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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hilarious2023-03-27 09:00:34

그래, 이 정도면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값은 한 거겠지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푸른빛을 잘 담아내는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돌아왔다. 사실 '날씨의 아이'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이번 영화마저 별로라면 굳이 영화관 가서 이 감독의 영화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별점 5점 만점에 3.5점은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깎아버린 1.5점은 결국 영화의 개연성 때문이었다.

 

1. 일본의 자연에 진심인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작화이다. 그의 강점이기도 한데,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수려하게 그려내었다. 그의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자연 요소는 아무래도 물일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작화는 물이 가진 수려함을 잘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퀀스 초반에 스즈메가 등교하던 중 보이는 바다는 참 아름다워 단번에 와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역시 그는 이런 푸르름을 극대화하는 작화를 그 어떤 애니 감독보다도 잘 그려내는 것 같다. 그가 그려내는 푸르른 작화는 왠지 모르게 투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일본의 재난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왔다. 그는 일본의 자연 환경에 참 관심이 많고, 그에 따라 그의 영화의 주제는 대체로 일본의 재난이다. 그를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너의 이름은' 또한 영화의 스토리의 배경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한 마을이었고, '날씨의 아이' 또한 해일이 덮쳐 물바다가 되어버린 일본을 그려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일본의 지진에 집중했다. 일본의 지진을 막아내는 초월적인 존재가 있고, 그 초월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남주 소타와 같은 토지시가 등장하며 일본의 재난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다는 설정으로 이번에도 그는 일본의 자연 환경과 무속적인 존재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끌어나갔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그의 영화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영화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일본의 자연 환경, 재난을 무속적인 기질을 타고난 인간이 막아내고, 그 인간을 사랑한 또다른 인간이 등장해 이들의 로맨스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그만의 클리셰라면 클리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클리셰에 질리진 않았겠지만 추후 만들 영화도 비슷한 이야기라면 이젠 조금 질리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 살짝 우려된다.

 

2. 일본의 폐허들과 그 폐허에 있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 재난으로 폐허가 되어 더이상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무관심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지시들은 이런 버려진 장소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재난이 문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관리한다. 그 재난을 막아내는 요석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요석이었던 다이진이 더이상 재난을 막아내는 일을 버텨내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점만 봐도 일본은 기본적으로 재난이라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견뎌내야할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재난을 책임지고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무관심으로 도배된 세상에서 나혼자 나라의 안녕을 위해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면 그 누군가가 초월적 존재, 혹은 신이더라도 얼마나 인간들이 괘씸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다이진의 행동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고, 서사의 가장 큰 빌런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정리될수록 어쩌면 제일 외로운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 산재해 있는 재난에 대한 관점, '슬픈 일이긴 하지만 내 일은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다이진으로 하여금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고 싶어지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모를 위해서도 일종의 책임자를 만들어낸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추모인지 보여주는 존재가 아닐까. 추모는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독은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의 제목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아니라 '다이진의 일탈'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스즈메와 소타는 일본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폐허가 된 마을 속에서 떠다니는 저 세상의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참 일상적인 문장인데, '다녀오겠습니다'가 '다녀왔습니다'로 바뀌지 못한 그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생에서 어떤 이유로든 어떤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 사람을 기억할 때 의외로 그런 일상적인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사람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이 대단한 말을 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음식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했던 '밥 먹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대단한 사람들의 연설을 듣거나 유명한 상담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일상적인 말이 오히려 더 치유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스즈메와 소타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들려주기 위해, 그래서 이들의 한이 다음 세대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3. 결국은 직면해야 한다.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재난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고 다음에는 어떤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 그저 묻으려고만 하는 일본인들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가 재난의 상처에 무관심하고 그저 상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상처에 대해 티를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곪아가고 있는 사회를 꼬집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란 직면해내고, 몰아치는 수많은 감정을 감당해내고, 어떻게든지 표현을 해내어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표면적으로 동일본 지진 생존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지만 감독은 재난을 겪었든 관망했든 우리 모두 당신의 기억에 직면하고 맞서 다시 제로 베이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어쩌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충고를 사회에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 받아내고 막아내고 있는 다이진이나 소타 같은 토지시들이 나라의 대의를 위해 힘써줄 동력이 생겨날 것이다. 그저 기억하고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4. 총평

 

 

사실 영화의 개연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타와 스즈메의 로맨스 라인이 뜬금없는 감이 있고, 이렇게까지 이 두 사람이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가 치유와 위로인 만큼 로맨스를 일종의 양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 개연성 부족은 약간 흐린 눈 해줄 수 있다. 그 외에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들을 이해시키기에 충분히 명확했고, 충분히 제작 의도가 보여서 좋았다. 역시 서사가 있는 모든 작품들은 약간의 단점이 보이더라도 말하고자 바가 명확한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연성을 개나 주면 안되겠지만 메시지가 곧 개연성일 때도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음악이 영화의 작화와 아주 잘 어울린다. 요새 내 최애 플레이리스트가 될 정도였다. 일본어는 모르지만 적당히 몽환적인 것이 멜로디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이미 보신 분들이라면 나처럼 음악만 n차 감상하고 계실 것이라 예상한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출처 . https://brunch.co.kr/@lanayoo9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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