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10-08 21:43:40
수능 대신 일터로 간 고3 노동자의 눈물 나는 성장담!
<3학년 2학기> 리뷰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삶을 스크린에 투영시킨다는 것이다. 3학년 2학기, 수능 준비가 아닌 현장실습에 나가는 고3의 삶을 생각한 이가 몇이나 될까? 영화는 보란 듯이 고등학생의 마지막 시기를 공장에서 보낸 청춘들이 있다고 조용히 그것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미안함을 갖는다. 학점 따기가 어려워서, 취업이 안 돼서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낭만 하나는 챙겼던 대학 생할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3학년 2학기, 수능을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 시기이지만, 직업계고 학생 창우(유이하)는 공장 현장실습에 집중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자리는 마감됐고, 중소기업 현장실습만 남은 상황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창우는 친구 우재(양지운)와 함께 한 공장에 출근하게 된다. 첫 출근부터 적응이 쉽지 않지만,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간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먼저 실습을 나온 성민(김성국)과 다혜(김소완)를 만나 동료애라는 걸 느낀다. 하지만 공장 생황이 잘 맞지 않았던 우재는 그만두고, 에이스 실습생인 성민 마저 떠나자 창우의 마음이 흔들린다.
<3학년 2학기>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일상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 작품이다.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주인공이 같은 반 친구들처럼 공장으로 현장실습에 나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배우는 과정이 펼쳐진다. 꼼꼼하지만 일 처리가 늦어 사수에게 혼나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는 창우는 사회생활의 냉혹함을 맛보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용접을 배우면서 일의 재미를 느끼고, 점진적으로 공장 직원의 모습을 갖춰 나간다.
그만큼 영화의 재미는 느리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창우의 성장에 기인한다. 창우가 이 회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장실습을 잘 버틴 후, 정식 채용이 되면 전문대 진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병역특례 기회도 받을 수 있다.) 이 혜택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하나씩 배워가며 조금씩 커나가는 그 모습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의 미덕은 산업재해에 노출되어 피해만 본 청춘의 어둠이 아닌,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의 빛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남보다 느리고, 자기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친구지만, 그럼에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창우는 긴 터널을 지나 끝내 빛을 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인물의 과정을 통해 관객은 사회 초년생 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물론,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인지를 곱씹게 한다. 특히 누군가에게는 꿈을,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위해 이 노동이란 숭고한 행위를 하며 살아간다는 걸 깨닫게 한다.
성장담에 집중한 작품임에도 극의 배경이 되는 공장 현장을 통해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띤다. 다수의 산업재해와 척박한 노동환경은 변함없이 노동자들을 위협하는데, 창우와 친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물건 적재를 쉽게 하기 위해 안전바를 설치하지 않고, 돈을 아끼기 위해 토시 구매도 하지 않는 공장 상황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이런 상황이 지금도 곳곳에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일로 가까워진 이의 장례식 장면 등은 그 위험성을 각인시킨다.
더 안타까운 건 위험한 노동 현장에서 이 아이들을 지켜주거나 돌봐줄 어른들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들을 케어하기에 어른들은 피로한 모습이다.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는 게 당연시되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하고 결국 흉터로 남는다. 집에서도 창우의 안위보다 창우의 임금에 더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상처 또한 깊게 남는다. 특히 점점 흉터가 늘어난 팔목을 보면 애잔함이 밀려온다.
극 중 창우의 유일한 취미는 기타를 치는 것이다. 곡명은 헨델의 ‘울게 하소서’. 그가 유일하게 연주하는 이 곡의 가사는 “내 잔혹한 운명으로 울게 내버려 두세요”이다. 가사가 의미하듯 창우의 지난한 운명, 그리고 대놓고 울 수도 없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휴가>에 이어 또 한 번 노동자의 삶을 다룬 이란희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은 고3 노동자들의 삶을 더 공감하게 한다. 담담하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힘은 이번에도 주효하게 쓰인다. 여기에 신인급배우들의 연기는 몰입감을 더하는데, 특히 창우 역의 유이하는 그 자체로 창우처럼 보일 정도다.
끝내 영화에서 창우는 자신의 꿈을 밝히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꿈이 명확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꿈은 있지만 들어줄 이가 없어 말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됐든 스크린 너머로 창우를 만난 어른으로서 그를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뭐가 됐든 잘할 거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로 힘을 주고 싶다. 녹록ㅣ 않은 삶임에도 빛나는 순간은 올 거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말
1. 영화 속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수능 날, 공장으로 출근한 아이들이 TV를 통해 수능 소식을 접하는 모습이다. 더불어 수험생을 응원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아이들이 볼 때의 모습도 애잔하다. 이들의 삶은 과연 누가 지지하고 바라봐 주는가!
2. 영화를 보는 내내 창우와 친구들에게, 그리고 내가 수능 고사장으로 갈 때 묵묵히 공장으로 출근했던 실업계 친구들에게 뒤늦은 밥 한 끼를 사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빚을 갖고 싶었다.
3. 사무직 여직원이 되었다고 좋아했던 <다음 소희>의 소희도 생각났다. 따뜻한 밥 한 끼, 힘이 되는 응원의 말 한마디만 했었다면 다른 선상에서 힘겹지만, 창우처럼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창우가 싸인 대신 쓰는 자신의 이름을 보면 초반과 후반부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가 성장하는 것처럼, 이름 또한 성장하는 걸 마주할 수 있으니 유심히 보길 바란다.
사진출처: 작업장봄
평점: 4.0 / 5.0
한줄평: 삶의 경계에서 우직하게 나아가는 이들의 노동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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