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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2021-02-11 00:00:00

1917(2019/ 미국)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917포스터 이미지 검색결과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4월6일. 노란 들꽃으로 가득한 어느 아름다운 들판. 나무에 기대어 영국 병사 둘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영국 육군 제8보병연대 소속 톰 블레이크 병장과 윌리엄 스코필드 병장이다. 블레이크에게 한 중사가 다가와 병사 한 명과 함께 사령부로 가보라는 명령을 전하면서 이들의 꿈 같은 휴식은 끝이 난다. 

 

블레이크는 별것 아닌 명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던 스코필드와 함께 사령부에 도착하나 사령관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독일군의 계략에 빠져 다음날 아침 총공격을 할 데번셔연대 지휘관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중지 명령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데번셔연대 군인 1,600명의 목숨이 걸린 임무였다. 더욱이 그 연대엔 톰 블레이크의 형, 조셉이 소속되어 있는 형편. 장군은 진지 건너편 독일군이 작전상 후퇴를 한 상황이어서 저항이나 공격은 없을 것이니 즉시 떠나라고 명령한다. 

 

신중한 스코필드는 장군의 정보가 틀린 것이라면 적에게 노출될 지도 모르니 밤에 출발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형을 구해야만 한다는 급한 마음에 블레이크는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과 적은 없다는 정보를 강조하며 그 자리에서 임무에 나선다.

 

아군 진지의 좁은 참호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난관. 최전선의 지휘관이 일러준대로 아군 철조망, 무너진 청음초, 적군 철조망까지의 길은 정확했으나 그 뒤부터는 오직 둘이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야만 했다. 장군의 말대로 독일군은 철수한 후여서 공격은 없었지만 철수하면서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을 뻔한 스코필드를 블레이크가 간신히 구한다.

 

위기를 넘기며 전진하다가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에 노출되고 마는 두 사람.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 블레이크는 적군이 편히 죽게 그냥 두고 가자는 스코필드의 의견에 맞서 독일군을 구하나 그의 칼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독일군을 사살한 뒤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한 스코필드. 정신을 차리고 전사한 친구의 반지와 인식표를 챙기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데 그의 앞에 다른 연대 소속 아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지휘관인 스미스 대위는 스코필드의 목적지에서 가까운 에쿠스트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우여곡절 끝에 에쿠스트에 이르는 다리 앞에 도달했으나 독일군의 폭파로 다리가 두 동강이 나 차로는  건널 수가 없었다. 스코필드는 스미스 중위와 헤어져 무너진 다리를 간신히 건너는 중에 매복 중이던 독일군의 저격을 받는다. 한 건물의 2층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안 그는 혼자 남은 독일군을 사살하나 적군이 쏜 총에 철모가 날아가면서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 계단을 굴러 잠시 의식을 잃는다.

 

어둔 밤. 떨어지는 빗물에 눈을 뜬 스코필드는 조명탄이 터지는 가운데 에쿠스트 마을로 진입하던 중 적의 추격을 받는다. 그곳은 이미 적에게 점령 된 상태. 도망하다가 간신히 몸을 피한 곳에서 숨어지내고 있는 한 프랑스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버려진 갓난 아기를 기르고 있었다.

 

서툰 프랑스어와 영어를 교환한 끝에 데번셔연대가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 스코필드는 여성과 아기에게 음식이 없음을 알고 그가 지니고 있던 식량 모두와 우유를 남긴다. 이제 곧 날이 밝아 총공격 명령이 떨어질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

 

적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을 것이지만 스코필드는 장군의 명령과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명탄과 총알을 헤치고 전진해야만 한다. 

 

결국 적군들의 일제사격을 받게 되자 이를 피해 강물로 뛰어들어 생사를 수 차례 오간 후에 프랑스 여성이 알려준대로 강을 따라 가다가 강둑으로 헤엄쳐 나가 숲에 이른다.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긴데다 총도 군장도 모두 잃어버리고 기진맥진한 스코필드는 숲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린 듯 끌려간다. 소리를 따라가니 숲속에 빼곡히 들어찬 사병들 가운데서 한 사내가 찬송가를 부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데번셔연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후발대이고 선발대는 이미 출격한 후였으며 블레이크의 형은 선발대였다. 

 

일각을 다투는 형편에 참호 속을 누비다가는 매켄지 중령의 공격명령을 도저히 중지시키지 못할 것임을 즉각 깨달은 스코필드는 참호 밖으로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순차적으로 돌격하는 병사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내달려 사령부로 향한다.

 

드디어 공격명령 30초 전에 매켄지 중령에게 장군의 친서를 전달하는 스코필드. 간신히 공격은 중지시켰지만 이제는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

 

조셉 블레이크를 찾아 이리저리 뛰던 그는 톰이 알려준대로 그와 닮은 블레이크 중위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두 가지 약속도 지키게 된다. 

 

<191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화제작이어서 꼭 보려고 아껴두었었다. 그리고 소문대로 롱테이크는 볼만했다. 

 

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내러티브에 힘이 있다. 전장에 있어 보지 못했거나 치열한 전투를 여러 차례 겪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지 못할 대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차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이 영화를 대작으로 느껴지게 한 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하는 롱테이크 촬영기술에 돌려야 할 것이다. 영화 공부를 하며 수 천 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촬영한 영화는 처음 보았다. 카메라도 등장인물들도-전방과 후방 모두에서-움직이게 동선을 배치하여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긴박감을 유지한다. 콘티를 도대체 어떻게 짰을까.

 

스코필드가 정신을 잃는 장면에서 암전이 있던 것 빼고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진행되는데 편집은 또 어떻게 한 것일까.

 

요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기치로 내세우며 특별한 촬영기법이나 편집방법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철조망에 걸려 있거나 땅에 파묻히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교전 장면을 대신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허망함을 충분히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분노하게 만든다. 

 

백미는 스코필드가 매켄지 중령을 만나기 위해, 돌격하는 전우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뛰는 광경이다. 그가 카메라 앞으로 전력을 다해 계속 달려 오는데도 카메라와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목적지에 쉽게 닿지 못하는 답답함과 저러다 끝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하는 장면. 이는 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 한 개인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 두어 장을 품은 채 생명을 걸고 전투에 나서는 젊은 군인들과, 그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을 제물로 삼아야만 얻어지는 국가의 위신과 이익의 대비가 관객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어찌 생각하면 롱테이크의 촬영기법이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듯하여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무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끝나는 마무리가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영화 전체를 마치 편집하지 않은 한 장면처럼 만들어 두 시간 가량을 신속하게 지나게 한 샘 멘데스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인류 역사를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무수한 젊은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지켜보며 만약 정치인들이 군인들만큼이나 사리사욕 없이 그들의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해 왔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은 좀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하릴없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2020.최수형).

작성자 . breeze

출처 . blog.naver.com/breezein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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