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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2022-08-23 21:23:32

평범함이라는 어려운 세계

[리뷰] 니시카와 미와 감독 <멋진 세계>


<멋진 세계>(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살인 후 13년간의 복역을 마친 한 인간이 평범한 일상에 진입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번에는 진짜 평범하게 살아야지"라며 막 교도소를 나온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는 다짐한다. 신원보증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덕분에 그는 도쿄의 작은 집을 구하지만 생활은 넉넉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신이 잘하던 운전 실력을 발휘해 트럭 운전수가 되려 하지만 면허증을 갱신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따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자존심은 무너지고 돈마저 넉넉하지 않은 미카미는 자주 욱한다. 이 욱하는 성격 때문에 그는 자주 목소리를 높이고 날카롭게 타인에게 반응한다. 오랜 기간 사회와 단절되었다고 그 사람의 본능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목격한 그가 폭력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가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그가 다시 경찰에 잡혀갈까 봐 나는 조마조마했다. 일상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미카미를 보며 나는 문득 그의 입장에서 영화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울분에 찬 표정을 짓다가도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간장계란밥을 해 먹고 정장을 입고 거울을 보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야쿠쇼 코지의 안정된 연기가 돋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왜 나는 살인을 저질렀던 그가 웃으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사람들에게 뾰족한 말을 들으면 슬픈 감정이 스며들었던 것일까. 그건 일종의 동정심이었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긍지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마 그건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카미는 태어나서 얼마 안 돼 부모의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비뚤어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른들의 버팀목 아래에서 성장하고 안 하고의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황해 14살부터 소년원을 드나들고 이후 야쿠자 조직을 거친 미카미가, 사실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곳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창 칭찬받고 싶은 나이. 어린 나이에 당연히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미카미가 갈 수 있는 곳이란 몸과 힘만 잘 쓰면, 조금은 단순해도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그곳에서는 누가 더 크게 욱하느냐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에서 환대받던 한 인간이 이제 평범한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화를 절제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인내해야 하는지 영화는 그려낸다. 역시 쉽지 않다. 미카미가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친절하던 의사가, 미카미가 성실히 생활하다 아파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날카롭게 말을 건네며 태도가 돌변하는 것처럼. 이를 바라보는 미카미의 당황한 눈빛처럼, 어쩌면 이 세계는 당황스럽고 이상한 것 투성일지도 모른다. 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 평범하지 않은 세계에서 참을성을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영화 중간 중간 미카미가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벌리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혈압이 올랐을 때 나오는 반응인데 화를 많이 내면 낼수록 몸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욱하는 성질을 가진 데다 이 세상은 참아야 할 것투성이인데 '너 정말 인내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차가운 경고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미카미 주변에는 그를 달래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강하지 않다" "도망치는 건 실패가 아니야"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세요"라며 미카미의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미카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어르고 달래줄 사람들. 외로운 미카미를 진심으로 보살펴 줄 사람들이 근처에 있다. 어쩌면 이 세계는 따뜻할 수도 있겠구나, 라며 안도할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미카미 주변에는 이미 그를 도와줄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게 다 잘 되고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알게 됐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건 어쩌면 냉혹하고 차가운 세계와 정겹고 따뜻한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연속이 아닐까 하는 사실을. 미카미가 평범함이라는 제일 어려운 세계에 진입하려고 했다는 것을.

작성자 . 김진수

출처 . https://brunch.co.kr/@kjlf20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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