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8-21 10:49:30
스파이더맨 좋아해? 어떤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8월 1일부터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파이더맨: 브랜뉴데이>의 촬영 현장 사진이 공개되어 큰 화제였죠!
2026년 7월 31일로 개봉일을 확정 짓고, 티저를 공개하며 팬들의 기대를 한층 끌어올린 후에 진행된 촬영이어서 그런지 그 열기가 더욱 대단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 개봉일은 멀었지만, 오늘부터 차근차근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복습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스파이더맨은 누군지 씨네랩에게만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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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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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트맨> <나이트 레이더스> <소피의 세계> 3월 1주 차 씨네랩 개봉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시작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3월이 왔네요.
새 기분, 새 마음으로 힘내서 멋진 한 달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어김없이 여러분께 개봉작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3월 첫째 주에는 어떠한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더 배트맨
개요: 액션 | 미국 | 176분
감독: 맷 리브스
출연: 로버트 패틴슨, 폴 다노, 조 크라비츠, 앤디 서키스 등
개봉: 2022월 3월 1일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줄거리
지난 2년간 고담시의 어둠 속에서 범법자들을 응징하며 배트맨으로 살아온 브루스 웨인. 알프레드와 제임스 고든 경위의 도움 아래, 도시의 부패한 공직자들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활약한다. 고담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담의 엘리트 집단을 목표로 잔악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가 나타나자, 최고의 탐정 브루스 웨인이 수사에 나서고 남겨진 단서를 풀어가며 캣우먼, 펭귄, 카마인 팔코네, 리들러를 차례대로 만난다. 사이코 범인의 미스터리를 수사하면서 그 모든 증거가 자신을 향한 의도적인 메시지였음을 깨닫고, 리들러에게 농락 당한 배트맨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범인의 무자비한 계획을 막고 오랫동안 고담시를 썩게 만든 권력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자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영웅과 악당, 정의와 복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관전 포인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배트맨' 솔로 무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더 배트맨>의 실시간 예매율은 74%에 달하고 있고, 예매 관객 수는 1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존과 다른 다크한 분위기를 내뿜는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배트맨, 그리고 '폴 다노'가 연기한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가 만난다는 점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와 연결되지 않는 독자적인 스토리이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걱정 없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나이트 레이더스
개요: 스릴러 | 캐나다 | 101분
감독: 다니스 고렛
출연: 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 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 알렉스 태런트 등
개봉: 2022월 3월 3일
배급사: 하이, 스트레인저
줄거리
서기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는 국가 에머슨. 인간병기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납치하고, 외딴 숲에서 칩거하던 ‘니스카’도 결국 사랑하는 딸을 빼앗긴다.
10개월 후, 예기치 못한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니스카’는 딸을 되찾고자 국가의 중심부를 습격하기로 결심하는데…
관전 포인트
2022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 11개 부문 노미네이트,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제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작
2번의 수상, 20번의 노미네이트, 영화제 초청작 등의 점을 보았을 때 <나이트 레이더스>는 전 세계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해외 유력 언론으로부터 “정교한 메타포로 탄생한 뉴 디스토피아!”(New York Times), “머지않은 미래에서 날아온 무시무시한 경고”(Los Angeles Times), "<칠드런 오브 맨>을 소환하는 걸작”(Esquire)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제작에 참여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제작자 '타이카 와이티티'는 마오리족의 혼혈, 감독 '다니스 고렛'은 크리족의 혼혈이기에 토착민들의 현실을 영화에 어떻게 담아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소피의 세계
개요: 드라마 | 한국 | 114분
감독: 이제한
출연: 김새벽, 곽민규, 아나 루지에로 등
개봉: 2022월 3월 3일
배급사: 찬란
줄거리
우연히 여행 블로그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 수영. 그곳에는 2년 전 만난 여행자 소피가 한국에서 머문 나흘의 기록이 있다. 수영은 소피의 일기를 통해 최악의 시기를 버티던 남편 종구와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감정과 사실이 이해될, 것도 같다. 소피가 써 내려간 세계 속에서 다투고 울고 웃었던 우리는 어떤 마음을 남겼을까?
2022년 봄에서 2020년 가을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관전 포인트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공식 초청작
김새벽, 곽민규, 김우겸, 문혜인 등 독립영화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배우들이 출연해 반가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독립영화계 스타 김새벽 배우와 곽민규 배우가 <소피의 세계>에서 부부로 만나 첫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어떤 케미를 발산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낸 <소피의 세계>를 보며 우리도 잠시나마 소피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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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씨네랩의 개봉작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영화와 함께 즐거운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주에 또 새로운 개봉작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안녕!_
씨네렙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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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가족끼리 보기는 금물
가문의 영광: 리턴즈
23.09.21 개봉
코미디, 15세 관람가
한국, 99분
감독: 정태원, 정용기
출연: 윤현민, 유라, 탁재훈 등
너무나 유명한 코미디 영화 시리즈인 가문의 영광!
11년 만에 시즌6 , '가문의 영광: 리턴즈'로 돌아왔는데요
시사회 때부터 평이 너무너무 안 좋았고
현재 네이버 평점도 6점대로 떨어졌는데 ㅋㅋ
전 네영카에서 나눔 받아 공짜로 봐서 그런지
재미없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싶었어요
당연히! 15,000원 주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넷플릭스 같은 데 뜨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볼 만한 영화랄까요?
그도 그럴것이 촬영 기간이 올해 7~8월이더라구요?
추석 연휴를 노리고 급하게 제작한 영화 같은데
딱 그 정도 퀄리티가... 눈에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아! 노파심에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추석 연휴 때 가족이랑 볼 만한 영화 절대 못 됩니다,,,
애초에 스토리부터가
진경과 대서의 원나잇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단어가 나와서...
특히 애들 데리고 가지 마세요 절대절대절대로
전설의 가문이 돌아왔다!
가문의 영광은 결혼?! 사생결단 결혼성사 대작전이 펼쳐진다!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전설의 장씨 가문!
가문의 수장 ‘홍회장’에게 골칫거리가 딱 하나 있는데,
비혼주의를 선언한 막내딸 ‘진경’이다.
어느 날 ‘진경’은 처음 본 남자 ‘대서’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씨 가문은
일등 사윗감의 조건을 두루 갖춘 ‘대서’와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는데…
장씨 가문에게 던져진 지상 최대의 과제!
세기의 결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줄거리
줄거리 요약은 이제야 봤는데......
왜 기껏 정해 놓은 로그라인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네요
저대로만 진행했어도 평점 7점 정도는 땄을 것 같은데요
비혼주의를 선언한 막내딸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대작전?
-> 진경이 비혼주의라는 건 캐릭터들 대화 중에 등장하지
처음부터 그녀는 비혼주의! 절대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음!
이라고 못을 박아 놓진 않아요...
애초에 첫 씬부터가 클럽 가서 남자가 주는 술 마시는 건데,,
대서와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장씨 가문의 음모?
-> 그게 에필로그 가서야 겨우 나와요
전 정말 이런 음모였던 줄 모르고 오 생각 외로 반전도 있네 했는데
그걸 줄거리에 이미 오픈해 놓다니...... 무슨 생각이지
어쩐지 왜 장씨 가문이 자꾸 대서에게 집착하나 했네요
리뷰 쓸 때야 그 비밀이 밝혀지다니 최악...... ㅋㅋ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한 줄 평으로 남겨 보자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누렸던 영광을
꽁으로 또 먹고 싶어 리턴즈 한 영화 같다는 거예요
심지어 가문의 영광에서 활약하던 기본 캐릭터들도 안 나오고
윤현민, 유라 님이 주인공 격으로 흘러가는 거라서
걍 다른 영화 같아요
등장하는 캐릭터 많은데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스토리는 어딜 향해 가는 건지 정립되지 않았고
나름 웃겨 보겠다고 만든 몸개그도 생각보다 안 웃겨서 실망했어요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서는 진경과 원나잇(실은 아니지만 보이기론 그렇게 보이니까)을
한 것을 여자 친구 유진에게 바로 들켜요
그런데 유진 역시 남자 돈 빼먹는 여자라서
남자 친구인 대서의 원나잇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후반부로 가서는 유진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대서가 보는데
처음엔 뒤에만 숨어 있다가 (대사 칠 타이밍 기다렸다가)
"니가 왜 여기 있어?" 라며 되도 않는 모습을 보여요
감독님이 상황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눈에 보이죠
호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 거였으면
남자 주인공인 대서가 무조건 여자 친구가 없어야 하고
혹시 있더라도 찌질+댕청한 너드남 콘셉트,
그리고 여자 친구인 유진을 많이 사랑하며
유진은 뒤로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나쁜 여자였어야 해요
걍 여기 아메리칸 그잡채임,,,,,, 서로 꺼리는 게 없어요
이렇게 혹평을 했음에도 웃긴 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단 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ㅋㅋ
영화 시간 자체가 짧아서 그런가
이제 30분 지났을까 하고 시계를 봤는데
20분 남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김
암튼...... A부터 Z까지 잘 만든 구석은 없지만
혹시 특전 준다면 영화관 가서 봤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걍 아무도 안 볼 것 같다는
그런 후기입니다
*스토리: 1/5점
*연출: 1/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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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아네트 (Annette)
아네트
감독 레오 카락스
출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먼 헬버그
※개봉 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개봉일 : 10월 27일
개인 평점 : ★★★★★ (5 / 5) 뮤지컬 영화 팬으로 +0.5점
한 줄 평 : 뮤지컬 영화 속 존재하는 비극 오페라
p.s. 사실상 오페라 영화라고 부르는 게 맞을 지도?
>극 중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 설명에는 록 오페라라고 적혀있긴 하다.
아네트 리뷰 3줄 요약
1. 뮤지컬+오페라+연극이 합쳐진 영화(?)
2. 영화의 시작과 끝이 인상적 (쿠키는 없음)
3. 독특한 연출과 난리 난 배우들의 열연
<아네트> 포스터 [출처: 씨네랩 제공]
-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레오 카락스는 프랑스의 천재 감독으로 37년의 감독 생활 동안 7개의 영화만 연출한(심지어 1개는 단편이다) 독특한 이력이 있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천재 감독 소리를 들었고, 이후 약간 주춤하는 듯했으나 국내에서 나름 흥행한 <퐁네프의 연인들>과 BBC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에 이름을 올린 <홀리 모터스>로 이름을 알리고 이번에 <아네트>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입증했다.
이번 <아네트>는 그 전작인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로 일반 뮤지컬과 다르게 대사 전체가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 영화이다.
<아네트>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록 밴드 <스파크스> 론 메일, 루셀 메일 형제 [출처: 스파크스 SNS]
영화의 음악은 미국의 글램 락 밴드 스파크스가 제작했으며 OST 외에도 각본에도 함께 참여했다. 심지어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스틸 컷 이미지를 보면 오른쪽 상단 구석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감독 레오 카락스이며 그 옆엔 감독의 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줄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남자가 바로 공동 각본과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스파크스 첫 줄이 배우 3명이다.
<아네트>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아담 드라이버는 특히 명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최근 노아 바움백 감독과 <결혼 이야기>에서 열연을 보여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었고, 그 외에도 마틴 스콜세지, 리들리 스콧, 스티븐 스필버그, J.J. 에이브럼스 등
검증된 연기력으로 쌍제이 감독님의 <스타워즈>에서 얼굴을 알리면서 더 유명해졌다.
마리옹 꼬띠아르 역시 프랑스 배우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인셉션>의 메인 테마곡은 그녀가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영화 <라 비 앙 로즈>에서 직접 불렀던 노래로 <아네트>에서도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낸다.
<아네트>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극적인 작품. <아네트>
전체적으로 연극스러운 연출이 가미되어 있는 영화 <아네트>는 작중 주인공들 역시 무대 위에 서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한 헨리 맥핸리는 무대에 서는 코미디언이고,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앤 델그레코는 오페라 가수이다.
영화는 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약간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는 영화이다.
전체적으로 1막, 2막처럼 구분되어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배경이나 주변 연출에 있어서도 무대 연출 같은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뮤지컬 영화에 걸맞게 두 배우 모두 수준급의 노래실력을 보여준다.
특히 마리옹 꼬띠아르는 극 중에서도 천재 오페라 배우 역할이기에 더 도드라지는 노래 실력을 뽐낸다.
사담을 조금 붙이자면 <아네트> 시사회를 보는 당일 소소한 에피소그가 있었는데
퇴근 후에 시사회를 보러가는 일정이었다보니 업무를 빠르게 한다고 했음에도 출발이 약간 늦어졌고 아슬아슬하게 극장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딱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입장하게 되었는데
영화의 첫 곡의 제목이 <So May We Start>였다. 마치 다급하게 들어와서 땀을 삐질 흘리며 부랴부랴 영화에 집중하려 하는 내 상황을 아는 것처럼 시작해도 될지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덕분에 더 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고 무척 재밌었던 관람이었다.
<아네트> 메인 예고편 [출처: 네이버 영화]
- 예고편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내용입니다.
<아네트>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마침 제공받은 스틸 컷 중 내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개하자면 지휘자 역할의 사이먼 헬버그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는 초반에 앤의 피아니스트로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앤의 죽음 이후 강렬한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그 장면이 바로 스틸 컷에서 지휘 중인 그의 모습이며 그의 열망과 그리움 회한 등의 감정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쏟아져 나올 때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로 감탄하며 봤었다.
순서로 따지면 두 번째 스틸 컷이 먼저지만 지휘자의 등장이 인상적이라 먼저 소개해봤다.
사실 두 번째 스틸 컷이야말로 극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초반부부터 암시해오던 비극을 향해서 가열차게 달려나가다가 앤의 죽음을 기점으로 비극적인 후반부 내용으로 전환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헨리 얼굴의 상처라던가 간지럼을 태우는 장면, 영화를 만든 계기 중 하나라는 뮤지컬 영화 속 격렬한 애정 신, 영화의 시작과 끝, 아네트에 관한 이야기 등 말하고 싶은 장면이 널렸지만 영화를 관람할 사람들을 배려해서 마침 스틸에 있던 두 장면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사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작품은 처음인데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개봉하면 다시 봐야지가 첫 번째 감독의 전작인 <홀리 모터스>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두 번째 아담 드라이버의 <결혼 이야기>도 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세 번째였으니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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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2014)> 리뷰
다비드 뤔 감독의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2014)>는 할리우드에서 그려내는 신세대 뱀파이어 -인간 흡혈을 거부하거나, 인간 사회를 동경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는-와 달리 고딕풍 유럽 전설의 냄새를 잊지 않은 작품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라는 별칭까지 활용하며 지극히 전통적인지라 현대에 이르러선 오히려 잊히고 만 뱀파이어의 전승을 구현한다. 마늘을 기피하거나, 강박적으로 숫자를 세고 관 속에서 잠들며, 햇볕을 피해야 한다던가, 누군가의 장소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감독은 뱀파이어에게 숙명적으로 따라오는 '떠도는 자'의 운명을 삭제하고 범접 불가능한 초월자의 모습 대신 병적인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영화의 무게를 반감시켰다. 이에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는 가벼운 코미디로 즐기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 소재를 다룬 여타 다른 작품처럼 인간 존재/주체에 대한 인식론적 담론 위에서 이해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미지 출처: IMDb이야기의 골자는 이렇다. 수백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폰 쾨즈뇜 백작(토비아스 모레티)은 자신의 부인인 엘사(자넷 하인)와의 삶에 염증을 느낀 지 오래다. 백작부인은 스스로의 모습을 잊은 지 오래인지라 끊임없이 쾨즈뇜 백작에게 자신의 외모를 묘사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 한 두 마디조차 이젠 지겹기 그지없다. 그런 그가 햇볕에 스스로를 내맡겨 자살하지 않은 까닭은 그저 오래전 환생을 약속한 연인 나딜라 때문인데,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에 지친 그는 프로이트 교수(칼 피셔)에게 심리 상담을 요청한다.
프로이트 교수에게 찾아오는 환자는 여럿이지만, 그의 집에 드나드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화가 빅토르(도미닉 올라이)다. 그는 프로이트가 상담하는 환자의 꿈을 들으며 화폭에 옮긴다. 그런데 늑대인간과 관계를 맺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는 인물의 모델은 동일한 인물이다. 바로 자신의 여자 친구 루시(코넬리아 이반칸). 빅토르는 눈을 감고도 루시를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지만, 정작 루시는 빅토르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못마땅해한다. 빅토르는 갈색 머리칼을 묶고 바지를 즐겨 입는 루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자신이 소망하는 구불거리는 금발과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IMDb전통적으로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문학은 이분법적 구도 위에서 성립한다. 선과 악, 질서와 혼란 등이 그 간결한 예시다. 뱀파이어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성을 상정하며 인간 존재가 꿈꿀 수 없는 극단의 세계를 기반으로 하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묘사하는 뱀파이어는 죽은 자의 귀환을 이끌며 혼란을 발생시키는 두려운 자로 인간과 대비되었고,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원작은 앤 라이스의 소설이지만, 이 글에선 영화에 한정하여 이야기하도록 한다- 에서 뱀파이어 루이와 레스타는 뱀파이어로의 삶을 선택하였음에도 끝없는 허무와 혼란에 방황하고, 클라우디아는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고착화된 시간 속에서 참혹함을 느낀다. 이렇듯 뱀파이어 세계와 인간 세계의 뚜렷한 대비는 독자/시청자인 우리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이키게 되는 계기가 되곤 하는데,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는 그 궤가 다소 다르다. 뱀파이어가 사는 세계와 인간이 사는 세계의 레이어는 분명히 겹쳐있고, 그들이 영위하는 사회의 경계선은 불분명하다. 이러한 배경이 성립될 수 있었던 까닭은 영화를 이끄는 주요 동력은 뱀파이어/인간 세계의 대비가 아니라, 등장하는 주요 인물 각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욕망이란 사회를 꾸리는 종족이라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무엇이지 않던가.
이러한 전략을 위해 뱀파이어는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로 설정되지 않았다. 물론 이슬람 광신도에게 사망했다는 연인 나딜라의 이야기나 성에 사는 귀족으로 이미지화된 쾨즈뇜 백작의 모습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며, 한 마리의 야생늑대처럼 빠르고 강하며 흡혈을 망설이지 않는 백작부인의 모습은 뱀파이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전설을 떠올리게끔 한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능력은 위계질서를 만들 만큼 강력하지 않다. 물리법칙을 어기는 종족임에도 백작은 심리적으로 지쳐 상담을 필요로 하거나, 과거에 잃은 사랑을 기다렸으며, 백작부인은 자신의 모습을 잊어 인간 화가 빅토르를 찾아간다.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는 뱀파이어는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는 뱀파이어의 흡혈 장면에서 선악을 논하지 않고, 범법을 무신경하게 저지르는 뱀파이어의 고뇌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영화 제목에 '뱀파이어'가 삽입되어 있고, 사건의 시작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 폰 쾨즈뇜 백작에게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대상화된 타자이다. 달리 말하자면, 감독이 주목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루시-혹은 루시의 욕망-다.
이미지 출처: IMDb위에서 말했듯 루시는 갈색 머리칼을 묶고, 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레스토랑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에 긍정하는 여성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겠다고 말했으면서도 은연중에 변화를 갈망하는 빅토르의 이중적 행태에 분노한다. 이런 상황에서 루시와 폰 쾨즈뇜 백작이 만난다. 프로이트 교수의 집에 놓은 루시의 초상화를 발견한 백작은 그가 자신의 옛사랑 나딜라와 놀라우리만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챈다. 빅토르가 캔버스 위에 상상 속 루시를 구현했다면, 폰 쾨즈뇜 백작은 기억 속 나딜라를 루시를 통해 복원하고자 한다. 두 남자는 모두 루시 앞에서 사랑을 논하지만, 루시라는 인물이 지닌 본연의 욕망(존재하는 그대로 사랑받고자 하는 소망)은 거듭 소외된다.
백작부인의 욕망 역시 영화 내에서 소외당하는 듯 보이나, 이는 백작부인 개인으로서의 소외라기보단 뱀파이어 종족 자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 보아야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백작부인은 '여성 뱀파이어'로서 영화 내에서 전통적인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그는 폰 쾨즈뇜 백작보다 더 야성적으로 묘사됨으로써 사회가 관습적으로 요구하는 남녀의 역할을 전복하는, 완전한 괴물로서 기능한다. 둘째, 그럼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라고 백작에게 요구하고, 루시와는 달리 치장에 매달림으로써 언뜻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존재로 나타난다. 즉 백작부인은 한 명의 독자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문화 속 '여성 뱀파이어' 그 자체의 현현이기에 어떤 수를 써도 자신을 볼 수 없는 종족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자아의 욕구(박일아)'를 끊임없이 소망한다. 백작부인은 그러하므로, 최은주(2010)의 표현과 같이 "결코 존재가 가능하지 않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개인이었고, 욕망을 이뤄내지 못한 육체는 끝내 소멸한다.
이미지 출처: IMDb반면 루시는 기나긴 여정 끝에 자신의 욕망을 성취한다. 굳이 '기나긴 여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루시가 뱀파이어가 되는 일이 적지 않게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는 백작부인에게 물린 이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프로이트 교수의 침대에 놓인다. 그곳에서 흡혈 충동을 느끼고, 인간과는 다른 힘을 얻었다는 우연한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뱀파이어로 변했음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루시는 자기 존재에 대해 조금도 섬뜩함을 느끼지 않는다. 낯섦에 방황하지 않고 루시는 오히려 자신의 힘을 긍정한다.
루시가 느낀, 기존의 정체된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루이가 한 선택과는 결이 다르다. 루이가 허무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성 선택을 하였다면, 루시는 뱀파이어로서 더욱 삶을 풍성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닫고 '뱀파이어 되기'와 '뱀파이어로 살기'를 선택한 셈이므로. 특히 뱀파이어로 변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피를 수혈하면 돌이킬 수 있다는 옵션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루시의 '뱀파이어 되기'는 일종의 선택지에 불과할 뿐 운명론적 관점에서 벌어지는 유일하고도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루시가 뱀파이어로 변했던 첫 번째 순간은 어떠한 정보도 없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으나 두 번째 순간, 루시는 쾨즈뇜 백작에게 선언한다. 뱀파이어로 살고 싶으며, 나딜라도 루실라도 아닌 루시로 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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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에서 뱀파이어로 변한 인간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윤리를 손쉽게 저버리고, 욕망을 발현하곤 한다. 그런데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는 다르다. 이 영화는 뱀파이어를 사회의 거부, 개인의 불순응, 종족의 본능 등의 사유로 '떠도는 존재'라기보다는 일부분 '정착이 가능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루시의 욕망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이진 않았을까?
강정구, 김종회 (2011)는 뱀파이어라고 하는, 현실에 부재하는 종족을 상상하고 창작물을 자아내는 일은 곧 "타자를 경유하여 인간 그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빌어 전달하고 싶었던 인간/인간사회의 단면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루시가 힘을 얻었을 때, 공포로 가득한 세상을 열어젖히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든다고. "‘나’의 이야기와 분리될 수 없는 너(이혜정, 2020.)"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
참고문헌
강정구, 김종회 (2011). 뱀파이어라는 타자에 대한 상상. 비평문학(40), 7-30
박일아. (2013)."내면화를 통해 장르개념을 탈피한 새로운 유형의 뱀파이어 영화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변화를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9.1 pp.32-56
윤은애 (2010). 라캉(Jacques Lacan)과 여성의 히스테리적 글쓰기. 우리문학연구, 29, 327-363.
이혜정 (2020). 내러티브 윤리학과 여성주의 주체 – 내러티브 윤리학은 여성주의 주체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 철학연구, 127-148.
최은주 (2010). 「성별화된 몸, 그 의미와 잉여의 두께-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영미문화 제10권 3호 한국영미문화학회 27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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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 근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내가 나인지 일이 나인지 모를 일(?)아일체의 상태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 자신으로 불리기보다는 직책이나 일 그 자체로 불리기가 비일비재했던 요즘, 괜스레 센치해져서는 '삶이란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존재한다는 것.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본질적인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되는걸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봤을 거라 생각된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의 주인공, 산드라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1. 이도 저도 아닌 삶
산드라의 삶은 미적지근하다. 평온함에서 오는 미지근함이 아니라 언제든지 끓어오르거나 얼어버릴 수 있는 애매한 상태라고나 할까. 그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다정하고 충실한 딸이자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소중히 보살피는 한부모 가정의 엄마이다. 또 한편으로 어머니의 방임 아래 자라난 소녀였고, 더 이상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마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살아갈 뿐인 이 삶에서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점점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리는 아버지를 보며 산드라는 수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거기 육체(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는 껍데기일 뿐이고 책(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모은 유산)은 영혼이니까'라고. 이는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을 얼마쯤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 않을까.
2. 눈 먼 사랑
그런 그에게도 삶의 낙이 있다. 전남편의 친구인 클레망은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산드라의 곁을 지켜주며 그를 살뜰하게 위로해 준다. 클레망을 만나면 재미없고 우울한 나날들도 잠시 잊히고, 산드라는 온전히 그 자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한다. 클레망은 자신을 온전히 '산드라'로 봐주는 것만 같다. 산드라는 그가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존재하게'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잊었던 것만 같은 사랑이 다시 불타오르자 그의 삶은 활력이 돈다. 그것이 너무 달콤해서일까. 그는 그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클레망이라는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것. (그렇다. 프랑스 영화가 프랑스 영화했다.) 산드라에게는 클레망이 무엇보다도 절실하지만, 언제나 한쪽 다리는 '자기 가정'에 담그고 있는 클레망에게 산드라는 언제나 2순위다. 아무리 달콤한 말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산드라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를 끊지 못한다. 이런 사랑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을테니까. 그것은 담배나 술과도 성질이 비슷하다. 해로울 게 분명한데도 끊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마도 산드라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미적지근하게. 때때로 위태롭게 불타오르면서.
3. 존재한다는 것
다시 산드라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산드라의 아버지인 게오르그 교수는 퇴행성 질환으로 읺평생에 걸쳐 쌓아온 지식을 잊어간다. 얄궂은 뇌의 착각으로 인해 시력이 남아 있는데도 앞을 보지 못하고, 어느 장소에 있으면서도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린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 없이 지키고자 써내려갔던 게오르그의 수첩은 그의 절실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딸인 산드라도 어쩌면 아버지와 사정이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보다도 상황이 나쁜 것 같다. 적어도 아버지인 게오르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끝사랑이 남았지 않은가. 그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잊고, 사랑을 잊었다. 나중에는 클레망을 온전히 독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잊고, 잊은 척을 하는 사이에 그는 점점 약해진다. 희미해진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미적지근 한 삶 속에서. 어느 쓰고도 멋진 아침을 맞이하면서.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하는 이는 곧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김춘수의 시처럼 '타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진정한 나로서 산다는건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남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멋진 아침>을 보며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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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두 번 깎은 인질이 가닿은 곳은
9년 전 조지 밀러가 선보인 <매드 맥스>의 조력자 퓨리오사는 상냥한 설명 대신 긴박한 침묵으로 삶이라는 투쟁에 임하는 전사였다. ‘물건’이 되기를 거부하는 임모탄의 아내들을 데리고 도망쳤던 그는 과거의 그 무엇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신비주의로 인해 더 호기심을 끌었고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을 남겼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해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저 아름다운 여자가 어떻게 임모탄의 출산 기계로 뽑혀가지 않았지? 어떻게 여자가 저 잔혹한 시타델의 근위대장이 됐지? 의수를 찬 왼팔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9년 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 모든 의문에 또박또박 답하며 돌아온다. 다만 이번엔 그를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인질로서의 여성’ 삶에 데려다 놓으며, 끝내 사랑이란 클리셰까지 극복하지 못한 장애물처럼 성실히 답습한다.
모체에서 분리된 태아처럼 어머니의 땅에서 강제로 쥐어뜯긴 퓨리오사는 새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에 가는 길이 적힌 지도는 팔과 함께 영영 유실되고 절망의 오디세이는 끝나지 못한다. ‘Not now’에 가로막힌 약자들에게 퓨리오사는 ‘Now’라고 소리 질러 그들을 해방하려 들지만, 혁명은 매번 실패하고 그는 어린 시체를 내려다보며 비탄에 빠진다. 아끼는 이들의 죽음은 그들의 명성과 고결한 성품만큼 멋지지도 장엄하지도 않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온통 비천함과 분노뿐이다.
‘정상적인’ 육체도 자본도, 복구에 대한 희망도 사라진 이 세계에서 여전히 통하는 절대 법칙은 주인과 노예의 역학, 즉 “네 가치를 높이면 디멘투스가 아끼고 귀히 써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늙은 역사가의 입으로 전해진 이 말은 시퀄 <매드 맥스>에서 도망길에 올랐던 어린 여성 중 하나가 “임모탄은 우리를 예뻐하잖아. 좋은 것만 주고 아껴줬잖아”라며 어여쁜 출산 노예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장면을 자연히 연상시킨다.
<설국열차>처럼 옆을 뚫고 나갈 길은 없고 오로지 수직의 도로와 상승 욕구만 남는 이야기. 위를 바라보며 위의 구미와 논리에 맞게 나를 갈아넣어 죽음 직전까지 소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하던대로 순종적인 노예가 되어 거짓 자유를 얻는 것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죽음 혹은 완전한 해방을 직면하는 것 사이의 선택이 매 순간 발 밑에 놓인다. 그래서 인류세가 끝난 후를 다루는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무척 동시대적인 여성 서사로 읽힌다.
장하게도 누구의 꾐에도 넘어가지 않은 퓨리오사는 제 삶에 깊이 침투하길 희망하며 아버지, 스승, 남편이 되려 하는 포식자 남성들에게서 도망치며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한다. 그러나 가장 큰 산이 남아있으니 바로 그가 ‘주체적으로’ 고른 남성 연인이다. 남들처럼 자신을 정서적/육체적으로 착취하려는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즉 최악을 면했다는 이유만으로 근위대장 잭은 손쉽게 믿음과 애착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잭과 함께 하는 장면들에서만 퓨리오사는 전투에 제법 방해될 게 분명한 긴 머리로 등장한다. 릭투스의 정욕을 감지한 어린 퓨리오사가 머리를 내어주고 도망치는 필사의 각오를 보였고, 강간 위협을 피해 여성임을 숨기고자 말 못 하는 체 아등바등 생존해 온 과거를 생각하면 이 재빠른 전환은 당황스럽다.
트럭 전투 씬 중 정확히 잭과 처음 눈을 마주치는 컷에서 그의 긴 머리가 나풀대며 노출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영화 바깥의 우리는 그가 언제 다시 삭발로 ’돌아올지‘를 가늠하며 이 퓨리오사를 우리가 아는 퓨리오사로 만들어줄 비극적 사건의 시작을 예감한다. 하지만 그 예고의 기능을 하기 위한 머리가 굳이 그렇게 극적으로 길고 치렁치렁하고 아름답게 굽슬거릴 이유가 있을까. 긴 머리는 퓨리오사가 잭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다시 말해 성애적 호감을 얻을 자격과 의지가 있는 여성이라는 표지로 작용한다. 이는 분명히 잭보다는 스크린을 보는 현대의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장치다.
수납공간이 그렇게 많은 의복이며, 한 몸처럼 붙일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두고 씨앗을 몸에 지녀야 한다는 고향 땅의 풍습을 내미는 건 적당히 이어 붙인 핑계처럼 느껴진다. 진짜 이유는 퓨리오사가 ‘확실히 (아름다운) 여자로 보여야’ 둘의 닿을 듯 말 듯한 풋풋한 로맨스를 관례적으로 적당히 납득할 관객을 (의도했든 아니든) 의식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조지 밀러는 ‘굳이’ 퓨리오사의 외모가 현대의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익숙한 여성성 구현에 복무하도록 만든다.
이윽고 잭의 제자이자 부하가 된 퓨리오사가 그의 옆자리에 앉아 여전히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위험한 전투에 출정하는 모습은 그가 잭의 여자로서 안전한 지위와 보호를 제공받는다는 즉각적 암시가 된다. 잭이 화면 밖으로 완전히 퇴장한 뒤 퓨리오사가 다시 삭발하는 건 그를 우리가 아는 퓨리오사로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절에 대한 결심처럼 느껴진다. 구태여 두 번씩 머리를 깎게 만드는 건 남성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지 처음으로 인지했던 어린 시절 각성의 의미를 흐리는 선택이 될 뿐이다.
전투적인 여성 인물에게 유약하고 사랑에 의존적인 면이 전혀 있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하필 그 퓨리오사’이기 때문에 실망감이 배가 된다. 단단한 육체와 전투력보다 더 명확한 표현인 삭발이란 외연을 경유해 비성애화되되 무성화되지 않은 드문 타입의 여성 전사로 등장했던 <매드맥스>의 퓨리오사, 그리하여 그 어떤 남성적 질서에도 영향받지 않고 영원히 단독자로 우뚝 설 것만 같았던 퓨리오사가 결국 이 비극적 사랑의 서사를 거친 잔여물에 불과했다는 게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퓨리오사>에서 제가 고른 유일한 좋은 것(유니콘남)을 타의로 잃은 여자의 상실감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캐릭터나 관계에 대한 리터러시“가 심각하게 부족한 남성 관객들(조혜영)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단 몇 초 등장한 뱃사공 남성의 사연을 궁금해하고, <바비>의 진짜 주인공은 켄이라고 오판했듯, 이번에도 당연한 수순처럼 멋있는 잭에게 동일시해 퓨리오사 이상으로 열광하며 그의 프리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사가 중 유일하게 제 이름을 건 영화에서조차 남자친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간 우리는 ‘결국 인생의 사랑 앞에 함락되는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인간다움을 상실한 세계에서 드물게도 인간미를 간직하며 외로이 살아가는 두 이성이 만났을 때는 왜 반드시 애틋한 연정을 나누게 되는 것인가. 따스한 동료애나 전우애 정도로는 부족한 것일까. 조지 밀러에게 그만한 상상력이 부족했다고 하기엔 이미 맥스와 퓨리오사가 동지애의 좋은 예시를 보여준 바 있다. 그들은 서로의 목적이 불일치한다는 오인 속에 육탄전을 벌이며 투닥거리다가 어느 순간 목적이 일치한다(어떻게든 탈출한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의 조력자가 된다. <블랙팬서>의 오코예는 ‘나를 사랑하면서 나라를 위할 수 있냐’는 남편의 도발에 주저 없이 그에게 창을 겨누는 결단으로 새로운 여성 영웅의 지평을 열었다.
더 멀리 가자면 웹툰 <이런 영웅은 싫어>의 이능력자 영정을 들 수도 있을 듯하다. 불후의 전략가인 그는 언젠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약점이 될까 두려워 남자에게 자결을 명하고, 자신을 너무도 숭배해 그 명에 그대로 따른 연인의 시신을 안고 “드디어 모든 인간성을 버렸다”며 읊조린다. 디멘투스가 쳐둔 덫에 제대로 걸린 잭을 구하기 위해 거의 성공한 탈출을 포기한 순간, 퓨리오사는 바로 이 단계를 완수하지 못한 -미완의 - 영웅에 머물게 된다.
기껏 희생해 자기를 빼낸 어머니를 두고 가지 못해 다시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훗날 맥스에게 “당신이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질문을 던지며 동요했던 것처럼, 위험에 처한 잭에게 돌아가는 퓨리오사의 무른 면을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에게도 내면의 다듬어지지 못한 혼란과 다 버리지 못한 다정이 있고, 그의 불완전성이 도리어 그를 인간답게 하는 본질이라는 당연한 서술로도 나아갈 수 있다.
잭과 퓨리오사가 끝까지 명시적인 연인 관계에 진입하지 않았고, 그러니 둘이 나눈 것은 연정이 아니라 황폐한 세상에 인간다운 인간이라곤 단 둘뿐인 것 같은 유대감이었을 거라고 애써 독해해볼 수도 있겠다(퓨리오사의 어머니 메리 자바사와 대모 케이티가, 퓨리오사와 발키리가 머리를 맞대며 나눴던 부발리니 일족의 인사를 퓨리오사가 잭에게도 나누어줬기 때문에 - 그 역시 여전히 거슬리지만).
하지만 그런 ‘우정’이 꼭 자신을 알아봐준 남성 상사와의 유사 부녀, 유사 연인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차라리 잭과의 애틋한 교감에 할애할 시간을 헐어 임모탄의 신부들과 기거하던 시절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너무 어려 힘이 없던 탓에 함께 도망갈 수 없었던 신부들,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줬던 다정한 그들, 세 번의 비정상적 출산 후에는 모유를 뽑는 기계 취급되던 불쌍한 그들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있었기에 7천일 후 <매드맥스>에서는 신부들부터 탈출시켰던 거라면. 퓨리오사에게 잭 외의 유의미한 관계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있었지만 여느 영화들처럼 그것을 쉽게 포기해버린 지점에서, 조지 밀러가 여성 서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잘 써온 남성 감독이라는 판단은 빛을 바랜다.
여성이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할 때 끝의 끝까지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그 ‘친절한 남성 (연인)’에 대한 로맨틱한 유대감이란 사실을 이젠 알기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남성’의 생존 여부에 그토록 미련을 두는 퓨리오사를 지켜보는 건 어쩔 수 없이 괴롭고 안타까운 일이다. 벨 훅스가 말했듯 “가부장제 문화에서의 낭만적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힘과 통제력을 앗아”가며,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렇기에, ’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란 디멘투스의 질문은 어딘지 영화 바깥에서 던져진 것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관객인 우리는 이미 퓨리오사가 시리즈 끝의 끝까지 주인공은 되지 못한다는 답을 알고 있다. 시리즈의 순행적 흐름만을 생각한다면, 퓨리오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매드 맥스’의 기회가 도래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에 그친다. 사구에 우뚝 서서 퓨리오사의 탈주를 지켜보던 그가 몇 년 후 무사히 주인공의 자리에 도착해, 다친 퓨리오사를 부축하곤 뒤도 안 보고 떠나가는 멋있는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물론 퓨리오사가 있었기에 씨앗이 보존되고 다음 세대 여자들은 도망치고 노골적 착취만큼 역겨운 거짓 자유는 파훼된다. 그의 고통은 아물지 않음으로써 남과 나를 구하는 동력이 된다. 인간적인 정 때문에 100% 냉철해질 수 없는 여자는 복수 대신 구원이란 해법을 기어이 찾아낸다. 더한 급진을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서 주류의 시선이 가닿을 수 있는 페미니즘 서사의 최후란, 아쉽지만 아직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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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복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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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괴물이 되면, 부모는 악마가 된다." 분노 폭발? 메인 예고편 大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