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
- 저는 남자고, 페미니즘을 공부합니다
어젯밤. 밤 9시. 느지막이 아내가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된 몸을 말해주듯, 걸음걸이가 피곤해 보였다. 어제 아내는 5살 된 딸의 어린이집 친구네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한 아내는 겨우 아이를 씻기고, 기절한 듯 잠들어 버린다. 요즘 아내는 아침 6시에 기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아침을 만든다. 아이를 깨우고, 등원 준비를 한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허겁지겁 어린이집 등원시킨다. 그리고 바로 일터로 나간다.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아내는 때로 학교로, 센터로, 가정집으로 출근한다. 다양한 악기를 어깨에 짊어 메고 이곳저곳을 다닌다. 때로 끼니도 걸러가며 그렇게 일하고, 딸의 퇴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앞에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바로 집에 오는 법은 없다. 장을 보기도 하고 또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며, 재우 기고 집을 정리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양가의 경조사를 챙기고, 명절이면 양가에 올라가 일을 돕는다. 심지어 남편까지 챙기며 그렇게 살아간다.
코로나 백신으로 며칠간 누워있어다. 그 시간 속에 만난 책은 최승범 선생님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다. 둘 다 여성에 대한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었고, 얀센 백신의 강력한 통증을 잊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과 몰입감, 그리고 공감대를 만들어줬다. 남자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써 내려간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는 페미니즘에 관한 나의 편견에 균열을 일어났다. 평생 세 남자와 함께 살아간 어머니.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며 버티고 견디는 아내, 앞으로 여자로 살아가야 할 딸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동안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편협한 시선의 환기가 일어났다. 한국의 페미니즘 교과서라 일컫는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은 페미니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은 저항 이론, 저항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삶에 주인공이 되어가기에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하여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동생과의 차별이 있었고, 성추행을 당해도 여자로서 조심하지 않아서였고, 직장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과 재취업에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영화의 모습 속에서 어머님이 살아온 모습, 아내와 살아가는 상황,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의 이해와 배움은 여성을 함께 살아가는 공존적 주체로 이해하는 측면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남자 역시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남자가 눈물을 참지 않고, 시시콜콜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육아의 즐거움과 가사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놀이방에서 남자아이가 인형을 만지고 남학생들이 여학생과 함께 축구와 고무줄놀이하는 공종의 삶. ‘여자라서’ ‘남 자라나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101~102 인용)이 페미니즘의 이해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의 엄마, 당신의 아내, 당신의 딸도 82년생 김지영일지 모른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내 딸이 또 한 명의 지영이처럼 자책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직도 영화 속 지영이의 그 원망 서린 소리가 귓가에 울림을 가져다준다.
“저 벽을 돌아가면 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벽이고,
그 벽을 돌아가도 다시 벽... 출구는 처음부터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잘못이잖아요. 남들은 출구를 다 찾는데 나만 못 찾으니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또 한 명의 지영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배우고, 살아낼 것이다. 그래서 말해줄 것이다. 출구를 함께 찾아보자고, 니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너의 삶에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가리켜 줄 것이다.
-
- 10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
.
.
국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프랑스에서도>, 2023년 국내 개봉
ⓒ IMDB
한국에서도 굉장히 호평을 받은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프랑스 리메이크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가 2023년 1월 국내 개봉을 확정했다. 영화는 2022년
칸영화제 비경쟁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광고형 베이식 11월 출시
ⓒ 넷플릭스
다음달 넷플릭스에서 5500원짜리 광고 요금제를 출시한다. 기존 가장 저렴한 베이직 요금과
비교했을 때 4000원 더 싼 값이다. 다만, 광고 요금제의 경우 1시간 영상에 4~5분의 광고가
나오며 최고 화질은 720p이다. 게다가 일부 영화와 시리즈는 시청이 불가능하다.
설경구X장동건X김희애X수현 <더 디너>, 크랭크업
ⓒ (주)하이브미디어코프
허진호 감독의 신작이자,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주연의 영화 <더 디너>가 9월 말 크랭크업했다고
밝혔다. 헤르만 코흐의 베스트셀러 [디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신념의 두 형제 부부가
우연히 끔찍한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왓챠, 웹툰 서비스 시작
ⓒ 왓챠 인스타그램
지난 13일, OTT 플랫폼 왓챠에서 웹툰 서비스 '왓챠웹툰'을 출시했다. 왓챠 구독자라면 누구나 추가
결제 없이 모든 웹툰을 감상할 수 있다. <낢이 사는 이야기>의 서나래 작가, <오빠 왔다>의 모나 작가,
<오늘도 핸드메이드!>의 소영 작가 등 유명 작가의 신작을 볼 수도 있다.
해외
<듄: 파트 2>, 개봉일 변경
ⓒ IMDB
지난 11일, 해외의 다수 매체에서 워너브라더스가 <듄: 파트 2>의 북미 개봉일을 11월 17일에서
2주 앞당겨 11월 3일에 개봉하기로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살아 숨 쉬는 과거를 딛고 새 미래를 꿈꾸는 <스펜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스펜서>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여느 때처럼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복싱데이까지 삼일 간의 연휴를 보내기로 한 영국 왕실. '다이애나 왕세자비(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시작부터 편안하지 않다. 새롭게 별장을 담당하게 된 지배인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의 눈을 빌린 시어머니와 남편의 집요한 감시 속에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의 환영을 볼 정도로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다이애나. 그녀는 유일한 말벗인 의상 담당자 '매기(샐리 호킨스)'와 두 아들에게 의지하며 간신히 예정된 행사들을 버텨내지만, 과거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기억은 그녀의 답답한 현재와 상충하며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힌다.
다이애나 스펜서. 20세기의 신데렐라로서 전 세계의 눈이 집중되었고, 대인지뢰 제거 운동과 같은 수많은 선행으로도 기억되었던 그녀. 동시에 그녀는 보수적이고 비밀스러운 영국 왕실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로서 수많은 가십을 만들어 냈기에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재현되고 있기도 하다. 당장 최근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의 네 번째 시즌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사실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소재로 한 작품은 신선함을 담보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이에 파블로 라라인 감독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만난 <스펜서>는 역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다양한 상징을 토대로 15년에 걸친 왕실 속 그녀의 삶을 단 삼일 내에 농축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특히 영화는 작중 다이애나의 대사처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스크린에서 교차시키며 그녀의 삶을 요약한다. 이를 토대로 <스펜서>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기 위해 살아 숨 쉬는 과거에 맞서 싸우는 현재를 살았던 한 개인의 고통을 생생히 전달한다.
<스펜서> 속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의 불륜을 묵과하고 오히려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압박하는 영국 왕실과 맞서 싸운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을 개인과 과거라는 시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영국 왕실이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과거이자 숨 쉬고 움직이는 의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의례는 종교의 내용에 깊은 의미와 활력을 주며, 종교가 목적하는 바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다. 의례는 믿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신앙을 창조하고, 또 주기적으로 재창조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례는 역사적으로 권위가 인정된 행동 양식을 반복하며 종교의 의미와 상징성을 표현하고 강화한다.
영국 왕실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군주제는 과거 영국의 영화를 기억하게 해주는 상징이자 영국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며 자신의 상징성을 유지하려 하고, 일원들 개개인의 개성과 삶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처럼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현존하는 과거인 영국 왕실의 본질을 왕실의 일원들을 통해 영리하게 포착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단적인 예시다. 카메라 앞에 모인 가족 중에 다이애나와 그녀가 두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표정의 변화조차 전혀 없이 마치 인형처럼 보인다. 대화 중에 다이애나를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이나 예법에 따라 불편하고 복잡한 식사 시간에 다이애나가 강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것 역시 존재 자체가 의례인 영국 왕실을 잘 보여준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스펜서>가 영국 왕실이라는 액션보다는 그에 대한 다이애나의 리액션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보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사투를 펼치는 그녀의 고통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당장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 왕세자와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초반부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 설령 등장하더라도 영화는 그들을 상당히 원거리에서, 뒷모습 위주로 비춘다. 이야기의 전개나 다이애나의 감정선 변화를 위한 최소한의 순간을 빼면 왕실 관련 인물은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식사 시간이 되었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족들이 다 같이 열어보는 시간이 되었을 때, 행사의 순간은 건너뛰고 곧장 다이애나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다. 대신 영화는 오히려 의상 담당자나 셰프처럼 그 외의 인물들과 그녀 사이의 대화에 집중한다.
굳이 왕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그려내지 않고 그녀의 리액션만을 보여줌으로써 <스펜서>는 절제된 방식으로 그녀의 아픔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영화는 고통스럽다. 영화 포스터처럼 드레스를 입은 채 구토하는 언밸런스한 그녀의 모습만 보더라도 느껴진다. 찰스가 다이애나에게 선물한 진주 목걸이에는 이 모든 고통이 함축되어 있다. 다이애나는 그 목걸이를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오래전 헨리 8세에게 버림받은 천일의 여인인 앤 불린에게서도 본다. 즉, 이 목걸이에는 과거를 갱신하기 위해 정해진 역할에만 충실할 수 없는 이들이 퇴출되어 오는 역사가 담겨 있다. 앤 불린만 하더라도 왕실에 걸맞은 왕비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사형에까지 처해졌으며, 이는 영화에서 앤 불린의 유령이 시간을 넘나들어 나타나며 다이애나를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펜서>는 생명력을 잃고 의례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는 다양한 연출과 상징을 통해 과거에 억눌리는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알려준다. 왕실 별장으로 가던 중 어릴 적 자신이 자란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린 다이애나. 아무도 그녀를 돕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에게는 과거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허수아비와 들판만이 위안이 된다. 어린 시절의 다이애나는 발레리나를 꿈꾸던 자유로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왕실이란 공간에 묶인 채 그 압박을 견뎌야 한다. 그렇기에 허수아비에게 다가가 옛날에 입혀줬던 옷을 벗기는 그녀를 지켜보다 보면 허수아비는 다이애나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한편 영화는 왕실의 강한 법도로 인해 다이애나가 느꼈던 압박감을 관객들이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군인과 요리사들의 모습이 그 중심에 있다. 언제나 왕실과 함께 움직이는 그들은 강한 규율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도입부에서 이들이 교차로 주방을 향하는 모습은 살아있는 과거이자 의례를 눈앞에 만날 수 있는 순간이고, 항상 숨 막힌 채로 지내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는 저택에 들어간 다이애나가 몸무게를 재는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재미로 시작된 왕실의 규칙이라는 몸무게 재기에 다이애나는 강한 반감을 표한다. 그러다 보니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스펜서>는 단지 다이애나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희망을 노래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현존하는 과거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과거다. 저택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고자 하는 다이애나의 투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펜서 가문의 옛 집과 앤 불린을 통해 완성된다. 폐가가 된 옛 집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을 본다.
그 순간 영화는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현재의 다이애나가 번갈아 등장하며 들판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간 과거를 통해 현재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앤 불린의 불린 가문과 혈연적으로 이어진 '스펜서' 가문의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되기 전에 한 개인으로 살 수 있었던 '스펜서'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다이애나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스펜서를 비춘다. 그래서 자신처럼 왕실 안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구하는, 억지로 꿩 사냥에 나선 아이들을 구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희망찬 후반부는 영화의 첫 장면과 대비를 이루며 영화의 균형을 잡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당장 첫 장면에서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교차시키면서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을 강조한다. 영국 왕실의 별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데, 그 차들이 지나갈 때 도로에 떨어져 죽어 있는 한 꿩의 높이에서 차들을 포착한다. 이 장면에서 현재는 차들이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간신히 차들에게 치이지 않는 꿩의 모습은 영국 왕실 내에서 고통받던 다이애나의 과거를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동시에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고 있다면 도로에 누워 있는 꿩 한 마리는 마치 미래의 다이애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스펜서>의 후반부는 과거를 이겨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다이애나를 비춘다. 이러한 대비는 수미상관의 구조 안에서 극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동시에 그녀의 삶으로부터 비극과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스펜서>는 희망을 노래하며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 여성의 삶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을 영화적으로 기억하는 장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살아있는 죽음, 현존하는 과거에서 피어나는 다이애나 스펜서
-
- 나는 내 삶을 살 거야. 영화 <레이디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2016)
제작 : 영국, 드라마 │ 감독 : 윌리엄 올드로이드
출연 : 플로렌스 퓨(캐서린), 코스모 자비스(세바스찬), 나오미 아키에(안나)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타임 89분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배경은 19세기 영국이다. 원작은 러시아의 소설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며, 젊고 예쁜 여성이 시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했다는 형사재판소의 실화 기록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 시절 치고는 특이한 살인사건이라 그럴까. 이 영화는, 젊고 예쁜 지주의 부인이, 대체 무슨 연유에서 시아버지를 그토록 처참히 살해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에 포커싱 된 듯하다.
신분사회의 최종 보스이던 영국의 19세기. 영화의 주인공 '캐서린'은 열일곱의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늙은 지주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가게 된다. 괴팍하기 그지없는 시아버지, 어린 신부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나이 든 신랑. 캐서린의 결혼은, 그저 관습에 따라 맺어진 온기라곤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배곯을 일은 없는 집안이었지만, 쌀쌀맞은 시댁은 그녀에게 간단한 외출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그녀를 감옥 같은 저택에 가두어둔다. 그럼에도 캐서린은 매우 순종적으로 시댁 식구의 뜻에 따라, 집안에서 그저 창밖만 보며 무료한 나날을 지내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도 남편과 시아버지가 동시에 멀리 출장을 떠나게 된다. 결혼 후 처음으로 캐서린에게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 봐야 그녀가 만끽한 자유라곤 그저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 소파에 맨발로 누워 낮잠을 자는 것 등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소소한 자유라도 즐기고 있던 캐서린. 하루는 우연히, 역시나 지금까지는 본 적도 없던 하인들의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다가 마님의 방문에 깜짝 놀란 하인들. 그런데 그중 한 하인이 유독 캐서린에게 대든다. 그는 이 저택에 얼마 전 새로 온 흑인 하인 '세바스찬'이다. 하인인 데다 흑인이라. 당시 영국의 신분제에 따르자면 세바스찬은 분명 마님의 눈도 못 마주쳐야 마땅한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런데 캐서린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건지 겁도 없이 마님에게 들이대는 세바스찬. 그를 계속 눈여겨보고 있던 캐서린은 세바스찬의 박력에 넘어가고, 결국 출타 중인 시댁 식구의 눈을 피해 하인과 정통으로 바람이 난다.
당시 영국의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알기에, 둘이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면서도 흑인 하인이 안주인의 뽀얀 침대 시트에 나신으로 누워있는 장면은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회통념은 누구로부터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그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된 흑인 하녀 '안나' 역시 몹시나 그 사실을 불편해한다. 어디 하인 주제에 안주인 마님과! 자신도 백인에게 종속된 몸이며, 괴팍한 주인들에게 푸대접을 받으며 살았으면서도, 그나마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캐서린의 일탈을 이르고 싶어 안나는 똥줄이 탄다.
캐서린의 총애에 힘입어, 하인 세바스찬의 침상이 마구간에서 안주인 침대로 격상된 지 꽤 지났을 무렵.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하녀 안나의 밀고로 캐서린과 하인의 관계를 알게 된다. 시아버지는 정작 제 아들놈이 캐서린을 여자 취급하지 않는 데에는 무책임하면서, 집안 망신이라며 캐서린을 들들 볶는다. 온기도 낙도 없는 감옥 같은 저택에 자신을 가두는 결혼생활에 질려버린 캐서린은, 시아버지에게 독버섯을 먹이게 되는데.
부유하고 어린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죽였다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은 채 시아버지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아온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이 "나 너희 관계 다 알고 있어. 너 이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성경이나 읽어"라고 일갈한다. 자신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억압하려고만 드는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캐서린. 남편 앞에 세바스찬을 끌고 와 당당히 몸짓으로 선포한다. 아니, 나 그렇게 살기 싫다고.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남편과 세바스찬 간에 격한 몸싸움이 일어나고, 캐서린은 제 남친이 다칠까 둔기로 남편을 내리찍는다. 하인과는 겸상도 못하던 시절이었건만. 마님 캐서린의 선택은 이름 좋고 돈 있는 남편이 아닌, 쥐뿔도 없지만 사랑하는 세바스찬이었다. 지독한 관습의 사회에서 보자면 파격적인 동시에 참으로 순수한 선택이 아닐 수가 없다.
그 가문의 남자들이 모두 세상을 뜨고 나니 남겨진 재산은 모두 캐서린의 몫이 되었다. 캐서린은 이제 자신의 저택이 된 그곳에서 세바스찬을 남편처럼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행복이 드리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편이 밖에서 싸지른 어린 혼외자식과 그의 할머니가 찾아온다. 영문도 모르는 작은 꼬마 아이가 이 재산에 지분이 있다고 서류를 내미니, 캐서린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을 거두는 수밖에는 없었고, 이로 인해 세바스찬은 그들의 눈을 피해 다시 마구간 신세로 돌아간다.
도대체 이 막장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려는 걸까 종잡을 수 없어지던 찰나. 설상가상으로 캐서린은 세바스찬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혼외자식에게도 캐서린이 모정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이 모습에 세바스찬은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녀의 애정이 그리웠을지 아니면 자신의 지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재산이 그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세바스찬은 어긋난 질투심으로 캐서린에게 매정하게 굴고, 세바스찬의 냉대에 불안해진 캐서린은 오로지 세바스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익숙한 묘안을 떠올리는데. 바로 세바스찬과 공모해 남편의 혼외자식 꼬맹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
이리하여 이 커플은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어떤 살인에도 정당성이 부여될 수는 없으나, 시아버지와 남편을 처단한 것 까지는 보는 이가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작 6살이 됐을까 말까 한 꼬마 아이를 쿠션으로 짓누르는 장면은 왠지 보기가 불편했다. 그 살인에서, 둘의 순수한 사랑을 넘어선 욕망과 배신이 비쳤기 때문일까.
막상 어린아이를 죽이고 나니 세바스찬은 뒤늦게 눈물 콧물 쏟으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뒤이어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세바스찬이, 아이의 죽음을 수사하러 온 경찰에게 '저 여자가 죽였다'고 고백해버리고 만 것이다. 세바스찬의 폭로에 캐서린은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인다.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뻣뻣한 표정에 담겨있던 모든 감정들. '네가 어떻게?'라는 소리 없는 물음. 죄 없는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세바스찬이 이해되면서도, 그녀 혼자가 아닌 함께 벌인 일에서 발을 빼려는 세바스찬이 역겹기도 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 그와 나의 자유를 꿈꿨는데 배신당한 캐서린은,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려는 사람들 앞에서 결심한다. 자신의 사랑 세바스찬에게 지금껏 한 번도 휘두른 적 없던 권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하기로. "내 하녀와 저 하인 놈이 죽인 거예요. 난 몰라요"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부유한 미망인인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결국 세바스찬 그리고 내내 캐서린의 심기를 거스르던 하녀 안나가 체포되어 끌려간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엔딩신이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저택에 홀로 남은 캐서린이 푸른 드레스를 차려입고 거실로 나와 앉아있는 장면.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이를 죽였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자식도 이미 처단한 지 오래다. 그녀의 배에는, 그녀가 원해서 그녀의 뜻으로 잉태된 세바스찬의 아이가 있다. 캐서린이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세 번의 살인과 배신의 얼룩을 지워낸다면, 그녀가 원했던 건 그저 관습의 사회가 강제로 부여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삶 아니었을까.
거실 소파에 앉아 침묵의 눈을 한 캐서린을 오래도록 비추는 엔딩신은, 소름끼치기 보다는 슬프게 와 닿았다. 그 시절 여자의 삶이 어땠는지, 캐서린처럼 행동할 수 없었을 여인들이 어떤 결의 삶을 감내했을지가 그려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참 감사하다. 결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세상, 내 신랑은 내가 고르는 세상, 남편의 혼외자식을 거둘 어떤 명분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
- 4월1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4월 1주 개봉영화!
스텔라 Stellar , 2021
대한민국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제작진들이 한데 뭉쳤다!
영화 "http://스텔라"는 옵션은 없지만 사연은 많은 최대 시속 50km의 자율주행차 스텔라와 함께 보스의 사라진 슈퍼카를 쫓는 한 남자의 버라이어티 추격 코미디 입니다
'맨발의 기봉이'부터 '형'까지 코미디 영화들을 선보여온 권수경 감독이 맡았습니다.
또한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 각색을 맡았던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 시나리오 배세영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습니다
손호준, 이규형, 허성태의 유쾌한 연기 시너지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할 관점 포인트 입니다.
1983년 출시된 스텔라를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버라이어티 추격 코미디!
첫번째 추천영화 "스텔라" 입니다.예고편 보기
------------------------------------------------------------------------------------------------------------------------------------------------
불도저에 탄 소녀 The Girl on a Bulldozer , 2021
김혜윤 배우 첫 장편영화 주연작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강단과 순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혜윤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하는데요
화난 또라이의 한국영화 독보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킵니다.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모티브로 한 현실성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현재를 가리키는 시의성을 더한
두번째 추천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입니다.
예고편 보기
------------------------------------------------------------------------------------------------------------------------------------------------
수퍼소닉2 Sonic the Hedgehog 2 , 2022
소닉과 테일즈 VS 너클즈와 천재 악당 로보트닉의 대결
영화 "수퍼 소닉2"는 초특급 히어로 소닉과 새로운 파트너 테일즈 VS 수퍼 빌런 너클즈와 천재 악당 로보트닉의 대결을 그린 넥스트 레벨 어드벤처 영화입니다.
역대 게임 원작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수익을 기록한 '수퍼 소닉' 속편으로 새로운 화제작 탄생을 예고하는데요
지난 주말 독일, 뉴질랜드, 노르웨이, 체코 등 전 세계 11개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
영국, 프랑스, 호주, 스페인에서는 '모비우스'와 함께 2위에 올라 글로벌 흥행의 중심에 섰습니다.
수퍼소닉1 보다 더 커진 스케일과 스토리의 넥스트 레벨 어드벤처로 '데드풀', '분노의 질주' 제작진의 특급 만남으로
새로운 흥행 신드롬을 예고하는
------------------------------------------------------------------------------------------------------------------------------------------------
앰뷸런스 Ambulance , 2022
레전드 액션 마스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귀환!
할리우드 레전드 액션 마스터 ‘마이클 베이’ 감독이 영화 "앰뷸런스"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앰뷸런스"는 인생 역전을 위해 완전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한 동생 '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두 형제의 뜨거운 운명을 건 멈출 수 없는 질주를 담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노브레이크 리얼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그는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겟돈', '아일랜드', '트랜스포머' 시리즈까지 특유의 폭발적인 액션씬이 가득한 작품을 연이어 탄생시켰고
‘액션=마이클 베이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성립시켰습니다.
영화 "엠뷸런스" 는 제이크 질렌할부터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잘레스까지
숨 막히는 열연의 연기파 배우 총출동해 압도적 연기 시너지를 선보인다고 하는데요
CG를 최소화하며 긴장감을 살린 액션들을 만들어낸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네번째 추천영화 "앰뷸런스" 입니다.
예고편 보기
------------------------------------------------------------------------------------------------------------------------------------------------
루이스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 , 2020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새로운 로맨스 영화
영화 "루이스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의인화한 고양이 그림으로 사랑받으며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꾼 화가 루이스 웨인의 전기 영화입니다.
천재 고양이 화가 루이스와 그에게 찌릿한 사랑의 감정을 알려준 에밀리,
그리고 고양이 피터가 만들어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로맨스를 담았는데요
곳곳에 놓인 삶의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들의 특별한 러브 스토리는 섬세한 감정선으로 완성돼
봄 극장가를 따뜻하게 물들일 예정입니다.
또한 주연을 맡은 명품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데뷔 이래 가장 로맨틱한 역할로 완벽 변신하며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클레어 포이와 사랑스러운 케미를 선보여 올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생 로맨스의 탄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선사할 놀랍도록 다정한 로맨스 영화!
다섯번째 추천영화 "루이스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입니다.
예고편 보기
-
-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수평적 교환을 통한 소통의 성취
현대 사회 구성원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유동하는 정보들과 부유하는 자의식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나를 둘러싼 다른 존재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에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므로, 늘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외계인과 인간의 소통을 그리는 다양한 텍스트들은 소통을 둘러싼 맥락 변화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문화적 징후이다. 드니 빌뇌브의 SF 영화 <컨택트(Arrival)>(2016)에서 외계의 존재를 상대하는 임무를 맡은 웨버 대령은 “그들이 뭘 원하고, 어디서 왔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며 언어학자들을 다그친다. 상당수의 인간은 웨버처럼 지구를 방문한 불청객을 향해 의구심과 불안감을 표출할지도 모르겠다. 불가해한 타자와 대면하는 순간에 인간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이때 <컨택트>의 루이스 박사는 낯선 타자와의 소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루이스는 외계의 존재와 원활히 대화하고 싶다. 웨버 대령에게 ‘캥거루’ 일화를 드는 루이스는 오역 없는 명확한 상호 의사전달을 위해서 기본이 되는 사항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외계인이라는 타자를 적 혹은 침략자와 동등한 층위로 인식하지만, 루이스는 편견을 접어두고 소통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헵타포드로부터 특별한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자 군인과 분석관들은 조바심을 느끼지만, 루이스는 이내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의 언어를 감지할 수 없다면, 우리의 언어를 그들에게 제시하는 방식 말이다. 루이스는 군인, 과학자들과 대비된다. 그녀가 수평적인 교환을 지향한다면, 후자의 집단은 수직적인 질문 혹은 강요에 매달린다. 루이스는 타자를 향한 편견을 완전히 거둔 채 그들 앞에 나서고, 나머지 인원은 몇 겹의 벽을 세우느라 소통의 성취와 멀어진다. 영화에서 루이스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오염 방지 슈트를 벗어던지고 헵타포드를 찾아간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루이스를 보며 놀라워한다. 루이스가 선형적인 인간의 개념 대신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개념, 언어와 시간에 관한 낯선 형태의 사유를 수용하여 그들의 사고 체계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컨택트> 스틸컷
관계의 전도가 만들어내는 소통의 형태
구로사와 기요시의 SF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2017)에는 발화된 언어를 학습하려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지구를 침략하려고 한다. 이들은 인간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들이다. 극 중 한 외계인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일이 며칠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구의 기술력이 형편없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이때 외계인들이 굳이 인류 절멸을 위한 사전 답사라는 명분으로 인간에게서 뭔가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의 관점에서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그렸던 <컨택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관계의 역학을 다르게 묘사한다. 외계인이 주체고 인간이 객체로 전도된 인상을 풍긴다. 더 나아가 영화에서는 외계인에게 신체를 뺏긴 신지의 아내인 나루미가 매우 흥미로운 인물로 묘사되는데,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전도된 관계에서 나루미가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지 들여다본다면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추출할 수 있기도 하다.
외계인이 인간에게서 개념을 탈취하는 목적은 의외로 간명하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해서 효율적으로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 침략자들은 어딘가 엉성하게 지구를 침공 계획을 세운다. 인류를 절멸시키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면서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해보겠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들은 인간에게서 주요한 가치를 뺏는다. 이를테면 ‘가족’. ‘소유’, ‘일’과 같은 개념들이다. 기묘한 소통의 형태, 양방향이 아닌 뒤틀린 단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면서, 두 개체 간의 관계 양상에 변화가 생긴다. 우리 처지에서 철저한 타자인 외계인이 주체인 인간과 유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외계인의 관점에선 주체(외계인)의 객체(인간)화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속 세 명의 외계인 중에서 주인공 격인 신지는 이러한 모호성을 내포한 존재다. 이 관계의 역학은 다소 폭력적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단방향 소통 구조는 흡사 원주민의 문명을 지워내는 제국들의 만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관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 방금 사용한 예시는 적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폭력적인 단방향의 소통이긴 해도, 정체성이 모호하게 묘사되는 존재인 신지를 통해서 타자성을 수용하는 개체의 심리를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신지의 아내인 나루미는 외계인과 기존 신지의 의식이 융합된 포스트휴먼 격인 새로운 남편을 바라보면서 혼란에 빠지는데, 영화에 묘사된 나루미의 대응 방식에서 또 다른 낯선 타자와의 소통에 있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발견된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신지의 정체를 파악한 당국에서 신지를 잡아가려고 하자, 나루미가 이를 눈치채고 신지와 함께 도망친다. 나루미는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주체성과 객체성의 분리가 모호해진 존재인 신지를 향한, 그러니까 탈경계화된 존재를 향한 인간의 손길은 다층적인 소통의 층위가 생성되는 기회를 만든다.
관계의 전도가 촉발하는 새로운 소통의 형태는 <산책하는 침략자>뿐 아니라 <컨택트>에서도 발견된다. 시간성에 관해서 새로운 인식 체계를 받아들인 루이스는 일종의 포스트휴먼이다. 그녀에게 과거-미래-현재는 모두 동일선상에 놓인 채 공존하는 시점들이다. 미래를 엿보는 ‘현재의 나’는 곧 그 대상인 ‘미래의 나’와 정신을 공유할 수 있다. 단순한 미래 예지 능력을 갖춘 존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시간관념을 장착한 포스트휴먼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런 루이스는 모호한 존재성을 떠안은 채, 헵타포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인류에게 손길을 내민다. 이 루이스의 행동들이 단순히 결정론적 관점에서 예정된 행동이 아닌, ‘선택’처럼 묘사됐다는 점이 타자를 향한 루이스의 심리와 행위가 내포하는 지점을 다변화한다. 루이스에게 다수의 평범한 인류는 일종의 타자처럼 기능할 수 있지만, 이 전도된 관계에서 피어나는 루이스의 선택들로 또 다른 소통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미지의 영역처럼만 보이던 우주는 21세기 들어 더욱 선명해졌고,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외계 존재와 같은 불분명한 타자는 우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계의 존재와 맞닥뜨리는 먼 미래의 순간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불가해한 타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사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 베놈2 vs 듄 흥행예측!! 과연 어떤 영화가 흥행할까? 토론 배틀(feat.댓글 이벤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10월 초대형 기대작 베놈2와 듄이 개봉을 앞두고있습니다. 씨네랩과 씨네마사지가 만나 어느 영화가 흥행할것인지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벤트 알림 10월 20일까지 어느 영화가 흥행할지 댓글로 달아주시면(각 영화 개봉 후 1주차 국내 관객수) 정답을 맞추신 분들중 추첨하여 '프리미엄 영화관람권 2매'를 보내드립니다!!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
- 영화 <극장판 포켓몬스터DP : 기리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1차 예고편
끝나지 않은 전설의 포켓몬들의 배틀로
위험에 빠진 반전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감사포켓몬 ‘쉐이미’와 ‘지우’, ‘피카츄’가 나서면서 시작되는 모험 이야기
-
- 영화 <플라워 킬링 문> 국내 리뷰 예고편
"역시 마틴 스코세이지" 결코 늙지 않는 거장의 마스터피스 [플라워 킬링 문] 지금 극장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