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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artist2025-08-24 23:27:10

나래가 펼쳐진다. 씹으면 씹을 수록,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리뷰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예술이며, 주인공이 존재한다면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관객은 주인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에 이른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공감되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실패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영화에는 실패가 없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자본이 들어간 결과물이기에 다소 아쉬운 작품일 수는 있어도 단순히 예술성으로 그 가치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관객이 주인공에게 이입하도록 설계했는데 실패했다면 아쉬운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주인공을 ‘공감 불가능한 인물’로 설정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는 “왜 저 인물이 이해되지 않는가”에서 “이해되지 않는 인물을 통해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로 질문이 바뀐다. 만약 감독이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의도와 아쉬움 사이에서 헤매게 되겠지만, 결국 그 과정 자체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정보와 행동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만 가득하다. 그러나 그 불친절한 태도가 오히려 우리 가정과 인생을 닮아 있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이해란 본래 얼마나 모순적인가.

 

 

 

 

<내 말 좀 들어줘>가 끝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불쾌감’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 버럭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구는 팬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곡소리 같은 아침 인사, 결벽적 습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마당, 심지어 마당에 들어온 작은 동물에도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은 그녀가 자기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인물임을 드러낸다. 가구점 직원에게 무례하게 굴고, 마주친 남성에게 욕을 퍼붓고, 병원·마트·가족에게조차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다. 보통 영화라면 이런 인물에게 어떤 ‘사연’을 부여해 공감을 유도하겠지만, 팬지에게는 그런 장치가 거의 없다. 묘지 장면에서 동생 샨텔과 대화를 나누며 어렴풋이 과거가 드러나지만,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엔 부족하다.

 

영화의 ‘화’는 팬지에게 집중되지만 그녀만 화내는 건 아니다. 말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것 또한 화가 될 수 있다. 남편 데이비드는 무표정과 무심으로 일관하며, 아내의 말을 흘려듣고, 아내가 좋아한 꽃을 몰래 버린다. 팬지가 왜 분노로 가득한지, 데이비드가 왜 무심을 넘어 냉대하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그들의 현재를 마주한다.

 

 

이때 팬지와 샨텔의 대비가 극명해진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손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딸들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샨텔은 팬지와 정반대다. 샨텔의 집이 작은 테라스에도 식물로 가득하고 개방적이라면, 팬지의 집은 아무것도 키우지 않은 채 높은 담벼락에 갇혀 있다. 이는 ‘듣는 태도’의 차이와 맞닿아 있다. 팬지는 늘 말을 쏟아내며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샨텔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 긍정적인 가정의 태도를 제시한다.

 

팬지와 샨텔, 그리고 두 딸의 어머니 가정은 모두 아버지가 부재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한쪽은 화목함으로, 다른 쪽은 냉대로 채워졌다. 무덤 앞에서 팬지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차별받았다고 토로할 때 샨텔은 처음엔 부정했지만 끝내 인정하며 위로한다. 진실 여부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과거의 참·거짓이 아니라, 듣는 자와 말하는 자의 관계다. 결국 팬지는 이해받고 싶었고, 샨텔은 최소한 인정하려 했다. 영화는 바로 그 순간을 강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수리하지 못한 데이비드의 직업은 수리공이다. 그는 허리를 다쳐 눈물을 삼키지만, 아내를 불러도 내려오지 않는 상황에 결국 울컥한다. 영화는 그 눈물과 팬지의 화난 표정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정은 어떤 상태인가요?”

 

포스터 카피의 문장은 영화의 핵심을 집약한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해.”

 

가족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때로는 납득할 수 없고, 때로는 못마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영화는 이 단순하지만 잊히기 쉬운 진실을 되새기게 한다.

작성자 . being artist

출처 . https://blog.naver.com/le_film_artiste_ho/22398192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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