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2025-03-10 16:25:50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어딘가 있을, 아무도 모를 너에게
아무도 모른다
그런 영화가 있다. 평가도 좋고 관심도 있지만, 도저히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경우도 그렇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대개 그렇듯 <아무도 모른다> 역시 먼저 접한 사연만큼 슬픔과 좌절의 감정으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감상했다. 역시 훌륭했다. 꺼려진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느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도 모른다>의 대단함은 실화에 기대지 않음과 악인이 없다는 점에서 나온다. 어머니가 버린 자식들이 자기들끼리 살아간다. 라는 간단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의 모티브만 가지고 세계를 구축했으며, 훌륭한 연출과 연기력으로 설득력과 감성을 갖추어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이 때문에 실화 미화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는 첫째가 집안을 방치한 건 물론 막내 동생을 학대했으며, 막내 동생이 죽은 이유도 첫째의 친구들이 구타를 했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면 불가피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악인이 없다는 본인 고유의 세계관으로 승화시켰다.
이 영화를 보며 강력하게 작동한 감각은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이 아니었다. 사회적 제도나 시선에 대한 비판은 찰나도 스치지 않았다. 그 감정은, 마치 공항에서 같이 흙을 파는 것, 폐기 식품을 얻으러 편의점에 가는 것, 컵라면 용기에 피어난 새싹에 물을 주는 것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나 연출과 연기력이고, 영화가 마술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에 힘을 보태준다. 실제로 몸통이 분리되거나, 모자에서 토끼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기분을 만드는 힘. 속임수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 역시 행위에 숭고함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주변에 사실 악인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악인이라고 칭할 만한 사람은 뉴스나 기사로 접할 뿐이다. 그럼에도 왜 비극은 자주 일어나고 우리는 삶이 힘들까? 사회적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려 해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에 큰 재약이 있는 시대도 아니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은 차고 넘치지만. 다만 이러한 소수의 요소 때문으로만 삶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훨씬 다양한 환경과 그보다 복잡한 내면이 얽히고 섥혀 이내 과부하가 일어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동 중지 말고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모른다’이지 않을까.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다. 사실을 알지 못하다. 어떤 지식이나 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모르다의 사전적 정의이다. 이렇게 빈틈 없는 기준 속에서 과연 우리가 아는 건 얼마 정도이고 한줌의 모래처럼 귀한 앎을 감사해하는지. 또한 무수한 모름을 애써 외면해오지는 않았을까. 실제 그들이 흙투성이로 지하철을 탔는지, 세뱃돈 봉투의 다른 글씨체를 보고 생각에 잠겼는지, 바닥에는 여전히 매니큐어 자국이 남아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삶이 왜 고통스러운지, 보는 우리가 어째서 공감을 하는 건지. 여전히 모른다. 다만 아는 건 우주는 무한하고 우리가 아는 사실은 극히 일부분, 즉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경찰에서 보호 중인 동생들이 첫째를 변호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됐는데 오빠가 친절했다는 증언이 담겼음을 확인하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일화를 좋아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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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이 옅어지니 역주행 시작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가 모여 사는 대도시 ‘엘리멘트 시티’. 불들이 모여 사는 파이어 타운에는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레아 루이스)가 있다. 본토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민 온 부모님을 도와 잡화점을 운영하는 앰버. 그녀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화를 참지 못한다는 것.
어느 날, 앰버 앞에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마무두 아티)가 나타난다.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앰버 부모님 가게 수도관이 터지자 공무원인 웨이드가 시청에 고발하고, 앰버가 불처럼 화를 냈기 때문. 그러나 이를 계기로 앰버는 웨이드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녀는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자기 꿈에 이르기까지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뒷심이 무섭다. 개봉 11일 차에 처음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개봉 19일 차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라는 경쟁작이 등장했지만 박스오피스 정상은 여전히 <엘리멘탈> 몫이다.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사실 예상 밖의 일이다.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제76회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된 직후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낭패였다. <버즈 라이트이어>에 이어 픽사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흥행성적도 기대 이하였다. 북미에서는 개봉 후 2주 동안 1억 달러를 채 벌지 못했다.
뒤늦게 <엘리멘탈>을 보니 부정적인 반응의 원인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소재는 지극히 픽사답지만, 정작 이야기는 픽사스럽지 않다. 픽사만의 개성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이 괴리감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 역설 덕분에 일반 관객에게 <엘리멘탈>은 오히려 사랑스럽다. 109분 동안 부담 없이 화려한 영상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몇 방울은 덤이다.
픽사다운 소재
픽사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신선한 소재다. 클리셰를 따르는 안일함은 찾기 어렵다. 대신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는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아이보다도 어른을 울리기로 유명한 이유다. 일례로 <소울>은 앞만 보고 달리기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의 여유를 줬다. 인생은 무언가 거창한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즐길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엘리멘탈>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춰 미국으로 건너 간 이민자의 삶을 살펴본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다른 가치관은 어떻게 공존할지. 기존 사회의 구성원과 이민자는 어떻게 융화할 수 있는지. 영화는 불과 물이라는, 상반된 원소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이민자의 삶을 되돌아본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가 주인공이라서 인상적이다.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차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오래지 않은 만큼, 픽사가 빠지면 섭섭하다. 실제로 피터 손 감독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보니 영화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다. 큰 절, 매운 음식, 코리아 타운 등을 변형해 활용한다. 앰버네 가족 이야기가 백인, 흑인, 유대인보다도 늦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또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픽사답지 않은 이질감
그런데 막상 <엘리멘탈>을 보다 보면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이 살지 않는다.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평범한 까닭이다. 대부분의 픽사 애니메이션은 후반부를 위한 한 방을 감춰 둔다. 이야기를 예상대로 풀어가다가 반전을 주고, 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긴다. 상술한 <소울>도, 코로나 시기에 개봉한 <온워드>도 예상할 수 있는 교훈 대신 한 차원 높은 깨달음을 줬다.
반면에 <엘리멘탈>의 스토리텔링은 무난히 흘러 마무리된다.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고민이 충돌하는 지점은 무난하게 해결된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부모의 내리사랑과 자아실현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식 세대의 효심 덕분에 손쉽게 해결된다.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도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다.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밝은 여자 주인공을 만난다. 처음에는 악연이지만, 우연이 겹쳐 둘은 계속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남자와 여자는 자기에게 없는 매력을 상대에게서 발견하고, 서로의 단점을 가려주며 사랑을 키운다.
그러니 메시지도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지레 겁먹고 마음의 문을 닫는 대신 먼저 손을 건네라고 말한다. 지레짐작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대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또 물과 불처럼 사회적 배경부터 외관까지 다 다른 이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부딪혀 봐야 공존하는 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여전히 감동적인 교훈이지만, '픽사'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평범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디즈니 <주토피아> VS 픽사 <엘리멘탈>
2016년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와 비교해 보면 <엘리멘탈>의 스토리텔링은 더 아쉽다. 두 영화는 소재가 같다. 인종을 동물과 원소에 비유해 다문화 사회의 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 주토피아와 엘리멘트 시티가 배경인 것도 유사하다. 여자 주인공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내지는 약자,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 강자로 등장하는 것도 같다.
주목한 포인트는 다르다. <주토피아>는 거시적으로 접근한다.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꿰뚫는다. 토끼 경찰 주디를 중심으로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을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소수 집단 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도 여우 닉의 이야기에 담아낸다. 그 결과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차별받을 수 있다'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엘리멘탈>의 접근법은 미시적이다. '파란 불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민자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회 전체의 이슈 대신 이민자 가족 내의 문제에 집중한다. 소수자 차별이나 경제적 불평등 및 불공정성 같은 이슈는 앰버와 웨이드가 썸을 타는 과정에서 잠깐 등장했다 빠진다.
픽사라기에는 평범한
그 결과 <엘리멘탈>은 원론적이다. 잘 알려진 문제 상황과 어려움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적응기가 원론이라면, 적응한 이후에 생기는 문제까지 다루지는 않았다. 활용할 만한 사례도 있기에 더 아쉽다. 공부를 잘하는 아시아인보다 못하는 흑인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이 대표적이다. 소재의 잠재력을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듯 보인다.
이는 세부 플롯 간의 균형이 맞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리멘탈>에는 두 축이 있다. 로맨스가 한 축이고, 하수도 누수 문제를 해결이 다른 한 축이다. 전자가 이민자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이민자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전자에 과도한 비중을 둔다. 자연히 후자는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필요할 순간에 소환될 뿐이다. 사랑이 시작되고, 갈등을 빚고, 완성될 때. 앰버와 웨이드의 활약이 도시 전체에 가져온 결과는 보기 좋은 배경에 머무른다. 이 역시 닉과 주디의 추격전을 통해 형사물을 닮은 서스펜스도, 사회적 파급력도 놓치지 않은 <주토피아>와 대비를 이룬다.
단순한 스토리 덕에 빛나는 비주얼
하지만 좋게 말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해 특색 없는 스토리 덕분에 픽사의 명작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CG와 영상미가 유독 돋보인다. 우선 물과 불이라는 원소의 특성이 매력적이다. 광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변하는 앰버, 앰버가 유리를 만드는 장면, 불과 물이 맞닿아 끓어오르거나 폭발할 때의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흙과 공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아쉽기도 하다.
Lauv의 OST가 흘러나올 때 비치는 도시 경관도 화려하다. 눈이 호강한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물이 흐르는 지하철이나 거대한 용광로처럼 보이는 파이어 타운의 경관도 한몫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각 원소의 특성을 알 수 있지만, 동시에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엘리멘트 시티는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결국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픽사답지 않고 개성이 약한 완성도에서 비롯된 셈이다. 소재 자체의 힘, 한국적 정서, 보편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비주얼의 조합이 입소문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치 <미나리>의 애니메이션 버전 같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도 예상 못한 역주행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Acceptable 무난함
무난한 이야기와 창의적인 볼거리. 픽사답지 않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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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2> 만큼 재미있고 <헤어질 결심>처럼 진하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유명 아나운서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작가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1시간 녹화가 20분이 걸렸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영잘알이세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보냈던 것뿐인데요." 대답하자 휴대전화에 카톡 몇 개가 온다. 어느 날에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는 누군가의 말이다. 어? '어느 날'에 개봉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별 것 아니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간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 조회수를 확인해본다. 정말 감사하게도 2만이 찍힌다. 언제부턴가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몇 개월째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작가님! 출연료는 다음 주에 입금될 거예요. 금액은 얼마입니다!" 엥? 출연료가 '얼마'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대답한다. "그 얼마가 어느 정도 될까요?" 작가가 대답한다. "그 금액은..."
라는 꿈을 꾸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언제까지 이 글을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내 생각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그런 일이다. 나 자신이 '이 정도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싶은 것들은 이미 얻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멀리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서 그런 꿈을 꿨던 걸까? 어느 멀티버스 중 하나에는 내가 작가로 명성을 많이 얻은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우리)에게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니야"라고 답한다. 준비물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받아들일 태도만 있으면 된다. 올해 개봉작 중 또 다른 마스터피스가 등장했다. 에블린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멀티버스 속으로 떠나보자.
빈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은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홍콩에서 태어난 에블린. 첫사랑이었던 웨이먼드의 설득에 넘어가 타지 생활 중이었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패만 지속했던 그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지금 현재다. 짜증이 나는 오늘. 남편 웨이먼드는 착할지 몰라도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딸 조이는 틱틱대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공공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에블린과 함께 살고 있다. 쌓여가는 빨래물처럼 풀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점점 더 높아져간다. 이런 에블린의 일상은 점점 더 그녀를 괴롭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평소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타향살이를 시작한 보람도 없이 갑자기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에블린을 딱히 봐주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에블린의 세탁소에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영수증 속에 쌓여있는 에블린. 영업정지와 생계유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다. 이 빈 차를 타고 국세청이 아니라 다른 우주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에블린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한숨이 가득한 얼굴. 에블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웨이먼드와 같이 있었던 에블린. 멍하니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눈빛이 변한다. "여보. 잘 들어. 지금 당신은 위험해. 난 다른 우주에서 왔어.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적어 준 쪽지대로 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나사가 좀 빠져 있는 것 같은 웨이먼드. 마침내 미쳐버린 것인가? 에블린은 어리둥절한다. 금세 에블린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웨이먼드. 갑자기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우주 속의 에블린. 에블린은 당황한다. 웨이먼드는 이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이며, 지금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이어폰을 꽂고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안 믿기도 어렵다. 이 색다른 경험 덕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 앞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에블린. 에블린은 디어드리 앞에서 웨이먼드가 전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지시사항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에블린. 그 다른 차원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조우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세상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조부 투파키가 멀티버스를 싸돌아다니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운명의 조부 투파키는 온갖 세계의 에블린을 살해하고 있었다. 꿈꾸는 소리가 아니다. 에블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전부 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부 투파키를 제지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강력하고 빠르게
이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엄청 정신없다. 일단 핵심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장 우선은 코미디. 두 번째는 액션. 세 번째는 가족 드라마. 네 번째는 오마주. 다섯 번째는 멀티버스 구현이다. 키워드만 다섯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키워드를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사정없이 다 때려 박는다. 이렇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정신없다’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쑤셔놓는 것은 도박이다. 일례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사가 쉴 틈 없이 쏟아지지만 감독 웨스 앤더슨은 이런저런 설정을 무리 없이 이해한다.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을 중심으로 대사를 받아들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도 있다. 바로 <외계+인> 1부다. 현재의 MCU는 많은 영화들로 이뤄져 있다. 글쓴이는 다른 글에서 최동훈 감독이 마블의 영화들이 쌓아놓은 빌드업을 너무 쉽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보여주듯 너무 많은 떡밥이 있는 <외계+인>. 산만한 줄거리 때문에 호평보단 혹평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자다. 이 영화가 이해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은 단적으로만 휙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쓰이고, 또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와다다 쏟아지긴 해도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중반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집중할 필요는 있다. 영화에서 원형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중요한가?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때 설명이 후반부에 반복되긴 하지만 대충 보면 중반부에서 이를 놓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마시지 않은 채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 그럼 영화의 재미가 급전직하하는 단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섬세한 방식으로 영화의 이해를 도운 것과 유사하게 이 영화는 광기의 에너지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강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방면으로 강점을 가진 영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이 쾌감 중 하나는 액션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인물은 주연 양자경이다. 우선 양자경이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상영작들을 찾아봤을 때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바로 <와호장룡>이다. 장첸,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이 출연한 이 영화. 웅장한 맨몸액션이 많은 이들에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홍콩영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일단 양자경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극에서 일대 다수의 연기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적 운동능력을 선명하게 잘 드러낸다.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에블린의 액션 신에서 싸움을 잘하는 에블린이 되는 계기가 있다. 영화는 이 에블린이 왜 쿵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잠깐 보여주고 이를 편집술로 보여준다. 이는 편집 능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상대방과의 액션 주고받기와 이 능력이 구현되기 위한 전제가 엇나가듯이 편집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 안에서 멀티버스란 것은 없다. 심지어 이 멀티버스의 묘사가 이 영화처럼 이뤄진다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를 관객들에게 경제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액션을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럼 이야기에 통일성이 생긴다. 이런 토대의 튼튼함은 영화의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이해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에블린의 액션은 단적으로 시각적인 쾌감만을 전하려고 제시되지 않았다.
또 웨이먼드 역을 맡은 조너던 키 콴의 액션 연기도 굉장하다. 이 웨이먼드 캐릭터가 맡은 역할의 액션 신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고 전투를 시작하는 웨이먼드. 이때 매고 있던 가방을 휘리릭 흔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엥? 이거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성룡이 생각난다. 역시 이 웨이먼드의 액션신에서 무언가를 오마주하고 있다. 바로 성룡의 쌍절곤 액션이다. 이는 그냥 얻어걸린 효과가 아닌 듯하다. 배우 조너던 키 쿠안이 성룡을 닮기도 했다. 또 원래 주인공을 양자경이 아닌 성룡을 계획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액션은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액션 시퀀스이기도 하다. 가방 끈을 쌍절곤 쓰듯이 두들겨 패는 웨이먼드. 극초반부에 유약한 모습만 제시됐던 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액션 신이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앞에서 쓴 문단과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이 역시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이런 멀티버스를 통한 액션신이 웨이먼드라는 인물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연출이 멀티버스라는 모티브를 단순히 설정으로만 쓴 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지게 설정했다. 똑똑한 연출의 힘이었다. 아, 이 두 주인공을 빼고 다른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의 액션도 잘 뽑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정말 또라이같다.
타율 높은 코미디
또 이 영화는 정말 웃긴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서 사용했던 소재는 두 가지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중우주를 보여줬던 시각화와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우선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이 아닌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강점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 속에 한 명씩은 있을 테니 각자가 온갖 직업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직업인으로서의 광경 묘사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꼼꼼함 묘사가 ‘각종 직업의 에블린’에서 굉장히 강력한 코미디가 작동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글을 쓰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글을 쓰는 특징 중 하나를 뽑아 영화에서 어떤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그림을 그리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왜 멀티버스의 에블린이 필요한지를 빼먹지 않았다. 영화의 설정을 단단히 하는 연출이 코미디 소스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에블린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 때 절대 잊히지 않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어떤 영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를 쓰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영화의 리뷰를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멀티버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인간의 물리법칙 외의 것도 있다. 이 부분 역시 골 때리게 잘 설정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고퀄리티라서 놀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가 됐을 키워드 ‘전환’이다. 영화의 메인 세계관은 주인공 에블린이 이끄는 시간대다. 그럼 다중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다. 제일 첫 번째 전환 방식은 적당히 상식 선에서 상황에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수위를 전부 뛰어넘는다. 단 하나 빼고 전부 예상외로 흘러갔다(그리고 이 ‘예상대로 간 코미디’도 정말 웃긴다). 당연히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소재가 뭐였는지는 쓰기 어렵다. 단지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 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난 배우들이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자기들도 엄청 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코미디 요소로 사용하는 전환이지만 이것도 단지 웃기려고만 넣은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글쓴이 포함) 보통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게 쉽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에 대해서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단면적인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신선하다고 느낄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바로 딸 조이의 퀴어 설정이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예술 매체에서 참 피곤한 소재다.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이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왓챠피디아에서 투기장이 열린다. 피곤하다. 혹자는 ‘PC 묻었네’라고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억지로 이런 코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아시아 인이라는 인종이 아예 없다. 무조건 백인만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화양연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찬가지다.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매체의 다양성에만 국한 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이라는 배우는 경력이 중간에 끊겼었다. 유년시절 아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사람은 아시아인 역 빼고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었다. 할리우드라는 큰 판에 단지 인종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많이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PC’라는 것이 무조건 예술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사람도 인간일 뿐인데. 역시 이런 측면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PC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소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선 끝난다면 우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우주를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써왔으면 어땠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막연한 질문은 끝이 없다. 이 질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삶의 관문에서 막힐 때마다 이 지점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되묻는다. 세상에. 내 운명이란 왜 이따위란 말인가. 지긋지긋한 멍청함 덕에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뱉는다. 이 한숨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왠지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에블린처럼.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잊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우리도 각자가 생각했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글쓴이만 해도 그렇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후회하며 보냈다. 막상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런 미련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그 선택을 했던 평행세계의 나도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 일을 그렇게 보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어떤 선택을 하든 ‘통계적인 필연성’에 앞서 지금 없는 것에 가능성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형 눈알도, 세탁소에 찌들어 보내는 일상도, 밝게 웃는 딸의 웃음도 우리가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 개연성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한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어?
메버릭의 박력을 멀티버스로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래퍼런스를 때려박은 이 영화. 앞에서도 썼듯 '이걸 다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영화가 이해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초반부 세탁소 시퀀스부터 BGM이 들어간다.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알파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만나 이어폰을 꽂아주기까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바로 액션 삽입하고. 액션 중간에 코미디 요소도 있다. 다 짬뽕처럼 다 넣는다. 그 대신 이야기 전반적으로 멀티버스의 인물들마다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후반부에 주인공 중 어떤 인물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 <탑건 : 메버릭>이 개봉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톰 크루즈를 위시로 한 힘찬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행기로 활주로를 활공하는 듯한 갈등 구성이 영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던 주요 연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탑건 : 메버릭>만큼의 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바로 그다음 정반대의 무언가가 나온다. 또 그 정반대를 대칭 찍고 완벽히 반대 측면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화장법이나 의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을 따라와서 보여준다. 그런 이상한 코디법을 받쳐주는 미장센까지 영화는 소재 하나하나가 신선하기 때문에 딸려오는 힘찬 에너지로 2시간 20분 내로 질주한다. 이 영화가 상영관을 얼마만큼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탑건 : 메버릭>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볼 수 있는 뭉클함, 코미디 요소로만 국한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 메버릭>이 이뤘던 성취를 더 크게 돌며 이뤘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분명 스포일러를 없이 쓰는 것 같은데 쓸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말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의 허리케인이 되어 많은 관객을 흡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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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이즈 본> OST 노래 모음 -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스타 이즈 본>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미중년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잭슨 역'에 '레이디 가가(Lady Gaga)-앨리 역'이 만났습니다. 이 영화는 2018년 최고의 음악영화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스타 이즈 본>의 OST 노래를 모아보았습니다.
★주의★
영화 속 노래다 보니
노래 자체가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 Maybe It's Time - 브래들리 쿠퍼
Maybe It's Time - 브래들리 쿠퍼
잭슨이 앨리에게 처음 들려준 노래 'Maybe It's Time'입니다.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블 너구리 '로켓'였다니...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2. Shallow -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Shallow -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제가 이 노래들 중 최고로 꼽는 'Shallow'입니다. 둘이 처음 듀오로 부르던 최고의 듀엣곡이죠.
3. Look What I Found - 레이디 가가
Look What I Found - 레이디 가가
앨리가 앨범을 내면서 부르던 'Look What I Found'입니다. 잭슨이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4. I'll Never Love Again - 레이디 가가
I'll Never Love Again - 레이디 가가
마지막에 앨리가 잭슨을 기리며 부르는 노래 'I'll Never Love Again'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평범했는데 계속 들을수록 슬프네요. 훌쩍...
5. Is That Alright? - 레이디 가가
Is That Alright? - 레이디 가가
'Is That Alright?'은 아마 엔딩에 삽입된 노래일겁니다. (사실 영화를 일주일 전쯤에 봐서 이게 어디에 쓰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아름다운 노래 감상하시고 행복한 밤 되길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할리 포레스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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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 속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기 오염으로 황폐해진 2071년 서울. 사람들은 네 구역에 나뉘어 산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최상류층 거주 구역인 코어 구역. 중상류층 거주 구역인 특별구역.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가는 일반구역. 아무런 지원이 없는 난민구역. 산소를 독점한 천명 그룹과 산소를 전달하는 택배 기사 없이 이 세계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혁명은 있는 법. 난민 출신 택배기사 '5-8'(김우빈)이 속한 지하 조직 '블랙 나이트'는 천명 그룹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명그룹 대표 '류석'(송승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5-8은 자기 진의를 의심하는 군인 '정설아'(이솜)와 택배기사를 꿈꾸는 난민 '사월'(강유석)을 이용해 류석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택배기사> 선배의 전철을 답습하다
한국 영화 시장은 SF 불모지다. 한국 SF 영화는 특히 더 성공하기 어렵다. 팬데믹 이후로 기간을 한정해 보자. 그나마 넷플릭스 <승리호>가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정이>나 티빙에서 공개된 <서복>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도 실패를 맛봤다.
의아하다. 한국 SF 영화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야 많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국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달 탐사, 안드로이드, 복제 인간, 외계인, 시간 여행... 할리우드도 오랜 기간 사랑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소재나 설정은 배경에 불과하다. 판은 잘 깔아놓지만, 결국 다른 장르로 돌아선다. <고요의 바다>, <정이>, <서복>의 끝은 모두 신파다. <외계+인 1부>도 SF라고 하지만 <전우치> 속편처럼 보인다. 굳이 SF 영화를 표방하지 않아도 스토리텔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SF 영화의 고질병을 답습했다. 소재는 신선하다. 택배기사가 디스토피아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영웅이라는 발상. 대기 오염이 극심한 지구에서 산소를 확보한 기업이 권력을 잡는다는 설정. 그럴듯하다. 하지만 다른 SF 영화와 비교해 보면 <택배기사>는 실패에 가깝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 소재와 주제 의식의 결합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 클리셰의 향연도 참신한 소재를 끝내 가리고 만다.
디테일: <매드맥스>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로는 우선 톰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꼽을 수 있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의 문제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두 영화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반지'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영화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따라서 시각매체인 영화는 이 절대 반지의 힘을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매드맥스>는 과제를 훌륭히 수행했다. 뜨거운 해와 녹초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배경만 봐도 목이 탄다. 거칠게 울리는 배기음은 그 자체로 갈증을 일으킨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임모탄 조가 물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순간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사람들은 폭포 밑에서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담기 위해 발악한다. 그 순간 이 디스토피아 사회의 계급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관객은 언제 어디서나 물을 절박하게 갈구하는 맥스에게 이입하기 쉽다.
<택배기사>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배경은 있다. 한국의 봄을 닮은 지저분한 대기와 메마른 땅은 산소가 중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나 산소의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몇 분 못 버틴다는 대사는 힘이 없다.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쉽게 마스크를 벗다 보니 임팩트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 결과 산소를 지배하는 천명의 권세도 막연하게 느껴진다. <택배기사> 속 세계에 빠져들기 어려운 이유다.
메시지: <설국열차>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는 메시지도 뭉툭하다. <택배기사>의 주제의식은 <설국열차>의 그것과 유사하다. 두 작품 모두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 삼아 체제 유지에 혈안인 기득권층을 비판한다. 자연 재앙이 닥친 가운데 권력층은 물자 배급을 제한한다. 철저히 칸을 나눈다. 단단한 계급 사회를 조직해 사회를 안정시킨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비인도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비기득권층은 폭동을 일으키고, 혁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단순히 계급투쟁을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자고 쉽게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혁명이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통찰을 보여줬다. 제 아무리 성공한 혁명이라 해도, 지배계층만 바뀔 뿐 실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혁명을 일으킨 이들도 권력에 취할 테니. 월포드가 커티스에게 자리를 넘겨주듯이. 그러니 이 악순환을 끝낼 방법은 하나다. 남궁민수처럼 아예 기차에서 탈출해야 한다. 따라서 <설국열차>는 불합리한 체제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하자는 외침이었다.
<택배기사>는 <설국열차> 같은 야망도, 통찰도 없다. 비판의 칼날은 충분히 예리하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안일하다. 시리즈 후반부에 천명그룹은 무너진다. 류석은 모든 권력을 잃는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가 힘을 잡는다. 대통령은 새로운 보금자리인 A 구역이 모든 난민에게 열려 있다고 발표한다. 류석은 악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선으로 규정된다. '권력자만 바뀌었을 뿐 체제는 그대로 아닌가' 하는 의심은 이분법적인 구도 사이에 설 수 없다. 산소와 거주 구역이 여전히 권력자의 손아귀에 있는데도. 즉, 5-8의 혁명은 새로운 권력자에게 힘을 몰아줬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풍부한 이야기를 펼칠 만한 설정은 일차원적으로 소비된다. 예를 들어 5-8은 태양을 가린 먼지가 옅어지고 햇빛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차 밖 얼음이 녹고 추위가 약해지고 있다는 <설국열차>의 설정과 판박이다. 그런데 함의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언젠가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일반론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반면에 후자는 혁명이 단순히 지배층 타도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핵심적인 설정이다. 기차 밖에서도 살 수 있으니 기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는 야망이 담겼다.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택배기사>는 공허하다. 어두운 배경은 다양한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대기업의 음모와 계급 사회에 대한 경고는 다급하지 않다. 공허함은 클리셰가 채워 넣는다. 대기업 회장과 저항군 리더의 멘토가 막역한 친구, 동료 사이였다는 식의 익숙한 반전이 뒤따른다.
막연하고 평면적이며 예측 가능한 대립 구도 속에서는 캐릭터도 살아남기 어렵다. 카리스마 있는 히어로도, 위협적인 빌런도 없다. 그저 나쁘게 보여야 하니 나쁜 짓만 골라하는 악역을 내세운다. 실제로 류석의 행적은 기업의 수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다. 그는 폭주하다가 알아서 무너지고 혁명은 성공했다고 치켜세운다. 에피소드 6개에 긴장감이 감돌 수도 없고, 결말에 쾌감이 있을 수도 없는 이유다.
더 큰 문제도 보인다. <택배기사>의 실패가 <택배기사>만의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접한 OTT 작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최소한의 개연성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활용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부족하다. 현실 속 사건, 클리셰, 상징적인 장면을 짜깁기하고 이목을 끌 스타를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려된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촉발된 한국 콘텐츠의 성장이 양적 성장에서 멈추는 것은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가 카나리아는 아닐까 싶다. K-콘텐츠 시장이 의외로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노랑새는 아닐까.
Dreadful 끔찍함
K 콘텐츠의 새 미션. 카나리아가 죽기 전에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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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으로 꽉찬 공드리의 복잡한 땅굴 체험하기
공드리의 솔루션북 (The Book of Solution, 2024)
상상력으로 꽉찬 공드리의 복잡한 땅굴 체험하기
개봉일 : 2024.08.14.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러닝타임 : 103분
감독 : 미셸 공드리
출연 : 피에르 니네이, 블랑쉬 가르딘, 프랑수와 레브런, 프랭키 월러치, 카밀 루더포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환상적, 몽환적인 분위기 또는 로맨스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감독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미셸 공드리’
<이터널 선샤인>부터 <수면의 과학>, <무드 인디고>, 드라마 <키딩>까지. 딱 ‘미셸 공드리스럽다’라는 말 외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고 몽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던 그가 <마이크롭 앤 가솔린> 이후 약 8년 만에 장편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으로 돌아왔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감독 미셸 공드리가 <무드 인디고> 후반 작업을 진행하던 3달간의 경험을 살려 만든 자전적인 영화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미셸 공드리가 직접 파놓은 그의 깊은 흑역사 땅굴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듯 이리저리 툭툭 튀어나가는 이야기와 미셸 공드리 특유의 독특한 표현법, 기행조차 이해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영화이며 마음가짐을 재부팅하게 만드는 거울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영화다.
희뿌연 머릿속에 흩어진 상상력을 붙잡는 마크마크는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최악의 영화감독이고 나르시시즘과 우울함. 거기에 산만함과 타인을 향한 불신까지 갖고 있다. 최고이자 최악, 나르시시즘과 우울함, 산만함과 불신. 삶이 참 복잡하겠다 싶어 애잔하다가도 어쨌든 나랑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 그게 바로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주인공 마크다.
마크는 항상 바쁘다. 범람하는 수많은 상상력을 붙잡아야 하고 그것을 현실로 꺼내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모든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여기저기 찔러보기 바쁘다. 하지만 분주함에 비해 그의 최근 성적은 딱히 좋지 않아 보인다.
“이런 걸 만든다 해놓고, 이런 걸 보내셨어요.”
한창 편집 중인 신작을 틀어놓고 열린 회의. (마크의 표현을 빌려) 양복쟁이들은 입을 열자마자 혹평을 쏟아낸다. 그의 신작은 무려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재밌다기보단 심오한 영화에 가까운 듯하다.
영화를 향해 쏟아지는 혹평에 맞서던 마크는 옆에 앉아있는 동료 막스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막스는 냉정하게 양복쟁이들의 편을 든다. 몇 년을 같이 일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료라고 생각했던 막스에게 배신을 당하자 마크는 편집용 컴퓨터와 영화 파일들을 싸 들고 한적한 시골에 있는 숙모 드니즈 집으로 도망친다.
나를 방해하는 양복쟁이들이 없는 곳, 어릴 적 추억과 따뜻한 숙모 드니즈가 있는 곳. 마크는 이곳이라면 자신의 상상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마크의 머릿속엔 끊임없이 여러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영화 중간에 집어넣을만한 애니메이션, 나뭇잎으로 만든 망원경, 그다음으로 만들만한 신박한 구성의 영화, 오래된 집을 새로운 베이스캠프로 꾸미는 방법까지. 그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쉴 틈 없이 무언가를 한다.
그런데 양복쟁이들이 “희뿌옇고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평가했던 그의 영화처럼 마크의 행동들 또한 뭘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결과물들만 내놓는다. 주변인들은 마크가 현재 작업 중인 영화에 집중하기를, 누가 봐도 가망이 없는 곳에 투자하기보단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길 바라지만 마크는 그들이 자신의 소중한 상상력을 틀어막는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깊이 혼자만의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제목만 지어둔 솔루션북
해결책은 솔루션북에 있지 않다.마크는 온 세상이 나를 방해하고 주변 사람들은 다 나를 이용하려 든다고 느낀다. 우울과 불신에 빠져있던 그때, 마크의 머릿속에 갑자기 제목만 지어놓고 방치해뒀던 ‘솔루션북’이 떠오른다. 그는 빠르게 책상에 앉아 솔루션북을 펼쳐 머릿속에서 나오는 해결책들을 하나씩 적고 그대로 실행해간다.
하지만 몸으로 OST 작곡하기 같은 ‘이게 되네?’싶은 운수 좋은 성공을 제외하고 나면 솔루션북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진 못한다. 영화가 그 자리에 멈춰있는 동안 마크는 동료들에게 실수를 반복하고, 사과를 위한 사과를 하고 또 그 사과를 하는데 실패한다. 그 결과 마크는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땅굴에 처박히고 만다.
마크는 자신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영화를 만들고 자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할 걸작 솔루션북을 쓸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그건 다소 자만한 생각이었다. 마크는 혼자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극 중엔 마크가 자신의 책상에서 테이프가 보이지 않자 크게 소리 지르며 테이프를 찾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내레이션은 “소리를 지르면 엄마가 장난감을 찾아줬는데 그 습관이 남아있다.”라고 말한다.
마크는 큰 목소리를 가진 독불장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일단 큰소리부터 내고 보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마크는 무언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동료들을 향해 막말을 하거나 성질을 부리는데 주변인들은 패악질에 가까운 행동을 받아주며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준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건 마크가 쓴 마크의 솔루션북이 아닌 마크와 함께해 준 사람들이었다. 가브리엘은 영화를 들고 튈 시간을 벌겠다며 주차장 입구에 벌러덩 드러눕고 실비아는 새벽 두시에 자다 일어나 마크를 위해 노트북을 켜고 샤를로트는 마크의 서툰 사과를 받아주고 그의 요구에 따라 성실히 편집을 이어나간다. 드니즈는 마크가 무엇이 되든 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마크의 거친 도움 요청에 응답하며 마크와 영화를 함께 지켜준다. 동료들과 마크의 관계는 마치 끈끈한 모자(母子) 지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모두 힘을 합쳐 영화를 완성하고 마침내 시사회가 열리던 밤. 마크는 “영화 안 배우, 극장에 와주신 동료들, 드니즈에게 감사를 전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마크가 극중 인물들에게, 한때 마크처럼 행동했던 미셸 공드리가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전하는 감사인사이기도 하다.
마크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엄한 곳을 보며 소리를 지르던 흑역사, 자신의 영화를 보지 못하는 마크처럼 내 책임감을 외면했던 흑역사가 있다.
그래서 감동과 감사,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위한 노력 같은 것들은 뒤로 미뤄두고 이 좁고 복잡한 땅굴 속을 헤매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생각은 딱 이 두 가지다. “마크가 밉지만 불쌍하다.”, “다시는 마크처럼 행동하지 말아야지.”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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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오랜기간 사랑받아온 애니메이션 <쿵푸팬더>가 8년만의 신작 <쿵푸팬더4>로 돌아왔습니다.
<파묘>는 장기흥행을 멈추고 2위로 내려왔는데요. 이번주 박스오피스 함께해요[국내박스오피스]
<쿵푸팬더4>는 지난 주말 40만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영화는 3편 이후 8년 만에 나온 신작으로, 용의 전사로 거듭나 포가 스승 마스터 시푸의 명에 따라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 나서면서 겪는 모험을 그렸습니다. <파묘>는 12만여 명을 동원하며 2위, 일본 멜로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5만여 명을 모아 3위에 올랐습니다.
[북미박스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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