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9-18 22:51:38
[30th BIFF 데일리] 마음을 다 바친 사랑이 보답받을 수 있을까
영화 <미러 NO.3> 리뷰
원소 시리즈 대장정의 마지막 장, <미러 NO.3>을 펼치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원소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미러 NO.3>는 순식간에 찾아온 상실과 사랑을 통해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다.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것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그 사건이 죄책감의 감정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왠지 끈적하면서도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그 눈빛은 괜스레 찝찝함을 남겼다. 하지만 라우라에겐 그녀의 눈빛이 관심으로 느껴진 것일까.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그녀의 곁에 있겠다고 말하며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누군가의 흔적을 자신에게서 찾는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그 미묘한 긴장감을 포착하게 된다.
‘대체재’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행동은 불안감을 동반한다. 상실을 겪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가족의 어색함은 단절로 이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라우라는 점차 가족 간 공백을 메우지만, 인물들의 공허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랑을 필요로 하면서도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라우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고 전부터 우울에 잠식된 로라는 중요한 순간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남자친구에게 베를린으로 데려달라는 요청이 사건의 계기가 되었고, 로라는 배티 가족과 맞닥뜨리게 된다. 배티는 공허를 드러내며 가족 해체를 앞당기고, 리차드와 막스는 반복되는 수리를 통해 균열을 드러낸다. 어쩌면 잘못된 만남일지도 모를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을까.
상영정보
09-18 17:00 CGV 센텀시티 IMAX관
09-21 09: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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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 페인 |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를 찾는 여행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김새, 성격, 취향이 모두 다른 두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 어릴 때는 형제나 다름없었지만 여러 이유로 소원해졌던 두 사촌 형제는 오랜만에 재회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왔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그들은 이민 전에 할머니가 살았던 집을 방문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인 폴란드로 떠난다.
호텔에 도착한 뒤 폴란드계 유대인의 역사를 살피는 가이드 투어에 합류한 두 사촌. 하지만 투어 중 데이비드와 벤지는 전혀 다른 성향 차이 때문에 끊임없이 싸운다. 심지어 벤지는 가이드인 '제임스'(윌 샤프)와도,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엘로지'(커트 에지아완), '마샤'(제니퍼 그레이)와도 갈등을 빚는다. 그들 사이에 낀 데이비드는 벤지에게 점점 화가 쌓이고, 그들의 관계는 새 국면에 접어든다.
진짜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폴란드 여행
몇 년 전부터 스토리텔링은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은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지 않는 영역을 찾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마케팅의 경우 소비자로 하여금 홍보하는 대상 그 자체보다, 대상이 속한 서사에 더 빠져들게 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약속한다. 저널리즘도 스토리텔링을 활용한다. 이제 기자들은 정보만 전달하는 대신 사건의 맥락 안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소설 같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마냥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스토리텔링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더 고립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서사는 마치 상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된다. 스토리텔링의 서사는 잠시 인식된 후에 사라지는 정보일 뿐, 친밀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야기하지 않고 광고하며, 주목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공동체가 아닌, 소비사회를 형성"한다. 달리 말해 지금의 스토리텔링은 소비자를 만들 뿐, 과거 '일리아스'나 '아이네이아스' 같은 서사시가 한 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한 것과 같은 역할을 대신하지 못한다. 유럽에서 근대 소설이 국민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 및 공동체를 구축했던 기능도 스토리텔링에게 기대할 수 없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감독, 작가, 제작자, 주연을 맡은 영화 <리얼 페인>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두 사촌 형제는 작고한 할머니의 폴란드 집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그들은 여행 내내 싸운다. 처음에는 성향 차이가 갈등의 원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말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생각이 바뀐다. <리얼 페인>은 진정한 이야기의 힘을 잊은 세태가 싸움의 이유였음을 투박하나 진정성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만 가득한 여행
데이비드와 벤지의 여행기가 처음부터 진중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리얼 페인>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며,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는 두 사촌 형제는 자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공항까지 가는 방법도,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다르니까. 심지어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서로의 직업도 겨우 알아가는 수준이다.
<리얼 페인>은 이처럼 갈등이 산재한 여행을 데이비드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그는 자신과 성향이 전혀 다른 벤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오프닝부터 그렇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데이비드는 벤지가 제때 도착할지 걱정하며 여러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벤지는 그중 단 하나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걱정 가득히 공항에 도착한 데이비드를 만난 후에야 벤지는 몇 시간 전에 미리 와 있었다고 태연히 대답한다.
폴란드에 도착한 후에도 데이비드의 속은 타들어 간다. 벤지의 기행 때문이다. 그는 호텔로 마리화나를 주문하고, 마리화나를 피겠다며 호텔 옥상 문을 멋대로 열고 나간다. 음악 없이는 샤워를 못한다면서 데이비드의 핸드폰을 멋대로 빌려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가이드 투어에 합류한 후에도 데이비드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는 느낀 점을 여과 없이 말하는 벤지 특유의 화법이 다른 이들에게 혹시 무례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개인에서 공동체로의 변화
데이비드의 심정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떠난 여행 도중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상황이니까. 이처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도입부는 <리얼 페인>의 각본이 얼마나 영리한 지를 방증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사촌의 갈등이 철학적,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의 특이점은 두 장면에서 암시된다. 우선 제임스의 가이드 투어에 참가한 이들은 호텔 로비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다. 이때 데이비드나 다른 일행은 어색하게 입을 여다. 그에 반해 벤지는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이나 데이비드와의 관계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한다. 르완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엘로지나 남편과 이혼했다는 마샤의 사연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격의 없는 표현이 자칫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른 하나는 기념사진 시퀀스다. 투어 일행은 폴란드 군인의 공헌을 기리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각자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만, 이내 벤지가 독특한 이벤트를 만든다. 그는 동상 모습에 착안하여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꾸며 낸다. 다른 일행에게 군의관, 포병, 장교 역할을 맡기며 생생하면서도 독특한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직 단 한 사람, 데이비드만 이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이비드와 벤지는 어색해진다. 데이비드는 예의 없어 보일 정도로 타인의 개인사를 물어보고, 개인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벤지가 불편하다. 반면에 투어 일행은 벤지를 접착제 삼아서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데이비드는 벤지와 미묘하게 어색해진다. 정작 사촌인 본인은 그 안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벤지가 불편한 진짜 이유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가 느낀 불편함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 이유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벤지는 언제든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안에서 사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 수용소가 있는 도시로 가는 길에 과거 유대인과 달리 편하고 고급스러운 기차를 타는 게 고통스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개인의 서사와 공동체의 서사 간의 접점을 총체적으로 예민하게 느끼고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데이비드는 다르다. 그는 벤지를 머리로 이해하지만,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불편해한다. 벤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여행이 끝나면 뭘 할 거냐는 벤지의 질문에 그는 그저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답한다. 종종 만나자는 사촌의 말에도 벤지가 뉴욕으로 오라는 조건을 달며 미적지근하게 대한다. 자기가 벤지가 사는 시골로 가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게 그 이유다.
데이비드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현대적 일상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서사의 위기>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체제의 스토리텔링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성과와 생산성을 높이려고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모든 개인은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자기 최적화, 자기실현 서사를 추구한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타인과 의미를 공유하는 이야기가 부족해지고, 안정적인 공동체도 없다.
즉, 데이비드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현대인이다. 이는 그가 타인의 사연을 궁금해하면서도 그들에게 깊이 공감할 여유까지는 지니지 못한 이유다. 공동체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해하더라도 자신과 직접 연관 있다고 실감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벤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리얼 페인>은 스토리텔링에 이야기가 묻힌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여행기인 셈이다.
벤지와 이야기의 진가
하지만 그렇기에 데이비드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벤지라는 캐릭터의 진가가 역설적으로 명확해진다. 특히 투어 가이드 제임스와 벤지의 관계가 흥미롭다. 투어 도중 제임스와 벤지는 여러 차례 충돌한다. 벤지는 제임스의 투어 내용을 번번이 비판한다. 투어가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와 관련된 장소와 정보로 가득하지만, 정작 과거의 공동체와 현재의 우리가 연결되는 경험이 없다고 지적한다.
공동묘지에 들렀을 때가 대표적이다. 벤지는 묘지에 묻힌 이들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제임스를 막아 세우며 지금은 정보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역사를 배우고 외우는 것을 넘어서 실존했던 공동체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체화하는 맥락을 느낄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더 나아가 벤지는 유대 전통에 따라 묘비석 위에 돌을 올려주자고 제안하고, 제임스는 그의 말을 따른다.
그런데 투어가 끝난 후 제임스는 벤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 누구도 주지 않았던, 하지만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피드백을 받았다면서. 이전까지 그의 가이드 투어는 그저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를 형성하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제임스는 그의 투어 안에 내재했지만, 자본 논리에 가려졌던 진정한 서사와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다. 이야기와 공동체의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벤지의 특별함 덕분이다.
이 광경은 <서사의 위기> 속 "이야기는 사회적 응집성을 만든다. 이야기는 의미를 제공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치를 전달한다"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할머니가 별세한 후에 벤지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연도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개인적인 괴로움의 결과가 아니라, 이야기의 의미를 잊은 공동체의 위기와 공허함에 대한 비유이자 의인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늘 자기 자리에 있던 이야기
영화의 결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리얼 페인>은 데이비드의 변화로 끝을 장식한다. 생전에 할머니가 지내던 집 앞에 도착한 뒤, 데이비드는 제안한다. 공동묘지에서 벤지가 그랬듯이, 집 앞에 돌을 내려놓자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도 데이비드가 벤지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퍽 다르다. 그는 벤지를 먼저 집에 초대하고, 벤지와 할머니 간에 있었던 독특한 에피소드를 재현하면서 작별 인사를 건넨다.
결국 데이비드의 변화는 그의 여행기가 잊고 지내던 폴란드계 유대인이라는 혈연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재발견하는 여정이었기에 의미심장하다. 이에 더해 그의 여행기는 그가 SNS 광고업 종사자라서 더욱 입체적이다. 그의 변화는 이야기의 본래 기능, 사람들을 응집하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SNS는 사람들을 파편화된 스토리에 빠트린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역설적인 맛이 있다.
그의 변화 덕분에 오프닝과 클로징의 대조도 뇌리에 각인된다. 결말에서 카메라는 데이비드와 헤어진 후 공항에 남은 벤지를 비춘다. 이 장면은 벤지가 공항에 먼저 와 있었던 오프닝과 이어진다. 마치 벤지, 곧 이야기는 데이비드 같은 현대인을 언제나 기다린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에 공간적 맥락을 더하면 벤지의 가치는 더 돋보인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항은 가장 개인적이고 비서사적인 공간이니까.
이처럼 두 사촌의 여행기는 개인과 공동체의 접점, 스토리텔링과 이야기의 차이라는 틀에 비추어 곱씹을수록 맛이 진해진다. <리얼 페인>이 제40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왈도 솔트 각본상을 수상한 힘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셈이다. 더 나아가 제시 아이젠버그를 재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리얼 페인>은 특유의 '너드' 같은 연기 스타일에 갇힌 듯 보이던 그가 알을 깨고 감독, 제작자, 작가로서 태어나는 전환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스토리텔링에 숨 막힌 개인을 이야기가 구원하는 방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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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터슨〉이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면
감독이 자신의 부모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는 여간해서는 거리두기가 어려운 영화다. 가사노동을 하는 작은새와 경비원으로 일하는 돼지씨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다. 두 딸을 낳고 키웠고, 함께 슈퍼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소박한 아파트에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이 묻어난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아온 서민 부부의 전형이다.
작은새는 수줍음 많은 다정한 여자고 돼지씨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호탕한 남자다. 여느 부부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다. 배가 볼록 나온 돼지씨가 소파에 누워 작은새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 장면, 발에 가시가 박한 작은새가 돼지씨에게 이를 빼달라고 하는 장면, 넌지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묵힌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 등등. 핵가족의 형태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은 이들 장면을 변주할 자신만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고 ‘민망한’ 장면도 있다. 사랑보다는 동지애로 살아가는 수많은 평범한 부부가 한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었음을 일깨우는 장면 말이다. 영화에는 작은새와 돼지씨가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소개된다. 간드러지는 표현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을 상상하게 된다. 더불어 각박한 현실을 함께 해치며 삶의 토대를 다져온 그들이 지금과는 영 다른(?) 감정을 주고받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이 여전히 그들에게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성찰케 한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어떻게든 변한다. 여기에 어떻게 깊이를 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온 작은새와 돼지씨의 관계는 여기에 작고 사랑스러운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예술이 있다. 우리는 보통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확장해주는 예술 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하나가 아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일상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수단으로 예술을 한다. 작은새가 자기 내면을 표현한 서예와 그림, 돼지씨가 경비 노동을 하며 쓴 시는 예술의 가치가 하나가 아님을 보인다.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며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미국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이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버스를 운전하며, 같은 동료의 불평을 듣는다. 퇴근 후에는 아내의 실험적인(맛없는) 요리를 먹고, 어제 간 길로 개를 산책시키며, 어제와 같은 술집에 가서 어제와 같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시간에 일어난다. 버스에 탄 승객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매일 달라진다. 동료의 불평 내용도 바뀐다. 아내는 매일 집을 새롭게 꾸미고, 그녀가 만든 머핀 위 하얀 설탕 물결도 매일같이 달라진다. 술집의 대화는 어제와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은 매일 다른 시를 쓴다. 패터슨에게 시는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을 평온하고 소박한 차이의 반복으로 인식하게끔 해주는 새로운 언어다.
아마도 패터슨이 한국에 산다면,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작은새, 돼지씨와 닮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예술을 통해 발견되지 않은 의미를 들춰내고 스스로를 빛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돼지씨와 작은새가 오래도록 예술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기를, 그리하여 그들을 닮은 모든 가족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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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당초 2025년 개봉이였으나, 연기되어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의 새로운 개봉일이 확정되었습니다. 2027년 6월 4일 북미 개봉으로 발표됨과 동시에 영화의 첫 번째 공식 이미지도 공개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기존 시리즈와 동일하게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의 목소리는 샤메익 무어가, ‘그웬 스테이시’의 목소리는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연기할 예정입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의 결말 직후부터 이어지며 “이전 두 작품보다 더 크고 대담한 스토리”이자 “거대한 피날레”라고 소니는 소개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애니메이션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대규모 제작진이 투입된 사실이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켄드릭 라마&’사우스 파크’ 제작진 미공개 ’노예 코미디’ 영화, 2026년으로 개봉 연기
지난해 켄드릭 라마와 ‘사우스 파크’ 공동 제작자가 함께 촬영해 올해 개봉 예정이었던 제목 미정의 영화가 2026년 3월로 개봉이 연기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배경인 ’노예 코미디’이며, 당초 ‘역사 체험 박물관에서 노예 재연 배우로 인턴을 하던 흑인 청년이 자신의 백인 여자 친구의 조상이 과거 자신과 같은 노예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다룰 예정이었으나, 최근 각본 수정으로 인해 초기 내용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유전> 밀리 샤피로, <캐리> 리메이크 드라마 주인공 발탁되나
<닥터 슬립>을 연출한 마이크 플래너건이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를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캐리>는 앞선 두 차례 영화화된 바 있으며, 그 중 브라이언 드 팔마의 작품은 현재에도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캐리 역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에 출연하여 많은 관객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던 배우 밀리 샤피로가 현재 논의 중입니다.
드라마의 본격적인 제작은 올여름부터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마이클 만 감독 <히트 2>, 시나리오 완성됐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고, 마이클 만 감독이 연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범죄영화 <히트>(1995)의 속편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작년 말, <히트 2> 시나리오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던 마이클 만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워너브라더스에 초안을 공식 제출했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속편에 대한 자세한 줄거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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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따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바운더리>
< 바운더리, 윤가현 >
오늘날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이른바 '메갈'이라 부르며 폄하하고 비하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이들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왜 메갈이 되었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2021년인 지금,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는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고 있는지 우리가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보호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해당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불꽃페미액션은 여성단체로써 그간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피해, 희생된 사건들을 조명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계속해서 알리고 잊히지 않기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나는 그들이 이러한 단체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사회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지우려고 할 때 우리가 살아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며 알 만한 굵직한 사건과 운동들 가운데 이 단체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반가웠고 해당 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의 선행이 있기에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더더욱이 사람으로 인정받고 안전하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생각이 다를지라도 여성을 위한다는 사실만큼은 같을 거라고 본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사회에서 안전한 삶,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더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또한 나도 그 개인으로서 제 한몫 열심히 살고 싶다.
끝으로 이 영화의 제목만을 놓고 봤을 때 '경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일반적으로 경계란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고 그것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안전의 의미를 담은 경계는 논외로 하고,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경계'를 생각할 때 그것이 위험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례가 없거나 으레 그렇듯 아무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발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세계의 난제를 푸는 일까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난 그저 내 자리에서 남들이 두려워하거나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을 용기와 호기심을 갖고 훌쩍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스스로의 경계를 넘고 더 나아가 사회의 경계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넘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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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지 않는 애정의 끈기
PROGRAM NOTE.
1980년대 홍콩은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수많은 화교들이 해외로부터 흘러들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혼돈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홍콩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가사의한 무법지대가 바로 구룡성채였다. 그 무렵 홍콩으로 흘러들어와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찬 록쿤은 악명 높은 미스터 빅이 이끄는 갱단에게 쫓기게 되고 우연히 구룡성채로 몸을 피한다. 구룡성채를 지배하는 사이클론의 도움으로 구룡성채에서의 삶에 적응하던 찬 록쿤. 그러나 찬 록쿤과 구룡성채를 향한 악당들의 위협은 점점 거세진다.
1993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홍콩의 씬 시티, 구룡성채. 기괴하고 미로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나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시대적 배경과 절묘하게 포개어지는 공간적 배경과 더불어 인물들의 다양한 사연과 관계를 통해 그 당시 홍콩의 모습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9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액션 역시 놓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제77회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첫 공개 당시 이미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정엽 /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POINT.
✔️ 홍콩 영화를 좋아하세요? 그러면 일단 보세요!
✔️ 고천락, 홍금보, 곽부성, 임현제... 홍콩 영화의 기라성 같은 이름들과 함께 유준겸, 오윤룡, 료자여 등 샛별 같은 이름들이 함께 놓여있습니다. 명배우 파티!
✔️ 하반기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 제목이 '구룡성채'라는 거다. 아무 정보도 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이걸 봐야겠다 생각했다. 구룡성채라니. 홍콩의 씬 시티(sin city)로 불리던 고층 슬럼. 불법 증축으로 거대하게 올라선 굴속 같은 곳. 지금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 당시에도 위생이나 치안 측면에서 좋은 거주지라 할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철거되지 않았어도 들어가볼 수는 없었을 곳. 그럼에도 워낙 독특하여 자꾸 궁금해지는 곳이 아닌가. 다들 좋아하잖아?
아니나 다를까 재빨리 매진되어, 취소 표를 겨우 구했다. 그리고 나서야 영화 정보를 확인해 보니... 범죄 스릴러 액션... 홍금보? 아니 왜 나는 구룡성채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일 거라 생각했지? 내 편협한 영화 취향 표에 범죄, 스릴러, 액션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홍금보는...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괜찮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보러 갔다가, 만족해서 나왔다. 하, 이게 바로 홍콩영화의 맛이지!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간단하다. 그리고 익숙하다. 미리 알아둘 것도 없다. 구룡성채를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구나 정도로만 파악해 두면,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눈앞에 마치 아침 드라마처럼 익숙한 공식이 펼쳐질 것이다. 시작과 동시에 '옛날 옛적에' 느낌으로 구구절절 펼쳐지는 텍스트부터 전개되는 방식까지 어느 하나 어렵게 소화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영화였으면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야! 하고 실망했을 것들도, 홍콩 액션 영화에서 펼쳐지니 익숙한 장르의 문법에 편승해 그냥 즐기게 된다.
자고로 홍콩 영화의 맛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덕진 의리 아닌가. 의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주인공 무리와, 그 의리를 손쉽게 배반하는 악의 무리 사이의 갈등. 요즘 같은 세상에 우스울 정도로 올바른 주제를 이렇게 고수하는데 어떻게 매력이 없을 수가 있냐고. 게다가 이토록 바른 주제의식을 이렇게 폭력적인 장면에 끼워 넣는 얼얼한 홍콩 스타일. 폭력적이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는 무협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액션. 아는 맛은 정말 무섭다. 헤어날 수 없게 만든다. 나도 이런데 홍콩 액션 영화를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정통으로 맞은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패가 없어도 마작은 계속된다
사실 나는 홍콩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 애초에 홍콩 영화에 익숙한 세대는 아니어서, 뒤늦게 왕가위 영화를 몇 편 보면서 마치 영화사 따라가듯 홍콩 영화도 좀 봐야지 의식적으로 본 정도. 무의식적으로 홍콩 영화를 이미 꿀꺽꿀꺽 받아 마신 나의 앞 세대와는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 또한 내겐 홍금보 쪽보다는 왕가위 영화로 수렴되는 양조위와 장국영의 얼굴 쪽이 가깝다.
그럼에도 고천락, 임현제, 곽부성 같은 배우들은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자신들이 수호하는 의리와 인정을 품은 채 우아하게 나이 든 '형님'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 아래 각자 있는 대로 멋을 부리고 의리를 받드는 다음 세대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세대를 이어가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결연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세대 교체란 건 일면 서글프기도 하다. 당장 구룡성채는 몇 년 후 철거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형님' 세대는 마치 구룡성채처럼 과거 영광의 기록이 되어 떠나갈 것이다. 홍콩 영화가 아시아 일대를 씹어 먹던 시절은 끝난 것 같다는 말조차 무색해진 지 오래다.
그러나 패가 하나 없어도 마작은 계속된다. 몸의 일부를 다치고 잃어도 싸움은 계속된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어떤 선언처럼 느껴지는 이 마음. 그 올곧음조차 촌스럽게 치부되는 시대에, 여전히 홍콩 영화를, 홍콩 액션 영화를 고수하는 건 정말 뜨끈뜨끈한 마음이다. 홍콩의 여름 습도만큼이나 끈적끈적하게 마음에 눌어 붙는다.
애정이 묻어날 때 가장 강하다
구룡성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었던 내가 꽤나 만족했을 만큼, 이 영화는 사진으로 보던 구룡성채의 면면을 성실하게 재현했다. 빛도 들지 않는 굴속같은 건물 안쪽에서 구멍가게를 내고, 잡은 돼지를 염장하고, 만두를 빚고, 생선을 토막 내고...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공동 수도 앞에 줄은 길고 물은 모자라며 전깃줄은 언제 화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잡하게 꼬여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구룡성채의 외양만 구현하고 싶었던 것 같지 않다. 외양을 성실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구룡성채 거주민 사이의 인정까지 그려낸다. 마약과 매음과 폭력 조직 등 각종 범죄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존재했던 삶의 현장이었다는 사실도 담아내고자 한 마음이 느껴진다.
홍콩 영화는 늘 홍콩을 정말 사랑한다. 반환이 결정되고 실제 반환이 이루어지면서 홍콩이 겪은 혼란의 상처는 홍콩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남았지만, 깊고 눅진한 애정으로 승화되었다. 홍콩 영화마다 혼란과 방황 사이로 그 애정이 깊이 느껴진다.
이 영화 또한 홍콩에, 홍콩 사람들에, 홍콩 영화에, 홍콩 액션 영화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난 누군가 이토록 깊은 애정을 품은 시선을 보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이 애정에 거스르는 방법 같은 건 도무지 모르겠다.
이 영화의 단점이 없지는 않다. (없을 리가...) 영화의 액션은 중간에 좀 과해지면서 무협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아무리 홍콩 맛이라지만 어디까지 가나...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든다. 그리고 옛날옛적 액션 영화 답게, 필요 이상으로 남성 중심적이어서 여성과 아동 캐릭터는 소모적으로 표현되는 면이 있다. 구룡성채에서 가장 다부진 눈빛을 하고 있는 (터치드 보컬 윤민 닮았다) 만두집 여성의 경우에도 더 좋은 서사를 부여해줄 수 있었을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더 발전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아쉬운 구석이다.
그렇지만 홍콩 영화는, 홍콩 영화를 둘러싼 애정은 지금도 변치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건재함을 빛내는 좋은 작품이었다. 개봉 후 아빠 보여줘야지 싶은 작품도 참 오랜만이다. 깊은 애정을 받은 것들은 시간이 가도 은은히 빛난다. 부디 그 빛을 더 갈고 닦으며 시대에 발맞추어 더 오래오래 빛나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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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만에 다시 만난 기념비적 SF
잘생긴 사람이 부산 사투리로 어떤 말을 한다. 남자는 입담이 엄청 좋다.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도미닉', 이하 '쌈디'다. 굉장히 좋은 행보로 AOMG의 사장을 지나 현재 한국 힙합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 남자. 이 사람의 언더신에서의 행보는 아주 훌륭하다. 여전히 그는 한국 힙합의 전설이 되어 좋은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글쓴이도 쌈디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된 계기는 MBC의 <아바타 소개팅>이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말을 저렇게 재미있게 한다고? 그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도 신박했다. 일단 누군가가 직접 보이지 않은 채로 타인을 대하면 민망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일 아니거든. 이 프로그램은 그 지점을 똑똑하게 활용하며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레전드 클립을 남겼다.
어떤 영화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범죄도시 2>에서 손석구 배우의 카리스마로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일단 손석구 배우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어떤 영화가 TV 프로그램 몇 개 만들다 못해 '아바타'라는 개념 자체를 갖고 온 것이라면 그건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아, 이 영화는 이 선견지명만 남기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SF 명작이 되어 그렇게 남아있다. 12년을 돌아 메타버스를 꿰뚫은 영화를 만나보자. 다음 주 수요일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아바타>다.
아주 먼 미래
2150년. 상이군인 제이크 설리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사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투신했지만 보상이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게 잊히고 있는 제이크. 어떤 술집에서 웬 부랑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정신을 차릴 즈음 누군가가 말을 건다. "이 자가 제이크야?" "맞는 것 같은데요." 남자 둘은 제이크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일종의 연구실이다. 여기가 뭐하는 데야? 처음 겪는 상황이다. 어리둥절한 제이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그레이스 박스는 싹수가 없다. 아무튼 제이크에겐 임무가 주어진다. 1kg당 2천 달러나 하는 물질 언옵테늄을 채취하는 것. 이 언옵테늄이 있다면 가상의 행성 판도라를 개발해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부대를 판도라에 파견하는 인류. 판도라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었다. 인류는 나비족과의 공존을 위해 가상으로 된 몸 '아바타'를 만들어 외계인과의 소통에 나선다.
아바타를 통해 외계인과 통신하는 제이크. 임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원래 판도라에서 살던 외계 동물에게 공격을 받고 무리에서 낙오된다. 절망스러운 상황. 헤매던 제이크를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발견하고 그를 구해준다. 묘하게 시작되는 인연. 사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화살을 겨눴지만 사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바로 지역의 수호신 같은 존재 에이와가 이를 제지한 것. 제이크에게 뭔가 다른 걸 느끼는 네이티리. 살고 있는 고향으로 데려간다. 술렁이는 부족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와의 계시를 받았다는 네이티리의 말에 제이크가 부족과 함께 동화되는 것을 허락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동상이몽인 채로 서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과연 아바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지
글쓴이는 97년이다. 이 영화의 개봉 연도는 2009년이다. 이때 <무한도전>이 인기가 많았다. <무한도전>의 팬이었던 나. 엄마는 많이 바빴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극장에 갈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 6시 40분. 애매한 시간대에 표 예매를 잡았다. <무한도전>이 삶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극장 가기 직전까지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 왜 그래? <무한도전> 보고 싶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이마빡을 손바닥으로 쳐버리고 싶지만 아무튼 그땐 <무한도전>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3시간 분량이 끝나고 난 뒤 뭔가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SF였던 <아바타>. 메이플스토리를 필두로 한 아바타 게임은 적지 않았지만 그걸로 이런 서사를 짰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다.
13년이 지났다. 마블이 휘황찬란한 영화들을 발표하고 드니 빌뇌브가 <듄>을 발표했다. 긴 시간 동안 SF 장르에 햇살 같은 축복이 내렸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아바타>의 임팩트를 넘어선 SF가 없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파란 피부에 신기하게 생긴 외계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무슨 날개 달린 외계 생물체를 달고 비행하던 쾌감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어릴 때야 '그때 그거 쩔었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시각적 쾌감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장이 가진 연출력 덕택에 나왔다. 180분 동안 살짝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매 번 다른 느낌으로 끌고 간 감독의 개인능력이 돋보인다. 괜히 기념비적인 SF가 아니다.
뭐가 있냐면
일단 시각화 수준이 대단하다. 이 영화는 SF영화다. SF영화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게 중요할 것이다. 기존의 세계를 새로 만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과제다. SF이니 만큼 기존에 없는 대신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구현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CG 연출은 우리를 설득하기 충분하다. 일단 나비족을 CG로 연출한 방식은 '적당히 신선하다'라는 말과 어울린다. 우리는 살면서 외계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처럼 구성하되 외관만 살짝 빗겨 난 형식을 썼다. 또 부분적으로 근육질의 묘사도 인간의 것을 따온 것이 보인다. 다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대해 알 것이다. 기괴함과 신선함의 차이는 정말 간발의 차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건 이 시각 연출의 힘이 크다. 또 판도라에 사는 외계동물 연출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좋은 시각화였다. 우리 인류가 처음 탄생하기 이전에 공룡이 살았다. 그리고 판도라 역시 도시를 개발하기 이전이다. 이 점에서 '인류의 역사와도 닮으면서 신선함을 유지했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공룡들을 활용한 액션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타고 다니는 동물이 있다. 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가지고 하는 전투신이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데, 실제로 이 동물들을 타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면을 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운동의 디테일이 구석구석 살아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런 시각화를 뒷받침하는 이야기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영화 줄거리 별 것 없다. 자연을 개발하려는 인간과 원주민의 대립은 우리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설정한 건 어느 정도 노림수가 있다. 우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도 분명히 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이 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의 생각은 이야기를 통해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시각화에 힘을 빡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계 문명과 소통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럼 3자의 관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게 뭘까? 외계인과의 신기한 소통 과정일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각화에 힘을 주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조금 진부하더라도 액션과 CG에 힘을 주는 방식은 우리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단 올해 국내에서 800만 관객을 동원한 <탑건 : 메버릭>만 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 조종사 메버릭의 이야기가 서사의 전부다. 그럼에도 메버릭의 저세상 액션 하나만큼은 정말 끝장났다. 이렇게 이 영화가 후의 상업영화들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가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외계인들과의 소통' 중 어떤 것을 소재로 삼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감독의 노림수가 꼼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의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바로 하반신 마비라는 점이다. 이 하반신 마비라는 특성은 1) 초반부에 아바타를 연결하고 난 다음의 카타르시스 2)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할만한 근거 제시 3) 후반부 인물의 선택지에 합리적인 근거 제시라는 점에서 꼼꼼하다. 또한 액션 신에서 탈것이 되어주는 동물과의 교감을 넣은 것, 후반부에 인류와의 대립이 있는 것, 네이티리의 전투신까지 '이걸 넣으면 영화의 시각적 요소가 풍부해질 것'을 고려한 티가 난다. 일단 아크란과의 교감과 비행은 극에서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면서 불필요하게 삽입하지 않았다. 인류와의 대립 액션신은 핵심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꼼꼼히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를 설득할 수 있다. 또한 네이티리의 맨몸액션은 초반부에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 중 하나다. 이 사람이 내적으로 강인하지만 그렇다고 빈틈이 아예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걸 경제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12년을 돌아 다시 직면하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테마 중 하나는 '인간의 것은 과연 무엇인가?'다. 대사에서도 언급된다. '모든 에너지의 것들은 잠시 빌린 것이며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이 영화가 개봉한 2009년 12월부터 세계는 다양한 사건을 맞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팬데믹 사태를 겪어도 변하지 않았던 뜨거운 감자는 사실 명확했다. 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지구 온난화 문제였다.
감독이자 각본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환경에 대한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이야기 전개는 어디서 봤다. 또 소재는 우리 책에서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소재를 갖고 왔다고 해서 절대 깊이가 얕지 않다. 인류가 자기를 희생하기 위해 타자들을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과학의 진일보를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복제인간은 과연 인간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논의, 대화와 소통 없는 의사소통 방식까지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넓은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게 2009년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아닐 것이다. 금세 우리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팬데믹 사태를 불신했던 몇몇 정상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형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일에 대해 감독은 각각의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결정적인 키워드로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사람에 따라 고리타분하게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여 년을 지났지만 시대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은 제작자들의 인사이트가 탁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뛰어난 영화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통찰해보면 좋은 영화가 <아바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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