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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2025-05-15 12:09:20

이미지의 미학

<드라이브>, 니콜라스 윈딩 레픈(Nicolas Winding Refn) (2011, 미국) 미장센 비평

 

 

 

 

  인물 뒤편을 가득 채운 붉은색 타일은 욕망을 상징하는 색채로 기능한다.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지만, 그 강렬함 속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불안정성과 위기의 기운이 잠재되어 있다. 이 강렬한 색채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린의 얼굴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일상의 고요함 아래 숨겨진 감정의 긴장과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드라이버는 이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사각형의 벽걸이 거울을 통해 '프레임 속의 프레임'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아이린과 드라이버 사이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감정적 거리감을 동시에 상징한다. 화면 왼편의 아이린은 부드럽고 따뜻한 자연광 아래 위치해 있는 반면, 오른편 거울 속 드라이버는 어둡게 반사된 실루엣으로 표현된다.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단순한 시각적 구도를 넘어, 드라이버가 품고 있는 내면의 폭력성과 그림자를 암시하며, 동시에 아이린이 그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빛'은 여기서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상징적 도구로 작용한다. 아이린은 드라이버라는 어둠을 비추는 유일한 존재로 설정되며, 이는 드라이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구원에 대한 갈망과 내적 갈등을 은유적으로 시각화한다. 아이린은 드라이버에게 있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이자,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존재다. 거울 속 가족 사진은 이러한 감정 구조를 더욱 구체화한다. 사진은 드라이버가 욕망하는 관계의 형태이자, 동시에 그가 영원히 속할 수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이 사진을 둘러싼 초록빛 액자는 생명과 희망, 일상의 따뜻함을 함축하고 있으며, 아이린과 그녀의 가족을 지켜주고 싶다는 드라이버의 바람과도 맞닿아 있다. 

 



  아이린과 그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드라이버는 화면의 가로 3분의 1 지점에 위치한다. 그의 얼굴은 반으로 나뉘며, 한쪽은 희미한 빛에 드리워져 있고, 다른 한쪽은 그림자에 잠겨 있다. 이 조명 대비는 낮의 평범하고 밤에는 폭력적인 이중적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존재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갈색 계열의 커튼은 규칙적인 가로결 무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드라이버가 처한 현실의 구조적 제한과 틀을 암시한다. 커튼은 바깥 세상과의 경계를 이루는 동시에, 드라이버의 시야와 선택지를 가리는 장벽으로 기능한다. 이는 마치 그가 놓인 세계의 베일, 혹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보인다. 아이린과 그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폭력의 세계가 출구 없는 고립만을 남긴다는 것을 시각화한다. 왼쪽 3분의 2를 채운 커튼과 오른쪽 벽면의 어둠, 그리고 그 사이 좁은 틈에 위치한 드라이버는 마치 벼랑 끝에 몰린 존재처럼 보인다. 희미한 빛조차 그에게 완전히 닿지 못하고, 그는 점점 어둠의 세계로 잠식되는 중이다. 해당 쇼트는 드라이버가 더 이상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는 이미 파괴자로 이동하고 있으며, 커튼이라는 시각적 경계는 그가 어떤 선을 넘었음을 시사한다. 돌파구는 없고, 빛은 점점 사라진다. 이 장면은 드라이버의 내면과 운명의 방향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정교한 시각적 구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드라이버는 상징적인 전갈 자켓을 입은 채, 붉은 문을 향해 좁고 긴 복도를 걷는다. 전갈은 사냥꾼이자 파괴자의 의미를 가지며, 드라이버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폭력의 숙명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있으며, 이는 곧 파괴의 수단이자 보호의 도구로 이중적으로 기능한다. 드라이버는 프레임의 정확한 중심, 소실점 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그가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지에 다다랐다는 시각적 표현이자,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선형 구조 안에 있다는 암시다. 화면 끝에 위치한 붉은색 문과 벽면 장식은 드라이버 내면의 폭력성과 피를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린을 향한 욕망과 뜨거운 보호 본능을 상징한다. 이는 그가 폭력을 택함으로써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모순된 결단을 나타낸다. 복도 양옆에 길게 걸린 여러 개의 전구형 조명은 아이린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상징하는 '빛'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빛은 드라이버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유일하게 남겨진 희미한 지표이자,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내면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빛은 그가 도달하려는 공간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오직 붉은 문 너머, 불확실한 세계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이 장면은 드라이버라는 인물이 사랑과 파괴, 구원과 타락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낸다. 드라이버는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 있지만,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드라이버가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극단적인 앙각은 드라이버의 존재를 과장하고 왜곡하며, 인간의 형상을 넘어서 괴물 혹은 신화적 존재로 치환시킨다. 이 앙각은 단순한 시점의 전환이 아니라, 드라이버 내면 깊숙이 감춰진 잔혹성과 근원적인 욕망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작용한다. 화면에서 드라이버의 주먹과 손에 쥔 망치는 왜곡된 구도 속에서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강조된다. 이는 '사랑을 위해 악마가 될 수 있는 자'라는 드라이버의 정체성과 감정의 극한을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배경에 깔린 강렬한 붉은색은 폭력의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색채로, 파괴와 욕망, 동시에 아이린을 향한 집착적 보호 본능을 상징한다. 이 장면은 드라이버가 더 이상 인간적인 도덕성의 경계를 따르지 않음을 명확히 드러내며, 그의 사랑이 어떻게 파괴의 형태로 발현되는지를 시각적으로 응축한다.

 

 

 

 

 

  롱샷으로 잡았지만, 좌측에 배치된 드라이버의 존재가 희미해지기는 커녕 더욱 극대화된다. 전체적으로 안개가 껴 차갑고 어두운 톤에 대비되게 가면을 쓴 드라이버의 뒤로 두 개의 주홍빛 등불이 비춰지고 있다. 더는 물러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버린 드라이버의 냉혹한 다짐을 보인다. 두 개의 등불은 드라이버와 아이린의 사랑, 또는 드라이버가 지키고 싶은 아이린과 그의 아들을 상징한다. 이 쇼트는 드라이버의 결연한 다짐을 무표정한 실루엣으로 완성한다. 

 

 

<드라이브>는 말보다 색감과 조명, 구도 배치와 샷의 크기, 그리고 인물 사이의 거리감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폭력과 사랑 그리고 고독에 선 주인공 ‘드라이버’의 초상을 완성한다. 

작성자 . 고미

출처 . https://brunch.co.kr/@gomi2ya/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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