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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5-05-19 07:45:41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쟁취한 표현의 자유

영화 〈래리 플린트〉

7★/10★

7★/10★

 

 

 

  이 영화는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집안에서 밀주를 팔던 소년 래리 플린트가 세계적 성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수성가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영화에는 래리 플린트가 법정에서 무수한 시련을 겪는 과정과 그의 조력자인 변호사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법정 영화인 것도 아니다. 〈래리 플린트〉는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며 법, 체제, 규범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며 질문을 생산하는 영화다.

 

 

 

  동생과 함께 허접한 스트립 바를 운영하던 래리는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뉴스레터를 제작하다 성인 잡지 시장의 틈새를 발견한다. 그 영역의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는 선정적이긴 했지만 ‘고급’스러웠다. 외설적인 사진과 수준 높은(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기사를 함께 배치하는 전략이었다. 래리는 확신했다. 《플레이보이》를 사는 사람 중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읽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그래서 사진과 어울리는(그러니까 ‘저속한’) 글을 실은 잡지 《허슬러》를 만들었고, 금세 큰 성공을 거두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러나 대놓고 ‘외설’을 표방한 래리는 무수한 법적 시비에 휘말렸다. 음란물 유포 조직 범죄를 비롯해 법정 모독죄로 처벌받는 등 감옥신세를 졌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였다. 나중에는 수백만 명의 신도를 가진 유명 목사 제리 폴웰을 풍자하는 글을 실었다가 천문학적인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폴웰과의 소송이 중요했는데, 일부 진보 언론의 지지가 있긴 했으나 당시 언론은 이 재판을 두고 ‘성직자 대 포주, 하나님 대 악마’의 재판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래리는 끝내 승리했고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가 되었다. “수정헌법 1조가 저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든 국민을 보호하겠죠.” 래리 플린트는 음란과 외설의 모호한 기준,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위계,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도덕 규범의 정치적 허점 등을 파헤치며 무수히 많은 유의미한 논쟁을 촉발했다. 설령 쓰레기 같은 방법을 통해서일지언정.

 

 

 

  영화는 이 과정에 그가 겪은 개인사적 어려움을 더한다. 래리는 총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이 통증으로 한때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시달렸다. 자기가 운영하던 바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만난 아내이자 래리가 가진 외설적 상상력의 원천인 알시아 역시 마약 문제에 시달리다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래리가 법정에서 도발을 이어가자 판사는 그의 정신 건강을 의심하며 구속복을 입어야 하는 정신병동에 넣었다. 래리는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압박하는 것들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와 마찬가지로, 래리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식 자유를 체득한 ‘자유인’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굴복하지 않는 래리의 정신을 그의 남성성과도 연계해볼 수 있겠다. 하반신 마비 후 래리는 성적 기능을 상실한다. 래리가 더한층 투사가 되는 건 이 이후부터다. 그의 캐릭터는 일관됐다. 하지만 이전에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경제적 성공, 젊고 아름다운 아내, ‘외설’과 화제성의 정점에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식 능력을 상실한 후에 그의 지위는 조금 애매해진다. 무려 《허슬러》 발행인이 발기조차 되지 않는 남자라니? 그의 ‘투쟁’은 어쩌면 꺾여버린 자기 남성성의 일부를 여전히 빳빳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존 인물 래리가 지미 카터의 시대와 레이건의 시대를 모두 거친 인물이라는 점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래리가 종교 생활에 열중인 카터의 누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카터의 시대에 래리는 소송에 시달렸을지언정 삶이 위태로운 상태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시대에는 달랐다. 그가 마주한 모든 투쟁의 수준이 더한층 심화되었다. 그를 표현의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만든 건 역설적으로 래리를 지워버리고자 했던 성적 보수주의, 엄숙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이었다. 1960~70년대의 페미니스트 해방운동에 대한 반동이 뜻밖에도 래리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래리 플린트라는 인물을 통해 한 사회의 성 문화와 규범, 도덕과 법의 모순을 폭넓게 살피는 이 입체적인 영화의 유산은 2024년 베니스영화제 상영작 〈디바 푸투라〉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포르노/외설 혁명가’의 얼굴이 왜 늘 여성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성애자 남성 포르노 제작자인가 하는 점이다. 앞선 두 영화뿐 아니라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 등 포르노/외설 제작자 혹은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개별 주제 의식과 완성도를 떠나 ‘포르노-자유-(이성애) 남성’의 상관관계가 굳건하다.* 왜 성을 ‘착취’하는 것도, ‘해방’하는 것도 모두 포르노/외설 제작자 남성인가? 고민해볼 일이다.

 

 

 

 

 

*물론 포르노/외설 소재 영화가 늘 그런 건 아니다. 미국 사회와 포르노 스타의 흥망성쇠를 연계한 〈부기 나이트〉, 어느 남성 스트리퍼가 자신과 일을 긍정하는 과정을 그린 〈매직 마이크〉, 게이 포르노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킹코브라〉, 여성 스트리퍼들의 이야기를 담은 〈허슬러〉, 여성 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아노라〉 등의 영화도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서 주인공은 성과 자유의 구원자라기보다는 그 한가운데에서 휩쓸리며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남성) 포르노 제작자는 ‘해방’과 ‘자유’의 아이콘인데 반해 포르노 스타는 성별과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어딘가 스산한 결말을 맞는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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