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8-21 10:49:30
스파이더맨 좋아해? 어떤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8월 1일부터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파이더맨: 브랜뉴데이>의 촬영 현장 사진이 공개되어 큰 화제였죠!
2026년 7월 31일로 개봉일을 확정 짓고, 티저를 공개하며 팬들의 기대를 한층 끌어올린 후에 진행된 촬영이어서 그런지 그 열기가 더욱 대단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 개봉일은 멀었지만, 오늘부터 차근차근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복습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스파이더맨은 누군지 씨네랩에게만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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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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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는 죽지 않았어!
하시모토 나오키 / 일본 / 2022 / 126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루가 봄과 함께 떠났다 사야카는 처음 겪는 이별이 낯설기만 하다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와 함께 헤어진 이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재일 한국인 2세인 작가 이주인 시즈카(본명 조충래)의 동명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대중소설 작가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상이기도 한 나오키상 수상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단행본 소설이다. 하시모토 나오키 감독은 소설을 처음 접하고, 영화화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마음을 아리게 만들기에 변함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는 죽지 않았어-
영화는 난생처음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 8살 소녀 사야카(니이츠 치세)와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오이다 요시)의 만남을 10년 후 사야카의 내레이션(아리무라 카스미)을 통해 들려준다. 소중한 관계의 상실과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야카가 맞이하는 이별은 작별인사 기회조차 주지 않는 어린이에겐 너무 어려운 경험의 연속이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기엔 영화는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살랑한 봄의 여행길 같다.
좁은 문을 통해 강아지 루를 따라 들어간 벽으로 둘러싸인 들판은, 말 그대로 둘만의 공간이었다. 유일한 친구인 루만이 함께하는 공간은 그 어디보다 외롭지 않고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가장 자유로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벽 너머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듯한 바다조차 맑은 하늘에 푸르게 반사되지만 사야카 혼자 다시 들판에 갔을 때는 벽의 헤드룸을 좁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일반 공터로 만들어버린다. 그만큼 세상을 다르게 느끼게 해주는 존재에 대해 보여준 덕에 사야카의 상실감의 폭은 더욱 크게 와닿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첫 장면이다. 첫 장면이 강렬한만큼 후반부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야카가 느끼게 된 소외의 너무 짧은 전사나 스토리 전개의 속도, 카메라를 바라보는 듯한 사야카의 시선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적어도 루와 사야카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꾸밈없는 관계였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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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리오사 | 모래맛과 쇠맛은 덜고, 눈물맛은 더하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명 붕괴 45년 후. 풍요로운 ‘녹색의 땅’에서 지내던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는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의 바이커 군단에 납치돼 가족과 행복을 모두 잃어버린다. 인질이 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의 어깨너머로 황무지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힌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날만을 기다리며.
그러던 어느 날, 퓨리오사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황무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가스타운'을 점령한 디멘투스가 '시타델'의 지도자 '임모탄 조'(러치 험)와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그녀를 임모탄 조에게 넘겨 버린 것. 믿음직한 동료 ‘잭’(톰 버크)의 도움을 받으면서 퓨리오사는 시타델의 전사로 거듭나고, 그녀는 아껴두었던 복수의 칼날을 마침내 꺼내든다.
형 만한 아우 여기 있다
2015년 여름에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는 신드롬이었다. 강렬한 모래맛 영상미와 쇠맛 액션은 센세이셔널했다. 드라마를 최소화하고 액션에 집중하는 <매드맥스> 시리즈 중에서도 유달리 액션에 힘을 잔뜩 준 덕분이었다. 전작이 <해피 피트>와 <해피 피트 2>인, 70세 노감독 조지 밀러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관객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국내에서는 390만 관객, 월드와이드 3억 7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 평단도 다르지 않았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을 싹쓸이했고, BBC가 100대 21세기 영화에 선정하기도 했다.
자연히 속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를 향한 기대는 컸다.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에서 주인공 맥스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퓨리오사의 과거사를 다룬 프리퀄로, 제77회 칸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다. 9년 만에 돌아온 프리퀄은 그 기대에 부응한다. 비록 전편만큼의 모래맛과 쇠맛은 아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는 퓨리오사의 눈물이 그 빈자리를 훌륭히 채우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를 보고 한 번쯤 가졌을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 주력한다. 늪지대로 변하기 전 녹색의 땅의 모습. 그곳에서 보낸 퓨리오사의 유년 시절. 그녀가 납치당한 계기와 시타델에서의 성장기. 그가 임모탄 조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장군으로 거듭나는 서사시와 의수를 달게 된 사연. '버자드'와 '바위 라이더'의 정체. 심지어는 맥스와의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과거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전편과의 연계점을 명확히 보여주며 퓨리오사의 전체 서사를 곱씹게 만든다. 어머니를 죽인 빌런 디멘투스에게 복수하는 퓨리오사. 그녀는 복수를 통해 그에게 빼앗긴 어머니와 유년 시절을 되찾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 이는 본편에서 그녀가 유독 임모탄 조의 여자들, 곧 엄마가 될 여성을 구원하려고 애쓴 동기로 작용한다.
또 그녀가 디멘투스를 응징하는 방식은 그녀가 시타델을 점령한 후 새로운 녹색의 땅으로 만드는 전편의 결말을 더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와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처럼 <퓨리오사>의 결말이 전편의 시작으로 곧장 이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분노의 도로>의 하이라이트가 삽입된 엔딩 크레디트 덕분에 그 감흥은 배가 된다.
모래맛과 쇠맛이 덜한 이유
물론 전편과의 차이가 작지는 않다. 전편이 퓨리오사의 탈출 계획이라는 사건을 쫓은 반면, <퓨리오사>는 퓨리오사를 캐릭터에 주목하기 때문. 전자가 직선적이라면, 후자는 곁가지 더 많고 서정적이다. 정키 XL이 다시 참여한 음악만 봐도 접근법의 차이가 분명하다. 웅장하고 공격적이었던 <분노의 도로>의 음악과는 달리 <퓨리오사>의 음악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이는 빨간 기타리스트의 존재감이 전편 같지 않은 이유다.
액션도 마찬가지다. 물론 양과 질은 진일보했다. 4륜 이상 차량 35대와 바이크 110대가 동원된 액션 시퀀스의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연출도 더 입체적이다. 패러글라이딩과 차 아래 공간을 활용해 전편보다 더 입체적이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루는 분량이 늘어나다 보니 액션 시퀀스 사이 공백은 상대적으로 길다. 그 결과 전체적인 임팩트가 덜하고, 모래맛과 쇠맛이 약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
접근법의 변화는 캐릭터를 다룰 때도 일장일단이 있다. 퓨리오사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녀만의 특별함은 사라지는 듯하다. 퓨리오사는 기존 할리우드 여전사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캐릭터였다. 싸우는 목적이 달랐다. 퓨리오사는 현재의 삶 대신 더 나은 삶과 구원을 찾았다. 그래서 맥스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임모탄 조의 여자를 빼돌려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땅을 향해 달릴 생각만 했다.
하지만 <퓨리오사>를 보고 나면 전편에서 목격한 퓨리오사의 서사가 장대한 복수극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곧 그녀 역시 빼앗긴 삶에 대한 복수와 모성애 때문에 싸우는 일반적인 여전사 중 하나로 전락한다. <에일리언>의 리플리나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처럼. 퓨리오사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 나머지 그녀의 신비감, 아우라까지 약해지고 만다. 프리퀄의 근본적인 한계까지는 넘지 못한 셈이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하지만 퓨리오사의 복수극을 곱씹어 보면 약간의 아쉬움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 응축된 이야기를 뜯어보는 재미 덕분이다. 특히 새 빌런 디멘투스와 퓨리오사의 관계가 흥미롭다. 의외로 둘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가족을 잃었다. 디멘투스는 아이를, 퓨리오사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악만 남은 둘은 복수와 생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채 발악한다.
그런데 발악의 방향성은 정반대다. 디멘투스의 발악은 파괴적이다. 딸의 유품인 인형을 망토에 매단 채 사막과 황야를 헤집고 다니면서 약탈하고, 자기 같은 피해자를 다시 만들어낸다. 퓨리오사는 다르다. 그녀는 현재를 딛고 새 미래를 꿈꾼다. 고향에서 가져온 열매의 씨앗을 심어 새 나무를 키우려 한다. 즉, 디멘투스가 절망적인 현재에 갇힌 반면, 퓨리오사는 현재의 모래 폭풍을 뚫고 미래를 바라본다.
이 대목은 전편 못지않게 인상적인 여성 서사다. 디멘투스와 퓨리오사의 대립은 파괴적인 부성애와 재생산의 모성애의 대조나 다름없으니까. 그래서 퓨리오사는 아버지를 자처하는 디멘투스와의 관계를 끊어낸다. 그를 단순히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고 그의 몸 위에 나무를 심어 그를 살아있는 거름으로 삼는다. 그녀가 잭과 동료이자 연인이 되는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잭 역시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할 줄 알기 때문.
액션을 넘어 정치극까지
더 나아가 퓨리오사의 복수극은 정치 드라마로 확장된다. 퓨리오사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임모탄 조와 디멘투스의 차이는 명확하고, 그 덕분에 그들의 합종연횡을 지켜보는 묘미도 커진다. 사실 퓨리오사는 디멘토스보다도 임모탄 조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단지 물과 같은 자원의 독점 여부를 두고 비전의 모습과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임모탄 조는 퓨리오사가 그러했듯이 디멘투스와 싸울 수밖에 없다. 미래를 걱정하는 자와 현재만 사는 자의 충돌은 필연적이니까. 실제로 임모탄 조가 물, 가스, 식량, 무기 공급을 유지하며 장기적인 생존을 추구하는 반면, 디멘투스는 지금 당장 먹고살고 자원을 소비하기에 급급하다. 문명 붕괴 45년 후라는 시간대를 고려하면 이 전쟁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극의 묘미는 <매드맥스> 세계관이 확장하는 데도 공헌한다. 두 빌런은 전편에서 짧게 언급된 공간을 오가며 전쟁을 펼치기 때문. 전작이 사막과 황무지라는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세 개의 도시가 전면에 등장해 권력의 삼각형을 묘사한다. 재등장한 시타델은 물론, 유전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스타운과 거대한 광산을 연상시키는 무기 농장의 이미지가 뇌리에 박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두 주연의 연기도 일품이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경우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약한 소녀부터 냉철한 여전사까지 더 폭넓은 이미지를 소화하며 미완의 퓨리오사를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 디멘투스는 잔인함과 유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낸 크리스 헴스워스 덕분에 임모탄 조에 비견될 만한 빌런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퓨리오사>는 전편 못지않은 걸작이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다루다 보니 덜 직선적이고,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더 풍성해진 <매드맥스> 세계관을 맛보고, 퓨리오사의 복수극을 두세 번 곱씹어 보는 경험은 거부하기 어려운 영화적 경험이다. 전편에 열광한 관객이라면 더더욱.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분노의 도로>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래와 쇠를 달구는 그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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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리뷰
- ※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 입니다.또 다른 완벽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혹은 적어도 그런 모습을 추구하기 위해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하나의 판타지일 것이다. 코렐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는 이러한 욕망을 주제로 ‘완벽한 나’ 라는 강박적인 그늘 아래의 자기 혐오와 여성을 둘러싼 가혹한 미의 기준,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내는 쇼 비즈니스의 이면에 대해 다소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연출을 통해 풀어낸다.영화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인 왕년의 스타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나이를 이유로 방송사에서 해고되자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통해 더욱 젊고 아름다운 ‘수’(마거릿 퀄리)로 다시 태어나고 방송에 복귀하게 된다. ‘수’라는 또다른 나에 대한 집착은 갈수록 심해지며 결국 약물의 사용 규칙을 어긴 엘리자베스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점점 잃어간다. 결국 수와 자신이 필수불가결한 하나임을 망각한 엘리자베스는 수를 없애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서브스턴스를 계속해서 남용하는 파멸의 굴레에 빠진다.이러한 플롯은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한 한 여성이 결국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자멸하는 내용으로 읽힐 수 있지만, 작품 곳곳에서 이러한 외모 강박은 여성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디어와 사회를 통해 공통된 미적 기준이 주입되기 때문임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작품의 초반부터 엘리자베스는 나이를 이유로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로 인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자베스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 대하는 쇼 제작자 하비(데니스 퀘이드)의 태도와 더불어 그를 표현하는 연출 또한 풍자의 의도가 다분하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면서 새우를 먹는 장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그가 먹는 소리와 모습이 강조되며 불쾌감을 자아낸다. 이는 쇼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갑을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품화하여 끊임없이 교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역한 비도덕성을 나타낸다.극 중반에 서브스턴스를 통해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수’의 모습은 보는 이가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집요하고 대상화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기게 된다. 이는 신체의 매력 그 자체가 콘텐츠의 목적이 아님에도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미디어를 겨냥한 의도로 보인다. 이후 수는 모니터링을 이유로 자신의 신체 부위에 집중하는 남성들의 노골적인 시선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낀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착취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소비하는 주체(주로 남성)를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성적 매력을 상품으로 다뤄왔던 미디어 산업과 이를 통해 형성된 ‘이상적인 미’의 기준 아래 여성들은 신체에 대한 기형적인 집착을 보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디어에서 다루는 여성들의 모습이 점점 완벽해질수록 현실의 여성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따르기 위해 강박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극 중 "서브스턴스"라는 약물도 현실에서 이러한 강박이 주입된 여성들이 행하는 끊임없는 다이어트, 섭식장애, 과도한 성형 등 다양한 자기파괴적인 습관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외형적 이점를 가지고 정상에 올랐던 인물 엘리자베스를 통해 이상적인 미의 요구 조건을 충족한 것 같은 엘리자베스 또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객체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엘리자베스가 단순히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자업자득의 결말을 얻었다고 느끼기보다, 사회에서 형성된 가혹한 미의 기준으로 인해 자아를 잃어버린 한 여성의 비극을 연민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수'라는 존재 또한 ‘완벽한 나’의 표상으로서 현실에서 다양하게 대입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화장을 했을 때의 자신으로 볼 수도 있고, 다이어트를 통해 이상적인 몸을 가진 자신일 수도 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보정을 거친 사진, 혹은 자신이 우상화하는 연예인 등 현실의 본인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이처럼 서브스턴스는 ‘자기 안에서 분화한 또 다른 나’라는 소재로 여성을 억압하는 미의 기준과 자기 혐오를 바디 호러물로 거침없이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순간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이 다소 예상이 간다는 점과, 영화의 주제가 특별히 새로운 페미니즘적 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독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오며 체감했던, 대상화된 객체로서의 삶을 바디호러라는 강렬한 장르로 보여준 이 작품을 앞으로 얼마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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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계속 롱런할 수 있을까?
첫 장면부터 어마 무시하게 등장하는 외인부대 용병 출신 빌런 백창기(김무열 분). 살인병기 빌런은 절제된 표정으로 대담한 살인을 하며 내재된 광기를 보여준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통쾌한 핵주먹과 툭 던지는 말에 웃음을 터지게 하는 마동석의 등장. 여기에 장동철(이동휘 분)과 장이수(박지환 분)가 가세하여 영화의 재미를 살린다.
<범죄도시 3>의 무술감독이었던 허명행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 이어 메가폰을 잡았다. 무술감독 출신인 만큼 액션신에서의 연출과 편집이 훌륭하다.
최근 영화계는 고민 없이 가볍게 즐기는 이른바 '팝콘 무비'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삶이 팍팍해지고 어두운 뉴스가 많은 세상이다. 관객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 영화를 거금의 티켓값을 지불하며 보고 싶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곳곳에 잔재미를 숨겨 놓아 관객들이 잠시라도 지루해질 틈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고 싶은 게다.
록키와 람보 시리즈에 이어, 다이하드와 스파이더맨, 엑스맨처럼 '시리즈'이기에 팬덤이 있고 극장에 걸리면 반드시 봐야 할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성룡이나 이소룡, 그리고 <가문의 영광> 시리즈처럼 <범죄도시> 시리즈도 내내 비슷한 플롯이 반복되면 관객들이 질리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다.
시리즈의 태생적 한계는 있다. 그럼에도 같은 느낌인데도 무언가 다른 맛을 주어 관객에게 어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달콤하고 차가운 맛은 동일하나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제작진이 공언한 대로 범죄도시가 8번째 시리즈까지 롱런하려면 꽤 정성 들인 적절한 변주가 필요하리라. 시리즈이므로 익숙한 전개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으나, 관객에게 진부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빌런의 변주가 중요하다. 묵직하고 강하면서도 스피디한 액션을 갖춘 마동석은 상수(常數)이고 빌런은 변수(變數)다. 아이스크림에 비유하면 상수인 우유 아이스크림 보숭이에 바닐라, 녹차, 커피, 블루베리, 망고 등 독특한 맛으로 변주를 주어야 한다.
빌런을 한국인이나 동양인으로 한정하지 말고 냉혹한 백인 빌런을 쓰면 어떨까? 남성이 아니라 길복순처럼 여성 킬러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기승전 마동석 승리로 결말짓기보다는 마동석이 빌런에게 당하고 위기를 맞는 것으로 하여 다음 편으로 넘기는 건 어떨까?
한국 영화계가 낳은 꽤 괜찮은 시리즈가 오랫동안 인기를 구가하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에 자극받아 창의적인 한국의 작가들이 더욱 중독성 있는 시리즈물을 세계 극장가에 내놓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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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X 콩 | 더 크고 화려하지만 특별함을 잃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질라와의 혈투를 끝낸 후 할로우 어스에 남은 콩은 새로운 집을 꾸리고, 사냥을 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공허하다. 그래서 그는 할로우 어스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자기 동족을 애타게 찾아 헤맨다. 한편, 지상 세계에서 동면을 취하던 고질라는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나더니 원자력 발전소를 습격해 방사능을 충전하는 등 전투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느 날, 콩과 헤어지고 지상 세계에 남은 이위 족 소녀 '지아'(케일리 호틀)는 할로우 어스로부터 구조 신호를 받기 시작한다. 신호의 발신지를 할로우 어스에 내려간 '아일린'(레베카 홀)과 모나크는 이내 상황을 파악한다. 콩이 찾아낸 동족 스카 킹이 알고 보니 할로우 어스와 지상 세계를 모두 정복하려는 빌런인 것. 이에 콩과 인간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한 고질라와 팀을 이룰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몬스터버스의 고질병
2014년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를 시작으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콩: 스컬 아일랜드>, <고질라 VS. 콩>까지 착실하게 성장한 몬스터버스. MCU를 비롯한 다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비해 작품이 나오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몬스터버스는 확실한 스타 괴수 둘, 고질라와 콩을 앞세워서 세계관을 키웠다. 작년에는 Apple TV+와 손잡고 드라마 <모나크: 레거시 오브 몬스터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몬스터버스는 인간 캐릭터의 비중과 스토리텔링 문제라는 비판을 거듭 피하지 못했다. 팬들은 괴수들의 싸움을 원한다. 그 싸움을 붙이는 역할은 인간이다. 하지만 정작 도시를 파괴하는 싸움에서 인간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자연히 스토리텔링은 산으로 간다. 그렇다고 인간의 비중을 키울 수도 없다. 자칫하면 변신 로봇의 싸움 대신 로봇 잡는 미군이 나오는 마이클 베이 표 <트랜스포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
몬스터버스의 신작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는 이 고질병을 없애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고질라, 콩, 인간 세 파트로 플롯을 나눈 후 공통 모티브를 부여해 통일감을 부여했다. 또 이를 더욱 커지고 화려해진 액션과 세계관으로 포장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모순이 튀어나왔다는 것. 그 결과 <고질라 X 콩>은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버스의 고질병을 고치는 데 실패했다.
가족을 찾는 여정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이 스토리텔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선택한 치료제는 바로 '가족'과 '집'이다. 영화는 콩, 인간, 고질라의 서사 모두 가족과 집이라는 공통 모티브 하에서 하나로 엮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선 전작의 끝에서 본래 자기 영역인 할로우 어스에 정착한 콩은 자기 종족을 찾으려는 탐색을 멈추지 않고, 우연히 스카 킹이 지배하는 동족의 왕국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는 인간 쪽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이위 족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콩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인 지아. 콩을 떠나보낸 후 아일린에게 입양된 그녀는 좀처럼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할로우 어스에서 전송된 전파 신호의 영향력 때문에 환상을 보며 더욱 괴로워한다. 영화는 그런 그녀가 할로우 어스에서 숨어 지내던 이위 족과 재회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각자의 집을 지켜라
가족을 찾은 콩과 지아는 이제 스카 킹을 막아야 한다. 이때 <고질라 X 콩>은 역사적으로 콩이 인간을, 고질라가 지상세계를 보호했다는 설정을 등장시킨다. 그 덕분에 고질라는 스카 킹과의 전투에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다. 고질라가 원자력 발전소를 습격하고 다른 타이탄의 영역을 침범한 행위에도 당위성이 부여된다. 그렇게 콩, 고질라, 인간은 각자의 집을 지키기 위해 팀으로 뭉친다.
물론 이 전개가 매끄럽지는 않다. 이위 족 마을을 찾아내는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라 억지스럽고, 흥미롭지 않으니 극의 템포도 늘어진다. 이위 족 묘사는 바깥 세계를 대하는 서양인의 타자적 시선을 답습한 듯한 인상을 준다. 콩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고질라의 분량, 이유를 알기 어려운 모스라의 등장도 문제다. 하지만 전작들의 빈약한 스토리텔링을 고려하면, 어떻게든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 자체는 헛되지 않아 보인다.
액션은 만족 3, 실망 7
이처럼 나름대로 착실히 쌓아 올린 토대 위에서 <고질라 X 콩>은 화끈한 액션을 통해 가족과 집을 지키려는 싸움을 묘사한다. 일단 인간이 철저히 조력자와 목격자 역할만 맡은 결과, 액션이 끊기지 않고 시원하게 이어진다. 또 초점을 철저히 괴수들의 전쟁에만 맞춘 덕분에 괴수들의 액션 분량도 상당하다. 후반부 30~40분 정도가 오로지 액션으로 가득한 수준이다. 콩과 고질라의 새 무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도 팀을 이룬 액션 시퀀스가 눈길을 끈다. 콩은 고질라와, 스카 킹은 시모와 편을 이뤄 혈투를 벌인다. 그간 몬스터버스 작품에서 클라이맥스가 1 대 1 내지는 2 대 1 구도로 이뤄진 것에 비해 경우의 수가 늘어난 셈이다. 어린 유인원 타이탄, 수코가 싸움에 참여하자 3 대 2 구도가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본 작의 액션 구성이나 연출은 전작의 홍콩 시퀀스에 비해서도 더 다양해졌다.
그러나 실망도 적지 않다. 일단 빌런의 역할이 애매하다. 전작에서 메카고질라가 고질라와 콩을 혼자 상대한 것과 달리, 스카 킹은 콩을 상대하기도 벅차한다. 스카 킹의 조력자인 시모 역시 줄줄이 붙은 설정에 비해 고질라만큼의 강력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자연히 전투씬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느슨하다. 이에 더해 스크린이 박을 화면에서 고질라와 시모의 CG가 유독 어색한 나머지 몰입감이 깨지기도 한다.
정체성의 변화가 낳은 모순
이에 더해 특히 고질라의 액션은 이질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롤터 해협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고, 두 발로 사막을 질주하며, 콩을 상대하면서 프로레슬링 기술을 보여주는 고질라의 모습은 지나치게 사람 같아 보인다. 전작들에서 묵직하고 위엄 있는 액션을 주로 선보였던 고질라와는 차이가 크다.
이는 <고질라 VS. 콩>부터 세계관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솔로 영화 두 편에서 고질라는 지구라는 자연의 힘 그 자체를 상징했다. 그 앞에서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고질라를 경외했다. 자연히 영화의 분위기도 무겁고, 진중했다.
반면에 이번 영화나 전작 속 고질라는 자연의 힘을 상징화한 존재보다는 하나의 인격체에 가깝다. 구체적으로는 지상과 할로우 어스의 균형을 보호하는 심판자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질라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액션 연출과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계관의 차원에서는 일관성이 약해지고, 관객 입장에서는 기대와 다른 묘사에 실망하기 쉽다.
세계관 확장이 능사는 아니야
결이 비슷한 문제가 또 있다. <고질라 X 콩>은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 할로우 어스를 본격적으로 등장시켰다. 그런데 정작 할로우 어스에서의 시퀀스는 지상에서의 장면보다 지루하다. 모든 생명체가 거대해진 할로우 어스 공간에서는 콩이든 고질라든 기대되는 스케일과 위압감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 콩이 괴수를 사냥하고 스카 킹의 본거지를 찾는 장면만 보더라도 몬스터버스보다는 <혹성탈출>에 가깝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당장 콜로세움에서 잠을 청하고,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를 파괴하는 고질라의 모습만 모더라도 할로우 어스의 등장이 몬스터버스의 정체성과 매력 확립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콩과 고질라가 피라미드를 한 손으로 부수는 카이로에서의 액션 시퀀스도 다르지 않다.
결국 몬스터버스의 고질병을 해결하려는 야심 찬 포부와 달리 <고질라 X 콩>은 오히려 더 복합적인 문제만 안겨버린 모양새다. 내실을 다지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고, 더 크고 화려한 볼거리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시리즈 고유의 매력마저 약해져 버렸으니까. 고질라와 콩의 화제성이 뒷받침한 몬스터버스의 미래가 우려되는 신작, <고질라 X 콩>이다.
Poor 형편없음
스케일과 완성도의 반비례는 몬스터버스의 기본 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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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작품인지 모를 슬래셔 무비
<70년대 작품인지 모를 슬래셔 무비>
텍사스 전기톱 학살 The Texas Chainsaw Massacre (1974, 토비 후퍼) 리뷰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상영작 ‘스트레인지 오마쥬’
프로그램 노트
다섯 명의 십대들이 낡은 밴을 타고 텍사스의 한적한 마을을 지나 여행을 떠난다. 이 마을은 일행 중 한 명의 조부모가 과거에 살았던 곳이자, 묻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하게 기름이 떨어진 아이들은 조부모의 옛 집에서 잠시 머물기로 하고, 근처에 낡은 자동차들과 가스 발전기가 돌아가는 의문의 집을 발견한다. 기름을 구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순간부터, 이들은 끔찍한 식인 가족에게 차례로 사냥당하는 악몽 같은 공포에 휘말리게 된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토비 후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극히 적은 예산과 16mm 필름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후퍼 감독은 연출뿐 아니라 각본과 음악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으며,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아가 이후 수많은 슬래셔 영화의 전범이 된 이 작품은, 살인 도구의 활용, 연쇄 살인마 캐릭터의 정립, 피해자 묘사 방식 등 장르의 공식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충격적인 공포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강렬한 비주얼과 음산한 분위기로 관객의 신경을 끝까지 곤두서게 만든다. 심약한 이들이라면, 각오하고 볼 것. (남종석)
70년대 작품인지 모를 슬래셔 무비
등장인물들은 차례대로 식인 가족의 집에 스스로 찾아 걸어 들어가게 된다. 잦은 줌 인, 하이/로우 앵글과 빠른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컷 전환이 불안을 고조시킨다. 등장인물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하이 앵글에서 등장인물들이 자꾸만 ‘눌리는’ 느낌을 주는 로우 앵글 구도의 전환이나, 묘하게 어긋나는 컷 전환이 시각적으로 위협을 증폭시킨다. 그중에서도 여주인공 샐리(마릴린 번즈)가 식탁 앞에서 공포에 질려 눈동자를 굴리는 장면은 가히 강렬하다. 적은 제작비와 70년대 작품이라는 표현의 한계에도 83분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광기의 가족
스스로 손을 베는 히치하이커 남성, “기름이 없다”라고 말하는 주유소 남성, 그리고 텍사스 전기톱으로 인간을 도축하는 남성까지. 이들은 모두 하나의 가족이자 사냥의 동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모두 기묘하다는 점이다. 소를 도축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해 자랑하기도, 실실 웃으며 칼을 들이밀기도 하며 남들과 다른 기묘한 분위기를 내비친다. 기름이 없어 주유소에 들린 아이들에게 뜬금없이 고기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건 이들에게서 일말의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인 가족에게 살인은 일상의 연장선이다. 비인간적인 행위조차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이는 공포의 핵심을 일상성에 내재한 광기로 끌어낸다. 영화 속 식인 가족은 쇠락한 미국의 농촌에 대한 잔혹한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초반부, 달리는 차 안에서 망치로 한 번에 머리를 내려치는 기술을 가졌다는 도축업자 이야기를 하며 이제는 기계가 이를 대체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도축업을 하는 히치하이커 남성이 차에 올라탄다. 후반부, 식인 가족은 노쇠한 할아버지에게 전설의 실력을 보여달라며 샐리의 머리를 붙잡고 망치를 들린다. 하지만, 망치를 잡을 힘조차 없는 할아버지는 도축에 실패한다. 영화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도태된 ‘옛 질서’가 어떻게 괴물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도축업과 실직 등의 사회적 배경이 가족의 광기와 역사에 설득력을 더한다.
암묵적 룰을 깨부수는 잔혹함
‘휠체어를 탄 사회적 약자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암묵적 룰을 과감히 깨부순다. 뚱뚱하고 휠체어에만 의존해 움직일 수 있는 캐릭터는 다른 친구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한다. 그는 자신의 칼로 스스로 손을 베는 히치하이커 남성이 대단하다는 동경을 내비치며,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신경질적으로 입방귀를 뀌며 흉내를 낸다. 관객은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최종 생존자는 아마 그일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잔혹하게 사냥당한다. 캄캄한 풀숲에서 샐리와 함께 친구들을 찾으러 나서다 맞닥뜨린 텍사스 전기톱 남성에 무차별하게 당하고 만다. 구성원들 살해 장면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묘사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깨닫는다. 이 영화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다는 것을. 모두가 식인 가족에게 붙잡혀 살해당할 것이라고.
사라진 제리, 파이널 걸 샐리의 탄생
사냥 도중에 사라진 제리(알렌 덴지거)는 구조를 뒤흔든다. 제리의 시체는 끝끝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조차 생략된 퇴장은 관객에게 극도의 긴장을 심어준다. 이는 샐리(마릴린 번즈)가 합심하여 복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그 예상은 무너진다. 남녀가 힘을 합쳐 도망친다는 슬래셔 공식을 부수고, 이후의 이야기는 샐리 혼자 지옥에서 탈출하려는 생존극으로 치닫는다. 피투성이가 되어 미친 듯이 웃으며 도망치는 샐리의 표정은 해방이라기보다 생존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 결말 이후 수많은 호러 영화의 ‘파이널 걸’이라는 여성 캐릭터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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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콩 영화 후기 / 몬스터 세계의 통합 / 새로운 몬스터버스의 탄생 / 고질라와 콩의 역대급 맞짱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고질라 VS. 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있을법한데, 쿠키영상이 없더라구요~#고질라, #콩, #몬스터버스, #블록버스터, #액션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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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마릴린 먼로 미스터리 : 비공개 테이프> 공식 예고편
할리우드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사후 수십 년간 온갖 음모론과 루머를 낳으며, 마릴린 먼로의 재능과 영민함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측근들의 녹음 테이프를 통해 알아보는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순간들. 화려하고 복잡했던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며, 운명의 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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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빌스 나잇> 메인 예고편
고향으로 돌아와 경찰이 된 참전 용사 '빌리 진 피닉'.
어느 날, 마을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던 중 박물관에서 사라진 칼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