티븐 캠벨 무어, 사스키아 리브스, 베아트리체 화이트
사랑으로 물든 시간, 그 어딘가에서 살아갈 너에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신작 <모리타니안>의 개봉을 앞두고, 계속 그의 모습이 맴돌아서 오랜만에 이 영화를 꺼내봤다. <차일드 인 타임> 직역하자면 시간 속의 아이다. <차일드 인 타임>은 동명 소설 <차일드 인 타임>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로, 소중한 아이들의 유년기에 대한 통찰과 부모가 최대로 품을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상처와 그 위로 솟아난 새로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 어쩌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이 이야기는 유명한 동화 작가인 주인공 ‘스티븐’이 하나뿐인 딸 ‘케이트’를 잃어버리는 날부터 시작된다. 계산을 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딸의 손을 잠시 놓은 순간, 아이는 순식간에 스티븐의 시선 밖으로 사라진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노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를 찾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스티븐은 끝내 케이트를 찾지 못한다. 스티븐의 아내 줄리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함께 살던 집을 떠나고 스티븐은 홀로 남겨진다. 줄리는 케이트를 찾을 수 없을 거라 절망하고, 스티븐은 아직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뜨겁던 부성애는 스티븐의 가슴에 화상 자국을 남길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모성애’를 그린 영화는 많지만 ‘부성애’를 그린 영화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만큼이나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말이다. <차일드 인 타임>은 그 흔치않은 부성애를 중심으로 스티븐의 시간을 그려낸다. 더불어 아직 유년기의 부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스티븐의 출판인 ‘찰스’라는 인물을 통해 ‘유년기가 아이와 어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사이에 인물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데, 이야기를 다소 애매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던지라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난 아이를 잃은 부모야. 여러분 같이 울어요.” 하며 슬픔의 카펫을 무작정 깔아대는 것이 아닌,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새로운 음계를 하나하나 알아가듯, 슬픔의 무게를 천천히 더듬어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븐은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이 한마디를 보낸다. 사랑한다고. 곧 만나자고. 이 일상적인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예상보다 거대했다.
차일드 인 타임 시놉시스
유명한 동화 작가 ‘스티븐’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 ‘케이트’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딸의 부재는 행복한 부부였던 ‘스티븐’과 ‘줄리’의 사이까지 멀어지게 만들고, 상실감 속에서 매일을 견뎌나가던 두 사람은 일상 속에서 소중한 흔적들을 조금씩 발견하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부재중인 걸 왜 굳이 알려요?"
스티븐은 외출할 때마다 곧 돌아온다는 말과 번호를 적은 쪽지를 현관문에 붙인다. 그를 본 이웃은 “부재중인 걸 왜 굳이 알려요?”라고 말하며 스티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티븐은 왜 자신의 부재중을 알리는 걸까. 그 이유는 잃어버린 딸 케이트 때문이다. 이미 잃어버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스티븐은 케이트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과연 어떤 부모가 어린 자식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스티븐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딸이 집에 돌아온다면, 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언제든 나를 부를 수 있도록 매일같이 쪽지를 붙인다. 스티븐에게 케이트는 세상의 전부였고, 여전히 스티븐의 세상엔 케이트가 가득 차있다.케이트가 실종된 후 줄리는 모든 걸 포기하고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다며 스티븐과의 별거를 결심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스티븐은 1년 만에 줄리를 만나기위해 시골집으로 향한다. 스티븐은 집으로 가는 길에 운명처럼 노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의 환영을 따라가게 되고, 그곳엔 ‘더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이 있었다. 술집 안엔 한 여자가 앉아있었고, 스티븐은 뭔가에 이끌리듯 여자를 쳐다본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 스티븐은 어머니를 통해 그 술집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 벨’은 스티븐의 어머니가 스티븐의 아버지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던 술집이었고, 그 시절 어머니는 아름다운 아이 한 명이, 태어나기 전 스티븐이 창밖에서 자신을 바라봤다고 말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스티븐의 어머니는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 스티븐이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줄리와 스티븐도 어머니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줄리는 창문 너머에 서있는 스티븐의 머리색을 꼭 닮은 남자아이를, 스티븐은 줄리의 소식을 듣고 급하게 탄 지하철에서 같은 남자아이를 마주치게 된다. 남자아이는 줄리와 스티브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 아이는 곧 태어날 두 사람의 아들을 의미한다.
"케이트를 계속 사랑해 주렴. 사랑하는 것과 그리워하는 건 달라."
부모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시간 동안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은 그 모든 시간 안에 존재한다. 스티븐은 3년이란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케이트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면 케이트를 위한 선물과 트리를 준비하고, 케이트의 방을 항상 깨끗하게 정돈해둔다. 아이가 당장 뛰어들어와도 바로 누워 한숨 잘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이제 7살이 되었겠지만 케이트는 여전히 내 어린 딸이고, 10년이 지나 만난다 해도 스티븐에겐 여전히 내 어린 딸이다. 그리고 곧 생길 사랑하는 아들은 어릴 적 스티븐이 그랬듯,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부모님 앞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 순간마저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게 아닐까."어딘가에 있어"
스티븐은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바친다. 이러한 이유로 케이트의 환영이 계속해서 스티븐의 주변을 맴돌았던 걸지도 모르겠다."너에 대한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싶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던 어린 딸, 카트에 앉아 빠르게 달려달라며 부탁하던 어린 딸, 작은 손가락으로 힘 있게 내 손을 잡아오던 어린 딸. 스티븐은 케이트를 잃고 오래도록 동화를 쓰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새로운 소년에 대한 동화를 쓰기 시작한 스티븐은 욕조 안에서 숨을 참는 시간을 늘려간다. 그리고 그의 상처도 아주 조금씩, 옅은 흉터를 남기며 회복되고 있었다. 스티븐은 케이트를 잃어버리고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스티븐은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기보단 ‘어딘가에 있어. 곧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사실 스티븐은 케이트가 돌아올 확률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었겠지만.. 그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스티븐과 줄리의 상처는 새로 찾아온 사랑스러운 아들의 존재로 인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할 것이다. 스티븐은 케이트의 손을 잡고 줄리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케이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줄리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것을 ‘스티븐과 줄리가 케이트를 잊어가고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순 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케이트를 사랑하기에 어린 딸은 그들의 사랑과 기억, 그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엄마 아빠는 케이트를 사랑하니까.
"아이를 찾고 있어. 금지된 아이를. 그 아이를 찾아야 돼."
끝없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와 더불어 이 영화가 건네고 있는 두 번째 메시지는 ‘유년기의 중요성’이다. 이건 스티븐의 출판인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찰스의 이야기다. 스티븐의 동화 출판을 돕고, 동시에 정치계에서 일하고 있는 찰스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일을 관두겠다고 선언한다. 정치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육아 교육서를 제작하고 있었고, 총리는 스티븐에게 찰스를 감시(?) 해달라고 부탁한다.찰스는 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찰스는 비 오는 날 숲을 가로지르고, 숲 한복판에 곧 쓰러질듯한 아지트를 만들고, 이상한 음료수를 마시며 자신의 음모를 가위로 자른다. 그는 마치 다여섯살 난 남자아이와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찰스는 마음속에 있는 ‘금지된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금지된 아이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뜻한다. 찰스가 모든 일을 관둔 이유는 ‘책임지는 삶’에 지쳤음과 동시에 사회에서 통하는 ‘찰스’라는 존재에 대한 모든 걸 내려놓고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며, 누구도 나의 이름에 말도 안 되는 추측과 커다란 기대를 걸지 않는 ‘유년시절’. 그는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그에 대한 결핍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많은 종류의 글 중 ‘동화’를 출판하는 출판인이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찰스는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이 싫었던 걸까.
일부 정치인들은 말도 안 되는 육아교육 제도를 내놓고 있고, 진짜 아이를 키워본 스티븐은 그에 반대한다. 그리고 찰스는 그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표하듯 나무에 목을 매단다. 스티븐은 찰스의 장례식에서 그를 ‘유년기의 소중함을 알던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빗속에서 뛰노는 찰스의 모습과 맑은 웃음을 흘리며 아빠를 돌아보는 케이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 나는 유년기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꼈다. 찰스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찰스는 구두와 반바지, 셔츠와 니트를 입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통상적으로 구두와 셔츠, 니트는 어른의 옷, 편안한 반바지는 어린 남자아이의 옷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되는데 찰스는 어른과 아이의 옷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착장으로 발견된다. 땅에 떨어진 채 발견된 구두 한짝은 그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며 벗겨진 것이리라. 찰스는 어른 찰스를 벗어던지기 위해 몇 번의 발버둥을 쳐야 했을까. 결국 죽기 전까지도 그것을 완벽하게 벗어던지지 못한 찰스가 가엾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슬픔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끝없는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보내는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시간들엔 아마 유효기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차일드 인 타임>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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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최신 개봉영화(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베네데타, 킬링 카인드, 태일이)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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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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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엑소시스트 : 믿는 자> 1차 예고편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 가 선사하는 공포의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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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워터> 메인 예고편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