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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2025-10-01 11:14:28

햇빛 아래 드러난, 사라지는 노동의 초상

- 영화 <어쩔수가없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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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씁쓸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마다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또 동시에 환호했다.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던 19세기 초,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생산 방식을 예고했다. 인터넷이 보급될 때, 우리는 전 세계가 연결되는 편리함에 놀랐지만 수많은 중개업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자, 종이를 비롯한 전통적 산업은 점점 축소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일터를 잃었고, 누군가는 평생의 경력을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도 대체로 무심히 지나쳤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 익숙한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종이 산업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영역을 무대로 삼는다. 만수(이병헌)가 다니는 제지 회사는 더 이상 종이를 팔 수 없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에 쥐어진 순간 이미 사양 산업이 되었다. 감독은 굳이 제지 산업을 선택하며 이 시대가 가장 가혹하게 외면한 직업군을 끌어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만수라는 한 노동자를 두고, 노동자가 맞닥뜨린 절망과 비극을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과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첫번째 감정] 만수의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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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의 삶은 해고 통보 한 장으로 흔들린다. 그 순간부터 그는 단지 직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삶 전체를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곧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수개월이 지나며 점차 희미해진다. 통장 잔고가 비워지고,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을 때, 만수의 절박함은 단순한 실직자의 초조함을 넘어서는 어떤 광기로 다가온다.

 

 

 

그 절박함 속에서 만수는 범모(이성민), 시조(차승원), 선출(박희순)과 같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다시 찾아간다. 그들은 만수처럼 흔들리는 존재이자, 동시에 만수가 가진 경력과 전문성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 같은 인물들이다. 좁아진 일자리라는 문틈은 그들을 경쟁자로 만들고, 만수는 생존을 위해 그들을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듯 연출된 살해 장면은 가까이 다가가 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비극이다. 마치 자기 자신의 분신들을 하나씩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만수는 마지막에 혼자 남는다. 자동화된 제지 공장에서, 인간 노동자가 필요 없는 곳에서 그는 홀로 기계와 함께 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시 ‘노동’을 얻었지만, 그것은 그가 지켜내고자 했던 경력도, 가족도, 자존감도 모두 잃은 뒤에야 주어진 자리였다. 과연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만수의 절박함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결국 그가 지켜내고 싶었던 본질마저 스스로 파괴한 것이 아닐까.

 

 

 

[두번째 감정] 미리의 초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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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손예진)의 감정은 만수와는 다른 방향에서 다가온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초조함으로 바뀌어간다. 집을 팔고 소비를 줄이며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애쓰지만, 끝내 그것만으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재혼가정이라는 점은 그녀의 불안에 더 큰 무게추를 단다. 아이들이 만수를 ‘진짜 아버지’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덧붙여지면서, 미리에게 가족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구조물처럼 보인다.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뭐라도 하라'는 것이다.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들어와야 그나마 가족이 지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미리는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만수의 비밀을 알고난 이후에도, 그것을 덮어버리는 선택한다. 그건 합리적이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가족을 지키기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초조함은 그녀를 진실로부터 눈을 감게 만든다.

 

 

 

영화 말미, 새로운 일터로 향하는 만수를 바라보는 미리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것은 온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아니다. 초조함을 꾹꾹 눌러 담은 채,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이다. 미리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자기기만적인 인물로 남는다. 그래서 마지막 미리의 얼굴은 오랜시간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세번째 감정] 사회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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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와 미리의 고군분투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영화 속 그들이 겪는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알지 못한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기계의 등장, 인터넷의 도래, 스마트폰의 확산. 우리는 늘 편리함의 기억만을 간직했을 뿐, 그 과정에서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추정할 뿐, 대부분은 관심없이 현생에 집중한다.

 

 

 

영화는 이 무관심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만수가 다시 취업한 자동화 공장은 완벽히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혼자 기계와 일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외면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준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고, 누구도 묻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다만 ‘편리함’뿐이다. 그 텅빈 공간 안에서 만수는 과연 예전과 같은 영광스러운 직업 정신을 가지게 될까. 그리고 곧 인간으로 혼자 근무하던 만수 역시 제거되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언젠가 당신이 그 자리에 선다면, 사회는 당신의 절박한 외침을 들어줄 것인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답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고, 단지 소비자로서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누가 만수 같은 노동자에게 신경을 쓰게 될까. 여전히 우리는 그 무관심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박찬욱이 전하는 서늘한 사회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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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불편한 사회적 진실을 예리하게 끄집어낸다. 노동자끼리 서로를 제거하며 생존을 꾀하는 설정은 냉혹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직업군의 절망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사회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중얼거리는 '어쩔수가없다'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폭력에 맞닥뜨린 개인의 절규로 다가온다.

 

 

 

연기 또한 탁월하다. 이병헌은 절박함과 광기, 그리고 겉으로 웃으며 내부가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손예진은 초조하지만 굳세고,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미리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성민과 차승원, 그리고 범모의 아내를 연기한 염혜란의 존재감 역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염혜란은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던 관능적인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무게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촬영과 미장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햇빛이 만수의 얼굴을 집요하게 비추는 장치는 사회적 변화라는 거대한 자연현상을 은유한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빛, 그러나 잠시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 위 햇빛을 가려주는 순간은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절망만을 말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미약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선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무겁고,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관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설지도 모를 우리 자신의 얼굴을. 사회는 늘 변화를 맞이했지만, 그 변화의 대가를 누가 치렀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박찬욱은 이번 영화로 다시금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혹은 다른 길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단지 만수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는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노동자 개인의 절박함, 가족의 초조함,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세 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본질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언젠가 자신이 만수의 자리에 선다면, 과연 '어쩔수없다'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칠 것인가.

 

 

작성자 . RABBITGUMI

출처 . https://brunch.co.kr/@moviehouse/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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