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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2025-03-09 13:07:16

숙명적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실존, <파닥파닥> 1편

영화 <파닥파닥> 리뷰 (1)



 

세상에 내던져진 삶, 그 숙명적 힘 

 

나는 나를 선택한 적이 없다. 무릇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말 그대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사회 계급도, 종적 위치마저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하물며 태어나느냐 마느냐 라는 중대한 문제조차 어느 것 하나 우리 손으로 고른 적 없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를 영문도 모른 채 덜컥 주어진 삶을 사수하도록 몸부림치게 만드는 것은 본능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무책임한 세상이다. 우리의 삶에서 중대한 요소를 바꿀 수도 없이 못 박은 채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떠밀고 있으니. 인간은 생선이 될 수 없고, 생선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 마땅한 이치. 생명체는 모두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는 거대한 서열의 흐름 속에 몸을 내맡긴 존재다.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란 말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죽음이란 또 하나의 필수적인 귀결이다. 삶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죽음. 역설적이게도, 때때로 우리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삶의 가치를 상기한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피할 수 없는 숙명.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 힘 아래에 놓여 있다. 여기, 파닥거리는 조그마한 삶이 하나 있다. 땅 위에서 기껏해야 몇 센티 튀어 오르는 것이 전부인, 아주 미미하고도 거대한 움직임이. ‘파닥파닥은 하찮고 작은 생명체가 삶을 향해 외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모든 공간에 도사리는 불평등성

 

자유롭게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 그가 붙잡혀 들어온 수조 트럭은 우겨넣은 생선 더미로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답답하다. 고등어가 마침내 당도한 곳은 난생 듣도 보도 못한 직육면체의 세상. 수직으로 정렬된 유리창은 더할 나위 없는 감옥 그 자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닿을 수 없는 잔인한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바다와 수조 안. ‘파닥파닥속에서 공간의 대치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장면 1>                                                         <장면 2>

 

횟집이야말로 적 차이에 따라 그 의미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공간이다. <장면 1>은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본 평범한 횟집의 풍경이다. 가볍게 들러 신선한 메뉴를 고르고, 식간에 손질되어 식탁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먹는 사람들. 그들에게 횟집은 소주 한 잔도 곁들이고,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즐거운 식사의 장소다. 반면 수조 안에 갇힌 생선들의 시선으로 본 횟집은 <장면 2>, 참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생지옥이다. OST ‘악몽과 함께 추상적인 2D 그림체로 펼쳐지는 뮤지컬 시퀀스는 고등어가 느낀 절망적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손짓 한 번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망에 붙잡히면 저항할 새도 없이 물 밖으로 들리는 생선. 다른 이의 핏물이 채 가시지도 않은 도마 위에 오르면, 순식간에 머리를 쑤시고 배를 갈라오는 칼. 그리고 이 순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수조 속 생선들.

 

보통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은 횟집에서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흥미롭게 구경하거나, 또는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이 광경은 당사자인 생선의 시선으로 전환하자마자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해 장면을 보는 것만큼 충격적인 사태로 다가온다. 생선을 손질하는 현실적인 장면이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려 포착되면서, 카메라는 이 행위에 담긴 폭력성을 뚜렷하게 조명한다. 카메라는 마치 우리더러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손질이 아니다. 끔찍한 살해다.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은 음식이 아니다, 찢어진 살점이다, 라고. <장면 1><장면 2>로 드러나는 횟집을 둘러싼 대조적인 입장 차이를 통해, 영화 파닥파닥은 익숙하고 평범한 공간이 내가 속한 종적 위치와 서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점을 상기시킨다.

 

 

 

<장면 3>                                                         <장면 4>

 

아이의 짓궂은 장난으로 작은 관상어가 있는 어항에 빠지는 고등어. 관상어들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침입자를 향해 겁 없이 대들다가 잡아먹히고 만다(<장면 3>). 힘과 크기의 차이가 압도적인 상대를 두고 그들이 기고만장했던 이유는 바로 인간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횟집과 수조, 그리고 바다를 아울러 정점에 서 있는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이들에 의해 어항 속 물고기와 수조 속 생선의 서열은 기존의 생태계와는 다른 구조로 재정립된다. 보기에 예쁘다, 맛이 좋다 등등 그들만의 잣대로 종류를 구분하고 생사의 서열을 부여하는 최상위 포식자의 막강한 권력. 물때가 낀 삭막한 수조와는 대조적으로 수초와 장식품으로 꾸민 어항은 그 공간 자체로 불평등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똑같이 갇혀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신세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수조 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면 4> , 점호하듯 정렬해 서 있는 생선들, 프레임 아래쪽에 위치해 위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모습은 이미 그들이 권력 관계에서 어느 쪽에 위치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통제하고 수수께끼로 상벌을 내리는 올드넙치는 수조 안의 또 다른 상위 포식자다.

 

어떻게 우리랑 올드넙치 님이랑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 애초에 노는 물이 다른데.”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산 출신이라는 거짓말이다. 태어나길 인간의 양식장 속에서 나고 자라 수조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양식장 출신 생선들.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바다를 동경하며 자연산 출신 생선을 우러러본다. 이후 올드넙치의 거짓말이 폭로되고 고등어가 진짜 자연산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그가 가진 권력과 발언권은 고등어에게로 기운다.

 

결국 바다와 횟집, 어항과 수조, 그리고 그 좁디좁은 수조 안마저 끊임없는 서열 가르기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이다. 영화 파닥파닥속 모든 공간에는 해소될 수 없는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누구도 자신의 서열을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보니 양식장이었을 뿐인 양식장 출신 생선들. 마찬가지로 우연히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전부인 자연산 고등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뒤집을 수도 없는 서열이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좌우한다. 정해진 태생의 한계가 우리의 권력구조를 정립해버리는 것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작성자 .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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