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3-10-13 03:24:05
[BIFF 데일리] 전쟁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다큐멘터리 키스더퓨처
전쟁은 언제나 지배자의 논리에서 발생한다. 소시민들은 언제나 그들의 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왔다. 보스니아는 각기 다른 민족, 종교가 혼재되어 공존했던 곳이었는데 항상 그런 곳들은 정치인들이 분쟁을 만들어내기 적합한 환경이라, 보스니아는 별안간 세르비아인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렇게 그들은 4년간 고립되었다. 이 이야기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1.소련이 지나간 자리에
소련이라는 나라는 어떤 지점에서 대단한 나라인 것이 다른 민족, 인종, 종교들을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통일해왔다. 그 말은 즉슨 그들의 이득에 따라 국가의 경계선이 그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의 논리이기에 일반 소시민들은 매일 밥을 먹고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것은 변함없었을 것이다. 그저 지배자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어놓은 경계선들이 해제되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꼭 독재자들이 등장한다.
독재자들이 으레 그렇듯 민족주의를 들고 나타난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를 봉쇄하고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보스니아에 이슬람만 사는 것도 아니었고,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 위험에 처했다. 어디든 정치인들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일부 사람들의 이기심을 건드려 분란만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굳이 같은 민족들끼리 함께 살던 사람들의 땅을 자의적으로 나누어 이산가족을 만들어내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개 사람들의 불만이 학살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2.U2의 등장, 지옥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은 있다

사라예보 시민들은 오늘도 지상도로에서 총을 맞을 수도 있었는데 그 지옥 속에서도 음악을 듣고 클럽을 만들고 결혼식도 연다. 지배자들이 만든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들에게 휘둘리지만은 않는다. 인간이 그저 인간의 목숨이 경시되는 전쟁터 속에서도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위한 음악을 놓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U2가 등장하는데, U2라는 그룹에 대해 잘 몰랐음에도 이런 그룹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문화예술인이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가장 선하게 사용한 그룹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술인들이 자신만의 정치적 이슈를 예술에 녹아내는 데에 백 프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학살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류애를 놓치지 않도록 희망의 끈을 쥐어주는 것은 결국 예술, 음악이었던 것이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도 음악과 영화에 검열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부가 이렇듯 문화예술을 신경썼던 것은 지배자의 논리를 무시하고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화합하게 만드는 매개체라는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되어 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술은 그저 추상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지지만 감동, 사랑, 애정, 실망, 분노 모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효과를 일으킬지 알 수 없어 더 강력하다. U2가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은 희망이자 기쁨이요, 외부 사람들의 관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 관심 덕분에 그들이 4년이란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 정치는 외면했지만 예술계는 그들의 저항을 승화시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3. 전쟁이란
전쟁은 하등 쓸모가 없다. 그저 지배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지배자들은 언제나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다른 나라가 불공평하게 내 나라를 뺏어가지 않는 한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당수가 지배자들의 명분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대의라고 포장된 작은 이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간다. 소규모의 기득권층을 위해서 존재하는 개념이 전쟁이고, 인간의 이기심의 바닥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 사람들의 의지가 빛나는 것은, 그들은 서로와 음악에게 의지하면서 그들의 삶을 유지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더라도 클럽을 가고, 미인대회도 열면서 그들의 윤택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점이 존경스러웠고, 다양한 문화가 결집된 도시가 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정답을 찾았던 것 같다.
총평
다큐멘터리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극의 흐름이 지루하지 않았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봐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U2라는 유명한 밴드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되는 점이 있어 좋았다. 마지막 인터뷰이의 말 중에서, 그 떄, U2의 공연에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화합이 지금도 다시 되살아나야 하지 않나 라는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하고 싶다.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더 혼란해졌으면 혼란해졌지 더 안정적인 화합을 보여주고 있진 못하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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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흩어진 마음에 더 이상 차가운 비가 내리지 않도록 펼치는 우산
어두운 밤, 비가 내리고 어떤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베이비 박스가 아닌 그 앞에 아기를 놓고 사라지고 이를 지켜봤던 수진이 아이를 베이비 박스 안에 넣어둔다. 베이비 박스 안에 들어온 아기를 확인하던 상현과 동수가 아기를 몰래 데려가고, 다음 날에 엄마인 소영이 아기를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그들의 내막을 알게 된 소영이 그들을 따라나선다. 계속 열리는 트렁크, 세차하면서 열리는 문으로 인해 축축하지만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덕에 금방 마르는 옷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끼얹는다. 하지만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아준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진 상습적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는 어두운 만큼 긍정적이지는 않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떳떳하지 않은 이들에게 적중한다.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생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을 혼자서는 쉽게 할 수 없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노력과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가족이 건네는 것처럼 건넨다. 작위적인 대사들과 직접 개입함에도 명확하지 않은 의미들이 극명한 불호를 만들어 내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는 ‘박스’의 활용이 영화의 의미를 조심스레 매듭짓는 듯하다.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의 사정을 드러내지 않은 걸까? 베이비 박스에 대한 여러 시선이 충돌하지만 그를 바로 잡는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베이비 박스에 대한 존치 여부에 대해서도 정확히 다루는 것 같지도 않다. 의문을 품은 채, 이 복잡한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한 가족이 되어간다. 책임감 있으면서도 무책임한 모순을 펼치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들에게서 왠지 <어느 가족>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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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탈북 청년과 한국 청년, 우리들의 같고 다름에 관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A Tour Guide
Korea/2023/95min/한국경쟁
통계*에 따르면 2022년까지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의 숫자는 3만 4천여 명 정도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주인공 박한영은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곽은미 감독이 창조한 인물로, 3만 4천이라는 추상적 숫자에 감춰진 구체적 얼굴을 상상해보게끔 하는 인물이다. 한영은 이제 막 한국에 들어와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로 경력을 쌓는 중이다. 탈북 후 중국에 있을 때 강제 북송의 위협에 시달렸기에 얼른 돈을 벌어 안정적인 생활을 일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함께 탈북한 동생 인혁과 북에 있는 엄마와 다시 재회해 새 출발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생긴 건 똑같지만 외국인보다도 못하게 대우받는” 탈북민인 한영이 한국사회에서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다. 직장 동료들의 텃세를 견디며 돈을 벌기에도 바쁜데, 동생 인혁은 감감무소식이고 한영의 핸드폰에 ‘감시자’로 저장된 보호 담당 경찰관 태구의 연락도 귀찮기만 하다. 그나마 먼저 한국에 넘어와 자리를 잡은 선배 탈북민만이 한영의 비빌 곳이 되어준다.
가이드의 수입과 연계된 쇼핑에서 읍소하듯 화장품을 반 강제로 팔고, 경복궁이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둥의 거짓말로 중국인 관광객의 호감을 얻으며 어찌어찌 가이드 일에 적응한 한영. 그러나 한영이 한국사회에 온전히 정착할 수 있는지는 그녀의 의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2016년 한국이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외교적 대치가 이어졌다. 관광 산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였다. 일명 ‘사드 보복’이 이어지자 한영은 일자리를 잃고 어렵게 일군 성과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더불어 점차 새 출발을 다짐했을 때의 산뜻한 마음을 잃어간다. 새 출발의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영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탈북민 동료들은 각자의 생존과 미래를 치열하게 모색하느라 바쁘고, 한국인 동료는 한영의 성장을 경계한다. 처음엔 성가셨으나 꾸준한 진심으로 한영의 마음을 연 태구와의 관계는 사적인 친밀성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토록 어렵게 탈북했는데도 한영이 다시 공항으로 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다시 한번, 그녀는 한국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소수자는 책임지고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한영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탈북민 전체를 투영하여 비난한다. ‘탈북민이라 못 미덥다’, ‘탈북민이라서 그렇다’ 등등. 탈북민 정체성은 내내 한영의 삶을 그녀 자신이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점유한다. 그리고 이는 곧 한영의 삶에 ‘사소한’ 잘못이 누적되어 꼬여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소수자를 향한 편견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일탈’이 주류 사회에서는 ‘범죄/잘못’으로 인식되고, 이를 통해 또다시 소수자를 뭉뚱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영이 겪는 고난을 전시하듯 늘어놓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는 한영의 객관적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탈북민이든 아니든 한국에 사는 많은 청년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하반기에 개봉 예정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볼 관객들이, 이 보편적 퍽퍽함에 더해지는 ‘소수자라서 경험하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가만히 응시해보길 희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조금은 원망하는 듯한 감정이 담긴 한영의 눈빛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우리의 구체적인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http://www.s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92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월 28일 13시, 5월 3일 13시 30분, 5월 5일 19시에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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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등 (2015)
영화 <4등>의 중심 인물은 모두가 피해자다. 이미 첫 아시안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다가오는 아시안 게임의 유망주로 떠오르는 젊은 수영 천재 ‘광수’,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으나 매번 4등만 하는 ‘준호’, 기자이자 준호의 아버지인 ‘영훈’, 악착같은 준호의 어머니인 ‘정애’. 간략한 소개로만 보아선 이들이 무슨 피해자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들이 어딘지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의 원인을 좀처럼 찾을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중력을 행세하는 힘의 주체는 대체 무엇인가? 쉽게 보이지 않는 이 희미한 중력장의 실체는 영화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1-1. 광수
가장 먼저, 광수의 경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태릉으로 출발하는 날 그의 오래된 고향의 폐건물에 들러서 광수는 불법 도박을 하고 있는 고향 선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폐건물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광수의 뒤에 떨어진 말. “내일 가도 되잖아, 너 천재잖아”라는 그 말이 광수를 다시 도박판으로 불러들인다. 서울로 떠나려던 광수는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시고 뒤돌아서더니, 다음 컷에는 어느덧 광수가 도박판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컷으로 이어진다. 광수는 이 지점에서 어촌 마을의 도박에 빠진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 셈이다.
광수는 몇날며칠을 도박에 빠져 태릉선수촌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뒤늦게 들어간 광수를 본 선수촌 코치는 대걸레 자루로 광수에게 체벌을 가한다. 대걸레 자루로 백 대. 그 체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광수의 몸은 분명 곤죽이 되고 말 것이다. 광수는 저항하고, 저항은 코치의 심기를 건드린다. 곧 체벌은 감정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고, 광수는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떠난다.
1-2. 어머니 정애
정애는 아들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 준호는 매번 4등만 하고, 정애는 준호의 성적이 아쉽기만 하다. 정애는 준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고자 한다. 준호에게 일부러 밉살스럽게 ‘4등’이라고 부르는 모습, 준호에게 대놓고 “엄마가 싫지? 그러면 수영할 때 엄마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해 봐”라는 식의 말들을 하며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다. 정애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첫째로 아들이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애가 열정을 부을만한 것이란 이제 아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교육열로 유명한 한국사회 수많은 어머니의 초상을 담은 것이 영화 <4등> 속에서 그려진 정애의 모습이다. 특히나, 그 자식에게 거는 간절함의 깊이는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가 낮을수록 짙어진다. 출산과 육아후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의 삶만을 좇는 정애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없다. 그녀가 사회속에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밖에 없다. 이는 한국사회의 구조, ‘여성’에게 부과되는 독박육아와 강력한 사회적 단절의 탓이다. 이런 구조 탓에 어머니 정애는 자기 자신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두 아들을 다그친다. (자신처럼)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으면,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1-3. 아버지 영훈
아버지는 수영 천재이자 유망주인 광수를 만나고 이 유망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친해진다. 영훈은 광수의 성적을 묻고 광수가 높은 기록을 세웠다는 대답을 듣고는 광수에게 기대를 걸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광수에게 호의적이다. 기자인 그가 수영 유망주와 친해지고자하는 목적은 어느정도 알 법하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인간관계는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져내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 법하다.
광수가 태릉을 박차고 전화를 건 것은 ‘영훈’의 번호였다. 광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대걸레 자루로 100대를 맞으라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자신이 있어서 늦게 간 겁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1 주일 늦었습니다. 그리고 광수의 절박한 전화를 받은 영훈의 대답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였다. 그리고 이런 영훈은 후에 자신의 아들 준호가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에게 체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광수를 찾아가 그에게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를 통해서 영훈은 분명하게 체벌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체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영훈은 광수의 전화를 외면하는데, 이 행동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영화를 통해서 다 알 수 없기에 추론만 가능할 뿐이지만,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이유를 제시해보자면, 영훈이 광수를 두둔한다고 하여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신의 업으로 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영훈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비주류의 물결에 몸을 떠맡기라는 선택은 어렵다. 영훈에게는 일단 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전적으로 영훈에게만 짊어져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영훈은 다소간에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역시 그 기형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탓이라고 하겠다. 여성에게는 독박육아가, 남성에게는 생계유지의 의무가. 한쪽 성별에게 주어지는 전적인 의무들이 그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제멋대로 헤집고, 망쳐놓는다.
1-4. 준호
“형. 1 등하면 무슨 기분이에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4등 준호는 1등을 해낸 초등 수영부 선수에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묻는다. 이런 준호는 광수의 과거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준호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고, 엄마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준호탓에 애가 타서 새로운 코치 광수에게 준호의 지도를 맡긴다. 그리고 광수는 준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다. 광수는 재능있는 준호를 키우고자 체벌로 엄하게 가르치며, 어린 준호는 당연히 맞는 게 싫다. 하지만, 준호는 가정으로 돌아와 어느순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이 받은 체벌을 그대로 재현하며 동생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광수처럼.
역설적으로도 준호는 새로운 코치인 광수에게 ‘엄하게’ 교육을 받으면서, 성적은 점차 좋아진다. 하지만 성적과는 반대로 준호는 점차 코치의 체벌이 두려워 수영에서 느꼈던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을 점차 잃게되고, 급기야 광수의 체벌 탓에 더 이상 수영을 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수영장을 떠난다.
2. 기성 사회의 구조와 구조속의 피해자들.
이 네 명의 중심인물을 정리하다보면, 영화가 그려낸 그들의 삶은 도덕적 딜레마에 의한 긴장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광수는 태릉으로 떠아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박장에 남고, 모욕적이고 감정적인 체벌이 싫어 태릉을 떠났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며, 정애는 자신이 악역을 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행을 중단하지 않고, 영훈은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준호는 마찬가지로 체벌이 싫었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고 권위적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이 도덕적 딜레마들은 모두 어떤 원인에서 부터 발생하고 있는데, 이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접근하면 그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영화속의 모든 문제는 불합리한 기성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어촌마을의 기성세대인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도박판에 어쩔수 없이 빠져드는 광수, 그리고 잘못은 체벌을 통해 몸속에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기성의 교육 방식, 양심적인 비주류에 휘말리면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속에서 생계를 위해 뻔뻔해져야 했던 영훈, 이 사회속에서 이젠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식들은 무엇이라도 근사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정애.
영화 <4 등>속 인물들을 통해서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구조주의 이론에 따라 잘못된 기성의 구조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잘못된 구조를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개별적인 의미와 신념을 잃고, 사회 주류의 신념과 구조를 따르는 이들의 삶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낮을 수록 구조의 요구와 강요에 더욱 순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글이 기성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아픔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대적 상처이며, 일반적인 역사적 기류에 의한 것이지 특정한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기성의 세대를 비판하는 것이아닌 기성의 사회 구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며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3.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들
영화 <4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현재까지 앓고 있는 상처를 재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몇몇 사람들에게는 지난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처지와 영화속 불합리한 상황들을 동일시 여겨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4 등>속 인물들은 구조에 의해서 요구된 악역을 어느정도 떠맡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상처를 지닌 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역설적인 비인간성을 영화속에서 목격하며, 이 영화가 마냥 통렬한 사회비판의 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비판만을 담은 영화였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테지만, 영화 <4등은> 사회구조의 문제성에 대한 비판만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한 줄기의 희망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4 등>은 조금 높게 평가하고 싶은 영화다.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은 개별체의 순수한 특성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의 지문과 홍채가 다르듯이 인간이 가진 개별성은 인간 종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의 다양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때때로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지위와 책무를 떠맡기거나 강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순수한 특성, 개별성과 주체성을 잃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강요와 구조가 정의한 개체성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순수한 개체성을 추구할 때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 <4등>에선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당화되는 체벌이 두려워 수영장을 떠난 준호가 다시금 수영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늦은 새벽에 수영장을 찾아와 홀로 어둡과 차가운 물속에서 빛을 따라 헤엄치는 장면에서 그렇다.
이 씬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어둑한 새벽, 어둑한 물속에서 감감히 출렁이는 빛의 주변을 헤엄치는, 절대적인 어둠속 희미한 빛의 주위로 떠도는 여리고 어린 피사체의 모습이 씬에 아름답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본래 밝기만 해서는 그 밝음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지라, 어둠속에서의 그 희미한 빛을 향해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은 그 어떤 희망적인 언어보다도 강렬한 희망의 언어로 읽힌다. 비록 그 빛이 준호를 수영장에서 꺼내올리는 빛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그 결과로만 축약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4 등>은 이렇게 구조속에서 피해받는 이들의 고통과 초상들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회구조 내의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개별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과정이 지닌 순수함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희미하지만, 희미하기 때문에 강렬한 희망의 메세지를 유려하게 그려내어, 작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의 메세지와 함께 영화의 미학적인 추구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는 꽤나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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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사춘기 소녀의 한여름날 로드 무비
Summary
부모님의 이혼 후 떨어져 살던 자매가 여름방학을 맞아 외할머니집에서 조우한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 담백하고 따뜻한 이야기 (출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Cast
감독: 이바야시 유카
출연: 노기시 코노하, 이케다 노노카, 이와이도 세이코
'여름방학' 하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개학 일주일 전 몰아 쓰던 일기, 왠지 모르게 붕 뜨는 마음,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찾아오던 개학 날 아침 같은 것이 생각납니다.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영화 마루 섹션에 출품된 <환상의 반딧불>은 사춘기 소녀의 기본값 표정을 장착한 '카나타'라는 친구의 여름방학 이야기입니다. '카타나'에게 중2 여름방학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카나타'와 같은 표정을 지었던 어린 날이 있다면, 말 못 할 고민을 참고 견딘 사춘기 시절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환상의 반딧불>의 여름날로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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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는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15살 소녀입니다. 그의 사춘기는 질풍노도와는 사뭇 거리가 멉니다. 함께 당번을 맡은 친구가 자리를 비워도 군말 없이 맡은 구역을 다 청소하고, 엄마가 일하는 가라오케 바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묵묵히 일손을 돕는 그런 어린이죠.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던진 "당번의 일이라면 곰도 퇴치하겠네!"라는 말에 "최선을 다해봐야겠죠."라고 담담하게 답하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맡은 일에만 성실히 집중하는 것이 바로 '카나타'의 일상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가게 일을 도우며 방학을 보내던 '카나타'는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한 대의 자동차를 목격합니다. 차 안에는 화기애애한 모습의 아빠와 어떤 여성, 그리고 동생 '스미레'가 있었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나가던 '카나타'는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습니다.
불평불만이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자기주장은 뒤로 한 채 어른들의 말만 곧이곧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아이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카나타'의 여름방학을 차분하게 담아내면서 이 아이가 체념의 태도를 통해 결핍과 허전함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걸 드러냅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빠 그리고 동생과 따로 살게 된 '카나타'는 반으로 갈라진 가족의 한 켠에서, 우주선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전학 온 학교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겪습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상황을 애써 모른 척하기 위해 '카나타'가 택한 방법이 남들의 부탁을 고스란히 들어주는 것이었죠. 어차피 자신이 바라는 일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다른 사람이 바라는 일은 이뤄주자는 마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카나타'는 자신이 바라는 일들을 꾹 참습니다. 이를테면 아빠의 햄버그스테이크를 다시 먹어보는 것과 같은 아주 작고 소박한 바람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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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의 결핍이 드러나는 영화의 전반부를 지나면, 할머니 댁을 찾은 언니 '카나타'와 동생 '스미레'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말 없는 언니 '카나타'와 달리 동생 '스미레'는 밝고 명랑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그저 반갑기만 한 '스미레'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반딧불이를 보고 싶어 하던 '스미레'의 바람으로, 자매는 할머니 댁에서 짙은 여름 속으로의 여행에 나섭니다. 언니와 동생의 로드 무비가 시작되는 시점이죠.
반딧불이가 없는 시기라는 걸 알면서도 동생의 애원으로 길을 나선 '카나타'는 힘들어 주저앉은 '스미레'를 보고, 결국 쌓인 울분이 터져 버리고 맙니다. '카나타'의 눈에는 '스미레'가 참는 법 없이 제 하고 싶은 대로만 응석 부리는 것으로 보였죠. 그러나 '스미레'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핍의 상황을 이겨나가고 있었습니다. '카나타'는 체념으로, '스미레'는 명랑함으로, 그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죠.
'스미레'와의 여정을 통해 굳게 닫아둔 마음의 문이 슬며시 열린 언니 '카나타'는 반딧불이를 보고 싶어 하는 동생을 위해 손전등으로 '환상의 반딧불'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웃음과 미소를 오래간만에 되찾습니다. 짧고 작은 여행을 마친 '카나타'는 더는 꾹 참지 않기로 합니다. 자매를 찾으러 온 부모님을 보고,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용기를 내보기도 하죠. 동생과 함께 놀던 장난을 혼자 다시 해보며 피식 웃음 짓기도 하고요.
영화는 국내에 <환상의 반딧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으나, 개인적으로는 영제인 <The Wonder of a Summer Day>가 작품 전체의 흐름과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표정 하나 없이 늘 참기만 하던 한 아이의 외로운 나날들에 반짝임을 채워 준, '단 하루의 어느 멋진 여름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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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반딧불>은 색감과 대비를 활용해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연출이 여름방학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묘한 느슨함의 분위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여름'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Schedule in SICFF
2023.09.15(금) 롯데시네마 은평 7관 11:00
2023.09.18(월) 롯데시네마 은평 7관 13:30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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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요리하라, 이들처럼
요리는 정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웬만한 마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저도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고 나서야 깨달았는데요.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요리는 사랑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요리에 사랑이 더해진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트란 안 홍 감독은 <프렌치 수프>라는 영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프렌치 수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프렌치 수프>는 2024년 6월 19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프렌치 수프
The Taste of Things
Summary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탄생시킨 '외제니'와 '도댕'. 그들의 요리 안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두 사람, 한여름과 자유를 사랑하는 '외제니'는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트란 안 홍
출연: 줄리엣 비노쉬, 브누아 마지멜 외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프렌치 수프>, 영어 제목은 <The Taste of Things>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요리에 관해 작정하고 이야기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지는 듯한데요. 코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오프닝 시퀀스는 그 다짐을 현실로 만들어 버립니다. 밥을 먹고 영화관에 들어갔기에 망정이지, 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분명 제 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동쳤을 겁니다.
10초 건너뛰기가 당연해진 오늘날이지만, <프렌치 수프>는 건너뛰는 것 하나 없이 요리의 과정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물이 팔팔 끓는 소리, 재료들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로 가득한 '외제니'와 '도댕'의 부엌은 고요하면서도 소란합니다. 쉼 없이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어내는데도 부산스럽기보단 우아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긴 세월을 이 부엌에서 보내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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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수프 같은 연애의 맛
'외제니'는 '도댕'이 상상한 레시피를 최상의 맛으로 구현해 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지난 20년간 환상의 파트너로서 지내왔죠. 그 과정에서 사랑도 꽃폈습니다. 두 사람은 인생의 가을을 지나는 나이에 이를 때까지, 부엌과 인생에서 서로와 함께해 왔습니다.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신뢰하는 두 연인의 사랑은 마치 프렌치 수프와도 같습니다. 한 번 걸러 불순물을 제거한 수프는 맛이 다소 약해지지만, 맑고 부드러우며 색이 진한 수프가 됩니다. 그들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뾰족한 부분은 모두 걸러내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서로를 대하죠.
미디어 전체를 통틀어 어른의 '어른다운' 연애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근래 나는솔로, 결혼지옥, 고딩엄빠와 같이 자극으로 점철된(혹은 얼룩진) 사랑들, 또는 현실에서는 절대 없을 우연과 구원과 운명의 연속인 사랑들만 봐왔기 때문이겠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극에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저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사랑도 있으니 나 정도는 괜찮아.', '저런 사랑이 어딨어? 이런 게 현실이지.' 싶어집니다. 불순물을 거른 듯이 순하디순한 사랑이라니, 참으로 낯설고 반가웠습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강한 맛만을 선호해서 서글픕니다. 그 맛에 익숙해지는 저 자신도 싫습니다. 부드럽고 진한 수프를 더 많이 맛보고 싶은데, 머지않아 그런 수프를 먹어도 '에잇, 밍밍해!' 할까 봐서 걱정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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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극 중에서 '도댕'은 여지없는 사랑꾼입니다. 언제나 애정을 표현하고, 한없이 상대방을 걱정하며, 청혼하고 또 청혼합니다. 그러나 '외제니'는 조금 다릅니다. '외제니'를 사랑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묘사되는 '도댕'과 달리 그렇다 할 애정 표현이 없습니다. 유독 등을 돌리고 있는 '외제니'에게 다가가는 '도댕'의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외제니'는 선뜻 뒤도는 법이 없죠. 몇 차례의 거절 끝에 '도댕'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몸이 거부라도 하는 듯이 지병이 악화되기도 합니다.
반추 끝에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외제니'는 '도댕'을 진정으로 사랑한 걸까?' 누군가는 '도댕'에게 아내보다는 요리사로 남길 바란다는 '외제니'의 사랑을, 사랑을 나누고자 방문을 두드리는 '도댕'을 진심으로 맞이한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고 말하는 '외제니'의 사랑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외제니'는 '도댕'보다는 요리를 더 사랑했을지도 모르지요. 요리를 더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 '도댕'과의 사랑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외제니'가 '도댕'을 분명히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외제니'는 '도댕'을 뼛속까지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도댕'의 음식은 오직 '외제니'에 의해서만 진정한 맛을 냈거든요. 상대를 뼛속까지 이해하는 마음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제 결론이 너무 단순하고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게 사랑은 완전한 이해인 걸요. 서로 다른 답을 마음에 둔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화를 보는 재미지요. 영화를 보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은 '외제니'의 사랑을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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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요리하고, 사랑을 먹습니다. 눈으로 보았지만, 오감으로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작품입니다. 다만, 사랑과 함께 입맛도 돋우는 영화이니 꼭 식사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One-Liner
사랑은 프랑스 부엌에서 만나, 프렌치 수프를 먹으며, 매일 같이 요리를 하다가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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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 라스트 댄스 | SSU에 '로건' 향을 첨가한 라스트 댄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환상의 짝꿍이자 안티히어로인 '에디 브록'(톰 하디)과 그의 심비오트 '베놈'. 카니지와 맞서 싸우며 샌프란시스코를 엉망으로 만든 뒤 멕시코로 도주한 두 친구는 멀티버스에 갔다 온 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스트릭랜드'(치웨텔 에지오프) 준장이 이끄는 미군 특수부대가 '페인'(주노 템플) 박사의 연구에 필요한 심비오트를 확보하기 위해 그들을 쫓기 시작한 것.
그들의 추적을 힘겹게 따돌리며 뉴욕으로 향하던 에디와 베놈.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추적자를 마주한다. 과거 심비오트에 의해 감옥에 갇힌 심비오트의 창조자 '널'(앤디 서키스)이 외계 괴물 '제노페이지'를 지구에 보내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 에디와 베놈에게만 있는 감옥의 열쇠, 코덱스를 갖기 위해서. 이에 에디와 브룩은 그들의 마지막 동행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에 돌입한다.
SSU에 <로건> 한 숟갈
슈퍼 히어로 영화에게 마지막 편이 있는 것은 훈장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편이 나올 정도로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방증이고, 이는 매번 조금씩은 다른 모습으로 팬들을 만족시켰다는 의미니까. 실제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다크나이트 라이즈> 정도를 제외하면 마무리 인사를 건넨 히어로 영화는 거의 없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조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전까지는 끝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휴 잭맨의 울버린과 이별한 줄 알았던 <로건>은 유독 뇌리에 강렬히 각인됐다.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울버린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 찰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작별을 고할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서부극 작법으로 히어로 영화를 풀어냈기에 참신했고,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운 히어로에게 안식처를 마련했기에 더욱 뭉클한 작품이었다.
톰 하디와 켈리 마르셀 감독도 여러모로 <로건>을 감명 깊게 본 듯하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이하 SSU)의 개국공신인 <베놈> 시리즈의 최종장, <베놈: 라스트 댄스>(이하 <베놈 3>)가 <로건>과 흡사하기 때문. 캐릭터를 다루는 방법도, 줄거리도, 히어로에게 헌사를 보내는 방식마저도 닮았다. 물론 단순히 <로건>을 베낀 작품은 아니다. <베놈> 시리즈와 SSU만의 캐주얼한 멋과 맛은 여전하니까. 심지어 단점마저도.
베놈과 에디가 마침내 빛나다
완성도에 비해 <베놈> 시리즈가 흥행한 원동력은 크게 둘이다. 베놈 캐릭터 자체의 인기와 영화 속 베놈과 에디의 콤비. 극 중 베놈이 코믹스 속 빌런 캐릭터에 비해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포악하나 귀여운 구석이 있는 베놈과 예리한 기자이지만 허술한 일면이 있는 에디 브록이 만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닮아가는 성장 이야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다만 <베놈> 시리즈는 여태 자기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 베놈과 에디의 관계를 단순히 유머 소재로 쓰거나, 다른 캐릭터를 조명하고자 둘의 서사를 축약했기 때문. 마지막 편인 <베놈 3>는 다르다. FBI에게 쫓기며 멀티버스까지 경험한 두 친구가 안티히어로로 활동할 동안 놓친 것을 짚어주면서 베놈과 에디 둘의 관계에 온전히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마침내 그들의 동행에는 감정선이 더해졌다.
그 중심에는 '마틴'(리스 이판) 가족이 있다. 로건이 로라를 에덴으로 데려주다가 농장을 운영하는 가족에게서 평화를 느꼈듯이, 에디와 베놈도 제노페이지의 추격을 따돌리고 뉴욕으로 가던 중 마틴 가족을 만난다. 그들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에디와 베놈은 각자 잊고 지내던 것을 깨닫는다. 에디는 '앤'(미셸 윌리엄스)과 결별한 뒤 평범한 일상과 가정을 갖지 못한 회한을. 베놈은 자기 때문에 에디가 포기한 것들의 소중함을.
그 덕분에 <베놈 3>는 지난 두 편과 퍽 다른 분위기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유대감 덕분에 베놈의 희생은 <베놈> 시리즈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감동을 안긴다. 시리즈 3편을 통틀어서 가장 감정적으로 깊고, 파고가 높은 순간이다. <베놈>, <모비우스>, <마담 웹>과 같은 SSU 작품의 스토리텔링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진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1, 2편의 각본을 맡았던 켈리 마르셀이 메가폰을 잡은 결실이 아닐까 싶다.
<로건> 맛 대신 향만 첨가하다
캐릭터 구축 외에도 <베놈 3>이 <로건>의 장점을 활용하려 한 노력은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부터가 <로건>과 매우 흡사하다. 베놈과 에디는 울버린과 프로페서 X가 그랬듯이 샌프란시스코를 난장판으로 만든 후 멕시코로 도망간다. 제노페이지의 습격을 받고 나서는 추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베놈은 울버린이 그랬듯이 영웅적인 희생을 선택하며 결말을 마주한다.
예상치 못한 공통점도 있다. 두 영화 모두 자유의 여신상을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하다. <로건>이 그랬듯이 <베놈 3>도 자유의 여신상에 베놈과 에디의 관계를 투영시킨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을 맞이해 왔던 역사를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외계인인 베놈과 심비오트가 자기 쓰임새를 증명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모습은 미국에 정착하려는 이민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베놈 3>는 <로건> 향만 낼뿐, <로건>의 감동이나 강렬한 인상까지 따라 하지는 못했다. 마치 오렌지 과즙을 넣은 환타와 오렌지 향만 더한 환타의 맛이 상이한 것처럼. 그 이유는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있다. 외적인 이유로는 <로건> 만큼 농축된 경험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관객과 함께 쌓아 올리고 공유한 시간이 울버린의 그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니, 근본적으로 하위 호환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내적인 이유로는 <베놈 3>의 방향성을 꼽을 수 있다. <베놈 3>는 부족한 깊이를 메우기 위해서 철저히 에디와 베놈 중심으로, 캐주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편의적인 전개를 적극 활용해 SSU와 <베놈>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뽐내려 한다. 플롯을 꼬지도 않았고, 복잡한 은유나 암시도 자유의 여신상을 제외하면 없다. 나머지 캐릭터는 온전히 두 친구를 위한 도구일 뿐이며, 그들의 추억을 회상할 때를 제외하면 앞만 보고 달린다.
여전한 단점
그 대가로 <베놈 3>는 이전처럼 완성도를 잃었다. 우선 개연성이 부족하고,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일례로 베놈과 첸 아주머니가 춤을 추다가 제노페이지에게 위치를 들키는 일련의 과정은 모든 순간이 의아해서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 스트릭랜드 준장, 페인 박사, 크리스마스 연구원의 행적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심비오트를 적대하거나 돕는 동기, 그리고 변심하는 과정 대부분이 생략된 나머지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빌런과 심비오트의 활용법도 허망하다. 실질적인 메인 빌런 제노페이지는 평범한 외계인 CG 캐릭터에 불과하다. 물리적인 힘만 강할 뿐, 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서사나 개성은 전무하다. 심비오트 묘사도 일관성이 없다. 1편에서는 인류에게 거대한 위협이었다가, 갑자기 선역으로 묘사되기 때문. 2편 말미에 등장시키면서 기대감을 키웠던 '톡신'(스티븐 그레이엄)과 같은 캐릭터도 단순히 설명을 위한 도구적으로 소비해 버렸다.
SSU의 고질병인 편집 문제도 여전하다. 급작스러운 화면 전환 때문에 일정한 톤을 유지하지 못했다. 음악 활용이 단적인 예시다. 사용된 노래는 제각기 일리가 있지만, 각 시퀀스를 이어서 보면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같은 재치는 찾기 어려운 셈이다. 결말에 삽입된 마룬 5의 'Memories'만 보더라도 추모의 의미를 담은 가사는 적절했지만,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액션은 기대대로다. 특히 말과 같은 동물을 베놈이 활용하는 장면은 예고편 못지않게 본편에서도 눈길을 끈다. 심비오트 군단의 활약도 흥미롭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심비오트의 액션은 베놈에게 익숙해진 관객에게 새 볼거리를 보여주고, 눈을 즐겁게 한다. 다만 그들이 매력을 다 보여주기도 전에 퇴장한다는 점, 그리고 액션이 밤에만 펼쳐지다 보니 분간이 잘 안 되고 어지럽다는 게 옥에 티다.
깔끔한 결말 끝에 남는 물음표
종합하면 <베놈: 라스트 댄스>는 지극히 <베놈>답고, SSU다운 마무리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기존 시리즈의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최종장인 셈이다. 다만 일관성 있는 끝인사와는 별개로 <베놈 3>는 몇몇 의문을 남긴다. 쿠키영상에서 암시된 향후 시리즈의 전개가 오리무중이기 때문. 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멀티버스와 MCU의 연계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없다.
한 두 가지 힌트가 있을 뿐이다. 에디 브록을 스파이더맨의 도시인 뉴욕에 남겼다는 점, 베놈을 퇴장시키면서 SSU에서든 MCU에서든 안티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으로서 베놈을 등장시킬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 정도가 유효한 암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놈의 라스트 댄스가 최소한의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영화에서 어떻게 등장하든 간에 여전히 베놈과 에디의 동행을 기대케 하니까.
Poor 형편없음
끝이 좋으면 모두가 좋으니 그래도 이만하면 성공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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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tv "파본자들" 베놈편 출연했습니다! with 김민아 아나운서
제가 김민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파본자들" 방송을 녹화하고 왔어요.
오늘 올레tv에서 방송이 되었고 Seezn 앱에서 파본자들 검색하시면 풀버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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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75 - 또 다른 의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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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2월 8일 개봉하는 '플랜75'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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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력 만렙 (ง •̀_•́)ง 보기만 해도 에너지 충전되는 [빅토리]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