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1-12-19 21:05:27
상상 그 이상을 상회하며 끝까지 간다
<바쿠라우>, 스포일러 없습니다!
'반인륜적인 행동'하면 무엇이 있을까? 롤 하다가 상대 팀 라이너에게 부모 욕 하는 뭐 그런 거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묻는 것이다. 아마 범죄라는 이름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사람을 패 죽이거나 살인을 하거나 뭐 그런 것들이 반인륜적 행위에 들어가겠지? 우리 대부분은 이런 행동을 할 일이 없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고 대학생 때 놀고 직장인 때 돈 모아서 결혼 해 잘 사는 게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 또 우리의 일상은 타인을 사랑하기도 바쁘니 누구를 때릴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이런 반인륜적인 행동은 때에 따라서 합리화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승리한 사람의 것!이라는 말 다들 알고 있잖아? 지금 2021년 12월 한국에서 그걸 따지기엔 이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거슬러 올라와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것 같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건 무슨 말을 대서라도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라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세계의 부조리와 함께하고 있다.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근데 세상이 언제 마음대로 됐었나. 이런 부조리에 의한 살육극이 60억 인구 중 한 곳에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뉴스와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마주한다. 이 영화 역시 그것을 소재로 한 스릴러/호러 장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이에 힘입어 올해 국내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이 덕인지 뭔지 나는 이 작품이 생각 외로 너무 좋았어서 4천 5백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여러분도 이 작품을 보는 걸 추천한다. 아, 다행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호러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헌트>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힐러리 당시 후보의 경선이 신물 나게 싫었던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영화였다. 구체적으로, 인간 사냥이라는 키워드를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풍자로 녹여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꽤나 재미있게 봤다. 내가 좋아하는 <킬 빌>에 대한 오마주도 있고 액션도 사실적이라서 몰입하기 좋았다. 또, 올해 개봉했던 작품 <레미제라블>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우발적인 사고가 점점 커져 한 도시에 폭풍이 휘말리는 것이 영화의 플롯이다. 끝도 없이 폭발하는 텐션에 보고 나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뭐 그런 영화였다. 이 작품 역시 좋은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바쿠라우>는 둘을 합친 것 같은 영화다. <헌트>의 강점은 장르영화가 가진 장점, 그러니까 '사람을 사냥한다'라는 점에서 오는 서스펜스라고 생각한다. 또 수위가 갈수록 높아져서 '이러다가 진짜 사람이 더 잔인하게 죽겠다'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게 영화가 가진 장점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이 집중되게 도와준다. <바쿠라우>는 이 <헌트>의 강점을 공유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점점 극단적으로 발산하는 에너지가 몰입을 잘 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강한 에너지가 그냥 자극적이라서 좋은 게 아니다. 사람 목 잘리고 샷건으로 머리가 터지고 하는 장면이 바쿠라우의 시민들이 가진 화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좋은 연출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잔인한 수위와 함께 영화의 엔딩까지도 와르르 폭발하니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안성맞춤이다. 온통 들끓어 오르는 분노가 사람을 사로잡는, 그런 뜨거운 영화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깊은 탐구
여러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모두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그 이유가 어떤 정치인의 사주, 그러니까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헛웃음을 칠 것이다. 요즘은 또 인터넷이 잘 돼있어서 이런 짓을 하면 금방 티가 날 것이다. 이 <바쿠라우>는 한 인물을 지지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말 안 듣는다고 집단학살을 벌인다. 좀 웃기지 않나? 근데 이게 표현을 극단적으로 해서 그렇지 조금만 바꾼다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려고 드는 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이건 물어보나 마나 한 이야기다. 근데 몇몇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못살게 구는 것을 정당화한다. 어느 나라건 이런 다른 사회계층을 모욕하고 혐오하거나 반대 여론을 찍어 누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거부감이 드는 행동에 가하는 정당한 비판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혐오범죄로 이어진다면 당연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 <바쿠라우>는 이런 몰상식한 일을 초극한으로 비꼬며 우리에게 단적으로 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작품은 브라질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엔 긴 것 같으니 다음 문항(?)에 이어 써야 할 것 같다.
왜 허구치고 리얼한가 했네
물론 이 '바쿠라우'라는 도시는 실존하지 않는다. 황석영 작가의 <삼포 가는 길>처럼 가상에 존재하는 도시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벌어 나는 갈등이 브라질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가령 도입부에 바쿠 라우에 물 수급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물 공급 문제는 브라질 동북부의 오랜 과제였다. 1987년 아마존 투루 쿠이 댐의 원주민 주거지 40ha가 댐에 의해 매몰된 전력이 있고 2019년에는 광산 재벌이 댐 공사를 독단적으로 진행하다 256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물을 원활하게 주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던 브라질. 주민들의 땅을 개간해서 물 공급 이슈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거주민들을 내쫓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브라질의 정권을 잡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극우주의를 표방하며 이 원주민들의 거주권 따위 1도 신경 쓰지 않는 행보를 보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살 터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또 있다. 2019년 7월, 한 브라질의 가톨릭 단체는 근래에 원주민들을 살해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발표했다. 2017년엔 110여 명, 2018년엔 135명이 살해당했다고 하니 나름 심각한 문제다. 기록이 2018년까지만 있어서 내가 개인적으로 네이버에 ‘브라질 원주민 살인사건’이라고 검색하니 다른 기록도 나왔다. 2020년에 BBC에 의하면 어떤 아마존 보호 운동가가 총격전에 의해 피습당했으며 비슷한 사례가 6개월간 5번째 기록됐다고 한다. 또한 브라질의 벌목꾼들이 원주민을 살해하고 아마존을 태우는 등 자국민에 대한 살인 행태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근데 설상가상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마존은 파괴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고 하니, 이 사람은 이런 피비린내를 맡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2020년 1월에는 개발업자와(외지인) 원주민간의 법적 분쟁에 있어 전자의 편을 드는 조항을 만들었단 기사까지 있으니 이 <바쿠라우>가 현실을 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심지어 2019년 8월의 연합뉴스 기사에 원주민들이 외지인들을 쫓아냈다는 기록도 있으니 이 영화는 현실을 고도로 비꼰 우화로 보는 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쉽고 간단하게 예술성 있게
'한 정치인에 의해 사주받은 용병들이 마을의 거주민들을 학살한다'가 줄거리의 개괄이다. 간단한 스토리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지만 일단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에너지와 서스펜스가 몰입을 도와줘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 현재 브라질의 정치현실에 대해 비꼬는 화법을 가졌다고 하는 것도 눈치채기 어려운 게 아니다. 킬러들끼리 서로 살인하는데 비해 지역주민들의 유대감이 끈끈한 것만 봐도 어떤 태도로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니 영화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분들이라도 '이건 이 생각으로 만들었겠네' 눈치챌 것이다. 또 액션이나 미술에 있어서도 영화는 간단하고 쉽다. 모든 액션 영화에서, 총기를 실제로 쏠 일은 없지 않은가? 컴퓨터 CG나 미술팀의 열일이 결과물을 만든 것일 텐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아. 충분히 모를 수 있기에 휙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후반부에 어떤 인물이 생각을 갑자기 바꾸는 듯한 장면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나 킬러들이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사람에게 총질한다는 점이 경우에 따라서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듯. 또 현재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바쿠라우의 시장처럼 반지성주의자라고 하니 이런 암시나 비유가 쉽게 딱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브라질의 정세까지 신경 쓸 일은 없을 테니 이 부분을 모른다고 해서 뭐 수준 이하의 인간이 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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