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3-11-13 22:48:15
무너져가는 MCU 혼자서 끌고 가네
드라마 '로키' 시리즈 리뷰
※ '로키' 시즌 1, 2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도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끝나고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퇴장하더라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무너지지 않고 오래갈 줄 알았다. 5년이 지난 현재, 멀티버스(다중우주)라는 새로운 뿌리를 두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던 MCU는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멀티버스 개념을 대중에게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MCU가 밀어붙이고 있는 멀티버스를 이해하려면 디즈니+로 스트리밍 중인 '로키' 시리즈를 봐야만 한다. '엔드게임'으로부터 파생된 시리즈이긴 하나, MCU의 멀티버스를 가장 오랫동안 설명하면서 메인 스토리로 삼는 건 '로키' 뿐이다.
총 2개의 시즌으로 나온 '로키'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엔드게임 여파 탓으로 기존 타임라인을 무너뜨리게 된 로키(톰 히들스턴)는 '변종' 취급받으며 TVA(시간관리국)에 붙잡혀 가게 되고, 자신이 알던 세계는 멀티버스의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변종 로키'인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로키를 마주한다.
풀버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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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주의자 킬러의 차가운 복수가 슬픈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암살 목표물을 감시하는 '킬러(마이클 패스밴더)'. 자는 시간도, 음식도, 심지어 심박수까지 철저히 통제하며 암살 대상을 기다리던 그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타깃을 저격하는 데 실패한다.
처음으로 임무에 실패한 나머지 극도로 당황하며 간신히 은신처로 돌아간 킬러. 그러나 그 사이에 킬러의 '아내'(소피 샤를로치)는 보복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이에 그는 아내를 공격한 두 명의 암살자 '짐승'(살라 베이커)과 '전문가'(틸다 스윈튼), 공격을 주도한 '변호인'(찰스 파넬)과 '의뢰인'(알리스 하워드)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즉시 여느 때처럼 냉철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킬러. 그러나 이번만큼은 완벽주의자 킬러도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기 때문.
데이비드 핀처의 노르딕(?) 누아르
데이비드 핀처가 12번째 장편 영화 <더 킬러>로 3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프랑스 작가 알렉시스 놀렌트의 그래픽 노블 원작을 <세븐>의 각본가 앤드류 워커가 각색했다. 무려 20여 년 전부터 마음에 둔 작품이라 하는데, 그 의지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을 만났다.
<더 킬러>는 여러모로 의외의 영화다. 핀처의 첫 누아르 영화라는 점이 새삼스럽다. 낯설기도 하다. 누아르 영화치고 전체적으로 건조하다. '킬러'는 심리적으로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다. 차갑기도 하다. 킬러의 복수극을 5개 챕터로 나누어 보여줄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러다 보니 <조디악>, <나를 찾아줘>에 비해 임팩트가 약하다. 화면이 전환되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핀처에게 기대하는 현란한 편집 솜씨도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언제나 와플 사이에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핀처가 감정을 분출시키지 못하는 감독은 아니니, 왜 애써 감정선을 숨기려 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건조함과 냉정함 사이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핀처의 노림수는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답은 간단하다. 소설 같다. 비록 프랑스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했지만, 마치 한 편의 북유럽 소설 같다. 더 구체적으로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노르딕 누아르에 가깝다.
관건은 암살 작전이 아닌 암살자
물론 <더 킬러>의 주인공은 탐정도 경찰도 아닌 암살자다. 북유럽도 배경이 아니다. 파리, 도미니코 공화국, 뉴욕 등 다양한 장소가 나오지만 북유럽은 없다. 그럼에도 <더 킬러>에서 노르딕 누아르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의 톤과 매너 때문이다.
우선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이라는 특징이 눈에 띈다. 노르딕 누아르에서는 셜록 홈즈 같은 뛰어난 탐정이 없다. 평범한 경찰이 주인공이다. 형사의 한계와 고충. 경찰 시스템과 사법 제도의 한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거와 심리가 얽혀가면서 비로소 사건을 보여준다. <더 킬러>도 마찬가지다. 암살 작전은 중요하지 않다. 킬러가 죽이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를 고용한 고객의 목적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핵심은 암살자다. 킬러의 내레이션이 빈 공간을 차지한다. 파리에서 암살 작전을 준비하는 챕터 1이 대표적이다. 이 챕터에서는 킬러 외에 다른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살인이 갖는 의미. 암살을 하기 위해 필요한 철칙과 조건들. 때로는 냉소적이고 궤변 같기도 한 그의 상념으로 가득하다. 마이클 패스밴더의 킬러를 보면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 마침 패스밴더가 영화 <스노우맨>에서 '해리 홀레'를 연기한 적도 있고.
강박증이라는 공통점
이때 킬러에게 초점을 맞추면 유달리 도드라지는 지점이 있다. 강박증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다. 표적이 묵는 호텔 방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눈을 뜨자마자 표적을 관찰하기 위해 잠잘 때도 테이블 높이를 창문과 맞춰 둔다. 저격 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심박수를 체크한다. 밥도 효율적으로 먹는다. 햄버거에서 번을 빼고 단백질 위주로 영양분을 섭취한다. 목표를 위해 끝없이 기다리고, 유지하고, 인내한다.
이 강박증은 마냥 남 일이 아닌 것 같기에 흥미롭다. 업무의 강도가 높고, 비윤리적인 점만 빼면 그의 일은 일반 직장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기 본연의 리듬 대신 일에 맞춘 일상도 낯설지 않다. 제이 그리피스가 <시계 밖의 시간>에서 지적한 대로다.
분업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된 후 사람들은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을 지운채 시계와 알람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시간 맞춰 칼같이 일어나고, 자기가 세운 계획을 완벽하게 이행해야 마음이 놓이는 킬러와 현대인을 분리해 말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동정과 연민 끼어들지 못하는 킬러의 세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더 킬러>의 복수극은 평범하지 않다. 자기 세계의 모순을 발견했지만, 외적 가치를 이미 내면화했기에 끝내 떨쳐내지 못하는 환자의 치유기에 가깝다. 그가 외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챕터 1에서 핀처는 킬러의 시점과 청각만을 강조한다. 카메라는 그의 시점을 비추고, 음악과 소음도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울려 퍼진다. 달리 말해, 그의 세상에는 그만이 존재한다.
이를 확대하면 분리되고 고립된 사람들의 세계가 나타난다. 여러 파편이 있다.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낀 독일인 관광객에게 관심이 없다. 설령 그가 아마존을 이용해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표준화된 일상을 영위한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처럼.
이 세계에서는 동정과 연민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코인에 눈이 멀어 자기가 죽이려 한 킬러가 복수를 위해 찾아와도 의뢰인은 그 이유조차 짐작 못하는 사회이니까. 킬러의 내레이션이 동정과 연민보다 냉정함과 계획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가득한 이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더 킬러>는 더더욱 노르딕 누아르 같다. 노르딕 누아르의 특징 중 하나가 시대상의 충실한 반영이기 때문. 노르딕 누아르 작가는 사회를 고발한다. 소설 속 지명, 연도, 현장에 대한 묘사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마치 거울처럼 사회상을 반영한다. 핀처도 마찬가지다. <더 킬러>를 통해 자본과 권력으로 치환될 수 없는, 인격의 존엄성 같은 고유한 영역이 존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수의 성공이라는 비극
그러면서도 <더 킬러>는 일말의 희망을 간직한다. 수십 번 반복했던 작업인데 킬러는 자꾸 실수를 범한다. 변호사, 짐승, 전문가, 의뢰인으로 타깃을 좁혀가는 사이 살인은 공허해지고 의미 없이 흘러간다.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 자신마저 납득하지 못할 위기를 맞는다. 그 사이로 불길이 튀어나오며 장르적 쾌감도 조금 깃든다. 줄곧 냉정하고 건조하던 영화는 온 집안을 부술 것처럼 처절한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그러면서 킬러가 바라보는 세계는 조금씩 변한다. 서서히 남의 이야기가 들리고 보인다. 특히 전문가와의 대화가 정점이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은 킬러와 전문가. 전문가가 묻는다. 이 직업에서 회의를 느껴본 적이 언제냐고. 일을 하면서 언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해 봤냐고. 그 순간 킬러는 흔들린다. 조각상 같던 그가 위스키를 단숨에 비워 버린다. 단답이지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그는 자기 세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애써 외면한다. 계획대로는 아니더라도 완벽한 삶을 복구해낸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복수극은 마냥 기쁘지 않다. 언제나 완벽하려는 자기 노력이 그럴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킬러의 마음에 깃든 이 건조한 희망의 존재는 큰 액션이나 제스처 없이도 틸다 스윈튼의 존재감이 압도적이고, 많은 대사 없이도 패스밴더의 연기가 일품인 이유다.
핀처가 보는 현대인
어떤 면에서 극 중 킬러는 <소셜 네트워크> 속 마크 저커버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이스북 CEO로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허브의 중심에 선 그.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외톨이다. 절친도, 동업자도, 심지어 변호사마저 그를 떠났다. 그는 전 여자친구에게 친구 신청을 보내고, 받지 못할 답을 처량하게 기다린다.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고립된 후에야 자기가 놓치고 산 게 뭔지 어렴풋이 깨닫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킬러의 차가움과 냉철함이 장르적 쾌감을 거쳐 쌀쌀하게 이어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즉, 킬러는 암살자이기 이전에 비극적인 현대인의 초상을 비추는 인물이다.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도로 청소차나 쓰레기 수거차는 킬러와 현대인의 삶을 함축하는 듯하다. 에릭 메서슈미트 촬영 감독의 영상미, 애티커스 로스와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과 어우러지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겨냥한 문제의식과 메시지는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진다.
결국 데이비드 핀처는 킬러의 일상을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척하면서 하나의 거울을 가져다 놓는 셈이다. 나르시시즘 섞인 킬러의 독백와 업무 과정을 통해 화면 너머의 자기 자신을 보도록 유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더 킬러>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어떤 장르든 핀처는 영화를 잘 만든다는 증명뿐만 아니라.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핀처, 패스밴더, 스윈튼 팬 모두가 사랑에 빠져 곱씹을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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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3년만에 세상 밖으로
3년만에 세상 밖으로, 이은정 감독의 '오랜만이다'
개막식부터 이어진 비소식과 더운 날씨에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주는 관객들이 많다. 이은정 감독은 첫 장편영화이자 음악영화를 선보이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2020년 팬데믹과 맞물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과 ‘연경, 음악, 그리고 이은정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소개와 함께 간단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를 연출한 이은정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는 오랫동안 가수의 꿈을 꾼 연경이 서른 초반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꿈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기타 하나가 첫사랑 현수로부터 배달되며 다시금 떠오른 첫사랑, 꿈과 현실 사이 청춘들의 고민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제작사 대표님이 ‘지하철에서 첫사랑을 만나 보내는 하루’를 음악 영화로 오랫동안 기획하셨는데요. 제가 연출을 맡았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을 1년 정도 멈추었어요. 그때 절반가량의 시나리오도 다시 썼거든요. 처음에 작성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촬영을 중단한 1년의 기간이 감독님께는 더욱 깊이 있어진 시간이 되었을까요?
영화 속 연경이도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자꾸만 벽에 가로막히고 좌절하고 어쩌면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실 촬영이 중단되니 연경과 감정이 동일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바뀐 시나리오를 감독님과 배우님들께서 좋아하셔서 나머지 절반을 새로운 시나리오와 합쳐 완성했어요. 기존의 시나리오는 로맨틱 코미디 성향이 강했다면 완성작은 훨씬 차분하고 음악인으로서 연경의 성장담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이 영화 자체가 연경이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작업하는 가운데 촬영이 계속 중단되다 보니 “아냐 넌 할 수 있어, 될 수 있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연경이가 마지막에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데 울컥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곡 추천 부탁드립니다.
여고생 연경과 잘 어울리는 곡인 '천문학은 모르지만', 현대에서 부르는 '무지개'라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무지개'를 들을 때 각자의 느낌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감성인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처음입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어요. 저 혼자 3년 가까이 영화 '오랜만이다'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언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다 영원히 안 되면 어쩌지 불안감도 생겼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저의 불안을 해소해 준 느낌이에요. 처음으로 극장에서 상영한 것을 보게 되어 의미가 있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감동이었습니다.
8월 12일, 이은정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 상영 후 곧바로 음악 공연을 하는 ‘히든트랙’에 참석했다. 당시 관객과 가까이에서 만나 영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진짜 음악영화제’라 마음에 와닿았다고 전했다. 이은정 감독은 연경과 음악의 연장선에 서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은정 감독은 영화 '오랜만이다' 음악들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음원도 나오고 나중에 노래방에서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싶다는 즐거운 꿈을 밝혔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에디터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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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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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외면하고, 진실을 피하고, 흘러서 결국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 선악을 넘어서영화 <아네트>를 보러 가기 전에 줄거리를 읽어보았다. 오페라 가수 '안'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 첫눈에 반한 둘, 그리고 빛과 어둠. 파도를 배경으로 한 포스터는 꽤 격정적으로 보였고, 이것을 사랑의 소용돌이쯤으로 해석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게 있었다. 장르에 로맨스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사랑을 노래하는 뮤지컬 영화인데 왜 분류를 이렇게 해뒀을까?
영화를 보던 중에 이해했다. 이건 사랑 영화가 아니구나.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답게 시작은 음악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음성이겠다. 숨도, 웃음도, 말도 허락하지 않는 사회자의 말. Ladies and Gentlemen.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에 할 법한 시작과 달리 그가 하는 말은 다소 기이하다. 노래부터 웃음, 하품, 눈물처럼 다소 즉각적인 반응, 심지어는 숨 쉬는 것마저 이 쇼에서는 금지된다. 우리 개인의 자유와 의사결정을 모두 빼앗듯이.
이제 밴드의 녹음 현장에서 실제 감독이 나와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So may we start. 플래시몹처럼 한 무리에 사람이 하나둘씩 불어나고, 끝으로 주인공들이 걷고, 걷다가 흩어진다. 이때부터 영화의 큰 특징이 드러났다. 함축과 생략. 대사가 곧 노래 가삿말이 송스루 뮤지컬 영화다운 면모다. 다만 <레미제라블>을 떠올리면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아네트>는 서사 전개 방식이 평이하지 않다. 인물의 삶과 방향성,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중요한 대목은 가십 뉴스 형식으로 짧게 보여준다. 그것도 음악과 어우러지니, 뉴스보다는 광고에 가까운 느낌이다. 시간을 뛰어넘기 용이한 구조다.
어느새 인물은 미래에 와있고, 생각이나 감정은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서 드러난다. 오페라 가수 안, 스탠드업 코미디 헨리 모두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연기하는 사람이니까.
안이 맡은 배역은 늘 배신과 고통이 뒤따르며, 캐릭터의 죽음으로 끝난다. 옷과 역할은 바뀌지만, 그의 결말은 전혀 달라지는 게 없다. 이것이 하나의 운명인 것처럼. Where is the moon? Where is the starlight? 별빛도, 달빛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을 맴도는 안. 꼭 미래의 복선 같은 노랫말이 들린다. Though I thought that I knew him, I am wrong. I don't know him. He is a stranger. Tonight.
헨리는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만의 루틴을 반복한다. 담배를 피우고, 바나나를 먹고, 가볍게 뛰면서 펀치를 휘두르고, 복싱 가운의 후드를 뒤집어쓴다. 관객들의 웃음, 환호, 박수를 받던 헨리. 유쾌함으로 물든 공간에는 하나의 물음이 끝없이 뒤따랐다.
Why did you become a comedian? 헨리는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안의 이야기를 한다. 안과 약혼했다고. 한창인 나이 때에 자유가 끝났다고 표현하자, 관객석 한 곳에서 약간의 타박이 들렸다. 다시, 헨리가 반응했다. 안은 너무 완벽한데 자신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느냐고. Yes, Yes, Yes. 이 대답은 실제 헨리가 들었던 반응일까, 아니면 헨리의 자격지심일까?
영화의 빌드업은 끝났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불안이 모습을 드러내고, 탑이 무너질 때다.
둘은 결혼하고, 아이가 탄생한다. 딸의 이름은 아네트 Annette. 하지만 아네트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보이지 않는 줄로 인형을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Marionette의 모습이었다. 아네트는 보호자의 품에 안긴 채 모든 움직임에 제약받는다. 뽀뽀를 피하려고 고개를 돌려도 그 작은 몸짓은 가뿐히 무시당하고, 결국 보호자는 원하는 바를 취한다. 이 또한 뒤에 펼쳐질 이야기의 단서가 된다.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안과 대조적으로 헨리의 커리어는 퇴행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끝인 셈이다. 타인을 공격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비꼬던 것이 통하지 않자 헨리는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를 펼쳤다. 오늘 안을 죽였다고. 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 헨리는 이야기를 멈췄어야 했다. 그건 더 이상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 모욕적인 폄하라는 의미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헨리는 과거의 영광에 살면서 현재의 추락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안의 성공과 지위를 시기하기에 이르렀다. 열등감은 소위 '망한' 사람들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 커리어가 망한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들, 즉 자기혐오가 열등감으로, 열등감이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발현된다.
그 흔적은 헨리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드러났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고 온 여섯 명의 여성. Subjected to Henry McHenry's abuses. Witnesses to his violence. And his anger. His anger. 이때 그들의 모습은 꼭 경찰서에서 취조당하는 용의자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나서서 말을 하느냐는 노랫말이 압박감을 더했다.
이때 교차된 장면은 공연장으로 이동하던 안이 잠결에 보았던 산불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헨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보였다. 약간 놀란 듯한 안의 표정에서도.
두 사람은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고자 요트 여행을 떠났다. 비가 퍼붓고, 배가 흔들리고, 왠지 모르게 스산한 여행을 누구도 상상하진 않았을 테다. 술에 잔뜩 취한 헨리는 비를 맞으며, 그만 들어가자는 안의 말을 모조리 무시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작된 왈츠. 안은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헨리의 손아귀에 잡혀 마구잡이로 돌고, 휘청이고, 미끄러진다.
헨리는 안의 말을 개의치 않는다. 바람 때문에 목이 상한다는 말도, 이러면 위험하다는 말도. 오히려 그 말에 자극을 받은 듯 움직임은 더욱 과감해졌다. 결국 헨리의 우악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안은 바닷속으로 빠지고 만다. 헨리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작은 배를 타고 아네트와 탈출해 몸져눕는다.
달을 바라보는 아네트, 그리고 억울함에 유령으로라도 주변을 맴도는 안. 이제 안의 복수가 시작된다. 다름 아닌 자신의 딸, 아네트의 목소리로.
헨리는 아네뜨에게 줄 선물로 램프를 사 온다. 불을 켜면 방 안에 달과 별이 퍼지는 램프. 그때 아네트는 노래를 부른다. 노랫말보다는 멜로디다. 그 흥얼거림을 듣고, 헨리는 안과 오랜 인연이 있던 지휘자를 데려 온다. 그러니까, 자신의 커리어와 명성이 모두 소멸된 헨리에겐 새로운 기회였던 것이다. 지휘자는 이건 아동 착취라고 거부했지만, 그건 처음뿐이었다. 돈 때문이든, 명성 때문이든, 예술적 호기심 때문이든, 혹은 그 모든 것을 위해서든 아네트를 무대에 세웠다.
아네트는 금세 인기를 얻고, 그 인기의 보상처럼 헨리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아네트의 목소리는 멜로디를 부를 때만 들을 수 있지, 평소엔 어떤 말도 조잘대지 않았다. 장난감 악기를 가지고 놀던 뒷모습은 방과 무대에 갇힌 꼭두각시 같았다.
헨리는 지휘자에게 아네트를 맡겨두고 밖을 떠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환호해 주고, 사랑해 줄 여성들을 만나러. 하지만 헨리는 아무것도 사랑을 하거나 받을 자격이 없다. 이미 자신의 손으로 사랑을 죽였고, 또 다른 사랑은 한 곳에 방치해 뒀으니까.
성공의 궤도에 오를수록 헨리는 불안해진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끝은 또 살인이었다. 아네트는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 현장을 제 눈으로 목도하지 않아도 헨리의 살짝 젖은 머리, 눈빛, 숨결에서 느꼈을 테다.
상황의 끝에 다다른 헨리는 갑작스럽게 아네트의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끝까지 돈벌이를 놓지 않았다. 성대하게 펼쳐진 아네트의 은퇴 전 마지막 공연. 언제나 그렇듯 아네트는 벼랑 끝 같은 구조물에 섰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점이 있다. 아네트는 멜로디를 부르지 않고,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Dad kills people.
재판장.
탕. 탕. 탕.
총소리 같은 나무망치 소리.
드디어 마지막. 진짜 아네트를 만날 때다. 많이 변했구나, 한 마디로 마리오네트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아네트. 헨리도 변했다. 확 짧아진 머리.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신의 턱 끝을 물들던 붉은 상흔도 어느새 꽤 큰 크기로 자리 잡았다.
헨리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며 아네트의 용서를 빈다. 하지만 아네트는 헨리와 안, 모두를 거부한다.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했지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하지 않았다고. 특히 헨리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아네트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한다. 용서하지 않고, 잊지 않고, 강해지겠다고.
마리오네트는 죽고, 이제 아네트는 교도소 밖, 세상을 살아간다.
숨소리까지 허용치 않던 쇼가 끝났다. 엔딩 크레딧에서 우리는 배웅을 받는다. 어쩌면 그들을 배웅하는 걸까. 우리는 그들이 비춰주는 수많은 달을 보며,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테다. 달이 비추는 건 길이지만, 내가 비추는 건 나여야 한다. 남이 나를 어떤 식으로 보든, 내가 나를 잃는 순간 나의 심연은 괴물의 것이 될 테니까.
'괴물'이라고 해서 교활하고 치명적인 게 아니다. 옳고 그름의 판별 능력도, 상황 파악 능력도, 사랑할 능력도 대상도, 그 무엇도 없는 사람. 그러니까 줄이 달린 인형이 되는 셈이다. 그 줄을 끊는 건 결국 나의 보호자도 아닌 나 자신이고. 이 사실을 홀로 깨우친 아네트가 대견스러울 뿐이다.
*위 글은 씨네랩(https://cinelab.co.kr/)에서 초대권을 받아 참석 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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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스트레인지2> 대혼돈이 아니라 광기의 멀티버스인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갑작스레 꿈에서 깨어난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는 멀티버스를 암시하는 듯한 꿈의 내용을 걱정하면서도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끝내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은 크리스틴과의 관계를 곱씹던 중, 괴생명체가 급습하자 '웡(베네딕트 웡)'과 함께 전투를 벌인 그는 전투 도중 꿈에 등장했던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멀티버스가 실재하며 멀티버스를 넘나들 수 있는 아메리카의 능력을 뺏는 존재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과거의 전우이자 마법에 통달한 또 다른 히어로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스칼렛 위치로 각성한 완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유로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완다로부터 아메리카를 지키기 위해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싸움에 나선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2016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으로, 멀티버스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개봉하는 첫 MCU 영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닥터 스트레인지 2>를 기대하는 시선과 분위기는 특히 '멀티버스'에 집중되어 있었다. 실제로 개봉 전 수많은 팬들은 <노 웨이 홈>이 그랬듯이 이번 작품도 특급 '카메오'를 선보일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멀티버스에 방점이 찍힌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칼렛 위치의 추적을 피해 아메리칸 차베즈를 보호한다'는 핵심 플롯에 충실하다. 즉 이 작품 속 멀티버스는 그저 공간적 배경이고, 카메오는 말 그대로 카메오에 불과하며 단지 멀티버스를 오가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그 대신 <닥터 스트레인지 2>는 부제인 멀티버스에 붙은 대혼돈, 정확히 말하면 '광기(madness)'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광기를 마주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주한 두 가지 광기
그렇다면 영화 속 그 광기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 스칼렛 위치다. 자신이 만든 환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마법으로 만들었던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누렸던 완다 막시모프. 그녀는 자신의 환상이 파괴되고 연인이었던 비전에 이어 그 아이들마저 잃는다. 이후 어둠의 마법서인 다크 홀드에 의해 타락한 그녀는 쌍둥이 아이들을 다시 만나려는 광기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우주의 쌍둥이들을 데려와 자신의 가정을 완성하는 꿈을 꾸고, 이를 위해 멀티버스를 오가는 능력을 지닌 아메리카 차베즈를 사로잡아 그녀의 힘을 빼앗으려 든다. 이는 세계와 우주의 수호자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자 위협이며, 따라서 스칼렛 위치는 누가 보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주해야 할 위협적인 광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직면한 광기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 그의 내부에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꿈이다. 흔히 꿈은 잠재의식의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깨어 있는 동안 자아나 의식이 미처 깨닫거나 인식하지 못한 경험이나 불안감, 심지어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무의식이 형상화한 것이 꿈이다. 영화는 이러한 꿈의 특성을 멀티버스와 결부시킨다. 영화에서의 꿈은 멀티버스 속 자신을 볼 수 있는 통로다. 따라서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은 결국 본인 내면의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멀티버스를 돌아다니며 다른 여러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나는 여행은 닥터 스트레인지 본인이 애써 누르고 억압하고 있던 무의식에 속한 본인 모습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멀티버스 여정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세계에서 그가 잊으려던 크리스틴과의 추억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에게 내재되어 있던 광기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결과물이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정당화하고, 옳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하며, 사랑하는 이를 차지하려고 세계를 파괴하는 스트레인지를 마주한다. 당장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석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과 대사를 보면 다른 우주 속 본인이 될 가능성이 은연중에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 모험은 완다의 광기를 마주하는 여정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의 광기를 대면하고 그 광기가 자신을 잠식하지 못하게 하는 내적 여정이다. 그러다 보니 작중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완다가 더 능동적으로 사건을 주도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녀의 광기는 이미 드러나 있는 상태이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것은 아직 탐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모습만 다를 뿐 결국 공통적으로 광기를 품고 있는 두 주역의 초반부 대화에 유달리 '이성적'이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것 역시 사뭇 의미심장하다.
거울로서의 멀티버스
이에 더해 멀티버스는 두 광기가 해소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멀티버스는 단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는 행위는 거울에 반사된 '나'의 상을 보는 것이다. 이때 거울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외관이나 정체성을 재고하고 반성할 기회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거울에 비치는 상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언제나 좌우가 바뀌어 있으며, 거울의 표면에 따라서 형태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거울 안에서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나, 동일하지는 않은 또 다른 주체를 만난다. 이때 '나'에게 그 주체는 하나의 대상이고, 그 주체의 입장에서도 '나'는 하나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거울 속 자신을 통해 타인을 만나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는 덴마크의 설치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거울을 두고 평행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는 멀티버스가 바로 그 거울이다. 다른 세계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본인이 내재한 광기의 위험성을 깨달은 그는 그들이 먼저 간 길을 따르면서도 또 다르게 걷는다. 전편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닥터 스트레인지는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희생을 감수하거나 금지된 규칙을 깨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1편에서 그는 금지된 타임 스톤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서는 더 큰 계획을 위해 타노스에게 타임 스톤을 내주며 많은 이들의 희생을 감수했다.
하지만 멀티버스라는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의 스트레인지가 대의를 위한 희생을 택하거나 어둠의 마법에 기댔는데도 실패하는 모습을 제삼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목격한 스트레인지는 이전과 다르다. 독선적인 성격을 잠재우고 다른 이들을 믿으며, 좋은 결과는 물론 옳은 과정도 같이 추구한다. 그 덕분에 그는 자신의 독단이라는 광기가 낳았던 죄책감과 그로 인한 행복의 부재로부터 탈피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소서러 슈프림인 웡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장면은 유머스러운 대목이기도 하지만, 그가 드러나지 않은 광기를 통제하며 한 단계 성숙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광기의 멀티버스인 이유
같은 맥락에서 보면 멀티버스를 건너오는 완다의 공포스러운 추격전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완다는 닥터 스트레인지 외에 꿈에서 멀티버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도 멀티버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이자 동시에 거울이다. 즉, 그녀의 여정은 단지 아메리카 차베즈를 쫓는 것이 아니라, 스칼렛 위치라는 정체성 밑에 가려진 나머지 더 이상 현실의 자기 모습이 아닌 완다의 의식을 깊은 내면에서 끌어올리는 여정인 것이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완다가 처한 상황을 대조하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카마르 타지에 진입하려던 완다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의해 미러 디멘션에 갇힌다. 그는 완다를 수많은 거울로 가득한 방에 가두어 놓으면서 그녀로 하여금 스칼렛 위치가 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려 하나 이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 반면 후반부에 스칼렛 위치는 멀티버스의 완다를 마주 본다. 멀티버스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고 타락해버린 현재의 모습을 깨닫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우주의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이는 완다가 사용하는 다크 홀드의 대척점에 있는 '비샨티의 책'이 맥거핀으로 활용되는 이유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의 대립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 품고 있는 광기를 어떻게 직시하고, 수용하고, 통제할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른 우주의 자신에게 빙의하는 흑마법 '드림 워킹'을 시전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를 게 없지만, 그보다는 마법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한 차이점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영화의 부제를 '광기의 멀티버스'가 아니라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번역한 선택은 캐릭터의 서사에 집중한 의도와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부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양날의 검인 광기의 멀티버스
이처럼 광기로 가득 찬 내면을 여행하는 통로이자,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드는 거울인 멀티버스. 다만 멀티버스의 활용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우선 완다의 광기를 강조시킨 결과 자칫 올드할 수 있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호러 영화적 요소가 MCU에 잘 녹아든 것은 장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터널 장면이나 프로페서 X와의 전투에서 다수의 점프 스케어를 동원해 완다의 집착이나 광기를 살려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칼렛 위치의 압도적인 힘을 잘 묘사한 이 장면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파멸되는 공포감인 코스믹 호러를 부각하는데, 이 대목이 MCU의 클리셰를 비틀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간 MCU의 빌런들은 제모 남작이나 미스테리오, 알렉산더 피어스와 같은 반전형 빌런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광기로 가득한 완다는 초반부터 빌런으로 등장해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해 버린다.
다만 멀티버스와 관련된 인물들의 서사가 평면적이라는 문제를 피하지는 못한다. 작중 멀티버스가 본질적으로 수단과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만 해도 그녀의 과거사가 잠시 모습을 비추지만, 그녀의 역할은 두 주연의 내면을 살피는 멀티버스를 여는 데 한정된다. 그래서 그녀는 철저히 수동적으로 묘사되며, 본격적인 서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다른 우주의 히어로들 역시 같은 이유로 등장할 때의 임팩트에 비해 초라하게 퇴장하기를 반복한다. <노 웨이 홈>과 달리 본 작에서는 카메오가 단순한 일회성 팬 서비스로 낭비되는 듯한 인상이 강한 것이다. 또 멀티버스 속 인물들을 가볍게 소비하는 것은 그간 영웅의 죽음과 희생의 가치를 중시했던 MCU의 접근법과는 괴리가 있다. 달리 말해 '광기의 멀티버스'만으로 호러 영화와 MCU의 간극을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호러물 클리셰대로 안일하게 방심한 인물들이 단숨에 죽는 전개가 남발되거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우연적 요소가 적지 않은 것은 미흡한 봉합의 또 다른 증거나 다름없다.
한편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장점과는 별개로 단독 영화로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있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상징하는 액션이라면 미러 디멘션을 활용한 화려하고 기하하적인 공간 왜곡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연출이 완다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마블은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의 성장을 위해 제각기 묠니르, 슈트, 방패를 제거한 전적이 있다. 다만 이후 더 강력한 능력이나 무기를 획득해 히어로 영화다운 액션을 보여준 것과 세 히어로와 달리, 닥터 스트레인지에게서는 그러한 외적인 변화를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미러 디멘션을 활용한 연출이 주제와 메시지를 잘 살려낸 것과 무관하게 히어로 영화로서 실망스러운 측면이다.
또한 디즈니+의 독점 드라마인 <완다비전>과의 연계가 매우 강해 진입 장벽이 높아진 점도 지적될 만하다. 영화가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을 고려하면, 완다의 성장과 변화를 깊게 다룬 <완다비전>의 내용을 모를 경우 2시간의 러닝타임은 물음표로 가득 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마블 영화가 마주할 문제이기에, MCU로서는 적잖은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결국 광기에 물든 두 히어로의 이야기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기대한 바에 따라 장단점과 만족도가 극단으로 갈릴, MCU 페이즈 4의 또 다른 문제작으로 막을 내린다.
A(Acceptable, 무난함)
멀티버스 파티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한 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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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둘 (2019)
* 리뷰는 영화 <우리, 둘>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우리, 둘 (2019)
감독: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장르: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95분
개봉일: 2021.07.28
평화롭던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위태로운 사랑
아파트 같은 층에 서로 마주한 채로 살고 있는 '마도'와 '니나'는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니나는 마도와 함께 로마로 떠날 것을 꿈꾸지만, 아직 가족들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밝히지 못한 마도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니나는 마도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채 로마로 떠나는 것마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도에게 분노와 설움을 터뜨린다. 자녀들과 니나 사이에서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던 마도는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마도가 쓰러진 이후, 니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연인 마도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없다. 간병인과 마도의 딸이 걸림돌처럼 등장했고, 니나는 말도 할 수 없고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마도를 한 시간이라도 더 보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은연 중에 파악한 마도의 딸 '앤'은 마도를 니나와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마도의 눈길은 니나를 향한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긴장감 넘치는 상황의 연속에서 니나와 마도의 서로를 향한 열망은 마지막까지 시들지 않는다.
로맨스보다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
<우리, 둘>은 노년에 접어든 두 여인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 알려졌지만, 극의 전개 방식은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에 가깝다.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진실을 숨긴 채 마도에게 접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니나의 대범한 행동들과 미저리(?)로 보일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 상대방에 대한 열망은 절절한 사랑보다는 무서운 집착 정도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를 상대방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사랑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마도와 니나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주변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채 온전히 둘만의 사랑을 이어온 사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가족 앞에서 한치의 애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영화의 스릴러다운 연출은 퀴어의 일상을 매일같이 지배해왔던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것과도 같다. 마도의 가족에게 니나는 그저 옆집에 사는 이웃에 불과한 존재. 마도의 집을 드나드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으나 그가 쓰러진 이후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고, 이는 니나의 비이성적인 행동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마도를 향한 니나의 사랑이 과할 정도로 공포스럽게 연출되지만, 이를 단순히 '공포'의 분위기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매혹적인 사운드의 활용, 퀴어 로맨스 영화의 새 장
<우리, 둘>의 백미는 단연 흡입력 있는 연출과 효과적인 사운드의 활용이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혼란을 표현하는데 주변 사물들의 소리를 굉장히 적절하게 활용한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 효과음, 초인종 소리 등을 기괴할 정도로 큰 볼륨으로 삽입함으로써 인물들이 느끼는 내적 갈등을 극화시킨다. 사소한 장면 하나마저도 심각한 분위기와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 또한 이에 기인한다. 최근 감상했던 영화 중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겪는 혼돈의 상황을 1인칭 시점으로 공포스럽게 연출했던 <더 파더>라는 작품이 있는데,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장면들을 스릴러처럼 연출했다는 점에서 <우리, 둘>과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다. 퀴어 로맨스 영화를 스릴러와 접목시켜 매혹적인 연출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작품이다.
결국 중요한 건 함께하는 것
니나는 마도와 함께 로마로 떠나 행복한 여생을 보내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마도의 거동이 불편해짐으로써 두 사람의 꿈은 좌절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니나가 마도 때문에 행했던 기행들로 인해 모아둔 돈을 모조리 잃게 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살아온 아파트에서 발이 묶인다. 하지만, 이동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 비로소 둘은 길고 지겹게 이어져온 술래잡기를 마치고 하나가 된다. 늘 함께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출 때 틀었던 'Chariot, sul mio carro' 노래가 켜져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마음 속에는 두 사람의 애정을 꽃피우게 했던 사랑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니나와 함께할 때만 마도의 병세가 완화되었던 것을 보면, 어디로 가던 간에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 자금을 모두 도둑맞았지만, 니나는 슬프지 않다. 지금 눈앞에 자신이 사랑하는 마도가 눈을 바라보며 함께하고 있으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언론 시사회에 초청 받아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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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알라딘 총정리 #9
환몽씨네 디즈니 특집 1편!
영화 알라딘 (Aladdin, 1992) 분석**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내년도 디즈니꺼!
환몽씨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특집!'알라딘'과 '라이온 킹'에 대해 재밌게 떠들어 봤어요 :)
1편에서는 알라딘 실사화를 기념해,
환몽씨네가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이야기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디즈니
-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
- 알라딘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알라딘이 중국인이라고?
- 디즈니의 캐릭터 설정
- 영화주제 : Be Yourself
- 실사화에서 기대되는 장면!영화 '알라딘'을 보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2편 '라이온킹'도 많은 기대해주세요!
#알라딘 #aladin #영화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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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 염정아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 후기 / 호불호는 갈리는 듯 / 안방에서 편히 보는 첩보 액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크로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하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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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시티> 캐릭터 예고편
페어팩스: 납치할게 로레타&앨런: 탈출할게 관객: 4월 20일에 보러갈게 ? 이 조합에 몸개그와 어드벤처를 곁들여 ? 그들의 남다른 어드벤처에 탑승하고 싶다면 4월 20일, 극장에서 합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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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페이블> 메인 예고편
어떤 상대든 6초 안에 죽인다! 전설의 킬러 ‘페이블’!
살인 불가! 강제 휴업 중!전설의 킬러 ‘페이블’은 자신을 길러준 보스에게서 1년 동안
일반인으로 살 것을 명령 받아 파트너 ‘요코’와 함께 오사카로 떠난다.
이들은 난생 처음 ‘평범한’ 삶에 적응하려고 성실히 노력하지만
주변에서는 좀처럼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러던 중 페이블에게 소소한 일상을 가르쳐 준 직장 동료
‘미사키’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
페이블은 과연 보스의 ‘아무도 죽이지 말고 평범하게 사는’ 미션을 통과하고
미사키를 구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