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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혜지'를 잇는 3세대 여배우 9명
1세대엔 태혜지가 있다면 현재는 이 배우들이 자리하고 있죠! 3세대 여배우 특집. 땀범벅이 되어도,
피가 튀겨도, 그마저도 아름다운 청춘 스타들. 눈에 익은 배우들도 혹은 생소한 배우들도 보이실텐데요.
현재~미래의 드라마, 영화를 책임질 9명의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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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결투'가 아닌 '반복되는 미투'에 관한 이야기
14세기 말. 프랑스 노르망디의 기사였던 장 드 카루주의 영지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카루주의 부인 마르그리트였고, 가해자는 한때 카루주의 동료였던 자크 르그리였다. 사건의 진실과 정의를 판별하는 과정에서 카루주는 결투 재판을 신청했고, 파리 고등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결투 재판은 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중세 말기는 각각 신을 시험하는 행위, 왕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이유로 교황과 왕 모두 결투 재판을 꺼려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실제로, 이 결투는 파리 고등법원이 허가한 역사상 마지막 결투 재판이었다). 요컨대, 카루주와 르그리의 결투는 시대의 황혼기에 벌어진 최후의 이벤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이 지금까지도 논쟁적으로 회자되는지를 설명할 순 없다. 결투는 르그리의 패배로 끝났는데, 그의 후손은 결투 후 “5세기가 지난 뒤에도 … 이 결투의 결과가 오심이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르그리의 후손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사가와 전기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시빗거리로 삼은 건 늘 강간 피해자인 마르그리트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영화 〈라스트 듀얼〉의 동명 원작 소설을 쓴 영문학자 에릭 제거는 마르그리트 진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데 동원된 여러 음모론적 상상력의 일부를 책에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탐욕, 질투, 배신 등 ‘사악한 여성’이 가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수많은 악덕이 수 세기 동안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마르그리트 진술의 신빙성을 심문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은 거의 언제나 르그리가 마르그리트의 '무고'로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결투를 앞둔 르그리(아담 드라이버)와 카루주(맷 데이먼). 〈라스트 듀얼〉스틸컷.
이런 주장에 맞서, 소설과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마르그리트가 진실을 말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먼저 살펴 볼 것은 소설이다. 소설은 촘촘한 역사적 고증으로 그날의 진실에 접근한다. 에릭 제거는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사건이 벌어진 시공간과 역사적 상황·맥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고, 사료에 공백이 생길 때면 집요할 정도로 성실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며 빈 곳을 채웠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 중세의 풍경과 사람들의 멘탈리티가 그려질 정도다.
한편, 영화는 자세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카루주, 르그리, 마르그리트 세 인물의 관점을 순차로 배치하여 진실을 조망한다. 첫째는 카루주의 입장이다. 그는 명문가 출신이며 용맹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명예를 갖춘 종기사다. 그런데 함께 전장을 누빈 르그리가 피에르 백작의 눈에 든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르그리가 승승장구할수록 카루주의 입지는 좁아진다. 결국 카루주는 르그리와 피에르 백작이 합심하여 자신을 배척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피에르 백작(벤 애플렉), 르그리와 대립하는 카루주. 〈라스트 듀얼〉스틸컷.
특히 토지를 둘러싼 몇 번의 소송이 결정적이었다. 카루주는 마리그리트의 결혼 지참금이었던 오누르포콩 영지가 자신이 아닌 르그리에게 배분된 점, 벨렘의 성주였던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지 못하게 된 점 등에 불만을 품었고, 자신의 상급자를 법원에 고소했다. 일련의 소송들은 주군과 봉신 사이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카루주와 르그리‧피에르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졌다.
카루주에게 있어서, 르그리의 마르그리트 강간은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결정적 일격이었다. 토지, 명예, 권력 등을 르그리에게 점진적으로 빼앗겨 온 카루주는 강간 사건을 자신의 명예와 남성성에 대한 최후의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르그리와의 사법 결투는 아내를 위한 복수, 즉 정의의 실현이 아닌 자신의 위신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둘째는 르그리의 관점이다. 남다른 여성 편력을 가졌던 그는 마르그리트가 성에 혼자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소설에서는 그가 마르그리트와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르그리가 마르그리트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르그리가 이를 강간이 아닌 ‘사랑’, 즉 합의에 의한 관계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다르다. 르그리는 마르그리트가 사랑이 깃든 육체적 욕망 충족의 상호성을 부정함에 분노한다. 자신과 마르그리트의 ‘사랑’이 그녀의 변덕과 카루주의 비틀린 열등감으로 인해 시끄러운 사건으로 이어졌을 뿐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종기사인 동시에 성직자였기에 결투가 허용되지 않는 교회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카루주처럼 자신의 명예(강간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입증함으로써 획득되는)를 위해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다.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라스트 듀얼〉스틸컷.
세 번째는 두 남자에 의해 이중으로 억눌린 마르그리트의 관점이다. 남편인 카루주는 자기 소유물(아내)을 르그리가 탐했음에 분노하고, 르그리는 자신의 '사랑'이 모욕당하고 명예가 훼손되었음에 분노한다. 정작 강간을 당한 마르그리트는 두 남자의 분노에 치여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마르그리트가 ‘말할 수 없었음’은 당시의 법제도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중세 프랑스의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마르그리트가 강간을 범죄로 고발하려면, 자신의 ‘물건(마르그리트)’을 라이벌이 마음대로 ‘사용(강간)’했음에 분노하는 카루주의 법적 권리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황당한 건, 만약 결투에서 카루주가 패배할 경우 마르그리트 역시 르그리에 대한 무고죄로 화형에 처해진다는 점이었다. 결투 재판이 대중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이벤트의 성격을 지녔다고는 해도 이는 엄연히 재판의 연장이었다. 결투 재판이 정의를 판별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었던 건 왕을 비롯해 성직자, 법관, 당대의 민중들이 결투의 승패에 하나님의 판결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죄 없는 자를 결투에 패배시킬 리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카루주가 패배하여 마르그리트가 화형에 처해진다면, 강간 사건 역시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게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들은 마르그리트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강간 피해를 증언했는지를 짐작케 해 준다. 수많은 조롱과 불신 속에서도,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겪은 일을 반복적으로 분명하게 증언했다. 에릭 제거는 “그녀가 프랑스의 최고법원까지 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진술이 사실임을 의연하고, 거듭해서 맹세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간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마르그리트 증언이 믿을 만하다고 단언한다.
르그리의 변호사 르코크가 남긴 기록이 말하듯, “사건의 진상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실제로 그런 범죄 행위가 일어났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다.” 즉, 여러 전문가들이 “거의 시작부터 이 유명한 사건 주위에 꼬이기 시작한 신화와 오류”를 반복적으로 짜깁기하여 거짓을 유포하는 동안, 마르그리트만이 일관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불행한 건, 에릭 제거가 비관적으로 예상하듯, “수상쩍은 전설이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리라는 점”이다. 진실을 일관되게 말하는 여자의 말보다 '명예'를 주장하는 남자의 말, 소문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전문가'의 말이 더 큰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 이후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무수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라스트 듀얼〉은 마지막 결투 재판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너무도 불운한 역사적 반복에 관한 이야기다.
*에릭 제거는 “이런 황당무계한 전설들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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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로 표현한 무한한 가능성
우리는 일상을 지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한다. 과거의 행동이나 모습, 현재의 행동이나 모습, 미래의 모습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때론 후회도 하고 또 잘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이 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다. 특히나 나 자신의 과거와 미래 상황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그것을 선택한 나의 모습과 선택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선택 이후 바로 그 순간의 모습이 결정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그런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면서 지나간다.
그런 생각과 상상의 중심에는 현재가 있다. 우리가 결정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난 이후,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어떤 결과를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는 각자의 마음속에 아쉬움이나 뿌듯함 같은 감정을 심어놓는다. 만약 현재가 초라하다면 그동안 겪었던 많은 실패의 순간들을 후회하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현재가 성공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결정을 하고 좋은 현재를 살고 있어도 그것에 다 만족하기는 어렵다. 현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들, 감내해야 할 쓰디쓴 일들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 주변에 자리한다. 아마도 인생은 그런 쓴 삶의 모습도 감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기발하게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양자경)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변변치 않게 보이는 남편(키 호이 콴)과 딸(스테파니 수)을 책임지고 있다. 화면에 첫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지쳐있고 웃음기가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고, 딸과의 관계도 나빠 보인다. 남편은 아내 몰래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있고, 레즈비언인 딸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연인관계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에블린 주변의 상황은 쓰디쓴 현재인 것 같아 보인다.
에블린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위태로운 상황이고, 가족인 남편과 딸과도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에블린은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는 상태다. 여기에 몸이 불편한 자신의 아버지까지 에블린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에블린이 짊어진 짐은 그가 느끼는 현재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든다. 세무조사 때문에 세무서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기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무척 이상하지만 모든 것이 에블린 자신과 관련이 있다.
세무서에 같이 방문한 남편에게 다른 차원의 우주에 속한 남편이 들어가고 그의 몸을 이용해 에블린에게 말을 건다. 그는 다양한 우주에는 수많은 에블린이 있고, 완전한 악의 존재가 각 우주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에블린도 그런 차원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도 활용하고 쿵후도 배워 이상한 존재들과 대결해 나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에블린은 수많은 다른 에블린과 접속하고 그 삶을 본다. 지금의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 쿵후를 배운 에블린, 가수가 된 에블린 등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 자신의 삶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이어폰과 간단한 시각효과로 차원을 넘나드는 에블린의 모습을 무척 실감 나게 보여준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표현한 멀티버스
영화에서는 에블린이 보는 다른 우주의 다양한 자신의 모습과 각각의 일생을 멀티버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모습 같이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건 나 자신이 가졌던 수많은 가능성들이고, 현재 이후의 미래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과 다른 나의 모습은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에블린이 보는 수많은 자신들의 모습은 다양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가능성들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잠깐잠깐 보이는 다른 우주의 모습은 에블린의 일이나 가족의 위치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의 모습은 근사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회한의 감정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탁소 주인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을 보면서 자기 자신 그리고 남편과 딸의 다양한 모습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그런 에블린이 될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현실로 끌어와 액션과 코미디로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멀티버스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절대악의 존재를 막아내려는 에블린의 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여기에 아주 철학적인 문제도 같이 던진다. 인생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 같은 무척 심오한 이야기까지 끌어오면서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영화에서 에블린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그리고 딸의 관계도 무척 중요하다. 영화는 중반까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후반부에는 딸과의 관계로 이야기를 전환한다. 이 영화의 빌런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한 딸은 모든 우주에서 엄마 에블린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딸은 엄마에게 도망치길 원하고 더 나아가 모든 자신과 엄마를 파괴하길 원한다. 마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영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이야기에서 결국 주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하는 건 바로 에블린이다.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 한가운데서 현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꿰뚫는다. 영화는 분명 액션 장르의 껍질을 가지고 있지만 무척 섬세한 드라마가 속을 꽉 채우고 있다.
양자경의 훌륭한 연기와 따뜻한 드라마
에블린 역할을 맡은 배우 양자경은 그가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얼굴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 쿵후를 잘하는 에블린부터 노래를 잘하는 에블린,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의 얼굴을 모두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에너지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고 관객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면서 완벽하게 이 영화를 에블린과 양자경의 영화로 만들고 있다.
영화는 다양한 가능성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의 선택들과 미래에 해야 할 선택들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현재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미래에 어떤 일이 있든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과 곁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나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 접속하느라 멍하니 상상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는 깨어나서 지금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무척 기발하면서 완성도도 높고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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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소희야, 미안해
Summary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Cast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외
저는 종합고등학교의 인문계 학생이었습니다. 종합고등학교는 인문계와 실업계를 함께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실업계 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업계 학생들의 이름만큼은 매일 목격할 수 있었죠. 학교 정문에 붙은 플래카드에 '김OO(2학년) OO은행, 최OO(3학년) OO기업...'과 같은 취업 현황이 항상 적혀 있었거든요.
어쩌면 우리 학교에도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소희'가 있었을까요? 복잡한 마음을 안고, 현장실습생의 죽음 이면의 진실을 그리는 영화 <다음 소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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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부에서는 현장실습에 투입된 고등학생 '소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트레스가 관성이 된 콜센터라는 공간에서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적 압박과 악성 고객 대응을 견디는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소희'의 관점에서 보여주죠. '소희'는 사무실 여직원이 된 기쁨에 열성을 갖고 일해보지만, 점점 고통받으며 메말라가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합니다.
2부에서는 형사 '유진'이 '소희'가 떠나간 자리를 살피며 현장실습생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어나갑니다. 자살자에 대한 예의 정도로 수사를 시작했던 '유진'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실습생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하죠. 1부와 2부를 모두 깊이 있게 다루다 보니 영화는 2시간 20분가량으로 꽤 긴 편입니다. 그러나 과하거나 넘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완동물관리과 학생이 오직 취업률을 위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통신회사에서 일합니다. 부당한 이중계약을 통한 노동력 갈취는 당연한 절차처럼 여겨집니다. 저임금으로 고강도 감정 노동을 시키면서도 어떠한 존중과 배려도 없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에게는 '취업률을 떨어뜨린 복교생'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어린 사회초년생을 괴롭히는 사회구조가 어떻게 이렇게 공고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만두었으면 됐잖아."라는 말을 쉽게 던지지만, 그 누구도 그만둘 수조차 없었던 '소희'의 상황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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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는 춤추는 '소희'에서 시작해서 춤추는 '소희'로 끝납니다. 연이어 춤 동작에 실패하는 '소희'로 시작해서 끝끝내 춤 동작을 완성해내는 '소희'로 끝납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소희'로 시작해서 더는 현실에 없는 '소희'로 끝납니다. 실패하더라도 심기일전해서 일어날 만큼 활기와 열정이 있던 '소희'가 한겨울의 저수지에 몸을 던질 만큼 메말라가는 모습을 관객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소희'가 분명히 존재했던 공간들을 되짚어가는 '유진'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과 같은 무력감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유진'은 스마트폰 안에 담긴 '소희'의 유일한 유산(춤 영상)을 보며 분노, 회의, 좌절, 그리고 죄책감의 눈물을 흘립니다. 관객은 '소희'를 지키지 못한 '유진'의 허망함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게 되죠. 이것이 영화가 '소희'의 현실을 묘사한 1부에서 그치지 않고, '유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2부를 마련한 또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
많은 영화가 흥미와 재미를 높이기 위해 플롯을 이리저리 꼬곤 합니다. 그러나 <다음 소희>는 복잡한 플롯 대신 흘러가는 시간순으로 '소희'와 '유진'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당사자인 '소희', 그리고 관찰자인 '유진'에게 더 깊이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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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는 영화 곳곳에 숫자와 이름이 가득한 실적표를 배치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과잉 경쟁과 지나친 효율우선주의를 시각화합니다. 콜센터에서는 현장실습생의 실적을 비교하고, 본사에서는 지역별 콜센터의 실적을 비교하고, 학교에서는 반별 취업률을 비교하고, 교육청에서는 학교별 취업률을 비교하고, 교육부에서는 교육청별 취업률을 비교합니다. 효율만을 따지는 현장에서는 실습생들을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죠. 과잉 경쟁과 효율우선주의 끝에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학생이 있습니다.
'소희'의 현장실습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모든 사람은 과잉 경쟁과 효율우선주의로 점철된 시스템만을 탓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이 문제인 걸 알면서도 비판 의식 없이 시스템을 따르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모른 체 하고 있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면, '소희'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소희'를 죽인 가해자인 셈입니다.
실제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이 벌어진 뒤, 정부는 고등학생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곧 고졸 학생의 취업 길을 막는다는 반발이 이어지면서 1년 만에 부활했죠. 현장실습 제도 폐지는 옳은 대처가 아니었습니다. 제도만 없애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음 소희'를 지키려면 모두가 책임지고 바꿔내야만 합니다.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일자리로 내모는 짓을 멈춰야 합니다. 과잉 경쟁과 효율우선주의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를 해소해야 합니다. 어린 사회초년생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합니다. 현장실습생을 비롯해 모든 노동에 대해 정당한 임금과 대우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음 소희'를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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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에 적힌 취업 현황을 보며 먼저 취업하는 또래들을 부러워했던 어린 날의 제가 떠오릅니다. <다음 소희>를 보고 나니, 그때의 제 생각이 활활 불타고 있던 우리 사회의 경쟁 시스템에 마른 장작 하나를 더 집어넣은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듭니다. 관객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터처럼, '소희'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을 마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세상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Schedule in SIWFF2023.08.27(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19:00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08월 24일 - 0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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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일루셔니스트》, 환상은 어디까지가 좋은 것일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다시금 내가 애니메이션 감상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보는 내내 격하게 화가 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작품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시놉시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일루셔니스트는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스코트랜드의 한 선술집에 머물며 공연을 하다 그곳에서 앨리스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일루셔니스트의 무대에 반한 어린 소녀 앨리스는 다음 무대를 찾아 떠나는 일루셔니스트와 함께 여행을 나서고 뒤이은 그들의 모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비언어극 같았던 영화 《일루셔니스트》
영화 《일루셔니스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언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아니기에 대사가 많은 영화의 경우네는 자막을 읽는데 집중을 하다보면 장면장면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작품은 불어였기 때문에 자막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일종의 비언어극처럼 대사보다는 인물의 행동과 주변 환경에 관객들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었다. 앨리스의 달라지는 모습과 함께 점점 낡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부각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앨리스가 빛이 날수록 오히려 영화 자체의 색감이나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걸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보면서 화가 나고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왜 할아버지는 앨리스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걸까? 였다.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면서까지 앨리스의 세상을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준 것일까? 답답했다.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앨리스는 자신이 점점 화려해지면서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마법으로 얻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결국 앨리스에게 마법사는 없다는 말을 남기면서 앨리스의 곁을 떠난다.
둘 모두에게 별로 좋지 않았던 방법인데 왜 그것을 고수했는지 의문이 들었고, 순간적으로 그렇다면 아이들의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던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마법사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앨리스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는 기차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가 연필을 떨어트린 소녀는 기차 의자 바닥에서 연필을 찾는다. 그 연필을 주운 할아버지는 기다란 자신의 연필과 비교하며 소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짧은 연필 대신 긴 연필을 줄까 잠시 고민하지만 원래 소녀의 것은 소녀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마술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환상 속에 두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술 한번으로 아이들이 헛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마술을 보여주되 그 마술은 순간적인 재미일뿐임을 알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장면을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대사가 많이 없어서 영화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그래서 작품의 여운과 의미가 많이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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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가 최악인가, 사람이 최악인가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 글 분량을 채울 수가 없겠더군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제목에서 최악이 되는 대상은 누구인가. 언뜻 들어서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과연 그럴까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영화 안에서 두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율리에와 사랑에 빠진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과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롬 분)는 각자의 매력을 지닌 이들이긴 하지만 완벽한 연애 상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도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은 율리에는 왜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되는가.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며 활기차 보이는 율리에지만 정작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다.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한 가족을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파헤치고, <델마>에서는 사랑에 빠진 초능력자 레즈비언 여성의 성장기를 보여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두 이야기를 합친 것 같은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율리에는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이미 악셀과 연인 사이였고,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오랜 커플의 전형처럼 보인다. 미디어에서 흔히 그려지는 오랜 커플이 그렇듯 권태기가 찾아오고, 서로에 대한 의리가 있어 대놓고 바람을 피우지는 못한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빈드는 악셀보다도 잘 통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옷이 쌓인 침대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급기야 서로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모습까지 공유하지만 선을 넘는 신체 접촉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듯이 헤어질 무렵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바람은 아니라고 도장찍듯 대화를 나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이름을 묻지 않고 헤어지지만 역시나 많은 영화에서처럼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율리에는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만큼 악셀에게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면서 왜 헤어지지는 못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연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악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는 율리에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악셀의 가족을 만났을 때 악셀과 나누는 대화는 도통 두 사람이 연인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대화를 나누는 주제마다 부딪히고, 특히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율리에와 악셀은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율리에가 철저하게 약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자고 싶지 않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혼내고 보채는 건 결국 장면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이기에 율리에에게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세세한 과정에서 실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악셀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율리에의 입장에 공감해주지 못한다. 심지어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여성인 율리에가 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할 때 율리에는 악셀과의 관계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전제 하에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치만을 점유한다. 영화 중반부 만화 작가로 일하는 악셀이 과거에 그렸던 여성 비하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면 악셀이 율리에(를 포함한 여성)에게 최악의 사랑이 될 것을 관객은 짐작하게 된다.
이런 악셀에게 지쳐갈 때 만난 이가 아이 생각이 없다는 에이빈드였다. 임신 출산의 주체로서 여성을 인정하고 선택권을 온전히 넘겨주는 정도는 못 되지만 최소한 에이빈드와는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 다툴 필요가 없다. 악셀과 함께 사는 집에서 일어나 부엌 불을 켠 순간 세상이 멈추고 에이빈드를 찾아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달려나가는 율리에의 모습은 악셀과의 세상은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모두가 멈춘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에이빈드는 멈춘 세상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인 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에이빈드와 키스 후 돌아와 부엌 불을 껐을 때 비로소 악셀은 움직인다. 부엌불은 악셀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메타포로서 작용하는데, 밝은 빛 아래에서 결점까지 보이는 악셀을 더 이상 율리에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악셀과 살기 위해서는 불을 끄고 어느 정도 흐린 시선으로 악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에이빈드라는 선택지가 생긴 율리에는 어둠 속에서 악셀과의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 자리에서 악셀과 이별을 통보하는 율리에는 다른 사람이 생겼느냐는 악셀의 질문에는 거짓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인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제 에이빈드를 만나 안정된 것처럼 율리에는 보이지만 파티에서 마약에 탐닉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에이빈드가 율리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에이빈드의 전 여자친구인 수니바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며 자신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이빈드와의 관계가 안정되어 갈 때쯤 율리에는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맞닥뜨린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 그리고 악셀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것. 아이 생각이 없던 여성이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취하는 행동은 자신에게 최악인가, 연인에게 최악인가? 임신 자체가 모체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어떤 선택을 하든 율리에는 자신에게 최악일 수밖에 없다. 아이 생각이 없었음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을 두고 출산을 고민하는 동시에 악셀을 찾아간 율리에는 에이빈드가 아닌 악셀에게 먼저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에이빈드에게 최악의 연인인가? 임신한 여성의 선택의 결과는 본인이 오롯이 그 책임을 감당할 뿐 주변인의 그 누구도 당사자만큼의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
모호하게 묘사되긴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율리에의 선택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연애하는 내내 자신에게 최악의 선택만을 하던 율리에는 커리어를 이어가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율리에를 인정하지 않고 여성을 공개적으로 비하하던 악셀은 아마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에이빈드는 율리에를 떠나 새로운 인연을 맞이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에이빈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율리에는 사랑을 떠나고서야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으로부터 벗어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자신에게 최악일 만큼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을 영화는 밝은 톤으로 보여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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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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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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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 마틴 에덴 이 궁금하신 분들는 영상 참고 부탁드려요.
간단한 리뷰도 넣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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