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112025-03-19 16:14:11
유쾌, 상쾌, 통쾌 모두를 느끼다
<언젠틀 오퍼레이션> 후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3월 19일 바로 오늘 개봉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당시 치명적이었던 독일 잠수함 U보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영국에서 탄생한 비밀 특수 부대의 작전 과정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담고 있다.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관람한 후 크게 세 가지 매력 포인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3월 19일에 극장에서 개봉된 <언젠틀 오퍼레이션>에서 주목해야 하는 세 가지 포인트에 대해 알아보자.
화려한 경력의 제작진과 출연진
영화를 보기 전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포인트는 바로 화려한 경력의 제작진과 출연진이다. 영화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셜록홈즈> 시리즈와 <젠틀맨> 그리고 천만 관객을 이끈 <알라딘>의 감독인 ‘가이 리치’가 극본과 감독을 맡았다. 제작에는 <탑건>, <아마겟돈>, <블랙 호크 다운> 등 이미 유명한 작품을 다수 제작한 ‘제리 브룩하이머’ 가 참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 또한 제작진과 마찬가지로 이미 다수의 작품을 통해 실력이 증명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가장 먼저 <슈퍼맨>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헨리 카빌’은 이번 영화에서 주연인 ‘거스 마치 필립스’ 역을 맡아 무자비함과 유머 그리고 리더십을 겸비한 군인을 연기했다. ‘헨리 카빌’ 외에도 넷플릭스 시리즈인 <삼체>에서 '오기 살라자르' 역을 맡은 '에이사 곤살레스'가 독일군 장교를 유혹하는 역할을 맡아 독일군 장교와의 아슬아슬한 텐션을 보여줘 영화의 흥미진진함을 돋보이게 했다. 또한 <듄>에서 자미스 역을 맡은 뱁스 올루산모쿤까지 부대원으로 등장하는 등 이미 눈에 익숙한 배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2016년에 영국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제2차 세계대전 영국 총리 처칠의 지도하에 시행된 ‘우체국장 작전’을 그린 영화로 실화 기반 제작 영화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이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으며 긴장감 있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 부대원들이 무사히 임무를 완성할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소 내용이 뻔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 전개 중 드러나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의 등장 특히 중간에 계획했던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부대원들이 성공시킬지를 보는 과정은 관람객으로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게 한다.
어두운 배경과 상반되는 통쾌함과 유쾌함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굉장히 코믹한 영화이다. 영화는 ‘거스 마치 필립스’의 부대원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독일군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독일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부대원들은 결국 독일군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그 순간 부대원들은 순식간에 모든 독일군을 무자비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처리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독일군의 큰 배를 폭파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작전을 완수하러 떠난다. 길지 않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이후의 영화 흐름을 모두 설명해 준다고 봐도 된다. 독일군을 절도 있고 잔인하게 처리하는 부대원들의 모습과 배 한 척이 폭파되는 화려한 액션, 독일군을 상대하면서 나오는 코미디스러운 장면과 동시에 느껴지는 긴장감이 오프닝 시퀀스에 모두 담겨 있다. 특히 부대원들의 화려한 액션과 함께 플레이되는 음악은 장면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드럼 소리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즐긴다면 더 긴장감 있고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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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트 클럽> - ‘세계의 끝에서 끈덕지게 주먹을 뻗다’
파이트 클럽 (Fight Club)
개봉일 : 1999.11.13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미트 로프, 자레드 레토
‘세계의 끝에서 끈덕지게 주먹을 뻗다’
1999년, 새로운 숫자 2로 시작되는 2000년이 도래하기 직전, 세기말에 발표된 영화 <파이트 클럽>. ‘반항’과 ‘주먹’이 하나의 멋으로 통하던 그 시절의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영화엔 세기말 감성과 그 시절의 멋,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천년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실제로 2000년을 앞둔 시기에 ‘2000년이 오면 지구가 멸망할 거다’라는 식의 괴담이 떠돌았다고도 하니.. 새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고 산업은 점점 빠르고 거대하게 발전한다. 우후죽순 생겨난 공장들은 정해진 틀에 찍어낸 물건들을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공급했고, 그것은 새로운 문화가 되어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파이트 클럽>은 이런 획일화된 사회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끈덕지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영화다.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물건들과 똑같은 구조로 지어지는 아파트.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빌딩 숲 안에서 똑같은 컴퓨터를 바라보며 주어진 일을 해내는 하루.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하루다. 자동차 리잭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잭’은 나름 괜찮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는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번듯한 아파트를 샀고, 고급 가구들을 사 모으며 자신의 집을 채워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잭은 언제부턴가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 특별할 것 없는, 부드럽다 못해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하루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잭의 앞에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야생동물 같은 매력을 가진 ‘테일러 더든’이 나타난다. 누군가와 싸우기보단 피하기를 선택하던 잭과는 상극인 마음가짐을 가진 남자. 피하기보단 주먹 한 번을 휘둘러봐야 나를 알게 된다고 말하는 남자. 잭은 테일러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주먹다짐을 하며 엄청난 해방감을 느낀다. 사회에선 금기 또는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통해 느끼는 쾌감. 그것은 한 남자의 일상을 확실하게 뒤엎어버린다.
정해진 사회 규칙에 반항하고 싶은 날. 그런 날을 한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는가. 큰 건 아니더라도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오르기라든가.. 정해진 출근시간이 아닌 더 여유로운 시간에 유유히 출근하기라든가! 가끔 세상에 반항하고 싶어질 때, 중2병을 겪던 그때처럼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파이트 클럽>을 추천한다. 리즈시절의 빵오빠 비주얼을 감상하며 괜히 나도 그처럼 쿨하고 야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보는 것도 나름 좋은 감상법이 될지도 모른다.
파이트 클럽 시놉시스
비싼 가구들로 집 안을 채우지만 삶에 강한 공허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잭 심사관 ‘잭’.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거친 남자 ‘테일러 더든’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테일러 더든의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잭. 두 사람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파이트 클럽’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질되고, 잭과 테일러 더든 사이의 갈등도 점차 깊어져 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두 복사본의 복사본의 복사본 같다.”
똑같은 외관과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 똑같이 생긴 티비속에서 흘러나오는 똑같이 생긴 보급형 가구에 대한 광고. 잭은 가구 광고를 보고 있는 자신을 “이케아 제품으로 보금자리를 꾸미는 노예 대열에 합류했다.”고 표현한다. 똑같이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정해진 표준에 맞추기 위해 일을 하고, 집을 사고 집을 꾸민다. 하지만 잭은 공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공허함 뒤에는 괴로운 불면증과 무기력함이 뒤따른다.
잭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병으로 인해 진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위로 모임에 참석한다. 잘빠진 가구가 아닌 커다란 사람의 품에 안겨 눈물을 토해내는 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위로에 중독된 잭은 여러 모임을 전전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거짓말쟁이 말라 싱어를 만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고, 죽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 외치며 도로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이상한 여자. 만약 그녀를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대에 만났다면 위로 모임을 나누는 사이가 아닌 아름다운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하고 잠시 생각해보지만, 눈앞에 서 있는 까만 머리의 여자를 다시 보니 그건 절대 아닌 것 같다. 말라 싱어는 강하게 잭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말라 싱어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잭이 테일러 더든을 만난 건 높은 하늘 위였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잭의 옆인 비상구 좌석에 앉아 안전카드를 읽고 있는 남자는 비상구 좌석 승객이 맡게 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표정을 구긴다. 뒤이어 테일러는 남들은 모두 따르겠다고 말하는 안전 수칙이 알고 보면 위험을 순응하게 만드는 규칙이라며 이상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는 것들을 다시 들춰내 의심하는 사람이라니. 잭은 그런 테일러를 매우 흥미롭게 바라본다. 비행기에서 잠시 만나는 일회용 친구치고는 꽤나 흥미로운 남자였다.
“소유물에 지배당하지 말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잭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소중한 그의 아파트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홀린 듯 테일러에게 전화를 건다. 테일러는 흔쾌히 잭과 술 한 잔을 하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도 된다고 말한다. 그 후 잭은 테일러를 따라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일탈을 하나씩 경험해나간다. 사회적 규범, 정상적인 범주, 남들과 같은 삶을 의미하는 잭의 아파트가 불에 타던 날, 잭은 테일러와 함께 틀을 벗어나게 된다.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와 고급 가구들은 소유물이고, 소유물은 사람을 지배한다고. 그는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영사기 속 릴 테이프를 가만두지 못했고, 정해진 코스대로 흘러가는 고급 호텔의 음식에 테러를 저지른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수에 의해 기본이라 정해진 것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따르지 않는 인물이다.
“싸우고 나선 모든 것의 소리가 작아지고, 모든걸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쾌감이 사람의 원초적 본능이란 것, 무의식중에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파이트 클럽’은 싸우면서 쾌감을 느끼고, 사회에서 규제한 금기를 어기며 색다른 클럽활동으로 추앙받는다. 잭과 테일러는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안정적인 것이 아닌 쾌감과 특별함이란 사실을 모아 ‘파이트 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된다.파이트 클럽의 위치는 식당 밑 지하. 활동 시간은 손님들이 모두 나간 후 늦은 시간이다. 다른 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땅밑에서 뒤늦게 열리는 파이트 클럽은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자 나의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테일러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잭의 손에 흉터를 남기며 “모든 걸 잃었을 때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잭은 테일러가 남긴 상처를 통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된다.
잭은 지원자들을 받아 군대를 양성하고 대혼돈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테일러와 잭이 동일 인물이란 것이 밝혀지기 전엔 ‘(상상 속)테일러의 군대’라고 표현되지만, 애초에 잭(진짜 테일러)이 소집한 군대다.) 잭은 지원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테러 계획을 하달하며 도시를 휘저어 놓다가 고환암 환자 모임에서 만난 짝꿍 밥을 잃고 충격을 받는다. 큰 덩치로 잭을 폭 감싸 안아주던 눈물 동지의 죽음은 테일러를 만나기 전에 존재했던 본성을 불러온다. 잭은 뒤늦게 경찰서에 계획을 자수하러 가지만, 대혼돈 프로젝트 팀원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자신이 테일러 더든이라는 혼란함만 안은 채 경찰서를 빠져나온다.
“우린 같은 사람이니까.”
잭과 테일러는 같은 사람이다. 테일러는 삶을 바꾸고 싶어 하던 잭이 찾아낸 탈출구였고,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순간 영화의 릴이 교체되듯 한순간에 대혼돈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바뀌어버린다. 집에 불을 지른 것도, 말라와 사랑을 나눈 것도, 군대를 소집한 것도, 파이트 클럽을 만든 것도 모두 잭, 진짜 테일러 더든이었다. 영화 초반엔 잭이 테일러와 처음으로 주먹질을 하며 아드레날린을 느낀 것으로 표현되지만, 그것 또한 잭이 홀로 벌인 싸움이었다. 잭이 지부장의 사무실에 들어가 지부장에게 폭력을 당한 것처럼 혼자 싸움을 연출해내던 장면은 이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눈뜨고 있어.”
잭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테일러의 모습이 환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진짜 테일러는 자신이라는 것도. 잭은 테일러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자신에게 총을 발사한다. 건물은 계획대로 폭파되고, 잭은 말라와 손을 잡는다. 잭은 자신이 누군지, 어떠한 욕망으로 가상의 테일러 더든을 만들어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정해진 사회규범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진짜 테일러 더든(잭)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거친 테일러 더든을 만들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가상의 테일러 더든이 존재하고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는 처음엔 테일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그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테일러 더든’이라는 이름이 전설처럼 떠돌기 시작하자 “나도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인데..”라며 자신도 절반쯤의 공이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것은 더 이상 잭(진짜 테일러)이 가상의 테일러 더든에 기대는 것이 아닌 본체 자체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잭은 대혼돈 프로젝트의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 테일러에게 섭섭함을 나타내고, 이내 테일러가 집에서 사라진다. 더 이상 가상의 테일러 더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잭의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잭, 아니 진짜 테일러 더든은 자신이 가진 자아 중 한 가지인 ‘평범한 회사원 테일러 더든’의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현실의 권태가 정점을 찍은 순간 숨겨놔야만 했던 자아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가 될 테일러 더든’을 불러온다. 왜 이런 모습을 숨겨야 했냐고 묻는다면, 현 사회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고급스러운 물건을 사며 행복을 느껴야 하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다수가 정한 평범함에 물들어야만 했던 남자의 공허함이 끌어낸 또 다른 자아는 자신의 고통을 명확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에 잠깐의 혼란이 찾아온다 해서 견고하게 조직된 사회가 흔들릴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완전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었다면 테일러의 ‘대혼돈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라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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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의 비교 분석
필자는 과거,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를 본 적이 있었다. <택시 드라이버> 시청 당시, 웰메이드 영화임은 분명했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있었는데 그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채 지나 보냈었다. <수색자>를 보았을 때도 약간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하였지만 <택시 드라이버>만큼의 불쾌감은 아니었다. 당시엔 두 영화의 관련성을 알지 못하였으나 수업을 통하여 두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의 비등함에 흥미를 갖게 되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 영화를 선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처음 <택시 드라이버>를 보았을 때의 불쾌함의 원인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56년 존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와 1976년 폴 슈레이더가 각본하고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을 맡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두 영화에서 같은 주제를 다른 장르를 통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내러티브 구조를 중심으로 비교하고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과 영화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본 후에 영화 속의 인물과 환경, 영화적 스타일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할리우드 시대에 서부극의 시작이자 기존 서부극의 컨벤션을 확립했던 존포드는 1956년, 기존의 30, 40년대 서부극과는 다른 수정주의 서부극을 만들었다. 분위기는 달라졌는데 이전과 같은 스튜디오에서의 고전 영화들이 더 이상은 통용되지 않게 된 50년대, 존 포드 또한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 성찰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역사관, 사고방식에 변화가 있었고 수정주의 서부극의 시작이자 <수색자>를 감독이자 작가로서 개인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기존 서부극의 평면적인 인물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50년대의 관객의 변화 또한 <수색자> 탄생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선한 백인과 악한 인디언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관객을 백인의 입장에 위치시키던 할리우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전통방식을 무너뜨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봉 당시보다도 1970년대 이후에 걸작으로 재평가받았다.
누벨바그, 뉴웨이브의 영향이 할리우드 쇠퇴기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작가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서 완벽하게 영화적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부활하면서 누벨바그 영향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찍는 개인적인 영화들이 많아지고 이는 영화 체제 변화에 변화를 줌으로써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재해석하는 장르적 만개가 일어난다. 고전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 취급을 받던 장르들을 누벨바그 감독들이 재해석하면서 자기 영화를 불러오게 된다. 이를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적용시키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알렌과 같은 뉴할리우드 감독들이 누벨바그 시대 감독들이 재해석한 고전 할리우드를 또다시 패러디하고 오마주 해내는 와중에 마틴 스콜세지는 존포드의 <수색자> 구조를 가지고 필름누아르식으로 변형한다.
주제 (내러티브 구조 분석)
1868년 미국 텍사스,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돌던 이든 에드워즈가 어느 날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동생 아론과 결혼해 버린 마사와 그의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내 인디언(코만치 족)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가족들이 살해당하고 조카 데비는 인디언 추장 스카에게 납치된다. 이에 이든은 아론이 양아들로 키우던 인디언 혼혈남아 마틴 폴리와 함께 데비를 찾으러 떠난다. 광적인 열정으로 오랜 수색 작업 끝에 데비를 찾아내지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데비는 추장 스카의 아내가 되어 반 인디언의 상태였다. 이에 이든은 데비를 구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죽일 생각까지 하지만 마지막엔 생각을 바꿔 데비를 구출한 뒤 마을로 데리고 돌아오고 그는 다시 마을을 떠난다.
베트남전에서 생사의 극한 경험을 하고 뉴욕으로 온 트레비스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택시운전사로 취직하여 밤새워 근무를 하지만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근무가 끝난 아침엔 극장으로 가 포르노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트래비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던 중, 공화당 선거운동캠프에서 일하는 베시에게서 본인을 구원해 줄 천사의 모습을 느끼고 다가가지만 첫 데이트에서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면서 둘의 관계는 깨져버린다. 그런 상태에서 트레비스는 우연히 13살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를 만나게 되고 아이리스를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정신이상자 수준의 망상에 빠진 상태로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으로 체력단련을 하고 총까지 구입하지만 이 또한 실패해 버린다. 그 길로 아이리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이리스를 구하고 포주들을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하려 했으나 경찰에 체포되고 이는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그는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고 그는 다시 택시 운전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 패배 등의 사건을 통해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던 7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이든이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남군 장교로서 절망감과 외로움에 사무친 인물이라면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스는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절망감과 외로움에 빠져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두 작품의 서사적 구조를 보면 ‘사회의 쓰레기 제거'로 할리우드식 영웅전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색자> 같은 경우는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질서에서 코만치로 인해 무질서가 되고 회귀하여 다시 질서를 되찾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의 질서이다. 이를 <수색자>는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택시 드라이버>는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50년대 이후, 작가주의적 성향이 더욱 깊어지면서 서브텍스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평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전사, 다른 인물들의 스토리 등 심층적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 <수색자>에서 이든과 마사의 관계에서 이든의 채울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이 이든의 분노의 원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재된 분노가 이든이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도는 이유를 더 깊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국가(남북전쟁과 베트남전)란 이름으로 불려 갔다가 돌아왔을 때,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복귀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자의 외로움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인물과 환경 (인물 분석)
<수색자>의 이든은 기존 서부극, 과거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문제를 가진 인물로, 극 중에서 데비에 대한 태도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깨지는 것을 발견한다. <택시드라이버>의 트레비스 또한 서부극의 총잡이 같은 인물이지만 실은 부정적인 인물로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 시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영웅주의가 팽배하였지만 60~70년대로 넘어가면서 영웅주의를 깨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수색자>의 이든 또한 정의와 명예에 목숨을 걸었던 기존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떠난다(극 중에서 여자는 초반에만 등장하지만 이후에도 그러한 의미들이 등장한다).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 돈으로 거래하는 관계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트레비스 또한 망상과 현실의 구분에서 혼돈하다 결국 극한에 이르러 폭발하는 인물로 그 폭발의 결정적 계기는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두 여자로부터 받은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베시에게 거절당한 뒤, 구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웅이 되고자 한다. 트레비스가 아이리스를 구해주려 하지만 거절하는 아이리스는 이미 인디언이 되어버려 자신을 구하러 온 이든을 경계하는 데비의 모습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수색자>에서 마틴에 대한 이든의 태도에서도 이든의 불완전함이 드러난다. 마틴이 자라면서 피부색이 어두워지자 ‘널 몰라보았다’며 이후 마틴에 대한 태도가 차가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구하러 간 데비가 인디언의 여자가 되자 굉장한 적대심을 드러냄으로 이든의 인종차별적인 행동들을 볼 수 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특징이기도 한 특징으로 트레비스를 굉장히 마초적인 남성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이 더러워진 도시의 구원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살인자이자 영웅으로 그려낸다. 이런 구조를 통하여 <수색자>는 영웅처럼 보이지만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로, 인물 자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택시 드라이버>는 트레비스와 뉴욕의 상반된 거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영화적 스타일 (영화의 형식)
각 영화들이 어떤 영화적 스타일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지, 메타포와 촬영 기법 등을 통해 알아보겠다.
캄캄한 집 안에서 마사를 따라 문 밖을 나가 이든을 보여주는 도입부와 데비를 데리고 돌아온 이든을 반기는 사람들이 데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갈 때 카메라도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 황야에 홀로 남은 이든을 찍는 마지막 장면은 <수색자>의 형식상의 특징 중 그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한 형태이다. 여기서의 ‘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문’은 가정과 황야, 문명과 야생 등 문 안과 문 밖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선과 악을 구별해 주는 이항대립 구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까지의 서부극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경계이기도 하다. <수색자>의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서는 ‘문 안’이 가정이지만 문명화된 사회를, 밖은 야생, 즉 무질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줄곧 문 안과 밖을 항상 구분시키도록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데비를 발견하고 끌어안으며(사진 1, 사진 2) ‘집으로 가자’는 장면도 동굴의 문 밖은 야생을 의미하며 데비와 이든은 문명으로 문 안에서 대화를 한다. 이와 같이 야생과 문명사회를 구분시킴으로써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욕의 낮과 밤의 상반된 거리를 이중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 조국을 위해 싸우고 돌아왔으나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며 그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야간 택시 기사로 근무를 하며 밤거리만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수색자>의 도입부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군복을 입고 찾아왔으나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고향으로 홀로 찾아온 이든과 대응되기도 한다.
트레비스의 군복 또한 의미가 있는데, (사진 3)의 일자리를 구하러 간 트레비스는 군복을 입고 있고, 후보를 암살하러 가는 장면(사진 4)에서도 군복을 입고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다. <수색자>의 직접적인 변형이기도 하며 트레비스가 본인이 베트남전 군인이었음을, 인디언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던 폭력성을 그래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군복은 그가 그가 베트남전에서의 후유증을 더 잘 보여주고 있으며 (사진 3)은 뉴아메리카시네마의 특징 중 하나인 이중프레임으로 구성된 프레임이기도 하다. 체력 단련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그의 등 뒤의 큰 상처(사진 5)는 전쟁에서 얻은 것으로 짐작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포르노 극장(사진 6)에서의 첫 영화는 교육받지 못하고 홀로 살며 아무런 배경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여가 수단으로, 일상에 복귀가 어려움을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사진 7)은 첫 데이트에 베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간 뒤 베시에게 성토당하는 장면.
<택시 드라이버>가 야생에서 들어온 남자를 배척해 버리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뉴욕이라는 도시는 미국사회 특수성을 대변하는 공간이자 서구 현대문명의 일면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문화이며 경제의 중심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뉴욕의 거리는 그런 뉴욕의 거리와는 다르다. 이러한 뉴욕의 거리의 상반됨을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베시가 근무하는 ‘공화당’ 캠프이다. (사진 8) 우연히 대선 후보와 비서를 태우는데, ‘공화당’은 트레비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천사가 일하는 곳이고 정치 행보상 미국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상은 지저분한 썩어빠진 이야기들이었다. 이러한 사건과 총은 트레비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트레비스는 낮-꿈꿔왔던 천사 같은 외모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는 여자-과 밤-13 살의 창녀, 포주화된 뉴욕의 뒷골목-을 떠돌며 미국의 이중성을 본 것이다.
(사진 9) 자신의 방에서 대통령 후보 저격을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는 트레비스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고 정작 암살에는 실패하고 도망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뉴욕의 택시 기사 트레비스는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충분하게 보여진다. 뉴욕의 밤거리를 보며 트레비스가 내뱉는 독백(사진 10)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구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사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어둡고 쓰레기 같은 뉴욕을 보면서 ‘이 사람이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나’에 대한 의심, 생각을 하게 만들고 소시민이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얘기로 이 영화를 완성시켜 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는 ‘인간쓰레기’인 포주들을 죽이고 자신의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누며(사진 11)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에선 천사 같은 순진성과 악마 같은 잔인성이 공존하며, 여기까지 트레비스가 보여주었던 망상과 행동은 위기에 빠진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의 징후이자 절망적인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억눌리고 비틀린 한 외로운 인간의 내면적 광기를 탐색하면서, 베트남 전쟁 이후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집단적인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담고 있는 두 영화를 통해 단순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만 느껴져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것, 전쟁 이후 국가를 위해 자신은 내어 바친 개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로 돌아온 인물들의 외로움이 이제야 조금은 감응되는 듯하다.
<택시 드라이버>는 고독감과 좌절감으로 망상에 빠져든 한 퇴역한 군인의 모습을 통해 70년 미국 사회가 앓고 있던 베트남 전쟁 후유증을 탁월하게 그려낸 사회 심리 드라마이지만 기존의 영웅물에만 적응하고 있었던 나에게 기존 영웅물들과는 다른,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한 인물설정으로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필름 누아르의 표본의 영화임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택시 드라이버>가 서부극에서 필름 누아르가 되기 전에 이미 <수색자>는 서부극의 형태를 한 필름 누아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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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 | 바둑판 위를 수놓은 사제 대결의 낭만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 바둑 대회에서 국내 바둑 기사 최초로 우승을 거두며 전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은 '조훈현'(이병헌). 그는 한 대회에서 우연히 바둑 신동 '이창호'(유아인)를 발견하고, 직접 대국을 하며 천재성을 확인한 후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인다. 한 지붕 아래에서 먹고 자며 제자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조훈현. 특히 그는 이창호에게 바둑의 정석, 강인한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이 흘러 프로 바둑 기사가 이창호. 사뭇 다른 바둑관으로 인해 스승과 갈등을 빚었던 그는 한 대회 결승에서 처음 열린 첫 사제 대결에서 충격적인 승리를 거둔다. 첫 대결 이후로도 스승과 제자는 결승에서 연달아 맞대결을 펼치지만, 스승은 매번 패배의 쓴 맛을 본다. 이에 조훈현은 이창호를 제자가 아닌 동료이자 호적수로 대하며 그를 꺾기 위해 사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스크린 위에서 되살아난 바둑의 미학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다." 8년 전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펼친 후 이세돌 9단이 남긴 말이다. 뛰어난 연산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패했지만, 인간이 바둑을 통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예술성은 결코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그의 말을 뛰어넘었다. 프로 기사들의 실력과 성적은 누가 가장 AI와 비슷하게 바둑을 두느냐에 따라 갈렸다. 대회에서 AI를 커닝하다가 적발당하는 사례가 나올 만큼, AI는 바둑의 정답이자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이세돌 9단 스스로도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로는 마치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 같아 오히려 예술성이 퇴색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이제는 바둑판 위에서 의미를 잃은 듯한 바둑의 예술성. 이 바둑의 아름다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되살아났다. 스크린 위에서, 영화 <승부>를 통해서. 주연배우 유아인의 마약 이슈로 인해 공개일자와 플랫폼을 수차례 바꾼 끝에 빛을 본 <승부>는 40여 년 전 조훈현과 이창호, 스승과 제자가 처음 만난 순간으로 되돌아가 바래져 가던 바둑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데 성공한다.
성의와 무심의 무협
<승부>의 전반부는 정석적이다. 제자가 청출어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바둑을 무예로 바꾸면 마치 무협물 속 사제 관계를 보는 듯하다. 이창호는 어릴 적 기대에 비해 성장이 늦은 것 같아 고뇌한다. 조훈현의 전투적인 대국 방식이 자신과 안 맞다 보니 스승과도 갈등을 빚는다. 하지만 스승을 이길 궁리를 하라는 '남기철'(조우진)의 충고를 들은 후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스승과의 첫 맞대결에서 바로 승리를 거머쥔다.
바로 이 지점부터 <승부>는 예상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협물에서는 흔히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으면 스승이 정신적 지주로 물러선다. <쿵푸팬더>만 보더라도 포가 용의 전사가 되자 시푸는 그의 정신적 스승으로 남는다. <승부>는 다르다. 제자의 승리가 스승과 제자에게 남긴 여파를 각자의 시점에서 쫓는다. 청출어람의 전율과 쾌감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새롭게 정립되는 사제 관계의 역학을 추적하는 셈이다.
이창호는 괴로워한다. 스승을 잡아먹은 제자라는 비아냥과 부정적인 시선에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아버지 같은 스승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우직하게 역경을 타개한다. 바둑은 전투고, 대국을 하는 순간만큼은 상대가 누구든 이기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대로.'성의(誠意)’. "진심을 다한다"라는 의미의 두 글자 속에 제자의 아픔과 성장이 축약된다.
제자에게 패배한 조훈현의 마음은 제자 못지않게, 그보다 더 복잡하다. 스승으로서의 자부심과 열등감이 뒤엉킨다. 계속되는 패배의 고통은 자존심에 상처를 남기고, 제자에게 계속 질 수 없다는 오기도 피어난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에게 승리하지 못한다.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청출어람한 제자를 보면서 맛본 모든 번뇌와 잡념을 떨쳐 낸 후에야 그는 비로소 제자를, 16번째 대결만에 꺾는다.
다름의 미학
이처럼 스승과 제자가 '무심'과 '성의'의 경지에 다다르며 승자와 패자로, 더 나아가 호적수이자 동료로 변해가는 과정은 바둑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그 예술성은 두 측면이 있다. 우선 <승부>는 두 기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의 대국을 완성하는 다름의 미학을 보여준다. "바둑이 두 명이 함께 수를 고민하고 두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 배웠는데"라는 이세돌 9단의 말마따나.
스승은 갓 프로가 된 제자가 못마땅하다. 전투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조훈현의 관점에서 승리 확률이 가장 높은 확실한 수를 찾아내는 이창호의 방식은 정석적이지 않고, 오만해 보인다. 하지만 간신히 1집 반 승을 거둔 제자의 기보를 유심히 연구한 뒤 그는 자기 과오를 인정한다. 제자의 바둑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라면서. 자기가 꾸겨버린 기보를 다림질로 다시 펴서 선물하는 장면의 함의가 곧 다름의 미학인 셈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스승은 관객에게도 뜻깊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SNS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외면할수록 사회는 다름을 존중하거나, 공통의 토대 위에서 차이점을 토론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흑백의 차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 차이를 조화시켜 나가는 사제지간의 박진감 넘치는 대국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는 교훈으로서 다가온다.
경쟁의 미덕
다름의 미학 다음으로 <승부>는 경쟁의 미덕을 선보인다. 다른 스타일과 신념을 인정하더라도, 자기 방식이 더 뛰어나고 아름답다는 확신과 경쟁심 없이는 질 높은 대국,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첫 패배를 당한 뒤 자기 경쟁력을 스스로 의심하고,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기권할 정도로 방황한다. 그동안 사제지간의 경기 내용은 대중들에게도 관심받지 못한다. 어차피 이창호가 압승을 거둘 테니까.
반면에 조훈현이 이창호를 꺾기 위해 사력을 다하자 그들의 대국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팽팽하게 펼쳐진다. 각종 예선전 등 여러 경기에 출전하면서 특유의 스타일을 재정립한 조훈현은 과거보다 더 과감하게 공격을 펼친다. 차분하기로 유명한 이창호도 당황한 기색을 못 숨길 정도로. 다름을 인정하되, 자존심을 걸고 펼치는 처절한 경쟁 덕분에 그들의 대국은 긴 시간 끝에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진다.
경쟁의 미덕은 한국판 <퀸스 갬빗>을 보는 것처럼 전율과 쾌감이 느껴지는 대국 장면 덕분에 더 직관적이다. 박진감 넘치는 연출은 바둑을 몰라도 대국의 흐름과 승부처를 바로바로 알아챌 수 있게 한다. 승부처에서 이창호가 바둑판 위로 수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장면, 조훈현이나 이창호가 승부수를 둘 때 바둑판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는 구도로 찍은 쇼트가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승부>는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에게도 주목한다. 대국을 포기하려는 찰나에 시계를 보더니 어릴 적 아버지의 시계방으로 돌아가서 평정심을 되찾는 이창호의 모습도, 제자의 기세에 밀린 조훈현이 재떨이를 못 찾거나 담뱃재가 섞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그 덕분에 관객은 스승과 제자의 숨결과 땀, 열기까지 느껴지는 그 치열한 승부의 세계 속에 빠져들 수 있다.
바둑의 낭만
이렇게 조화를 이룬 다름의 미학과 경쟁의 미덕은 더 깊은 층위의 주제로 이어진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경쟁하는 스승과 제자는 그 끝에서 결국 각자의 방식이 모두 정답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는 어떤 스타일이나 방식이 옳은 지를 따지는 대신, 얼마나 자신의 방식과 답을 뚝심 있게 믿고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따라서 복수의 정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 메시지는 나날이 더 확실한 정답을 요구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은 AI와 가장 비슷하게 두는 방식이 정답처럼 여겨진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스포츠에서도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자 정답이 통계적으로 굳건해지는 추세다. 스포츠를 벗어나도 다르지 않다. 당장 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성공은 그 의미도, 쟁취할 수 있는 길도 표준화되어 있다.
이런 시대에 각자의 길을 뚝심 있게 걸으며 서로가 생각하는 정답을 인정하면서 치열하고 겨루는 <승부>의 이야기는 그간 간과했던 삶의 미덕과 낭만을 일깨운다. 그렇기에 눈 내리는 한옥에서 펼쳐지는 사제의 대국을 담아낸 마지막 장면에서는 차분한 분위기와는 다른 열정적인 낭만이 느껴진다. 이는 30여 년 전에 이미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잘 알려진 실화가 2025년에도 충분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361개의 교차점 위에서 흑백으로 피어나는 사제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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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의 권력과 폭력성을 직면하다
작품을 수입하여 부제를 붙이거나 새로운 제목을 붙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제목은 작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선택은 작품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척이나 어울리는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를 달고, 한국의 극장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는 어떤 ’분열‘이 벌어지고 있는가? 일차적으로는 ’내전‘으로 인한 분열이다. 한 나라의 국민임에도 갈라선 이들. 이들이 어떤 이념으로 인해 갈라서게 됐는지에 이 영화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한 인물이 기자인 주인공과 동료들을 향해 묻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Which kind of American are you?”. 이 질문을 던진 뒤, 그의 총구는 아시아 출신 미국인들에게 먼저 향한다. 이차적으로는 ‘종군사진기자’들의 분열이다. 주인공인 이들은 내전 상황에서 내면의 분열을 겪으며, 이 작품은 후자에 초점을 둔다.
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사진으로 다뤄내어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인물들로 보인다. 그렇게 이들은 ’Great photo’를 찍기 위해 현장을 누빈다. 내전 상황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이들의 죽음들. 그 순간 카메라를 들이밀어 극적인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총탄이 오가고 피가 솟구치는 순간들이 화면에 연속적으로 보여진다. 전쟁 영화에 어울리지 않게 울려퍼지는 파티에서나 나올법한 음악은 우리의 의식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 현장을 좋은 구도로 포착한 이들은 현장을 떠나며 말한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그러나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이들은 집단 내부에서 동료의 죽음을 맞이하자 온전히 다른 반응을 보인다. 쾌감 속에 익명의 인물들의 죽음을 담아내던 이들은 자신의 동료를 ‘그들’ 정도로 칭하자 그들도 이름을 가졌다며 분노를 표출한다. 게다가 집단의 정신적 지주격인 이의 죽음에는 절망하며 고함을 쏟아낸다. 이 순간, 이들의 음성은 음소거되어 이미지로만 비춰진다. 즉,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 속에 담긴 의미는 단순히 ‘내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열의 시대‘는 이들 내부에서도 진행 중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찾아오고, 총과 카메라는 번갈아가며 보여진다. 그렇게 시선의 권력이 가진 폭력성은 상징적으로 재현된다. ’shoot’은 ‘총을 쏘다’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사진을 촬영하다’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알려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찾아온 클라이막스의 이미지는 예상 가능함에도 충격적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했던 ‘결정적 순간’은 그순간 카메라에 담긴다.
카메라의 곁에 오랜 시간 머물러왔다. 그렇기에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했을 때의 쾌감을 안다. 불행이 만드는 스펙터클은 끔찍하며 아름답다. 그때 나도 이들과 같은 표정을 지었을까. 일찍이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폭력이나 잔혹함이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스펙터클로 뒤덮인 사회에서 우리는 끝없이 폭력에 무뎌진다. 이는 온갖 매체들이 점점 더 폭력적인 이미지를 양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이상 예전 같은 자극으로는 대중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 작품의 특장점은 그러한 스펙터클을 끝없이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 스펙터클을 온힘을 다해 포착하는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여과없이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한 뜻이 있다는 곳으로 나아가지 않고, 사실 우리는 스펙터클을 담아내는데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충분히 교조적인 흐름일 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시선의 권력과 폭력성에 대해 인정하고 직면하는 이 영화가 좋다. 그렇다면 보는 이이자 찍는 이로서 나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이 질문을 남긴 채 이 영화는 우리의 손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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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원초적 본능>, 무릎 사이론 알 수 없는 것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드디어, 갑자기 본 영화. 이런 스릴러인 줄 알았더라면 진작 봤을텐데. 해석의 재미가 쏠쏠하다. 여타 매혹적인 장면과 눈빛이 가득한 영화다. 제목은 원초적 본능이라 본능의 '끝까지 간다' 버전 같아보이지만 사실은 줄 타기를 잘하고 있다. 형사 닉 커랜과 작가 캐서린 트라멜. 그들의 한 마디가 떠나질 않는다. 살인은 담배와 달라. 그만둘 수 있으니까, 라는 그녀의 말과 그의 말. 난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잡아넣을 거야. 캐서린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이 알려주지 않는 걸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면서. 영화가 끝나면 질문을 각자에게 하고 싶다. 닉에게 묻고 싶다. 정말 캐서린이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그녀를 정말 잡아 넣을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캐서린, 살인이 정말 담배와 다른가요? 그만둘 수 있는 건가요?
누가 취조 당하는 걸까? 이 장면으로만 기억되서는 안 될 영화
캐서린 트라멜을 '섹시한 악녀'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녀가 다리 한번 꼬았을 뿐인데 경찰들이 정신을 못차린다. 누군들 안그랬겠나. 아무것도 숨길 것 없다며 침착하게 사람을 당황시키는 말까지. 그렇다. 그녀를 '섹시한 악녀'라 한다면 있을 건 다 있는 말이다. 그녀는 섹시하고, 매력적이고, 악하고, 여자다. 하지만 뉘앙스가 좀 다르다. 그녀는 원한다면 언제든 섹시하기 보단 우아할 수 있고, 악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면 그녀는 똑똑한 살인자라고 말하겠다. 섹시함 역시 그녀의 지능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에이미 던/캐서린 트라멜
영화를 보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가 떠오르는데 좀 다르다. 에이미와의 공통점은 꽤 많다. 사람들의 심리 파악에 능하고, 영문학을 전공했고, 작가라는 점. 어쩌면 에이미가 캐서린을 많이 닮은 후배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마치 세상을 자신이 쓰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다만 차이는 명확하다. 에이미는 살인을 즐기진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 역시 죽음을 주로 다루지 않는다. 자신은 '어메이징 에이미'처럼 늘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원했다. 우아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로 보이더라도, 결국엔 해피엔딩. 몇 명이 알아차리는 것 정도는 상관 없다. 남편은 알고도 자신을 떠날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캐서린은 살인을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해도 들키지 않을까? 가 궁금하다. 담배만큼 즐기지만 필요에 따라 절제하고 있다. 그녀의 모든 책에선 사람이 죽는다. 대체론 여자가 남자를 죽이고, 그 이야기를 위해서 그녀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사람을 유혹하고 죽여야 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지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관능적인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 그걸 위해 돈도 시간도 공들이고 있다. 그녀에겐 즐거움이 중요하다. 사람과 죽음, 욕망 같은 것들. 사람이 이리 저리 게임판에 끌려다니는 게 재밌으니까, 그로 인해 충족할 수 있는 많은 욕망은 감칠맛이 난다. 에이미가 똑똑한 연기자라면, 캐서린은 똑똑한 살인자다.
닉과 캐서린, 베스를 둘러싸고 다양한 7건의 사고 혹은 사건이 나타난다. 배가 고장나 돌아가셨다는 캐서린의 부모님. 자동차로 추격하다 추락사한 캐서린의 연인 록시. 살인의 경우 흉기는 얼음송곳과 총이다. 얼음송곳으로 찔려죽은 세 사람. 캐서린과 베스의 지도교수. 캐서린과 만나던 은퇴한 로커. 닉의 동료 형사 거스. 총을 맞고 죽은 두 사람. 베스의 전남편. 닉과 날을 세우던 죽은 형사 닐슨.
코난을 10년 넘게 봐서 인지 사라지지 않는 찜찜함
일단 경찰에서 수사하던 형사 닐슨 및 거스 살인 사건(아마 은퇴한 로커 살인사건까지도)의 용의자는 베스로 결론내려졌다. 범인이 베스라는 결말은 충격적이긴 하다. 닐의 심리치료사였고 다른 형사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게 너무 완벽하게 다 맞아들어간다는거다. 범죄현장에서 멀지 않은 계단에 고이 모셔진 금발의 가발, 경찰들만 입는 우의와 얼음 송곳. 캐서린을 누명씌우려 했던 그녀의 의도가 이렇게 간단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니.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총과 서랍에 놓인 캐서린에 대한 사진, 살인을 다룬 캐서린의 책. 어째 그렇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증거를 보란듯이 집에 걸어뒀을까. 이건 하나 하나 흩어져있던 증거를 모아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의 희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증거는 베스가 범인이라는 걸 증빙하는 서류같다.
너무 완벽할수록 찜찜하다. 베스가 닐슨과 자신의 전남편은 총으로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스는? 거스는 베스가 죽였는지, 캐서린이 죽였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닉은 캐서린이 이미 탈고해서 인쇄까지 한 미출간 신간 <Shooter>의 결말을 봤다. 책에선 주인공인 형사가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된 동료를 찾으러 간다고까지 대본처럼 쓰여 있었고 이는 거스의 죽음과 일치했다. 물론 책에서 쓰여진대로 이미 그는 송곳으로 난도질 당한 후였지만.
베스(엘리자베스) 가너/캐서린 트라멜
베스와 캐서린 모두 거짓말을 했다. 베스는 전남편의 죽음도, 전남편과의 결혼도 닉에게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당시에 '여자친구'가 있었다는데 모를 일이다. 거스가 죽는 사건현장에서 만나자는 메세지가 있어서 왔다고 했다. 굳이 그녀는 총을 들고 자신을 의심하는 닉 앞에서 주섬주섬 열쇠고리를 꺼내다 총을 맞았다. 총을 가진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데. 캐서린은? 그녀는 책에서 일어난 사건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썼다고 말했다. 배가 고장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책을 썼다고. 하지만 은퇴한 로커 살인사건이나, 형사가 죽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먼저 완성되었고 그 이후에 살인이 벌어졌다. 작가인 내가 이 그대로 하기엔 자신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이 걸 그대로 따라하는 멍청한 짓을 '누가' 한단 말인가?
베스가 생각보다 캐서린과 관련이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끼처럼 맞춰진 퍼즐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캐서린이 사랑에 빠져서 닉에게 한번도 안 하던 고백을 하며 자신을 따라하던 '리사 후버맨'을 말한 것도 이상하다. 베스는 이미 비슷한 얘기를 한참 전에 했고, 캐서린이 이렇게 말했을 거라며 나중엔 그대로 맞추기까지 한다. 캐서린에게 베스는 록시와는 다른 존재다. 록시와 캐서린이 성적으로 탐닉하고 관음하는 사이라면, 둘 사이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이일 수도 있다. 책을 탈고한 그 짧은 시간에 베스가 캐서린의 책을 입수해서 있는 그대로 실현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캐서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베스가 캐서린에게 이용당해 꼭두각시처럼 범죄장소로 오게 되었다 해도, 어차피 캐서린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리는 없다. 사건 당일 그녀가 <shooter>라는 책을 다 썼으니 닉은 더 이상 필요헚다며 매몰차게 이별을 고한 건 왜일까. 거스가 살해되기까지 무대를 세팅했든, 직접 행동에 옮겼든 그의 시선을 벗어나 뭔가를 했을 시간은 충분하다. 자의든 타의든 베스는 캐서린의 책대로 사람이 죽는 멍청한 '짓'을 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닉은 바보같은 형사, 그녀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버린 멍청이로 남아있을까. 그도 곧, 혹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베스만 죽은 것으로 모든 게 끝났을까? 캐서린에 대한 의심은 이렇게 사랑의 힘으로 영영 이겨낼 수 있을까? 닉과 캐서린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외모도 있지만 자신과 같은 류의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살인자. 코카인과 담배를 즐기고 끊을 수 없고 거짓말 탐지기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고, 들키지 않고 수사망을 빠져나와본 사람이다.
캐서린이 너무 무서운 사람이라고 잊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닉 역시 무서운 사람이다. 5년동안 4건이나 민간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경험이 있으니 괜히 별명이 'shooter'가 아니다. 코카인이 사람을 망쳤을 수도 있지만, 코카인을 한다고 사람을 다 죽이는 건 아니다. 사람을 죽게 한 건 그의 욕구였다. 모두가 신나서 베스가 범인이라고 할 때, 닉은 얼빠진 듯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뜻하지 않게 베스를 죽여서 범인을 죽인 의로운 형사가 된 순간에도 그는 그리 기뻐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진짜 친구인 거스를 잃은 슬픔에 잠겨서일 수도 있지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하고. 그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등 뒤로 반짝거리는 얼음 송곳을 몰랐을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면서 그녀를 잡아넣을 방법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아주 위험한 방법이지만 그게 그가 범인을 잡는 방법이니까.
주도권을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겠지
캐서린은 닉에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다 죽는다고 흐느꼈다. 처음엔 부모님, 그리고 지도교수, 소중하진 않지만 은퇴한 로커, 또다른 연인 록시.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자기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를 사랑하면 그 역시 죽을 거라는 말처럼. 혹시나 그녀가 안타까운 운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형사로서의 안테나는 꺼진 셈이다. 사건에서만큼은 우연이란 없다. 적어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 있어선. 아, 그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깨물어주는 대신 죽여버리고 싶어지는 사람이니까. 언제든 그녀는 그를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쓰면 그를 버릴 수도 있다. 언제든 그의 목에 송곳을 박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닐 뿐. 소중한 것들은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게 낫다. 어차피 사람은 죽으니까. 그녀에게 기억되고, 책으로 기억되면 영원히 남을 수 있다.
'당신은 내가 알려주지 않는 건 아무것도 알 수 없을거야'
영화가 소름돋는 건 트레이드 마크인 무릎 사이에서는 알 수 없다. 캐서린이 무릎 사이를 들썩이며 그녀의 매력적인 몸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늘 상위를 차지한 채 남자를 묶고 언제든 얼음송곳을 찔러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섹스신 때문도 아니다. 죽은 이들의 목덜미에 사정 없이 박힌 송곳 때문에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서도 아니다. 결말처럼 그녀가 그의 등 뒤로 얼음송곳을 들었다 놨다해서도 아니다. 소름돋는 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 주변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데 그녀는 들키지 않았다, 들키지 않아서 그녀로 인해 계속 죽게 될 사람들이 생겨난다. 사람은 어차피 죽으니까, 그녀는 글로 범인인 걸 숨기니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신을 거두고 죽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아무리 절제한다 해도 그녀가 살인을 그만둘 것 같아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건 얼음송곳이 아니다. 살아숨쉬는 그녀, 그녀의 살인이라는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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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이 밥 먹여 줘? 네!
케이팝 제너레이션
(TVING, (목) 16:00 공개)
크리에이터: 정형진, 임홍재, 차우진
지난 1월 26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예능 '케이팝 제너레이션'! 보셨나요? 1세대 아이돌 강타부터 4세대 아이돌 엔시티까지 다양한 보이그룹, 걸그룹이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요.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단순히 아이돌을 관찰하는 예능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이자, K-POP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소위 '머글'도 다가가기 쉬운 프로그램이었답니다!
저도 케이팝 음악을 사랑하고 다양한 아이돌을 찾아보며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찐팬(??) 같이 앨범을 사고... 이런 적은 없거든요. 저에게는 생소한 문화지만 저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이상적인 관계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그와 반대로 '탈덕'한 팬의 입장도 나와요
오세연 감독님의 '성덕'이란 영화 아시나요
10대 시절을 바쳤지만 스타에서 범죄자로 추락한 오빠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을찾아 나선 X성덕의
덕심 덕질기를 담은, 2022년 실패 없을 올해의 최애작!
영화 '성덕' 줄거리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던 나의 연예인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팬을 그만두어야 했던 현실 자각 타임(?!)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예로 모 보이그룹의 멤버의 불미스러운 사생활이 터지자 '좋아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영상을 찍은 유튜버 '유덕모' 님의 영상도 있죠 ㅎㅎ 유덕모 님들도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출연하셨어요 ㅋㅋ
또한 케이팝 산업의 다양한 전문가 분들은 물론 실제 일본의 앨범 가게에서도 인터뷰를 따 왔고, LA 에이티즈 생일 카페에도 다녀오셨더라구요! 제작진분들이 정말 케이팝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이 나라 저 나라 다녀오신 흔적이 차고 넘쳐 . . . !! 고로 단순히 즐기기 좋은 예능 프로그램임과 동시에 K-POP 업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보기 좋은 현장감 생생한 다큐 같기도 하다는 점!
시청은 TVING에서 하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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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주 최신 개봉영화(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라라와 크리스마스 요정, 피부를 판 남자, 하우스 오브 스네일스, 엔드리스)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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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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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플레이 <안나> 메인 예고편
"남들이 나를 두려워했으면 좋겠어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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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립 투 아메리카> 메인 예고편
일도 사랑도 마음먹은 대로 안 풀리는 무명 배우 라이언은 유년기를 함께 보낸 사촌 허드슨을 불쑥 찾아간다.
얼마 전 엄마를 잃고 혼자 외롭게 지내던 허드슨은 체리리지에 있는 버드나무에
엄마의 유해를 뿌릴 수 있도록 데려다 달라고 라이언에게 부탁한다.
반쯤 고장 난 자동차를 타고 버드나무를 찾아가던 허드슨과 라이언은
주유소에서 선라이즈라는 유쾌한 여자를 만나 동행하게 된다.
버드나무까지 가는 길에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과거의 사연과 속마음까지 서로에게 털어놓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