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2-09-29 00:06:32
[DMZ DOCS] 나의 조국은 홀로코스트의 방관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글로벌 비전 섹션 <어느 유대인의 삶>
어느 유대인의 삶
A Jewish Life
Cast
감독: 롤란트 슈로트호퍼, 크리스티안 케머, 플로리안 위겐세이머, 크리스티안 크로네스
출연: 마르코 파인골드
Synopsis
<어느 유대인의 삶>은 마르코 파인골드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과 우여곡절을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의 생존을 묘사했다. 마르코 파인골드가 나치 정권 때 겪었던 모든 경험은 현재 그의 존재를 정의하고, 영화는 파인골드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 및 그 인식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린 작품이다. (출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Review
2016년, <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작품으로 105세 할머니 브룬힐데 홈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던 네 명의 영화감독이 이번에는 105세 할아버지 마르코 파인골드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평범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홈셀 할머니는 나치 선전장관의 개인 비서였고, 파인골드 할아버지는 홀로코스트의 생존 유대인이죠. <어느 유대인의 삶>은 전작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으나, 절대 같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마르코 파인골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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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그리고 나의 조국을 고발합니다
마르코 파인골드는 히틀러와 나치를 고발하며 한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살은 오직 히틀러와 나치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그가 분노의 화살을 겨눈 또 다른 과녁은 바로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입니다.
마르코 파인골드는 수많은 오스트리아 빈의 시민들이 히틀러와 나치 군인을 환대하려고 헬덴 광장에 모인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오랜 타국 생활로 유대인의 티를 감출 수 있었던 그는 광장 한복판에서 믿지 못할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했죠. 그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국의 유대인 척결에 앞장섰다고 비판합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 발 들인지 고작 하루 만에 존경받는 의사는 더러운 유대인이 되었고, 유대인과 결혼한 비유대인은 가정을 깨버렸죠. 마르코 파인골드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네 곳의 수용소를 거쳐 기적적으로 해방을 맞이했으나, 두 번 다시 오스트리아 빈에 발 붙이지 못했습니다. 입국을 거부 당했거든요. 이러한 치욕적인 대접은 7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마르코 파인골드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합병의 과정에서도, 탈나치화의 과정에서도 조국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유대인들. 마르코 파인골드는 주름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진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침묵을 택한 조국의 민낯을 밝힙니다. 105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는 매우 정정합니다. 아직 이생을 떠나기엔 이르다는 듯이 말이죠. 그는 지금도 과거를 미화하고 부인하는 사람들로부터 협박 편지를 받습니다. 진실을 오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마르코 파인골드는 생을 끝마칠 수 없습니다. 매일 과거와 만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상황은 벼랑 끝에 내몰린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실업률은 하늘을 찌르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넘쳐났죠.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일자리와 음식을 약속했다고는 하나,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을 한순간에 배신할 수 있을까요? 이런 비극적 역사의 속살이 드러날 때면, 분노가 차오르면서도 ‘과연 나라면 달랐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다다라 슬퍼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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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화면 속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어느 유대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코 파인골드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연극배우의 독백 같기도,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죠. 깊은 주름을 강조하는 흑백의 화면은 세월을 시각화하고, 카메라는 지난날을 떠올리는 그를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정면에서, 측면에서, 가까이서, 멀리서. 변주되는 것은 오직 촬영 구도뿐입니다. 관객은 비극을 떠안고 살아온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죠.
파인골드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에는 ‘비극’으로 뭉뚱그려지는 역사를 직접 겪은 한 인간이 실질적으로 마주하는 고통들이 묻어있습니다. 독백 사이사이에 삽입된 뉴스 자료, 현장 영상 등의 아카이브 푸티지는 마르코 파인골드 개인의 이야기가 역사의 일면이라는 걸 알려주지만, 슬프게도 역사의 이면에는 결국 개인만이 남습니다.
생사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가족의 소식을 이야기하며, 그는 없음(nothing)과 함께하는 고통 속에 산다고 고백합니다. 굶주림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단인지도 담담하게 이야기하죠. 수용소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날들의 절망도 털어놓습니다. <어느 유대인의 삶>의 촬영 방식은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격동성과는 달리 한없이 고요합니다. 이야기에 힘을 더하기 위해 연출진이 선택한 독특한 방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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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방관자였습니다. 히틀러에게 협조하며 홀로코스트라는 살인 사업에 동조했고, 고국으로의 복귀를 막아버림으로써 생존자를 방치했죠. 21세기지만,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휴전국이고요. 파인골드 할아버지는 시민적 용기가 조직되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유대인의 삶>을 통해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가장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더욱더 용기 있는 시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Schedule in DMZ docs
2022.09.23(금)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101호 10:30
2022.09.27(화) 메가박스 백석점 2관 13:30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