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0 10:12:03
오늘 생일인 배우 영화 모음.zip
전혜진, 황우슬혜, 이성경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저번에는 생일에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했다면,
오늘은 8월 10일! 오늘 생일인 배우의 영화를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오늘 생일인 배우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 네이버 영화
synopsis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는
교도소에서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끈끈한 의리를 다져간다.
출소 후, 함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던 중,
두 사람의 숨겨왔던 야망이 조금씩 드러나고, 서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cine pick!
'불한당원'이라는 이름의 팬덤까지 만들어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전혜진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유수의 영화제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제 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강력한 포스를 자랑하는 경찰청 '천인숙'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다.
썬키스 패밀리
ⓒ 네이버 영화
synopsis
결혼 20년 차 부부 준호와 유미의 옆집에 준호의 친구인 미희가 이사온다.
이로 인해 유미의 불같은 오해가 시작되고, 막내딸 진해는 사라진 가족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cine pick!
사랑스러운 코믹 연기와 찰떡인 배우 '황우슬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B급 코미디 영화이다.
하트어택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랑하는 사람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100번의 시간을 돌리는 여자의 이야기
cine pick!
이성경 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상의 색감과 영상미가 무척 뛰어나며, 신선한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연출은 <몸 값>, <콜> 등으로 유명한 이충현 감독이 맡았다.
한나 몬타나: 더 무비
ⓒ IMDB
synopsis
마일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10대 소녀가 록 스타 '한나 몬타나'라는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되는 시트콤 <한나 몬타나>의 영화 버전
cine pick!
'루카스 틸 배우와 하이틴의 조합은 최고다'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수많은 명곡으로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듣는 재미도 주며,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이다.
괴물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한강 둔치에 오징어 배달을 나갔다가 괴물을 보게 된 강두.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괴물은 딸 현서를 낚아채 사라지고,
강두와 가족들은 한강 어딘가에 있을 현서를 찾아 나선다.
cine pick!
배우 고아성의 데뷔작이었던 <괴물>. 관객 수가 천 만을 넘어설 정도로 흥행을 했으며,
지금도 계속 회자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영화로 고아성 배우는 제27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
제9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여자배우상, 제 1회 대한민국 영화연기대상에서 영스타상을 받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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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싱> 삼중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두 여성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0년대 뉴욕, 남달리 밝은 피부색을 가진 '아이린(테사 톰슨)'은 이를 활용해 백인 전용 호텔이나 헤어숍을 드나드는 패싱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더위에 지쳐 들어선 한 호텔에서 어린 시절 친구였던 '클레어(루스 네가)'를 만난다. 자신처럼 밝은 피부색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백인 남편 '존(알렉산더 스카스가드)'과 결혼한 후 흑인이지만 백인으로 살아가며 경제적으로도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클레어. 그런 클레어를 보면서 아이린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클레어 역시 아이린을 보면서 마음만큼은 편했던 흑인으로서의 활기찬 삶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며 두 여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패싱>은 1929년에 발간된 넬라 라슨의 소설 <패싱>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아이언맨 3>, <트랜센던스>, <고질라 VS. 콩> 등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레베카 홀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패싱>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은 바 있다. 이처럼 <패싱>이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제목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흔히 '패싱'(passing)은 흑인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패싱을 원래 자신의 소속과 다른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양 행동하는 일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하며, 정체성을 구분하는 경계들과 그 경계를 넘어설 때 발생하는 불안감을 차분하게 펼쳐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크게 인종, 성별, 그리고 계급이라는 세 가지 경계를 오가는 패싱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스터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는 패싱이다. 작중 흑인에서 백인으로의 자아 변화를 경험하는 인물, 곧 백인으로 패싱 가능한 중산층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인물은 아이린과 클레어 두 명뿐이다. 흥미롭게도 <패싱>은 단 둘 밖에 없는 여성을 여러 측면에서 대조하며, 그것만으로도 98분 동안 극을 전개할 원동력을 이끌어낸다.
우선 아이린을 보자. 중산층의 흑인 남편과 결혼한 아이린은 시내에 나갈 때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백인으로 패싱하지만, 흑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백인으로 행세하는 클레어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출신과 인종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고 비판하는 기만적인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는 그녀가 패싱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인종의 구분과 차별을 내면화하고, 그 틀 내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보수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아이들의 선물을 사러 간 서점이나 더위 때문에 잠시 들린 호텔 카페, 심지어 길가에서까지 항상 자신이 사실 백인이 아닌 흑인임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남편과 함께 있거나 무도회에서 춤출 때 성적인 매력을 숨길 생각이 없고, 금주법이 있는 시대에 술을 언제 어디든 갖고 다니는 클레어는 아이린과 정반대인 이국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과거사를 꾸며내고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절단한 후 백인으로 살아왔지만, 공허한 삶에 지쳐 다시 흑인 사회에 편입되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즉, 본인도 패싱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백인과 흑인의 이분법적 구분을 떨치지 못한 아이린과 달리 클레어는 정해진 인종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으며 그 틀까지도 극복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린에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적 기준을 전복하고 교란될 수 있는 클레어의 유동적인 정체성은 다양한 감정 안에서 인식된다. 분명 클레어는 호텔 카페와 스위트 룸, 그리고 아이린이 주최한 무도회 등에서 주변인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그들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는 위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린은 같은 조건 속에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클레어를 보면서 부러움과 질투심, 또 앞서 본 것처럼 경멸감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불편해진다. 영화는 이처럼 패싱을 두고 비슷한 듯 서로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차이로부터 부각되는 미묘한 긴장감과 감정선을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이에 더해 아이린의 복합적인 감정선은 성적인 기제와 계급적인 차원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이야기를 층층이 쌓는다. 클레어와 아이린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동성애적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인 '브라이언(안드레 홀란드)'에게 클레어를 설명할 때 아이린은 그녀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얼버무리며, 남편이 그녀를 멀리 하라고 눈치를 줘도 식사나 무도회에 계속해서 초대며 클레어의 존재를 쉽사리 삶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지 못한다. 남편이 클레어와 친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가정부와 클레어가 따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 굳이 가정부를 다시 일하도록 시키는 것 역시 클레어에 대한 애정이 단순한 우정 이상의 성적 매료 내지는 욕망으로 읽힐 수 있다.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아이린에게 보낸 연애편지에 가까운 내용으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거나, 그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아이린을 갑자기 방문해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는데 이 대목 역시 상당한 성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또한 영화는 계급적 차원에서의 패싱도 간과하지 않으며 특히 계급 이동의 열망이 인종적, 성적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을의 한 흑인이 백인들에게 맞아 죽었고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브라이언은 아이들에게 흑인으로서 1920년대 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다. 반면에 아이린은 철저히 그 현실을 아이들로부터 감추고자 한다. 흑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듯 보이면서도 필요에 따라 백인이 될 수 있기에 그녀에게는 흑백의 구분보다도 안정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시급한 것이다. 본인이 비난하던 클레어조차 흑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상황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신적 유산을 상실한 아이린의 이러한 패싱은 이 작품이 단순히 피부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자칫 100여 년 전을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에 그칠 뻔했던 영화는 더욱 현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중 삼중의 패싱은 인종 정체성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성과 계층적 정체성의 구분을 가로지르면서 아이린과 클레어가 확신하고 있던 자아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든다. 곧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 정의와 정체성을 결정해 온 기존의 사고방식에까지 의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의 결말은 그 질문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클레어를 향한 아이린의 감정이 어떤 의미로든 나날이 강렬해지고 격화되는 가운데, 영화는 끝내 흑인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 채 끝나버린 클레어의 비극이 누구의 탓인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클레어에 대한 어떤 진실도 명료히 규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추측만 가능하도록 심증이 될 법한 장면들을 열거하고, 하얀 눈이 내리는 뉴욕이 내려다 보이는 가운데 눈송이가 화면을 가득 채워 온전히 하얗게 만들면서 끝난다. 마치 인종, 젠더, 계급과 그 외의 경계선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도화지에서 개인의 온전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그려보라는 듯이.
따라서 영화 <패싱>은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된 획일적이고 안정된 자아개념을 부정함과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고, 더 나아가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다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나날이 한 개인을 규정하고 그에게 덧입혀지는 정체성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제제기와 메시지는 꼭 흑인이나 여성이 아니더라도 <패싱>을 곱씹어 볼만한 이유가 된다.
<패싱>의 이야기는 이 작품이 그 미묘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방식 덕분에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우선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1.33:1 비율을 선택한 것이 눈에 띈다. 이 화면 비율은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을 오롯이, 또 집중적으로 가득 담아내면서 그들의 내적 혼란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또한 테사 톰슨과 루스 네가의 절제되어 있지만 깊이 있는 퍼포먼스가 유달리 빛나는 배경도 되어준다.
흑과 백을 외에 그 어떤 색채도 더하지 않은 연출도 1920년대 미국을 살아가는 흑인의 삶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조명의 위치와 광원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순간마다 두 여성의 피부색을 조정하면서 패싱이라는 행위가 한 명의 개인에게나 사회적 차원에서 갖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단순히 피부색을 조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극명히 대비되는 명암의 효과를 활용해 아이린과 클레어의 빛과 그림자로 가득한 심정을 끄집어 내 보여주기까지 한다.
사실 <패싱>을 오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와 경제 대공황 사이의 미국 역사, 사회, 경제에 대해 알아야 하듯이, <패싱> 역시도 대략적인 사전 정보를 요구하기에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드라마틱한 전개 대신 일상의 모습을 담는 구성도 한몫하며, 설명보다는 관조가 주를 이루는 화법은 영화를 루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영화 기법이 주는 인상과 영향에 시선을 맡기다 보면 <패싱>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두 여성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그들의 급변하는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공감하면서 스스로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고전적인 작법과 시대를 타지 않는 메시지의 조화로 되살려낸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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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파트 2 | 일말의 부조화까지 삼킨 모래 폭풍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모략으로 인해 멸문한 아트레이데스 가문. 하지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은 반란군 프레멘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사막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한다. '챠니'(젠데이아)에게서 프레멘의 생존 방식을 배운 폴은 프레멘 전사인 페다이킨이 되어 '폴 무앗딥'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그 이후, 그는 하코넨 가문에 대항할 테러 작전을 이끌어 나간다.
그런 폴을 보면서 프레멘은 그가 그들이 기다려 온 외부 세계의 구세주, '리산 알 가입'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한 폴은 프레멘의 기대를 저버리려 하지만, 전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이 잔혹한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보내 프레멘에게 잔혹한 반격을 가했기 때문. 이에 폴은 끝이 정해진 운명을 따를지,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로에 선다.
<듄>을 지탱하는 두 축
소설의 영상화는 항상 두 가지 난관에 부닥친다. 제작자는 소설 속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지 머리를 싸맨다. 독자의 상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광경을 보여줘야 하니까. 각색도 고민거리다. 주인공의 서사와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분량이 한정된 가운데 원작의 여러 장점 중 몇 가지에만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 그 예시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호빗> 트릴로지는 중간계를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극찬을 받았다. 반면에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같은 시기에 방영한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에 밀려 조용히 잊혔다. 시각효과는 환상적이었지만, 갈라드리엘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가 원작으로부터 동떨어져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듄>(2021)은 호사를 누렸다. 할리우드 대표 비주얼리스트 드니 빌뇌브가 사막으로 가득한 아카리스 행성의 온도, 습도, 채도까지 재현해 냈다. 원작 팬답게 핵심만 뽑아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원자가 되는 운명을 의심하고 경계하나 결국 몰락할 영웅 서사'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그 덕분에 팬데믹 중에 개봉한 <듄>은 극찬 속에 월드와이드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듄: 파트 2>(이하 <듄 2>)도 마찬가지다. 외려 형보다 나은 아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거리는 더 화려해졌고, 폴의 이야기는 심오해졌다. 단, 의외의 문제도 있다. 확신 가득한 빌뇌브의 영상과 의심 가득한 폴의 서사가 간간히 충돌하기 때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협화음은 도리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렇게 <듄 2>는 막을 내린다.
절대 눈길을 뗄 수 없도록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비주얼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 <듄 2>에서도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례로 빌뇌브는 위성사진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구도를 애용하는데, 이번에도 같은 구도를 적극 활용해 전투씬처럼 인원이 많은 장면에서 스케일을 강조하고, 웅장함을 살려냈다. 한스 짐머의 서정적이고 장엄한 OST가 고막을 울리는 가운데, 아이맥스 스크린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대상의 크기를 비교해 위압감을 극대화하는 구도도 인상적이다. 페다이킨의 스파이스 채취 기계 기습, 황제 군대와 폴 군대의 전면전, 황제의 아카리스 행성 도착 장면이 대표적이다. 앞에 서 있는 군인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하베스터, 모래벌레, 황제의 우주선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여기에 템포를 한 두 박자 쉬고 상황이 전개되는 연출이 더해지면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해 제시하려는 노력도 독특하다. 일례로 페이드 로타는 '검은 해'가 뜬 검투장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생존자들과 싸운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정의와 신뢰를 중시하며 백성을 아끼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돈과 폭력으로 충성을 강제한다. 특히 후자의 잔인함과 야만이 흑백 화면 덕분에 더 날 것처럼 느껴진다.
클로즈업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듄 2>는 할 말이 많다. 예언을 둘러싼 폴, 챠니, 레이디 제시카의 삼각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대립과 베네 게세리트의 계략, 마지막으로는 폴과 황제의 전쟁도 보여줘야 한다. 이에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한다. 그 덕분에 주인공들의 표정 및 목소리 톤 변화만으로도 <듄 2>는 로맨스, 정치극, SF, 에픽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도화선에 불 붙이는 액션
<듄 2>의 러닝타임은 전편보다도 10분가량 더 긴 166분이다. 그런데 체감 길이는 전편보다 짧다. 템포가 느리고 진중한 분위기가 돋보인 전편과 달리, 대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 전편이 세계관과 설정을 설명하며 판을 깔아준 덕분에 <듄 2>는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듯하다. 전편이 기승전결 중 '기승'을 맡았다면, <듄 2>는 '전결'만 맡은 형국이다.
차이는 액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정적이었던 전편에 비해 <듄 2>는 곳곳에 액션씬을 배치해 템포를 계속해서 끌어올린다. 당장 폴 일행과 하코넨 군인 간의 추격전이 시작부터 등장한다. 이 도입부는 빌뇌브의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CIA가 밀수 땅굴을 이용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제압하는 액션씬을 연상시킨다. 팽팽한 긴장감을 자랑하며 관객을 곧장 아카리스 행성으로 초대한다.
그 이후에 영화는 폴의 페다이킨 수련 과정, 프레멘의 테러 공격, 하코넨의 보복 작전을 연달아 보여주며 장작을 착실히 쌓아 올린다. 뒤이어 폴의 군대가 황제군을 급습할 때 장작에는 마침내 불이 붙는다. 폴과 그의 추종자들은 모래벌레를 타고, 또 모래 폭풍을 뚫고 돌격한다. 이 클라이맥스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투씬에도 밀리지 않는 스케일과 박력을 자랑한다.
이때도 스펙터클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관객을 감질나게 하는 빌뇌브의 연출법은 유효하다. 일례로 전투 시퀀스는 의외로 짧다. 부대 차원의 전략적 움직임과 각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여준 후 곧장 드라마 파트로 되돌아간다. 전투의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묘사를 고려하면 분명 아쉬움이 남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순간의 임팩트는 극대화된다.
의심하는 영웅, 폴 아트레이데스
화려한 볼거리를 토대로 <듄 2>는 전편이 암시한 폴의 서사도 한층 구체화한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신화적인 영웅상을 답습한 캐릭터다. 그에게서는 여러 영웅의 모습이 보인다. 예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예언을 실현하고, 비극을 맛본다는 모티브는 오이디푸스와의 공통점이다.
뛰어난 영웅과 초인의 폐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다윗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억압받는 민족을 구해낸 후 왕좌에 앉은 메시아. 그는 주변 종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왕국의 위세를 드높인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 뿐. 구세주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추종자, 왕국마저 고통에 빠트리고 만다.
핵심은 그가 실패하고 몰락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점이다. <듄>의 분위기가 일반적인 판타지, SF 작품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예언 속 영웅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영웅의 인간적인 결점을 부각해도 이들의 활약상은 끝내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밝은 장조 화음으로 귀결된다. 반면에 예언과 초인을 경계하는 <듄>은 음울한 단조 화음과도 같다.
<듄 2>에서는 이 단조 화음이 더 또렷하고, 풍성해진다. 폴이 프레멘의 구세주로 거듭나는 순간만 봐도 그렇다. '생명의 물'을 마시고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한 폴에게서는 음습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북부와 남부의 모든 프레멘을 휘어잡는 연설도 전율이 일지만, 불편하다. 개인의 복수와 공동체의 생존 사이에서 선틀 타며 숱한 죽음을 유발하는 독재자 같기 때문. 자연히 그의 승전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확신과 의심의 부조화
이처럼 <듄 2>는 영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톱니바퀴를 멋지게 구현해 냈다. 빌뇌브는 확신 가득한 붓칠로 머릿속 상상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다. 메시아가 될 운명과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폴의 이야기도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이 두 축은 빌뇌브 특유의 스토리텔링 때문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빌뇌브는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 경우가 잦다. <듄 2>에서는 챠니를 모든 인물의 반대편에 위치시킨다. 챠니는 구세주가 아닌 인간 폴을 사랑하고 또 상징한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적 광기를 퍼뜨리는 레이디 제시카와 폴의 추종자가 된 프레멘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다. 달리 말해 챠니의 관점에서 폴의 여정을 따라갈 때, 관객은 단순한 영웅이 아닌 폴의 고통과 선택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대신 챠니는 필연적으로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폴이 구세주로서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이기에 이질감은 더 짙다. 관객을 압도하는 연출과 시각효과도 챠니의 우려와 실망에 동조하기 힘든 분위기를 강화한다. 폴의 서사가 강조되고, 빌뇌브가 구현한 비주얼이 생생해질수록 챠니의 위치와 역할은 역으로 모호해지는 셈이다. 폴과 페이드 로타의 최종 결전에서도 그녀 때문에 분위기가 일순간 깨지기도 한다.
문제는 <듄 2>를 한 편의 독립적인 영화로 볼 때, 이 균열이 미처 가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폴과 챠니의 로맨스를 부각해 가교를 만들려는 노력도 충분치 않다. 이들의 로맨스가 그저 원작 내용과 전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기 때문. 다른 플롯에 밀려서인지는 몰라도, 운명 외에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나 과정은 다소 간략하게 제시될 뿐이다. 배우 개인의 역량도 이 난점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아직 정점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듄 2>의 부조화는 다음 이야기를 더 기대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립 작품의 관점에서는 완성도 문제이지만, 시리즈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장점이기 때문. 소설에서 폴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추방자가 된다. 이 전개를 따를 경우 <듄 2>의 미묘한 균열은 그 자체로 메시아의 패망을 암시하는 강력한 복선이다. 폴이 아니라 챠니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듄: 파트 2>는 속편이자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이행한다. 아카리스 행성의 사막 속으로 관객을 빠트리고, 메시아의 탄생을 목도하는 경외심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의 몰락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 운명을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세 번째 서사시가 언제쯤 찾아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빌뇌브 표 묵시록의 변곡점. 정점 일보 앞에서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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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1950, 1995년. 레즈비언 로맨스의 두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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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올리비아〉, 자클린 오드리 감독 작품, 1950, 프랑스, 7★/10★
(오)〈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 마리아 마젠티 감독 작품, 1995, 미국, 7★/10★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복원: 아카이브의 맹점들’이라는 제목의 세션이 열렸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지의 내셔널 아카이브와 필름 파운데이션에서 복원된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표방한 세션이었다. 그중 〈리옹으로의 여행〉, 〈올리비아〉,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봤다. 첫 번째 영화는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했으나 잊힌 여자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좇는 작품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레즈비언 로맨스‧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각각 1950년 프랑스,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된 후자의 영화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리비아〉를 연출한 자클린 오드리는 1950년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의 한 기숙학교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영국 기숙학교에 있다가 막 프랑스로 옮겨 온 참이다. 그녀가 영국과 프랑스의 기숙학교를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교장 쥘리에게 영국 기숙사의 엄한 규율과 도덕적 규제가 숨 막혔다고, 그와 반대되는 이곳이 좋다고 말한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학교에서 규율과 도덕 없음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분출로 이어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올리비아가 새로 옮긴 기숙학교에는 교장 쥘리와 또 다른 선생님인 카라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 축이 있다. 쥘리와 카라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경쟁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인기’다. 그러나 '인기'는 레즈비언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올리비아를 유독 아끼는 카라는 올리비아가 쥘리에게 빠진 게 명백해지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카라를 연기한 시몬느 시몽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인데, 그녀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늘 신경질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여성’ 캐릭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질투에 빠진 카라의 존재로 인해 암시적으로 언급되는 쥘리와 올리비아의 로맨스도 한층 강렬해진다. 쥘리 방 바로 옆에 배정된 올리비아의 방, 우연한 스킨십에 뒤따르는 “열정이 넘치는구나!”라는 말, 올리비아와의 밀회 약속을 ‘망상’이었다고 철회하는 쥘리 등등…. 카라의 질투와 결부된 두 사람의 은밀한 로맨스는 성애적 장면 없이도 섹슈얼리티를 강렬히 그려낼 수 있음을 보인다.
영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 금지되었다는 데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위반하는 힘은 한층 더 강해지기도 한다. 파국적 사건 이후 비밀을 품은 우아함을 지닌 채 학교를 떠나는 쥘리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올리비아의 표정도 압권이다. 남성/권력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뒷모습만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대목은 쥘리, 올리비아, 카라 등 여성들이 구축한 내밀한 세계가 독립성‧자립성을 갖추었음을 보이기도 한다.
〈올리비아〉가 고상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면,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레즈비언 로맨스를 풀어낸다. “1990년대 퀴어 로맨스 영화의 정전과도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영화답게, 영화에는 그 시대 레즈비언 하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 랜들 딘은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레즈비언 애인과 함께 사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다. 딘에게 ‘다이크’라는 모욕이 일상적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전형적인(그래서 멋있는) 톰보이 미학을 체현한 레즈비언이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이성애 결혼을 한 여자와 몸을 섞으며 욕망을 충족하던 딘은 어느 날 자신과는 모든 게 정 반대인 한 여자를 만난다. 딘의 정체성은 노동자계급, 백인, 남성성, ‘문제아’ 등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이비는 부유하고, 흑인이며, 이제 막 남성 애인과 헤어진 '이성애자'고, 모범생이다. 완벽하게 다른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다름 앞에 놓인 금기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간다. 그리고 다름을 조율하는 동시에 유지하며 서로를 매혹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영원히 탐색할 것임을 약속한다.
모든 소란이 한 장소에 모여 폭발하듯 분출되는 영화의 유쾌한 결말에서 그 모든 소음이 상관없다는 듯 서로의 귀를 막아주고 생긋 웃는 딘과 이비의 얼굴은 〈올리비아〉가 창조한 세계와 닮은 데가 있다. 누가(특히 남성/권력) 뭐라 하든 그들 관계의 주인은 자신이며 그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채 앞으로도 여성을 욕망하는 여성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영화에서 파생된 수많은 여성/퀴어 영화가 남성중심적‧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되는 점이나 틈’인 맹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세계가 변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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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새벽의 모든’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발견하다! 미야케 쇼 감독님의 관람 포인트
(기자회견에서의 미야케 쇼 감독)
5월 1일, 25주년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드디어 개막하였습니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선정됐는데요. 올해의 슬로건인 '우리는 는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와 걸맞는 영화였습니다. 각자의 무수한 삶과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까지 경계선을 넘어 모두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까지 각 인물의 하나하나가 궁금하고, 스며듦이 매끈한 영화였습니다.
'새벽의 모든'은 동명 소설을 원작 각색한 영화이며, 공황장애가 있는 야마조에와 주기적으로 PMS를 겪는 후지사와가 작은 연구소에서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딪히며 각자의 결핍과 공백을 발견하고, 서로의 틈을 보게 됩니다. 그 틈에서 맞지 않았던 '어떤 사람'에서 어느새 곁을 내어주는 '동료'이자 '친구'인 관계가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장애'에 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다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인지하고 그 선을 넘게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가 단순히 '남녀관계'로 뭉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주변인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지구 옆에 있는 위성처럼요!) 또 작품에서 이웃, 친구, 동료, 시설의 보호자와 의사 등 '혈연'과 이어지지 않는 다양한 보호자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 보통적으로 '심리적 장애'와 관련해 간섭하고 지지하는 역할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보호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바로 연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마조에는 가족과의 왕래가 뜸하고, 후지사와는 어머니가 신체적 장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마조에의 주변 동료들이 야마조에의 안부를 늘 묻고, 후지사와 어머니는 늘 후지사와를 위한 식제품들을 마련해 후지사와에게 보냅니다. '보호자-피보호자'라고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경계선을 넘나드는 상호협력적 관계로 그려집니다. 야마조에는 후지사와의 PMS에 도울 수 있다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에 서로의 느슨하지만 약간의 짐을 덜 수 있는 연대를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에 관해 거대하게 혹은 사소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혈연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대안적 관계들과 느슨하더라도 덜컥거리더라도 같이 짐을 나눠드는 느슨한 돌봄과 보호와 연대.
미야케 쇼 감독의 1일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에 간략히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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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작품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원작 소설을 보면서 인물들의 행동에 큰 인사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에 그저 무력하게만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의 질문과 답을 찾아냅니다. 이런 끈질긴 자문자답의 방식과 어떻게든 행동의 실천으로 이뤄지는 모습들이 우리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관해서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더불어 현대의 질병이 불리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여러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으면서, 생각처럼 할 수 없는 것들에 그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Q2> 작품에서 달력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의 흐름'의 배치 관한 의도가 궁금하다.
A) 공황장애나 PMS 같은 병은 간단히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장기간 내 삶과 같이 지내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질병은 오랜 기간의 치료 기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놀랬었다. 자신의 장애와 삶을 쭉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주'라는 시간을 가져와 거대한 흐름을 표현해보았다.
Q3>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불안이 찾아오면 강박적으로 하는 일로써 '잡초 뽑기'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왜 '걸레질' 같은 무언가를 닦는 행동으로 교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책을 읽을 때 '잡초 뽑기'란 행동은 매우 유니크했다. 그러나 글로써 '잡초 뽑기'를 마주할 때 다가온 큰 인상이 영상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는 행동을 찾아봤다. 그렇게 찾던 중에 '무언가를 열중하며 닦는 모습'을 가져와 표현해봤다.
Q4>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며, 캐릭터 빌딩과 캐스팅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에 다양하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단순히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성이 실린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령 같은 '의사'라 해도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했다. 어떤 의사는 덤덤하고, 어떤 의사는 발랄해 보인다. 이렇게 개성이 잘 표현력에 주목하여 캐스팅하였다. 더불어 엑스트라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 봤다. 그러니 등장이 많든 적든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에 주목해주시면 좋겠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 세 번, 많이 또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와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일반(보통) 사람'이라는 표현이 많은데 나는 '일반(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공황장애가 있거나 PMS를 겪고 있다거나, 그저 다른 특징으로서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의 유무가 보통을 정의하고 특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Q5>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는 각 문화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작업으로서 이 다양성에 관한 어떤 리서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일단, 리서치는 원작 소설 작가가 공황장애가 당사자인 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고 공황장애 당사자들과 일본에 있는 전문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성'에 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또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지점 중 하나는 우리 영화에서 질병이 등장하고, 이것을 하나로 지정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무수한 사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일반화할 수 없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연기하는 순간들도 주의를 많이 기울렸다. 늘 현장에 의사가 대기된 상태에서 발작 연기를 촬영했고, 장면이 끝나면 배우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괜찮을 때에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배우에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발작 연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표현의 오류나 예측불가능함을 재현하는 과정을 경계하고 주의있게 임하고 싶었다.
Q6>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이번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의 공통점이 있다. 폐업 직전의 복식장과 AI 기술이 발전된 지금, 아날로그 연구소라는 공간이다. 한 마디로 두 공간은 소멸해가는 공간이라 느꼈는데, 감독은 이런 공간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했다. '소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A)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화관'이란 공간이 먼저 떠오르면서 가장 걱정되기도 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영화관 수가 반이 줄어들었다. 그에반해 스크린 수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펜데믹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려가 많이 된다. 그래도 낙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관'은 절대로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지키길 노력하는, 이용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있는 이상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이런 마음과 믿음을 반영하게 된 것 같다.
Q7> 한국 배우 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배우 중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심은경 배우이다. 존경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몇 분이 더 계시지만, 부끄러우니 그만두겠다.
Q8> 기자분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A)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질문을 주시면 우리는 이야기하고, (기자분들은) 일로써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이 과정도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같이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
이렇게 간략하게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란 작품에 관한 계기와 말하고 싶던 메세지를 살짝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을 중점으로 인무들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큼 저는 여러 인물들이 말 그대로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또, 미야케 쇼 감독은 개막식에서 영화는 관객이 생각하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과 이해를 마음껏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은 전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양함을 마주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닌 이어짐으로, 분별이 아닌 스펙트럼의 속으로, 같이 존재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서 힘듦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떻게 봐줘야 할지 고민된다면 '새벽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다 보니 영화를 두 번을 보게 되었는데요. 두 번째로 감상하였을 때,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감독님 말대로 두 번, 세 번, 많이 볼수록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상영 정보>
05.01. 19:30 개막식 + 개막작: 새벽의 모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05.02. 13:30 새벽의 모든 + 전주대담
(CGV 전주고사관 3관)
05.05. 10:30 새벽의 모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영화제 기간>
5월 1일~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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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등 (2015)
영화 <4등>의 중심 인물은 모두가 피해자다. 이미 첫 아시안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다가오는 아시안 게임의 유망주로 떠오르는 젊은 수영 천재 ‘광수’,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으나 매번 4등만 하는 ‘준호’, 기자이자 준호의 아버지인 ‘영훈’, 악착같은 준호의 어머니인 ‘정애’. 간략한 소개로만 보아선 이들이 무슨 피해자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들이 어딘지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의 원인을 좀처럼 찾을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중력을 행세하는 힘의 주체는 대체 무엇인가? 쉽게 보이지 않는 이 희미한 중력장의 실체는 영화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1-1. 광수
가장 먼저, 광수의 경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태릉으로 출발하는 날 그의 오래된 고향의 폐건물에 들러서 광수는 불법 도박을 하고 있는 고향 선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폐건물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광수의 뒤에 떨어진 말. “내일 가도 되잖아, 너 천재잖아”라는 그 말이 광수를 다시 도박판으로 불러들인다. 서울로 떠나려던 광수는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시고 뒤돌아서더니, 다음 컷에는 어느덧 광수가 도박판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컷으로 이어진다. 광수는 이 지점에서 어촌 마을의 도박에 빠진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 셈이다.
광수는 몇날며칠을 도박에 빠져 태릉선수촌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뒤늦게 들어간 광수를 본 선수촌 코치는 대걸레 자루로 광수에게 체벌을 가한다. 대걸레 자루로 백 대. 그 체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광수의 몸은 분명 곤죽이 되고 말 것이다. 광수는 저항하고, 저항은 코치의 심기를 건드린다. 곧 체벌은 감정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고, 광수는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떠난다.
1-2. 어머니 정애
정애는 아들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 준호는 매번 4등만 하고, 정애는 준호의 성적이 아쉽기만 하다. 정애는 준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고자 한다. 준호에게 일부러 밉살스럽게 ‘4등’이라고 부르는 모습, 준호에게 대놓고 “엄마가 싫지? 그러면 수영할 때 엄마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해 봐”라는 식의 말들을 하며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다. 정애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첫째로 아들이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애가 열정을 부을만한 것이란 이제 아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교육열로 유명한 한국사회 수많은 어머니의 초상을 담은 것이 영화 <4등> 속에서 그려진 정애의 모습이다. 특히나, 그 자식에게 거는 간절함의 깊이는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가 낮을수록 짙어진다. 출산과 육아후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의 삶만을 좇는 정애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없다. 그녀가 사회속에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밖에 없다. 이는 한국사회의 구조, ‘여성’에게 부과되는 독박육아와 강력한 사회적 단절의 탓이다. 이런 구조 탓에 어머니 정애는 자기 자신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두 아들을 다그친다. (자신처럼)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으면,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1-3. 아버지 영훈
아버지는 수영 천재이자 유망주인 광수를 만나고 이 유망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친해진다. 영훈은 광수의 성적을 묻고 광수가 높은 기록을 세웠다는 대답을 듣고는 광수에게 기대를 걸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광수에게 호의적이다. 기자인 그가 수영 유망주와 친해지고자하는 목적은 어느정도 알 법하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인간관계는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져내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 법하다.
광수가 태릉을 박차고 전화를 건 것은 ‘영훈’의 번호였다. 광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대걸레 자루로 100대를 맞으라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자신이 있어서 늦게 간 겁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1 주일 늦었습니다. 그리고 광수의 절박한 전화를 받은 영훈의 대답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였다. 그리고 이런 영훈은 후에 자신의 아들 준호가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에게 체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광수를 찾아가 그에게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를 통해서 영훈은 분명하게 체벌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체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영훈은 광수의 전화를 외면하는데, 이 행동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영화를 통해서 다 알 수 없기에 추론만 가능할 뿐이지만,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이유를 제시해보자면, 영훈이 광수를 두둔한다고 하여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신의 업으로 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영훈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비주류의 물결에 몸을 떠맡기라는 선택은 어렵다. 영훈에게는 일단 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전적으로 영훈에게만 짊어져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영훈은 다소간에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역시 그 기형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탓이라고 하겠다. 여성에게는 독박육아가, 남성에게는 생계유지의 의무가. 한쪽 성별에게 주어지는 전적인 의무들이 그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제멋대로 헤집고, 망쳐놓는다.
1-4. 준호
“형. 1 등하면 무슨 기분이에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4등 준호는 1등을 해낸 초등 수영부 선수에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묻는다. 이런 준호는 광수의 과거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준호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고, 엄마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준호탓에 애가 타서 새로운 코치 광수에게 준호의 지도를 맡긴다. 그리고 광수는 준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다. 광수는 재능있는 준호를 키우고자 체벌로 엄하게 가르치며, 어린 준호는 당연히 맞는 게 싫다. 하지만, 준호는 가정으로 돌아와 어느순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이 받은 체벌을 그대로 재현하며 동생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광수처럼.
역설적으로도 준호는 새로운 코치인 광수에게 ‘엄하게’ 교육을 받으면서, 성적은 점차 좋아진다. 하지만 성적과는 반대로 준호는 점차 코치의 체벌이 두려워 수영에서 느꼈던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을 점차 잃게되고, 급기야 광수의 체벌 탓에 더 이상 수영을 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수영장을 떠난다.
2. 기성 사회의 구조와 구조속의 피해자들.
이 네 명의 중심인물을 정리하다보면, 영화가 그려낸 그들의 삶은 도덕적 딜레마에 의한 긴장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광수는 태릉으로 떠아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박장에 남고, 모욕적이고 감정적인 체벌이 싫어 태릉을 떠났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며, 정애는 자신이 악역을 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행을 중단하지 않고, 영훈은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준호는 마찬가지로 체벌이 싫었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고 권위적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이 도덕적 딜레마들은 모두 어떤 원인에서 부터 발생하고 있는데, 이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접근하면 그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영화속의 모든 문제는 불합리한 기성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어촌마을의 기성세대인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도박판에 어쩔수 없이 빠져드는 광수, 그리고 잘못은 체벌을 통해 몸속에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기성의 교육 방식, 양심적인 비주류에 휘말리면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속에서 생계를 위해 뻔뻔해져야 했던 영훈, 이 사회속에서 이젠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식들은 무엇이라도 근사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정애.
영화 <4 등>속 인물들을 통해서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구조주의 이론에 따라 잘못된 기성의 구조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잘못된 구조를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개별적인 의미와 신념을 잃고, 사회 주류의 신념과 구조를 따르는 이들의 삶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낮을 수록 구조의 요구와 강요에 더욱 순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글이 기성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아픔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대적 상처이며, 일반적인 역사적 기류에 의한 것이지 특정한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기성의 세대를 비판하는 것이아닌 기성의 사회 구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며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3.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들
영화 <4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현재까지 앓고 있는 상처를 재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몇몇 사람들에게는 지난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처지와 영화속 불합리한 상황들을 동일시 여겨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4 등>속 인물들은 구조에 의해서 요구된 악역을 어느정도 떠맡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상처를 지닌 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역설적인 비인간성을 영화속에서 목격하며, 이 영화가 마냥 통렬한 사회비판의 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비판만을 담은 영화였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테지만, 영화 <4등은> 사회구조의 문제성에 대한 비판만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한 줄기의 희망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4 등>은 조금 높게 평가하고 싶은 영화다.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은 개별체의 순수한 특성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의 지문과 홍채가 다르듯이 인간이 가진 개별성은 인간 종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의 다양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때때로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지위와 책무를 떠맡기거나 강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순수한 특성, 개별성과 주체성을 잃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강요와 구조가 정의한 개체성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순수한 개체성을 추구할 때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 <4등>에선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당화되는 체벌이 두려워 수영장을 떠난 준호가 다시금 수영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늦은 새벽에 수영장을 찾아와 홀로 어둡과 차가운 물속에서 빛을 따라 헤엄치는 장면에서 그렇다.
이 씬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어둑한 새벽, 어둑한 물속에서 감감히 출렁이는 빛의 주변을 헤엄치는, 절대적인 어둠속 희미한 빛의 주위로 떠도는 여리고 어린 피사체의 모습이 씬에 아름답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본래 밝기만 해서는 그 밝음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지라, 어둠속에서의 그 희미한 빛을 향해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은 그 어떤 희망적인 언어보다도 강렬한 희망의 언어로 읽힌다. 비록 그 빛이 준호를 수영장에서 꺼내올리는 빛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그 결과로만 축약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4 등>은 이렇게 구조속에서 피해받는 이들의 고통과 초상들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회구조 내의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개별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과정이 지닌 순수함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희미하지만, 희미하기 때문에 강렬한 희망의 메세지를 유려하게 그려내어, 작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의 메세지와 함께 영화의 미학적인 추구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는 꽤나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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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범죄도시>1000만영화 등극!! <범죄도시>이후 역주행 하는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영화일까요?!
안녕하세요! 모두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지난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순위를 공유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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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첫째 주, 1위를 차지한 엘리멘탈! 엘리멘탈이 주말 관객수 60만명을 넘겼고 박스오피스 총 관객 수 200만 명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역주행을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범죄도시3>가 1000만을 기록하면서 <범죄도시2>이후 두번째 천만영화가 되었습니다. 23일 개봉한 <귀공자>는 흥행에 실패하며 주말 누적 관객 수 10만을 가까스로 넘기는 추세이며 다음주는 더 낮아질것으로 예상됩니다.
1. <엘리멘탈>
한국계 재미동포 2세인 피터 손 감독의 작품 <엘리멘탈>이 입소문을 타며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주말 관객수 60만명을 넘기면서 전주보다 높은 주말 관객수를 기록하였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10일 빠른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가족애의 메시지를 담고있는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2.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
주말관객수 24만명을 기록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엘리멘탈>의 흥행에 밀려 2위에 올라섰습니다.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5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배우, 제작진 등 원년 멤버들이 대거 참여해 레전드 시리즈 귀환을 알렸습니다. 1편부터 4편까지 감독을 맡았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는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기존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중입니다.
3.<범죄도시3>
쌍천만 기록에 성공한 <범죄도시3>!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1000만 영화이며, 역대 1000만 영화로는 30번째를 기록했습니다.
마동석은 <범죄도시>2개 작품과 <신과함께> <부산행>등 총5편의 1000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됬다고 합니다.
4.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개봉 11일째 5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전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동시기 관객수를 뛰어넘는 기록이며 <귀공자>보다 빠른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5. <귀공자>
손익분기점 180만의 영화로 아직 누적관객수 50만을 기록하고 있는 <귀공자>는 대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은 호평이 많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불리한 요소때문인지 미미한 반응과 높지않은 관객수를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첫째주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1위를 차지하였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엘리멘탈>이 3위, 제니퍼 로렌스가 제작, 출연까지 겸한 <노 하드 필링스>가 23일 개봉을하면서 4위,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이 5위를 기록했습니다.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1위에 올랐지만 제작비와 비교해 실망스러운 데뷔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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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7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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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트홈」 회당 제작비 30억(!)의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 프리뷰ㅣ스위트홈 웹툰ㅣ결말포함 스포주의ㅣ여진구?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
? '스위트홈(2020)' 넷플릭스 드라마 보기 전 필수 시청
스위트홈 웹툰 스토리 요약(*결말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위트홈" 시놉시스1
세상을 차단하고 방 안에 틀어박힌 10대 소년. 현수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인간이 괴물로 변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직은 사람이니까. 이웃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스위트홈" 시놉시스2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는 그린 홈이라는 낡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점차 그린 홈에 관한 비밀을 깨닫는다.
왜곡된 인간 욕망을 여러 가지 형태로 투영하면서 인류를 몰아내려는 괴물이 그린 홈을 둘러싸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해 그린 홈 주민들은 그 괴물들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스위트홈" 정보
공개일: 2020년 12월 18일
화수: 10부작
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StudioN
장르: 호러, 크리처, 생존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연출: 이응복
극본: 홍소리, 김형민, 박소정
출연: 송강, 이진욱, 이시영 외
원작: 네이버 웹툰 스위트홈
시청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청소년 관람불가[2]#스위트홈 #스위트홈_웹툰 #스위트홈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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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오쿠> 공식 예고편
넷플릭스 시리즈 《오오쿠》, 전 세계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요시나가 후미 원작 《오오쿠》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 남녀가 역전된 화려한 에도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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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언더그라운드> 티저 예고편
모두가 잰걸음으로 땅 위 삶을 향해 지하를 거쳐만 갈 때
'언더그라운드'에는 이 반듯한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시끄럽게만 돌아가는 세상 아래
지하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그들에게 다가간다
도시를 지탱하는 지하의 노선도, 언더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