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4-14 21:05:51
아마추어 | 프로답지 않다는 개성 혹은 실망감
<아마추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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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에서 데이터 분석관 겸 해커로 근무하는 '찰리'(라미 말레). 어느 날, 그에게 정보원 '인퀴린'(카이트리오나 발페)가 보낸 첩보 하나가 도착한다. CIA의 '무어'(홀트 맬컬러니) 본부장이 잘못된 작전의 경우 투입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인명피해도 축소하는 식으로 작전 보고서를 조작해 오고 있었다는 것. 이에 더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손잡고 있었다는 의심까지도. 찰리는 이 첩보를 상부에 보고할지 말 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찰리는 마음을 굳힌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한 가운데, 정작 CIA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사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에 찰리는 기밀 정보를 무기 삼아 무어 본부장을 협박하고, 아내의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설령 컴퓨터나 두들기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 돈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일한다. 아마추어는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어원만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휘 'amator'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추어는 실력을 평가하는 어휘로도 활용된다. 프로 축구 선수에게 아마추어 선수보다 능력이 없다는 혹평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모욕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프로 같다는 표현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붙는 경우가 많다. 냉철하게, 능률적으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반면에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동요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이 활용된다. 돈이라는 대가와 목적보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동기에 충실한 사람이 아마추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세 번째 기준은 흥미롭게도 첩보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된다. 처음 임무에 나서거나, 임무를 받는 요원에게는 꼭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을 죽이는 과제가 주어진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유발하는 혼란, 두려움, 망설임 같은 온갖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프로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킹스맨> 시리즈에서도 스파이가 되는 마지막 단계였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어떤 첩보 영화보다도 아마추어 첩보원과 프로 스파이를 가르는 심리적 경계선에 주목한다. CIA 사무직인 찰리가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할 때 직접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의 심경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달리 말해 그가 아마추어로 남을지, 프로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아마추어>를 차별화한다. 아마추어스러운 완성도가 그 묘미를 묻어 버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복수에 성공한 아마추어 첩보원
<아마추어>는 본격적인 찰리의 복수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 스파이와 아마추어 첩보원의 차이를 명확히 짚는다. 무어 본부장을 협박해서 현장 요원 훈련을 받게 된 찰리.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헨더슨'(로렌스 피시번) 대령은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알려준다. 밤중에 찰리를 깨운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윽박지르고, 끝내 방아쇠를 못 당긴 찰리에게 결코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프로 첩보원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아무 고뇌 없이, 기계처럼, 그저 훈련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임무도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테러범 4인 중 처음으로 찾아낸 여성 테러리스트가 무방비로 등 뒤를 내주었는데도 찰리는 그녀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서도 목적을 착실히 달성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총알을 박아 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추어스럽게 아내의 복수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질식시키거나, 옥상 수영장을 붕괴시켜서 사고사로 가장하는 식이다. 테러범들을 하나씩 찾아 죽이면서 찰리는 아내를 직접 죽인 네 번째 테러범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도 직접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찰리의 복수는 아마추어스럽다. 그는 마지막 테러범을 직접 죽이지 않는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이었다고 프로답게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해커다운 방식으로 인터폴과 경찰에게 넘겨 버린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찰리의 복수극은 특히 순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첩보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진심이 유달리 강조되기 때문이다.
찰리의 내면을 열어볼 두 열쇠
<아마추어>는 찰리의 진심과 순정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을 두 가지 열쇠로써 열어준다. 우선 찰리의 내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 일례로 초반부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런던 출장 겸 여행을 같이 가자는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일하느라 바쁘다면서 마지막 통화도 그냥 끊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찰리의 소극성은 그의 죄책감을 극대화한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회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 이는 아마추어 첩보원으로서 찰리의 정체성을 부각한다. 테러범 체포, 사살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의 첩보 활동은 누구보다도 아마추어적이다. 복수심도 열정의 일종이라면,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만이 그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또 다른 열쇠는 찰리의 주변 인물이다. 이스탄불에서 찰리에게 기밀 첩보를 제공하던 정보원 인퀴린 그가 아마추어라서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스파이였던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를 잊지 못한 나머지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아서 첩보원으로서 활동한 그녀는 찰리에게서 자신을 본다. 돈이나 업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첩보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중요한 역할처럼 보이던 현장요원 '곰'(존 번설)은 끝내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첩보물이라면 성공적인 작전 수행 후에 그가 찰리를 어떻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찰리의 아마추어스러운 복수극에 끼어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배경에 의존하다
문제는 이처럼 '아마추어'의 미덕에 충실한 첩보물을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게 구성했다는 것. 주인공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는 프로다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 가지 부재가 문제다. 바로 신선함, 역경, 짜임새의 부재다. 우선 <아마추어>는 구시대적인 소재를 답습한 나머지 찰리의 서사를 더 깊이 느끼거나 들여다볼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 개개인을 모두 감시하고 있고, 그 정보를 독점한 뒤 국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위법적인 작전과 활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첩보 영화가 활용한 바 있다. 또 엇나가는 첩보 요원을 잡기 위해서 서로 다른 첩보 기관이 제각기 그를 쫓아 나서는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암투. 이 부분 역시 뭐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제이슨 본> 시리즈의 흥행과 스노든의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이후로는 위와 같은 소재를 반영하지 않은 첩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애초에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가 원작인데, 원작부터가 1981년작이라는 점이 반영된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나 주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 극 중 활용되는 최첨단 감시 및 경비 장비들 덕분에 식상함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고난이 없는 아마추어
역경의 부재도 문제다. <아마추어>는 액션이 아닌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천재적인 기술자라는 찰리의 두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술했듯이 다양한 작전으로 테러범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찰리가 어떤 작전을 활용할지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120분을 끌어가지 못한다. 그가 작전을 너무 잘 짜고 복수를 너무 잘해버리는 나머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두 적과 싸워야 한다. 그가 죽이려는 테러범은 물론 그를 쫓는 CIA와도 맞서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하는 찰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러리스트와 CIA 요원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인다. 자연히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영화의 허술함, 편의적인 전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아마추어'라는 제목에 담긴 함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극 중 찰리는 총을 잘 못 쏜다는 것만 빼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잘 해낸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라는 어휘에 내포된 사랑과 열정이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 이상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추어'인지는 물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미 말렉만 돋보인다
더 나아가 전체적인 구성과 서순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하다. 영화는 부패한 CIA를 먼저 제시하면서 찰리 대 CIA, 개인 대 조직의 대립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조직을 농락하다 보니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압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테러범과 CIA의 접점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서스펜스를 강화했다면 첩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빌런 활용법도 아쉽다. 빌런과 찰리의 대립각이 날카로울수록 그의 복수가 남기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빌런을 제외하면 게임 미션처럼 한 번 밟고 넘어가야 할 대상처럼 몰개성 하게 묘사되다 보니 복수의 끝은 다소 싱거운 감이 있다. 초반부에 찰리가 느낀 고통과 자책감에 비하면 빌런을 제거했을 때의 시원함이 부족한 것.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 짜여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아마추어>는 평범한 할리우드 첩보물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는 갖췄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뽐내지는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온전히 꽃을 피우지는 못한 채로 흐지부지 끝난다. 구시대적인 주제의식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상충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살인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요원으로 변신한 라미 말렉의 연기력이 인상적일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는 프로페셔널해야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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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세대의 과오를 거침없이 꼬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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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무렵. 독일 탈영병 ‘하인리히(로베르트 마저)’는 '폰 스탄펠드 중령'(알렉산더 셰어)이 이끄는 나치 친위대(SS)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엘자(마리 하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난 그.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엘자의 동생이 SS에 붙잡히고 만다. 이에 하인리히는 엘자와 함께 SS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그들은 유대인이 숨긴 금괴를 찾아 헤매는 SS와 지독한 혈전에 휘말린다.
뼈아픈 반성을 비틀어 담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가 생길 때마다 소환되는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특히 1970년에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사건은 늘 모범예시로 거론된다. 이처럼 일본도 독일처럼 반성하고 사죄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현재 독일 내에서는 나치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우호 발언도 법적으로 금지됐다. 나치 휘장이나 하켄크로이츠를 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 사례도 한계가 있다. 엄밀히 말해서 독일은 전쟁 범죄를 사죄했을 뿐, 식민 지배를 사죄한 적은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례로 약 7만 5천 명이 죽은 나미비아 학살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배상도 하지 않았다. 지원금을 줬을 뿐이다.
피터 쏘워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러드 앤 골드>는 이 간극을 담아낸다. 일단 독일인의 죄책감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2차 대전 당시의 만행을 잊고 싶어 하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뼈를 때리는 지점도 있다. 과연 참회와 반성이 순수한 이유로 이루어졌는지 곱씹어 보게 한다. 그 간극을 풀어내는 방식은 이 액션 코미디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림자가 눈과 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탈영병이 되고픈 독일인
<블러드 앤 골드>는 시작과 동시에 하고픈 말을 쏟아낸다.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땅까지 밟아본 독일 군인 하인리히는 탈영했다. 아내와 아들은 죽었고, 하나 남은 딸을 만나기 위해서 부대를 떠났다. 폰 스탄펠드 중령은 이 탈영병을 뒤쫓는다. 그를 붙잡아 반역죄 혐의로 교수형에 처한다.
이때 하인리히의 대사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을 원한 적이 없다." "억지로 군복을 입혔고 그저 싸웠을 뿐이다." "6년이나 무의미하게 싸웠다." 그는 자유를 쫓는다. 민족을 위해 개인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나치즘에 반기를 든다.
탈영병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나치와 히틀러를 뽑았다. 나치는 자국민을 수탈하고 강제로 동원하고, 폭압을 일삼았다. 그들은 나치 때문에 그들은 가족과 재산, 그리고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당시에 독일 사람들은 나치에 저항하지 못했다.
하인리히는 다르다. 그는 탈영을 선택했다. 독일 사람들 대다수가 가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그의 대사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영화는 탈영병 입을 빌려 수치스러운 역사를 꺼내 들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치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독일이라는 공동체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영화로써 극복하는 셈이다. 근래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이 많은 표를 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의적절한 메시지 같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
솔직함이라는 미덕도 하인리히의 대사에 힘을 실어준다. 카메라가 나치 치하 독일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기 때문이다. 폰 스탄펠드 중령이 금을 찾아 도착한 독일 마을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은 작은 독일 같다. 마을 사람들은 나치와 전쟁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이기적인 욕망에 굴복하고, 또 누군가는 소시민적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독일인 모두가 나치에 부역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폰 스탄펠드 중령은 악한 독일인을 대표한다. 특히 자기모순과 잘못된 신념에 휩싸인 광기를 잘 그려냈다. 그는 엘자를 보면서 이미 죽은 약혼녀를 떠올린다. 둘이 너무 닮았기 때문에. 엘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는 약혼녀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유대인이라서 결혼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를 직접 죽였다. 그가 기괴하게 간직한 반지를 엘자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잘못된 신념이 괴물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리차드 시장'(슈테판 그로스만)과 '소냐'(외르디스 트리베)처럼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매몰된 사람도 있다. 시장은 나치 정권에 동조해 유대인들을 내쫓는다. 소냐는 유대인들이 남긴 재산인 황금을 몰래 빼돌려 한몫 챙긴다.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잘 보여준다. 전체주의 체제 밑에서 선악의 경계가 흐려진 사람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체제에 순응하고 인종학살 같은 범죄에 참가하거나 무감각했던 독일인의 잘못을 과감히 풍자한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에 같은 마을에서 선한 이들은 실제 역사와 다른 일을 이뤄내기도 한다. 성당과 사제가 대표적이다. 2020년에 독일 주교회의는 과거 독일 가톨릭교회가 나치에 협력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당시 교회 자산과 성당은 군사병원으로 활용됐고, 수녀들은 간호사로 파견됐으며, 사제들은 전선에서 독일군의 영적 지도를 맡았다.
하지만 영화 속 사제는 다르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치에 맞선다. 유대인의 금을 탈취하려는 소냐의 음모를 미연에 차단하는가 하면, 금을 찾아낸 나치 친위대에게 역습을 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블러드 앤 골드>는 역사의 가정법을 통해 역사적 과오를 지워내고, 역사를 영화로써 치유하려 노력한다.
피 묻은 금은 어디로 가는가
<블러드 앤 골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반추할 기회를 마련한다. 그 중심에는 금이 있다. 결말에서 유대인의 금은 미군 손에 들어간다. 미군은 몰래 금을 빼돌린 소냐의 차를 폭파하고 그녀가 흘린 금괴를 가져간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역사를 반영한 유머 같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탄압했다. 이에 많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발전과 진보를 도왔다. 아인슈타인처럼.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작중 금은 유대인의 유산이다. 독일인은 그 금을 탐내다가 자멸했다. 소냐는 자기도 모르게 미군에게 금을 가져다 바쳤다. 그러면 미국은 금의 온당한 주인인가? 아니다. 미군이 금괴를 가로채는 대신, 유대인에게 제대로 돌려주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피 묻은 금이 진짜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한 사죄와 배상은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중 금의 행방은 독일의 사죄와 배상에 숨은 국제 역학 관계를 암시한다. 독일은 힘 있는 유대계와 이웃 서방 국가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사과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러시아)처럼 독일 재통일을 위하여 자세를 낮춰야 하는 대상에게만. 또 폴란드처럼 청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국에게만. 나미비아 같은 다른 피해자는 잊혔다.
독일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가 과거 식민지 국가에게 배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강대국들은 아직 피 묻은 금을 돌려주지 않고 챙기기 바쁘다. 국제 사회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열강이 짜 놓은 판 안에서 돌아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치의 잘못을 반성하는 독일의 참회는 순수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군이 최종 승자인 <블러드 앤 골드>의 결말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란티노 향기가 난다
<블러드 앤 골드>의 메시지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보는 듯한 길티 플레져 덕분에 강렬해진다. 타란티노 영화는 폭력적이고, 피를 많이 쏟기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잔인하지는 않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희화화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잔인한 와중에도 관객들이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히 벌 받아야 할 대상을 정확히 지정하면서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최소화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히틀러와 나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악덕 노예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찰스 맨슨 일당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은 두말할 여지없는 악인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그들이 잔인한 대우를 받을수록 쾌감도 커진다. <블러드 앤 골드>도 마찬가지다. 엘자의 농장에서 성당 종탑에 이르기까지 나치와 기회주의자들이 처절하게 죽을수록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된다.
예상을 벗어나는 장르의 변주 덕분에 피 튀기는 액션은 더 짜릿하다. 엘자의 농장을 배경으로 한 초반부는 서부극 같아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평범한 전쟁 영화 같다. 폰 스탄펠드 중령이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은 좀비 영화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로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은 인상을 준다.
장르가 계속해서 변주되다 보니 분명한 선악구도도 뻔하게 흐르지는 않는다. 덕분에 긴장을 놓을 수 없기도 하다. 거칠 것 없는 액션과 코미디의 향연 덕분에 무거운 역사적 배경과 주제를 떼 놓고 봐도 매력이 넘친다. 종합하면 <블러드 앤 골드>는 철저히 독일의 시각에서 작은 규모로 그려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같아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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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반자, 반려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 ‘Companion’ 은 그 어원을 살핀다면 같이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식탁에서 빵을 나눠 먹으며 인생을 함께 살아나가는 동반자 말이다. 요즘 사회는 그런 동반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영화는 오프닝 타이틀이 뜨기도 전에 앞으로 펼쳐질 전개를 예고한다. 주인공 ‘아이리스(소피 대처)’는 머릿속 안개가 사라진 것만 같은 개운함을 느끼며 자신의 단 하나뿐인 사랑 '조쉬(잭 퀘이드)'를 만난 것과 그리고 그런 조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의 무늘 연다. 그리고 그런 아이리스와 조쉬가 자동주행 차에 올라 그의 친구들과 외딴 별장에서 조우한 뒤 아이리스가 첫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영화는 채 30분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 아이리스는 사실 반려로봇 즉, 보급형 섹스봇이며 영화 속 세상은 자연스럽게 자동주행을 이용할 정도로 기술이 보편화 되어있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세계관 아래 영화는 로봇이라는 소재로 아주 영리하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제들을 불러온다. 하나는 AI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형 로봇이 추후 가져오게 될 미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데이트 폭력이다. 자칫 엮이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소재는 아이리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융화된다.
사실 첫 번째의 경우 해당 영화에서 역시 오마주 한 바 있는 <터미네이터> 때 부터 논의되어왔기에 그렇게 신선할 구석이 있지는 않다. 우리와 닮았으나 결국은 다른 개체에 대한 공포는 늘 있어왔으며 AI의 발전과 함께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 영화 소재로써는 단골 소재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으레 공포 장르에서 그러했듯이 공포의 대상이였어야만 했던 아이리스를 다르게 묘사하는데 그렇게 차이점이 빚어지게 된다. 인간형 로봇은 결코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수단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는 물체화 되거나 만일 감정을 갖게 된 순간 엘리와 패트릭처럼 이는 어떠한 사회적 결심이 수반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입맛대로 작동 개시와 중지를 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평등한 관계라 할 수 없다. 반려로봇이 소유자에게 사랑 외에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일방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렇게 <컴패니언> 속 아이리스와 패트릭은 계속 하나의 물건처럼 대해진다. 소유주가 바뀌면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 역시 바뀌며 반항 할 경우 폐기처분의 대상이 된다. 또한 어쩐지 아이리스에게 소극적이던 조쉬의 행동은 아이리스가 로봇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정당화 되는데 그렇게 정당성이 확보된 순간 인간은 결코 프로그래밍 된 AI를 수단 그 이상으로는 생각 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넌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 '허락 받았어' 와 같은 명백한 소유주와 같은 인물의 허가만 있으면 멋대로 다룰 수 있다는 세르게이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아이리스는 날씨알림이, 모닝콜 등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는 비록 의도된 상황이나 편리에 의해 설계된 아이리스에게 저항이라는 일종의 경험의 계기를 선사함으로 메세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는 살인 로봇의 대학살극처럼 전개되지 않을까. 공포 장르 특성상 그동안 보아온 것들에 비해 아이리스의 행보는 다소 소극적이다. 그녀의 끝내주는 살인기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그녀를 단순 살인머신 즉 악인으로 남게 하지 않으려는 설계이기도 하다. 이제 막 사랑을 깨달은 엘리를 죽인 것 역시 쾌락 살인보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의 살인처럼 묘사된다. 지능을 100으로 늘린 상태의 아이리스가 폭주하지 않게 ‘아이비리그 재학생’ 정도로 제한하는 묘사가 들어간 것도 그에 대한 연장선이다. 이 영화는 아이리스를 명백하게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적어도 조쉬보다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람이라 설득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기계 여자친구’ 일명 섹스봇은 명확한 메타포를 갖고 있다. 애인을 애인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 사랑을 자신의 이익 달성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던 이들은 기계 앞에서 더욱 가열차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싫어’ 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피력하거나 수치심을 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야 조쉬에게 아이리스는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에게 계속 감정을 느낀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비웃는 조쉬에 대사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어쩐지 그녀의 혼란스러운 표정에 동조하게 된다. 영화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된 모습보다 배신 당한 연인의 모습을 더욱 조명하며 조쉬에 의해 작동 중지될 아이리스의 위기를 더욱 체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조쉬에게 속절없이 당하며 도망다니는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이유 역시 이와 상통한다. 아이리스의 위기를 체감할 수록 관객에게 아이리스는 더 이상 단순 기계가 아니다. 아이리스는 연인을 수단으로 다루는 이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인 것이다. 비록 아이리스의 대사를 통해 그녀가 조쉬를 죽일 미래가 예고되어있음이 보여도 아이리스가 당하는 수치와 고통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런 그녀의 반항을 시종일관 가로 막는 것은 다름 아닌 삽입된 기억, 사랑인 것 역시 이러한 부분의 연장선이다. 어쩌면 아이리스를 비롯한 반려로봇들에게 심어진 이 '첫 만남'의 기억은 사랑의 당위성이자 폭주 제어 장치로 설계될 것일지 모른다. 연인의 폭력 앞에서 피해자가 무력해지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사랑이다. 첫 만남과 같은 다정한 추억, 감정을 볼모 삼아 가장 마지막의 순간까지 조쉬는 결코 아이리스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거들먹 댄다. 하지만 비로소 그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아이리스의 의지는 강하다. 이는 다름 아닌 영화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인 것이다. 폭력으로 해방된 이는 특정 프레임이 강요된 다른 반려로봇에게 청사진이 되어준다.
이 기묘한 해방에 대한 영화는 현재도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 있는 뉴스들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데이트 폭력, AI의 남용과 지나친 수단화 같은 의제들은 앞으로 수그러들기는 커녕 더욱 가속화 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공포 내지는 블랙 코메디의 장르성을 영리하게 살린 해당 작품이 이러한 의제들을 소재 삼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랑을 볼모 삼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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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컴과 마리> - ‘사랑과 분노, 그것이 전부인 밤’
맬컴과 마리 (Malcolm & Marie)
감독 : 샘 레빈슨출연 : 젠데이아 콜먼, 존 데이비드 워싱턴
사랑과 분노, 그것이 전부인 밤
흑백의 화면 속에서 파티 의상을 쫙 빼입은 한 커플이 날카로운 말들로 서로를 찌르고 있다. 여자는 울분을 토해내고 남자는 발까지 구르며 여자와 평론가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영화 <맬컴과 마리>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위대한 쇼맨>과 <스파이더맨>을 통해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젠데이아 콜먼과 <테넷>의 주도자 역할을 연기하며 큰 인기를 얻은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00여 분의 러닝타임 동안 한 커플의 싸움을 긴 호흡으로 담아낸다. 막 새로운 영화를 개봉한 영화감독 맬컴과 연기를 하고 싶었던 그의 여자친구 마리는 영화 개봉 기념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돌아다니며 여러 주제로 싸움을 이어간다.
이 영화의 중심 주제는 ‘연인의 싸움’과 ‘과대해석 평론가들에 대한 일침’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크게 느낀 감정이 없었다. 남는게 없었다고 해야 할까.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정말 막 연인과의 싸움을 마치고 난 후 공허한 상태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영화를 볼 땐 확 와닿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나서야 알았다. 이 이야기의 짜임새가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했다는 것을 말이다.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의 부재로 시작된 연인의 싸움은 파티가 끝난 늦은 밤 시간부터 검은 하늘이 슬슬 물러날 때까지 계속된다.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은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먼저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로 아끼는 사이라면 더욱 힘을 줘 꺼내놓아야 하는 말이지만 그 한마디가 어찌나 힘든지. 맬컴과 마리는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이 올 때까지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뱉어낸다.
감정이 모두 닳아 마지막엔 남은 것이 없었을 만큼 예상보다 감정의 소모가 많은 영화였다. 엄청난 에너지를 딱 과하지 않을 만큼 적절하게 응축하여 담아낸 샘 레빈슨 감독과 배우들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맬컴과 마리 시놉시스
영화 개봉은 성공적이었다. 모두가 감독을 칭찬했다. 그런데 그의 여자 친구는 왜 못마땅한 걸까.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둘 사이에서 긴장이 끓어오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파티가 끝나고 맬컴과 마리가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2시쯤이었다. 맬컴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며 한껏 신이 나있는 상태였고 마리는 한껏 가라앉은 마음을 숨기고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치 각자 다른 방에 들어 앉아있는 듯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달라. 영화계 사람이 아니니까.” “난 다르지.”
맬컴과 마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하지 못한다. 맬컴은 연설로 기분이 상한 마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리는 맬컴이 자신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싸움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연설에서 마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 하지만 어느 연인 사이가 그렇듯 모든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감정이 격해진 맬컴과 마리는 서로의 아픈 부분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맬컴은 마리가 연기를 포기한 것, 약에 중독돼 헤매었던 것, 마리와 만나기 전 여러 여자를 만났던 것 등 온갖 상처가 될 말을 끌어와 마리를 더욱 강하게 누른다. 마리는 그럴수록 자신을 모른채 한 맬컴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함께해서 영화가 더욱 빛났다는 말, 그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하지만 이 싸움은 ‘빌어먹을 진정성’이 담긴 한마디로 빠르게 정리된다. “사랑해, 마리.”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맬컴과 마리는 이 한마디를 위해 그리도 전투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후벼팠던 걸까. 맬컴과 마리의 관계가 말하고자 한건 ‘진정성의 필요성’이었던 것일까.
<맬컴과 마리>는 연인 사이에서 진정성이 가지는 무게와 일부 진정성 없는 평론가들의 모습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58분쯤뷰터 맬컴이 거의 1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일부 평론가들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맬컴은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운 채 ‘흑인 감독’을 바라보며, 되지도 않는 과대해석을 늘어놓는 평론가들에 대한 욕을 쏟아낸다.
맬컴은 그들을 진정성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맬컴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진정성’이었는데, 그런 그의 눈에 일부 진정성 없는 평론가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리가 없다. 맬컴은 영화의 초반부에선 평론가들이 다 극찬을 쏟아냈다며 신나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자신의 진심을 꺼내놓는 과정에서 그들에 대한 진짜 속마음을 뱉게 된다.
<맬컴과 마리>는 맬컴이 말하는 일부 정치색과 과대해석으로 물든 평론가들을 비틀어 꼬집는다. 작은 트러블로 시작된 현실적인 연인의 싸움. 영화적이기보단 완벽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낸 두 사람의 밤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가감 없이 쏟아낸 후 끝이 난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연인의 싸움과 진정성의 필요. 그리고 진정성이 없는 평론가들에 대한 일침.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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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쓸듄잡
벌써 가물가물한 <듄>. 용어만 복습해도 다가오는 <듄: 파트2> 이해 완!
에디터 AMY가 말아주는 알쓸듄잡 핵심용어.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캐노퍼스 항성계의 세 번째 행성. 물 한방울 나지 않는 모래행성으로 듄의 주요 무대.
우주의 주요 세력 중 하나이자 초능력자 집단.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듄 세계관에서 가장 잔인하고 포악한 가문. 황제에게 아라카스의 채굴권을 넘겨받아 엄청난 부를 축적.
아라키스의 자유민 부족. 젠수니 방랑자들의 후손으로 사막에 살고 있다.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들. '인간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아트레이데스 공작가의 투피르 하와트와 하코넨 남작가의 파이터 드 브리즈가 멘타트다.
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캐노퍼스 항성계의 세 번째 행성. 물 한방울 나지 않는 모래행성으로 듄의 주요 무대.
'샤이 훌루드'라고도 불리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샤이 훌루드라는 이름을 특정한 어조로 말하거나 대문자로 쓰면 프레멘 가정에서 숭배하는 지신(地神)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작중 황제의 병사들을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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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영화와 음악으로 전하는 진심
영화와 음악으로 전하는 진심, 영화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선정된 영화 '오랜만이다'는 가수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무채색의 일상을 살던 33살의 여자 연경이 오래된 기타를 매개로 순수했던 10대 시절의 감각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8월 13일, 엽연초 하우스에서 방민아 배우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영화 '오랜만이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영화 '오랜만이다'에서 연경 역할을 맡은 배우 방민아입니다. 제가 맡은 연경이라는 인물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였고, 현재는 서른세 살의 성인이 되어 여전히 음악을 하는 여성입니다. 음악을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여기에 현수라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연경이의 음악에 굉장한 영감을 주게 되고, 앞으로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음 한편의 추억, 그리고 향수와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 속 음악이 주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화 '오랜만이다'에 담긴 음악이 주는 힘은 ‘진심’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연경이는 진심만을 말할 수 있는 친구였는데, 그것이 노래에 고스란히 잘 담겨 있어요. 현재에서는 과거와는 다르게 무언가와 타협을 하는 음악들이 많이 나와요. 두 음악이 상반되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OST는 무엇인가요?
저는 모든 OST가 다 좋은데, 그중 한 청년이 쓴 ‘고양이 별’이라는 곡이 굉장히 애정이 가더라고요. 제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보니 이상하게 그 노래가 되게 좋았어요.
영화 촬영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무엇인가요?
정태춘 선생님의 '들 가운데서'를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연경이에게 힘을 주는, 힘의 원천 같은 노래였습니다.
영화에서 음악을 하시는 모습이 무척 반가웠는데요. 이런 역할이 들어온다면 또 하실 건가요?
백 퍼센트 할 의향이 있어요. 너무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그리웠고요. (웃음)
배우님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어떤 의미인가요?
무척 특별했어요. 이번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엔 처음 초청받아 참여하게 됐는데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고, 내년에도 또 오고 싶습니다. 다른 영화제들과는 다른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제 '히든트랙' 행사에 참여했는데, 영화를 함께 보면서 음악을 즐기다가, 영화가 끝나고 영화 안에서 들었던 곡들을 다시 라이브로 바로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관객분들의 말을 들으니 기쁨이 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의 사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 하나씩 잘 살피면서 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또 어딘가에 제가 머물러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JIMFF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오시면 정말 재밌으실 거예요.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에 있던 음악을 그 자리에서 같이 즐길 수도 있고, 또 음악 영화제인 만큼 많은 가수분들도 오시고, 공연도 있어서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내년에도 꼭 다시 올 거예요.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민서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신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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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팬들이 뽑아본 판타스틱4 캐스팅
#판타스틱4 #마블캐스팅 #페이즈4
2021. 05. 2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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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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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판타스틱4 가상 캐스팅
00:36 미스터 판타스틱 (리드 리처즈)
02:51 인비저블 우먼 (수 스톰)
05:07 휴먼 토치 (조니 스톰)
06:09 씽 (벤 그림)
07:12 여러분의 캐스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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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의 기대에 못미친 오컬트 블록버스터 / 퇴마록 애니메이션 / 원조 퇴마소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퇴마록"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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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시즌2> 티저 예고편
2024년 서울, 태상과 모든 것이 닮은 호재와 경성의 봄을 살아낸 채옥이 만나 끝나지 않은 경성의 인연과 운명, 악연을 파헤치는 이야기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시즌2 9월 27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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