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1-03-20 00:00:00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마침내 돌아온 영웅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리뷰
1. '슈퍼맨(헨리 카빌)'의 비명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지구의 모두가 슬픔에 잠긴 사이 '배트맨(벤 에플렉)'과 '원더우먼(갤 가돗)'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직감한다. 지구의 수호자가 죽었음을, 자신을 저지할 최후의 보루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행성을 파괴할 무기 '마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를 침공할 '스테픈울프(키어런 하인즈)'와 그 흑막인 '다크사이드(레이 포터)'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이에 그들은 슈퍼맨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유지를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영웅인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과 '사이보그(레이 피셔)', '플래시(에즈라 밀러)'를 찾아 나선다.
팬들의 큰 기대 속에 마침내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 대해 영화 리뷰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의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은 총평을 내렸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감독의 비전에 맞게 확장되는 거대한 장면들로 제목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팬들을 만족시킨다(Zack Snyder's Justice League lives up to its title with a sprawling cut that expands to fit the director's vision -- and should satisfy the fans who willed it into existence)."
평가대로 팬들이 만족할 장면, 확장된 거대한 장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잭 스나이더 특유의 슬로 모션에 담긴 각 히어로의 능력과 역할을 최대한으로 부각하는 액션,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Junkie XL의 음악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1.33 대 1의 화면비율을 통해 전달되는 감독 특유의 다크한 영상에는 수많은 스펙터클과 상징들이 빼곡하다. 기존에 <어벤져스> 속 히어로들의 코스튬만 바꾼 듯 보였던 등장인물들도 커진 분량 안에서 각각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새롭게 디자인된 빌런들 역시 거대한 위압감을 선사하며 선과 악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한다.
2. 그렇다면 이 환상적인 볼거리들, 거대한 컷들이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비전은 과연 무엇일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잠시 시선을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영화가 슈퍼맨이 둠즈데이에게 찔려 사망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결말로부터 곧장 이어지는 만큼, <배트맨 대 슈퍼맨>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이해할 때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갖는 진짜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아킬레우스는 그 분노를 거름 삼아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인다. 그의 시체를 전차로 끌고 다니며 모욕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막사를 찾아온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만난 그는 변한다. 프리아모스의 용기와 부성애에 감명받은 그는 역시 아들을 사지에 내보낸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휴전을 제안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며,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일리아스'의 흐름을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정확히 따른다. 고담시의 수많은 범죄자와 맞서 싸우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로빈을 잃은 배트맨. 그는 어느 날 하늘에서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는 슈퍼맨을 보며 그동안 쌓아온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에 그는 슈퍼맨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의 발목에 줄을 묶어 온갖 고통을 준 끝에 그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던 슈퍼맨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목격한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슈퍼맨과 휴전하고, 더 큰 위험인 둠즈데이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전투에서 사망한 슈퍼맨의 장례식에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3. 약간의 순서만 바뀐 채 일리아스의 서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면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저스티스 리그>를 위해 남긴 두 개의 주춧돌을 알아볼 수 있다. 하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이 사실상 분노에 가득 찼던 배트맨이 아킬레우스처럼 인간성을 되찾아 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배트맨의 대적자였던 슈퍼맨은 헥토르와 프리아모스가 보여줬던 것처럼 사랑, 희생, 용기와 같은 고결한 인간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슈퍼맨의 죽음을 계기로 배트맨이 저스티스 리그를 만든다는 결론은 곧 인간다움을 잃게 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는 단독 영화에서 언제나 사랑의 힘을 강조했던 원더우먼이 배트맨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로 돌아와 보자.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가 기존 버전으로부터 가장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세 명의 히어로, 아쿠아맨, 플래시, 사이보그의 서사가 보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전작부터 만들어 온 큰 그림이 온전해진 결정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세 히어로는 비록 정도는 다를지언정 전작에서의 배트맨처럼 제각기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은 자신을 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은 어머니이자, 아틀란티스의 왕 아틀라나에게 분노해 아틀란티스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쓴 누명을 풀기 위해 범죄학을 공부하는 플래시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에게 크게 실망한다. 사이보그 역시 일하느라 바빠서 자신의 미식축구 경기에 오지 않고, 어머니와 자신의 교통사고도 막지 못한, 심지어 자신을 끔찍한 기계와 결합시킨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배트맨과 원더우먼을 만나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분노와 실망감을 떨쳐내고 슈퍼맨이 상징하는 인간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아틀란티스가 스테픈 울프에게 공격당한 후 아틀란티스인들의 간청으로부터 그들의 절실함을 느낀 아쿠아맨은 슈퍼맨의 유지를 받들겠다던 배트맨을 떠올리고, 어미니의 오지창과 함께 그에게 합류한다. 플래시는 화만 유발하던 "너만의 미래를 만들어라"라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세상을 구할 기회를 잡는다. 사이보그는 아버지의 희생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그의 사랑을 깨닫고, 그가 기대대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영웅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결말로부터 곧장 이어지면서 전작의 서사를 계승함과 동시에 더욱 확장시킨다.
4. 그렇기에 잭 스나이더의 촬영본 중 4분의 1 가량만 활용된 조스 웨던 감독의 기존 <저스티스 리그>에서 각각의 플롯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고, 영화의 짜임새가 부족해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가족사로 인해 중간에 하차했던 2017년의 <저스티스 리그>는 각 히어로의 서사가 부족하고, 6명의 히어로가 하나의 팀으로 묶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슈퍼맨의 부활을 비롯해 중요한 에피소드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에 5명의 히어로가 슈퍼맨을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로 인한 비인간적인 면모로부터 벗어나는 서사로 연결된 이번 작품은 다르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지구와 모든 인간을 말살하겠다는 스테판 울프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 그들이 인간의 고결함과 희망의 상징인 슈퍼맨을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히어로인 슈퍼맨보다 한 인간인 클라크 켄트를 잊지 않았던 로이스 레인이 부활한 그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개 등은 큰 그림 안에서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진다.
이처럼 '일리아스'와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반복, 변형하는 각 인물의 서사와 플롯이 제자리를 찾아 가자 잭 스나이더의 비전은 화려한 액션과 Junkie XL의 웅장한 사운드트랙과 더불어 큰 전율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로이스 레인을 잃고 분노로 타락해 지구를 파괴한 슈퍼맨에 맞서 조커를 비롯한 빌런과도 손잡은 배트맨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는 반복, 변형, 확장되던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전복될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케 하며 취소된 속편에 대한 아쉬움과 일말의 희망을 동시에 자아낸다.
5. 물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우선 상술했듯이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미리 관람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2017년에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은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떤 장면이 편집되었고, 어떠한 내용이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하나 줄어든다.
슬로 모션이 남발되는 경향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를 남기고, 개그 씬처럼 흐름을 끊는 장면들이 있다 보니 총 6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4시간 2분의 분량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플래시가 아이리스 웨스트를 구하고, 사이보그가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시험해보는 것과 같이 영화 전개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장면들도 리듬을 잡아먹는다. 또한 배트맨의 악몽, 빌런들의 집합인 인저스티스 리그를 만들려는 렉스 루터의 음모, 새로운 캐릭터인 마션 맨헌터의 등장 등은 DC 영화와 코믹스 팬들이 아니라면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사족처럼 보일 수 있다.
6. 한편 영화 외적으로도 주목할 지점이 있다. 사실 제작 도중에 교체된 감독의 촬영본으로 완전히 재편집한 영화가 공개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DVD나 블루레이를 출시할 때 감독판 혹은 확장판을 공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우다. 이는 소비자인 팬덤의 강력한 요청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앞으로의 반응에 따라 소비자와 제작자의 역학 구도가 뒤바뀌는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수 있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스타 감독이 아니라면 편집권이 제한되어 감독의 구상이 온전히 발현되기 힘든 할리우드 시스템에 균열이 가해진 사례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영화 팬들에게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단지 트렌드를 쫓는 것 대신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감독들의 비전이 온전히 빛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 결과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몇몇 두드러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탕자로서 수많은 팬들에게 축제나 다름없는 귀환을 알린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고대하던 잭 스나이더와 DC의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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