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2025-07-21 23:58:15
나도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될까?
<이사> 리뷰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했습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1993년 작 <이사(お引越し)>는 부모의 이혼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한 소녀의 내면을 깊이 있고 섬세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단순히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것을 넘어, 어른과 아이 모두가 겪는 성장통과 감정의 역동성을 탁월하게 포착하며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이다.
영화는 아이의 솔직함과 어른의 솔직하지 못함을 대비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렌은 부모의 이별 앞에서 많은 질문을 쏟아내지만, 어른들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는 아이들에게 이별이 주는 깊은 상처와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어른들의 침묵은 때로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서툰 노력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들의 감정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비치기도 한다. 영화는 이처럼 '어른'이라는 존재가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복잡한 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영화이다.
렌의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침묵은 때로는 극단적인 감정의 과잉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묵히고 쌓여있던 감정의 벽을 허무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한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억누르고 외면했기에, 초등학생인 렌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역시 한꺼번에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감정의 분출은 해방감을 가져다주며,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이러한 감정의 교착점과 폭발의 순간을 세심하게 묘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렌은 과거 행복했던 가정을 떠올리며 모든 것이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즐거운 추억이 가득했던 비와 호수 같은 장소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다만 기억하기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떠나보낼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렌이 겪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성장이자 독립 과정의 핵심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모든 것을 태워 재로 변하게 하듯, 렌은 과거 단란했던 세 사람의 가정을 불태워 보낸다. 물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껴안으며, 과거를 떠나보내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장면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렌은 자식을 먼저 보낸 할아버지의 '기억할 만한 좋은 추억이 다섯 손가락 안에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는 위로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추억을 되새기고 손가락으로 헤아린다. 늘 도망치고 피하려던 렌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렌의 복잡한 가족 관계와 내면을 탁월한 연출로 그려낸다. 긴 호흡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세밀한 표정 변화는 렌의 내면적 갈등과 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반면 멀리서 찍는 롱 쇼트는 가족 구성원 간의 거리감과 관계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울 때 흔히 생각하는 "이럴 거면 왜 낳았어?"라는 아이의 솔직한 독백은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며 영화의 현실성을 더한다. 렌의 같은 반 친구 또한 이혼 가정에서 자라 또래 아이들보다 가정에 대해 잘 알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상황 묘사를 세련되게 묘사하며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혼의 단면을 비추는 영화이다.
영화의 절정에서 렌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의 속마음을 마침내 토해낸다. 그리고 과거를 떠나보내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에게 '축하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 외침은 단순한 이혼의 아픔을 넘어, 한 아이가 삶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선언이다. 이 말은 슬픔과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사>는 단순히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가족 영화를 넘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 모두의 성장 영화로서 환상적인 분위기와 신비한 연출을 선보인다. 렌의 시선을 통해 비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지만, 그 속에서 찾아낸 희망과 성장의 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선을 이해하고, 변화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가족의 의미, 성장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상실을 통한 치유의 과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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