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5-02-28 22:23:49
매치 포인트 / Match Point (2006)
너와 나 사이의 마지막 매치 포인트
< 매치 포인트 / Match Point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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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테니스 강사 ‘크리스’. 테니스 수강생이자 영국 부유층 자제인 ‘톰’과 친해지게 되면서 그의 여동생 ‘클로에’와 깊은 만남을 이어간다. ‘클로에’와 결혼을 약속한 ‘크리스’는 우연히 만난, 매혹적이고 섹시한 ‘톰’의 약혼녀 ‘노라’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되고… 안정적인 삶과 성공에 목말랐던 ‘크리스’는 차마 ‘클로에’를 떠나지 못한 채, ‘노라’와 위험한 사랑을 이어나가는데…
; 네이버 영화 ;
오랜만에 발견한 정말 괜찮은 영화.
일단, 역시 우디 앨런 영화답게 연출이 정말 좋다.
(특히, 수미상관의 연출.. 그리고 테니스 게임 메타포)
그리고 스토리도..어찌보면 흔한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한테는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래도 내가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하게 된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연기때문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좋지만 남주(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연기가 최고다.
영화에서 자주 접한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연기를 되게 잘해서 놀랐다.
약간 반쯤 미친, 유혹에 사로잡힌 눈빛과 표정의 연기를 정말 잘 표현했다.
이 글 쓰면서 또 보고 싶어진다..
간만에 추천할만한 영화가 생겨서 기쁩니다!
2시간이 넘지만,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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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KY 데일리] 잠깐의 꿈같은 이야기
<BIKY 유스 단편 2>
꿈의 여름
감독 : 킴 파버
국가 : 네덜란드, Netherlands
제작년도 : 2024
상영시간 : 18분
관람등급 : +12
프리미어 : AP
시놉시스
암환자인 11살 로테의 다큐멘터리. 힘들었던 1년 간의 치료 기간이 지나고 특별히 마련된 여름 캠프에 참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로테를 돕는 동시에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며, 서로의 비슷한 처지들을 나누게 된다. 평소에는 환자라는 위치에 놓이지만 이 여름의 시간만큼은 또래와 다름없는 기대로 가득찬 시간이 된다. 짧은 기록인 동시에 현실의 소중함을 환기시켜주는 작품. (출처 :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꿈이었으면 하는
영화 속 하늘의 색깔은 너무나 파랗고, 주인공 로테의 미소는 티없이 밝다. 영화의 톤앤무드 또한 밝고 다채롭다. 이렇듯 산뜻한 영화에서 다뤄지는 소녀의 병은 다소 무겁다. 로테는 암환자이다.
로테는 힘든 치료 기간을 보낸 후 ‘네온 파티’가 함께하는 여름캠프에 참여한다. 병 때문에 머리카락을 잃었던 소녀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잃어왔음을. 캠프에 참여한 또래 친구들과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소녀는 성장한다.
가발을 쓰고 형형색색의 페인팅을 몸에 두른 로테는 내리쬐는 네온에 몸을 맡긴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한줄평
픽션이길 바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영스케줄 in BIKY
2025.07.14(월) 중극장 16:00
2025.07.16(수) 서하구청2청사 대강당 13:30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기간 : 07월 08일 - 07월 19일
비누 상자
감독 : 지미 G. 페티그루
국가 : 캐나다, Canada, QC
제작년도 : 2024
상영시간 : 16분
관람등급 : +12
프리미어 : AP
시놉시스
작은 마을 브로슈아퐁에서 10세 위베르는 마을의 연례 비누상자 경주에 도전한다. 웨베르의 목적 중 하나는 짝사랑하는 아눅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는 것. 애니메이션, 인형극, 특수 효과를 결합한 유쾌한 상상력이 곳곳에서 빛나는 장면을 연출해 낸다. 어린이의 첫사랑과 용기를 귀엽고 코믹하게 그려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출처 :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경주일까 사랑일까
짙은 밤 죽음의 산에 모인 아이들. 아이들은 저마다의 모습과 기능을 지닌 ‘비누상자 차’로 경주를 시작한다. 앞지르고 뒤쳐지는 사이 장난기에 숨은 본심이 드러난다. 바로 사랑이다.
주인공 웨베르는 유니콘 비누상자를 운전하는 아눅을 좋아한다. 이 경기도 아눅에게 멋져 보이고 싶었던 마음에 참여했던 걸까. 엉성한 듯한 웨베르의 진심이 통하는 경기가 펼쳐지고, 그 마음에 반응하는 모두의 이야기다.
실사 애니메이션과 각종 특수 효과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한줄평
스포츠와 사랑이라는 불패 이야기
상영스케줄 in BIKY
2025.07.14(월) 중극장 16:00
2025.07.16(수) 서하구청2청사 대강당 13:30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기간 : 07월 08일 - 07월 19일
우웩!
감독 : 로익 에스퓌슈
국가 : 프랑스, France
제작년도 : 2021
상영시간 : 13분
관람등급 : +12
프리미어 : KP
시놉시스
키스가 궁금한, 키스를 해보고 싶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표현해 낸 작품. 아이들은 입 맞추는 어른 커플들을 보며 징그럽다고 여긴다. 캠핑에 온 모든 아이들처럼 레오도 그걸 보고 웃지만 레오의 입술도 분홍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키스가 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춘기 아이의 호기심은 어떻게 현실이 될까. 여름은 분홍빛으로 물들 수 있을까. (출처 :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부끄러운 호기심에 대한
아이들은 순수해서 더 예리할 때가 있다. 기가 막히게 순간을 포착하는 아이들, 놀리고 싶은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부러움이 숨어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점차 성에 눈을 뜬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닿고 싶은 마음들. 그 마음이 부끄러워 숨길수록 호기심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런 마음이 드러나는 방식, 이곳 저곳 분홍빛으로 물드는 입술이 사랑스럽다.
한줄평
부끄러운 호기심이 사랑스러운 영화
상영스케줄 in BIKY
2025.07.14(월) 중극장 16:00
2025.07.16(수) 서하구청2청사 대강당 13:30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기간 : 07월 08일 - 07월 19일
태양아 이제 안녕
감독 : 하킴 아투이
국가 : 프랑스, France
제작년도 : 2024
상영시간 : 21분
관람등급 : +12
프리미어 : 없음
시놉시스
11살 소녀 루나는 17살 오빠 줄리엔 그리고 양아버지와 함께 산다. 여름의 끝자락. 태양의 열기로 아직은 숨이 막힌다. 모두가 기다리던 개기일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지친 마음과 뜨거운 열기의 끝자락에서 위로를 받기 시작한다. 일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고되고 설레이는 삶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 여름날 풍경의 영화는 수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출처 :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태양이 사라진다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특별한 날, 개기일식을 관찰하기 위해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닷가에서 잠수 놀이를 하는 루나의 행동은 숨과 죽음을 은유한다. 이어진 개기일식에서 태양빛이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은 공포에 빠진다. 이 상태가 7일 동안 지속되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루나는 말한다. “그동안 너무 뜨거웠어서 지구를 식히려는 거야” 그렇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멸망이 희망이 될 수 있는 걸까. 마지막을 예감하는 듯 숨겨왔던 사랑을 표현하고 집으로 분주히 돌아가는 사람들. 영화의 결말이 어떤 예감처럼 느껴진다.
한줄평
태양이 사라진다면, 복잡한 감정이 드는 영화
상영스케줄 in BIKY
2025.07.14(월) 중극장 16:00
2025.07.16(수) 서하구청2청사 대강당 13:30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기간 : 07월 08일 - 0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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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할 텐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 너머, 인간이 사는 육지 세상이 궁금한 인어공주 '에리얼'(할리 베일리).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에서 '에릭 왕자'(조나 하워킹)의 목숨을 구한다. 에리얼은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이자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절대로 바다 위 인간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이에 에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와 거래해 목소리를 잃는 대가로 다리를 얻어 육지로 향하고,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다.
모두를 실망시킨 <인어공주> 재해석
2010년대 초중반부터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실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흥행작을 만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글북>, <알라딘>,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는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논란이 가장 많은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어공주>다.
<인어공주>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작 파괴가 문제였다. 주연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애니메이션 원작 속 에리얼과 달리 흑인이었다. 에리얼의 빨간 머리도 흑인 특유의 드레드 머리로 바뀌었다. 한쪽에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고 옹호했다. 반대쪽에서는 원작 파괴라고 비판했다. 에리얼을 닮지 않은 배우가 출연해 리메이크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흑인 인어공주는 나름 자연스럽다. 덴마크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를 반영해 배경을 카리브 해로 바꿨기 때문이다. 에리얼을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할리 베일리의 연기와 노래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원작 설정을 재해석하고 변경한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당위와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을 외면한다. 그렇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작 <인어공주>는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관객도, 원작의 실사화를 바란 관객도 모두 실망시킨다.
공허한 재해석
새로운 <인어공주>가 힘을 준 대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성이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소통과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다. 영화는 에리얼과 트라이튼의 갈등을 통해 다른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릭 왕자의 서사를 더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그와 '셀리나 여왕'(노마 두메즈웨니)의 대립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동병상련에서 시작된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부모는 자녀를 억압한다. 트라이튼은 인간이, 셀리나는 바다의 신과 인어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두 주인공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 다른 문화를 궁금해하고 기꺼이 수용하려 한다. 두려움 없는 그들은 서로의 세상을 배우면서 사랑을 싹 틔운다. 더 나아가 완고한 부모까지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재해석은 공허하다. 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메시지가 밋밋하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트라이튼 왕은 인간이 에리얼의 엄마를 죽였다고 암시한다. 인간 왕국의 왕도 바다 때문에 죽었고, 에릭 왕자도 표류하다가 구조됐다고 언급된다. 영화는 육지와 바다 사람이 서로 배타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갈등을 극복하는 로맨스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너무 평이하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대사 몇 마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추가된 서사는 뇌리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전반적인 흐름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인어와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인어가 화해하는 결말도 그저 동화다운 교훈을 주는 결말에 그치고 만다.
흑인과 카리브해의 역사
더구나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소재를 손에 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흑인 인어공주를 비롯해 카리브 해라는 공간적 배경과 드레드 머리는 손쉽게 소비된다. 이들을 이용해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려는 시도는 없다. 그저 관객의 상상력과 지식에 맡길 따름이다.
카리브해는 역사적 맥락이 깃든 장소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인어공주>의 원작 동화를 썼고, 덴마크는 제국주의 시대에 카리브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중심지인 '샬럿아말리에이'만 해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5세의 왕비인 헤센카셀의 '샤를로트 아말리에'로부터 이름이 유래했다. 작중 에릭 왕자가 유럽과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총리를 비롯한 지배층 대다수가 백인으로 묘사되는 이유다.
이때 덴마크와 카리브해, 그리고 흑인 주인공이라는 조합은 곧장 한 가지 역사적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아프리카, 유럽 열강,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삼각 노예무역이다. 덴마크는 영국, 포르투갈 등과 함께 노예무역 당사자 중 하나였다. 카리브해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의 종착지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법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어공주>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다. 흑인 노예가 수입되는 시대에 흑인 여왕은 백인 왕국을 통치하고, 백인 왕자는 흑인 인어공주와 결혼한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등장시키고 배경을 카리브 해로 변경해 놓고도 마치 제작진이 그 함의나 맥락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영화가 흑인이라는 키워드를 고민 없이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인어공주>는 에리얼의 머리도 표피적으로 활용한다. 사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 스타일이 아니다. 아메리카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에게 아프리카 특유의 헤어 스타일은 부끄러운 대상이었다. 드레드(Dread)라는 용어 자체가 '끔찍하다(Dreadful)'는 단어에서 비롯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약품을 동원해 머리를 피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흑인 인권 운동이 힘을 가지면서 흑인들은 자기 본연의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드레드 스타일도 이맘때 퍼져 나갔다. 즉, 드레드 머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동화, 통합되지 않겠다는 흑인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이다. 동시에 아메리카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함축한 상징이다. 따라서 카리브해, 흑인 인어공주, 드레드 머리라는 헤어 스타일이라는 소재를 종합하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강력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소재를 그저 표피적인 의도로 활용할 뿐이다.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으로. 포크 사용법을 모르는 에리얼이 포크로 드레드 머리를 다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안전한 스토리에 의존한다. 캐스팅 논란이 무색할 정도다.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영화에 녹여낸 <블랙팬서>와 비교해 보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더 안일해 보인다. 칼을 뽑았는데, 무도 자르지 못한 셈이다.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완성도
심지어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온 킹>과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 동물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심지어 이번에는 포유류가 아닌 해양 생물이라서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화면도 어둡다. 실사 영화로 구현된 어두운 바닷속은 광원이 부족해서 어둡다. 장면을 부각할 조명도 마땅치 않다. 결국 흑인인 에리얼은 어두운 배경 속에 갇혀 버린다. 그녀를 지켜보기가 어렵다. 할리 베일리에 맞추어 연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도 디즈니 영화로서 최소한의 재미는 갖췄다. 에리얼과 에릭이 거대해진 울슐라와 맞서 싸우는 후반부 해상 전투신은 인상적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경력자답게 롭 마샬 감독이 클라이맥스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그려냈다.
울슐라와 트라이톤 왕의 역할도 지대하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멜리사 맥카시는 선입견을 제대로 깼다. 오빠 트라이톤의 권력을 갈망하고 복수를 꿈꾸는 마녀 울슐라라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비에르 바르뎀도 무게를 잡아준다. 그의 연기 덕분에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과 외로움은 극대화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디즈니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영화는 디즈니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20세기 중후반 침체기를 겪은 디즈니가 새로운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알린 시작점이 <인어공주>였기 때문이다. 이는 디즈니가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인어공주>를 공개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어공주>는 그 상징성과 중요도에 미치지 못했다. 과감하지 않은 사회적 메시지는 원작의 도전 정신에 미치지 못한다. 1989년에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능동적인 여성상에 비하면 이번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담았는지 의문스럽다. 만듦새와 볼거리 역시 현재 디즈니의 위상과 자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결과 100주년을 맞이해 더 화려하고 세밀해진 디즈니 성의 미래는 마냥 밝지 않아 보인다.
Dreadful 끔찍한
충분한 고민 없는 재해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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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이별은 없어요'라는 대사가 느닷없이 생각난다. <노매드랜드>에서 나왔던 대사였다. 떠나간 아들을 기리는 아버지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사는 나의 머릿속에서 오래오래 남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좋은 영화는 사람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다. 아마 나는 사회복무요원 일이 끝나면 취직을 하고 또 자취를 하겠지? 그럼 나는 이 <노매드랜드>를 블루레이로 구매할 생각이 있다. 아니 그 이전에 그 DVD 트는 기기를 뭐라고 부르지? 그걸 구매하고 싶은 의향까지 있다. 적당히 넓은 집에 이불 덮고 누워서 금요일 밤에 그거 틀고 잠자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가끔 이런 소소한 재미거리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난 그럼 방에 갇혀 사는 거야? 책 읽으면 되지. 근데 책도 못 읽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방구석에서 인스타그램을 끄적이며 사는 게 전부라면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심심하다. 그런데 내가 나답게 하는 것들을 하지 않은 채로 그냥 보이기 위해서만 산다면 그건 그야말로 빈 껍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이 삶이 TV 방송에서 생중계되고 있다면 더더욱 끔찍할 것 같다. 안 그래도 외로운 날이 많아 카카오톡 대화창이 텅텅 비는 나다. 대화할 상대도 없이 그렇게 표류하면 외로워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한숨이 난다. 그런데 이런 어두운 현실 속에서 무조건 해야 할일이 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10년 연속으로 해야 한다. 20대 동안 하는 것도 괴로웠는데, 결혼생활을 하고 난 후 내내 해야 한다는 건 정말 헛구역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근데 그걸 실제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의 영국으로 가보자.
미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1990년대의 영국에는 '왕비'라는 단어를 실제로 듣고 산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 왕비이기도 했다. 이름은 다이애나 스펜서. 으리으리한 궁전 안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다. 왕비로 살아 아름다움과 부를 얻은 채로 살면 행복하지 않겠냐고? 아니다. 스펜서는 행복하지 않다. 무슨 축산업자처럼 매일 몸무게를 재고 있는 직원들과 아들이 바람을 피우건 말건 무관심한 시어머니까지 정신이 나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스펜서가 갖고 있는 삶의 낙이란 유일한 대화 상대 메기와 아들 둘 뿐이었다. 앞에서도 잠깐 썼지만 남편은 그냥 말로만 배우자다. 이런 비참한 현실 덕에 과거에 친구들과 놀던 시기를 떠올리기 일쑤인 스펜서. 그렇게 불행한 시집살이 도중에 왕실끼리 어느 별장에 놀러 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 직접 운전해 도착하고 싶었지만 길을 잃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게 된다. 가던 길을 잃은 다이애나. 길을 잃던 도중 예전에 뛰어놀던 허수아비를 발견한다. 그 허수아비에는 아버지의 외투가 걸려 있었다. 안 그래도 미쳐버릴 것 같은 왕궁 생활을 겪고 있는 그녀. 아버지의 유품까지 오용되고 있는 현실 덕에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영화는 이 일을 기점으로 다이애나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묘사한다. 그리고 이런 고통 속에서 이뤄지는 그녀의 자아 찾기가 영화의 주요 소재다.
전기 영화 탈을 쓴 스릴러물
영화는 무서울 정도로 진절머리가 난다. 거의 스릴러 물에 가까울 정도로 잔인하다. 그 이유는 스펜서의 일상 묘사 때문이다. 스펜서가 겪는 왕궁 생활은 관객들이 보기에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극초반부에 주인공 스펜서의 몸무게를 재는 장면이 있다. 이때 왕실이 우리가 그냥 일반적으로 몸무게를 재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족발집에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울 비슷한 걸로 몸무게를 잰다. 이게 실제 영국 왕궁이 이 도구를 사용했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 장면 연출은 '스펜서가 이 왕궁에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뿐만 아니라 남편 찰스와의 껄끄러운 관계나 시어머니와의 대화 내용까지 영화는 스펜서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영화는 좋은 연출법으로 다이애나에게 잘 이입하게 도와준다. 관객의 감상에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다.
보다 더 꼼꼼하게
영화는 꼼꼼하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억양과 성격, 그리고 당시 왕궁 묘사에 힘을 많이 쓴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관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영국 왕궁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나 포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당시의 자동차나 입던 의상 코디까지 잘 짜였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때깔도 좋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워낙 미인이라 뭘 입어도 잘 소화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입는 코디 - 왕궁 배경 - 낯/밤의 색 대비 - 진주 목걸이를 위시한 장신구까지 전체적인 톤을 잘 뺐다. 그리고 다이애나 스펜서의 실제 성격 묘사도 좋았다고 한다. 영화 보고 나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일대기를 찾아봤었다. 그때 그녀가 두 아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어머니라는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아들과의 대사들 속에서 애정이 보일만큼 영화는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 한 장면이 있다. 이 영화가 꼼꼼하다고 여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장면(설정)까지 귀결을 내기 위해 각본상의 허점 없이 딱 딱 맞아떨어지는 정교함 역시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제 다음 주면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이 작품으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여우주연상에 올랐다. 나는 <타미 페이의 비극>을 보지 않아 제시카 차스테인이 어떤 연기를 보여줬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굉장히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일단 섬세한 감정 묘사가 좋았다. 중반부 즈음에 나오는 아들 둘과의 대화 장면이나, 후반부 즈음에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실제 스펜서의 모습이 저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국 영어 악센트 묘사가 탄탄했다. 우리가 토익 시험장에서 들을 수 있는 영국 영어 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서는 불안함이다. 영화는 내내 스펜서를 괴롭힌다. 이 불안함이라는 정서는 부적응과도 관련이 있다. 왕실 분위기랑 영 안 맞는 스펜서는, 뭔가 피곤에 쩔어있는 듯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캐릭터성과도 잘 맞아 좋은 시너지를 낸다. 이런 그녀의 매력과 섬세한 감정연기가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루즈한 느낌이 충분한 영화를 후반부까지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의상, 음악, 촬영, 저평가는 서운해
물론 여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스튜어트의 호연으로만 평가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좋았다. 실제로 다이이나 스펜서를 구글에 검색해보면 나오는 머리 스타일이 그대로 옮겨졌다. 또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아웃핏에 맞는 드레스나 메이크업까지 영화의 미술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음악도 기억에 남았다. 몇몇 분은 과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스펜서가 갖고 있는 정서불안을 묘사하는데 탁월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음향상 축에 끼지도 못한 건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또 촬영도 괜찮았다. 스펜서의 얼굴을 중심으로 클로즈업이 이뤄져 그녀의 리액션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촬영기법은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스펜서가 외부에 반응하는 방식'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역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의아했다.
꼭 알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이야기,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얼핏 들어서 알고 있다. 엄청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지만 그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정도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정선이 더 깊게 느껴졌다. 마음이 아팠다. 운명의 얄궂음이 가혹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인물의 실제 일대기를 알면 좋겠지만 모르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걸 알고 가면 더 깊게 느껴질 영화인 것은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는 스펜서의 입장 변화를 너무 섬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끝난 후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관객을 기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꼭 스펜서의 일대기를 무조건 알고 갈 필요는 없다. 깊게 감상하고 싶다면 검색하는 쪽이 좋고 소프트하게 보고 싶다면 모르셔도 될 이야기다.
그 곳에서는 꼭 행복하길 바라겠습니다. 다이애나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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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3세가 배워야 할 여왕의 고뇌
6★/10★
〈더 퀸〉은 2022년 개봉한 〈스펜서〉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스펜서〉가 영국 왕실의 전통과 권위, 가족들의 냉대로 고통받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더 퀸〉은 다이애나 스펜서가 그토록 탈주하고 싶어 하던 왕실의 상징 엘리자베스 2세에게 초점을 맞춘다.
1997년, 엘리자베스는 여러모로 커다란 변화에 직면한 상태다. 먼저 국내 정치다. 토니 블레어가 대표인 노동당이 18년 만에 집권했다. 그가 추후 실제로 펼친 정책과 행보는 별개로 하더라도, 토니 블레어는 분명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 염원의 극적인 표출이었다. 그리고 새로움을 향한 욕망은 늘 오래된 것의 폐지 요구와 함께 부상한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군주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토니 블레어는 그저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재임하던 중 선출된 수많은 총리 중 한 명일 뿐이었지만, 그의 당선을 둘러싼 대내외적 상황은 엘리자베스 2세가 압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며느리이자 왕실의 ‘골칫거리’였던 다이애나의 부고가 도착한 것은 바로 이때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후 활발히 자선 활동을 벌이며 이집트 재벌과 연애 중이던 그녀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파파라치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왕실이 고상함, 비밀스러움의 이미지였다면, 다이애나는 다정함, 활력, 봉사활동 등을 상징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다이애나의 죽음이 영국 국민에게 준 충격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토니 블레어의 집권에 이어 영국 왕실이 실의에 빠진 국민을 보듬어야 하는 연이은 도전을 마주한 것이다. 왕실이 상징하던 고루함을 향한 대중의 막연한 불만이 구체적 분노로 촉발되기 위한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마련된 셈이다.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의를 표하지도 않고, 마땅한 예우를 다하지도 않았다. 반면 왕실과 다이애나가 서로를 불편해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영국인들은 근위대의 교대식이 어려울 만큼 많은 꽃다발을 버킹엄궁 앞에 쌓아 다이애나를 추모했다. 언론은 왕실의 무대응을 두고 날 선 비판을 연일 쏟아냈고, 총리 역시 공손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여왕이 국민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제 모든 건 엘리자베스의 몫이다. 전통의 엄격한 적용을 고수하여 왕실의 권위를 유지할 것인가, 왕실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적 열망에 맞춰 다이애나를 추모할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엘리자베스 2세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더 퀸〉은 여왕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을 충실히 좇으며 그녀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인다. 왕실 일부 구성원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가 다이애나 추모사를 발표한 데에는 전통과 변화 열망을 조화하여 왕실의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그녀의 결연한 다짐이 담겼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국가의 상징적 구심점 역할을 한 엘리자베스 2세가 어떻게 왕실의 품위와 국민의 존경을 동시에 지켜나가고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펜서〉의 다이애나가 한 여성으로서 오롯이 거듭나 자기 세계를 펼치고자 했듯, 〈더 퀸〉의 엘리자베스 역시 온 힘을 다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켰다. 적어도 이 두 영화에서만큼은 두 여성의 고군분투가 먼저고, 그것이 야기한 정치적 효과에 대한 언급은 나중이다.
*이 영화는 시리즈온, 티빙, 웨이브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글 작성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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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적 소유욕, '사랑'이 되다
7★/10★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에서, 알마는 사랑하는 레이놀즈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해 음식에 독을 넣는다. 치사량은 아니지만 레이놀즈의 몸이 허약해져 알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는 많다. 알마를 그저 자기를 구성하는 여러 세계 중 하나로만 대우했던 레이놀즈는 기꺼이 알마의 요리를 먹는다. 그러고는 “사랑해”라고 말한다. 더는 알마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애정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듯이. 이렇게 알마는 레이놀즈를 완벽하게 소유하고, 둘의 사랑은 ‘완성’된다.
〈엘리자벳과 나〉는 사랑의 권태를 피학과 가학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알마와 레이놀즈의 길을 잇는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인 엘리자벳과 그의 시녀 이르마다. 엘리자벳은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왕족으로 손꼽힐 정도로 타고난 외모를 엄격하게 관리한 여인이다. 173의 큰 키임에도 평생 50kg 이하로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한다.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로 살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황후를 맞이하러 나온 대중 앞에서 기절할 만큼 코르사주를 꽉 조일 정도로 말이다. 여성의 섭식장애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획득할 수 없는 공적 권력‧역능을 향한 욕망의 방향을 바꿔 자기 몸에 행사하는 일일 때가 많다. 엘리자벳이 주인공인 또 다른 영화 〈코르사주〉에서 드러나듯, 그녀의 공적‧사적 욕망이 ‘황후’라는 이름으로 제한될수록 엘리자벳은 더욱 엄격한 자기 통제로 이를 보상하려 했을 것이다.
이르마는 백작 가문 출신의 42세 미혼 여성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수녀원에 가야만 한다. 결혼과 수녀원은 모두 이르마에게 답답함을 상징하기에 그녀는 황후의 시녀가 되고자 한다. 엄격한 식이요법과 활동적인 운동을 즐긴 엘리자벳의 시녀가 되기 위해 달리기 테스트까지 마친 후 엘리자벳의 시녀가 된 이르마. 그녀는 금세 엘리자벳과 가까워지며 총애를 받는다. 그리스의 한 휴양지, 즉 엘리자벳의 의지와 명령만이 중요한 장소에서 남성 사회에서 가져온 습관(식이요법)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가능성(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벼려내기도 한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발랄하면서도 격정적인 친밀성은 마찬가지로 비극적 황후의 삶을 조명한 〈코르사주〉와의 결정적 질감 차이를 만든다. 〈코르사주〉가 질식 직전의 삶에서 황후가 갈망한 자유를 그녀 삶 전반에 걸쳐 풀어냈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황후의 삶과 그런 황후를 사랑하는 이르마를 통해 남성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취급하는 방식을 고발한다. 〈코르사주〉가 전반적으로 질식할 듯한 답답함으로 점철된 엘리자벳의 삶을 담담히 애도‧추모한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폭발할 듯 분출되는 황후의 욕망과 자유의지가 끝끝내 좌절하고야 마는 현실과 그에 괴로워하며 변덕을 부리는 엘리자벳을 사랑하는 이르마의 관계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황후에 대한 헌사를 넘은 여성 친밀성과 사랑에 대한 통찰로 이끈다.
엘리자벳과 이르마의 사랑은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상호적이지 않다. 황후의 변덕에 이르마는 늘 안달한다. 엘리자벳 시동생의 말마따나 이르마는 또 하나의 “쓰고 버릴 여자”일지도 모른다. 즉 이르마에겐 황후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지만, 엘리자벳에겐 이르마가 억눌린 욕망과 자유의지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시적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헌신적일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엘리자벳을 보며 이르마는 황후를 완전히 소유할 방법을 찾는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엘리자벳은 1898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코르사주〉는 상상력을 발휘해 황후에게 대안적 역사, 품위 있는 죽음을 선물했다. 〈엘리자벳과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목적이 다르다. 〈코르사주〉의 상상력이 황후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엘리자벳과 나〉의 상상력은 잡히지 않는 황후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한 이르마의 결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가 독약을 탄 알마의 음식을 기꺼이 먹으며 사랑에 투신하듯, 죽기 직전의 엘리자벳도 이르마의 집착적 소유욕을 사랑의 표현으로 용인해준다. 이제 황후는 죽었고, 더는 자신을 떠날 수 없게 된 황후 앞에서 이르마는 평온을 얻는다. 더는 위기에 빠지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획득한 자의 표정이다. 소유욕이 사랑일 수는 없다. 동시대의 감각으로는 오히려 범죄에 가깝다. 그럼에도 〈코르사주〉를 경유해〈팬텀 스레드〉로 나아가는 〈엘리자벳과 나〉의 극단적 소유욕이 ‘사랑’일 수 있는 건, 사랑의 불확실성과 필멸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겠다는 광기에 우리가 무언가 애잔한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르마가 언제나 두 사람의 관계성에 더 목말랐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납득이 되는 집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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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다시 뭉친 '소공녀'팀! 근데, 장르가 코미디 범죄물?
LTNS
Korea/2023/113min
전고운, 임대형 감독/‘온 스크린’ 섹션
〈LTNS〉는 올해 12월에 티빙에서 공개 예정인 6부작 시리즈물로, 드라마 시리즈 화제작을 상영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에서 그중 2부가 상영되었다. Long Time No Sex의 약자인 자극적인(?)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훨씬 많은 흥밋거리가 있다. 〈LTNS〉는 각각 〈윤희에게〉, 〈소공녀〉로 한국 독립영화에 굵직한 인장을 남긴 임대형, 전고운 감독이 함께 글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주연은 〈소공녀〉,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에서 이미 두 번이나 연인 연기 합을 맞춘 안재홍, 이솜 배우가 맡았다. 많은 관객이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옷을 벗다가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의 냉기에 다시 옷깃을 여미며 “봄에 하자”고 말하는 〈소공녀〉의 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 시대 청년과 그들 사랑의 존재 양상을 절묘하게 포착한 이 장면의 두 배우가 〈LTNS〉에서는 부부로 합을 맞춘다.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된다. 두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며 〈LTNS〉의 분위기를 짐작해서는 곤란하다. 〈LTNS〉는 코미디 범죄물이다. 그것도 꽤나 매끈한(적어도 2회까지는).
본격적인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할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 그리고 드라마는 시작부터 이 기대를 너끈히 이어간다. 작품 상영 후 GV에서 전고운 감독은 〈LTNS〉가 “혼자 숨어서 몰래 보는, 플랫하지 않은 코미디 작품”으로 기획되었다고 밝혔는데, 오프닝부터 이 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와 같이 보기에는 민망한, 농도 높은 섹스신에 능청스러운 코미디를 곁들인 장면이 연달아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두 감독의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질감에 놀라움이 들 정도다.
〈LTNS〉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렬히 사랑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남자의 바지 속 무언가가 불끈거리던 커플이 정작 결혼 후에는 생활에 치여 섹스리스 부부가 된다. 서로에게 성적 이끌림보다는 남매애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는 둘.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 값은 나날이 떨어지고, 남자의 생계수단인 택시는 침수된다. 아등바등 살아도 제자리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부부. 그러던 중 친구들과의 우연한 해프닝이 계기가 되어 불륜 폭로 협박(?)으로 큰돈을 번다. 부부는 여기서 ‘수익 모델’을 발견한다. 호텔리어인 여자가 타깃을 정하면 불륜 증거를 모아 협박 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내는 것. 정직하고 성실히 살았을 때는 어림도 없던 돈이 척척 생기기 시작한다. 부부는 결심한다. 이왕 할 거 불륜 커플을 제대로 벗겨 먹기로.
‘미친놈’들만 돈을 버는 시대에 그들과 같이 미쳐 돈을 벌겠다는 부부의 새 출발로 드라마의 2화는 마무리된다. 감독과 배우들은 한목소리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극적으로 치닫는 불륜 커플의 사연과 그들을 협박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질 거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2화까지 봤을 때, 이들의 호언장담이 그저 허풍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미디 범죄물로 변주된, 〈소공녀〉의 후사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장르물로서의 재미에 더해, 작품 곳곳에 사회적 문제가 깃들어 있어 마냥 가볍지만도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리고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드라마 곳곳에 나오는 조연 배우들의 얼굴에 큰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LTNS〉, 남은 작품 공개가 시급하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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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 보다 조금 나아진 공조, 멋진 FBI요원을 더하다
?Rabbitgumi 입니다!
공조 2편이 개봉을 했어요.
현빈과 유해진의 합이 잘 맞았던 영화죠.
이번에는 다니엘 헤니가 미국 요원으로 등장합니다.
윤아가 던지는 유머도 꽤 타율이 높은 편이죠.
유일하게 명절 직전 개봉한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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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 뉴 이어> 메인 예고편
올 연말도 혼자 쓸쓸히 보내시나요?? 12월 29일!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호텔 엠로스' 문이 활짝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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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기> 메인 예고편
언젠가 NBA에서 활약할 날을 꿈꾸는 농구 유망주 ‘알프레드 부기 친’(테일러 타카하시)은 대학 진학과 장학금 문제로 부모님과 대립하기 시작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시아계 2세대로서의 정체성 고민, 라이벌과의 실력 차이, 여자친구와의 갈등까지 겪게 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