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펜2023-11-27 22:14:13
이번 주 왓챠 추천작 - <판문점 에어컨>

이번 주 추천작은 왓챠 단독 스트리밍 중인 단편영화 <판문점 에어컨>. 왓챠에는 서울독립영화제나 미장센단편영화제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독립 단편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이 제법 많다. <판문점 에어컨>도 그중 하나로, 꽤 오래전에 봤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꺼내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영화. 2018년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태훈 감독이 연출하고 양광운 작가와 각본을 공동 작업했다. 발표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사랑받으며 상영을 이어오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판문점 에어컨>은 제목 그대로 판문점에 위치한 에어컨이 고장 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무더운 날씨의 여름 땡볕이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최전방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 세워진 UN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의 에어컨이 고장나고, 이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수리기사가 출동한다. 문제는 에어컨의 실외기가 북한 쪽에 있다는 것. 수리기사는 난감해하지만, 곧 체념하고 조심스레 북쪽 땅을 밟아 고장 난 실외기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이태훈 감독은 미장센단편영화제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S사의 에어컨 실외기가 판문점에 있는 사진을 보고 그 사진 한 장에서부터 온갖 상상의 나래를 뻗어나갔다고 말했는데, '판문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이 있어서인지 몇 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단지 '에어컨 수리'라는 해프닝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흡입력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영화의 무대가 된 판문점 T2라는 공간은 단 한 번도 동시에 열린 적이 없어서, 남쪽이 들어가면 북측이 닫아야 하고 북측이 들어오면 남측이 닫아야만 하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이 공간은 '바람'이 통할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인데, <판문점 에어컨>은 해프닝이 마무리되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 문을 활짝 열어두고 에어컨 바람 그러니까 '인공의 바람'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생긴 그대로의 공간으로 열어두어 남북 그리고 남북을 둘러싼 대외적인 관계의 인위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덥고 답답한 공간은 닫힌 문을 활짝 열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는 공간이 바로 판문점, 그리고 휴전 중인 두 국가의 대치선이다. <판문점 에어컨>은 남북이 끌어안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판타지적인 장면들의 중첩으로 소화하는 동시에, 코미디 장르의 단편 영화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10년 후에 다시 보아도, 수작이라 느껴질 만한 작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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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바로 여기가 지옥이야
<지옥> 시즌1은 마치 재난 영화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특정인들에게 지옥의 사자가 고지를 하고, 죽는 날을 지정한 뒤 그 날이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죄인이라고 지칭된 당사자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러한 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공포에 질리기 시작한다. 그 혼란이 극에 달할 때쯤 종교적인 인물인 정진수(김성철)가 등장한다. 그는 새진리회의 의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신의 의도로 포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살촉이라는 지옥 추종자들이 생겨나 또 다른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려는 소도라는 집단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지옥> 시즌1은 지옥 고지와 시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하며 더 큰 혼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가 갑자기 중세 사회 속으로 돌아간 것처럼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연상시키며, 막을 수 없는 재난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종교적인 마음을 이용해 세력을 늘려가는 새진리회가 등장한다. 시즌1이 정진수 의장의 시연과 고지를 받은 갓난아이를 살리려는 현실적인 과정을 그려냈다면, 시즌2는 더욱 혼란스러워진 사회와 갈라진 집단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첫 번째 감정] 정진수의 공포
시즌2에서는 부활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특히 시즌1 중반에 시연을 당해 지옥으로 갔던 정진수 의장이 시즌2 초반에 부활한다. 그의 부활은 여러모로 큰 의미를 가진다. 각 집단들이 그를 이용해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부활자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없던 동안 새진리회는 새 의장을 뽑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고, 그 사이에 화살촉의 세력은 더 커졌다. 소도 역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 왔다. 정진수 의장의 부활뿐만 아니라, 시즌1에서 공개 시연을 당했던 박정자(김신록)도 부활하게 되면서, 두 부활자는 상반된 상황을 보여준다.
정진수 의장은 부활한 이후에도 불안한 상태를 지속한다. 그는 사실 지옥 고지를 받은 첫 번째 희생자였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고지를 받았던 그는 자신이 왜 죄인으로 지목되어야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가졌던 의문과 공포가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정진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런 죄 없이 시연을 당한 사람이다. 그는 오랜 시간 강력한 공포 속에서 살아왔고, 그 공포는 그가 부활한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를 부활한 메시아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정진수는 전혀 그 위치에 갈 생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을 뿐이고, 다른 부활자들도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번 시즌2에서 등장하는 정진수는 시즌1에서처럼 안정적인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공포에 짓눌려 온전한 자신을 잃어버린 허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가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급력은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쓰인다. 그리고 그 공포는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두 번째 감정] 각 집단의 혼란
부활자가 등장하면서 새진리회, 화살촉, 소도는 모두 바빠진다. 각자는 자신들이 신의 의도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기 조직만이 유일하게 신의 의도를 따르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소도는 새진리회와 화살촉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지만, 결국 그들도 신의 의도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가지고 활동한다. 시즌2에서는 또 하나의 집단이 등장하는데, 바로 정부다. 정부의 대표자로 등장하는 이수경 정무수석은 점점 혼란에 빠지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새진리회, 소도, 화살촉 등 각 세력을 만나며 힘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혼란스러운 현재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세력이 가진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국민은 공포 속에 살아가고, 각 세력들이 대립하면서 사회는 점점 무정부 상태로 흘러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등장은 그나마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모습은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과 비교해 씁쓸함을 남긴다. 현실에서 혼란을 방치하고 있는 현 정부와는 달리, <지옥> 속 정부와 관료들은 적어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진리회, 소도, 화살촉 내부에서도 신의 의도를 해석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각 조직 내에서도 방향성에 대해 갈등이 존재하며, 내부의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새진리회는 부활자 박정자를 이용해 신의 의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발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살촉과 소도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정진수 의장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과 이야기 말미에 닥쳐온 또 다른 재난은 이러한 혼란을 극대화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수습하려 할수록 더 많은 변수들이 등장하고, 이로 인해 내부 분열과 사회 시스템의 붕괴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감정] 민혜진 변호사의 따뜻함
<지옥> 시즌2는 전반적으로 무척 어둡다. 마치 세상의 멸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분열과 혼란, 정치적 모략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민혜진 변호사(김현주)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신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으며, 고지를 받은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지는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지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도 찾아온다는 점이다. 민혜진 변호사는 그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신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민혜진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마음과 측은지심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그 마음에 따라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일종의 모성애 같은 감정을 가지고 고지를 받은 사람들을 보호하려 한다. 시즌2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반복된다. 그녀는 규모가 커진 소도라는 조직에 속해 있지만, 조직의 이익보다는 당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전체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민혜진은 어떤 집단과도 다른 가치관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사람 자체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시즌1에서 혼자 살아남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나, 부활자 박정자를 구출해 그녀의 아이들에게 데려다주는 과정 등을 통해, 이렇게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이는 민혜진 변호사가 가진 따뜻함의 온기 덕분일 것이다. 결국 사회를 안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차가운 이성만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민혜진이라는 인물은 <지옥>의 세계관에서 실낱같은 희망으로 보인다.
<지옥> 이 훌륭하게 담아낸 혼란
<지옥> 시즌2는 현재의 정치적 혼란을 확장시킨 것처럼 보인다. 각 집단들이 균형을 잡고 나아가지만, 엄청난 혼란과 재난이 닥치면 그 균형은 쉽게 흔들린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 혼란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겠지만, 국민 개개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공허한 권력에 불과할 것이다. 실제로 <지옥>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이 권력을 쥐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어느 누구도, 어느 집단도 사회를 안정시키거나 권력을 확립하지 못한다.
이 드라마는 매우 현실적인 재난을 다룬다. 지옥 고지와 시연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고,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액션은 마치 실제 지옥에 온 것처럼 공포감을 자아낸다. 시즌2의 메시지는 시즌1보다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며, 관객들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사회 고발적 성격을 지닌 종교적 문제를 다루며, 연상호 감독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더욱 확립했다. 다작을 해온 그에게 <지옥>은 여전히 대표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진수 역을 맡은 김성철 배우는 시즌2부터 새롭게 이 역할을 맡았다. 시즌1의 유아인 배우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김성철만의 정진수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민혜진 역의 김현주 배우는 따뜻함을 감추고 있는 이성적인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박정자 역의 김신록 배우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며, 그녀가 보여준 절망과 고통의 감정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
<지옥> 시즌2는 사회적 혼란과 종교적 광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다양한 집단이 각기 다른 신념으로 움직이며, 그 속에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는 모습은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민혜진과 같은 인물이 주는 작은 희망은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임을 일깨운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공포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복잡성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든다. 마치 지금, 바로 여기가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 시즌2는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반드시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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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와 결단
씨네랩의 초대로 개봉 전 시사회로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기적이고 고집 있고 예의가 없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얼핏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사실 남성을 지칭하는 '아저씨'라는 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왠지 더 어감이 좋지 못한 건 '아줌마'라는 단어다. 여러 미디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무수히 전해지는 예의 없는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대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져 왔고 그렇게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모습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반화의 오류다. 많은 아줌마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제 3자의 눈에 그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과 공간을 지키고 있다.
만약 시장에서 일하는 어떤 아줌마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아줌마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선뜻 쉽게 믿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그 피해에 대한 명확한 증거나 증인이 없다면 더더욱 그런 의심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깊숙이 박혀있는 그 고정관념의 이미지는 꽤 강력하다. 분명히 피해자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깨끗하지 않다. 그 피해자가 아줌마라서 피해 사실의 신뢰성을 의심하거나 피해를 받았음에도 그 정도는 참고 넘기라는 의견도 생겨난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피해받은 이후 어떤 사람들은 그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조차 포기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오복의 이야기
영화 <갈매기>는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변에 무수하게 스쳐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존재는 가까운 엄마 또는 이모와도 가깝다. 우리 주변에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중년 여성 오복도 그렇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다.
영화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로 세 딸을 낳아 기르고 이제 둘째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오복(정애화)이 겪는 일을 차분히 보여준다. 둘째 딸(고서희)의 결혼식 준비에 약간은 들떠있는 모습의 그는 시장 사람들과 저녁 술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던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날 저녁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같은 시장 사람인 기택(김병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사건 이후에 오복의 행동과 감정은 매우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가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사실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는 피해 이후 오복의 시선을 줄곧 보여주며 그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영화 속 오복은 왜 자신의 피해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할까. 아마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시선이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두려움과 혼란이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든 중년인 자기 자신의 모습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나쁜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영항을 주었을 것이다. 피해 직후 오복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힌다. 그의 표정과 행동을 가만히 보여준다. 그저 혼자 앓고 있는 그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은 그가 그저 몸이 아프다고만 생각한다.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혼자 출혈이 난 흔적을 지우면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모습에서 무력감이 느껴진다.
영화에는 성폭행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잠깐의 검은 화면 전환으로 간단하게 넘어간다. 그런 잔인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사건 이후 오복의 표정과 행동으로 그 피해에 대해서 설명한다. 빨간 피가 묻은 속옷을 목욕탕에서 씻는 오복의 표정은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텅 비어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두운 방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그의 표정과 피 묻은 속옷을 봤을 때, 그가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영화는 끝까지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여타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오직 그 인물을 비추면서 그 사건으로 인한 파장에 집중하고 있다.
피해자 오복의 시선으로 제시되는 피해의 잔상들
오복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답답함과 상실감이 잘 담겨있다. 이를 테면 그나마 가장 가해자와 관계가 가까운 어르신에게 가서 사과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다. 가해자와 친한 이들은 오히려 오복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시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다니면서 힘들게 부탁하는 모습에서도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오복은 그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속 시장 사람들은 정부 혹은 지자체와 시장의 권리나 보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사람들 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그냥 덮고 넘어가길 바란다. 각자의 보상금에 영향이 있을까 봐 오복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오복이 받은 심한 상처는 얼마 전까지 같은 곳을 보고 같이 투쟁했던 그 집단에서 마저 치유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복은 그들에게 계속된 거절과 비난을 받는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오복의 남편(이상희)이 술에 취해 성폭행 피해를 받은 아내를 보고 좋았냐고 웅얼거리기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렇게 오복을 외면하는 그들을 비추는 화면에선 피해자인 오복보다 그들이 더 죄인 같고 초라해 보인다.
오복이 나이 들고 보잘것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성폭행이라는 행위를 당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일을 무심하게 생각해버린다. 우리 주변에도 그저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인 오복과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꼭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어떤 피해를 받았다고 해도 온전히 도움이나 위로를 받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은연중에 자리한 나이 든 여성, 아줌마라는 색안경은 사람들의 올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오복은 어린 시절 다른 형제자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은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다. 결혼 후 세 명의 딸을 낳고 그 뒷바라지를 위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을 했다. 날개가 있음에도 육지 근처에서만 생활하는 갈매기처럼 그는 시장과 집이라는 그만의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영화의 제목인 갈매기는 오복이 살아온 삶과도 닮아있다. 영화는 사건 이후, 늘 육지 근처에서만 지내던 오복이 날개를 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까지의 과정이다. 그것을 돕는 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두 딸뿐이고, 남편은 전혀 그를 돕지 못한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오복, 그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복이 다른 시장 상인들에게 증언을 요청하려고 각 상인들의 집을 하나하나 방문하는 장면이다. 마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가 자신의 직업을 되찾기 위해 동료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설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산드라가 그랬듯 오복도 거절이라는 벽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각각 찾아가 설득하는 모습은 영화의 초반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망한 표정을 짓던 오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 다양한 생각이 스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아줌마들을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어디선가 1인 시위를 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런 시위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피해자가 하는 말을 얼마나 신뢰했던가. 그들의 숨겨진 노력과 감정, 행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영화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은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어두운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복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쳐 계속 집중하며 영화를 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여성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지난 21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공동 수상한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갈매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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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의 신이 있기 전에 클로이 자오 있나니
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감독이 MCU의 메가폰을 잡는다고 한다.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았던 클로이 자오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우리나라는 이 요소만큼이나 중요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이런 요소로 화제를 모았다. 또 영화 내적으로도 이 작품은 중요했다.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 새로운 분기점이 필요했던 마블은 올해 영화로는 차기 블랙 위도우를 비롯한 다양한 히어로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해 11월 12일에 한국에서 공식 출시되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포스트 캡틴 아메리카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다룰 멀티버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덕후몰이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 답게 세계관을 촘촘하게 잘 만들고 있다.
마블 빠인 나는 개봉날에 이 작품을 보고 왔다. 사실 다 봤어서 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 작품이 그 정도로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으로 챙겨본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데, 예전에 마블 히어로라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만 알던 시절에 손흥민 선수의 축구 기사를 읽다 무의식적으로 내린 스크롤바에 스포일러를 당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마블 영화를 챙겨본다. 이렇게 빠르게 마블의 영화들을 보면 장점이 또 있는데, 바로 영화 후기를 쓸 때 읽는 사람들에게 신선하다는 것이다. 이왕에 빠르게 영화를 본 김에 늘 감성적인 글만 쓸 순 없으니 액션 영화 리뷰를 하려고 한다. 오늘도 허접한 나의 글솜씨를 읽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꼼꼼하나요?
만약 내가 한 편의 소설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등장인물을 5명 이상으로 설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당연하다. 글을 읽어서 5명의 주인공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남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나는 5명의 캐릭터를 다 살릴 만큼 능력이 없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이런 다수의 등장인물이 주는 단점은 이런 것들일 것이다. 반대로 관객의 입장에서도 다수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아다리가 딱딱 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잉여의 등장인물이 있다는 건 줄거리 몰입을 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니 그럼 이 사람이 왜 이 영화에 있는 거지?'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이 지점을 깔끔하게 대처했다. 극장을 나왔을 때 10명의 영웅 캐릭터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단순히 MCU의 새 판 짜기로 얼굴 비추는 히어로들이 아니다. 각자가 나름의 역할을 한다. 또 이들이 신들이라고 해서 인간과 다른 먼 세계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연애도 하고 배신도 하고 썸도 타며 질투도 하고 스마트폰에 중독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잘 묘사하기 때문에 각자의 인물이 가진 감정선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왜?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로서는 사실 꽤나 괜찮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아예 구멍이 없냐? 이건 아니다. 후반부에 살짝 머리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 클로이 자오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름다운 영상미!' 볼 수 있나요?
<노매드랜드>는 방랑하는 한 인물의 시선을 카메라가 담는다. 이 인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외로움이다. 미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사람 한 명이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통해 고립이라는 이미지를 전한다. <노매드 랜드>가 사용했던 이 카메라 워킹을 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터널스>는 나름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첫째. CG가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아리솀 캐릭터는 인간형의 신이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르마무'와 같은 귀신형 신인데,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데 비해 구체적으로 구현을 잘해놓아서 보면서 적지 않게 놀랐다. 이렇게 CG로 만든 시각 디자인도 좋았지만 자연물을 찍었던 영상미도 좋았다고 본다. 후반부 빌런과 격투하는 갯벌 비슷한 곳은 어떻게 그곳을 섭외했는지 살짝 신기할 정도다. 또 중반부 주인공 일행이 길가메시의 집으로 갈 때 이 거처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다. 현대사회에 있을 법하지만 흔하지도 않아서 이터널스의 신비함을 덧붙이는 연출이었다. 또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이 장소를 섭외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한데, 나무 덩그러니 하나 있는 모습이 테나라는 인물이 가진 외로움을 극대화시켜준다. 이 외에도 세르시가 초반부에 자동차를 장미꽃으로 바꿀 때 '장미꽃'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센스나, 인트로 전에 액션신에 나오는 장소의 분위기가 CG랑도 잘 맞았다. 감독 클로이 자오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음.. 난 이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길가메시는 완력이 엄청 센 인물로 묘사된다. 도입부에 데비안츠 한 마리를 잡기 위해 힘을 충전해 쾅 한번 내려치는 장면이 있다. 이거, 좀 매가리 없이 맞는다. <범죄도시>의 경우의 석도의 액션신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근데 이 작품과는 반대로 그렇게 터치를 많이 하는 게 아닌데도 액션에 현실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맞는 대상이 인위적으로 만든 CG라서 그런지 <이터널스>에서 의 액션이 그렇게 현실적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생동감의 문제는 맨몸액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카리스라는 캐릭터는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오는데, 난 조금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다. 이 오그라듦이 영화를 보는데 어마어마하게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닌데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액션 영화는 서툴다는 느낌이 들긴 할 정도다.
마동석 배우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나 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쓰기엔 스포일러가 된다. (아마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마블에 어떤 돈도 받지 못했다. 진짜로.)
마블의 <라스트 제다이>? 왜 토마토가 썩었나요?
아마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평점이 떨어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전에 알려진 바와 같이 파스토스 캐릭터가 동성애자로, 마카리 캐릭터가 청각장애로 설정된 건 맞다. 길가메시 캐릭터와 킨고, 세르시가 아시아 쪽 배우들인 것도 맞다. 근데 이런 다양성에 관한 키워드들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크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세르시가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은 죄다 나사 하나 빠진 미친놈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파스토스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또 불필요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PC요소가 줄거리 이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역시 아니다. 뭐 그들 나름대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는 볼 수 있겠지만 난 이 영화가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잘 유지했다고 보는 쪽이다. 또 로튼토마토 지수가 떨어졌던 이유는 기존의 마블 영화와는 다른 느낌 때문일 텐데, 가령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경우 윈터 솔저와 캡틴 아메리카가 맨몸액션을 벌이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부분이다. 이를 호응하듯 올해 개봉했던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버스 액션은 정말 좋았다. 마블의 특징을 잘 살린 셈이다. 근데 마블의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긴 하다. 10명의 신들의 캐릭터성을 다 살려야 하는데 액션까지 생동감이 있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아마 쿠엔틴 타란티노도 이런 것들을 소화하기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이 영화는 MCU의 차기 핵심인물들이 나온다는 지점에서 각본을 쓰는 사람의 머리가 복잡한 작품이었을 텐데, 이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다는 것이 어려운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마블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도 평점이 낮았던 건 아닐까?라고 나는 추론한다. 아. 일본의 전범국으로서의 부정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근데 일본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도 아니고 이터널스가 인류의 부조리를 슬퍼한다는 느낌으로 잠깐 묘사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일본의 전범국으로서의 행위를 미화시킬 이유가 없지 않나..?
앞으로 MCU에서 어떤 포지션을 유지할 작품인가요?
물론 내가 케빈 파이기는 아니기 때문에 이걸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블랙 위도우>나 <샹치 : 텐 링즈의 전설>보다 더 중요한 시발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영화의 쿠키는 이 작품에서 자주 묘사되지 않았던 색다른 인물을 보여준다. 이 둘은 원작에서 나름의 포지션들이 있는 캐릭터들로 보이는데, 두 히어로들의 등장 시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영화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타노스의 핑거스냅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어벤저스가 그 이상의 초월자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강화인간 말고도 다른 존재들이 묘사가 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타노스라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외계인들이 필요했던 만큼 추후에 기본 베이스가 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봐도 될까요?
네. 나는 강추까진 아니더라도 추천하고 싶다.
단순히 마동석 배우가 MCU에 출연했기 때문은 아니다.
난 웃기기도 재밌기도 했어서 나름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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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연민이 이어지는 밤
나는 항상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철없는 나를 보듬어 주고,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런 어른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내가 (사회적인) 어른이 된 후였다.
나는 타인의 못남을 어루만지지도,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그저 그냥 그런 어른으로 자라났다. 아직도 나를 돌보기에도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타인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것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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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슬립, 2023> 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을 수상한 독립영화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길호(최준우)와 기영(김영성)이 서로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캐릭터에,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냥 지나가면서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과하지 않은데 따뜻하고, 얕은 것만 같은데 묘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담배와 식물
처음으로 피식거렸던 장면은 기영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식물들에 물을 주는 씬이었다. 이 장면 하나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기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한 핑크색 슬리퍼를 대충 구겨 신고, 앞에서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물을 챙겨주는 사람이라니.
어머니가 남겨준 식물들이 죽지 않도록 정성껏 돌봐주는 행위 그 어디에도 진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잘 자라길 바란다거나, 어느 식물은 어떤 주기로 물을 주어야 한다거나 그런 깊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그게 다다. 그냥 거기에 식물이 있으니까, 할 만큼 한다. 기본적으로 기영은 생명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길호에게 식물에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뿌듯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기영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물을 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사소한 부채감과 비슷한 어떤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주는 대상이 꽃에서 길호로 옮겨간 것은 기영의 성장과도 맥락이 이어진다.
#2. 야, 일어나봐
집 앞 평상에 자는 (누가 봐도) 가출 청소년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굳이 타인과 엮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기영은 그냥 '일어나'라는 말로 길호를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그냥 으레 그렇듯이 잔소리만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기영이 아마 길호에게 1mm의 마음의 틈을 열게 된 건 길호가 기영이 시킨 대로 평상의 쓰레기를 싹 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말을 따르는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티가 난다.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어딘가 보살펴 주고 싶은 구석이 보인다.
기영은 본가에서 반찬을 얻어오던 날 길호를 집으로 초대한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영의 본가에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기영은 꼬박꼬박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겉옷을 사 입으라며 돈뭉치를 억지로 쥐어주고, 아줌마는 도망치다가도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평범한 가족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순간적인 연민이 불쑥 커진 그날 밤부터, 기영은 길호를 조금씩 돌보기 시작한다. 마른 흙에 물을 주듯, 서툴고 천천히 양육이 시작된다.
하지만 당연히 양육은 쉽지 않다. 길호는 기영이 집을 비운 날 친구들에게 휩쓸려 집에 패거리들을 재우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길호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기영이 혼자 집을 비운 것부터 부주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또 기영도 서투른 어른일 뿐이니까. 아버지의 똥을 열심히 닦고 와보니 또 길호가 똥을 싸놨다. 기영은 남의 똥을 치우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데, 자꾸 주위 사람들이 똥만 싼다.
#3. 머리 위의 랜턴
영화를 보면서 랜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길호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둑질을 할 때나, 어두운 굴다리를 걸어갈 때 주로 랜턴을 끼고 나오는데, 마치 길호의 시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랜턴이 있으면 눈 바로 앞은 밝게 잘 보인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잘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시야는 막상 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어딜 봐야 하는지 당최 파악을 할 수는 없다. 길호도 마찬가지다. 길호의 눈앞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잘 곳, 먹을 것, 그리고 있을 곳이다. (잘 곳과 있어야 하는 곳은 다르다)
하지만 길호는 랜턴을 벗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아이다. 나쁜 일이란 걸 알고 있고, 벗어나고도 싶지만 랜턴을 벗으면 어둠뿐인 것을 알기에 벗지 못한다.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라도 랜턴을 껴야만 했다, 기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기영은 길호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집도 기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라면도 있고 TV도 있고, 서로 결혼을 못 할거라는 사소한 악담도 나눈다. 마지막에 길호가 기영을 찾아가면서 친구들과 반대로 걷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고 좋았다. 드디어 길호는 랜턴을 본인이 정말로 가야 하는 길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길호가 랜턴이 필요 없는 일상을 보내기를 바란다.
#4. 연민의 확장
기영은 길호랑 지내는 기간 동안 직장에서도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인다. 우는 모습도 못 본 척하며 무관심하던 기영은 어느새 초은(이랑서)과 조금씩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집에 데려다준다는 전에 없던 다정한 태도도 드러낸다.
참 조그맣던 기영의 세계는 본인도 모르게 길호로 인해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진다. 아마 길호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길호를 내쫓은 후 기영이 일하는 모습이 첫 장면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지게차를 모는 장면은 같은 장면을 두 번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라 보였다. 원래 사람은 잃어봐야 그게 마음에 있던 거라는 것을 알아챈다고, 사실 예전 일상과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영은 많이 허전하고 공허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이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 호수가 기영과 길호의 마음이라는 건 스크린에서 본 나도 알겠으니까. 던진 돌은 결코 다시 안 던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5. 빅슬립
기영은 길호에게 '불쌍한 척 하지마, 그럼 진짜 불쌍해지는 거야'라며 충고한다. 기영은 스스로를 불쌍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에 타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 적당한 사람. 여러 사회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관객이 보기에도 그는 불쌍하지 않다. 그냥 하루를 적당히 잘 보내고, 할 만큼 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영화는 매우 남성적이다. 영화 보는 내내 여자 두 명의 이야기였으면 갈등부터 해결까지 단 하루밖에 안 걸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소통이 불가한 캐릭터 두 명을 갖다놓으니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초은이 등장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할 때는 마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꽤 높은 수준의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력이 놀라웠다.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몰입도를 끌어낼 수 있는 건 독립영화에서 약간 과장해서 8할은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역 배우가 나온다면 연기력에 대한 기대는 사실 반쯤 내려놓고 보는 편인데, <빅슬립>의 두 배우 모두 캐릭터 그 자체로의 모습이어서 연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어디에 나온다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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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불쌍해하지 않으면서 대가 없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을까.
내가 받았었던 약한 연민들의 순간, 그리고 그 찰나들이 지탱해 준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은 잠을 청해봐야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 시사회에 참석하여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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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1시간을 가득 채운 배우의 힘
Information
1. 빨래 Laundry
Korea | 2020 | 27min | G
Director
김혜진 Kim Hea-Jin
Cast
문승아
Synopsis
가족사진을 찍는 날, 옷을 한 번에 넣고 돌리는 가족들의 습관 때문에 혜수의 와이셔츠만 줄어들게 된다. 무심한 가족들에게 혜수는 작은 복수를 결심한다.
2. 새벽 바다 노을 The Golden Hour
Korea | 2021 | 23min | G
Director
김영 Kim Young
Cast
문승아 유가은 김지환 최자인 최묘견 오윤수
Synopsis
노을은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사촌 언니 새벽의 집에 놀러 가지만 어른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새벽의 팔찌에만 관심을 보이던 노을은 어른들 탓에 새벽이 상처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Review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는 어린이 배우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영화를 많이 선보인다. 그중 한 배우를 선정해 특별전을 기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이 배우 특별전: 문승아’이다. 그녀의 연기력을 엿볼 수 있는 2편의 장편과 2편의 단편으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는데 방문했던 9월 15일에는 단편인 빨래’와 ‘새벽 바다 노을’이 1시간 동안 연달아 상영되었다.
그녀가 바랐던 가족사진이란_영화 ‘빨래’
가족이 세탁소를 하는 혜수는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오라는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온다. 세탁소에 붙어있는 가족사진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 오빠가 찍은 사진뿐 사진관에서 제대로 찍은 사진은 없다. 가족사진을 찍어야 하는 숙제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족 모두가 흰 셔츠를 입고 화목하게 찍는 사진을 누구보다 기대한 그녀는 사진을 찍는 날만 기다린다. 가족사진을 찍는 날, 옷 구분 없이 세탁기에 한꺼번에 옷을 넣고 돌리는 가족의 무심함으로 그녀의 와이셔츠는 줄어들고 만다.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지만, 세탁소 일로 바쁜 그들은 답변을 그르치기 바빴고 PC방에 있는 그녀의 오빠 또한 오히려 화를 내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들의 와이셔츠를 자신과 같이 줄여버리기로 귀여운 복수를 실행한다.
<빨래>는 27분의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설렘, 작아진 와이셔츠로 인한 속상함, 그녀가 줄인 와이셔츠를 입고 불편해하는 가족의 모습에 대한 통쾌함 등 혜수가 느꼈을 감정들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영화는 담아낸다. 결국 가족들은 작아진 와이셔츠를 견디지 못하고 사진관에 마련된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에 혜수는 사진관을 뛰쳐나간다. 방황하던 그녀는 와이셔츠가 아닌 다른 옷을 가지고 사진관으로 가지만 이미 사진관은 문이 닫혀있었고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그녀는 작아진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넣고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며 끝이 난다.
가족 모두가 와이셔츠를 입는 그런 단순함으로 인해 그녀가 그런 복수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같은 옷을 입고 웃는 모습으로 한 장의 추억을 남기는 것이 그녀가 바란 모두였을 텐데. 왜 그들은 그녀의 작은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 이런 혜수의 속상함, 허탈함 등이 문수아 배우의 연기력으로 여실히 느껴져 더욱더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사진관에 마련된 가족사진을 보면 모두가 흰 셔츠를 입고 서로를 마주 보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짓는다. 흰 셔츠가 주는 통합은 단순히 사진의 깔끔함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모두가 같은 색깔을 입음으로써 ‘가족’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혜수의 엄마가, 아빠가, 그리고 오빠가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알았다면 이날이 혜수에게 평생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웃기에도 바쁜 그들을 울 게 만드는 것은_영화 ‘새벽 바다 노을’
사촌의 집으로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가는 노을은 그저 사촌 언니인 ‘새벽’에게 자신이 만든 팔찌를 줄 생각엔 마냥 기쁘다. 새벽을 만나 기쁜 노을이지만 새벽은 어딘가 불편한 내색을 보인다. 새벽과 집에서 놀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가서 놀자고 하는 그녀로 인해 새벽, 바다, 노을은 놀이터에서 함께 놀게 된다. 계속 밖에서 놀자는 새벽, 알고 보니 새벽의 새엄마와 할머니, 노을의 엄마가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것이, 그들의 고함을 듣는 것이 힘들었기에 그녀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새벽은 노을에게 노을이 갖고 싶어 했던 비즈 팔찌를 이용해 어른들의 싸움을 멈추고자 제안하고 노을은 고민 끝에 계획을 실행한다. 집으로 돌아와 싸우는 연극을 하는 새벽과 노을. 하지만 어른들의 언성은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노을은 결국 서럽게 울며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는 새벽과 바다의 집을 나오게 된다.
새벽, 바다, 노을.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을 표현하기에 순수하게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비즈 팔찌를 만들고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한 장면들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이름이었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을 서로를 비난하고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 한 체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새벽과 노을은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함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지만, 어른들의 논리 아래서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되고 만다.
정말 놀랐던 점은 문승아 배우의 연기력이다. 어린 배우이지만 다작과 주인공을 여러번 했기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아무리 중견배우여도 1시간 남짓의 러닝타임동안 자기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작품을 촬영한다면 어색함이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녀는 당당했다. 날것의 느낌을 주며 작품 속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드는 느낌을 받았다. 빨래와 새벽 바다 노을은 다른 장르이며 그녀가 맡은 캐릭터 또한 매우 다르다. 연달아 작품이 상영됐기에 어떤 식으로 보일지 매우 궁금했는데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졌으며 섬세하지만 강렬하고 거침없지만 당당한 그녀의 표현력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연기력에 자신감을 갖고 연기하는 배우만큼 훌륭한 배우는 없다고 본다.
SICFF
WE KID,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바로 ‘어린이’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기 때문이죠.”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SICFF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를 바랍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소개 일부 발췌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2023년 9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롯데시네마 은평, 은평문화예술회관, 은평한옥마을 등에서 진행됩니다.
*본 포스팅은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랩〉의 프레스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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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튼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All of Our Heartbeats are Connected Through Exploding Stars
감독: 제니퍼 레인스포드 Jennifer Rainsford
시놉시스:
2011년 3월 11일에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30분 후 검은 쓰나미가 해안을 덮쳐 차와 집, 사람들을 바닷속으로 내몰았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으려 100번도 넘게 다이빙하는 남자, 실종된 남편에게 아직도 편지를 쓰는 사치코, 쓰나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토코를 만난다. 이들은 바다 건너 하와이 카호올라웨섬에서 쓰나미의 잔재를 청소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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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는 이따금 지나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가령 그토록 많은 재해가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인간에 의한 각종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 위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우리의 일상과는 별개의 일로 생각하곤 한다. 이는 대단한 오만이자 착각인데, 그 까닭은, 실상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떤 것도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은 우리 중 많은 수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직시하지 않았던 해양 오염과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 탁월하게 그려낸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 파도가 휩쓸고 지난 자리
영화는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막이 오른다. 아내 잃은 남편은 죽은 아내의 유해를 찾기 위해 다이빙을 시작했고, 어머니 잃은 딸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 잃은 부인은 남편의 몫까지 살아가고는 있지만, ‘매일이 이어질수록 더 외로워’진다.
압도적인 재앙에 의해 소중한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른바 ‘상심 증후군’에 시달린다.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를 수축시켰는데, 이 중 편도체의 경우 대재해 이후 1년이 지난 후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기억의 일부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은 해류를 타고 흐른다
쓰나미의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파도는 일본을 휩쓴 후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나왔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섬을 형성한 것이다. 2011년 말, 하와이 북부에는 날마다 밀려드는 쓰레기로 고통을 겪고 있고, 거대한 그물 따위가 서로 뒤엉켜 만들어진 ‘유령 그물’은 상어, 돌고래, 물고기들 따위의 ‘죽음의 섬’이 되어 그들의 삶을 위협한다. 이것들이 부서지면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그 플랑크톤은 생선이 먹고, 그것은 결국 다시 인간의 밥상에 오른다.
놀라운 사실은, 사실 쓰나미 역시 인간의 산업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지구의 자연스러운 매커니즘이지만, 인간이 지난 250년 간 석탄과 석유로 말미암아 공장을 가동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상승했고, 이러한 이산화탄소의 1/3은 소위 지구의 ‘다른 쪽 폐’ 역할을 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바다는 점차 따뜻해졌고,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상승했으며, 그로 인해 바닷물이 ‘넘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된 것이다.
3.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트고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관객을 단순히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에 있지는 않아 보인다. 카메라는 플랑크톤들의 가장 미시의 세계에서부터,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거시적인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세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삶을 비춘다. 감독은 특유의 조근조근하고 명확한 내레이션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또 다른 시작의 밑거름이 되노라 이야기한다. ‘유령 어망’ 위에 거북손이 자리를 움트고, 쓰나미가 지난 자리에 ‘1000개의 거품’이라는 풀이 자라나듯이, 거대한 초신성이 폭발한 후 그에서 파생된 원자들이 새로운 별들의 바탕이 되듯이 말이다. 이것들은 쓰나미를 통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렇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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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냥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참한 절망론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차분히 세계가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관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저마다 영화가 던지는 단서들을 짜맞출 수 있게끔 넛지nudge한다. 또한 독특한 시각적 상상력이 인상적이기도 한데, 이는 감독이 시각 예술에 상당한 조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적인 메시지를 한번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2022.09.25(일) 10:30 메가박스 백석점 8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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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듄 #듄영화리뷰 #듄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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