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4-14 21:05:51
아마추어 | 프로답지 않다는 개성 혹은 실망감
<아마추어>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CIA에서 데이터 분석관 겸 해커로 근무하는 '찰리'(라미 말레). 어느 날, 그에게 정보원 '인퀴린'(카이트리오나 발페)가 보낸 첩보 하나가 도착한다. CIA의 '무어'(홀트 맬컬러니) 본부장이 잘못된 작전의 경우 투입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인명피해도 축소하는 식으로 작전 보고서를 조작해 오고 있었다는 것. 이에 더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손잡고 있었다는 의심까지도. 찰리는 이 첩보를 상부에 보고할지 말 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찰리는 마음을 굳힌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한 가운데, 정작 CIA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사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에 찰리는 기밀 정보를 무기 삼아 무어 본부장을 협박하고, 아내의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설령 컴퓨터나 두들기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 돈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일한다. 아마추어는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어원만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휘 'amator'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추어는 실력을 평가하는 어휘로도 활용된다. 프로 축구 선수에게 아마추어 선수보다 능력이 없다는 혹평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모욕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프로 같다는 표현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붙는 경우가 많다. 냉철하게, 능률적으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반면에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동요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이 활용된다. 돈이라는 대가와 목적보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동기에 충실한 사람이 아마추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세 번째 기준은 흥미롭게도 첩보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된다. 처음 임무에 나서거나, 임무를 받는 요원에게는 꼭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을 죽이는 과제가 주어진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유발하는 혼란, 두려움, 망설임 같은 온갖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프로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킹스맨> 시리즈에서도 스파이가 되는 마지막 단계였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어떤 첩보 영화보다도 아마추어 첩보원과 프로 스파이를 가르는 심리적 경계선에 주목한다. CIA 사무직인 찰리가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할 때 직접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의 심경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달리 말해 그가 아마추어로 남을지, 프로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아마추어>를 차별화한다. 아마추어스러운 완성도가 그 묘미를 묻어 버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복수에 성공한 아마추어 첩보원
<아마추어>는 본격적인 찰리의 복수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 스파이와 아마추어 첩보원의 차이를 명확히 짚는다. 무어 본부장을 협박해서 현장 요원 훈련을 받게 된 찰리.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헨더슨'(로렌스 피시번) 대령은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알려준다. 밤중에 찰리를 깨운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윽박지르고, 끝내 방아쇠를 못 당긴 찰리에게 결코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프로 첩보원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아무 고뇌 없이, 기계처럼, 그저 훈련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임무도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테러범 4인 중 처음으로 찾아낸 여성 테러리스트가 무방비로 등 뒤를 내주었는데도 찰리는 그녀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서도 목적을 착실히 달성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총알을 박아 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추어스럽게 아내의 복수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질식시키거나, 옥상 수영장을 붕괴시켜서 사고사로 가장하는 식이다. 테러범들을 하나씩 찾아 죽이면서 찰리는 아내를 직접 죽인 네 번째 테러범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도 직접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찰리의 복수는 아마추어스럽다. 그는 마지막 테러범을 직접 죽이지 않는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이었다고 프로답게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해커다운 방식으로 인터폴과 경찰에게 넘겨 버린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찰리의 복수극은 특히 순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첩보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진심이 유달리 강조되기 때문이다.
찰리의 내면을 열어볼 두 열쇠
<아마추어>는 찰리의 진심과 순정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을 두 가지 열쇠로써 열어준다. 우선 찰리의 내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 일례로 초반부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런던 출장 겸 여행을 같이 가자는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일하느라 바쁘다면서 마지막 통화도 그냥 끊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찰리의 소극성은 그의 죄책감을 극대화한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회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 이는 아마추어 첩보원으로서 찰리의 정체성을 부각한다. 테러범 체포, 사살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의 첩보 활동은 누구보다도 아마추어적이다. 복수심도 열정의 일종이라면,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만이 그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또 다른 열쇠는 찰리의 주변 인물이다. 이스탄불에서 찰리에게 기밀 첩보를 제공하던 정보원 인퀴린 그가 아마추어라서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스파이였던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를 잊지 못한 나머지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아서 첩보원으로서 활동한 그녀는 찰리에게서 자신을 본다. 돈이나 업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첩보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중요한 역할처럼 보이던 현장요원 '곰'(존 번설)은 끝내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첩보물이라면 성공적인 작전 수행 후에 그가 찰리를 어떻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찰리의 아마추어스러운 복수극에 끼어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배경에 의존하다
문제는 이처럼 '아마추어'의 미덕에 충실한 첩보물을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게 구성했다는 것. 주인공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는 프로다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 가지 부재가 문제다. 바로 신선함, 역경, 짜임새의 부재다. 우선 <아마추어>는 구시대적인 소재를 답습한 나머지 찰리의 서사를 더 깊이 느끼거나 들여다볼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 개개인을 모두 감시하고 있고, 그 정보를 독점한 뒤 국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위법적인 작전과 활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첩보 영화가 활용한 바 있다. 또 엇나가는 첩보 요원을 잡기 위해서 서로 다른 첩보 기관이 제각기 그를 쫓아 나서는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암투. 이 부분 역시 뭐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제이슨 본> 시리즈의 흥행과 스노든의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이후로는 위와 같은 소재를 반영하지 않은 첩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애초에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가 원작인데, 원작부터가 1981년작이라는 점이 반영된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나 주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 극 중 활용되는 최첨단 감시 및 경비 장비들 덕분에 식상함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고난이 없는 아마추어
역경의 부재도 문제다. <아마추어>는 액션이 아닌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천재적인 기술자라는 찰리의 두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술했듯이 다양한 작전으로 테러범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찰리가 어떤 작전을 활용할지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120분을 끌어가지 못한다. 그가 작전을 너무 잘 짜고 복수를 너무 잘해버리는 나머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두 적과 싸워야 한다. 그가 죽이려는 테러범은 물론 그를 쫓는 CIA와도 맞서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하는 찰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러리스트와 CIA 요원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인다. 자연히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영화의 허술함, 편의적인 전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아마추어'라는 제목에 담긴 함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극 중 찰리는 총을 잘 못 쏜다는 것만 빼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잘 해낸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라는 어휘에 내포된 사랑과 열정이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 이상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추어'인지는 물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미 말렉만 돋보인다
더 나아가 전체적인 구성과 서순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하다. 영화는 부패한 CIA를 먼저 제시하면서 찰리 대 CIA, 개인 대 조직의 대립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조직을 농락하다 보니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압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테러범과 CIA의 접점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서스펜스를 강화했다면 첩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빌런 활용법도 아쉽다. 빌런과 찰리의 대립각이 날카로울수록 그의 복수가 남기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빌런을 제외하면 게임 미션처럼 한 번 밟고 넘어가야 할 대상처럼 몰개성 하게 묘사되다 보니 복수의 끝은 다소 싱거운 감이 있다. 초반부에 찰리가 느낀 고통과 자책감에 비하면 빌런을 제거했을 때의 시원함이 부족한 것.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 짜여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아마추어>는 평범한 할리우드 첩보물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는 갖췄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뽐내지는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온전히 꽃을 피우지는 못한 채로 흐지부지 끝난다. 구시대적인 주제의식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상충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살인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요원으로 변신한 라미 말렉의 연기력이 인상적일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는 프로페셔널해야지
Relative contents
-
- 7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누적관객수 500만을 돌파하며 국내 역대 디즈니, 픽사영화 누적관객수 1위로 올라선 <엘리멘탈>
과 시리즈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을 6년 만에 경신한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까지 넷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해볼까요?
[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넷째 주, 1위를 차지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그 뒤를 잇는 <엘리멘탈>은 총관객수 500만명을 넘어서면서 역대 디즈니,픽사의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개봉한지 4주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아직도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20일 개봉한 <명탐정코난: 흑청의 어영>이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
주말관객수 300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은 개봉 이후 두 번째 주말에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7'은 완성도 높은 액션으로 호평받고 있지만 만 팬데믹 여파를 고려해도 개봉 11일째 500만명을 넘어섰던 '미션 임파서블:폴아웃과 비교하면 저조한 수치입니다.
2. <엘리멘탈>
<엘리멘탈>이 <인사이드 아웃>을 넘어 역대 픽사1위 영화로 등극했습니다.
현재까지 500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고있으며 6월 14일 개봉후 역주행하며 6주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2위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전 세대의 호응과 입소문으로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기록에도 이목이 쏠릴 예정입니다.
3.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 개봉당일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을 꺾고 개봉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시리즈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을 6년 만에 경신했습니다.좌석 판매율 개봉당일 34% 관객수 11만명을 동원하며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인기를 다시한번 입증했습니다. 극장판으로는 26번째이며 지난 4월 일본 개봉 당시 900만 명 관객 동원을 하며 시리즈 최강 흥행을 한 작품입니다.
4.<바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을 꺾고 1위를 유지한 반면 한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좀처럼 기세를 못펼치고 있는 형태입니다.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로 커리어를 쌓은 그레타 거윅은 새로운 여성상의 '바비'를 그려내면서 개봉이전에도 전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요. 다음주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
5.<인시디어스: 빨간 문>
공포마니아라면 꼭 본다는 <인시디어스>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북미를 제외한 21개국에서 3170만 달러를 기록하고, 북미를 포함해 6400만 달러랄는 글로벌 오프닝 수익을 기록하며 2019년 이후 역대 공포영화 글로벌 오프닝 스코어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지게 되었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7월 넷째주 <바비>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북미에서 같은 날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꺾고 개봉 첫날 약 900억이 넘는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 북미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경신하는 한편 <오펜하이머>는 관람등급이 높아 관객층이 제한되는데도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올해 개봉한 같은 등급의 영화 <존 윅4>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바비>와 <오펜하이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 둘이 합쳐 만든 <바벤하이머>라는 애칭이 붙으면서 흥행에 시너지를 내는 모습입니다.
-
- 원석끼리 부딪친 스파크
- 5번째 지브리 영화는 <귀를 기울이면>이다. 지브리 특유의 따뜻한 작화가 학교나 지하철 등 일상적인 풍경 장면에 많이 묻어 나와 가슴이 포근해지는 기분이 든다. 판타지 장르가 아닌 하이틴 장르로 만든 영화라서 다른 지브리 작품과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영화다. 게다가 붉은 노을과 웨스트 배경이 떠오르는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가 영화에 흘러나올 때마다 영화 배경과 잘 어울리는 곡을 선정했다고 느낄 만큼 영화와 시너지가 좋은 곡이었다. 지브리 영화들은 주로 멜로 판타지 요소가 많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은 일상 하이틴 요소로 인해 평범한 고등학생에 풋풋한 첫사랑을 느낄 수 있다. 시즈쿠와 세이지가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은 서툴지만 천천히 좋아하는 감정으로 다가가는 귀여운 10대 하이틴 모습을 보여준다. <귀를 기울이면>은 단순히 10대의 사랑을 보여주지 않고, 10대들이 느낄 수 있는 고민과 격려를 보낸다. 바이올린을 만들고 싶어 하는 세이지처럼 시즈쿠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은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을 공감하게끔 만들어준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시즈쿠는 학업까지 내팽개치고 자신만의 소설을 완성해가며, 세이지의 할아버지께 소설을 전한다. 그러나 시즈쿠도 안다. 자신이 적은 소설이 뒤로 갈수록 엉망이고, 글을 쓰면서도 부족한 실력에 대해 자신에게 실망한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세이지의 할아버지는 소설의 완성도보다 시즈쿠만의 원석을 발견했다는 점에 시즈쿠를 칭찬한다. 투박하고, 뭉툭한 원석처럼 완벽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을 테지만, 자신만의 노력과 열정으로 원석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격려를 전한다. 현실의 '시즈쿠'같은 사람들에게 같은 효과를 전한다. 그리고 처음에 단순한 흥미나 선호로 시작하여 무언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앞으로 발전해나가고픈 시즈쿠의 열정은 10대 때 혹은 자신이 처음 무언가 좋아하는 것으로 느낀 순수했던 열정을 떠오를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시즈쿠와 세이지라는 원석이 부딪치며 사랑과 꿈을 향한 노력이라는 스파크를 내보내는 영화.
-
- 웬디: 동심이란 이름의 황금 성배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웬디>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우리에게 '소년'이 상징하는 바
미성숙함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유구하다. 소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싱그러움을 품고 있는 것 같고, '소년 같다'는 말은 '노인 같다'와는 표현과는 다르게 칭찬으로 쓰이곤 한다. 누군가 마음에 소년을 품었다고 하면 그는 시대의 풍파에 때묻지 않고 순수한 사람으로 생각될테지만, 마음에 노인이 있다고 한다면, 글쎄, 어쩐지 꽉 막히고 괄괄한 성미를 가졌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소년'을 동경한다. 그들의 '순수함', '천진함', '때묻지 않음'을 그리워하며 우리 자신이 영원한 '소년'이기를 바라곤 한다.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가능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극 중 웬디 어머니의 말처럼, 아직 다 자라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것은 아주 막연하면서도 희망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영원히 소년일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우리가 꿈꿔왔던 것처럼 낭만적이고 유쾌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까?
우리의 매일은 가슴이 벅차오르게 설레고 즐거울까?
영화 <웬디>는 이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2. 나는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영국이 배경이던 원작의 피터팬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 <웬디>는 20세기의 미국 남부를 주 무대로 한다. 어린아이가 드문 어느 시골 마을의 한 식당에서 주인공 웬디는 자라난다.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조촐한 식당은 언제나 노인들로 붐빈다. 그 틈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시선의 중심에 서 있다. 아이들을 향하는 노인들의 시선은 애정과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귀애하면서도 저주한다. 너희는 결국 이 시골 바닥에서 네 부모의 일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그것은 그 푸른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미묘한 질투때문일 수도 있고, 세월의 풍파 속에서 겪은 회의적인 경험담인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은 썩 꺼림칙한 예언이다. 그런 어른들을 보며 웬디는 다짐한다. 자신은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겠노라고. 기차를 타고 수 많은 집과 건물들을 지나 소녀와 소년의 땅으로 가 모험을 하겠노라고. 한때는 로데오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아이 키우는 것을 꿈이노라 이야기하는 엄마처럼은 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웬디는, 자신의 동심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터의 기차에 뛰어든다.
3. 동심이라는 이름의 황금 성배
웬디와 제임스, 더글라스는 피터의 기차를 타고 어느 화산 섬으로 향한다. 그곳은 아이들이 영원히 아이들로 있을 수 있는 곳, 네버랜드다. 그곳은 마치 규칙이 없는 천국 같아 보인다. 소란법석을 떨어도, 학교에 가지 않아도, 엄마의 일을 돕지 않아도 누구 하나 잔소리 하는 이가 없다. 그들은 얼마든지 악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규칙은 있다. 어머니를 믿을 것.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 것. 어떤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 것. 이 규칙을 어기는 자는 어른이 되어버리므로, 이러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피터 무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된다. 그것은 불치의 병과도 같다. 아이들은 늙음을 두려워하며, 늙어버린 동료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늙고 싶지 않으므로 아이들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어머니(어떤 마법적인 힘을 가진 고래 비슷한 생물)'에 대한 아주 원시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거나, 점점 늙어가는 제임스의 손을 주저 없이 자르는 피터의 모습들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상상하는 소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그것은 소설 <파리대왕>의 잔인한 소년 왕, 랄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늙어버린 소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그 무리로부터 소외받는다. 잊혀지진다. 버조와 제임스(그리고 제임스의 '저주'를 돌리기 위해 그와 함께 간 웬디)가 그랬듯, 그들은 낙원 같은 푸른 숲 너머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것이 모래톱에 뒤덮인 황무지이며, 이미 늙어버린 선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소년 시절의 즐거움이라고는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공허하다. 그들의 할 일이라고는 '어머니'를 사냥하려고 그물을 치는 일 뿐인데, 그것은 '어머니'의 살을 먹음으로써 소년 시절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웬디가 아무리 애를 써봐도 그들은 춤을 출 줄도 모르고, 장난치며 노는 법도 모르고,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저 너무 오래되어서 다 잊어버렸노라고 변명할 뿐이다.
웬디의 쌍둥이 오빠 중 하나인 제임스는 한때 더글라스와 더불어 영원한 소년으로 남자고 맹세했다. 그들은 로데오를 포기해야 했던 엄마나, 황무지 너머에서 만난 버조처럼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제임스는 사고로 더글라스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크나큰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버리고 만다. 제임스는 그 늙음에 대비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어머니'를 사냥하여 그의 소년 시절을 되찾고자 한다. 소년으로 돌아가겠다는 광기에 휩싸인 그는 늙음을 거부하느라 잘라버린 팔 위로 갈고리 의수를 끼우고, 그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잘 아는 '피터 팬'의 악당, '후크 선장'이 된다. 다 늙은 제임스가 자신의 소년 시절의 얼굴을 한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죽은 줄 알았던 형제와의 재회를 순수하게 기뻐하기는 커녕, '너는 어째서 소년의 모습 그대로냐'고 분통을 터트린다. 잊은 것이다. 그를 가슴아프게 했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을. '소년 시절'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말미암아.
'어머니'를 숭배하는 소년들과 어머니를 사냥하고자 하는 노인들. 소년들은 '어머니'가 살기를 바라고 노인들은 그가 죽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이 두 집단은 언뜻 보기에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둘은 매우 닮아있다. 그들 모두 '소년다움'을 유지하거나 되찾기 위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황금 성배에 목매던 중세의 기사들처럼, 소년답고자 했던 소년들의 갈망이 그들 자신을 망친 셈이다.
4. 우리 안의 소년을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는 '소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영원한 소년이란 정녕 없는가? 우리는 순수의 시절이 그저 떠나가기를 지켜만 봐야하는가? 주인공 '웬디'는 이러한 절망적인 물음에 희망적인 해답을 제안한다.
영원한 소년으로 있는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성장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성장 역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변의 많은 세월 역시 그를 비껴나가게 된다. 가족, 친구, 사회는 자라지만, 당신만은 자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피터와 제임스를 비롯한 소년(혹은 소년이었던 노인)들은 그 찬란한 고립을 기꺼이 선택했다. 그러나 웬디는 그러지 않았다. 네버랜드에 다다랐을 때도, 다른 소년들과 뛰놀며 '어머니'의 신비를 만끽할 때도 웬디는 고향에 남아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고 언젠가 그녀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맹세한다. 그녀는 늙어버린 소년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들이 잊었던 소년 시절의 즐거움을 되살리려고 애쓰는가 하면, 그저 맹목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믿음만을 강요하는 피터에게 '그것은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녀의 특별함은 더글라스의 상실로 인해 늙어버린 제임스와도 대비된다. 제임스와 웬디는 모두 더글라스라는 형제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제임스는 늙었고, 웬디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제임스가 더글라스와 절친한 쌍둥이 형제였으므로 그의 상실감이 더 컸으리라고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좀 다른 각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을 거 같다. 사람은 그 성장 과정에서 보다 복합적인 감정을 습득하고 받아들여 나감으로써 감정적, 정신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제임스는 그 과정이 주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로 말미암아 겉모습만 빠르게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반면 웬디는 세월의 흐름과 늙음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소년의 모습'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소년다움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어른스러워서가 아니다. 그녀는 다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천진하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소년들과 다르게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흐르는 세월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녀는 로데오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훌륭하게 기르는 것이 목표라는 어머니에게, 이미 늙어버린 제임스와 다른 소년이었던 노인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자란다는 것의 찬란함 역시 바로 볼 수 있다. 그녀는 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결코 우리의 필연적인 저주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그녀는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들에게 당신 안에도 여전히 소년이 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웬디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미 늙어버린 제임스는 '후크 선장'이 되어 네버랜드에 남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피터와 제임스는 이제는 어리거나 늙은 소년들의 섬, 네버랜드에서 영원한 소년으로 남아 살아간다.
웬디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므로 소년들의 땅인 네버랜드에는 더는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찬란한 소년 시절을 추억할 수 있고 그것을 향해 기꺼이 달려갈 수 있다. 그 시절의 그 소년은 아직도 그녀의 안에 남아있거니와, 자라남으로써 그녀가 많은 것들을 보고 누리고 배울 수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마무리 감상
이 영화는 산만하고 거칠다. 말 그대로 동화인 원작의 스핀오프라서 그런 것일까? 개연성을 따지고 들면 이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캐릭터들이 매력적인가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피터는 개구쟁이 폭군이고 제임스는 변절(어른이 되어버리는)한 소년인데, 인물들이 입체적이지 않아서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이 영화를 즐겁게 관람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들을 큰 이야기의 한 장치로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영화 자체는 아주 시적이다. 웅장한 자연이 곧잘 연출되며, 그것을 지극히 현대적인 건물과 물건들(그것도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치면서 낡고 초라해진)과 대비한 것이 절묘하다. 네버랜드의 소년과 노인들, 그리고 웬디의 고향에서의 아이와 어른들의 모습을 비교해가면서 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
- 무엇이든 못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 영화라고 자부할 수 있다. 바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다. 제목만큼이나 굉장히 긴 여정과 포스터만큼이나 화려한 소재를 잘 버무려 놓았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넘기지 않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의 집합체로 변환시켜 사소함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선택들이 이곳으로 이끌었음을 잘 표현해주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소개한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블린에게는 남편과 딸이 원하는 다정함과 따뜻함보다는 우직함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처한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던 에블린이 그 사실을 알리가 없었고 들이닥치는 세무당국의 조사에 임하게 된다. 그때부터 멀티버스에 연결되어 수많은 자신의 삶을 짧은 시간 내에 경험하게 되고 '조부투파키'의 지구 침공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이야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과연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딛고 '조부투파키'를 막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수많은 다른 우주의 나와 나를 연결하며 현재의 나보다 더 좋은 세계의 에블린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세계는 서로가 없어야 행복한 세계였으며 현재의 에블린이 실패했기에 성공한 세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듭된 버스점프로 인해 무의미함과 부질없음을 느끼는 것도 잠시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리고 소홀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미안함 뿐만 아니라 사랑을 표하며 후회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긍정'과 '다정함'을 불러와 다른 길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에블린에겐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현재가 있었다는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보여준다.
인생의 사소한 결정이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든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금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잊게 된다. 영화로서 표현되지 않았다면 이 삶이 아닌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으로 인해 정해진 길이 만들어진다 라는 소재의 '미스터 노바디'가 생각나기도 해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한 영화를 만나 반가웠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모든 곳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무엇이든 못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멋지다. 영화에서 그랬듯 '옳음'이라는 상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이미 데뷔작에서 완성되었다. 이후의 작품은 모두 데뷔작의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코엔 스타일’은 처음부터 완벽하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한 사람은 테렌스 멜릭,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쉬, 프랑수아 트뤼포,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장준환 감독 등이 떠오른다.
코엔 형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연한 사건들이 연결된다. 우연과 실수, 난감한 상황 등이 결합하면 드물게 범죄가 발생한다.
그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보인다. 이것이 코엔 형제가 노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비극과 희극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우연한 사건이 개입 또는 발생하고, 삶은 그런 작은 사건들의 연속을 통해 이어지며, 삶과 죽음의 무게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애비(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남편 마티(댄 헤라야)이 있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 레이(존 게츠)와 불륜 관계다. 이들이 타고 가는 차에서 두 사람의 옆모습은 극도로 클로즈업되어 있고, 그 뒤로 아웃포커스된 유리창으로 빗물이 흐른다. 이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두 사람의 미래는 불안하다.
마티는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멧 윌쉬)를 고용해 아내와 직원의 불륜 사실을 확인한다. 보통의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 '해피엔드'에서 서민기(최민식)은 학원을 운영하는 아내 최보라(전도연)가 학원강사와 불륜 관계라는 걸 알게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해피엔드'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더구나 이 부부에게는 어린 자식까지 있는 상황이다. 무능한 남편이라는 자책과 낮은 자존감까지 서민기를 내리누르면서, 배신, 좌절, 분노의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쌓여간다.
하지만 미키는 그렇게 냉정하거나 잔인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내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고, 직원 레이는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대화로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가려 하지만, 아내는 미키를 무시하고, 직원 레이는 두 주일치 임금을 달라고 떼를 쓴다. 아내의 뻔뻔한 태도와 시건방진 직원 레이의 행태를 보면서 마티는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미키는 다시 지난 번 의뢰했던 사립탐정 로렌 비저를 찾아가 두 사람(아내와 레이)을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로렌 비저는 마티에게 한 사흘쯤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밤이 되어, 레이의 집에서 동침하고 있는 현장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장면이 바뀌어 로렌 비저는 미키의 술집 사무실에서 미키에게 흑백사진을 건넨다. 그 사진에는 직전에 보였던 애비와 레이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장면에, 총에 맞아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건은 단순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연과 욕망이 개입한다. 미키는 약속대로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두 사람을 죽이면 1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현금을 건넸으니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로렌 비저는 미키를 살해한다. 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아주 작은 부분, 별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발단한다. 미키가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첫번째 일을 맡겼을 때, 즉 아내를 미행해 아내와 직원 레이의 불륜 장면을 확인하라고 했을 때, 로렌 비저는 그 일을 잘 해냈고, 미키는 약속한 돈을 주었다. 이때 미키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있는데, 그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로렌 비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미키가 금고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을, 그리고 금고 안에 현금이 꽤 많이 있었던 것을.
로렌 비저는 미키의 부탁으로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 증거 사진을 미키에게 보여주는데, 이 사진이 조작한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미키는 순순히 1만 달러를 금고에서 꺼내 로렌 비저에게 건네는데, 이것만 봐도 미키는 천성이 나쁜 인간은 아니다. 증거를 완벽히 없애려면 미키가 로렌 비저를 다른 장소에서 살해하는 것이 더 깔끔할텐데, 미키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로렌 비저는 탐욕으로 미키를 살해하고 금고를 털어 달아난다. 그리고 미키의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은 레이. 밀린 주급을 달라고 한밤중에 온 것이다.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사무실을 들어선 레이는 미키가 총에 맞아 죽은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번째 미세한 장치. 로렌 비저가 미키를 죽일 때 쓴 총은 애비의 핸드백에서 꺼낸, 애비의 총이었다. 이건 로렌 비저가 계획한 것으로, 애비와 레이의 뒤를 밟으면서 애비의 핸드백에서 권총을 훔쳤고, 그 총으로 미키를 살해하면, 당연히 애비는 살인범으로 잡혀 처벌받을 것을 계산했다. 로렌 비저는 금고의 돈과 살인청부 비용으로 받은 1만 달러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레이도 애비의 권총을 알고 있었기에, 미키의 사망과 그의 의자 옆에 놓인 애비의 권총을 보는 순간, 애비가 먼저 와서 미키를 죽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레이가 해야 할 일은? 레이는 미키의 주검을 차에 싣고 밤길을 달려 으슥한 곳에 매장하려는데, 놀랍게도 미키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총을 맞아 심하게 부상 당했지만, 어떻든 미키는 의식을 차리고, 차에서 내려 기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병원에 데려가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 레이는 애비가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키를 살려둘 수 없는 상황이다. 살아 있는 미키를 땅을 파서 산 채로 묻고 새벽에 그곳을 떠나는데, 미키가 묻힌 밭에서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다. 즉, 레이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아 시신을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누군가의 집앞에 미키를 암매장한 것이다. 이건 의도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레이는 사무실에서 미키가 흘린 피를 닦아내고, 살인의 흔적을 모두 지운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애비가 레이를 찾아왔을 때, 레이는 애비가 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을 하지만 정작 애비는 레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당연하다. 애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관객은 알게 된다.
적어도 레이가 애비를 사랑하는 건 맞다. 애비가 남편 미키를 죽였어도 그녀를 위해 증거를 없애려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미키의 실종이 드러날테고, 그러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해 애비와 레이는 당장 용의자로 지목될 것이 분명하다. 증거는 나오지 않겠지만, 정황으로보면 두 사람은 강력한 용의자가 된다.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서 세 번째 장치. 사립탐정 로렌 비저는 살인을 청부한 미키에게 사흘 정도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미키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로렌 비저가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사실은 죽이지 않고) 미키의 사무실에서 만나 돈을 받고 나서 미키를 죽일 때, 탁자 위에 로렌 비저는 자기가 아끼는 라이터를 올려 놓았고, 그 위에 미키가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가 라이터를 덮고 있었다.
미키를 죽이고, 금고를 털어 집에 돌아온 로렌 비저는 담배를 피우려다 라이터가 사라진 걸 깨닫는다. 그리고 라이터는 지금 미키의 사무실 탁자 위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 라이터만 잘 보관했다면, 로렌 비저는 깜쪽같이 이 사건에서 사라지고, 애비와 레이가 덤터기를 쓸 것이 분명하지만, 라이터의 존재는 이 모든 인과관계를 흐트러뜨리고 뒤섞이며, 관계와 시공간을 얽히도록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미키의 사무실에서 라이터가 발견되면, 당연히 용의자는 로렌 비저가 된다. 그는 레이의 뒤를 밟아 레이와 애비가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을 모두 죽이려 한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라이터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로렌 비저는 레이를 죽인다. 여기서 레이는 미키를 산 채로 매장한 벌을 받는다. 그리고 로렌 비저는 애비의 총에 맞아 죽는다. 미키와 레이를 죽인 벌을 받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걸 코엔 형제는 인과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미키는 아내와 직원 레이를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물론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직원 레이의 행위는 나쁘지만, 그것이 죽어야 할 정도인가를 묻는다. 로렌 비저는 사람들의 뒤를 캐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버는 인간이다. 그가 미키를 죽인 이유도 금고에 있는 돈 때문이었고,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고 레이와 애비도 죽이려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행동하는 배경과 서로의 관계를 추동하는 것은 의외로 작은 물건이다. 사진, 금고, 라이터, 물고기, 세면대에서 떨어지는 물 등 사물의 존재가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단지 '합리적 이성'이라고 믿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걸 코엔 형제는 보여준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가 생각하거나 계획 또는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거나 맞닥뜨린다. 뜻하지 않은 상황의 변화 앞에서 어떤 사람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치거나(로렌 비저), 어떤 사람은 시신을 차로 옮기려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이거나(레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부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죽는(미키) 상황에 놓인다.
이것은 마치 '나비의 날개짓'과 같아서, 어느 한쪽에서 움직인 의도가 파장을 일으키며 다른 쪽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다. 미키의 의도는 로렌 비저를 움직이고, 그 결과에 따라 레이가 영향을 받았으며, 애비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간다. 가벼운 말 한 마디,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 하나가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거대한 형태로 변한다. 대부분 인간의 삶이 의도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불특정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인간의 존재는 규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라고 코엔 형제는 말하고 있다.
-
- <스위트홈>, 괴물화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
넷플릭스 최고 히트작 중 하나, <스위트홈>.
내가 평상시 선호하는 장르(잔인함+ 폭력성+공포/ 크리쳐물)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스위트홈>에 열광하나"하는 궁금증에서 올해 초 정주행을 시작했고, 그 여정은 2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편당 50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체감상 10~20분 정도 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이렇게 평상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에 푹 빠진 것도 참 드문 체험이다.
<스위트홈>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전제들!
'정체불명의 원인으로(욕망으로 추정) 괴물화가 되가는 사람들'
누가, 왜 괴물이 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욕망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그 욕망이라는 것도 비구체적이다. 욕망이 없는자가 있겠는가.
절망, 좌절을 심하게 겪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작품 속에서 정말 멀쩡해보이는 사람도, 차분하고 의롭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괴물이 된다. 아무 이유없이. 아무 맥락없이. 허무하게.
(그러고보니, 긴급속보를 발표하던 대통령도 생방송 중에 갑자기 괴물이 된다.)
<스위트홈> 속 괴물들 1
<스위트홈> 속 괴물들 2
결국, <스위트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 세계관은 이것이다.
괴물이 되는 자와 여전히 사람으로 남은자 간의 '차이점'이 없다.
모두가 '잠재적 괴물'이다. 누구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너도. 나도.어떤 블로그 리뷰에서, <괴물화가 되는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논리적 허점>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괴물화가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괴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은 절대 "괴물"이 안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별거 아닌 일에도, '나 지금 피곤하다, 나 지금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물같은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올 때가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더 그렇다.
나에게도 "나쁜 어른, 나쁜 부모"의 모습이 종종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대하면서 "괴물"같은 모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별거 아닌 일에 소리지르고 화를 내며 윽박지른다.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뉴스 속 괴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라고 욕을 하면서,
나와 그 사람들을 구분지으면서, '에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나는 괴물이 아닌 것처럼, 나는 마치 "성숙한 어른"인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스위트홈> 속 '괴물'보다 더 악질인 '인간들'
<스위트홈>에도,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진짜 악질 인간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 속은 더이상 사람이 아닌 괴물들.
<스위트홈>에 내가 끌렸던 이유를 이해했다.
원인불명의 괴물화에 수긍한 이유.
'나'도 언제든 '괴물화'가 될 수 있으니까.
<스위트홈> 메인 주인공 '현수'는 '특수감염인'으로 분리된다. 괴물이 되긴 되었는데, 다른 괴물과는 달리 여전히 사람의 본성이 남아 있는 존재! 괴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괴물의 무시무시한 힘과 사람의 자제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특수감염인.
나 역시 특수감염인이 아닌가.
코피를 쏟고 있는 특수감염인 '현수'
현수는 괴물이 되기 기전 폭포수 같은 피를 쏟는다.
'코피'는 중요한 상징이다. 코피가 마구마구 쏟아지는 것은 그 사람이 '괴물화'가 되고 있다는 전조증상이다. 일종의 신호다. '너 곧 괴물된다!'
쏟아지는 코피를 보며 자신이 괴물화가 되고 있음에 충격을 받은 <스위트홈> 속 등장인물
특수감염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괴물이 될 때 '코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스위트홈> 속에서 주인공 현수가 '특수감염인'인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현수를 방출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 '투표'하는 장면은 참 의미심장하다.
현수를 방출할지 말지 투표하는 생존자 주민들
특수감염인 현수를 추방할 것인가 우리와 함께 지내게 할 것인가.
무서워서 당연히 현수를 방출시키자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으나, 그 결과는 의외였다.
팽팽한 접전! 추방시키자는 사람들, 남기자는 사람들이 반으로 나뉜다.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언제든지 괴물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괴물은 무섭고 내쫓고 싶지만, 한편으로 그 내쫓겨지는 것이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으니,
쉽게 내쫓지도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폭포수 같은 코피를 쏟아내면,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도 괴물화가 되고 있군!'을 알아채고 겁을 먹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코피'를 쏟아내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스위트 홈> 살아남은 주민들은 괴물화가 되고 안되고의 여부를 떠나, 모두 자기만의 치부를, 자기만의 약점을, 자기만의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자국을 남긴다. 코피처럼 당장에 눈에 확 드러나는 자국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자국을 남기고야 만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거나, 상대방에게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거나, 상대를 근거없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등의 모습들..)
그 코피 만큼이나 빨갛고, 선명하고, 무섭고, 자국이 강하게 남아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무언가를, 밖으로 쏟아내면서 그것이 괴물화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나는 괴물이 아니라고, 괴물과 다르다고,
괴물과 나를 구분지으며, 내 코피를 슬쩍 슬쩍 닦아내고 있을지도.
-
- 미쳤다! 그 시대 야만족을 그냥 진짜같이 표현한 영화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
- 멋진 세계 - 아름다움과 아픔이 비례하는 세상
-
13년 만에 한 남자가 출소했다. 그가 본 세상은...
13년간 감옥에 복역 중이던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새로운 각오를 품고 출소한다.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매번 트러블을 일으키지만
주변 이웃들의 작은 관심과 애정으로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의 갱생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어 하는 진지한 청년과도 만난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정상이라 말하는 이 세상은 자신이 소중히 지켜온 것마저 버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은 과연 그가 꿈꾸던 멋진 세계인가?
-
- 넷플릭스 <아미 오브 더 데드> 예고편 ?♂️
[2021년 5월, 넷플릭스 공개]
이 영화의 배경은 좀비들의 출몰로 폐허가 되고 완전히 고립된 라스베이거스.
한때 좀비와의 전쟁에서 영웅으로 활약했던 스콧 워드(데이브 바티스타)는 이제 자신이 발붙인 마을 외곽에서 버거를 구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스콧에게 카지노 사장 블라이 다나카(사나다 히로유키)가 접근해 엄청난 제안을 한다.
32시간 뒤 정부가 핵무기로 라스베이거스를 공격하기 전, 좀비가 들끓는 격리 구역의 금고 속 2억 달러를 회수하는 것.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스콧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팀을 꾸린다.
이제부터 제한 시간 내 침투 불가능한 금고에서 돈을 꺼내고, 더 빠르고 강한 알파 좀비 무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사상 최악의 의뢰에서 기억해야 할 룰은 단 한 가지.
'살아남아라. 그리고 모든 걸 가져라.'
-
- 영화 <썰> 메인 예고편
“내 얘기 들어볼래?”
일주일에 무려 200만원, 핵이득 꿀알바 VVIP 돌봄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공시생 ‘정석’(강찬희)이 인적 드문 산골에 위치한 저택을 찾는다.
역대급 말빨을 장착한 선임 알바생 ‘이빨’(김강현)은 만나자마자 쉴 새 없이 썰을 늘어놓고,
그 와중에 일명 전설의 10초녀 ‘세나’(김소라)가 눈앞에 등장한다.
믿기 힘든 썰의 스케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데…
단단히 도른자들의 B급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