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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a2025-04-01 16:46:33

의지라는 기적

영화 <헤레틱> 리뷰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국내에서는 <러브 액츄얼리>를 비롯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로맨스 장인으로 더 잘 알려진 배우 휴 그랜트의 신작 <헤레틱> 이 4월 2일 관객들을 찾게 되었다. 아니, 관객들이 그를 찾게 되었다 말해야 할까. 영화 <헤레틱>은 몰몬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두 소녀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영화는 조금은 생뚱맞게도 콘돔을 비롯해 포르노 스타의 이야기까지 단순 두 주연의 수다로 시작하나 이는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메세지를 암시한다. 바로 맹목적인 믿음, 이다. 광고를 비롯해 성인물까지 종교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무수한 이들이 접하는 것들을 통해 영화는 극초반부터 말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생각이 거세 된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두 소녀가 찾은 집에서 푸근한 노신사 리드(휴 그랜트) 종교에 무척이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집은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들이 안내받은 소파가 놓인 '거실'이어야 할 것 같은 공간이 그보다는 조금 더 응접실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무언가 이질적이다. 리드가 오가는 복도 그리고 반스 자매(소피 대처)의 시선을 따라 간접적으로 그 공간을 체험하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다른 공간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것. 불 꺼진 어두운 복도 외엔 모든 정보가 차단되어 있는 그야말로 교차로의 역할만 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말한다, 리드와의 만남은 미궁으로 향하는 함정 그 자체라고 말이다. 

 

사실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전도 당하는 경험은 그닥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길 찾기를 핑계로 기운 얘길 하는 사람들을 우린 번화가에서 종종 마주한다.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가 하면 바로 대화 주도권을 뺏는 것이다. 자리를 뜨기 위한 핑계를 막기 위함도 있겠지만 이들은 포교를 위해 단시간 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해야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예 말을 섞지 않거나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여기 이 자매들 역시 그러하다. 반스 자매에 비해 경험이 없어 보이는 팩스턴 자매(클로이 이스트)는 무언가 께림칙함을 느끼는 반스와 달리 리드의 말에 맞장구 치며 열심히 전도를 이어 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때 공간 외로도 기묘한 일이 한 가지 더 벌어진다. 단순 반스가 발견하는 블루베리 향초의 섬뜩함이 아니다. 리드는 두 소녀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그 면면을 살펴보면 종교에 대한 관심보다 두 소녀의 의견을 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어떠한 대답이 이미 준비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리드의 몰몬경은 인덱스와 노트로 빼곡하며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는 단순 광신이 아닌 그들이 몸담고 있는, 관객이 몸담고 있는 현대사회와 연결된 '믿음'에 대한 시각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리드가 만들어둔 가짜 예배당에서 더욱 심화된다. 두 자매가 믿음과 불신 중 하나를 강요 받는 것과 더불어 리드는 몰몬교 뿐 아니라 3대 종교라 칭해지는 것들이 모두 고전에서 파생된 것임을 밝히며 이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의 변형과 다름 없다 비유한다. 특히 그는 몰몬교인 후기성도교회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가 한낱 인간에 다름 없으며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교리를 수정했다 말하며 두 자매가 어떠한 신념 아래 이러한 종교를 영업(sale) 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관객은 이때 압도적으로 긴 리드의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해 사고 하게 된다. 신도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들, 매일같이 불행과 기적이 공존하는 세계 그리고 그걸 따라도 따르지 않아도 종교와 마찬가지인 각종 변형들과 대기업의 광고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선을 말이다. 이때 두 자매는 상반된 문 앞에 서게 되는데 리드의 농간이나 다름 없는 이론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반스와 그가 끼칠 피해를 걱정하며 마치 그의 의견에 설득 당한듯 구는 팩스턴의 선택에 있어서 관객은 마치 리드의 미궁과도 같은 종교로 대표되는 현 시대의 믿음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의 믿음은 특정 이론에 선동 된 것은 아닌가? 

 

비록 영화는 이 부분을 끝으로 종교에 대한 설전보단 다소 <나이브즈 아웃> 같은 추리물의 전개로 나아간다. 밀실에서까지 자매에게 어떤 선택과 추리를 강요하는 부분에서는 <셜록 홈즈>의 유명 에피소드인 '주홍색 연구' 의 흔적 역시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홍색 연구' 에피소드 역시 후기 성도 교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정한 신의 목격자나 시체 바꿔치기 등과 같은 추리소설 속 장치를 써가며 영화는 종교인인 두 자매를 대상으로 하는 리드의 연구가 팩스턴의 자매의 추리를 통해 결말부에서 그가 믿고 있는 신이 다름 아닌 '통제' 였음이 밝히는데, 이때 계속 언급하고 있는 관객에게 던지는 메세지 맹목적인 믿음과 최종적으로 연결지어진다. 조던 필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할리우드 작품들이 소재로나 장치로나 사용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국민 통제 괴담은 시기를 막론하고 미 전역에 퍼져있는 하나의 사상과도 같다. 정부가 수돗물을 통해, 안테나를 통해 국민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공포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음모이나 정작 광고를 보고 구매를 결정할 때 영상 속 연기하는 배우를 볼 때 무언가를 지시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우리는 보편적인 통제 속에서 선택적인 의심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특정 종교를 사이비라 칭하기도 하고 도믿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누군가의 믿음을 비난하곤 한다. 자유의지 없이 보편적이지 못한 단편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자유를 되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되도않는 시뮬레이션 이론을 펼쳐가며 자신이 열세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리드처럼 영화는 곳곳에 가장 통제 당하고 있는 듯한 두 자매의 자유 의지를 심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리드의 미궁이 내포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현대 사회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부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리드의 계략에 놀아나는듯 그의 미궁 속 가장 어두운 지하까지 스스로 걸어들어간 뒤 탈출에 성공한 팩스턴의 선택부터 결혼 후 가정을 꾸리는 것이 영원의 축복이라 믿는 몰몬교 신자이나 IUD를 삽입한 반스의 선택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금 과한 연출이라고도 평가되나 죽음의 문턱 앞에서 리드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반스의 의지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너를 살리고자 한 나의 의지야 말로 극강의 통제를 흐트러트리는 타인을 위한 나의 선택이라 말이다. 무엇을 믿고 믿지 않을지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매너리즘에 빠진 리드는 그러한 인간의 강한 자유 의지를 보지 못한다. 신의에서 파생된 기적을 믿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러한 부분들을 세련되게 연출한 작품이라고는 평할 수 없으나 적어도 나의 선택이 뭉개져 보이는 이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살리려는 개인의 의지야 말로 종교에서 묘사하는 기적과 같은 것이라 말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 슬픔으로 가득한 현 세계에서 다시 개개인이 만들어낼, 그리고 내가 만들어낼 의지의 기적을 믿어보려 한다. 

 

작성자 . m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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