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5-10 12:07:28
삶은 고된만큼 아름답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힘들 땐 이 영화를 봐, 다시 일어서게 될 거야.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36호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
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프랭키), 힐러리 스웽크(매기), 모건 프리먼(에디)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3분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 영화이자, 휴머니즘 드라마이자, 어쩌면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존엄사에 대한 첨예한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존엄사, 말 그대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주인공 '매기'는 웨이트리스 출신의 아마추어 복서다. 서른한 살이라는, 복서로서는 아주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한다. 그녀는 슬플 정도로 박복한 팔자에, 가진 거라곤 열정 하나뿐이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못 이겨 복싱 매니저이자 컷맨(상처에서 피가 멈추도록 도와주는 보조자)인 '프랭키'는 삼고초려 끝에 그녀를 거두어준다.
매기는 집념 하나로, 프랭키를 따르며 1년 반 만에 엄청난 실력자가 된다. 나는 권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아마도 복서에게는 타이틀 전이라는 게 궁극적 목표인가 보다. 매기는 첫 라운드부터 KO승을 거두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이 타이틀 전을 꿈꾸는데, 프랭키는 매기에게 타이틀 전을 시키는 것을 탐탁지 않아한다. 너무도 무서운 상대와 겨루어야 하는 타이틀 전에서, 친한 동료가 실명하고 평생을 힘들게 사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기의 고집으로 결국 프랭키는 타이틀전을 주선하게 되고, 종국엔 '밀리언 달러' 타이틀 전까지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줄곧 승승장구만 했던 매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터지고야 만다. 전직 창녀 출신으로 비겁한 반칙들을 일삼기로 유명한 독일의 복서 '블루 베어'와 겨루다가, 매기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 것. 매기는 1,2번 경추가 완전히 박살 나,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때, 별안간 전에 보았던 <미 비 포유>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얼굴도 잘생기고 유능하고 부유하던 남자가, 한 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살아가던 내용의 영화. 그를 사랑하게 된 여주인공은, 그가 합법적 존엄사가 인정되는 스위스에 가서 존엄사를 꿈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그의 선택을 바꾸려 안간힘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삶의 욕구를 불어넣어주려는 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난 (건강했던)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라고 말하며 끝내 존엄사를 택했더랬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남자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아니, 무슨 영화의 결말이 이래! 여자의 사랑이 이 남자의 선택을 바꿔 놨어야지! 살았어야지! 건강을 잃은 삶을 살아보지 못한 자의 섣부른 오만이었을까. <미 비 포유>에서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나, 늘 목숨의 주인공보다, 다친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기를 쓰고 반대한다. 으스러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의 고통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자신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기 때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프랭키도 마찬가지였다. 딸처럼 여기며 복서로서의 성장을 도왔던 매기가, 전신마비를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프랭키는 거절한다. 상실감을 느낄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더 이상 복싱을 할 수도,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매기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래서 혀를 깨물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프랭키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녀를 도와줘야겠다고.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매기가 원하는 것은, 이 삶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무슨 연유로 딸과 멀어지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매번 딸에게 편지를 부치고도 반송이 되는 프랭키와, 면면이 쓰레기 같은 가족들을 둔 외톨이 매기. 매니저와 선수로서의 만남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거의 부녀지간에 가까운 애정이 존재했다. 그런 선수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프랭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굳이 짐작해보지 않아도 그 무게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무게는 프랭키뿐 아니라, 매기 역시 지고 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해, 프랭키가 엄청난 미안함과 부담감을 가지게 될 거란 걸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매기의 마음은, 어쩌면 프랭키보다 더 무거웠을지 모른다. 하물며 자신이 목숨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그 돌봄과 죄책의 나날을 프랭키에게 지워야 한다는 건, 매기로선 정말 못 견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런 매기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을 프랭키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매기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그녀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주사를 놓아준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야 <미 비 포유>에서는 몰랐던 것을 느꼈다. 존엄사의 진정한 의미를.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그게 삶이든 죽음이든, 내 상실감보다 그의 고통을, 그로 인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걸.
매기의 죽음을 도와주며, 프랭키는 그녀에게 자신이 지어준 링네임 '모쿠슈라'의 뜻을 알려준다. 게일어인 모쿠슈라의 뜻은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다. 매기는 그런 프랭키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그렇게 존엄을 지키며 세상을 떠났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도 그에게 마냥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가 원하는 게 죽음이고 해방이라면, 결국에 그 뜻을 존중해주고 싶어 질 것만 같다. 누군가를 잃을 상실감에 앞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존엄할 권리가 분명히 있다고 믿기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우두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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