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18 23:33:30
사랑을 자각하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리뷰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는 최연이 학교에 전학오고 하경과 지내면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다.
하경도 마찬가지로 최연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는데...
학창시절은 혼란스러운 시기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저렇게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을 겪으면서 내가 성장한 것이 아닐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는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어떤 형태인지를 몰라서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포근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런 순간에도 최연의 시선은 하경에게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신호등 장면이 제일 좋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같다고 하더라도 이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명이 인지하더라도 다른 한명은 아직 자기 마음을 모를 수 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떤 감정인지 인지하는 순간이 일치하기는 어렵다. 먼저 인지하는 사람이 있고 늦게 인지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늦게 인지한다고 잘못은 아니다. 원래 자기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는 건 쉽지 않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사랑을 자각하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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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네가 남긴 혼돈 [스페인 드라마] [결말을 포함 줄거리]
힘든 일 때문에 잠시 교직을 쉬고 있던 한 여자가 남편과 함께 이사를 가게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다시 교편을 잡지만, 자신이 오기 전 같은 과목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유 모를 찜찜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남편의 소개로 오게 되었던 새로운 마을. 알고 보니 남편은 죽은 여자의 후임임을 알면서도 아내에게 그 자리를 추천한 것이었다. 죽은 선생님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학생들은 전 선생님과 주인공을 비교하며 괴롭히고, 단단한 마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자리를 잡아갈수록 새로운 사건과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지고. 주인공은 어느새 죽음의 음모 한가운데 들어서게 된다.
가끔 스페인 드라마를 볼 때 한국 작품과 비슷한 접점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낀다. 네가 남긴 혼돈도 그랬다. 막장 코드와 스릴러 코드를 적절히 잘 조합한 후 몰입도 높게 극을 끌어가는 시나리오. 범죄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주인공을 한 번씩 긁는 시댁 식구(특히 시어머니는 외국 드라마에선 보기 힘든 코드인데 여기엔 등장한다). 고립은 아니지만 자발적 고립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마을에서 외지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겪게 되는 문제. 한국 스릴러 영화에서 보던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공포 코드와 닮아있다.
죽은 문학 선생님과 후임 문학 선생님의 이야기를 적당히 교차하며 죽은 여자에게 벌어졌던 일을 쫓아 가는 이 드라마는 혼란 스러운 상황에 대한 떡밥을 하나씩 풀어간다. 과거와 현재가 얽히면 작품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데, 네가 남긴 혼돈은 경계를 잘 지켜서 흥미를 더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결국 진실에 닿게 된다.
살해는 누가 했는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의 주범은 누구인지를 알게되지만 그럼에도 살아 남는다.
살인, 마약, 성범죄, 학대까지.
시종일관 우울한 톤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우울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인공이 살아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품의 마지막화에 깔리는 노래.
스페인 노래는 많이 낯선 편인데, 네가 남긴 혼돈을 다 보고 난 후에도 이 노래를 듣고 있다.
Turnedo (feat. Xoel Lopez / Confesiones-dire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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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작업
부모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작업
*개봉 전에 배급사 알토미디어㈜ 측에서 제공한 스크리너로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는 컬러와 흑백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릴리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는 컬러로, 그녀의 기억과 편지를 통해 영화 속에서 재현된 과거는 흑백으로 표현된다. 이 영화의 흑백 씬들을 보다 보면 그것이 극 연출인지 실제 역사 기록물인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당시 스웨덴 수용소에 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아카이브 영상으로,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 곳곳에 삽입한 것들이다. 역사적 사실의 기록물과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씬들, 그 근원이 되는 릴리의 기억과 편지의 내용들이 영화 안에서 섞인다.
영화 말미에 가서 이 영화를 부모에게 바친다는 문구를 보면서도 충분히 추측 가능하지만 영화의 감독 피테르 가르도스는 미클로시와 릴리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의 아들이다. 이 영화는 감독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감독은 영화화 이전에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새벽의 열기>를 집필했었는데 이 소설 또한 영화의 원작 격이라 볼 수 있다.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릴리에게 편지를 건네받는 남자는 감독 자신이며 감독은 자신이 자신 부모가 서로에게 보내던 편지를,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느낀 모든 것을 관객에게 최대한 온전히 전달하려 노력했다.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서사 사이사이의 부족한 공백에는 편지 내용과 어머니의 기억을 바탕으로 감독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여느 영화 속 인물들은 실의에 빠지거나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의 미클로시는 그런 전형적 성격의 인물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자마자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 믿고 행동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게 요양원에 있는 117명의 여자에게 117통의 편지를 보내 무턱대고 자신과 사랑하고 결혼할 사람을 찾는 그의 행동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끝내 성사되고, 그는 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워 가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직접 요양원으로 찾아간다. 주치의는 그의 건강상태를 걱정하며 그를 만류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2,500km의 먼 여정을 떠난다. 오직 릴리를 만나기 위해서.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건 두 사람의 아픈 신장과 폐뿐만이 아니다. 릴리의 친구 유디트는 릴리에게 집착하며 릴리가 모르게 미클로시가 보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가 선물한 겨울 외투 옷감을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등의 행동을 한다. 릴리는 확증을 찾지는 못하지만 심증만 갖고 있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감독의 상상력은 여기에 가미되기도 했다. 유디트에 대한 묘사는 감독 어머니의 당시 친구 유디트가 그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 의심 반 확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것에 살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 사랑에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람의 종교였다. 두 사람은 유대교인이지만, 릴리는 유대교가 아닌 개신교 신자로 거짓 등록된 상태였고, 이 점은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다.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미클로시는 결국 그녀를 따라 개신교도로 개종해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종교보다도 사랑을 택한 것이다. 이들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이들 소식이 스웨덴 랍비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랍비는 은밀하게 두 사람을 설득해 유대교식 결혼을 치르도록 돕는다. 많은 난관이 닥쳤으나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이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고,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된다.
무모해 보였던 미클로시의 선택이 점점 맞아 들어가며 그가 자신의 연인 릴리를 찾아 사랑을 하고 결국 결혼까지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가슴 뜨거운 순수한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듯하다. 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고, 수용소와 요양원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임에도 두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만을 바라보며 그 난관들을 헤쳐나간다. 영화는 두 사람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영화로써 재현해내며 그들의 발자취를 차례로 되짚어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은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 테다. 어쩌면 그 시대의 사랑이자 낭만이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의 말도 안 되는 모든 것들이 감독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다시금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에서 편지라는 두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얼마 전 개봉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의 물성(物性)과 감성(感性)을 가득 담아 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편지를, 부모의 기억을 감독이 필자가 되어 관객에게 긴 편지 한 통에 써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내용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되짚어보고 기억하려는 태도와 함께.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러브레터를 담아낸 영화이면서 또한 자식인 감독이 자기 부모에게 보내는 열렬한 러브레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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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해방만이 답은 아니다.
경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론: 실패한 피카레스크
넷플릭스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약칭: 무라니시)의 주인공은 무라니시 도루라는 실존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 1990년대에 일본 안에서 AV 산업을 주름잡았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제작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그의 행적을 되살리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무라니시>는 무라니시 도루(야마다 타카유키)의 명암을 드러내는 피카레스크를 표방한다. 흡사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말이다. 그에 맞게 <무라니시> 시즌 1은 무라니시의 빛나는 성공을, 시즌 2는 무라니시의 잘못과 몰락을 그린다. 무라니시뿐만 아니라 AV 산업에 숨어 있는 명암도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다.
하지만 <무라니시>가 놓쳐버린 것이 있다. 바로 피카레스크가 전달해줘야 하는 감정이다. 피카레스크는 악인들의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 그런 만큼 평면적인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작품들보다 만들기 더욱 어렵다. 이들은 보통의 주인공들에게 느끼는 공감과 악인들의 잘못으로 인해 몰락하는 결말을 동시에 선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시학>에서는 등장인물의 불행이 그의 악행 때문에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불행이 실수나 판단 착오 때문에 일어나야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이 주인공이라면 이 감정과 함께 그의 몰락으로 인한 카타르시스도 같이 선사해야 한다.
무라니시란 캐릭터의 문제점
<무라니시> 속 무라니시에게는 주인공으로서 선사하는 공감이 있다. 하지만 악인으로서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는 없다. 무라니시는 드라마 내내 인간의 욕망을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욕망에 동조한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1의 매력은 마침내 그 욕망을 성취하는 데 성공한 무라니시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분명 무라니시의 목표는 잘못되었다. 그럼에도 무라니시에게 공감을 했던 이유는 그 목표를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그래서 시즌 1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무라니시의 성공은 성취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하지만 시즌 2가 되면 이러한 모습은 정반대의 감정을 전달한다. 드라마가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의 실책을 드러내면서도 그 실책이 출발부터 잘못된 목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애써 회피하려 한다. 그 이중성이 드라마를 혹평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요소다.
그 이중성은 결말에서 격화된다. 무라니시는 몰락한 뒤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거지로 전락한다. 어느 날 그는 예전 동료와 함께 바다로 가게 된다. 무라니시의 폭주를 보다못해 그와 결별했던 사람이었다. 무라니시는 그에게 해변가의 돌을 파는 퍼포먼스를 한다. 그리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 모습은 무라니시의 불행이 그의 욕망을 알아주지 못했던 세상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무라니시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순수했지만 세상이 그걸 알아주지 않아 몰락했다는 이야기다. 이 탓에 카타르시스는 완전히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표면적으론 악인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 카타르시스는 확실히 챙겼다.
의혹
결국 <무라니시>의 어정쩡한 태도는 욕망을 해방시키면 안 된다는 기괴한 결말로 끝나버렸다. 어쩌면 <무라니시>는 무라니시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척하면서 그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물론 그의 욕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여전히 올바른 삶을 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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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손으로 파괴되는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한국. 어느 날 불가사의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이를 시연이라고 부르며, 죄를 지어도 제대로 벌주지 않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형사 '진경훈(양익준)'과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처럼 새진리회의 해석과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고, 정진수는 자신의 교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옥행을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실제로 시연이 고지된 시간에 이루어지자 새진리회가 새롭게 정의한 죄와 그 해석은 새로운 사회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은 민혜진과 '배영재(박정민)'로부터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구축한 진리, 정의, 질서에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감독의 전작인 <반도>와 유사한 작품이다. 좀비 영화의 외관을 한 <반도>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이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한 인간 군상이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 역시 신과 천사, 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판타지 영화의 외관을 갖추지만,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비현실적 존재를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정진수와 민혜진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신의 존재, 더 나아가 종교가 대체 무슨 효용이 있냐는 민혜진의 비판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이잖아요"라고 응수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신을 내세워 만들어진 종교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옥>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며, 또 사람들은 그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염세주의적이면서도 도발적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옥>의 내용은 크게 1-3부와 4-6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전반부의 내용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연'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수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경고해온 정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기제가 있다. 바로 죄와 죄책감이다. 그는 시연이 스스로를 엄격히 정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신이 직접 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죄책감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는 그가 고지를 받은 박정자와 시연을 중계하는 것을 두고 협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며 그녀가 불륜 내지는 성매매를 저질렀을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는 이유다. 또 자신의 해석과 사람들의 죄책감에 힘을 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시연당한 것으로 가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진수의 일련의 행동과 발언, 고지와 시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인 <문명 속의 불만>에서 분석한 종교의 구조 및 작동 양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에로스(사랑과 성욕)와 타나토스(죽음과 파괴)의 욕동이 있으며, 종교는 이 욕동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적 욕동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고, 타나토스적 욕동 역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기에 문명을 위협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두 욕동의 발현과 실천을 죄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제사장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는 정진수의 대사, 그리고 그가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암시되거나 가장 파괴적인 욕동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자신의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생자로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곧 정진수에게 신의 존재와 시연의 대상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와 죄책감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회를 유지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다.
이 대목은 사실 <지옥>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억압한다고 비판한 종교의 모델이 기독교인데다가 작중 정진수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진수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향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연을 목격하고 깨달음은 얻은 후 새진리회를 만든 것은 예수가 광야로 나가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활을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진수가 사이비로 취급받는 것, 그가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온 것, 심지어 그가 일찍이 자신의 운명과 최후를 알고 있던 것 모두 예수의 공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다 보니 종교는 그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제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인간을 죄책감으로 억누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다분히 도발적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후반부에서 <지옥>은 사회의 유일한 질서로 거듭난 종교와 그로 인해 강림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진리회가 만든 질서와 진리에 순응한다. 또한 종교가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동을 통제한 나머지 심리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고지를 받은 이는 곧장 범죄자로 몰리고, 자신의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죄를 대신 자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한다는 종교가 역으로 만든 지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중 묘사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인간상과 유사한 배영재를 등장시키면서 지옥을 비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할 때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는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확신이나 진리, 믿음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PD인 배영재는 새진리회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새진리회 덕분에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사제의 주장을 화살촉 범죄를 포함하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박하기도 한다.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조직 '소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더 나아가 소도의 도움을 받아 시연이 인간의 죄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간파하는 등 '의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심으로 가득한 배영재라는 인물의 존재는 획일화된 정의와 진리로서 종교의 구조를 만드는 정진수와 대립항을 이루고, 전혀 다른 전후반부의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작중 죄와 죄책감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가 자율성인데, 배영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면서 정진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더해 드라마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배영재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새진리회의 폭거에 온몸을 던져 싸운 민혜진에게 한 택시기사가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하며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옥>의 주제의식이 단지 종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했던 연상호 감독답게 <지옥> 역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의 믿음과 진리, 확신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관하고 언제나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특정 정치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정치 현상이나 특정 담론의 논리에만 의지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작중 언론은 그저 받아쓸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이지선다를 강요받으며, 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다. 정진수가 박정자의 시연이 중계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로 등장해 자신의 교리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뉴스 앵커가 압도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새진리회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새진리회 측의 요구를 방송국이 그저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이 마주하는 병폐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을 지적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의 직업이 PD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진리회가 강조해온 죄와 죄책감, 처벌의 교리가 부정되는 현상은 개개인, 평범한 시민의 핸드폰과 sns를 통해서 중계된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정보를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서 어젠다를 세팅할 힘이 개인에게 넘어간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낸다. 아무리 강력한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의심할 때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지옥이다.
사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지옥>이 마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자를 묘사하고 시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CG의 퀄리티는 부족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연기력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인상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목도 찾을 수 있는데, 신파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 곧 사랑의 힘이 한 생명을 구하는 내용이 결말을 이룬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해당 장면이 상당히 담백하게 연출된 결과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염세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작품 분위기를 뚝심 있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에로스가 자신처럼 불멸하는 맞수와의 투쟁에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억압적 기제로서의 종교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눈물은 서사와 메시지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과 종교를 빌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비극과 일말의 희망을 속삭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인상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신과 종교라는 거울에 비춰 보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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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분노로 품은 실화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이 이끄는 대학생들, '애비 호프먼(사챠 바론 코헨)'과 함께 움직이는 히피들이 시작한 반전 시위는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이어진다. 이를 닉슨 행정부가 반전 분위기를 잠재울 기회로 삼은 결과, 미국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를 받은 연방검사 '리처드 슐츠(조셉 고든 래빗)'는 마지못해 주요 운동가를 공모 혐의로 기소한다. 그 결과 톰, 애비, 제리와 시위에 참가한 적도 없는 흑표당원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을 포함해 총 7명의 운동가들은 모의죄를 저질렀다고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윌리엄(마크 라일런스)'은 '전직 법무부 장관(마이클 키튼)'을 증인으로 세우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이미 각본이 짜인 재판의 흐름을 뒤바꾸지는 못하고, '시카고 7인'도 톰과 애비를 중심으로 정치적 신념 차이로 인해 점점 분열되기 시작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배급사가 파라마운트에서 넷플릭스로 변경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제목에 포함된 '트라이얼(trial)'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법정 드라마다. 특히 피고(인)의 유무죄와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수싸움에 주목하기보다는 <변호인>과 <도가니>처럼 재판받는 사건을 통해 사회의 문제와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목적의 법정 드라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종종 진실을 알리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겠다는 분노에만 주목해 주인공들을 지나치게 도구화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와 <스티브 잡스>의 각본가로 이름을 떨친 애런 소킨이 각본, 연출을 맡은 결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위의 함정을 무사히 피한 법정 드라마이자 사회 고발 영화로 완성되었다.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과 흑백차별 반대 시위로 혼란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뜨겁다. 영화는 실제 연설 장면과 시위 사진으로 문을 열면서 당시 사회적 분노에 사실성과 구체성을 더한다. 더 나아가 순전히 반전 운동의 열기를 끌어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재판을 조작하는 미국 연방 검찰과 법무부의 모습을 초반부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대목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명분도 없고, 인권도 무시하며, 국민의 뜻에도 반하는 전쟁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그들의 분노에 강력한 정당함을 안긴다. 그 결과 시카고 7인이 공통적으로 지닌 뜨겁게 불타오르는 정당한 분노에 관객들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자연히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는 익숙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검증된 방식으로 타오르는 감정선에 장작을 더한다. 검찰, 경찰, FBI가 한 몸이 되어 수많은 거짓 증언을 늘어놓으며, 판사는 변호인과 피고인들의 이의 제기는 모두 묵살한 채 철저히 연방 검찰의 편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힘겹게 찾아낸 증인의 증언도 판사의 자의적인 판단 아래에서 소멸되어 버리며, 재판 도중 인종차별도 자행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동력이었던 분노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향한 분노,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 정당한 제도와 법률을 지키지 않는 위악자들을 향한 분노로 확장된다. 물론 이러한 전개는 <변호인>에서도 위와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듯이 분명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지만, 이번만큼은 충분히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법정 드라마와 별개로 영화는 7명의 피고인 중 특히 톰과 애비 그리고 바비에게 집중하며 다른 맥락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에도 주목한다. 학생운동의 리더인 톰과 히피들을 이끄는 애비는 반전 운동의 지향점과 시위 방식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톰이 제도 안에서의 투쟁을 주장하는 반면, 애비는 제도 자체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제도권 밖에서의 저항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저항과 투쟁의 과정에서 모든 진보 세력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방법론의 아이러니로부터 비롯한 또 다른 결의 뜨거움도 함께 묘사한다.
이때 시카고 7인 중 가장 이질적이고 시위와의 관련성도 약한 바비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가장 동떨어져 있기에 서로 다른 측면의 분노를 연결하는 데 있어 역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변호인이 없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미 중립성을 잃은 판사는 재판을 강행하면서 그의 발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톰과 애비가 서로 싸우는 동안, 그는 재갈 물리고 손을 포박당하는 와중에도 억울함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를 희생해 흑백차별이 부조리를 온몸으로 고발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문제에 분노하고 사회에 끊임없이 고함치는 것 그 자체가 변화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7명의 피고인이 선고받은 형량과 유무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끝내 서로의 신념과 방식을 이해한 톰과 애비를 비춘다. 애비는 자신들이 왜 반전 운동을 하고, 징집에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재판이 얼마나 불공정한 지에 대해서 피고인이자 증인으로 자격으로 재판장 안에서 주장한다. 톰은 시위대를 거리로 이끈 주역이었음이, 신념을 위해 제도와 법률을 가장 먼저 위반한 반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톰은 7명의 피고인을 대변하는 최후 발언권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정당함을 잃은 사법제도에 저항한다.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과 화해를 보는 듯한 결말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결의 분노를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애런 소킨의 각본은 이처럼 서로 다른 분노의 감정이 한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데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다. 여태 그가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데 능하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쌓여 있었던 긴 이야기의 시공간 배경을 마음껏 섞은 뒤에 특정 사건과 시점에서 빠른 템포로 전개시키며 긴장감과 반전을 조성하는 재주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동업자들이 마주 앉은 조정 협상 테이블 위에서 그들의 개인사와 양면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스티브 잡스> 역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짧은 순간의 잡스를 포착해 가족사와 대인관계 등 업적에 가려진 그의 인간적인 흠결을 가차 없이 스크린으로 불러온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애런 소킨은 서로 다른 배경과 개인사를 지닌 채 시카고에 모인 주인공을 재판 대기실이나 재판 준비 사무실 같은 한 테이블에 모아 놓는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그는 캐릭터들의 성격, 이념, 소신 등 상이한 화학물을 한데 섞어서 터뜨려 버린다. 시위 동기나 시위 진행 등 과거 시간대의 사건을 대화 중간마다 적절히 삽입시키며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덤이다. 그 결과 주된 플롯이 법정에서 진행되는 와중에도 영화는 짧은 순간 안에 개개인의 서브플롯을 전달하고, 멋진 반전을 선보이며 사회고발적 메시지와 주제의식에 깊이를 더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특별한 작가를 만날 때 실화가 얼마나 강력한 감정적 힘을 지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남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와 상황, 쟁점은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갈등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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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OTT 종료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0월의 첫째 주, 모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한 달이 시작되면, 새롭게 공개되는 콘텐츠에 대한 설레임도 가득하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콘텐츠들도 많기에 아쉬움이 남는데요.
그래서 10월이 지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넷플릭스와 왓챠의 종료 예정작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다들 놓치지 마시고 원하는 콘텐츠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캐빈 인 더 우즈
10.24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숲으로 여행을 떠난 다섯 명의 친구들은 GPS에도 잡히지 않는 마을을 발견한다.
그들은 짐을 푼 외딴 오두막과 기이한 물건으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된다.
cine pick!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0%, IMDB에서 8점 대를 받으며
SNS부터 모든 리뷰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오싹한 공포 영화 한 편 어떠신가요?
매드 맥스
10.31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회 질서가 무너진 가까운 미래. 폭력과 범죄로 얼룩진 도로를 달리는 정의로운 경찰 맥스.
무법자들의 손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도 맥스는 멈추지 않는다. 복수에 눈이 멀어 미쳐버릴 때까지.
cine pick!
매드 맥스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이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시초 중 하나로 꼽히는 명작이기도 하다.
제작비가 40만 달러였지만,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을 정도로 히트친 작품이다.
고전 액션, 카체이싱 영화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 추천드립니다!
죠스
10.31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탐욕스러운 거대 백상어가 아미티섬을 위협하는 가운데,
경찰서장과 해양학자, 반백이 된 상어 사냥꾼이 백상어를 잡으러 나선다.
cine pick!
영화 사상 처음으로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신조어를 탄생 시킨 영화이다.
그 당시 신예 감독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세계적인 흥행 감독이 된 명작이다.
영화는 안 봤더라도 누구나 아는 <죠스>의 메인 테마곡!
메인 테마곡은 알지만, 아직 <죠스>를 보지 못했더라면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
10.31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구이자 앙숙인 두 여자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엔 알려지지 않은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곧 깨닫는데.
cine pick!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를 연출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작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을 정도로 시각적으로 뛰어난 영화이다.
고질라
10.31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가족을 잃은 아버지와 아들. 15년 후 괴생명체 무토의 존재를 알게 된다.
놈이 고치에서 부화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신호를 들은 고질라 역시 기지개를 켠다.
괴수 대 괴수의 전투. 전 세계가 초토화된다
cine pick!
고지라 시리즈의 50주년 기념작이며, 고지라 시리즈의 두 번째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이다.
소재가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괴수, 판타지, 재난과 같은 소재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리멤버 미
10.05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이혼가정의 타일러는 무관심 속에서 성장하던 중 형마저 잃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충동적으로 끼어든 싸움에 경찰서로 끌려가고, 보석금으로 풀려나지만 분노는 여전하다.
cine pick!
그냥 봤을 때, 결말 보고 나서 다시 한번 봤을 때, 각각의 장면이 다르게 느껴지기에
두 번 보면 좋은 영화이다. 사랑, 가족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치어 댄스
10.05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짝사랑하는 축구 부원을 응원하기 위해 치어 댄스에 도전한 히카리.
연습이 시작되지만 치어 댄스 부는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해 학교로부터 해체 통보를 받는다.
cine pick!
누구나 한번 쯤 봤을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각기 다른 매력을 펼친 영화이다.
실제 고등학교 치어 댄스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이며,
따듯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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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끝장리뷰 |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상징 | 야자수 의미 | 오프닝, 엔딩 해석 | 결말해석 | 세 번의 탈피 | 음식과 물질 | 스탠리 큐브릭 | 두 자아
[서브스턴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야자수, 세 가지 색 (빨간색 vs 파란색, 노란색)
Chapter 2 물질과 음식, 세 번의 탈피
00:00 괴랄한 수작
00:31 스탠리 큐브릭
01:14 야자수
02:30 세가지 색깔
05:12 의아한 지점
06:10 물질과 음식
07:52 나vs나
08:55 탈피, 변태
09:55 별점 및 한 줄 평
10:1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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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마> 30초 예고편
18세기 말 스페인 식민지 남미의 한 벽지.
치안판사 자마는 스페인 국왕의 전근 발령을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다.
“비쿠냐 포르토” 라는 도적떼에 대한 소문이 지역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는 가운데,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자마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육체적 욕망을 탐닉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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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공각기동대 에스에이씨_2045> 시즌 2 티저 예고편
근미래 SF 애니메이션의 금자탑 《공각기동대》 시리즈, 카미야 켄지와 아라마키 신지가 2045년의 미래를 그린다. 전신 의체 사이보그 쿠사나기 모토코가 이끄는 공안 9과가 다시 한번 전뇌 범죄에 맞선다. 대망의 시즌 2,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