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9-14 23:11:18
막연한 두려움이 일으킨 불안감의 파도.
영화 <졸업> 리뷰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주변의 기대와 막연함으로 인해 내면의 불안감이 휘몰아친다. 그렇게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던 그는 고민에 빠질 새도 없이 1차원적인 쾌락에 빨려 든다. 잘못됐다는 생각은 어느새 그 욕망에 잠식되어 소거된다. 대화 없이도 충분한 잘못된 만남은 언젠간 거리를 두어야 할 테지만 익숙해진 시간으로 인해 전과 다를 바 없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는 지속된다. 금단의 관계는 그의 일부분이 얽히게 만들며 동시에 벗어날 수 없게 한다.

허비한 시막 간으로 인해 삶의 방향성을 잃고 물 위에 부유하던 벤자민은 일레인을 만나며 서서히 변화를 맞이한다. 매번 선택의 순간의 기로에 놓이며 '사랑'과 연관된 일레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의지를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끝내 쟁취하고도 벤자민의 공허한 표정과 그를 바라보는 일레인의 모습을 통해 계속해서 펼쳐질 흔들리는 불안함을 500일의 썸머의 '썸머'는 그 감정을 느꼈기에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수동적으로 자라왔던 이들에게 처음으로 졸업이라는 묵직함으로 다가온 순간을 목도한다.

그의 방황에 휩쓸린 이들에게 밀려오는 불안감의 파도는 청춘이라는 막연함으로도 덮을 수 없었다. 세대를 막론한 진정한 '졸업'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인생은 정해진 답이 없는 큰 시험지 같다. 영화의 동화같은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가 잘 버무려진 영화였다. 약간의 아쉬움은 분명히 있지만 청춘의 막연함을 물에 비유한 방식이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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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진 평론가 만점 영화 리스트
입추가 지나자, 마법같이 선선해진 요즘. 밤 산책을 다니기 좋은 날씨죠.
여러분, 이동진 영화 평론가를 아시나요?
영화가 개봉하면 모두가 주목하는 이동진 평론가가 만점을 준 영화들만 모아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되신다면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 리스트를 참고하시길 바라면서 이동진 평론가 만점 영화 리스트, 함께보시죠!
1.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 사라 폴리
Synopsis : 결혼 5년차인 프리랜서 작가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일로 떠난 여행길에서 그녀는 우연히 대니얼(루크 커비)을 알게 되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대니얼이 바로 앞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마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니얼에 대한 마음과 남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삶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순도 100%의 사랑 영화, 마음의 기척을 응시하다.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2.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 봉준호
Synopsis :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는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한다. 심지어 강간사 일 경우, 대부분 피살자의 몸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범인의 음모 조차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후임으로 신동철 반장(송재호 분)이 부임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 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선제공격에 나선 형사들은 비오는 밤,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함정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것은 또다른 여인의 끔찍한 사체.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끊는 언론은 일선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몰아넣는데...
한국영화계가 2003년을 자꾸 되돌아보는 가장 큰 이유.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3. 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 홍상수
Synopsis : 영화과 학생 옥희는 자신이 사귀었던 한 젊은 남자와 한 나이 든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아차산이란 곳에 만 일 년을 사이에 두고 각 남자와 한 번씩 찾아왔던 경험을 영화적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그 산에서 각기 다른 두 남자와의 경험을 공간별로 짝을 지어놓고 보여준다. 주차장, 산 입구, 정자 앞, 화장실, 목조 다리 앞, 산 중턱 등의 공간에서 각자 다른 행동과 대화들, 그들과의 모습이 짝지어 보여지면서 우린 두 경험 사이의 차이와 비슷함을 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린 옥희와 두 남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어떤 총체적 그림을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구조와 공간 대신 정서와 시간을 바라보는 홍상수의 새 경지.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4.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2006) - 기예르모 델 토로
Synopsis :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숲으로 숨은 시민군은 파시스트 정권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곳곳에 배치된다. ‘오필리아’는 만삭의 엄마 ‘카르멘’과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숲속 기지로 거처를 옮긴다. 정부군 소속으로 냉정하고 무서운 비달 대위를 비롯해 모든 것이 낯설어 두려움을 느끼던 오필리아는 어느 날 숲속에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산이고 숲이자 땅”이라 소개하는 기괴한 모습의 요정 ‘판’과 만난다. 오필리아를 반갑게 맞이한 판은, 그녀가 지하 왕국의 공주 ‘모안나’이며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세 가지 임무를 끝내면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선택의 책”을 건넨다. 오필리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현실 속에서 인간 세계를 떠나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이보다 깊고 슬픈 동화를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다.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5.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 허진호
Synopsis :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난다.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허진호와 이영애와 유지태, 그들 각자의 최고작.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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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누군가를 가족으로 꾸릴 때, 그런 나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었음을.
지나고 보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말. 너무도 많이 들어본 거 같아 좀처럼 듣기도 싫고, 잔소리로만 느껴지던 그 말들이 어쩌면 그 횟수만큼 중요했기에 반복되었음을 왜 난 미처 알지 못했을까. 결국 닥쳐야만 깨닫는 못난 자신이 밉고 싫어진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집 가(家)자에 족 족(族)자로 이루어진 말로, 한 집에 모여 사는 무리를 의미한다. 하나의 집에서 무리를 이루며 짓는 사람들.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되어주려는 사람들이지만, 그래서인지 더 소홀해지고 무뚝뚝해지는게 가족이라는 사실을 스크린 속 비춰지는 허상의 가족을 보며 깨닫는다. 결국 나도 누군가의 아들이었음을 그리고 나에게 말 한 마디라도 더 걸고 싶었으나 차마 당신도 받아본 적이 없어 결국 손 내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누구나 경험했을 평범한 가족의 독특하지 않은 순간을 비범하게 다루어낸 걸작이다. 나약하고도 위태로워보이는 가족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찾을 수 있고, 겉으로는 연약해보이기만 한 영화의 모든 씬들이 결국 스크린 속에서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나를 발견한 관객에게 지울 수 없는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 로케이션 헌팅에 '집' 만큼이나 고심을 기울인 곳은 계단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시작되고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 '토시코'와 첫째 딸 '지나미'를 뒤로한 채 산책을 떠난 할아버지 '쿄헤이'는 계단의 아래로 향해갔다. 계단 그리고 육교의 밑으로만 내려가던 그는 저멀리 바다를 보게 되고 금세 자리를 뜨고야 만다.
영화는 아래로만 향하는 쿄헤이를 촬영하는 데에 있어 익스트림 롱쇼트로 담았는데, 그 결과 쿄헤이의 움직임 속에서 그의 연약함을 눈치챌 수 있게 한다. 더군다나 그가 일본의 한 시골 동네 의료원을 운영하다 이제는 그만둔 전직 의사라는 점은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인상깊은 점은 본 장면과 닮아있는 나머지 씬들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계단을 둘째 아들인 '료타'와 손자인 '아츠시'와 내려가던 장면 속 느릿하게 걷던 지난 씬들과는 달리 가족의 보폭에 맞추려 힘겹게 디디는 노인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를 모두 보고난 후라면 그것이 그만의 사랑법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영화의 종반부, 1박2일 동안 함께했던 료타 내외를 바래다주고, 쓸쓸히 집으로 항하던 쿄헤이와 할머니 '토시코'의 뒷모습에서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 축 쳐진 어깨와 등을 볼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들던 찰나, 뒤따라 나오는 료타의 보이스 오버는 그렇게 두 노인이 3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화면은 잠시 어두워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카메라 각도는 교과서대로 각 인물들을 객관적이고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책 속 이야기와는 달리 그 인물에게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괴물> 등의 그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의 선조격인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그의 이러한 다큐멘터리적이면서 실험적인 카메라 앵글의 첫단추였을지 모른다.
영화는 어린 소년을 구하려다 결국 자신이 바다에 빠져 익사하게 된 장남의 기일에 맞춰 모두 모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가족의 모습이 비단 명절 겸 오랜만에 모인 여느 평범한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료타의 가정은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린 '유시코'와 료타 그리고 아들 아츠시로 이루어졌지만 영화는 본 요소를 영화의 반전이나 플롯의 핵심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한 대가족의 특이사항 정도로 치부하는 듯하다.
특별하고 혹은 특별하게 연출해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 방법이 있는 반면, 너무도 평범히지만 그 속에서의 변주와 공감을 통해 관객을 이끄는 방법이 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후자의 속하며, 그 변주는 배우의 열연과 이를 지탱해주는 각본에 있다.
영화의 모든 순간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비범했지만 특히 뜨개질을 하던 토시코와 료타가 나눈 장면 속 토시코의 연기는 가히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장남인 '준페이'는 물 속에 빠진 어린 '유시오'를 구하려다 그만 소년을 살리고 자신이 사망케 된다. 사고 이후 매년 준페이의 기일이 되면 토시코는 유시오를 불렀고, 그런 유시오가 고통스러워 보였던 료타는 그만 부르자고 말한다. 하지만 토시코는 유시오가 고통스럽길 원하기 때문에 부른 것이라 웃으며 대답하고 다시 정색하며 숨을 한번 삼킨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결국 떠나보낸 아들에 대해 차마 원망할 없어 그 대신 살아남은 이에게 고통을 함께 느껴보라며 부르던 그녀의 표정 속에서 안타깝게도 통쾌함을 찾을 수 없었다. 본인의 선택이 분명 잘못되었음을 알면서 차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터져나오는 양심의 숨을 토시코는 힘겹게 삼켜낸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고함도, 괴성도 없이 고통스러움과 애절함, 비통함을 표현해낸 이 장면은 경이롭다.
토시코의 연기만큼이나 할아버지인 쿄헤이의 연기 또한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 있고, 그런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으나 해본 적이 없어 방에 혼자 있던 쿄헤이는 딸이 오는 듯하자 급하게 두리번댔다. 이제 남은 아들이라고는 하나 뿐인 료타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싶으나 결국 그에게 가장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고른 쿄헤이에게서 가부장적이지만 그런 그도 결국 사랑하는 법을 몰라 그저 서툴렀던 우리의 아버지들을 보는 듯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대를 이어 의사가 되었던 장남을 잃은 바다를 가지 못해 지켜만 보다 돌아선 것은 아버지의 슬픔이었다. 영화의 후반부, 손자가 바다로 가자고 하자 아들과 함께 바다를 보러갔던 것 또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후 료타 내외가 떠나자 다음 명절에나 볼 수 있겠지 하며 아들 부담스러우니 다음부터 손을 잡지 말라는 둥 핀잔을 주던 말은 아버지의 그리움이었다. 쿄헤이는 말수가 적은 인물로 작중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쿄헤이의 연기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눈빛, 한 번의 행동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추측하건대 영화관 속 작품을 관람하던 모든 관객들은아마도 료타의 모습을 보면서 제3자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저러면 안 되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 되돌아보며 부끄러움 내지는 반성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해 집을 나갔지만 결국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게 되고 차마 그런 모습을 부모 앞에 보일 수 없어 거짓말하던 료타의 모습 속 우리가 보인다. 인상적에이게도 료타는 그토록 싫어하고 어렵던 부모의 모습, 특히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별 말 않다 터뜨려버린 고함과 손짓의 모습은 당신의 모습이요, 공유하는 추억이 많지 않아 운동 이야기만 줄곧 늘어놓는 모습도 아버지의 모습이다. 더불어 호랑나비를 보며 아츠시에게 호랑나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는 료타의 모습은 이전 장면 속 어머니와의 대화 장면을 오버랩된다.
작품 속 료타의 위치는 굉장히 애매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있다. 죽음으로 인해 가족이 모인 자리에 죽음으로 인해 결성된 가정이 찾아온다. 역설적이다. 친아들이 아닌 아들에게는 쩔쩔매며 이름조차 '료짱'이라 불리는 것을 넘기지만 친아버지에게는 한 없이 방어적이다. 역설적이다. 의사가 되고 싶어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결국 미술을 하겠다며 집을 나간 료타는 미술품을 복원하는 나름의 '의사'가 되어있다. 역설적이다. 영화는 쿄헤이와 토시코의 모습에서 부모의 감정, 가족으로서의 연민을 느끼게 한다면 료타를 통해서 가족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풀어내는 듯하다.
아츠시는 영화의 초반부 죽은 토끼를 보며 토끼를 쓰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웃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사망한 이에게 편지를 써봤자 어차피 모를 것이라며 대답한다. 그런 아츠시가 시골 생활을 마치며 자기는 생부의 직업이었던 피아노 조율사가 될 것이며, 만약 안 된다면 할아버지의 직업이자 새 아버지의 어린 시절 꿈인 의사가 되겠다고 밖에 나가 누군가에게 전하듯 말한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생부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결국 아츠시가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 즉 영화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전한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남은 이들의 가슴 속으로 삶의 흔적이 이전되고 이로 인해 새로운 삶이 생겨나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장손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삶이 이어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가족이 때되면 모일 수 있었으며, 누군가의 죽음 덕분에 새로운 가정이 생겨날 수 있었다.
영화는 이처럼 가족의 의미, 부모와 자식 간의 미묘한 감정과 틈 그리고 삶과 즉음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대단히 유기적으로 담아내 관객을 설득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는 요란스럽다기 보다 조용하기에 설득하지 않고, 관객을 이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전혀 저항조차 못한 채 영화의 감동과 여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필자에게 누군가가 전한 "영화를 통해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필자에게는 아직도 큰 충격이다. 영화는 관점의 예술이기에, 아무리 진실에 기반해 객관적으로 역사를 다루어도 주관의 개입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역사를 배운다기 보다는 그 역사를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관점을 배운다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훌륭한 교본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의 그것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또한 나의 경험이란 관점의 결과인데 그렇다면 과연 경험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역사를 진실로서 다루고자 한다면 그 진실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과연 찾을 수 없다면 그 사실을 바라보는 수 많은 시각 속 자신의 관점을 찾는 과정이 덜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영화를 통해 인생과 가족을 배운다. 누군가는 영화로 인생과 가족을 배우는 건 새삼 어리석은 짓이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면, 그 중에서 특히 <걸어도 걸어도>라면 그건 어리석은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똑똑한 방법일 것이라 확신한다. 인생과 가족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작품들 속에서 갈고 닦은 감독의 마스터피스를 관람한다. 그의 작품 속 세상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가족의 연대와 '가족이니까' 넘어가고 무심해지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들을 일깨운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이에 대한 교본이다.
작품은 죽음을 다루면서 신기하게 단 한번도 눈물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의 눈물은 무더운 날씨 묘비에 뿌려지는 물로 대체되었을지 모른다. 영화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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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어른들은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고독
감독: 다미앵 마니벨, 이가라시 고헤이
출연: 코가와 타카라
시놉시스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터로 나간 어느 날, 한 소년 타카라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해주기 위해 일탈 여행을 떠난다. 아무도 모르게, 용감하게. 눈길을 헤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지만 아버지는 찾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갇히고 만다. 타카라의 모험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대사가 없는 영화
이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 대사가 없고 아이의 표정만 보이며 아이의 행동들이 단편적으로 편집되어 있다. 영화 내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타카라는 명랑한 아인지, 말을 잘 안듣는 유형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저 타카라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있는 전형적인 가족 관계가 있다는 존재 사실만 보여준다. 가족 간의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모든 포커스가 타카라의 여정에만 맞춰져 있다. 타카라의 여정에 관계 없는 부가적인 설정은 설명이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타카라의 행동과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장면마다 하나의 사진집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였을 때의 기억을 장면장면으로 편집해 기억하고 있는 어른의 관점으로 말이다.
어른은 아이를 다 알지 못합니다.
감독은 "타카라의 여정에 초점을 맞춰 어른의 개입이 없는 세상 속 아이들의 모험"을 그려내고 싶었다. 위험해 보일 수 있는데도 어떤 어른도 "아이야, 무슨 일이니" 묻는 어른이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어른에게는 위험이지만 아이의 시각에서는 모험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에 의해 재단된다. 정작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표현할 기회가 없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의 삶은 끊임없이 평가당한다. 어른들과 완벽하게 소통을 해내지 못하는 나이이기에 아이는 고독을 느낀다. 그 고독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해 자신의 고독을 말할 능력과 의지의 부족함에서 나온다.
부모는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반만 알아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관점에서 평가당해온 삶 속 진짜 내 이야기를 했을 때 부정당했던 경험이 상처로 남았다면 '아이 시절의 고독'을 잘 숨겨온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타카라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 어떤 가족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아이의 웃는 낯 속 숨겨진 진실은 아이가 표현할 때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타카라가 그런 모험을 자처할 만큼의 표현 말이다.
영화의 비하인드
감독에 따르면 상황 설정은 있었지만 전적으로 실제 타카라의 행동을 따라가며 찍은 다큐적 속성의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아이가 개와 목소리로 다이다이 뜰 때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건 연기라기 보단 찐텐이었을 테니까.
영화가 끝났는데도 수영을 했다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산 시장 그림을 그렸기 때문인 걸까 생각했는데 관객과의 대화 중 한 의견을 듣고 아하! 했다. "설원에서 아이가 뒹구는 게 마치 수영하는 것 같았다"는 말이었는데 훨씬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집단지성이 중요한가 보다.
영화 속 타카라는 꽤 오랜 시간 잔다. 그걸 보며 이 모든 모험이 사실 꿈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컷이 그토록 단편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했는데 감독이 이에 대해 확신을 줬다. '꿈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어른에게 아이 시절은 꿈같이 희미해져 버렸으니 그런 연출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총평
영화가 대사가 없지만 내용은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이해가 단박에 되진 않아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는 영화다. 영화 내용과는 별개지만 감독이 "타카라가 정말 눈 속에서 매번 뒹굴어 신기했다"라는 코멘트가 진심 너무 귀여워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그런 아이를 데리고 영화 한 편 찍겠다고 달려든 어른들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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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국내 OTT 시장
8월 13일 진행된 글로벌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월트디즈니 컴퍼니가 디즈니+의 아시아 상륙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일본,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서비스중인 세계 2위의 OTT 플랫폼 디즈니+는 디즈니는 물론, 마블, 픽사 등의 우저작권까지 소유한 거대 엔터테이닝 기업으로,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다양한 디즈니+ 오리지널 작품들을 드디어 올 11월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특히, 마블 스튜디오의 완다비전(Wanda Vision), 로키(Loki), 팔콘과 윈터솔져(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스타워즈 시리즈 만달로리안 (The Mandalorian) 등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많은 국내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에 루크 강 월트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디즈니+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구독자 수 성장과 현지 파트너십 구축 등 지역 내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뛰어난 스토리텔링, 우수한 창의성, 혁신적인 콘텐츠 제공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의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맞서는 국내 OTT 플랫폼 또한 만만치 않은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지상파 3사와 SKT의 합작품인 웨이브 (wavve)는 드라마와 예능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내 OTT 플랫폼입니다.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등을 통해 시청률 보증 수표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한 김순옥 작가의 명작관이 있을뿐 아니라, 2021년 7월 20일부터 1년간 HBO와 콘텐츠 계약을 체결하면서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왔는데요. 웨이브에서도 첫 오리지널 영화 제작을 발표하여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2022년 개봉을 목표로 올 8월 크랭크인 예정인 영화 <젠틀맨>은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살인 누명을 벗으려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경쾌한 범죄 오락물로, 주지훈과 박성웅이 캐스팅을 확정지으며 기대를 끌어 올렸습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한소희의 하차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4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된 만큼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이에 맞서는 CJ의 '티빙' 역시 예능과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OTT 플랫폼인데요.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물론, 한지민, 임윤아 주연의 영화 <해피 뉴 이어> 등의 공개를 앞두며 승승장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하반기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을 통해 또 한번 웃음 폭탄을 떨어트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코믹 연기로 파격 변신을 예고편 이서진과 코믹 연기의 달인 라미란이 만난 드라마는 1도 슬기롭지 못한 초짜 개원의의 '웃픈' 의사 생활을 그린 현실 밀착형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아직 여타 플랫폼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어떤 플랫폼보다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쿠팡플레이 역시 첫 오리지널 코미디쇼 출시를 밝혔는데요. 거침없는 풍자와 패러디, 신선한 유머로 고품격 웃음을 선사할 쿠팡플레이의 첫 오리지널 코미디쇼 <SNL 코리아>는 9월 4일 첫 방송 확정과 함께, 역대급 호스트 이병헌의 출연 소식을 밝혀 화제를 모았습니다. <SNL 코리아>는 신동엽을 필두로 안영미, 정상훈, 김민교, 권혁수까지 오리지널 크루는 물론, 웬디, 김민수, 김상협 등 뉴페이스 크루의 합류로 더욱 업드레이드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디즈니+가 상륙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OTT 콘텐츠와 함께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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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퇴마 판타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건에 천만 원씩 받고 가짜 퇴마극을 펼친다고 알려진 사기꾼 퇴미사 '천박사'(강동원). 여느 때처럼 특수효과 기술자 겸 유튜버인 '인배'(이동휘)의 도움을 받아 가짜 퇴마를 펼친 그에게 귀신을 보는 눈을 지닌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거액의 수임료를 제안한 그녀의 요구는 단 하나. 자기 여동생 '유민'(박소이)에게 붙은 귀신을 떨쳐달라는 것.
이번에도 가짜 퇴마극을 준비하던 천박사. 그러나 그는 곧 다른 기운을 감지한다. 귀신을 만나면 울린다고 알려졌지만 평생 울린 적 없는 방울이 울린 것. 그와 동시에 천박사는 무당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허준호)에게 습격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에게 인배와 '황사장'(김종수)은 사건에서 손을 떼자고 제안하지만, 천박사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 그간 애써 외면한 과거를 마주하고, 당주 무당의 장손으로서 악귀와 싸우겠다고.
웹툰 실사화의 딜레마
웹툰 원작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길 때 항상 같은 딜레마가 있다. 바로 '톤'이다. 웹툰은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인 톤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원작을 지나치게 충실하면 작위적이거나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반대로 그렇다고 원작 색채를 과하게 빼 버리면 팬덤의 불만을 산다. 웹툰 원작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는 위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후렛샤 작가의 '빙의'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의 미덕을 보여준다. 웹툰 느낌을 살린다는 목적을 위해 장르, 캐릭터, 볼거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주한다. 뛰어난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없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가능한 신선하게 비트는 노력
<천박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성은 장르다. 장르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몇 년 사이 오컬트나 퇴마물은 대중적으로 익숙해졌다.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악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형 오컬트'를 표방하는 작품이 꾸준히 제작됐다. 달리 말해 마을의 서낭당을 지키는 무당인 ‘당주무당’, 충청 지역 앉은굿에서 사용하는 무구 '설경'이라는 소재만으로는 확실한 차별화가 어렵다.
대신 <천박사>는 장르 자체를 변주한다. 우선 다른 오컬트 영화에 비해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취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 많은 오컬트 영화는 '신적인 요소가 실재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한다. 그에 반해 <천박사>는 초반부터 <기생충>을 패러디한 도입부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당의 사기극 같은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코미디는 분위기 환기 이상의 용도로 영리하게 활용된다. 웃음은 <천박사> 세계관으로의 초청장에 가깝다. 웃음 포인트를 주로 인배가 맡기 때문. 극 중 인배는 천박사, 유경, 황사장과 달리 혼자만 무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의 괴리감을 주로 유머의 소재로 삼는데, 관객이나 인배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인배만 따라가도 <천박사>의 판타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오컬트 영화의 일반적인 전개를 피해 가기도 한다. 퇴마물 주인공은 주로 희생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악귀와 질긴 싸움을 펼친다. <천박사>는 다르다. 유민에게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천박사. 그런데 이때 악귀 범천의 선택이 흥미롭다. 그는 유민 대신 유경에게 곧장 달려든다. 또 그녀의 눈을 갖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몸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천박사를 습격한다. 이 순간부터 <천박사>는 본격적으로 액션 활극을 펼쳐 보일 수 있다.
최소한의 설명
이처럼 각 장르의 장점만 모아 관객을 현혹하려면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야 한다. 영화 내 설명이나 묘사가 간단하고, 빠르고, 가벼워야 한다. 진득하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상이한 장르 간의 충돌로 인해 단점만 부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천박사>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알아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려 한다.
핵심 소재인 설경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자막 한 줄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설경은 귀신을 협박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부적이다.” 어떤 효과가 있고, 언제 사용해야 하고, 누가 쓸 수 있는지와 같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소재와 설정에 대한 설명도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당주 무당의 역할, 손가락을 잘라서 만드는 주문의 정체, 범천이 무당을 사냥하는 궁극적인 목적, 칠성검에 깃든 힘...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재이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보여준다. 유경에게 신비한 눈이 있는 이유, 천박사에게 신기가 깃드는 묘사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내용 전개도 직선적이다. 천박사가 범천의 존재를 인지한 후 곧장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선녀 무당이라는 카메오를 활용해 '기승전결' 중 '승'을 생략하다시피 한다. 그 덕에 너무 단순한 장치들과 파훼법 같은 지점들이 여러 의구심이나 고민으로 떠오르기 전에 끝내버린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박사> 속 인물의 서사는 복잡하다. 풀어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천박사의 집안 내력, 범천의 음모, 유경과 마을 주민들의 비극이 한 데 얽혀 있다. <천박사> 속 세계에 대한 설명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액션까지 곁들여 주려면 9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촉박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천박사>는 철저힌 선택과 집중을 보여준다. 모든 플롯을 천박사 중심으로 배치하면서 분량을 조절한다. 천박사의 개인사를 풀어낼 때 범천을 도우미로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의 집안과 범천의 악연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의 서사를 동시에 풀어낸다. 이에 더해 천박사의 할아버지와 동생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설정하면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단순한 복수 서사 내에 위치시킨다.
유경의 개인사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녀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유경을 단순히 범천이 노리는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릴 뿐,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녀의 부모, 그녀와 마을 주민들의 관계, 범천이 마을 주민들을 악용한 방식 등도 퇴마 판타지다운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된다. 철저히 플롯의 도구일 따름이다.
몰입은 되지만 폭발력은 없다
초중반부까지는 <천박사>의 선택이 적중한다. 코미디, 오컬트, 판타지, 액션 모두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후반부다. 이전까지의 선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화려한 CG가 천박사와 범천을 감싸고, 비장한 검투씬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다. 물론 강동원이 기본적으로 액션을 잘 소화하는 배우인 관계로 액션을 보는 재미는 있다. CG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기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범천을 물리치는 과정과 결과에는 쾌감이 없다.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천박사>는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듯이 액션도 서사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보인다. 전쟁이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행위라면, 액션은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작가의 도구다. 즉, 서사가 쌓이지 않은 액션은 화려한 그래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천박사>는 인물의 서사를 쌓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과거사를 단편적으로 알려준다. 범천을 향한 원한이 얼마나 크고 그가 사기꾼 행세를 하며 어떻게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천박사가 목숨 걸고 범천을 잡는 이유는 이해해도 그에게 공감하거나 몰입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든 서사가 집중된 주인공이 이러니, 그에게 종속된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날 일도 만무하다.
결국 강동원이 장르다
그 결과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캐릭터가 아닌 배우들의 비주얼과 존개감뿐이다. 강동원은 다시 한번 스타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 <검은 사제들>에서 봤던 강동원의 이미지가 묘하게 한 데 합쳐져 있다. 대중적으로 인식된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이식한 느낌이다.
반대쪽에서는 허준호의 무게감이 인상적이다. 자칫 경쾌함 이상으로 가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히 가라앉히는 데 최적화된 모습이다. 박정민과 지수, 두 카메오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해서 특유의 연기력과 비주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결국 <천박사>는 캐릭터와 CG, 설정이 조금 독특할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난한 명절 영화에 그친다.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도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톤의 코믹 액션 오컬트 영화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계획대로 결과물이 정직하게 뽑힌 듯 보여서 비판하기도 애매하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한국 상업 영화 중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가 엿보이는 장르 영화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Acceptable 무난함
화려하나 어색한 CG만큼 오묘한 끝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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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17년, 차마 잊히지 못한 부조리를 외치기까지의 시간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기자단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스터>
<감독>
정지영
<출연진>
설경구, 진경, 염혜란, 유준상, 허성태 외
<시놉시스>
1999년 시골 소읍의 한 슈퍼마켓에 강도 치사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은 세 명의 소년들을 진범으로 지목, 빠르게 수사를 종결한다. 얼마 뒤 새로 부임한 황준철(설경구) 반장은 경찰 고위직 최우성(유준상)과 무리들이 성과를 앞세워 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특유의 끈질기고 강직한 수사력으로 재수사와 재심을 시도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년들>은 실화와 허구 사이에서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 내기로 유명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장르적 재미를 높이는 동시에 약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소영웅 서사를 펼쳐낸다.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 등 호화 캐스팅도 돋보인다. (정한석)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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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억울할 일이 많다. 동생이 잘못했는데 내가 누명을 뒤집어 쓰고 혼났다든가, 감나무 밑에서 갓끈을 맸는데 감도둑이라 욕 들어먹는다든가 하는 일이 그렇다. 이런 사소한 일로만 억울하면 그나마 서럽지나 않을텐데, 우리 사는 사회는 마냥 합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그보다 더한 일을 겪을 때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불합리와 부조리는, 인간의 아주 내밀한 이기심이 배려심 없는 욕망을 양분 삼아 자라난 것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때론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부조리를, 이 부조리에서 기인한 무기력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에 맞설 수 있을까?
영화 <소년들>은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1. 무엇이 부조리를 만드는가?
영화는 2000년과 2016년을 오가며 <우리슈퍼 강도 살인 사건>을 조명한다.
때는 1999년 어느 밤, '우리 슈퍼'에 세 명의 강도가 침입해 할머니를 죽이고 금품과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으로는 그 이웃인 소년 셋이 지목되었고, 그들은 한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살인죄 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부터 1년 후, 황준철은 우연한 계기로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 소년들을 위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그 당시 소년들을 수사한 경찰들이 저희들의 승진을 위해 소년들에게 거짓 증언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재수사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황준철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협조적이지 않았으니까.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아주 사소한 이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무성 일당은 저희가 폭력을 앞세워 거짓 증언을 받아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소년들을 범인으로 잘못 지목한 윤미숙은 어머니가 강도살인 당한 충격에 휩싸여 그 당시에 대해 떠올리고 싶지 않아했고, 진범은 죄로부터 도망가고자 했으며, 소년들은 강압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준철 반장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바로 그러한 이기심이 모이고 모여 부조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므로. '내게도 사정이 있었다'는 변명들은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망쳤다.
그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권력을 쥔 이들의 구둣발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2. 17년, 정의를 되찾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2016년. 황 반장의 재수사가 있고부터 16년의 세월이 흐른다. 조직의 비리를 캐내던 황 반장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보직에서 제외되고 내내 변방의 섬에서 좌천 당한 채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은퇴를 1년 남은 어느 초라한 말년, 답답한 속을 그저 술로만 달래던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어느 소식을 듣는다.
소년들과 그들을 거두어들인 미숙이, 17년 전 그 <우리 슈퍼 강도 살인 사건>에 대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거대한 부조리에 굴복한 바가 있는 황 반장은 주저한다. 어차피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었다. 진범은 이미 잡아들일 수도 없고, 이미 옥살이를 한 소년들의 인생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을 다시 시도하며 무기력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한 의미 없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시금 다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심에 협조하기로 한다. 기꺼이 사표를 내고, 그 모든 부조리에 다시금 맞선다. 그는 그 현장의 부조리를 직접 목도한 가장 확실한 증인이었으므로. 그는 얼마든지 증인석에 오를 권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황준철은, 윤미숙은, 소년들은, 왜 이제 와서 부조리에 맞선 것일까?
짐작건대, 그것은 어쩌면, 그날의 그 사건이 17년이 지나도록 그들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리라. 소년들의 꽁무니에는 언제나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남았고, 윤미숙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억울한 삶을 살게 한 것에 가책을 느꼈으며, 황준철은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매일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강도 살인을 저지른 진범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평생토록 도망치며 살았다. 마음의 밑바닥에 짐처럼 가라앉은 오랜 옛날의 부조리가 오래도록 그들 모두를 괴롭혀 온 것이다. 이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이로부터 더는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일이었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지난날의 부끄러움과 실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용기를 동력으로 삼아 다시금 진실을 밝히고자 했고, 마침내,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가 닿게 했다.
영화는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가장 억울했을 사람들이 응당 그들이 누려야 할 삶을 되찾았다. 그리고 어떤 싸움은, 가장 사소한 것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법이다.
우리 주변에도 부조리한 일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모이고 모인다면, 어쩌면 우리는 변화를 야기하는 아주 사소한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자신과 주변에는 어떤 억울한 일들이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무엇이든 시작해보자.
3. 관람 포인트
일반적인 수사물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들이 많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 영화는 16년이라는 긴 시간의 장벽 하나를 두고 2000년과 2016년을 넘나든다. 이 각기 다른 시간이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배우들은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법이 될 것이다. (GV에서 설경구 배우가 말하길,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일주일 동안 나흘이나 굶었다고 한다..!)
둘째, 무거운 소재의 영화임에도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가 돋보인다. 특히 조연배우들의 재치가 인상 깊었는데, 허성태와 염혜란 배우의 생활감 넘치면서 익살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다!
셋째,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실제 사건을 살펴보며 어떤 일이 있었고, 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2022.10.06. 부산국제영화제 10.05~10.14 15:00 하늘연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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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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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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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현X박지현 앙숙 파트너 조합이 떴다!✨ 차원이 다른 재벌 3세 형사의 좌충우돌 수사기? 코믹 액션 수사물 [재벌X형사] 1월 26일 디즈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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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하다'의 정의를 물으신다면..? ??? 공룡 사냥꾼 '벅'으로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 [아이스 에이지: 벅의 대모험] 디즈니+ 3월 단독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